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주님의 은혜가 넘치는 가정
본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회사를 설립하신 적도, 학교를 세운 적도, 국가를 세우신 적도 없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친히 세우신 공동체는, 오직 교회와 가정, 2개 밖에 없다.
이 땅 위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정을 통해서 생명을 이어가고, 교회를 통해서 구원받는다.
그런데 가정과 교회는 공동체이기에, 자기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되고, 타인중심이 되어야 한다.
가정과 교회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 예수님의 옆구리가 터져 피가 흐른 다음 교회가 세워졌고, 아담의 옆구리가 터져 갈비뼈가 뽑혀진 다음, 가정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희생이 없이는, 가정과 교회는 결코 세워질 수 없다.
오늘날 믿지 않는 사람들의 가장 큰 가치관은 무엇일까요 자기 중심주의다. 양보가 없다.
우리 사회에는, 희생하지 않으려는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
오늘날 가정에서 교회에서 희생하려고 하지 않기에, 서로 상처를 받고, 깨어지게 된다.
양보 없이 자기 중심적으로 살면,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다.
우리가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면, 반드시 불행을 초래하게 된다.
내가 양보하지 않고 전부를 얻으려고 하면, 상대방은 전부를 잃어야 한다.
그러므로 서로가 행복해지려면, 양보할 줄 알아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양보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상해 주신다.
성도는 이 믿음이 있어야 한다. 양보는 손해가 아니다.
불신자의 길에는 양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신자처럼 양보하지 않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양보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공동체를 더욱 든든하게 세우신다.
바로 그 순간, 우리는 더욱 복되고, 행복한 존재가 된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의 달은, 내가 속한 공동체를 더욱 생각하자는 달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예수님이 중심 되는 가정이 되어야 행복하다(15上).
겁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겂
우리가 속한 가정을 예수님께서 만져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자녀 문제로 진정 고민하시고, 자녀의 앞날을 염려하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 앞에 나와서 겁여호와 하나님! 내 자녀를 만져주세요. 겂라고 기도하시기 바란다.
남편의 문제든지, 어떤 문제가 있든지, 이 문제를 주님께서 만져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란다.
우리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났기에, 주님 앞에 나올 때,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확신하시고, 나오시기 바란다. 어떤 경우에도, 자기 비하를 하지 마시기 바란다.
스스로 자기를 비하하면, 사랑을 오해하고 어둠에 빠지게 된다.
나의 약점, 나의 실패, 나의 고통을 생각하며, 안 좋은 생각을 하지 말라.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진리에 근거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아야 한다.
어둠을 바라보면, 그 어둠이 점점 더 확대되어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불안해지고, 불행해진다.
어떤 가정에 남편이, 며칠 동안 늦게 들어오자, 아내는 남편이 바람을 핀다고 의심한다.
증거도 없이 혼자 오해한다. 그러면서 혼자 고민하던 차에, 밤에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자, 갑자기 전화가 끊어지자, 의심이 더욱 커진다. 이런 식으로 어둠은 계속 확대된다.
미운 생각과 나쁜 감정을 갖고 보니, 모든 것이 그렇게 느껴진다. 정말 그렇다고 다 믿어버린다.
그러나 남편은 정말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회사가 끝난 후에, 부업을 했다.
그러므로 먼저 의심하는 자세는, 결코 믿음을 가진 사람의 자세가 아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으로, 모든 사물을 바라보아야 한다.
주님은 우리 영혼의 주인도 되지만, 마음과 생각의 주인도 되시기에, 믿음의 눈을 가져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사물을 보면, 서로 신뢰하고, 서로 희생하는 믿음의 가정이 된다.
여호와 하나님을 함께 바라보는 부부에게는, 그런 의심이 발붙일 수 없다.
부부가 정말 여호와 하나님을 진실하게 붙들고, 서로를 위해 희생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그 가정을 책임져 주신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삶의 기초로 놓을 때, 우리 가정과 삶은 그만큼 안전해진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유혹이 있어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기로 작정을 해 보십시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은 반드시, 그 삶과 그 가정에 은총과 축복을 더해 주신다.
2. 사랑과 격려가 넘치는 가정이 되어야 행복하다(15하).
사람들이 예수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아이들을 데리고 왔을 때, 제자들은 겁왜 그 아이들을 데리고 왔느냐겂고 꾸짖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이들이, 예수님의 사역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겁유리하냐 불리하냐겂로 판단하지 마시기를 바란다.
먼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영혼의 문제를 생각하고, 그 다음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고, 소중한 가치가 담긴 일이라면, 너무 계산적으로 살지 않기 바란다.
성도는 자신에게 손해가 예상되어도, 그 일을 믿음으로 해야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 갚아주신다.
제자들이 어린아이들을 꾸짖고 제지하니까, 주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나요
막10:14절을 보면, 그런 모습을 보고 분히 여기셨다. 왜 분하게 생각하셨을까요
연약한 자를 사랑과 격려로 세우지 않고, 쫓아내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사랑과 격려를 통해 가정을 세우길 원한다.
어떤 분은 자기 남편을 너무 헐뜯는다. 그리고 자기 자식도 너무 헐뜯는다.
그런데 겁내 남편은 바보야겂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겁아! 저 부인은 의롭고 훌륭한 부인이구나!겂라고 생각해주나요 아니다. 아무리 변명해도 자기는 겁바보 부인겂이 된다.
이런 식으로,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남편 입장도 생각해 주고, 자녀 입장도 생각해 주어야 한다. 왜 부족한 점만 찾나요 자세히 보면, 장점이 얼마나 많이 있나요 그런데 타락한 우리의 심령은, 좋은 것도 나쁘게 본다.
가정을 세우려고, 애를 써도 쉽지 않은 세상인데, 헐뜯으려고 한다면, 어느 가정이 제대로 설 수 있겠습니까 남을 헐뜯어도 안 좋게 보는데, 자기 남편, 자기 자녀를 헐뜯으면 누가 좋게 봅니까
만약 남편이나 자녀가, 다른 사람을 통해서, 그 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겁내 아내가 헐뜯으니까 잘해야지, 우리 엄마가 헐뜯으니까 잘해야지겂라고 합니까
그런 경우는 없다. 오히려 더 문제만 커지고, 더 힘든 일만 생기게 된다.
그렇다면 그 가정은, 결코 축복된 가정이 되기 힘들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허락하신, 가장 귀한 선물은, 잠19:14절을 보면, 슬기로운 아내라고 말한다.
슬기로운 아내는 남편을 격려하고, 아이들을 칭찬하며, 위로와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어느 날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낙심해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아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루터는 깜짝 놀라 아내에게 물었다. 겁여보 무슨 일이 생겼소!겂
겁네. 여호와 하나님이 돌아가셨어요. 겂 겁여보! 그게 무슨 말이요 여호와 하나님이 돌아가시다니!겂
겁그렇지 않나요 만약 여호와 하나님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왜 그렇게 당신이 낙심하나요겂
바로 그 순간 루터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진정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면, 낙심할 수는 없었다.
그는 믿음으로 일어서자, 마음에 용기가 생겨났다. 그러자 마음속에 노래가 생긴다.
그렇게 해서 지은 찬송이, 찬송가 384장 겁내 주는 강한 성이요겂라는 찬송이다.
이렇게 지혜로운 아내의 위로와 격려가, 루터에게 소생하는 힘을 주었다.
암스트롱은 달에 도착하면서, 겁내게는 한 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 겂고 했다.
칭찬의 말, 부드러운 말도 마찬가지다. 한 마디 말밖에 되지 않지만, 그 말은 공동체를 도약시킨다.
그런데 가끔 기독교와 교회에 대해서, 무섭게 비난을 하는 사람을 본다.
서울에 어떤 여자 목사님이 계신데, 여자로서 목회를 하려고 하니, 얼마나 힘듭니까
여자로서 목회가 너무 힘드니까, 정상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자꾸 편법을 쓴다.
겁기존 교회는 죽었다! 썩었다!겂라는 부정적인 방법을 쓴다.
그래서 불신자를 힘써 전도해서, 아름다운 여호와 하나님의 성도로 만들지 못하고,
교회들이 연합집회를 하면, 그곳에 가서 겁교회는 죽었다! 썩었다겂는 제목의 전단지를 돌린다.
그렇게 해서 개혁을 원하는 일부 사람들이 겁그러면 살아 있는 그곳으로 가자!겂고 하고 갔다.
그의 설교를 들어보면 겁기존 교회는 죽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자!겂고 한다.
처음에는 그 메시지가 신선하게 느껴진다. 또한 말씀을 듣는, 자기들은 정말 살아 있는 영혼 같다.
계속 비판하는 말만 들으니까, 이들의 마음속에 나쁜 것이 가득 차게 되었다.
불신, 교만, 남을 우습게 보는 마음, 사랑보다는 자기 의로움만이 가득 차게 되었다.
사람들의 영혼은 믿음을 먹고, 희망을 먹고, 사랑을 먹고살도록 창조되었는데, 부정적인 이야기만 듣다보니까, 결국 사람들은 교만한 마음이 생겨서, 얼마 후에 그 교회를 떠난다.
그런데 문제는 또 나타난다. 이 떠난 사람들이, 새로운 교회에 찾았지만,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어느새, 이분들은 마음만 높아지고, 판단만 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곳이어야 하고, 교인은 꿈을 심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꿈을 깨는 영은 성령이 아니다. 화평을 깨고 불평을 심으면,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헐뜯는 입술이 되지 말고, 격려하는 입술로 가정과 교회를 세워나가기 바란다.
3. 어린아이와 같이 받드는(받아들이는) 가정이 되어야 행복하다(17).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어야 한다는 말은,
어린아이처럼 겸손하고, 순수하게 주님을 의지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어린 아이들을 보면, 얼마나 부모를 의지하며, 순수하게 따르는가
조금 크면 말을 안 듣지만, 어린 아이는 주는 대로 받아먹는다. 의심하지 않고 다 받아먹는다.
주빈이가 어렸을 때, 예쁜 말로 맞을 사람 하면, 것저요!겄하고 손을 들었다.
어린아이들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하게 주님 앞에 나왔다.
행복하려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남의 의견을 받아들여라.
어린 아이들은, 주님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사랑 받기 위하여 단순하게 나왔다.
사람은 자기 자랑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기가 꺾으면 못산다.
자랑할 게 전혀 없다고 하는 사람도, 파고 들어가면 뭐든지 자랑거리가 있다. 자기 자랑이 없으면, 자식자랑, 친구자랑, 친척자랑까지 하며 겁나는 이렇게 자랑거리가 있는 사람이다겂고 외치면서 산다.
그런데 정말 무서운 자랑이 있다. 신앙인들에게 나타나는, 바리새인의 자랑이다.
말하기 부끄러운 일이지만, 가장 교활한 종교적 자랑이다. 좀 더 잘 믿고, 좀 더 경건하게 보임으로,
그 대가로 칭송을 얻으려는 자랑인데, 정말 무서운 자랑이다.
그러나 성경은 겁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하라!겂고 말한다. 십자가의 원리는 죽어야 한다.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내가 죽어야 열매를 맺는다는 원리를 잊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남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고는, 내가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남을 높여주지 않고는, 내가 절대로 남으로부터 높임을 받을 수 없다.
왜 똑똑한 사람이 불행할까요 행복의 길을 찾지는 않고, 행복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내가 죽어져야 주어진다. 죽어야 열매를 맺는데, 그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시퍼렇게 살아있고
죽기는커녕, 더욱 자존심으로 뭉치려고 한다면, 어떻게 행복이 주어집니까
내 고집, 내 열심, 내 자존심, 내 자랑은 다 십자가에 못박고,
오직 십자가만 붙들고 나아가는, 겸손한 모습을 절대 잃지 말자. 겸손이 없으면 평안도 없다.
겸손과 평안은 잉꼬 부부처럼, 함께 가기 때문이다.
자신의 유능함을 증명하려는 욕망이 적을수록, 마음과 얼굴은 평안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유능함을 증명하려는 태도가 지나치면, 성공도 멀어지고, 남의 성공을 깎는데 혈안이 되어,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마음에 미움과 시기, 질투와 불평이 있다면, 성도의 마음이 아니다.
그런 마음으로 살면, 행복하지 못하다.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세계 각국의 정상의 사람들이 모여서, 각종 정보를 서로 교환하고, 세계경제 발전방안 등에 대하여 논의한다. 공식적인 의제는 없으며, 참가자의 관심 분야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 교환이 이루어진다.
한 주간 동안 열리는 다보스 포럼에 참석하려면, 등록비 2만 불을 내야 참석할 수 있다.
그래도 항상 등록이 초만원이다. 세계 각 분야의 정상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젊은 목회자, 뜨는 목회자로 유명한 전병욱 목사님은, 성도들은 세상에 끌려 다니지 말고, 끌고 나가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다보스 포럼을 예로 들면서 겁정상이 되자!겂고 설교했다가, 목사가 위만 바라보고, 아래는 볼 줄 모르는 성공주의자라고 해서 공격을 받았다.
그래서 나타난 말이, 전병욱 목사 죽이기라는 말이 떴다. 너무도 안타까운 모습이다.
그런데 어떤 교수님도 그곳에 참석했는데, 일주일 동안 별로 얻은 것이 없이 돌아왔다고 한다.
소문난 잔치 먹을 것이 없다고 말하며, 돌아와서 학생들에게, 간혹 다보스 포럼에서 만난 사람들 얘기를 해주었다. 그랬더니 의외로 학생들이 그 얘기에 도전을 받고,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 분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비판을 하였을 뿐이다.
우리는 앞서 있는 자를 무조건 겁운이 좋아서!겂라고 생각하고, 질투하고 외면하기보다,
그분의 장점을 보고 배우고, 사모하고, 좋은 점을 추구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렇게 겸손하게 배우려는 사람을, 사람들도 좋아하고, 여호와 하나님도 최상의 축복을 내려주신다.
우리 모두, 어린아이와 같은 겸손한 심령이 되어, 천국 가정의 일원이 되길 바란다.
결론적으로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1) 예수님이 중심이 되는 가정이 되자. (2) 사랑과 격려가 넘치는 가정이 되자.
(3)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하게 받드는 가정이 되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친히 세우신 공동체는, 오직 교회와 가정, 2개 밖에 없다.
이 땅 위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정을 통해서 생명을 이어가고, 교회를 통해서 구원받는다.
그런데 가정과 교회는 공동체이기에, 자기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되고, 타인중심이 되어야 한다.
가정과 교회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 예수님의 옆구리가 터져 피가 흐른 다음 교회가 세워졌고, 아담의 옆구리가 터져 갈비뼈가 뽑혀진 다음, 가정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희생이 없이는, 가정과 교회는 결코 세워질 수 없다.
오늘날 믿지 않는 사람들의 가장 큰 가치관은 무엇일까요 자기 중심주의다. 양보가 없다.
우리 사회에는, 희생하지 않으려는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
오늘날 가정에서 교회에서 희생하려고 하지 않기에, 서로 상처를 받고, 깨어지게 된다.
양보 없이 자기 중심적으로 살면,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다.
우리가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면, 반드시 불행을 초래하게 된다.
내가 양보하지 않고 전부를 얻으려고 하면, 상대방은 전부를 잃어야 한다.
그러므로 서로가 행복해지려면, 양보할 줄 알아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양보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상해 주신다.
성도는 이 믿음이 있어야 한다. 양보는 손해가 아니다.
불신자의 길에는 양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신자처럼 양보하지 않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양보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공동체를 더욱 든든하게 세우신다.
바로 그 순간, 우리는 더욱 복되고, 행복한 존재가 된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의 달은, 내가 속한 공동체를 더욱 생각하자는 달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예수님이 중심 되는 가정이 되어야 행복하다(15上).
겁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겂
우리가 속한 가정을 예수님께서 만져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자녀 문제로 진정 고민하시고, 자녀의 앞날을 염려하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 앞에 나와서 겁여호와 하나님! 내 자녀를 만져주세요. 겂라고 기도하시기 바란다.
남편의 문제든지, 어떤 문제가 있든지, 이 문제를 주님께서 만져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란다.
우리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났기에, 주님 앞에 나올 때,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확신하시고, 나오시기 바란다. 어떤 경우에도, 자기 비하를 하지 마시기 바란다.
스스로 자기를 비하하면, 사랑을 오해하고 어둠에 빠지게 된다.
나의 약점, 나의 실패, 나의 고통을 생각하며, 안 좋은 생각을 하지 말라.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진리에 근거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아야 한다.
어둠을 바라보면, 그 어둠이 점점 더 확대되어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불안해지고, 불행해진다.
어떤 가정에 남편이, 며칠 동안 늦게 들어오자, 아내는 남편이 바람을 핀다고 의심한다.
증거도 없이 혼자 오해한다. 그러면서 혼자 고민하던 차에, 밤에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자, 갑자기 전화가 끊어지자, 의심이 더욱 커진다. 이런 식으로 어둠은 계속 확대된다.
미운 생각과 나쁜 감정을 갖고 보니, 모든 것이 그렇게 느껴진다. 정말 그렇다고 다 믿어버린다.
그러나 남편은 정말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회사가 끝난 후에, 부업을 했다.
그러므로 먼저 의심하는 자세는, 결코 믿음을 가진 사람의 자세가 아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으로, 모든 사물을 바라보아야 한다.
주님은 우리 영혼의 주인도 되지만, 마음과 생각의 주인도 되시기에, 믿음의 눈을 가져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사물을 보면, 서로 신뢰하고, 서로 희생하는 믿음의 가정이 된다.
여호와 하나님을 함께 바라보는 부부에게는, 그런 의심이 발붙일 수 없다.
부부가 정말 여호와 하나님을 진실하게 붙들고, 서로를 위해 희생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그 가정을 책임져 주신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삶의 기초로 놓을 때, 우리 가정과 삶은 그만큼 안전해진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유혹이 있어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기로 작정을 해 보십시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은 반드시, 그 삶과 그 가정에 은총과 축복을 더해 주신다.
2. 사랑과 격려가 넘치는 가정이 되어야 행복하다(15하).
사람들이 예수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아이들을 데리고 왔을 때, 제자들은 겁왜 그 아이들을 데리고 왔느냐겂고 꾸짖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이들이, 예수님의 사역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겁유리하냐 불리하냐겂로 판단하지 마시기를 바란다.
먼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영혼의 문제를 생각하고, 그 다음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고, 소중한 가치가 담긴 일이라면, 너무 계산적으로 살지 않기 바란다.
성도는 자신에게 손해가 예상되어도, 그 일을 믿음으로 해야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 갚아주신다.
제자들이 어린아이들을 꾸짖고 제지하니까, 주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나요
막10:14절을 보면, 그런 모습을 보고 분히 여기셨다. 왜 분하게 생각하셨을까요
연약한 자를 사랑과 격려로 세우지 않고, 쫓아내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사랑과 격려를 통해 가정을 세우길 원한다.
어떤 분은 자기 남편을 너무 헐뜯는다. 그리고 자기 자식도 너무 헐뜯는다.
그런데 겁내 남편은 바보야겂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겁아! 저 부인은 의롭고 훌륭한 부인이구나!겂라고 생각해주나요 아니다. 아무리 변명해도 자기는 겁바보 부인겂이 된다.
이런 식으로,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남편 입장도 생각해 주고, 자녀 입장도 생각해 주어야 한다. 왜 부족한 점만 찾나요 자세히 보면, 장점이 얼마나 많이 있나요 그런데 타락한 우리의 심령은, 좋은 것도 나쁘게 본다.
가정을 세우려고, 애를 써도 쉽지 않은 세상인데, 헐뜯으려고 한다면, 어느 가정이 제대로 설 수 있겠습니까 남을 헐뜯어도 안 좋게 보는데, 자기 남편, 자기 자녀를 헐뜯으면 누가 좋게 봅니까
만약 남편이나 자녀가, 다른 사람을 통해서, 그 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겁내 아내가 헐뜯으니까 잘해야지, 우리 엄마가 헐뜯으니까 잘해야지겂라고 합니까
그런 경우는 없다. 오히려 더 문제만 커지고, 더 힘든 일만 생기게 된다.
그렇다면 그 가정은, 결코 축복된 가정이 되기 힘들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허락하신, 가장 귀한 선물은, 잠19:14절을 보면, 슬기로운 아내라고 말한다.
슬기로운 아내는 남편을 격려하고, 아이들을 칭찬하며, 위로와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어느 날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낙심해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아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루터는 깜짝 놀라 아내에게 물었다. 겁여보 무슨 일이 생겼소!겂
겁네. 여호와 하나님이 돌아가셨어요. 겂 겁여보! 그게 무슨 말이요 여호와 하나님이 돌아가시다니!겂
겁그렇지 않나요 만약 여호와 하나님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왜 그렇게 당신이 낙심하나요겂
바로 그 순간 루터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진정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면, 낙심할 수는 없었다.
그는 믿음으로 일어서자, 마음에 용기가 생겨났다. 그러자 마음속에 노래가 생긴다.
그렇게 해서 지은 찬송이, 찬송가 384장 겁내 주는 강한 성이요겂라는 찬송이다.
이렇게 지혜로운 아내의 위로와 격려가, 루터에게 소생하는 힘을 주었다.
암스트롱은 달에 도착하면서, 겁내게는 한 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 겂고 했다.
칭찬의 말, 부드러운 말도 마찬가지다. 한 마디 말밖에 되지 않지만, 그 말은 공동체를 도약시킨다.
그런데 가끔 기독교와 교회에 대해서, 무섭게 비난을 하는 사람을 본다.
서울에 어떤 여자 목사님이 계신데, 여자로서 목회를 하려고 하니, 얼마나 힘듭니까
여자로서 목회가 너무 힘드니까, 정상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자꾸 편법을 쓴다.
겁기존 교회는 죽었다! 썩었다!겂라는 부정적인 방법을 쓴다.
그래서 불신자를 힘써 전도해서, 아름다운 여호와 하나님의 성도로 만들지 못하고,
교회들이 연합집회를 하면, 그곳에 가서 겁교회는 죽었다! 썩었다겂는 제목의 전단지를 돌린다.
그렇게 해서 개혁을 원하는 일부 사람들이 겁그러면 살아 있는 그곳으로 가자!겂고 하고 갔다.
그의 설교를 들어보면 겁기존 교회는 죽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자!겂고 한다.
처음에는 그 메시지가 신선하게 느껴진다. 또한 말씀을 듣는, 자기들은 정말 살아 있는 영혼 같다.
계속 비판하는 말만 들으니까, 이들의 마음속에 나쁜 것이 가득 차게 되었다.
불신, 교만, 남을 우습게 보는 마음, 사랑보다는 자기 의로움만이 가득 차게 되었다.
사람들의 영혼은 믿음을 먹고, 희망을 먹고, 사랑을 먹고살도록 창조되었는데, 부정적인 이야기만 듣다보니까, 결국 사람들은 교만한 마음이 생겨서, 얼마 후에 그 교회를 떠난다.
그런데 문제는 또 나타난다. 이 떠난 사람들이, 새로운 교회에 찾았지만,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어느새, 이분들은 마음만 높아지고, 판단만 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교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곳이어야 하고, 교인은 꿈을 심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꿈을 깨는 영은 성령이 아니다. 화평을 깨고 불평을 심으면,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헐뜯는 입술이 되지 말고, 격려하는 입술로 가정과 교회를 세워나가기 바란다.
3. 어린아이와 같이 받드는(받아들이는) 가정이 되어야 행복하다(17).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어야 한다는 말은,
어린아이처럼 겸손하고, 순수하게 주님을 의지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어린 아이들을 보면, 얼마나 부모를 의지하며, 순수하게 따르는가
조금 크면 말을 안 듣지만, 어린 아이는 주는 대로 받아먹는다. 의심하지 않고 다 받아먹는다.
주빈이가 어렸을 때, 예쁜 말로 맞을 사람 하면, 것저요!겄하고 손을 들었다.
어린아이들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하게 주님 앞에 나왔다.
행복하려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남의 의견을 받아들여라.
어린 아이들은, 주님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사랑 받기 위하여 단순하게 나왔다.
사람은 자기 자랑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기가 꺾으면 못산다.
자랑할 게 전혀 없다고 하는 사람도, 파고 들어가면 뭐든지 자랑거리가 있다. 자기 자랑이 없으면, 자식자랑, 친구자랑, 친척자랑까지 하며 겁나는 이렇게 자랑거리가 있는 사람이다겂고 외치면서 산다.
그런데 정말 무서운 자랑이 있다. 신앙인들에게 나타나는, 바리새인의 자랑이다.
말하기 부끄러운 일이지만, 가장 교활한 종교적 자랑이다. 좀 더 잘 믿고, 좀 더 경건하게 보임으로,
그 대가로 칭송을 얻으려는 자랑인데, 정말 무서운 자랑이다.
그러나 성경은 겁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하라!겂고 말한다. 십자가의 원리는 죽어야 한다.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내가 죽어야 열매를 맺는다는 원리를 잊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남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고는, 내가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남을 높여주지 않고는, 내가 절대로 남으로부터 높임을 받을 수 없다.
왜 똑똑한 사람이 불행할까요 행복의 길을 찾지는 않고, 행복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내가 죽어져야 주어진다. 죽어야 열매를 맺는데, 그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시퍼렇게 살아있고
죽기는커녕, 더욱 자존심으로 뭉치려고 한다면, 어떻게 행복이 주어집니까
내 고집, 내 열심, 내 자존심, 내 자랑은 다 십자가에 못박고,
오직 십자가만 붙들고 나아가는, 겸손한 모습을 절대 잃지 말자. 겸손이 없으면 평안도 없다.
겸손과 평안은 잉꼬 부부처럼, 함께 가기 때문이다.
자신의 유능함을 증명하려는 욕망이 적을수록, 마음과 얼굴은 평안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유능함을 증명하려는 태도가 지나치면, 성공도 멀어지고, 남의 성공을 깎는데 혈안이 되어,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마음에 미움과 시기, 질투와 불평이 있다면, 성도의 마음이 아니다.
그런 마음으로 살면, 행복하지 못하다.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세계 각국의 정상의 사람들이 모여서, 각종 정보를 서로 교환하고, 세계경제 발전방안 등에 대하여 논의한다. 공식적인 의제는 없으며, 참가자의 관심 분야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 교환이 이루어진다.
한 주간 동안 열리는 다보스 포럼에 참석하려면, 등록비 2만 불을 내야 참석할 수 있다.
그래도 항상 등록이 초만원이다. 세계 각 분야의 정상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젊은 목회자, 뜨는 목회자로 유명한 전병욱 목사님은, 성도들은 세상에 끌려 다니지 말고, 끌고 나가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다보스 포럼을 예로 들면서 겁정상이 되자!겂고 설교했다가, 목사가 위만 바라보고, 아래는 볼 줄 모르는 성공주의자라고 해서 공격을 받았다.
그래서 나타난 말이, 전병욱 목사 죽이기라는 말이 떴다. 너무도 안타까운 모습이다.
그런데 어떤 교수님도 그곳에 참석했는데, 일주일 동안 별로 얻은 것이 없이 돌아왔다고 한다.
소문난 잔치 먹을 것이 없다고 말하며, 돌아와서 학생들에게, 간혹 다보스 포럼에서 만난 사람들 얘기를 해주었다. 그랬더니 의외로 학생들이 그 얘기에 도전을 받고,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 분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비판을 하였을 뿐이다.
우리는 앞서 있는 자를 무조건 겁운이 좋아서!겂라고 생각하고, 질투하고 외면하기보다,
그분의 장점을 보고 배우고, 사모하고, 좋은 점을 추구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렇게 겸손하게 배우려는 사람을, 사람들도 좋아하고, 여호와 하나님도 최상의 축복을 내려주신다.
우리 모두, 어린아이와 같은 겸손한 심령이 되어, 천국 가정의 일원이 되길 바란다.
결론적으로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1) 예수님이 중심이 되는 가정이 되자. (2) 사랑과 격려가 넘치는 가정이 되자.
(3)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하게 받드는 가정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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