[가정] 복된 가정
본문
우리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것을 꼽으라고 하면 저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장으로 불리우는 말씀인데 그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씀처럼 사랑의 소중함을 표현하는 말은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은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누리며 산다 하여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그처럼 소중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은 없을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결핍되어도 당장 문제가 생깁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저에게는 세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가 셋이 되다보면 가장 위험한 아이가 둘째입니다. 위와 아래로 치어서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을 놓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에서는 세 아이중에 둘째가 어렸을 때 손가락을 심하게 빨았습니다. 엄지 손가락에 군 살이 박히리만큼 심하게 빨았습니다. 그것은 나름대로 욕구불만에 대한 싸인 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같지만 사랑에 대한 결핍은 당장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아이에 대한 사랑의 마음은 똑같지만 아이가 느낄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은 달랐습니다. 첫째 아이를 낳았을 때 너무 좋고 기뻐서 늘 아이를 빨리 보기 위하여 뛰어 다니다시피 하였습니다. 백일도 해주고 없는 돈에 카메라도 사서 열심히 사진도 찍어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둘째를 낳았을 때 아무래도 첫째 만큼 대해주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백일도 그냥 넘어갔습니다. 사진을 찍는 것도 첫째만큼 많지 않았습니다. 둘째가 첫째만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어느정도 첫째에게서 욕구가 충족되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정서적인 안정을 찾은 것이지만 하여튼 첫째와 둘째는 그와 같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그것을 알아내는 것입니다. 첫째는 손가락을 빨지 않았는데 둘째는 손가락을 빤 것입니다. 엄마 아빠가 자식에 대한 욕구가 채워져 만족하여 조금 게을러 진 순간 아이는 엄마 아빠에 대한 욕구불만이 생긴 것입니다. 사랑은 그만큼 민감한 것입니다.
둘째의 손가락 빠는 습관을 고치기 위하여 제 아내가 참으로 애를 많이 썼습니다. 더 많이 안아주고 비벼주고 놀아주고 하였습니다. 물론 야단도 쳤지만 그것은 야단으로 고칠 수 없습니다. 그렇게되면 문제가 더 심각해 집니다. 사랑의 결핍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그것은 사랑의 보충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옳지 않으며 바르지 않으며 좋지 않은 일의 뿌리는 사랑의 결핍입니다. 사랑없이는 그 어떤 것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사랑에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치명적인 죄의 문제를 사랑으로 푸신 것입니다. 십자가로 푸신 것입니다. 사랑이 모든 문제의 열쇠입니다.
건강하고 아름다우며 풍성한 삶을 원하신다면 사랑에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리고 사랑에 투자하셔야만 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위하여 늘 기도하고 노력하여야만 합니다.
건강하고 아름다우며 풍성한 삶을 위하여 반드시 받고 느껴야만 할 사랑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부모의 사랑입니다. ’문제아는 없다 다만 문제 부모가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에 문제가 있을 때 아이들은 문제아가 됩니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아마 세상에 그다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부모의 문제는 그 사랑을 아이에게 전달하는 방법에 있습니다. 많은 부모들의 문제는 그 효율이 아주 낮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은 100인데 정작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사랑은 10도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랑은 전달되지 않으면 거의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은 부뚜막의 소금과 같아서 아무리 가득히 있다하여도 넣지 않으면 효과가 없습니다. 많은 부모의 사랑이 마치 부뚜막의 소금과 같습니다. 소금이 가득하게 있다는 것만으로 음식이 짜지지는 않습니다. 마음속에 사랑이 가득하다는 것만으로 아이들의 삶이 채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가 알 수 있도록,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하여야 합니다.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모르는 것을 사람들은 아이가 철이 없어서 그렇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닙니다. 아이가 철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알고 느끼는 것은 아이 책임이 아니라 부모 책임이라는 사실을 아셔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사랑의 원칙입니다.
아내가 남편의 사랑을 모르는 것은 아내 책임이 아니라 남편 책임입니다. 남편이 아내의 사랑을 모르는 것은 남편의 책임이 아니라 아내의 책임입니다. 모든 사랑은 상대방이 충분히 느끼고 알 수 있도록 늘 상대방의 이해 수준에서 표현되어야만 합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깨닫고 느끼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중의 또 다른 하나는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받는 상처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받는 마음의 상처가 뜻밖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이의 인격을 존중해 주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많은 부모들이 자기 자식에게 인격이 있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자기 자식이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함부로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의견이 달라서 다툴 수가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그럴 때 부모들을 일방적으로 자식을 누르려고 합니다. 말도 함부로 막 합니다. 자식들은 대개의 경우 그와 같은 경우 부모에 대하여 최소한의 예의와 룰을 대개 지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부모들은 자식에게 대개 예의와 룰을 무시하고 자기의 감정을 쏟아 붓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들에게 자식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식의 인격에 폭력을 가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부모와 자식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옳지 않은 감정을 자식이라고 함부로 막 조심성없이 표현하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것은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만이 아닙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은 아직도 가부장적인 유교 문화권속에 있는 나라입니다. 때문에 아직도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동등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저부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잘못된 인식과 전통 때문에 대부분 많은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인격적인 모독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을 이야기할 때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랑이 무례함으로 인하여 손상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자녀들이 부모의 무례함 때문에 상처를 받아 잘못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어른에 대한 무례함은 그 뿌리가 어른에게 있다는 사실을 우리 어른들은 인정하여 합니다. 아무리 부모라고 하여도 자식에게 예의가 있어야만 합니다.
물론 아이가 잘못할 때 어른은 아이를 꾸짖을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매를 들 수도 있습니다. 또 마땅히 그래야만 합니다. 그것은 부모에게 주어진 권한이요 또한 책임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남용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아내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남편이하늘처럼 받들어지는 나라라고 하여도 모든 남편은 아내에게 예의를 갖추어야만 합니다. 오늘날 많은 아내들이 남편의 무례함으로 인하여 얼마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자식과 아내에게 무례하게 행함으로 자식과 아내에게 상처를 준 많은 아버지와 남편의 회개가 있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거기에는 저 자신부터 포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싶습니다.
건강하고 아름다우며 풍성한 삶을 위하여 반드시 받고 느껴야만 할 사랑의 두 번째는 부부의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어쩌면 보다 중요한 것이 부부의 사랑입니다. 물론 특별한 경우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서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 결혼을하여 가정을 이루게 되는데 이럴 경우 남편의 사랑을 늘 충만히 받고 아내의 사랑을 늘 충만히 받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의 사랑을 받는 아내가 되기 위하여 연구하고 노력하고 기도하여야만 합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의 사랑을 받는 남편이 되기를 위하여 연구하고 노력하고 기도하여야만 합니다.
부부의 사랑처럼 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귀한 것을 귀한 줄을 모르는 사람에게 주시는 법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7장 6절에 보면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거룩한 것과 진주의 가치를 모르는 개와 돼지에게 거룩한 것과 값진 것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귀한 것을 싸구려로 주시는 법도 없으시고 값싸고 하찮은 것을 귀하게 얻게 하시는 법도 없으십니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은 가장 귀한 구원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셨습니다. 그러나 값없이 주셨다는 말씀은 싸구려로 주셨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금보다 귀한 믿음을 받으시고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최고로 여기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마음과 믿음을 최고로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사업을 위해서는 밤잠을 자지 않고 연구하고 노력하고 기도하면서도 정작 보다 중요한 가정을 위하여 사랑을 위하여는 연구도 하지 않고 노력도 하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는 가정과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업과 비교할 수 없는 귀한 사랑과 가정을 위하여 공부하고 노력하고 기도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부의 사랑을 위하여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부부 사랑에 문제가 생기신 분들이 있다면 고린도 전서 13장을 펴놓고 한 번 점검해 보실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앞에서 이야기한 표현의 문제와 예의의 문제를 한 번 점검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건강하고 아름다우며 풍성한 삶을 위하여 반드시 받고 느껴야만 할 사랑의 세 번째는 자식의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자식이 받아야 하듯이 자식의 사랑을 부모가 받아야만 합니다. 세상에서 남편의 사랑을 받는 아내가 행복하고 아내의 사랑을 받는 남편이 행복하듯 자식의 사랑을 받는 부모가 행복한 것입니다.
모든 자식은 부모의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모든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모든 남편은 아내의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부모는 자식의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모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할 의무가 있습니다. 모든 남편을 아내를 사랑할 의무가 있습니다. 모든 아내는 남편을 사랑할 책임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자식은 부모를 사랑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제 아이중에 공부를 좀 소홀히 하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를 어느날 불러 놓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아빠는 여호와 하나님이 허락만 해 주신다면 늙어서 동안교회에서 은퇴하지 않을 것이다. 아빠가 늙어서 동안 교회를 은퇴하게 되면 아마 원로 목사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동안 교회의 원로 목사만 된다면 노후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아빠는 늙어서 교회의 덕을 보고 싶지는 않다. 아빠는 할 수만 있다면 너희 덕을 보며 살고 싶다. 네 생각에는 엄마 아빠 가 늙어서 교회 덕을 보면서 사는 것이 좋겠냐 너희 덕을 보면서 사는 것이 좋겠냐
아이는 생각할 틈도 없이 당연 하다는 듯이 ’저희 덕을 보시면서 사셔야죠’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아이에게 저는 ’그럼 이놈아 공부 좀 열심히 해라. 그래 가지고 늙어서 아빠가 네 덕 보고 살 수 있겠냐’라고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 말이 효과가 있어서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요즘은 제법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제가 과연 자식 덕을 볼 수 있을는지 없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늙어서 자식 덕을 보며 살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말입니다. 저는 늙어서 자식의 덕을 보면서 사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축복중의 하나라고 믿고 있습니다. 자식 덕을 미리 함부로 포기하면서 사는 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옳지 못하며 좋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교만한 생각입니다.
젊어서는 남편과 아내의 사랑을 받는 것만으로도 살 수 있지만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들이 갈망하는 것은 자식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자식의 사랑을 받는 부모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부모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해 주실 마음은 없으십니까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축복으로 주신 가정을 소중히 여기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식 사랑을 마음에만 담아 두지말고 표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효율을 높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녀을 동등한 인격으로 대우하고 함부로 무례하게 하거나 인격에 모독을 가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편과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자녀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여호와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은 엄청난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에게 사랑받는 자녀가 될 것입니다. 남편에게 사랑받는 아내가 될 것입니다. 아내에게 사랑받는 남편이 되실 것입니다. 자식에게 사랑과 효도를 받는 부모가 되실 것입니다. 참으로 복된 가정의 축복을 받으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축복을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씀처럼 사랑의 소중함을 표현하는 말은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은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누리며 산다 하여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그처럼 소중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은 없을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결핍되어도 당장 문제가 생깁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저에게는 세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가 셋이 되다보면 가장 위험한 아이가 둘째입니다. 위와 아래로 치어서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을 놓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에서는 세 아이중에 둘째가 어렸을 때 손가락을 심하게 빨았습니다. 엄지 손가락에 군 살이 박히리만큼 심하게 빨았습니다. 그것은 나름대로 욕구불만에 대한 싸인 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같지만 사랑에 대한 결핍은 당장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아이에 대한 사랑의 마음은 똑같지만 아이가 느낄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은 달랐습니다. 첫째 아이를 낳았을 때 너무 좋고 기뻐서 늘 아이를 빨리 보기 위하여 뛰어 다니다시피 하였습니다. 백일도 해주고 없는 돈에 카메라도 사서 열심히 사진도 찍어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둘째를 낳았을 때 아무래도 첫째 만큼 대해주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백일도 그냥 넘어갔습니다. 사진을 찍는 것도 첫째만큼 많지 않았습니다. 둘째가 첫째만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어느정도 첫째에게서 욕구가 충족되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정서적인 안정을 찾은 것이지만 하여튼 첫째와 둘째는 그와 같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그것을 알아내는 것입니다. 첫째는 손가락을 빨지 않았는데 둘째는 손가락을 빤 것입니다. 엄마 아빠가 자식에 대한 욕구가 채워져 만족하여 조금 게을러 진 순간 아이는 엄마 아빠에 대한 욕구불만이 생긴 것입니다. 사랑은 그만큼 민감한 것입니다.
둘째의 손가락 빠는 습관을 고치기 위하여 제 아내가 참으로 애를 많이 썼습니다. 더 많이 안아주고 비벼주고 놀아주고 하였습니다. 물론 야단도 쳤지만 그것은 야단으로 고칠 수 없습니다. 그렇게되면 문제가 더 심각해 집니다. 사랑의 결핍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그것은 사랑의 보충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옳지 않으며 바르지 않으며 좋지 않은 일의 뿌리는 사랑의 결핍입니다. 사랑없이는 그 어떤 것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사랑에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치명적인 죄의 문제를 사랑으로 푸신 것입니다. 십자가로 푸신 것입니다. 사랑이 모든 문제의 열쇠입니다.
건강하고 아름다우며 풍성한 삶을 원하신다면 사랑에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리고 사랑에 투자하셔야만 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위하여 늘 기도하고 노력하여야만 합니다.
건강하고 아름다우며 풍성한 삶을 위하여 반드시 받고 느껴야만 할 사랑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부모의 사랑입니다. ’문제아는 없다 다만 문제 부모가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에 문제가 있을 때 아이들은 문제아가 됩니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아마 세상에 그다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부모의 문제는 그 사랑을 아이에게 전달하는 방법에 있습니다. 많은 부모들의 문제는 그 효율이 아주 낮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은 100인데 정작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사랑은 10도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랑은 전달되지 않으면 거의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은 부뚜막의 소금과 같아서 아무리 가득히 있다하여도 넣지 않으면 효과가 없습니다. 많은 부모의 사랑이 마치 부뚜막의 소금과 같습니다. 소금이 가득하게 있다는 것만으로 음식이 짜지지는 않습니다. 마음속에 사랑이 가득하다는 것만으로 아이들의 삶이 채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가 알 수 있도록,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하여야 합니다.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모르는 것을 사람들은 아이가 철이 없어서 그렇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닙니다. 아이가 철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알고 느끼는 것은 아이 책임이 아니라 부모 책임이라는 사실을 아셔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사랑의 원칙입니다.
아내가 남편의 사랑을 모르는 것은 아내 책임이 아니라 남편 책임입니다. 남편이 아내의 사랑을 모르는 것은 남편의 책임이 아니라 아내의 책임입니다. 모든 사랑은 상대방이 충분히 느끼고 알 수 있도록 늘 상대방의 이해 수준에서 표현되어야만 합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깨닫고 느끼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중의 또 다른 하나는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받는 상처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받는 마음의 상처가 뜻밖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이의 인격을 존중해 주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많은 부모들이 자기 자식에게 인격이 있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자기 자식이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함부로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의견이 달라서 다툴 수가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그럴 때 부모들을 일방적으로 자식을 누르려고 합니다. 말도 함부로 막 합니다. 자식들은 대개의 경우 그와 같은 경우 부모에 대하여 최소한의 예의와 룰을 대개 지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부모들은 자식에게 대개 예의와 룰을 무시하고 자기의 감정을 쏟아 붓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들에게 자식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식의 인격에 폭력을 가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부모와 자식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옳지 않은 감정을 자식이라고 함부로 막 조심성없이 표현하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것은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만이 아닙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은 아직도 가부장적인 유교 문화권속에 있는 나라입니다. 때문에 아직도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동등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저부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잘못된 인식과 전통 때문에 대부분 많은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인격적인 모독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을 이야기할 때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랑이 무례함으로 인하여 손상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자녀들이 부모의 무례함 때문에 상처를 받아 잘못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어른에 대한 무례함은 그 뿌리가 어른에게 있다는 사실을 우리 어른들은 인정하여 합니다. 아무리 부모라고 하여도 자식에게 예의가 있어야만 합니다.
물론 아이가 잘못할 때 어른은 아이를 꾸짖을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매를 들 수도 있습니다. 또 마땅히 그래야만 합니다. 그것은 부모에게 주어진 권한이요 또한 책임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남용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아내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남편이하늘처럼 받들어지는 나라라고 하여도 모든 남편은 아내에게 예의를 갖추어야만 합니다. 오늘날 많은 아내들이 남편의 무례함으로 인하여 얼마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자식과 아내에게 무례하게 행함으로 자식과 아내에게 상처를 준 많은 아버지와 남편의 회개가 있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거기에는 저 자신부터 포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싶습니다.
건강하고 아름다우며 풍성한 삶을 위하여 반드시 받고 느껴야만 할 사랑의 두 번째는 부부의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어쩌면 보다 중요한 것이 부부의 사랑입니다. 물론 특별한 경우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서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 결혼을하여 가정을 이루게 되는데 이럴 경우 남편의 사랑을 늘 충만히 받고 아내의 사랑을 늘 충만히 받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의 사랑을 받는 아내가 되기 위하여 연구하고 노력하고 기도하여야만 합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의 사랑을 받는 남편이 되기를 위하여 연구하고 노력하고 기도하여야만 합니다.
부부의 사랑처럼 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귀한 것을 귀한 줄을 모르는 사람에게 주시는 법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7장 6절에 보면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거룩한 것과 진주의 가치를 모르는 개와 돼지에게 거룩한 것과 값진 것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귀한 것을 싸구려로 주시는 법도 없으시고 값싸고 하찮은 것을 귀하게 얻게 하시는 법도 없으십니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은 가장 귀한 구원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셨습니다. 그러나 값없이 주셨다는 말씀은 싸구려로 주셨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금보다 귀한 믿음을 받으시고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최고로 여기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마음과 믿음을 최고로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사업을 위해서는 밤잠을 자지 않고 연구하고 노력하고 기도하면서도 정작 보다 중요한 가정을 위하여 사랑을 위하여는 연구도 하지 않고 노력도 하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는 가정과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업과 비교할 수 없는 귀한 사랑과 가정을 위하여 공부하고 노력하고 기도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부의 사랑을 위하여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부부 사랑에 문제가 생기신 분들이 있다면 고린도 전서 13장을 펴놓고 한 번 점검해 보실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앞에서 이야기한 표현의 문제와 예의의 문제를 한 번 점검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건강하고 아름다우며 풍성한 삶을 위하여 반드시 받고 느껴야만 할 사랑의 세 번째는 자식의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자식이 받아야 하듯이 자식의 사랑을 부모가 받아야만 합니다. 세상에서 남편의 사랑을 받는 아내가 행복하고 아내의 사랑을 받는 남편이 행복하듯 자식의 사랑을 받는 부모가 행복한 것입니다.
모든 자식은 부모의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모든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모든 남편은 아내의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부모는 자식의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모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할 의무가 있습니다. 모든 남편을 아내를 사랑할 의무가 있습니다. 모든 아내는 남편을 사랑할 책임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자식은 부모를 사랑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제 아이중에 공부를 좀 소홀히 하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를 어느날 불러 놓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아빠는 여호와 하나님이 허락만 해 주신다면 늙어서 동안교회에서 은퇴하지 않을 것이다. 아빠가 늙어서 동안 교회를 은퇴하게 되면 아마 원로 목사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동안 교회의 원로 목사만 된다면 노후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아빠는 늙어서 교회의 덕을 보고 싶지는 않다. 아빠는 할 수만 있다면 너희 덕을 보며 살고 싶다. 네 생각에는 엄마 아빠 가 늙어서 교회 덕을 보면서 사는 것이 좋겠냐 너희 덕을 보면서 사는 것이 좋겠냐
아이는 생각할 틈도 없이 당연 하다는 듯이 ’저희 덕을 보시면서 사셔야죠’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아이에게 저는 ’그럼 이놈아 공부 좀 열심히 해라. 그래 가지고 늙어서 아빠가 네 덕 보고 살 수 있겠냐’라고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 말이 효과가 있어서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요즘은 제법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제가 과연 자식 덕을 볼 수 있을는지 없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늙어서 자식 덕을 보며 살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말입니다. 저는 늙어서 자식의 덕을 보면서 사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축복중의 하나라고 믿고 있습니다. 자식 덕을 미리 함부로 포기하면서 사는 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옳지 못하며 좋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교만한 생각입니다.
젊어서는 남편과 아내의 사랑을 받는 것만으로도 살 수 있지만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들이 갈망하는 것은 자식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자식의 사랑을 받는 부모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부모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해 주실 마음은 없으십니까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축복으로 주신 가정을 소중히 여기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식 사랑을 마음에만 담아 두지말고 표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효율을 높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녀을 동등한 인격으로 대우하고 함부로 무례하게 하거나 인격에 모독을 가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편과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자녀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여호와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은 엄청난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에게 사랑받는 자녀가 될 것입니다. 남편에게 사랑받는 아내가 될 것입니다. 아내에게 사랑받는 남편이 되실 것입니다. 자식에게 사랑과 효도를 받는 부모가 되실 것입니다. 참으로 복된 가정의 축복을 받으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축복을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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