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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조화 있는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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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렸을 때, 아버님께서 돌아가셔서 많은 기억은 없지만 부모님께서 자주 언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까닭은 아마 아버님이 어머님보다 약 7세 정도 연세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말다툼이 시작되면 나와 동생은 한쪽 구석으로 가서 싸우지 마세요. 하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장가를 가면 절대로 언쟁하지 않겠다. 하고 다짐했습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결혼한 후에 거의 말다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입 밖으로 발설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쟁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가정에서 참으로 복되게 사는 길이 무엇인가 하면 그것은 불화를 일으키지 않고 화목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조화 있는 가정이란 제목의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창세기 2장 5절에 의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이 세상은 참으로 삭막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으며 경작할 사람도 없었고 들에 초목도 없었으며 밭에서 채소가 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이러한 곳에 이것저것을 아름답게 만드심으로써 아주 멋지고 조화로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이 세상을 금호동이라고 본다면 동쪽의 에덴동산은 우리 가정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2장 8절은 이와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그리고 나서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을 위하여 먹거리를 만드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좋고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 2:9)
그리고 에덴동산을 흐르는 네 개의 강을 만드셨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가정에도 이러한 네 개의 강이 흘러야 합니다.
이 강은,
1) 비손입니다.
이 강은 하윌라 온 땅을 둘렸는데 거기에는 금뿐만 아니라 베델리엄과 호마노 같은 보석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가정이 가난해서 쫄쫄 굶고 사는 것이 아니라 정금(精金)과 보석이 있는 풍성한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2) 기혼입니다.
이 강은 구스 땅을 둘렸습니다. 구스는 지금의 아프리카, 그 중에서도 애굽입니다. 기혼 강이 에덴동산에서 애굽까지 흘렀으니 얼마나 큰 강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이처럼 에덴동산과 애굽을 연결시켰습니다.
따라서 에덴동산인 여러분의 가정은 이 세상까지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칠레도, 인도도, 방글라데시도, 러시아도 우리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3) 힛데겔입니다.
이 강은 앗수르 동편으로 흘렀습니다. 앗수르는 나중에 국가의 명칭이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불신앙적으로 살 때에는 앗수르를 경고의 막대기로 사용했으며, 이스라엘이 신앙적으로 살 때에는 앗수르를 꼼짝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앗수르는 마치 양떼 속에 있는 염소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양이 먹이를 먹은 후 꼼짝하지 않고 있으면 소화불량에 걸립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염소를 양떼 가운데 둡니다. 왜냐하면 염소는 양이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참지 못하고 뿔로 받음으로써 양들이 도망 다니게 되어 소화가 잘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제일 무서운 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나태한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의 나태증에 걸리면 반드시 앗수르를 들려야 합니다. 물 컵에 담긴 물은 썩지만 흐르는 물은 절대로 썩지 않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조용한 바다는 썩지만 파도치는 바다는 썩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에덴 동산인 우리 가정도 앗수르를 들려야 비로소 훈련된 값있는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4) 유브라데입니다.
네 번째 강인 유브라데에 관해서는 설명이 없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유브라데 강이 마지막 세대에 심판의 장소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유브라데 강가에는 항상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을 당했으며 앞으로 말세에 제3차대전이 일어날 지역도 유브라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유브라데 강을 통해서 우리에게 항상 종말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있는 사람이 독처하는 것을 매우 좋지 않게 여기셨습니다. 왜냐하면 혼자 사는 것은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가정은 혼자서 독특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어울려 사는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정은 나라고 하는 독특성(獨特性)은 전부 없어지고 조화로운 공동체를 형성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조화로운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첫째, 돕는 배필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앉아서 받아먹는 양반교인이 있어서는 안되고 서민교인이 많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서로 도와주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억 십일조 하는 교인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고 축복을 했는데 일억 십일조 교인이 하나만 있어서는 안되고 적어도 열 명, 이십 명, 삼십 명 이상이 나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억대 십일조 교인이 많아야 덜 독특하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내가 없으면 이 교회는 망한다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어느 한 사람만 똑똑해서는 안됩니다. 전부 똑똑해야 합니다. 1970년대에 공존공생(共存共生)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 하나만 잘 살거나 못 살아서는 안되고 전부 잘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태초부터 공존공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돕는 배필을 주심으로써 서로 도와주면서 살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돕는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남편은 아내를 도와주고 아내는 남편을 도와주고 부모는 자식을 도와주고 자식은 부모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손을 놓고 양반노릇을 해서는 안됩니다.
교회에서도 담임목사는 양반노릇을 하고 부목사는 종노릇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다함께 어려움을 겪고 다함께 편안하게 살아야 교회가 편안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에 나온 지 30년이 넘었다고 하면서 엊그제 나온 교인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에는 완제품이 없습니다. 따라서 배우자를 선택하려는 처녀, 총각은 완제품이 아니라 반제품을 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머지 반제품은 결혼한 후 부부가 함께 만들어야 조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사랑싸움을 하는데 그 이유는 서로 모가진 것이 부서지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해야 서로 어울려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조화를 잘 이루어서 돕는 교회, 돕는 가정을 꾸미시기 바랍니다.
둘째,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두 몸이 한 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가정에서 성장한 반제품과 남자의 가정에서 성장한 반제품을 갖다 맞추면 완제품이 됩니다. 이러한 가정이 조화를 이루는 가정입니다.
왜 남자의 살은 거칠고 여자의 살은 부드럽습니까 그것은 남자는 흙으로 만들고 여자는 남자의 뼈와 살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1)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2) 이해하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이해하고 아내는 남편을 이해하고 자식은 부모를 이해하고 부모는 자식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理解)라는 말을 살펴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치를 푼다. 는 뜻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이치에 맞게 풀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꾸 동여매면 점점 불행해지기 때문입니다.
포도나무는 가지가 얽히면 열매를 못 맺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포도나무는 전정 다시 말해서 가지치기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로 맞지 않는 것을 완전히 잘라내야 합니다.
또한 이해한다는 것은 서로 입장을 바꾸어 놓고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의 입장에서, 여자는 남자의 입장에서, 자식은 부모의 입장에서, 부모는 자식의 입장에서, 목사는 교인의 입장에서, 교인은 목사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이 목사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번 입장을 바꾸어 놓고서 생각해 보면 모든 얽힌 것을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다같이 따라서 하시기 바랍니다.
이해하면서 삽시다.
이해합니다.
되었습니다.
3) 협력하는 것입니다.
시골에서 목회하고 있을 때 어느 농가에서 저녁때에 엄마는 키질을 하고 아빠는 풍기(風箕)를 돌리고 다섯 살 박이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곡식을 담아 키질하는 엄마에게 갖다주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이 사진을 국선에 출품했는데 특선을 받았습니다. 이 사진의 제목은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그 사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것이 협력하는 것입니다.
4)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가난해도 믿음을 갖고 사는 가정은 행복합니다. 부자일지라도 불신하면서 사는 가정은 불행합니다.
어떤 역경이 오더라도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무슨 일을 만나더라도 만사형통 합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모는 사랑으로 자식을 기르는 조화로운 가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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