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평안이 넘치는 가정
본문
우리는 5월 달을 가정의 달로 지키고 있습니다.
첫 번째 주일에는 어린이 주일로 지켰고, 두 번째 주일에는 어버이 주일로 지켰으며, 세 번째 주일에는 부부주일로 지켰다.
어떻게 양육할 것인가 어떻게 섬길 것인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하는 것을 차례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가 자녀들과 부모님들 그리고 부부가 하나로 어우러져서 이루고 있는 가정을 생각하며 가정주일로 지키고 있다.
여러분, 우리 가정에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돈이 없어서 가난하게 살아갈 때에는 돈이 제일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6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네들의 인사는 "진지 드셨습니까"라는 것이었다.
그만큼 끼니를 해결하는 것도 힘들었던 시대였다.
이런 때에는 잘 살아보는 것이 최고의 희망이었다.
이제 돈이 웬만큼 있어서 여유가 생기면 돈보다는 건강이 제일 필요하다고 한다.
80년대에 들어서서 우리네들의 인사는 바뀌었다.
"안녕하십니까"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도시화,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분명히 어제 낮에는 보았는데 밤사이에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는 경우가 허다하였기 때문이다.
돈도 좋지만 건강이 제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6. 25 전쟁 이후,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루면서 우리가 직접 경험한 바이다.
그러나 돈도, 건강도 웬만큼 갖춰지고 나면 이제 마지막으로 무엇을 제일 필요로 할까
그것은 바로 평안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건강해도, 아무리 넉넉하여도 가정이 평안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소용이 없다.
우리들의 필요 사항은 이처럼 형편에 따라 자꾸 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영원히 변치 않은 것으로서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말하라면 그것은 평안이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공통된 것이다.
히브리인들이 하는 인사가 있다. "샬롬"이라는 것이다.
만났을 때, 이 인사를 하면 "평안하십니까"라는 뜻이 된다.
헤어질 때, 이 인사를 하면 "평안하십시오"라는 뜻이 된다.
히브리인들의 소원도 평안이었다.
여러분, 그러면 이런 평안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요
여기 저기서, 또는 이것 저것이 우리에게 평안을 줄 수 있다고 손짓을 한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과 여러분들이 섬기는 가정이 평안한가
그렇다면 그 평안을 어디에서 얻었는가
1. 세상이 주는 평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13:36)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데리고 다니며 교육하던 제자들을 떠나시겠다는 말씀이었다.
죽음의 이별을 말한다.
예수님만 믿고 따라 다니던 제자들에게 떠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제자들이 두려워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 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보면 우리에게 평안을 주는 주체는 두 가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세상이며,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다.
여러분,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세상도 우리에게 평안을 준다고 하셨다.
여러분, 세상이 우리에게 평안을 준다면 그 세상이라는 집합 안에는 어떤 것들이 속할까
가장 가깝게는 돈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평안을 준다.
돈이 넉넉하면 자동차도 살 수 있어서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또 내 집도 장만할 수 있어서 1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 있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놓고 먹을 수 있으며, 하고 싶은 운동도 마음껏 할 수 있으니 평안하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다.
또 건강도 우리에게 평안을 준다.
사고라도 나서 다리를 쓸 수 없게 되면 그렇게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혈압이 높으면 언제 어디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질지 알 수 없어서 불안하다.
막상 이렇게 불편하게 되면 건강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평안을 실감한다.
그러므로 건강도 우리에게 평안을 가져다 주는 것은 분명하다.
또 권력도 우리에게 평안을 가져다 준다.
권력이 없으면 눈 뜬 장님이 되어서 두 눈으로 보면서도 도둑을 맞는 일이 허다하다.
어떤 사람들은 권력을 이용하여 정보를 입수하고, 거기에 투자를 하여 부자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권력이 있으면 우리에게 평안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좋은 것과 더불어 좋지 않은 것도 함께 가져다 준다.
있는 돈으로 비행기를 타고 해외 여행을 갔다가 대한항공 괌 사고와 같은 사고가 일어나 일가족이 목숨을 잃기도 한다.
돈이 없었더라면 당하지 않아도 될 사고가 아닌가
건강이 있으면 좋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건강하기 때문에 해서는 안될 일을 하도록 쉽게 유혹을 받는다.
차라리 건강이 좋지를 못했다면 하지 않아도 될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권력이 있으면 평안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권력이 있으매 부정한 일에 대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잘못을 하게 된다.
결국 세월이 바뀌면서 본인은 물론, 온 가족이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차라리 권력이 없었더라면 가정의 장래에 먹칠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제 2대 왕이었다.
이 다윗이 하루는 저녁나절에 할 일이 없어서 옥상에 올라갔다.
신하들은 그 날도 왕의 명령을 따라 국경에서 전쟁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다윗이 옥상에 올라갔을 때, 보지 않아야 될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젊은 여인이 벌거벗은 채로 마당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다윗의 명을 받고 전쟁터에 나가 있는 신하 우리야의 아내였다.
다윗은 왕의 권력으로 그녀를 왕궁으로 데려오게 하였으며, 동침을 하고 말았다.
여러분, 권력을 가지고 마구 휘둘러 자신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켰으니다윗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권력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며, 그 맛에 흠뻑 젖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행복은 잠시 뿐이었다.
곧 목숨을 바쳐 충성하는 신하 우리야의 눈을 속일 계획을 세워야 했다.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 호된 질책도 받아야 했다.
다윗의 마음에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들었다.
권력이 주는 잠간 동안의 행복에 도취되었다가 크게 곤욕을 치른 것이다.
여러분, 세상이 주는 것은 조금 편리하고, 조금 덜 불편하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참되고 깊은 행복을 주지 못한다. 영원한 행복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이 주는 것으로 참된 행복을 얻은 것처럼 착각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는 것으로서 세상 외에도 예수님 자신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의 평안은 어떤 평안인가
나의 평안이란 말은 예수님이 이미 가지고 계신 평안이며, 이미 예수님이 누리고 계신 평안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이 나의 평안이라고 말씀하실 때는 죽음을 앞에 둔 시점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평안은 죽음 앞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게 할 만큼 확실한 평안이다.
이 평안은 돈과 상관이 없는 평안이다. 권력과도 상관이 없으며, 그 어떤 세상 것과 상관이 없는 평안이다.
예수님이 누리고 계신 평안은 죽음도, 재물도, 권력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견고하며, 확실한 평안이라고 할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하시면서 마게도냐 교회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
마게도냐 교회는 바울이 전하는 예수님을 믿어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살아가는 중에 이들에게 가뭄이 들었다.
그들은 가난하여졌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에 더 큰 어려움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어려움 중에도 힘을 모았다.
바울의 말을 그대로 빌면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롬 15:26)고 하였다.
고린도 후서에서는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연보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예하였다. "(8:3-4)고 그들을 칭찬하였다.
여러분, 마게도냐 성도들의 마음에는 돈으로 얻을 수 없는 행복과 평안이 있었다.
이 평안이 있었기에 자기들도 어려우면서 어려움에 처한 성도들을 위하여 힘에 과분하도록 헌금하여 그들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결혼 후, 20여 년 동안 잘 잘 살던 그리스도인 부부가 있었다.
이들 부부는 99평 택지에 40평 짜리 단독 주택에 살만큼 넉넉하였다.
그러나 자주 다투었다.
커텐 색깔을 고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방 청소하는 것까지 사사건건 다툼의 연속이었다.
그러다가 IMF가 다가왔다.
남편이 경영하던 사업이 허무하게 무너졌으며, 이 일로 인해 셋방살이로 옮기게 되었다.
어려움 중에서 아내 된 자매는 남편의 마음 고생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남편은 자신을 위로해 주는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것이다.
아내 된 자매가 말했다.
"차라리 실패하기를 잘 했습니다. 부부간의 사랑이 무엇인지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
이들 부부는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그것도 실패를 통하여 그리스도인 부부로서 참된 행복과 참된 사랑을 알게 된 것이다.
여러분, 바울은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빌 4:12-13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은 이런 뜻이다. "나는 가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
이것은 예수님이 주시는 능력, 그것 때문에 자신이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아올 수 있었다는 일종의 신앙 고백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가정 주일에 여러분들이 섬기는 가정에는 세상이 주는 평안도 넘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런 것은 부족하더라도 바울에게 참된 평안을 주시며, 예수님이 이미 누리고 계시던 예수님의 평안이 우리가 섬기는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바란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죽음 앞에서도 평안을 잃어버리지 않으며, 바울처럼 가난 앞에서도 평안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 드린다.
첫 번째 주일에는 어린이 주일로 지켰고, 두 번째 주일에는 어버이 주일로 지켰으며, 세 번째 주일에는 부부주일로 지켰다.
어떻게 양육할 것인가 어떻게 섬길 것인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하는 것을 차례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가 자녀들과 부모님들 그리고 부부가 하나로 어우러져서 이루고 있는 가정을 생각하며 가정주일로 지키고 있다.
여러분, 우리 가정에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돈이 없어서 가난하게 살아갈 때에는 돈이 제일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6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네들의 인사는 "진지 드셨습니까"라는 것이었다.
그만큼 끼니를 해결하는 것도 힘들었던 시대였다.
이런 때에는 잘 살아보는 것이 최고의 희망이었다.
이제 돈이 웬만큼 있어서 여유가 생기면 돈보다는 건강이 제일 필요하다고 한다.
80년대에 들어서서 우리네들의 인사는 바뀌었다.
"안녕하십니까"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도시화,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분명히 어제 낮에는 보았는데 밤사이에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는 경우가 허다하였기 때문이다.
돈도 좋지만 건강이 제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6. 25 전쟁 이후,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루면서 우리가 직접 경험한 바이다.
그러나 돈도, 건강도 웬만큼 갖춰지고 나면 이제 마지막으로 무엇을 제일 필요로 할까
그것은 바로 평안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건강해도, 아무리 넉넉하여도 가정이 평안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소용이 없다.
우리들의 필요 사항은 이처럼 형편에 따라 자꾸 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영원히 변치 않은 것으로서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말하라면 그것은 평안이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공통된 것이다.
히브리인들이 하는 인사가 있다. "샬롬"이라는 것이다.
만났을 때, 이 인사를 하면 "평안하십니까"라는 뜻이 된다.
헤어질 때, 이 인사를 하면 "평안하십시오"라는 뜻이 된다.
히브리인들의 소원도 평안이었다.
여러분, 그러면 이런 평안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요
여기 저기서, 또는 이것 저것이 우리에게 평안을 줄 수 있다고 손짓을 한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과 여러분들이 섬기는 가정이 평안한가
그렇다면 그 평안을 어디에서 얻었는가
1. 세상이 주는 평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13:36)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데리고 다니며 교육하던 제자들을 떠나시겠다는 말씀이었다.
죽음의 이별을 말한다.
예수님만 믿고 따라 다니던 제자들에게 떠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제자들이 두려워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 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보면 우리에게 평안을 주는 주체는 두 가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세상이며,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다.
여러분,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세상도 우리에게 평안을 준다고 하셨다.
여러분, 세상이 우리에게 평안을 준다면 그 세상이라는 집합 안에는 어떤 것들이 속할까
가장 가깝게는 돈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평안을 준다.
돈이 넉넉하면 자동차도 살 수 있어서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또 내 집도 장만할 수 있어서 1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 있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놓고 먹을 수 있으며, 하고 싶은 운동도 마음껏 할 수 있으니 평안하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다.
또 건강도 우리에게 평안을 준다.
사고라도 나서 다리를 쓸 수 없게 되면 그렇게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혈압이 높으면 언제 어디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질지 알 수 없어서 불안하다.
막상 이렇게 불편하게 되면 건강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평안을 실감한다.
그러므로 건강도 우리에게 평안을 가져다 주는 것은 분명하다.
또 권력도 우리에게 평안을 가져다 준다.
권력이 없으면 눈 뜬 장님이 되어서 두 눈으로 보면서도 도둑을 맞는 일이 허다하다.
어떤 사람들은 권력을 이용하여 정보를 입수하고, 거기에 투자를 하여 부자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권력이 있으면 우리에게 평안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좋은 것과 더불어 좋지 않은 것도 함께 가져다 준다.
있는 돈으로 비행기를 타고 해외 여행을 갔다가 대한항공 괌 사고와 같은 사고가 일어나 일가족이 목숨을 잃기도 한다.
돈이 없었더라면 당하지 않아도 될 사고가 아닌가
건강이 있으면 좋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건강하기 때문에 해서는 안될 일을 하도록 쉽게 유혹을 받는다.
차라리 건강이 좋지를 못했다면 하지 않아도 될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권력이 있으면 평안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권력이 있으매 부정한 일에 대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잘못을 하게 된다.
결국 세월이 바뀌면서 본인은 물론, 온 가족이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차라리 권력이 없었더라면 가정의 장래에 먹칠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제 2대 왕이었다.
이 다윗이 하루는 저녁나절에 할 일이 없어서 옥상에 올라갔다.
신하들은 그 날도 왕의 명령을 따라 국경에서 전쟁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다윗이 옥상에 올라갔을 때, 보지 않아야 될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젊은 여인이 벌거벗은 채로 마당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다윗의 명을 받고 전쟁터에 나가 있는 신하 우리야의 아내였다.
다윗은 왕의 권력으로 그녀를 왕궁으로 데려오게 하였으며, 동침을 하고 말았다.
여러분, 권력을 가지고 마구 휘둘러 자신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켰으니다윗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권력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며, 그 맛에 흠뻑 젖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행복은 잠시 뿐이었다.
곧 목숨을 바쳐 충성하는 신하 우리야의 눈을 속일 계획을 세워야 했다.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 호된 질책도 받아야 했다.
다윗의 마음에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들었다.
권력이 주는 잠간 동안의 행복에 도취되었다가 크게 곤욕을 치른 것이다.
여러분, 세상이 주는 것은 조금 편리하고, 조금 덜 불편하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참되고 깊은 행복을 주지 못한다. 영원한 행복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이 주는 것으로 참된 행복을 얻은 것처럼 착각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는 것으로서 세상 외에도 예수님 자신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의 평안은 어떤 평안인가
나의 평안이란 말은 예수님이 이미 가지고 계신 평안이며, 이미 예수님이 누리고 계신 평안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이 나의 평안이라고 말씀하실 때는 죽음을 앞에 둔 시점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평안은 죽음 앞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게 할 만큼 확실한 평안이다.
이 평안은 돈과 상관이 없는 평안이다. 권력과도 상관이 없으며, 그 어떤 세상 것과 상관이 없는 평안이다.
예수님이 누리고 계신 평안은 죽음도, 재물도, 권력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견고하며, 확실한 평안이라고 할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하시면서 마게도냐 교회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
마게도냐 교회는 바울이 전하는 예수님을 믿어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살아가는 중에 이들에게 가뭄이 들었다.
그들은 가난하여졌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에 더 큰 어려움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어려움 중에도 힘을 모았다.
바울의 말을 그대로 빌면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롬 15:26)고 하였다.
고린도 후서에서는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연보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예하였다. "(8:3-4)고 그들을 칭찬하였다.
여러분, 마게도냐 성도들의 마음에는 돈으로 얻을 수 없는 행복과 평안이 있었다.
이 평안이 있었기에 자기들도 어려우면서 어려움에 처한 성도들을 위하여 힘에 과분하도록 헌금하여 그들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결혼 후, 20여 년 동안 잘 잘 살던 그리스도인 부부가 있었다.
이들 부부는 99평 택지에 40평 짜리 단독 주택에 살만큼 넉넉하였다.
그러나 자주 다투었다.
커텐 색깔을 고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방 청소하는 것까지 사사건건 다툼의 연속이었다.
그러다가 IMF가 다가왔다.
남편이 경영하던 사업이 허무하게 무너졌으며, 이 일로 인해 셋방살이로 옮기게 되었다.
어려움 중에서 아내 된 자매는 남편의 마음 고생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남편은 자신을 위로해 주는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것이다.
아내 된 자매가 말했다.
"차라리 실패하기를 잘 했습니다. 부부간의 사랑이 무엇인지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
이들 부부는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그것도 실패를 통하여 그리스도인 부부로서 참된 행복과 참된 사랑을 알게 된 것이다.
여러분, 바울은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빌 4:12-13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은 이런 뜻이다. "나는 가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
이것은 예수님이 주시는 능력, 그것 때문에 자신이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아올 수 있었다는 일종의 신앙 고백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가정 주일에 여러분들이 섬기는 가정에는 세상이 주는 평안도 넘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런 것은 부족하더라도 바울에게 참된 평안을 주시며, 예수님이 이미 누리고 계시던 예수님의 평안이 우리가 섬기는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바란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죽음 앞에서도 평안을 잃어버리지 않으며, 바울처럼 가난 앞에서도 평안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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