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라
본문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이 세운 최초의 기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지상에 세운 기관은 가정과 교회입니다. 교회는 타락한 가정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떠나서 완전한 가정을 세울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가정을 무시하는 교회는 참된 교회가 아닙니다. 그래서 지상교회가 건설될 때에도 가정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행 1:13). 교회와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위한 두 수레바퀴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불안전하면 주님의 몸된 교회를 받들어 섬길 수 없습니다.
가정의 연합이 사회와 국가입니다. 부부가 연합하여 일년쯤 지나면 자녀가 생깁니다. 이렇게 해서 가족이 30여 년이 지나면 자식을 통해서 또 하나의 새로운 가정이 형성됩니다. 이렇게 해서 친족이 되고, 이러한 친족이 모여서 씨족사회를 건설합니다. 이러한 씨족이 다른 씨족과 연합하여 부족사회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러한 부족이 사상과 이념을 중심으로 하여 뭉쳐진 것이 국가입니다. 그러므로 국가의 뿌리는 바로 가정입니다. 가정의 파괴는 곧 국가의 패망입니다. 개개인의 가정이 튼튼할 때 그 국가의 미래가 밝은 것입니다.
인간에게 세 영역이 있습니다.
첫째, 영적 관계입니다.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종교적인 존재로서 영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둘째, 인간관계입니다. 인간은 서로 돕는 배필로서 더불어 사는 공동체 생활을 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과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셋째, 자연관계입니다. 자연과의 관계는 문화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청지기 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지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자연을 다스리고 지배하고 정복하게 했습니다. 그러면 아름다운 가정은 어떠해야 하겠는가를 말씀하려고 합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입니다. (영적 관계)
가정의 주인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가정을 만드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셨다고 했습니다. 또 창세기 2:24에 보면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지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창설자이며 우리의 생사 화복을 주장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섬기며 사는 가정이라야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가정" 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가정이 되고 마귀가 얼씬 못하도록 천군 천사를 동원하여 지켜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가정은 항상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출석을 소중히 여깁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항상 도움을 구하는 기도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족의 생각들이 건전하고 헝크러지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손해나는 것 같지만 결국 몇 백배의 유익이 있고 자자손손 축복이 넘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인간의 본분입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경외하면 이러한 복을 받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시128:1-4)고 했습니다. ① 수고 한대로 얻는 복을 주십니다. 일한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요, 일할 터전이 있음은 직장이 있다는 것이요,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수고한 댓가의 결실입니다. ② 형통한 복을 주십니다. 범사에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요셉같은 삶입니다. ③ 가정에 주신 평강입니다. 부부가 포도송이 같으며, 자녀들이 감람나무 같은 복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족은 같이 동거해야 합니다. 부부는 어떤 일이 있어도 같이 행동해야 합니다. 부부는 같이 식사하고 같이 생활하고 같이 취침하고 같이 외출하고 같이 숨쉬고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부는 같은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같이 기도하고 같이 찬송하고 같이 예배드리고 같이 예배당에 가야 합니다. 생명 있는 신앙인으로 함께 생활해야 합니다.
부부는 종교가 같아야 합니다.
기독교타임즈 5월25일자 종합뉴스 기사에, 연인 10명중 4명이 종교갈등을 겪었다는 자료가 나왔습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미혼 남녀 4백28명(남성 1백31명, 여성 2백 97명)에게 '연인간의 종교 갈등'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해 지난 17일 밝힌 경과에 따르면 40,9%가 교제 과정에서 종교 갈등을 경험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 갈등을 경험한 남녀 응답자 중 56. 6%는 '그로 인해 헤어졌고', 20. 0%는 작은 다툼이 있었으며, 5. 7%는 헤어질 위기까지 갔다고 답한데 반해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응답자는 16. 0%에 불과 했습니다. 이 같은 갈등은 남성(42. 7%)이 여성(40. 1%)보다 많이 경험했고, 종교별로는 기독교인(59. 8%), 불교(44. 8%), 무교인(28. 1%), 천주교인(25. 8%)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갈등 종교는 기독교-불교(46. 9%) 간이 주를 이루었고, 기독교-천주교(10. 3%), 천주교-불교(2. 9%)순이었다고 합니다.
이 통계에서도 부듯이 기독교는 타 종교와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같이 예배드리는 기독교이어야 합니다. 간혹 종교가 다른 분들이 있는 것을 봅니다. 부부사이에도 종교는 자유라는 것입니다. 이는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기독교로 통일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부부가 믿음생활이 같을 때 생각이 같습니다. 하는 일이 같습니다. 일치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 잉꼬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 127편 1절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워주지 않으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부부가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믿음이 같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식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줄 수 있게 됩니다. 자손만대가 복 받는 가정이 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가정복음화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온 가족이 식탁에 앉아서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식사를 감사하며 찬송하며 기도하는 성도의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을 충만히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2. 사랑이 풍성한 가정입니다. (인간관계)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 2:18)고 했습니다. ① 독처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특별하게 여호와 하나님이 고자로 살게 한 자를 제외하고는 독처해서는 안됩니다(마 19:12).
사람은 더불어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②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돕고, 아내는 남편을 도와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다 부족하고 모자라는 인생입니다. 서로 도와야 합니다.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가까운 이웃이 부부입니다. 가까운 이웃간에 잘 사귀지 못하는 사람은 남과 사귈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서로 아끼며 존중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창 2:22-23)고 했습니다.
어거스틴은 왜 여호와 하나님이 하와를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었는지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하와를 아담의 머리뼈로 만들었다면 여자가 남자를 지배할 것입니다. 반대로 아담의 발가락뼈로 만드셨다면 여자가 남자에게 밟힘을 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하와를 아담의 갈비뼈로 만드신 것은 가슴으로 서로 품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 인격체입니다. 남자가 힘이 있다고 해서 우월한 것도 아니고, 여자가 약하다고 해서 열등한 것도 아닙니다. 창조질서상 남자를 앞세운 것이지 인격적으로 여자를 차별하신 것이 아닙니다.
서로 이해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창 2:24-25)고 했습니다. 가정에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움은 이해와 용서입니다.
친애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을 실천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창세기 2:23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배필을 주신 아내 하와에게 "이는 내 뼈중에 뼈요. 살중에 살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아름답고 소중하고 가장 사랑스럽다는 표현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그러한 사랑이 실천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을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⑴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자기 고집만 부리는 식구들이 모인 곳에는 사랑이 실천될 수 없습니다. 피차 서로의 입장을 생각해 주며 서로가 함께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주려고 해야 합니다. 항상 솔직하고 비밀이 없어야 합니다. 창2:25에 보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 하니라"고 했습니다.
온전한 사랑이 있는 온전한 가정은 서로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서로의 감정이 솔직해야 하고 상대방을 의심하고 떠보며 시험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의 입장을, 자식은 부모의 입장을 서로 바꿔놓고 생각할 때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⑵서로 겸손해야 합니다.
고전13:4에 보면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으며"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자기가 잘났다고 하고 자존심만 내세우면 행복한 부부가 될 수 없습니다. 부부는 일심동체인데 자존심 내세울 것이 무엇이 있고 하찮은 말에 자존심 상할 것 무엇입니까
겸손히 섬기는 자세가 되어야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서로 "내가 잘못했소. 미안하오" 하고 속히 화해해야지 몇 달씩 냉전하는 것은 사랑보다 자존심을 더 귀중하게 생각하는 잘못된 사람들입니다.
⑶가족간에 서로 시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들은 행여나 자식들에게 경쟁의식을 심어주어서는 안됩니다. "네 형 봐라. 동생 봐라" 하면 자연히 형제간에 시기하게 만들고 나중에는 결국 우애하지 못하게 합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원인도 거기에 있으며 야곱과 에서의 불목도 거기에 있습니다.
또 야곱이 요셉을 편애했기에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선의의 경쟁은 좋은 점도 있겠지만 형제간에 시기하고 미워하게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시133:1절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했습니다. 교회에서도 경쟁심을 유발시켜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3. 문화적인 사명을 다하는 가정입니다. (자연관계)
인간은 문화적인 존재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창1:27)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천사를 지을 때 영적인 존재로 지었습니다. 짐승은 육체를 가진 본능적인 존재로 지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영과 육을 가진 특수한 존재로 여호와 하나님 자신의 형상으로 지어 문화적인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인간은 문화적인 사명을 받았습니다. 인간은 영적으로 보이지 않은 여호와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보이는 물질 세계를 여호와 하나님 뜻대로 관리하는 청지기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아담은 모든 피조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만물의 영장이 된 것입니다(창1:26-28).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창2:19)고 했습니다. 미국의 리처드 니이버(H. Richard Niebuhr) 교수는 문화에 대하여 다섯 가지 유형을 말했습니다. ① 문화와 대립하는 그리스도인, ② 문화에 예속된 그리스도인, ③ 문화 위에 군림하는 그리스도인, ④ 문화와 역설적 관계를 가진 그리스도인 ⑤ 문화의 변혁자 그리스도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문화의 변혁자가 되어 세속문화를 그리스도 문화로 바꾸어야 합니다.
구원역사에 나타난 예배 문화는 이러합니다.
①족장시대에는 돌단제사입니다. 자연 그대로 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창 12:7)했습니다.
②출애굽시대에는 성막제사입니다. 가공한 텐트문화입니다.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더라"(출 40:38)고 했습니다.
③왕국시대는 성전제사입니다. 철기를 동원한 건축양식입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과 왕궁 건축하기를 마치며 자기의 무릇 이루기를 원하던 일이 마친 때에, 여호와께서 전에 기브온에서 나타나심 같이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왕상 9:1-2)고 했습니다.
④포로시대에는 회당교육입니다. 흩어진 무리(Diaspora)들이 함께하는 공동체문화입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 4:23)고 했습니다.
⑤신약시대 나타난 예배문화입니다. 공간적인 의식보다는 영적예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4)고 했습니다. 이들은 성령강림으로 세계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행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되고 아름다운 가정은 영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인간관계에서 사랑이 풍성하며, 자연질서 속에서 문화적인 사명을 잘 감당하는 가정입니다. 이런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가정의 연합이 사회와 국가입니다. 부부가 연합하여 일년쯤 지나면 자녀가 생깁니다. 이렇게 해서 가족이 30여 년이 지나면 자식을 통해서 또 하나의 새로운 가정이 형성됩니다. 이렇게 해서 친족이 되고, 이러한 친족이 모여서 씨족사회를 건설합니다. 이러한 씨족이 다른 씨족과 연합하여 부족사회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러한 부족이 사상과 이념을 중심으로 하여 뭉쳐진 것이 국가입니다. 그러므로 국가의 뿌리는 바로 가정입니다. 가정의 파괴는 곧 국가의 패망입니다. 개개인의 가정이 튼튼할 때 그 국가의 미래가 밝은 것입니다.
인간에게 세 영역이 있습니다.
첫째, 영적 관계입니다.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종교적인 존재로서 영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둘째, 인간관계입니다. 인간은 서로 돕는 배필로서 더불어 사는 공동체 생활을 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과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셋째, 자연관계입니다. 자연과의 관계는 문화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청지기 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지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자연을 다스리고 지배하고 정복하게 했습니다. 그러면 아름다운 가정은 어떠해야 하겠는가를 말씀하려고 합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입니다. (영적 관계)
가정의 주인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가정을 만드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셨다고 했습니다. 또 창세기 2:24에 보면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지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창설자이며 우리의 생사 화복을 주장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섬기며 사는 가정이라야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가정" 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가정이 되고 마귀가 얼씬 못하도록 천군 천사를 동원하여 지켜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가정은 항상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출석을 소중히 여깁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항상 도움을 구하는 기도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족의 생각들이 건전하고 헝크러지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손해나는 것 같지만 결국 몇 백배의 유익이 있고 자자손손 축복이 넘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인간의 본분입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경외하면 이러한 복을 받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시128:1-4)고 했습니다. ① 수고 한대로 얻는 복을 주십니다. 일한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요, 일할 터전이 있음은 직장이 있다는 것이요,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수고한 댓가의 결실입니다. ② 형통한 복을 주십니다. 범사에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요셉같은 삶입니다. ③ 가정에 주신 평강입니다. 부부가 포도송이 같으며, 자녀들이 감람나무 같은 복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족은 같이 동거해야 합니다. 부부는 어떤 일이 있어도 같이 행동해야 합니다. 부부는 같이 식사하고 같이 생활하고 같이 취침하고 같이 외출하고 같이 숨쉬고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부는 같은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같이 기도하고 같이 찬송하고 같이 예배드리고 같이 예배당에 가야 합니다. 생명 있는 신앙인으로 함께 생활해야 합니다.
부부는 종교가 같아야 합니다.
기독교타임즈 5월25일자 종합뉴스 기사에, 연인 10명중 4명이 종교갈등을 겪었다는 자료가 나왔습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미혼 남녀 4백28명(남성 1백31명, 여성 2백 97명)에게 '연인간의 종교 갈등'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해 지난 17일 밝힌 경과에 따르면 40,9%가 교제 과정에서 종교 갈등을 경험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 갈등을 경험한 남녀 응답자 중 56. 6%는 '그로 인해 헤어졌고', 20. 0%는 작은 다툼이 있었으며, 5. 7%는 헤어질 위기까지 갔다고 답한데 반해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응답자는 16. 0%에 불과 했습니다. 이 같은 갈등은 남성(42. 7%)이 여성(40. 1%)보다 많이 경험했고, 종교별로는 기독교인(59. 8%), 불교(44. 8%), 무교인(28. 1%), 천주교인(25. 8%)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갈등 종교는 기독교-불교(46. 9%) 간이 주를 이루었고, 기독교-천주교(10. 3%), 천주교-불교(2. 9%)순이었다고 합니다.
이 통계에서도 부듯이 기독교는 타 종교와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같이 예배드리는 기독교이어야 합니다. 간혹 종교가 다른 분들이 있는 것을 봅니다. 부부사이에도 종교는 자유라는 것입니다. 이는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기독교로 통일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부부가 믿음생활이 같을 때 생각이 같습니다. 하는 일이 같습니다. 일치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 잉꼬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 127편 1절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워주지 않으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부부가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믿음이 같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식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줄 수 있게 됩니다. 자손만대가 복 받는 가정이 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가정복음화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온 가족이 식탁에 앉아서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식사를 감사하며 찬송하며 기도하는 성도의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을 충만히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2. 사랑이 풍성한 가정입니다. (인간관계)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 2:18)고 했습니다. ① 독처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특별하게 여호와 하나님이 고자로 살게 한 자를 제외하고는 독처해서는 안됩니다(마 19:12).
사람은 더불어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②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돕고, 아내는 남편을 도와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다 부족하고 모자라는 인생입니다. 서로 도와야 합니다.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가까운 이웃이 부부입니다. 가까운 이웃간에 잘 사귀지 못하는 사람은 남과 사귈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서로 아끼며 존중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창 2:22-23)고 했습니다.
어거스틴은 왜 여호와 하나님이 하와를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었는지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하와를 아담의 머리뼈로 만들었다면 여자가 남자를 지배할 것입니다. 반대로 아담의 발가락뼈로 만드셨다면 여자가 남자에게 밟힘을 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하와를 아담의 갈비뼈로 만드신 것은 가슴으로 서로 품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 인격체입니다. 남자가 힘이 있다고 해서 우월한 것도 아니고, 여자가 약하다고 해서 열등한 것도 아닙니다. 창조질서상 남자를 앞세운 것이지 인격적으로 여자를 차별하신 것이 아닙니다.
서로 이해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창 2:24-25)고 했습니다. 가정에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움은 이해와 용서입니다.
친애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을 실천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창세기 2:23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배필을 주신 아내 하와에게 "이는 내 뼈중에 뼈요. 살중에 살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아름답고 소중하고 가장 사랑스럽다는 표현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그러한 사랑이 실천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을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⑴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자기 고집만 부리는 식구들이 모인 곳에는 사랑이 실천될 수 없습니다. 피차 서로의 입장을 생각해 주며 서로가 함께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주려고 해야 합니다. 항상 솔직하고 비밀이 없어야 합니다. 창2:25에 보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 하니라"고 했습니다.
온전한 사랑이 있는 온전한 가정은 서로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서로의 감정이 솔직해야 하고 상대방을 의심하고 떠보며 시험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의 입장을, 자식은 부모의 입장을 서로 바꿔놓고 생각할 때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⑵서로 겸손해야 합니다.
고전13:4에 보면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으며"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자기가 잘났다고 하고 자존심만 내세우면 행복한 부부가 될 수 없습니다. 부부는 일심동체인데 자존심 내세울 것이 무엇이 있고 하찮은 말에 자존심 상할 것 무엇입니까
겸손히 섬기는 자세가 되어야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서로 "내가 잘못했소. 미안하오" 하고 속히 화해해야지 몇 달씩 냉전하는 것은 사랑보다 자존심을 더 귀중하게 생각하는 잘못된 사람들입니다.
⑶가족간에 서로 시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들은 행여나 자식들에게 경쟁의식을 심어주어서는 안됩니다. "네 형 봐라. 동생 봐라" 하면 자연히 형제간에 시기하게 만들고 나중에는 결국 우애하지 못하게 합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원인도 거기에 있으며 야곱과 에서의 불목도 거기에 있습니다.
또 야곱이 요셉을 편애했기에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선의의 경쟁은 좋은 점도 있겠지만 형제간에 시기하고 미워하게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시133:1절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했습니다. 교회에서도 경쟁심을 유발시켜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3. 문화적인 사명을 다하는 가정입니다. (자연관계)
인간은 문화적인 존재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창1:27)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천사를 지을 때 영적인 존재로 지었습니다. 짐승은 육체를 가진 본능적인 존재로 지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영과 육을 가진 특수한 존재로 여호와 하나님 자신의 형상으로 지어 문화적인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인간은 문화적인 사명을 받았습니다. 인간은 영적으로 보이지 않은 여호와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보이는 물질 세계를 여호와 하나님 뜻대로 관리하는 청지기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아담은 모든 피조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만물의 영장이 된 것입니다(창1:26-28).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창2:19)고 했습니다. 미국의 리처드 니이버(H. Richard Niebuhr) 교수는 문화에 대하여 다섯 가지 유형을 말했습니다. ① 문화와 대립하는 그리스도인, ② 문화에 예속된 그리스도인, ③ 문화 위에 군림하는 그리스도인, ④ 문화와 역설적 관계를 가진 그리스도인 ⑤ 문화의 변혁자 그리스도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문화의 변혁자가 되어 세속문화를 그리스도 문화로 바꾸어야 합니다.
구원역사에 나타난 예배 문화는 이러합니다.
①족장시대에는 돌단제사입니다. 자연 그대로 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창 12:7)했습니다.
②출애굽시대에는 성막제사입니다. 가공한 텐트문화입니다.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더라"(출 40:38)고 했습니다.
③왕국시대는 성전제사입니다. 철기를 동원한 건축양식입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과 왕궁 건축하기를 마치며 자기의 무릇 이루기를 원하던 일이 마친 때에, 여호와께서 전에 기브온에서 나타나심 같이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왕상 9:1-2)고 했습니다.
④포로시대에는 회당교육입니다. 흩어진 무리(Diaspora)들이 함께하는 공동체문화입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 4:23)고 했습니다.
⑤신약시대 나타난 예배문화입니다. 공간적인 의식보다는 영적예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4)고 했습니다. 이들은 성령강림으로 세계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행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되고 아름다운 가정은 영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인간관계에서 사랑이 풍성하며, 자연질서 속에서 문화적인 사명을 잘 감당하는 가정입니다. 이런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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