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처음 가정
본문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짖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한 몸을 이룰찌로다 아담과 그 아내와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좋은 배우자 즉 좋은 가정, 좋은 직장, 그리고 좋은 종교라고 합니다.
이렇게 가정은 우리의 인생에 대단히 중요합니다.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집은 많이 지어지는데 가정은 파괴되고 있습니다.
즉 우리시대는 House(집)은 있는데 Seet home 가정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으리으리한 집에 살고 높은 권세를 가지고 있다해도 온전한 가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입니다.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가장 큰 최고의 보물이요 축복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은 가정입니다.
사람은 가정을 통해서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며 살 수 가 있습니다.
부모님을 통해서 누리는 천국이 있습니다. 아내를 통해서 누릴 수 있는 천국이 있습니다. 아마 남편을 통해서도 누릴 수 있는 천국이 있을 것입니다. 자녀를 통해서 누릴 수 있는 천국이 있습니다.
돈 많이 벌어 누릴 편안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을 통해서 누릴 수 있는 천국은 세상 모든 것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가정천국의 맛을 아십니까
이 맛을 모르고 산다면 인생의 참 맛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성경 창세기를 통해서 보면 사람이 타락하면서 천국과 같은 가정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처음에 만들어주신 가정은 천국과 같은 에덴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가정은 타락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면서부터 파괴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고 3장8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낮을 피하여 숨었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모습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자신을 숨 길 수 밖에 없는 타락한 모습이었습니다.
에덴의 가정과 타락한 가정의 차이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에덴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가정의 모습은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에덴의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통하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진실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들 안에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여 서로를 사랑의 대상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오늘도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가정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타락하지 않는 진실한 삶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예수님의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알면 참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Ⅰ 타락한 가정의 모습
1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타락한 가정의 모습은 서로에게 탓을 돌리는 사랑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3장11절 이하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누가 이렇게 했느냐고 책망을 하시니까 아담이 가장으로서 제 탓이었습니다. 라고 해야 하는데 아내를 탓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부끄러운 남편들은 실패를 늘 아내 탓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담은 여호와 하나님 탓까지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여자가 라고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와도 자신이 잘못했다고 하지 않고 자신을 유혹한 뱀을 탓하고 있습니다.
결국 타락한 가정의 모습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는 서로가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가정입니다.
2 서로에게 서로를 감추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서로에게 진실하게 자신을 나타내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온전하지 못한 가정은 서로에게 서로를 감추고 살아갑니다.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것은 복입니다. 서로가 진실할 때 부부는 서로의 진실을 받아 줄 수 있고 서로 덮어주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3 결국 이렇게 깨어진 가정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참으로 예배하지 않는 가인 나오고 가인을 통해서 최초의 살인극이 벌어집니다.
온전하지 못한 가정에서 온전한 자식이 나올 수 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4장에 보면 세상 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4장17절을 보면 타락한 아담의 자손들이 성을 쌓게 되고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생의 가치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물질적인 것에 있는 모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시1편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면 오만한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 곧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내 가정이 복 있는 가정이라고 할 때 판사가 되고 의사가 되고 재벌이 되고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이 바른 인재가 나와야 합니다.
Ⅱ 가정파괴의 원인
그렇다면 무엇이 에덴의 가정을 타락한 가정으로 만들었습니까
마귀의 유혹 때문이었습니다. 마귀는 하와에게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것으로 아담과 하와를 타락하게 했습니다.
마귀는 오늘도 우리의 삶 속에서 세상 것과 우리의 삶에 귀한 것을 바꾸게 합니다. 돈과 여호와 하나님을 바꾸게 하고 세상 권세와 여호와 하나님의 사명과 바꾸게 하고 돈과 쾌락 때문에 가정을 버리게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보다 가정보다 세상의 돈과 쾌락을 앞세우는 사람은 마귀에게 속아 어리석은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정은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입니다.
무엇으로도 빼앗겨서는 안 되는 소중한 것입니다. 세상의 무엇을 준다해도 바꿔서는 안 되는 것이 가정이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는다고 해도 지켜야 하는 것은 가정인 것입니다.
다 잃어버려도 돌아갈 수 있고 사랑으로 안식할 수 있는 가족의 품이 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잃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처음 가정을 회복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Ⅲ 처음가정을 회복합시다.
1 먼저 회복해야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타락한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정이 바른 신앙을 회복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잠언15:16에 솔로몬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왜 그렇습니까 잠언1장에서 말씀한 것처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하셨기 때문이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식을 통해서 얻어야 하는 것은 올바른 가치관입니다.
가정의 파괴는 가치관이 잘못되면서부터 인 것입니다.
인생의 가치를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둔 사람은 절대로 타락하지 않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늘 생각하는 것은 예수 믿는 아내 예수 믿는 남편을 가진 것 만큼 복이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요즘 같이 타락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혹시 세상의 어려움으로 인해서 세상의 것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회복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2 몸으로서의 가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 24절에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한 몸을 이룰 찌니라 고 하셨습니다. 가정은 한 몸이라고 하셨고 가정은 무엇으로도 나누일 수 한 몸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한 몸이 되었습니까
남자의 몸에서 갈빗대를 취해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가정의 부부는 한 몸으로서 사랑을 해야 합니다.
먼저 남편은 아내를 위한 희생의 사랑을 하여야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자를 지으실 때 아담의 갈빗대를 취해서 만드셨습니다.
사실은 여기에는 교회의 비밀이 담겨져 있습니다. 아담의 갈빗대를 취해서 하와를 지으심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옆구리에 창으로 찔리셔서 피를 흘리심으로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교회를 세우신 것처럼 여자는 남자의 희생을 통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면 남자가 희생을 해서 만들어 졌으니 대접을 받아야 된다 절대로 아닙니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말씀하시기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고 하였습니다.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심 같이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엡5:28에는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3장7절에는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를 보호하고 희생으로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남편의 사랑이 보호와 희생이라면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듯이 하라하라고 했습니다.
엡5:22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내의 사랑은 순종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은 서로를 귀중히 여기면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의 약점을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한 몸으로 만들어 주시되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아서 돕는베필로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에 대한 말씀이 고린도전서에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12장에서 몸으로서의 교회를 이야기하면서 22절에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으로 입혀주며 .... 몸 가운데 분쟁이 없이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하여 돌아보게 하셨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즉 부부가 한 몸이라는 것은 서로 약점을 도와주고 사랑하여 서로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고 가정입니다.
이렇게 서로에게 말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보 요즘 어려운 것 없어 힘들지 어렵지"
3 가정은 사랑의 고백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아담은 하와를 보자마자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고 했습니다.
이 말은 당신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분 이예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고백은 가정을 살립니다.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인 크리스토퍼 리브라는 사람이 영화를 촬영하다가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었습니다.
그 때 크리스토퍼는 다시 살 수 없는 가망이 없었습니다. 산소호흡기를 의지해야 했고 온 몸에 주사바늘을 꽂고 있었으며 겨우 의식만 살아있었답니다. 꽂아있는 바늘을 뽑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크리스토퍼는 주변에 있는 어머니를 비롯한 여러 사람에게 나의 이런 모습을 나의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으니 이대로 죽을 수 있도록 모든 주사를 뽑아 달라고 했답니다.
너무나 처참하고 고통스러워하는 크리스토퍼의 모습을 보고 그의 어머니가 그렇게 하자고 포기를 했답니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낙심하고 있는 남편을 찾아와서 여보 당신은 아직도 슈퍼맨이예요 하면서 용기를 주었답니다. 그를 사랑하는 아내의 한마디는 크리스토퍼로 하여금 용기를 내게 했고 결국 그는 생명을 건질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그는 영화배우로 일을 할 때 보다 더 큰일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당신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분 이예요 라는 말 한마디가 죽어 가는 남편을 살렸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가정에 회복되어야 할 것은 사랑의 고백입니다.
4 그리고 마지막으로 처음 가정의 모습은 서로에게 열려있는 가정이었습니다.
오늘 말씀 25절에 보면 서로가 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서로 다투고 책임을 미루고 서로를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아니라 서로에게 진실한 가정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정이 서로에게 열려있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대화입니다.
대개 우리의 삶에서 어디에서 문제가 있습니까 대화의 부족에서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세상 모든 것을 잃어도 여러분을 따뜻하게 맞아 줄 수 있는 가정의 품이 있습니까 만일 나를 맞아 줄 따뜻한 가정이 없다면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다 해도 아무것도 없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가정은 다른 이가 행복하게 할 수 없고 내가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가만히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노력하면 할 수 록 더욱 행복한 가정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house 는 있으나 seet home은 없다고 하는 시대에 여러분은 중요하지 않은 집을 짓는 데만 눈이 팔려 있고 가정을 짓는데는 소홀 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의 인생은 집을 짓는 것보다 가정을 짖는 것이 더 귀하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한 몸을 이룰찌로다 아담과 그 아내와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좋은 배우자 즉 좋은 가정, 좋은 직장, 그리고 좋은 종교라고 합니다.
이렇게 가정은 우리의 인생에 대단히 중요합니다.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집은 많이 지어지는데 가정은 파괴되고 있습니다.
즉 우리시대는 House(집)은 있는데 Seet home 가정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으리으리한 집에 살고 높은 권세를 가지고 있다해도 온전한 가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입니다.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가장 큰 최고의 보물이요 축복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은 가정입니다.
사람은 가정을 통해서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며 살 수 가 있습니다.
부모님을 통해서 누리는 천국이 있습니다. 아내를 통해서 누릴 수 있는 천국이 있습니다. 아마 남편을 통해서도 누릴 수 있는 천국이 있을 것입니다. 자녀를 통해서 누릴 수 있는 천국이 있습니다.
돈 많이 벌어 누릴 편안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을 통해서 누릴 수 있는 천국은 세상 모든 것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가정천국의 맛을 아십니까
이 맛을 모르고 산다면 인생의 참 맛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성경 창세기를 통해서 보면 사람이 타락하면서 천국과 같은 가정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처음에 만들어주신 가정은 천국과 같은 에덴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가정은 타락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면서부터 파괴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고 3장8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낮을 피하여 숨었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모습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자신을 숨 길 수 밖에 없는 타락한 모습이었습니다.
에덴의 가정과 타락한 가정의 차이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에덴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가정의 모습은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에덴의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통하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진실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들 안에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여 서로를 사랑의 대상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오늘도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가정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타락하지 않는 진실한 삶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예수님의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알면 참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Ⅰ 타락한 가정의 모습
1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타락한 가정의 모습은 서로에게 탓을 돌리는 사랑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3장11절 이하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누가 이렇게 했느냐고 책망을 하시니까 아담이 가장으로서 제 탓이었습니다. 라고 해야 하는데 아내를 탓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부끄러운 남편들은 실패를 늘 아내 탓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담은 여호와 하나님 탓까지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여자가 라고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와도 자신이 잘못했다고 하지 않고 자신을 유혹한 뱀을 탓하고 있습니다.
결국 타락한 가정의 모습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는 서로가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가정입니다.
2 서로에게 서로를 감추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서로에게 진실하게 자신을 나타내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온전하지 못한 가정은 서로에게 서로를 감추고 살아갑니다.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것은 복입니다. 서로가 진실할 때 부부는 서로의 진실을 받아 줄 수 있고 서로 덮어주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3 결국 이렇게 깨어진 가정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참으로 예배하지 않는 가인 나오고 가인을 통해서 최초의 살인극이 벌어집니다.
온전하지 못한 가정에서 온전한 자식이 나올 수 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4장에 보면 세상 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4장17절을 보면 타락한 아담의 자손들이 성을 쌓게 되고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생의 가치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물질적인 것에 있는 모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시1편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면 오만한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 곧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내 가정이 복 있는 가정이라고 할 때 판사가 되고 의사가 되고 재벌이 되고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이 바른 인재가 나와야 합니다.
Ⅱ 가정파괴의 원인
그렇다면 무엇이 에덴의 가정을 타락한 가정으로 만들었습니까
마귀의 유혹 때문이었습니다. 마귀는 하와에게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것으로 아담과 하와를 타락하게 했습니다.
마귀는 오늘도 우리의 삶 속에서 세상 것과 우리의 삶에 귀한 것을 바꾸게 합니다. 돈과 여호와 하나님을 바꾸게 하고 세상 권세와 여호와 하나님의 사명과 바꾸게 하고 돈과 쾌락 때문에 가정을 버리게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보다 가정보다 세상의 돈과 쾌락을 앞세우는 사람은 마귀에게 속아 어리석은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정은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입니다.
무엇으로도 빼앗겨서는 안 되는 소중한 것입니다. 세상의 무엇을 준다해도 바꿔서는 안 되는 것이 가정이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는다고 해도 지켜야 하는 것은 가정인 것입니다.
다 잃어버려도 돌아갈 수 있고 사랑으로 안식할 수 있는 가족의 품이 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잃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처음 가정을 회복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Ⅲ 처음가정을 회복합시다.
1 먼저 회복해야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타락한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정이 바른 신앙을 회복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잠언15:16에 솔로몬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왜 그렇습니까 잠언1장에서 말씀한 것처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하셨기 때문이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식을 통해서 얻어야 하는 것은 올바른 가치관입니다.
가정의 파괴는 가치관이 잘못되면서부터 인 것입니다.
인생의 가치를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둔 사람은 절대로 타락하지 않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늘 생각하는 것은 예수 믿는 아내 예수 믿는 남편을 가진 것 만큼 복이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요즘 같이 타락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혹시 세상의 어려움으로 인해서 세상의 것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회복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2 몸으로서의 가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 24절에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한 몸을 이룰 찌니라 고 하셨습니다. 가정은 한 몸이라고 하셨고 가정은 무엇으로도 나누일 수 한 몸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한 몸이 되었습니까
남자의 몸에서 갈빗대를 취해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가정의 부부는 한 몸으로서 사랑을 해야 합니다.
먼저 남편은 아내를 위한 희생의 사랑을 하여야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자를 지으실 때 아담의 갈빗대를 취해서 만드셨습니다.
사실은 여기에는 교회의 비밀이 담겨져 있습니다. 아담의 갈빗대를 취해서 하와를 지으심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옆구리에 창으로 찔리셔서 피를 흘리심으로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교회를 세우신 것처럼 여자는 남자의 희생을 통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면 남자가 희생을 해서 만들어 졌으니 대접을 받아야 된다 절대로 아닙니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말씀하시기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고 하였습니다.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심 같이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엡5:28에는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3장7절에는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를 보호하고 희생으로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남편의 사랑이 보호와 희생이라면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듯이 하라하라고 했습니다.
엡5:22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내의 사랑은 순종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은 서로를 귀중히 여기면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의 약점을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한 몸으로 만들어 주시되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아서 돕는베필로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에 대한 말씀이 고린도전서에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12장에서 몸으로서의 교회를 이야기하면서 22절에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으로 입혀주며 .... 몸 가운데 분쟁이 없이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하여 돌아보게 하셨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즉 부부가 한 몸이라는 것은 서로 약점을 도와주고 사랑하여 서로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고 가정입니다.
이렇게 서로에게 말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보 요즘 어려운 것 없어 힘들지 어렵지"
3 가정은 사랑의 고백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아담은 하와를 보자마자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고 했습니다.
이 말은 당신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분 이예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고백은 가정을 살립니다.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인 크리스토퍼 리브라는 사람이 영화를 촬영하다가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었습니다.
그 때 크리스토퍼는 다시 살 수 없는 가망이 없었습니다. 산소호흡기를 의지해야 했고 온 몸에 주사바늘을 꽂고 있었으며 겨우 의식만 살아있었답니다. 꽂아있는 바늘을 뽑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크리스토퍼는 주변에 있는 어머니를 비롯한 여러 사람에게 나의 이런 모습을 나의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으니 이대로 죽을 수 있도록 모든 주사를 뽑아 달라고 했답니다.
너무나 처참하고 고통스러워하는 크리스토퍼의 모습을 보고 그의 어머니가 그렇게 하자고 포기를 했답니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낙심하고 있는 남편을 찾아와서 여보 당신은 아직도 슈퍼맨이예요 하면서 용기를 주었답니다. 그를 사랑하는 아내의 한마디는 크리스토퍼로 하여금 용기를 내게 했고 결국 그는 생명을 건질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그는 영화배우로 일을 할 때 보다 더 큰일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당신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분 이예요 라는 말 한마디가 죽어 가는 남편을 살렸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가정에 회복되어야 할 것은 사랑의 고백입니다.
4 그리고 마지막으로 처음 가정의 모습은 서로에게 열려있는 가정이었습니다.
오늘 말씀 25절에 보면 서로가 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서로 다투고 책임을 미루고 서로를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아니라 서로에게 진실한 가정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정이 서로에게 열려있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대화입니다.
대개 우리의 삶에서 어디에서 문제가 있습니까 대화의 부족에서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세상 모든 것을 잃어도 여러분을 따뜻하게 맞아 줄 수 있는 가정의 품이 있습니까 만일 나를 맞아 줄 따뜻한 가정이 없다면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다 해도 아무것도 없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가정은 다른 이가 행복하게 할 수 없고 내가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가만히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노력하면 할 수 록 더욱 행복한 가정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house 는 있으나 seet home은 없다고 하는 시대에 여러분은 중요하지 않은 집을 짓는 데만 눈이 팔려 있고 가정을 짓는데는 소홀 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의 인생은 집을 짓는 것보다 가정을 짖는 것이 더 귀하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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