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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생각과 가정을 중시하는 하나님

본문

오늘 말씀은 저희가 많이 대해본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창세기 처음 부분에 나온 말씀이고 결혼식 때 많이 들어본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이 독특한 상황이 보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 전 17절을 보시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죽는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본문의 말씀을 빼면 3장 1절에 뱀이 유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치 샌드위치 같은 모습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을 빼면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죄에 대한 문제가 나타나면서 오늘 말씀이 나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사건이 진행되는 중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죄 문제에 고통을 겪을 아담에게 무엇인가 알려 줍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 나온 큰 두 가지 주제입니다.
하나는 선악과 이야기 하다가 아담에게 동물이름을 짓게 하신 것입니다.
 둘째는 갑자기 갈빗대를 가지고 하와를 돕는 배필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죄에 쌓여 있는 우리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두 가지 방법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첫째, 생각해야 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에게 동물들의 이름을 지라고 하였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아주 큰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다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얼마나 당혹된 일입니까 이름 하나를 지으려면 고민! 고민을 해야지요.
저도 예전에 이름을 지어준 적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참 힘듭니다. 대부분 돌림자를 넣었으면 좋겠고, 성경 적인 해석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예뻐야 되지요. 평생을 불려질 이름인데 막 지을 수 있나요 아주 낑낑댑니다.
저희 집 강아지 이름을 '다랑' 이라고 짓는데도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그런데 한 번 상상해보세요. 아담이 이름을 지으려고 합니다. 쉽겠습니까 아니오.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쉬웠을 것입니다. 코가 길으니 코끼리! 입이 크니 하마! 이렇게 지을 갈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분류되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 사고 구조를 갖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은 자연스럽게 이름을 지으면서 구조화 시켰을 것입니다. 항간에 떠도는 영어 베스트셀러 '50 잉글리시' 라고 하는 책을 들어 보셨습니까 50문장만 하면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겠어요 그러나 어떤 구조를 알려 주는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구조는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담도 자기도 모르게 분류가 되었을 것입니다. 제일 큰 분류가 무엇입니까 우선 움직이는 것은 동물, 안 움직이는 것은 식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헷갈리는 조그마한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은 아마 신경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큰 분류부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래야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조를 만든 것입니다.
논문을 발표할 때 노련한 교수님들은 그것을 요구합니다. "그래 이 논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한 페이지에 이야기 해봐!" 분류되어 있는지 보게 되는 것입니다.
참 재미있는 것은 많은 분들이 이야기를 하시면서 본인도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본인도 몰라요 왜 그럴까요 틀이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틀이 왜 중요합니까 그것은 틀이 세워진 다음 중요한 것과 버릴 것을 나누게 되기 때문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과 버릴 것을 나누게 됩니다.
지난 주 수요일에 말씀을 드렸지만 바울이 죽으러 갑니다.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합니다. 그런데 죽으러 갑니다. 왜 그런 능력이 생겼을까요
분명한 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목적을 알기 때문에 죽음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틀이라고 하는 것은 이만큼 중요합니다.
설교를 할 때 잘하는 목사님과 못하는 분들의 가장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말씀을 준비하다보면 성령님의 생각도 있고 자기의 생각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자기가 준비한 설교를 보고 혼자 감동해합니다. "완벽해!" 다른 성도와 상관없이 혼자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설교는 현장에 가서 꽝 입니다. 말씀을 전할 때 능력이 없습니다. 왜냐면요 무슨 소리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잘하는 방법이 있거든요. 잘 짤라버리는 것입니다. 버리는 것만 잘하면 멋진 설교가 될 수 있습니다.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버리면 대화를 멋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버리지 못해서 문제가 됩니다. 촌스러워집니다.
참 재미있는 것은 도시와 시골이라고 하는 차이를 어떻게 느끼십니까 저는 시골에 가면 보는 것이 있습니다. 안방에 가면 무엇이 많습니까 일단 벽에 사진이 많습니다. 돌 사진부터 회갑사진까지 도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어버이날에 보면 카네이션 꽃을 달지 않습니까 그때 한번보세요. 8개 달고 다닌 분도 본적이 있습니다. 세련되게 보입니까 반지 끼는 분들도 보면 몇 개 끼고 있으면 얼마나 촌스러운지 모릅니다. 한군데 포인트주는 게 중요하잖아요. 잘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틀을 제대로 가지고 있으면 잘 버릴 수있습니다. 이것은 나이 드시면 더 생각해야 합니다. 틀이 있어야 모임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공연히 바쁘기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을 정리할 때 세상에서 빠져서 고통만 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고의 틀이 중요합니다. 아이들 교육도 틀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우선 순위'라는 틀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즉 무엇을 먼저 할 것인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급한 일을 먼저 해야 할지 아니면 중요한 일을 먼저 해야 할지 알아야 합니다. 공부한다고, 놀러간다고 예배를 빠집니다.
과연 그것이 맞는 것인가 이 가치관을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그렇습니다. "나는 예배를 중요시하는 사람입니다. 예배에 나는 목숨을 겁니다.
절대 예배는 빼먹을 수 없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예배만 철저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예배를 드리고 움직입니다. 회사에서 잘려도 예배에 목숨을 거는 사람! 마치 순교자 같은 사람입니다. 결국 어떻게 이렇게 능력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가치관이 생각의 틀이 분명하기 때문에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틀이 없는 사람들은 정신없습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모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릅니다. 평생동안 "천부여 의지 없어서"만 찬양합니다.
주일날 빠지는 청년들 정신 차리십시오, 잠을 자다가 예배를 빠지는 청년도 있습니다.
어디 놀러간다고 예배 빠집니다. 믿음이 없는 문제보다 삶의 틀이 없습니다.
저희교회는 주차장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떤 분은 주차하기 싫어서 예배에 빠진다고 토끼 같은 눈을 하면서 말씀을 합니다. 예배입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예배입니다.
어떤 것이 중요합니까 중요한 것은 바로 무게입니다. 인생에서 많은 것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몇 가지 중요한 것을 강하게 붙들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내일 중 고등부 수련회를 갑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부터 아이가 배웠어야죠. 주님 안에서 여러분들은 이런 사고의 틀을 가지고 우선 순위를 가르치고 세계관을 가르치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결국 죄악 된 세상에서 아담에게 이름을 지으라고 한 것은 사고의 틀을 정리하게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은 내 사고의 틀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바꾸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선이다. 이것은 바꿀 수 없다, " 이런 구조를 가져야 이 선악과가 즐비한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둘째 여호와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가정을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세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먼저 아담을 만드셨습니다. 여자를 나중에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여자 없는 세상이 얼마나 괴로운가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나라 여자 분들은 항상 그런 소리를 합니다. " 내가 없어야 여자 귀한 것 안다고" 그런데 사실 상당히 영적인 이야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자 없는 가정은 괴롭게 만드셨습니다. 어느 정도요 " 뼈에 사무칠 정도로"입니다. 23절을 보세요, 알 수 있잖아요 결혼 못한 청년들은 잘 들으세요. 언제 여호와 하나님께서 배우자를 주십니까 절실해야 합니다. 그래야 갈비뼈 하나를 얻을 수 있습니다.
혼자 살아도 별 문제 없는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지 않습니다. 결혼은 나이가 되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인 경우 분명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자매가 필요하다는 고백입니다. 살맛이 나지 않습니다. 자매가 없어서 너무나 고독해서 죽고 싶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도 제발 자매 한 분만 소개해주세요
애원합니다. 기도 제목도 "제발 한 자매만!" 기도할 때도" 나를 죽게 하시든지 자매를 주시든지" 금식하면서 기도합니다. 40일 동안, 이런 사람은 결혼이 준비된 사람입니다. 사랑이 준비된 사람입니다.
결혼 안 하는 사람들! 아무리 해도 듣지 않습니다. 비법을 알려드립니다. 외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부모가 너무나 잘해줘서 그런 것입니다. 아주 외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농담이지만 사실 성경적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남녀를 만나게 해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돕는 배필'입니다. 돕는다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상당히 많은 의미를 주는 말입니다.
무엇보다 돕는다는 의미는 100점 짜리 배우자가 있다는 이야기입니까 아니오. 없습니다. 머리 좋고 몸매 좋고 예쁘고 돈 많이 벌고 좋은 직업가지고 있는 자매가 있습니다. 완벽합니다. 자 이러한 자매가 결혼하겠습니까 아니오. 혼자 살지요. 결혼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한 남자가 있습니다. 결혼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누가 결혼합니까 조금 모자란 사람입니다. 이 세상은 100%만족된 배우자는 없어요, 원래 100점이 없습니다. 한쪽최고 점수가 50점입니다. 둘이 합해서 100점되게 만드셨습니다. 그것이 돕는 배필입니다. 배우자를 만나는 것은 부족한 50점을 만나는 것입니다. 만약 자신이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이 된다면 결혼하지 마십시오, 짜증만 냅니다. 단점만 보입니다.
배우자를 만나는 것은 부족한 사람끼리 만나는 것입니다. 부족한 사람끼리 채울 수 있는 것을 확인 할 때 가정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보완을 하게 됩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까 결혼하고 나서 참 성격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1. 먼저 성격적인 보완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결혼하기 전까지 성격 못 고칩니다. 부모가 때려도 못 고칩니다. 성령도 못 고쳐요. 그런데 누가 고칠 수 있습니까 남편입니다. 아내입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친구들 중에 그런 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아주 깐깐한 사람이 있습니다. 매일 방에서 취미가 머리카락 좇으러 다닙니다. 바깥에서 양말을 신고 들어가면 쫓아다니면서 걸레질합니다. 그런 친구가 곰같은 아내를 만났습니다. 지저분한 아내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변화가 생긴 것입니다. 친구들을 만날 때 꽤재재 합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와이셔츠도 다리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보아 온 친군데 그 병적인 성격 때문에 어머니께서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누가 바꾸었습니까 곰 같은 아내였습니다.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곰같이 자기의 일에 충실한 아내! 밟아도 뭉개도 꾸준히 달려온 아내는 그를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선악과 사건 속에서 왜 아내이야기 나왔을까요 부부가 제대로 만나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2. 또 하나는 성적인 보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동성끼리 위로 받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남자끼리 위로를 받지 못합니다.
이것을 게이라고 합니다. 여성끼리 위로를 받으려고 하는 것은 레즈비언이라고 하지요. 여호와 하나님은 죽게 될 일이라고 더럽게 여기셨습니다.
남성끼리 만나서 좋아하는 것 문제입니다. 위로를 받지 못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놀랍게도 신기하게도 남성과 여성을 만들어서 성적인 보완을 하면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은 축복입니다. 선악과가 난무한 세상에서 서로 격려하며 살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따먹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공격하는 곳이 어디입니까 부부입니다. 남녀관계입니다.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 이애 최대의 타락은 성적인 타락입니다. 성적 타락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멋진 부부를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부가 잘사는 것은 죄를 이기는 중요한 방법인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알려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3. 영적인 보완도 있습니다.
결혼은 우리 각자의 영혼을 지켜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혼자서 신앙생활 하는 것 쉽지 않습니다. 사람은 성령이 충만해도 다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 서로 격려하는 영적으로 붙잡아주는 배우자가 필요합니다. 일방적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혹간에 그런 분들이 계시지요 “나는 이 남자와의 결혼을 통해서 이 남자를 구원시킬 것입니다. 이 거룩한 만남을 보시
라" 그러면서 거룩하게 눈물 글썽거리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교제를 통해 이 가정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 라고 하는 것입니다. 들어보면 아름다워 보이지만 웃기지 마십시오. 성경은 단 한번도 결혼을 선교의 도구로 사용하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가정은 선교지가 아닙니다. 선교를 하시려거든 오지로 가셔야 합니다. 왜 가정을 선교지로 착각합니까 남편은 선교대상이 아닙니다. 아내는 선교대상이 아닙니다. 가정은 믿음의 동역 자입니다. 부부가 만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에 주신 축복인데 방법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결혼은 영적인 승리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공부는 못해도 됩니다. 돈을 벌지 못해도 됩니다. 훨씬 중요한 것은 결혼입니다.
결혼을 위해서 투자하십시오, 기도해야 합니다. 동역 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악과가 판치는 이 세상에서 너무나도 분명한 두 가지를 주셨습니다.
1)동물들의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무엇이 중요한가 틀을 정해야 흔들림이 없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2)우리에게 배우자를 주셨습니다. 동역 자입니다. 돕는 배필입니다. 서로 보완하며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길을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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