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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찾아야 할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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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을 찾아 헤매는 한 미술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침 일찍 집을 떠나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만나는 대로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제일 처음 만난 사람은 목사였습니다. 그는 목사에게 “세상에서 무엇이 제일 아름답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목사는 신앙이 제일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르기를 “믿음을 통한 용서와 희망이 가득 찬 얼굴을 보시오. ”라고 하였습니다. 그 화가는 곧 교회에 가서 신자들의 얼굴에서 보여주는 성실함과 신앙의 아름다움을 그렸습니다.
다음 날 그는 좋은 양옥 앞에 서 있는 신혼부부를 발견하고 그들에게 같은 내용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사랑이지요.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화가는 그 자리에서 그들의 아름다운 얼굴에 빛나는 사랑을 그렸습니다.
그 화가는 다시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상이군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같은 질문을 그 병사에게 하였더니 그는 지체하지 않고 “제일 아름다운 것은 평화입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다시 화가는 맹렬한 싸움터였던 죽음의 장소가 황금곡식으로 덮이고 농부들이 풍년가를 부르는 추수장면을 그렸습니다.
그럼에도 그 화가는 그가 찾고 꿈꾸는 만족할만한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하고, 많은 세월을 보낸 후 실망한 모습으로 자기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가 돌아오는 것을 본 그의 자녀들이 멀리서 보고 반가워서 “아빠!” 하고 소리지르며 달려와 두 팔로 그에게 매달리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또한 사랑스러운 그의 아내가 따뜻하고 애정어린 웃음으로 그를 맞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온 집안 식구가 식탁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아버지요 남편인 그가 돌아온 것을 환영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는 순간을 맞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그 화가는 비로소 그의 아내와 자녀의 얼굴에 빛나는 사랑과 신앙의 화평을 보고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바로 내가 지금까지 찾고 있던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이 여기 있구나!’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가정에서 발견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난 후에 그 그림의 제목을 ‘가정’이라고 붙였다고 합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제일 아름다운 것은 가정이라는 것을 발견했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 창조 세계의 절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을 가정이라고 하였을까
1. 가정은 그 기원이 신적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남자였던 아담이 홀로 있을 때는 최상의 아름다움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이 에덴에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담을 위하여 돕는 배필인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녀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올 때, 아담이 그 여자를 보고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고 하였습니다(창 2:18-23).
그렇다면 가정의 기본 요소인 남자와 여자는 그 기원이 신적(神的)입니다. 결코 우연의 산물이거나 진화론적 산물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최고의 피조적 영광이 가정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창 2:25). 이는 가정의 신적 영광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2. 가정은 생명의 산실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 20절에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4장 1절에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와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한 후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만들었습니다. 이런 경우 하와의 생명은 아담이 희생한 결과의 산물입니다(창 2:21-22). 그 후 하와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되어 생명출생의 산실이 되었습니다. ‘하와’란 그 이름의 뜻도 ‘생명’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더욱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목적 중의 목적이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함이었다고 하였습니다(말 2:15). 여기에 여호와 하나님은 부부윤리의 계명을 명(命)하였던 것입니다. 아내를 향한 남편의 사랑, 남편을 향한 아내의 순종이었습니다. 그 사랑과 순종은 바로 경건한 자손을 얻는 축복의 계율이었습니다.
아담은 한 아버지인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유래(창조)되었습니다. 모든 인류는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로 말미암아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가정은 위대한 생명의 산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계획하신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한 생명의 처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태어난 곳, 가정의 난로 주변, 지상에서 가장 거룩한 장소이네. ’라고 말한 사람도 있습니다(G. P. Morris).
3.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이 세상에서의 성소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이것은 가정의 존재론적 목적입니다. 가정 존재의 본질적인 목적입니다. 결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정은 육체적 쾌락의 장소로 주어진 곳이 아닙니다. 경제행위의 수단으로 주어진 장소가 아닙니다. 인간 교육이나 과학이나 기타 문화 수단의 도구로 가정이 주어진 것도 결코 아닙니다.
가정은 그 본래의 기원이 여호와 하나님께로 나왔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 섬기는 경건한 자손을 받고, 여호와 하나님 섬기는 경건한 백성의 예배의 수단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무죄세계에서의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참 선지자의 집이요, 왕의 집이요, 제사장의 집이었던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하늘과 땅과 바다를 개발하는 선지자적 문화임무를 다해야만 했고, 또 그것들을 왕적인 권세로 다스려야만 했고, 그 결과를 여호와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장적인 사명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은 그 존재론적 목적이 분명한 것입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집입니다.
4. 가정은 축복의 기관(器官)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부모는 자녀가 받은 축복의 결정적인 기관으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는 자녀가 잘 되는 결정적인 근간으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결정적인 율례가 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여호와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6장 2-3절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두 곳의 말씀을 보면 부모 공경이 가져오는 결정적인 축복이 있습니다. 첫째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땅 곧 기업을 빼앗기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둘째는 땅에서 장수한다고 하였습니다. 셋째는 잘 된다고 하였습니다. 형통의 축복, 성공의 축복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부모 공경은 모든 축복의 첩경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가정의 아름다움의 절정이 됩니다.
5. 경건의 자손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반복적으로 약속한 가정의 축복입니다. ① 하늘의 별 같은 자손입니다(창 22:17). ② 바닷가의 모래 같은 자손입니다(창 22:17). ③ 땅의 티끌 같은 자손입니다(창 13:16). ④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은 자손입니다(시 127:4-5). ⑤ 부모의 상(床)에 둘린 어린 감람나무 같은 자손입니다(시 128:3). 실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중한 가정의 보화입니다.
2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가정이 잃어져가고 있습니다.
현대사조의 특징 중에 하나가 ‘상실의 시대’, ‘망각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 결정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현대인은 참된 가정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정이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큰 이유로 권위상실에서 가정상실을 만납니다. 여기 권위라고 하는 말은 신적 권위(Divine Authority)와 인적 권위(Human Authority)를 다 의미합니다.
가정의 본래 권위는 여호와 하나님 자신의 창조질서에 속합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질서, 축복질서가 부모라고 하는 생명과 축복의 기관(器官)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도록 하였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두기 싫어함으로 인해 부모권위의 상실과 붕괴를 맞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근대 사회에 나타난 가장 뚜렷한 현상 중에 하나가 급격한 산업화와 이에 따르는 도시화의 경향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마침내 인구의 대대적인 이동이라고 하는 새로운 사태를 만나게 되고, 여기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것이 핵가족의 등장이었습니다. 따라서 가족성원들은 극소수로 정예화 되어 버렸습니다. 결과적으로 기동성이나 생산력이 없는 노인은 가정에서 소외를 당하고 맙니다. 이것이 가정 파멸, 가정 붕괴, 가정 상실의 전주곡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 이유는, 부모는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의 사자요 축복의 기관이었기 때문입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가정의 신성(神性)이나 거룩성을 송두리째 도둑질해 버리는 무서운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좇아 순리대로 생명을 받는 일을 저버리고, 이른바 생명공학(DNA)이 사람의 생명을 조작해내려고 하는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이제 가정의 혈통이나 애정 따위는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실로 살벌한 시대를 예감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물성화(物性化)되어 가는 시대입니다.
뿐만 아니라 시대적 상황변천에 따른 의식의 변질에서 성경적인 참된 가치관이나 전통적 윤리기준이 무너져 버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적, 정신적, 윤리적, 도덕적 가치기준은 사실상 현대인의 마음을 떠난 지가 오래입니다. 모든 가치의 척도는 자기 자신이고, 자기 자신의 가치 척도는 보다 나은 경제수단이라고 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행복의 척도는 나 자신이요 또 물질이라고 하는 사실상의 유물숭배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또 여기에 수반되어 오는 인간성 상실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대화라든가 부부간의 대화, 형제간의 대화는 현대인의 가정에서 사실상 멀리멀리 떠나버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사이버 문화 앞에 인간 그 자체를 송두리째 빼앗겨버리는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이란 단순히 잠자고 지나가는 여인숙, 하숙인생의 집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보다 나은 경제성장, 과학기술의 발달, 생활수준의 향상이라고 하는 거대한 공룡의 발굽 아래,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가정이 짓밟혀가고 있습니다. 아니 파괴를 당하고 있습니다. 도둑을 당하고 있습니다.
가정은 보통 세 가지 경우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내가 태어난 가정으로 부모와 형제들이 속한 가정입니다. 또 하나는 결혼으로 이루어진 아내와 남편, 아들과 딸로 구성된 가정입니다. 세 번째의 경우는 영적 가정인데, 여호와 하나님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본질적 기독교의 가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가정이 제 모습을 잃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이혼의 엄창난 증가로 말미암아 그야말로 가정의 족보나 질서를 찾아보기가 힘들어지는 것이 이른바 선진 문명국가들의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이 엄청난 가정붕괴의 태풍권내에 들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 잃어버린 아브라함의 자손을 찾으러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당시 매국노라 일컬음을 받던 세리장 삭개오를 찾아 그가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선언하여 주셨습니다(눅 19:9-10). 실로 엄청난 예수님의 주장이요 행동이었습니다.
그 잃어버린 아브라함의 자손 가운데는 세리와 죄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과 만나고, 대화하고, 음식을 같이 먹고, 그들을 영접하였습니다. 이 일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원망받는 내용이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나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도록 찾아야겠다고 하였습니다(눅 15:4-7). 나는 ‘집안에서 잃어버린 은전 하나(드라크마)’를 찾도록 찾아야겠다고 하였습니다(눅 15:8-10). 나는 ‘잃어버린 아들, 죽었던 아들’을 찾도록 찾아야겠다고 하시며 저 유명한 탕자비유를 공개하였습니다(눅 15:11-24).
‘잃어버린다’는 말은 없어진 것이나 소멸된 것이 아니고, ‘위치가 바뀌어져 버린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찾는다’는 것은 그것을 본래 자리로 되돌려놓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가정, 잃어버려져 가는 가정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 가정의 본래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자식들에게 여호와 하나님 경외를 가르치고 축복하는 아버지를 찾아야 합니다. 자식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기도하는 어머니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 가정의 축복의 기관이 되는 부모를 찾아야 합니다. 찾도록 찾아야 합니다. 잃어버린 예배와 기도와 찬송과 감사를 찾아야 합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내가 반드시 그 가운데 있겠다고 하신 곳이 바로 주님이 오시는 가정이 아닌가
사실상 가정은 지상 최초의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대의 성이나 건물들이나 벽화가, 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썩거나 변하지 않고 아름다운 고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볼 때 감탄을 하고, 심지어 경외감마저 느낄 때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신 본래의 가정이 온갖 역사의 변천과 흥망성쇠 속에서도 견고한 성처럼 계대적인 축복을 이어가야 합니다.
가정의 상실은 국가의 상실이 됩니다. 가정의 붕괴는 바로 그 역사 붕괴의 지름길이 됩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가정의 축복을 받읍시다! 여호와 하나님을 모신 가정, 경건한 자손이 있는 가정, 축복의 기관인 부모를 공경하는 가정, 그리고 그 집을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성소로 만드는 가정, 그 가정은 실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가정입니다.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은 바로 잃어버린 가정의 아름다움을 찾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 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이것은 예수님의 여리고 선언입니다.
바로 잃어버린 아브라함의 가정(가족)을 찾는 것이 예수님 자신의 강세 목적이었다고 하지 않은가!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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