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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원리가 살아 있는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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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부모님이 어렸을 적부터 친구 사귀는 방법을 말씀 한적이 있는데 그것이 저는 여전히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 방법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면 사람이 많이 따르고, 사업도 성공하고, 인간관계도 좋고 이것은 두 번째입니다. 사람을 보는 원리 중에 하나는 ”그 사람이 자신의 부모를 사랑하는가 자신의 부모에게 효도하는가”라는 것을 중요하게 봅니다. 이것을 부모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낳아준 부모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내 이웃을 사랑한다고요 이것이 말이 될 것 같습니까 자신을 길러주고 사랑해주고 똥과 오줌을 받아주며 길러준 부모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고요 이것을 말도 안 되는 사실입니다. 부모를 배신하는 사람이 사람을 배신하지 않을까요
영적인 원리를 똑같은 면에서 발견합니다. 우리의 아버지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하는 사람이 여전히 사람도 배신한다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손가락질하면서 사는 사람이 자기 부인에게, 자기 남편에게 손가락질 안 하겠습니까 자신의 이웃에게 손가락질 안 하겠어요 똑 같습니다. 신앙 안에서 긍정적인 사람은 밖에 나가서도 긍정적으로 삽니다. 신앙 안에서 부정적인 사람은 밖에 나가서도 부정적인 사람이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은 밖에 나가서도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원리에서 나옵니다. 원리는 당연히 여호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출발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관계의 원리를, 신앙의 원리를 십자가를 많이 설명하지요. 십자가는 두 가지가 합쳐진 것입니다. 먼저 위에서 아래로의 관계, 바로 여호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말합니다. 주님의 첫 번째 계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수직적인 관계입니다. 그 다음이 바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 수평적인 관계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부부의 관계, 자녀와 부모와의 관계, 종과 상전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모든 인간관계를 포함합니다. 주님이 말하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의 원리는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못하면서 이웃을 사랑하는 법은 없어요.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부인을 사랑할 수 없고 남편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계명은 절대로 바뀌면 안됩니다. 수직적인 관계와 수평적인 관계, 첫 번째 계명과 두 번째 계명이 바뀌어 지면 안됩니다. 왜요 여호와 하나님의 원리가 그 안에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명에 기초해서 ”태초에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창세기 1장 1절을 우리는 이렇게 바꾸어 읽을 수 있습니다.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 태초에 여호와 하나님이 나와 관계를 맺기 원하셨다. 태초에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가정과 관계를 맺기 원하셨다. 태초에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삶과 관계를 맺기 원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여호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관계입니다.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라고 말해도 괜찮아요. 여호와 하나님과 만물과의 관계, 그리고 나아가서 여호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없이 만물이 나지 아니하였고 여호와 하나님 없이 사람이 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관계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과 사람을 위하여서 귀한 기관을 만드셨는데 세 가지를 만드셨습니다. 첫 번째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이전에 가정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남녀가 합하여 부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죄로 타락한 인간을 구원키 위해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세 번째로 구원받는 인간을 위해 천국을 만들어 주셨지요. 따라서 가정, 교회, 천국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가정이 되어야 하고, 동시에 작은 천국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은 작은 교회가 되어야 하고 작은 천국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찬송가 305장에 말합니다.
”사철에 봄바람 불어잇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 집 즐거운 동산이라”
”어버이 우리를 고이시고 동기들 사랑에 뭉쳐있고 기쁨과 설음도 같이하니 한간의 초가도 천국이라”
”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같이 일하는 온 식구가 한 상에 들러서 먹고 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어떤 찬양입니까 가정이 작은 낙원이고 천국이어야 합니다. 천국이 무엇인가요 우리 가정과 같은 곳이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 천국이 어떤 곳이에요 엄마, 천국이 어떤 곳이에요 아이들이 물으면 ”응 우리 가정 같은 곳이야”이렇게 대답을 해야지 ”죽어봐야 알지 그걸 어떻게 알아” 이렇게 말하면 안돼요. 여호와 하나님은 가정을 만드셨고 교회를 만드셨고 그리고 천국을 만드셨습니다. 같은 선상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말씀과 대화함(Engage the Word)
5월 가정의 달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 첫 번째 관계인 ”부부의 원리”에 대해서 설교합니다. 결혼하신 분에게만 들리는 말씀 갖지만 정작 오늘 말씀은 이제 결혼해야 할 우리 형제와 자매들에게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 가정은 어떤 가정이 되어야 하는가” 이것도 우리가 말씀 가운데에서 살펴보아야 하지만 이제 결혼 적령기에 있는 형제와 자매들, ”나는 누구와 결혼해야 하는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본문으로 들어가지 전에 전체 성경이 말하는 메시지를 들으십시오. 여러분, 부부라는 것, 결혼이라는 것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명심해야 합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고안해 내신 여호와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God’s Idea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생각이 가정과 결혼이라는 곳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경이 말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생각을 살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귀한 가정이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혼을 할까요 오늘 말씀 가운데서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물건이 있다고 합시다. 마이크라는 것이 있다면 이 마이크는 반드시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모든 물건은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이크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마이크를 만든 사람입니다. 그래서 물건을 만든 사람을 소위 Maker라고 합니다 똑 같아요. 가정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만드셨지요. 누가 제일 가정을 잘 압니까 심리학자, 사회학자입니까 아니에요. 가정을 만드신 우리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장 잘 아십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을 아는 것이 올바른 가정을, 올바른 결혼을 이끄는 원리라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를 살펴봅시다. 모든 제품에는 만든 사람이 사용자가 잘 사용하도록 꼭 딸려 오는 것이 있지요 그게 뭐예요 Manuel이 따라옵니다. 사용 설명서가 따라 옵니다. 만든 사람이 이렇게 쓰라고 사용 설명서를 만들었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물건에 대해서 잘 모르더라도 사용 설명서를 잘 읽고 따라하며 잘 쓸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 가정생활, 부부생활, 모든 것이 똑 같습니다. 가정을 만드신 분이 말해준 Manuel 대로 해 보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 보는 것입니다. 그럴 때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작은 천국이 가정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 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오늘 말씀을 통하여 원리가 살아있는 가정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 합니다. 오늘 읽은 에베소서 5장 후반절에 말합니다. ”아내들아” 또 기록하지요, ”남편들아” 그리고 6장은 ”부모들아, 자녀들아, 상전들아” 하면서 계속되어지는 관계를 설명하지요. 하지만 모든 말씀이 중요하지만 정작 중요한 말씀은 오늘 말씀 바로 이전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가장 중요한 원리입니다. 아내와 남편과의 관계는, 부부와의 관계는 나의 자녀들과의 관계는, 나의 상전과의 관계는 바로 어디에서 출발해야 하는가하면 21절의 말씀에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다함께 읽어봅시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
모든 관계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서로간에,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서로 복종하는 관계라는 것을 먼저 말합니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먼저 여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말합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여자들은 남편에게 어떻게 하라고요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래요. 남편에게 복종하래요. 그래서 오늘 말씀을 여성신학자들이나 사회학자들은 자유신학자들은 2000년 전 사도바울 시대에 쓰여진 봉건주의적인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 여성을 차별하는 말이다라는 뜻이지요. 저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거북스럽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차별이니 어쩌니 하면서 쪼개보려고 하지만 정작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그 안에 없어요. 그 뜻을 이해하겠는데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부분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주 거북스럽습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이 남성권위주의인가요 여성차별론자인가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 바로 이전에 기록한 말씀이 먼저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피차간, 서로간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복종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서로가 피차간에 복종하라고 했는데 여기에 무슨 차별이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11장 11절에서 12절에는 사도바울이 보는 남자와 여자에 대한 인식이 나오는데 잘 보십시오. ”그러나 주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남자 없이 여자 없고, 여자 없이 남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원리인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났다고 말씀합니다. 어디 성차별이 나옵니까 어디 남성 권위주의가 나옵니까 그게 아닙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씀 중에 갈 3;28절이 있는데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전혀 남성권위주의라 여성 성차별이 나오지 않아요. 그냥 세상의 관점으로 여성학자들이, 자유신학이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말합니다. 피차 복종하는 관계를 살아라.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하나이다. 남자 없이 여자 없고 여자 없이 남자 없다.
어떤 자유주의 신학이라든지, 세상의 학문을 따라 성경을 바라보지 말세요.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원리대로 보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에서, 성령가운데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것을 잘 들어야 합니다. 남녀가 똑같지는 않지만 평등하다는 거예요. 차별이 없다는 거예요. ’차별이 아니라 구별이라는 것입니다” 남자가 해야 되는 것이 있고 여자가 해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구별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렇게 구별해 놓으신 것입니다.
가정에서 남자에게 복종하라는 것은 남자가 잘 나서가 아니라 그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는 가정의 질서라는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군대에서 연대장이 있습니다. 연대장이 잘 나서 나를 다스리고 그러나요 그렇지 않지요. 질서가 없으면 군대가 돌아가질 않는걸요. 가정에서 남편을 왜 복종합니까 남편이 잘 나서 인가요 아닙니다. 가정의 질서입니다.
요즘 결혼하는 시부모들이 자기 딸들에게 말한다지요 ”야 너는 초장부터 잡아라” 잡긴 뭘 잡아요 잡긴 멀 잡아요 그렇게 해서 가정에 어떤 질서가 잡힐 것 같습니까 여러분, 남편이 잘 나서가 아니라 질서를 위하여 주께 하듯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입니다. 정말로 여호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아내가 되는 것, 가정을 이끄는 것은 아내가 주께 하듯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결혼하려는 여자 분들은 마음속에 언제 결혼해야 하는지 아세요 ”야 나 저 남자가 해 달라고 하는 것 다 해주고 싶다” ”저 사람이 말하는 것을 다 해주고 싶다”는 그 순간 그런 사람을 만나면 결혼해야 합니다. 그것 아세요
여호와 하나님의 질서의 원리에 순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원합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는 가정을 통해서 크게 나타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집안, 이삭의 집안, 야곱의 집안, 족장들의 집안을 통해서 믿음의 세계를 세워 나가셨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집안을 통해서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초대 교회의 대 다수가 가정을 통해서 이루어 나갔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리아를 칭찬합니다. 주님의 믿음의 여성들을 많이 칭찬해 주셨습니다. 초대교회를 누가 세웠는가, 누가 견고히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헌신했습니까 남성들도 있지만 먼저 여성들의 역할이 참으로 커 습니다. 사도바울을 도와서 유럽의 복음화를 이룩했던 여성이 자주장사 루디아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있는데 먼저 이름이 거론된 브리스길라가 부인이에요. 브리스길라가 열심히 주님의 사역을 도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가정을 쓰시는데 남자들도 먼저 쓰시지만 추운 겨울날 가정을 따스하게 하는 마치 난로가 가정을 따뜻하게 하는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은 가정을 쓰시기 위해서 여성을 사용하셨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가정들, 어거스틴, 요한 웨슬레, 칼빈, 루터 우리가 잘 아는 미국의 대통령들 아브라함 링컨들, 모든 여호와 하나님이 쓰신 가정의 뒷면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어머니의 신앙으로 성장한 사람입니다. 이것 알아야 합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원리를 따라 갔던 여성들이에요.
엄마가 아빠를 무시하면 자녀도 아빠를 무시하고 아빠가 엄마를 무시하면 자녀도 엄마를 무시합니다. 남편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남편을 복종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성분들은 특히 잘 들으셔야 합니다. ”남자를 주께 하듯 복종하십시오”라고 하면 어이 역시 목사님은 남자야 이렇게 말하면 안됩니다. 나중에 남자들에게 주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더 힘든 말씀이 나옵니다. 남자가 잘나서 복종하는가 오늘 말씀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질서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교회에는 목사가 있고 장로님이 있고, 권사님이 있고, 집사님이 있고 다 질서가 있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여호와 하나님이 무질서한지 아십니까 아니에요. 각각의 위격이 있고 각각의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무질서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닙니다.
말씀으로 응답함(Response the Word)
오늘 여호와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여성에게만 말하지 않습니다. 남성들, 남편들에게 말씀합니다.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25절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남편들에게 말하길 아내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사랑하라고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 같이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교회에 무엇을 주었습니까 교회는 바로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사진 거룩한곳입니다. 주님이 교회를 Build 하시기 위해서 죽으셨어요. 저와 여러분을 Build 하시기 위해서 죽으셨어요. 이것이 교회입니다. 주님이 무엇을 교회에 주셨습니까 바로 자신의 목숨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말씀 그대로 남편에게 하는 말,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주심같이 하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도대체 이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아내를 위해서 뭐 어떻게 하라고 말합니까 바로 아내를 위해서 죽으라고 말하는 거예요. 죽기까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남편은 그렇게 지음 받았어요. 남편은 아내를 위해서 죽게끔 지음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가서 남편들은 어떤 심판을 받는지 아십니까 아내를 죽기까지 사랑했는가를 물을거에요.
제가 남성들의 기도모임(When Men Pray)을 참으로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남자들만 모여서 쑥덕쑥덕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가보신 분은 잘 아시겠지만 회개하는 장소입니다. 회개의 내용이 ”내가 아내를 죽도록 사랑하지 못하고 다른 여자를 본 것을 용서해 달라는 것이지요. 남자가 제대로 아내를 사랑하지 못하니까 세상이 음란해 지고 세상이 더럽고 추한 것들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나는 한국 통계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남자들의 외도율이 51%입니다. 저 깜짝 놀랐어요. 영화를 보십시오. 얼마나 외도를 묘사합니까 뭐 무슨 무슨 다리인지, 미국 영화 그런 것 있지요 보지는 않았지만 외도를 아름답게 묘사한거에요. 저질입니다. 이 세상은 외도를 아름답게 보는 세상입니다. 타락했습니다. 목사로서 입에 담지 못할 것이 세상에는 가득합니다. 다 신문지상을 통해서 아실꺼에요. 왜 세상이 이렇게 타락했나요 누구의 잘못입니까 먼저 남자들의 잘못입니다. 아내를 죽도록 사랑하지 못하기에 발생한 타락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성들이 변하면, 가정의 남편이 변하면 사회가 바뀐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왜 사회가 썩어갑니까 왜 가정이 그렇게 많은 이혼율과 파멸이 있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바로 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학자들은 심리학자들은 결혼이라는 것은 첫 번째 육체의 정욕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정의합니다. 그래서 결혼이 있대요 육체의 정욕이 끝나면 만족이 없다면 그러면 갈라지고 타락하는 것이겠지요. 어떤 학자들은 결혼이라는 것은 두 사람의 계약이다라고 고상한 말로 말합니다. 남자 여자가 도장으로 찌고 계약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계약으로 한번 자 보고 결혼한다고 해요. 계약이 끝나면 없던 걸로 하는 것이지요. 남이 되는 것이지요. 결혼이 계약입니까 육체의 정욕과 욕심을 만족시키는 도구입니까 우리가 동물입니까
결혼은 여호와 하나님의 Idea입니다.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귀한 복입니다. 우리는 결혼을 만드신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피차 복종하는 관계를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 남성은 ”돈을 벌어야 된다, 집도 사야 된다. 좀 건실한 명예도 있어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 하지만 남성은 부인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남성이 결혼할 때는 언제 인지 아십니까 ”야 나 저 여자를 위해선 죽고 싶다” 이럴 때 결혼해야 하는거에요. 저 여자를 위해서 죽고 싶은 마음, 저 여자가 없으면 내 사는 낙이 없어”라고 할 그 순간에 결혼해야 합니다.
여자도 그래요, 남자가 ”내가 몇 캐롯 다이아반지 해 줄게” ”내가 신혼여행은 파리로 유럽으로 갈게” ”내가 나와 결혼하면 너가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줄게” 이런 것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세상남자들이 유혹하는 말입니다. ”내가 당신을 위해서 죽을께요!;라고 하는 분에게 결혼해야 합니다.
과거 영화 중에 오드린 헵번이 나온 영화가 있는데 My fair lady 인가요 My Pretty lady라는 영화가 있어요. 여기에 꽃파는 여자가 나옵니다. 말도 거칠고 상스러워요. 그래서 한 교수가 이 여인을 데리고 가서 말과 행실을 공주처럼 고치는 거예요. 자기를 사랑해주는 그 교수가 있고 친구가 있는데 이 여자가 아주 교수와는 아주 상반되게 대합니다. 그래서 교수친구가 말합니다. ”왜 너는 내 친구한테는 그렇게 자상하고 예쁘게 말하고 그러는데 왜 나만 보면 욕을 하고 갖은 험한 소리를 하니” 이렇게 물어요. 그랬더니 그 여자가 말합니다. ”그 선생님은 나를 공주처럼 대하니까 공주처럼 내가 대하지만 당신은 나를 길가에 꽃파는 처녀처럼 대하니까 그럽니다”라고 말해요. 저는 이 말이 맞다고 여깁니다.
많은 분들이 말하더라구요. ”남자는 40이 되어서 그 여자를 보면 안다고”. 여자가 사나운 면 그것은 다 남자가 그렇게 만든거에요. 처음부터 사나운 여자가 어디 있어요 뭐 wild cat이 어디 있습니까 처녀 때부터 어디 그런 여자가 있어요 그렇게 만든 남자가 있는 것입니다. 여자도 똑같습니다. 남자가 40이 되어서도 멸시받고 남자의 일들을 잘 못하면 그것은 여자가 잘못한 것입니다. 그것 아셔야 합니다. 서로가 만들어 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서로가 순종하며 경외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주께 하듯 말이에요.
먼저 남자들은 먼저 잘 가정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남자들은 별것 아닌 것 가지고 싸움하면 안돼요. 여자를 잘 알아야 합니다. 여자는 갈대라면서요 성경은 여자를 깨지기 쉬운 그릇이라고 했어요. 여자를 때린다고요 그래선 안됩니다. 여자는 굉장히 약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체적으로도 그렇고요 정신적으로도 그래요. 그래서 남자와 여자들은 잘 서로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 마지막에 말합니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 양육하며 보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보호하고 양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나감(Go with the Word)
여호와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동등하게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차별이 아니라 구별을 두셨습니다. 질서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서로가 채워 가길 원하십니다. 이 세상에 어떤 남자도 100점짜리 남자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어디에도 100점짜리 여자는 없습니다. 다만 50점짜리일 뿐입니다. 그리고 50점은 남자가 채워주고 여자가 채워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원리가 중요한 것입니다. 가정에서 기도가 끝나면 안됩니다. 가정에서 말씀이 사라지면 안됩니다. 기도의 원리, 말씀의 원리로 가정이 올바로 세워져야 합니다. 서로가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을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문제는 원리가 없어진 사회입니다. 원리가 없어진 가정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탓을 하면 안됩니다. 문제는 가정의 환상이 깨진 것이고 가정의 꿈이 깨진 것이 문제예요. 저와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원리, 가정의 원리를 깨닫고 아내는 남편에게 주안에서 복종하며, 남편은 아내를 위해서 주께서 자신의 몸을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복종하는 마음이 있길 진심으로 원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주신 것처럼 남편도 아내를 위해서 죽는 마음,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목사는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여호와 하나님, 저희 교회에 낙심했던 부부들이 저희 교회에 와서 다시 화목하게 하시고, 갈라졌던 가정이, 상처받았던 가정이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저희 교회에 낙심했던 가정이 와서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길 원합니다. 결혼할 적령기에 청년들도 많이 나와야 하지만 결혼한 가정, 주님께 쓰임 받는 부부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된 자들이 먼저 원리가 살아있는 가정,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이 됩시다. 주님 앞에 기쁨으로 쓰임 받는 가정이 됩시다. 다같이 골로새서 2장 6-7절을 읽으면서 말씀을 마칩니다.
(골 2:6-7)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예수를 주로 받고, 그 안에서 행하고,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고 교훈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주님께 감사하는 가정, 부부가 되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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