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가정을 다시 일으켜 세우라
본문
오래 전에 모 일간지에서 부부간의 관계에 대한 앙케이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앙케이트 질문에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 살고 있는 사람과 다시 사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자그마치 90%의 부부가 “아니오”라고 대답했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질문 밑에다가 괄호를 치고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골비었냐”
또 어떤 부부는 “바꾸어 봐야 그놈이 그놈이야”라고 말했답니다.
여러분, 우리의 가정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우리나라 통계청의 보도자료에 의하면 2001년에 이르러 우리나라에 1년동안 혼인건수가 32만 건이 있었던 것에 비해 이혼건수는 13만 5천건이나 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에 평균 877쌍이 결혼했고 또 하루에 370쌍이 이혼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세 쌍이 결혼하면 한 쌍 이상은 이혼하는 시대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가정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1970년대에 조사한 통계에 비하면 무려 10배나 증가한 수치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예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10배라는 수치안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정들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가정이 흔들리는 시대가 되자, 이런 말까지 나왔다는 것입니다. “결혼이란 ‘결’국 ‘혼’자되는 것이다. ”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사람은 왜 결혼하는가 판단력이 부족해서이다. 그러면 왜 이혼하는가 인내력이 부족해서이다. 그렇다면 또 재혼은 왜 하는가 기억력이 부족해서이다. ”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생각 속에 “가정”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가정은 인간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설계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이디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67편 6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은 고독한 자로 가속 중에 처하게 하시며”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가속”이란 가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의 고독을 치유하는 해결책으로 가정이라는 선물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보시면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을 보시고, 독처하는 것을 보시고, 좋지 않게 여기신 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또 아담을 위해서 그의 아내 하와를 지어주신 분도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정은 인간이 만든 어떤 유한한 단체나 클럽 혹은 계 모임 정도가 아니라,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설계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이디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하십니다.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이디어다”
그렇다면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설계하신 우리의 가정이, 주님 계획하신 아름다운 가정상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가정 회복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회복”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것을 거꾸로 말하자면 남편과 아내가, 그리고 부모와 자녀들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바른 영적 관계를 회복하면 그 가정도 반드시 회복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 가정에는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달콤한 사랑의 고백이 날마다 있었습니다.
창세기 2장 23절입니다.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그러니까 아담이 하와를 아주 “찐하게” 껴안으면서, “오, 당신은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군요”라고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여러분, 이때 하와가 뭐라고 그랬을까요 제가 곰곰히 묵상해 보니까 이랬을 것 같습니다. “에이, 몰라이” 그러면서 오히려 더 품에 안겼을 것입니다. 또 아담이 “저는 당신만을 사랑해요”라고 말하면 하와도 “저도 당신뿐이예요”라고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에 보면 이 아름다운 가정에 크나큰 아픔이 찾아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아픔의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먼저는 서로를 부끄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서로를 원망하는 단계까지 나아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부부가 신혼초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당신 없이는 못살아”라는 말이랍니다. 그런데 1년만 지나도 “정말 못 살기는 못살겠는데 당신 때문에 못살아” 그런답니다.
어쨌든 그렇다면 이렇게 아름다웠던 아담의 가정이 서로 원망하고 상처를 주는 가정으로 바뀌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무엇이 그들의 가정을 깨어지게 했습니까 바로 그들이 지은 “죄” 때문입니다.
여러분, “죄”는 그냥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죄는 그냥 쉽게 모른 척하고 넘길 문제가 아닙니다. “죄”는 여호와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를 갈라 놓았습니다. 그 결과 인간과 인간, 그리고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마저도 갈라지게 만들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가정이 진정으로 회복되려면 가장 먼저 이 죄로 인해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깨어진 아내와 깨어진 남편의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여호와 하나님과 우리 자신과의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가정 회복의 첫걸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저는 정말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고, 또 남편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면 그 가정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무리 가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도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또 남편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 가정은 반드시 회복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또한 아내가 가정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고, 또 남편도 정말 가정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면 그 가정은 복이 있는, 놀라운 가정이 될 것을 믿습니다.
1984년 미국무성 교육부는 가장 모범된 가정 하나를 뽑아서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은 미국의 백인 가정도, 유태인 가정도 일본인 가정도 아니었습니다. 뜻밖에도 한국인 가정이 뽑혔습니다. 바로 고광림, 전혜성 박사 부부였습니다. 고광림 박사는 서울대학에서 최연소 법학 교수였을 뿐만 아니라, 주미공사를 지낸 사람이었습니다. 무려 다섯 개 부분의 학위를 가졌고 그 부인 전혜성 박사는 예일대학의 교수로 사회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모두 여섯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예일대학과 하버드 대학, 그리고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미국인들조차 혀를 내두르며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가정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 가정을 그토록 놀라운 가정으로 만들었겠습니까
기자의 질문에 아내인 전 박사는 흥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새벽식탁”이었습니다. 고 박사가 매일 새벽 3시 52분이면 롱아일랜드 대학에 출강하기 위해 새벽 기차를 타야 했답니다. 때문에, 자녀들과 함께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새벽 3시면 온 자녀들이 아버지와 함께 새벽식탁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에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녀들을 축복하며 기도해 주었습니니다. 결국 그것이 그 가정을 살리는 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에 메마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 말씀의 은혜가 있고, 가정에 부모님의 자녀를 향한 축복된 기도가 있고, 온 가족이 여호와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가정은 반드시 축복된 가정이 될 줄로 믿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우선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두번째로 얽혀진 가정 회복의 첫 단추는 “진정한 대화 회복”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합니다.
미국에서 조사된 한 통계에 따르면 비교적 자아상이나 삶의 모습이 건강한 부부의 경우, 하루에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고작 10분에 불과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것도 아주 건강한 부부에 한해서입니다. 결국 대부분의 부부는 하루에 채 10분도 정말 마음을 여는 대화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시면,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 아픔이 오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시작된 현상이 바로 “대화의 단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담과 하와에게 있었던 대화의 단절은 서로를 원망하기 시작하고, 또 서로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기 시작하는데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창세기 3장 12절입니다.
“아담이 가로되 여호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그러니까 남편은 바로 “저 여자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편이 그렇게 말하면 아내는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래요.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그럽니까 아닙니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흥 내가 이렇게 된 게 누구 때문인데... 당신만 안 만났어도 내 신세가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대화의 악순환을 살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한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대화는 결혼생활에 있어서 혈관과도 같은 것입니다. 혈관이 막히면 동맥경화증이 유발되고 각종 성인병에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화가 막히면 가정에 각종 문제들이 찾아오기 시작하고, 가정은 서서히 그 기능이 마비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부부가 어떻게 하면 대화를 잘할 수 있겠습니까
(1) 먼저 서로가 서로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것”이 대화의 열쇠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가 원하는 바가 다릅니다. 여자는 남편에게 부드러운 보살핌을 받으며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늘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따라서 좋은 남편이 되는 지름길은 아내를 향해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을 여러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밖에 부슬부슬 비가 오기라도 하면 “당신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고, 또 날씨가 좋으면 “이 멋진 날 당신과 함께 바람이나 쐬러 갔으면 좋겠다”고 한마디만 해 줘도 아내의 마음은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또 맛있는 음식을 밖에서 먹고 왔으면 “아 그 음식 참 맛있더라. 그런데 그거 여보랑 먹으면 같이 정말 더 맛있었을 것이라”고 한 마디만 잘해도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사랑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의 고민은 무엇인줄 아십니까 정말 남편이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아내들이 자신의 남편에게 “당신, 나 사랑하는 거 맞아요 날 사랑하는 사람 같지가 않아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들으면 남편들은 “난 분명히 아내를 사랑하고 있다”고 항변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남편은 분명히 아내를 사랑하고 있다는데 왜 아내는 그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겠습니까
게리 체프먼이 지은5가지 사랑의 언어라는 책에 보면 사랑에도 언어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는 사랑의 언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배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사랑을 표현해야만 나의 배필이 내 사랑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자의 사랑언어는 무엇인줄 아십니까 관심과 배려와 염려가 사랑의 언어입니다.
그렇다면 남자의 사랑언어는 무엇인줄 아십니까 남자는 인정과 격려와 신뢰와 칭찬이 남자의 사랑언어입니다. 가솔린이 자동차를 움직이는 연료라면, 칭찬과 인정하는 말은 남편을 움직이는 열쇠가 됩니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남자는 자기를 인정해 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건다. ”
저는 운전솜씨가 조금 과격한 편입니다. 아마도 제 급한 성격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제 아내가 제게 “저는 여보 차만 타면 마음이 편해져요” 그러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날 제가 어떻게 운전 했는줄 아십니까 “완전 규정속도로, 얼마나 안전 운행했는지 모릅니다. ” 그런데 제 아내가 만약에 ‘여보는 운전 솜씨가 왜 그 모양이냐’고 그랬다면 저는 목사인데도 ‘그래 맛 좀 봐라’ 그러면서 운전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내가 남편에게 “당신 참 멋있어요. 난 당신을 믿어요. 난 당신만 있으면 되요. 괜찮아요. 당신은 잘 해내고 있어요” 이런 인정하는 말을 통해서 남자들은 자신이 가족에 존재하고 있는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남편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심리 상태는 자기가 가정에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이라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2) 그리고 또 부부가 대화를 잘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서로의 말을 마음으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대화를 잘한다는 것은 말을 잘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대화를 잘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래서 좋은 대화를 위해서 많은 가정 상담가들이 주장하는 것은 “무조건 들어 주라”는 것입니다.
한번은 어떤 책에 보니까 여자에게는 남자가 가지지 않은 세포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수다를 떠는 세포”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얘기를 할 때 서론부터 결론까지 가는데 한참 걸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자의 인내심이 그것을 들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 남편이 뭐라고 말합니까 “그런데 결론이 뭐야 요점만 말해”
여러분, 대화를 잘하고 싶으십니까 마음을 열어 배우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배우자의 사랑언어를 이해하십시오.
(3) 그리고 좋은 대화를 위한
세번째 원칙은 말투를 바꾸라는 것입니다.
같은 말을 해도 성내는 것처럼 말하거나 짜증 섞인 투로 말하는 사람과는 도무지 대화하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 부부 사이에 국제평화나 남북 통일에 관해서 얘기 하다가 싸우는 것 보셨습니까 거의 대부분은 말꼬투리 때문에 싸우게 됩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애들을 어떻게 교육시켰길래 애들이 저 모양이냐고” 그러면 아내가 뭐라고 그럽니까 “애들 교육은 아내가 혼자 하는 겁니까” 그러면 남편이 뭐라고 그럽니까 “당신이 집에서 하는 게 뭐 있어. ” 그러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또 어떤 가정에서는 “당신은 왜 맨날 그 모양이야” “당신은 왜 항상 그래” 그러면 “항상” “항상” 그런 말 쓰지 말아요. 그러면서 이러한 조그만 말투가 싸움의 주된 요인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말투의 문제를 어떻게 고칠 수 있습니까
말투의 문제는 고치려는 본인의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 가족들의 협조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당사자가 노력하고 있다면 너그러운 마음을 먹고 그것을 문제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해서 가정에서 대화의 문제만 해결된다고 해도 가정 안에는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놀라운 행복이 쏟아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세번째로 가정 회복은 부부가 “성경적인 부부 사명”을 회복할 때 더욱 온전케 됩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하와를 지으셨을 때 하와를 하와로 부르지 않으시고 다른 호칭으로 부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2장 18절을 읽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하와를 뭐라고 부르셨습니까 “돕는 배필”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또 창세기 2장 20절을 보십시오.
“아담이 모든 육축에게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또 하와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이번에도 하와를 하와로 부르지 않고 “돕는 배필”이라고 부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와라는 이름은 누가 붙여준 이름입니까
창세기 3장 20절을 보십시오.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곧 하와라는 이름은 아담이 지어준 이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하와를 하와라고 부르시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돕는 배필”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내의 사명을 알 수 있습니다. 아내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남편을 “돕는 자로 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선을 보는데 남자가 30분이나 늦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늦게 나타난 남자를 가만히 살펴보니까 몸은 온통 땀에 절어 있고 와이셔츠는 바지춤에서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기가 막히면서도 갑자기 “내가 저 사람의 와이셔츠를 평생 집어 넣어 줘야 겠다”는 결심이 서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남자는 바지춤이 빠져나온 와이셔츠 때문에 결혼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바로 돕는 배필의 모습입니다.
물론 돕는 배필은 단지 조수로서의 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자가 영적으로 바로 설 수 있도록 “옆에서 호위하고, 돕고, 지키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돕는 배필은 오히려 남편보다 더 나은 영적 실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결점이 보이면 “왜 내가 저런 사람하고 결혼했냐 내가 눈이 삐었지”라고 할 것이 아니라 “바로 저런 모습 때문에, 그에게 내가 필요하다. 내가 채워줘야지”라고 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돕는 배필의 사명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편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베드로전서 3장 7절 말씀입니다.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곧 한마디로 말해서 남편의 사명은 아내를 귀히 여기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아내는 생명의 은혜를 함께 유업으로 받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교회안에서 만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화제가 되어서 TV에도 몇 번 방영된 “두란노 아버지 학교”라는 가정 회복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두란노 아버지학교 운동 본부장으로 계신 김성묵 장로님의 책그 남자가 원하는 여자, 그 여자가 원하는 남자라는 책을 보니까 두란노 아버지 학교에서는 아내를 “집사람”으로 부를 것이 아니라 꼭 “아내”라고 부를 것을 권면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읽어보니까 참 맞는 말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내라는 말은 “안해”라는 말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남편이 양말 좀 갖다 달라고 하니까 “당신은 손이 없어요. 발이 없어요. 나 안해요”라는 뜻에서 “안해”가 아니라 “집 안에 있는 태양” “우리 집에 해와 같은 존재”라는 뜻에서 “안해” “아내”를 그렇게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아내라는 말의 안해라는 말의 어원은 따로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멋있습니까 아내를 부르면서 아내를 “당신은 우리 집의 태양”입니다. “당신이 없다면 우리 집은 너무나도 어두울 것입니다. ”라는 뜻에서 남편들이 아내를 그렇게 부른다면 남편들이 아내를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달라지겠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내는 남편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합니까
아내가 남편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것은 남편의 영어 표현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남편을 영어로 뭐라고 그럽니까 남편을 “husband”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husband”라는 말에서 “hus”는 “house”에서 나온 말이고 “band”라는 말은 “울타리”라는 뜻입니다. 즉 남편은 “house band”곧 가정의 울타리인 것입니다.
그러면 보세요. 아내는 남편을 향하여 “당신은 우리 가정의 울타리입니다. 힘내세요” 그러고 남편은 아내를 향하여 “당신은 우리 가정의 해와 같은 존재입니다. 사랑해요”라고 말한다면 그 가정의 모습이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상상만 해도 흥분되지 않습니까
저는 이제 5월 19일 월요일부터 우리교회에 오셔서 말씀 전해 주실 송길원 목사님의 책나는 해피홈으로 간다는 책에 나온 가정의 다짐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며 이 말씀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 아빠의 다짐
1. 아빠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아이들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임을 믿는다.
2. 일 중독증에 빠져 “아빠”가 “바빠”가 되고 “바빠”가 “나빠”가 되지 않기로 한다.
3. 많은 역할과 신분 가운데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家長(‘가’정에서의 제사‘장’)임을 잊지 않는다.
※ 엄마의 다짐
1. 자녀들에게 가장 큰 보약은 엄마 아빠의 사랑하는 모습외에는 없음을 자각한다.
2.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격려하되 이들을 노엽게 하지 않기로 작정한다.
3.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세상을 다 돌볼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말을 명심하여 가정에서 아내됨과 어머니됨을 최고의 영예로 안다.
바라기는 여러분의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되고, 참된 대화가 회복되며, 부부 서로에게 향한 성경적 사명이 회복되어 여러분의 가정에서부터 작은 천국의 삶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또 어떤 부부는 “바꾸어 봐야 그놈이 그놈이야”라고 말했답니다.
여러분, 우리의 가정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우리나라 통계청의 보도자료에 의하면 2001년에 이르러 우리나라에 1년동안 혼인건수가 32만 건이 있었던 것에 비해 이혼건수는 13만 5천건이나 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에 평균 877쌍이 결혼했고 또 하루에 370쌍이 이혼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세 쌍이 결혼하면 한 쌍 이상은 이혼하는 시대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가정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1970년대에 조사한 통계에 비하면 무려 10배나 증가한 수치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예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10배라는 수치안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정들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가정이 흔들리는 시대가 되자, 이런 말까지 나왔다는 것입니다. “결혼이란 ‘결’국 ‘혼’자되는 것이다. ”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사람은 왜 결혼하는가 판단력이 부족해서이다. 그러면 왜 이혼하는가 인내력이 부족해서이다. 그렇다면 또 재혼은 왜 하는가 기억력이 부족해서이다. ”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생각 속에 “가정”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가정은 인간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설계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이디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67편 6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은 고독한 자로 가속 중에 처하게 하시며”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가속”이란 가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의 고독을 치유하는 해결책으로 가정이라는 선물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보시면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을 보시고, 독처하는 것을 보시고, 좋지 않게 여기신 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또 아담을 위해서 그의 아내 하와를 지어주신 분도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정은 인간이 만든 어떤 유한한 단체나 클럽 혹은 계 모임 정도가 아니라,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설계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이디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하십니다.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이디어다”
그렇다면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설계하신 우리의 가정이, 주님 계획하신 아름다운 가정상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가정 회복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회복”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것을 거꾸로 말하자면 남편과 아내가, 그리고 부모와 자녀들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바른 영적 관계를 회복하면 그 가정도 반드시 회복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 가정에는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달콤한 사랑의 고백이 날마다 있었습니다.
창세기 2장 23절입니다.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그러니까 아담이 하와를 아주 “찐하게” 껴안으면서, “오, 당신은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군요”라고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여러분, 이때 하와가 뭐라고 그랬을까요 제가 곰곰히 묵상해 보니까 이랬을 것 같습니다. “에이, 몰라이” 그러면서 오히려 더 품에 안겼을 것입니다. 또 아담이 “저는 당신만을 사랑해요”라고 말하면 하와도 “저도 당신뿐이예요”라고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에 보면 이 아름다운 가정에 크나큰 아픔이 찾아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아픔의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먼저는 서로를 부끄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서로를 원망하는 단계까지 나아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부부가 신혼초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당신 없이는 못살아”라는 말이랍니다. 그런데 1년만 지나도 “정말 못 살기는 못살겠는데 당신 때문에 못살아” 그런답니다.
어쨌든 그렇다면 이렇게 아름다웠던 아담의 가정이 서로 원망하고 상처를 주는 가정으로 바뀌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무엇이 그들의 가정을 깨어지게 했습니까 바로 그들이 지은 “죄” 때문입니다.
여러분, “죄”는 그냥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죄는 그냥 쉽게 모른 척하고 넘길 문제가 아닙니다. “죄”는 여호와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를 갈라 놓았습니다. 그 결과 인간과 인간, 그리고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마저도 갈라지게 만들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가정이 진정으로 회복되려면 가장 먼저 이 죄로 인해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깨어진 아내와 깨어진 남편의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여호와 하나님과 우리 자신과의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가정 회복의 첫걸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저는 정말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고, 또 남편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면 그 가정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무리 가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도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또 남편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 가정은 반드시 회복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또한 아내가 가정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고, 또 남편도 정말 가정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면 그 가정은 복이 있는, 놀라운 가정이 될 것을 믿습니다.
1984년 미국무성 교육부는 가장 모범된 가정 하나를 뽑아서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은 미국의 백인 가정도, 유태인 가정도 일본인 가정도 아니었습니다. 뜻밖에도 한국인 가정이 뽑혔습니다. 바로 고광림, 전혜성 박사 부부였습니다. 고광림 박사는 서울대학에서 최연소 법학 교수였을 뿐만 아니라, 주미공사를 지낸 사람이었습니다. 무려 다섯 개 부분의 학위를 가졌고 그 부인 전혜성 박사는 예일대학의 교수로 사회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모두 여섯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예일대학과 하버드 대학, 그리고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미국인들조차 혀를 내두르며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가정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 가정을 그토록 놀라운 가정으로 만들었겠습니까
기자의 질문에 아내인 전 박사는 흥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새벽식탁”이었습니다. 고 박사가 매일 새벽 3시 52분이면 롱아일랜드 대학에 출강하기 위해 새벽 기차를 타야 했답니다. 때문에, 자녀들과 함께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새벽 3시면 온 자녀들이 아버지와 함께 새벽식탁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에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녀들을 축복하며 기도해 주었습니니다. 결국 그것이 그 가정을 살리는 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에 메마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 말씀의 은혜가 있고, 가정에 부모님의 자녀를 향한 축복된 기도가 있고, 온 가족이 여호와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가정은 반드시 축복된 가정이 될 줄로 믿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우선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두번째로 얽혀진 가정 회복의 첫 단추는 “진정한 대화 회복”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합니다.
미국에서 조사된 한 통계에 따르면 비교적 자아상이나 삶의 모습이 건강한 부부의 경우, 하루에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고작 10분에 불과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것도 아주 건강한 부부에 한해서입니다. 결국 대부분의 부부는 하루에 채 10분도 정말 마음을 여는 대화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시면,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 아픔이 오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시작된 현상이 바로 “대화의 단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담과 하와에게 있었던 대화의 단절은 서로를 원망하기 시작하고, 또 서로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기 시작하는데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창세기 3장 12절입니다.
“아담이 가로되 여호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그러니까 남편은 바로 “저 여자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편이 그렇게 말하면 아내는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래요.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그럽니까 아닙니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흥 내가 이렇게 된 게 누구 때문인데... 당신만 안 만났어도 내 신세가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대화의 악순환을 살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한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대화는 결혼생활에 있어서 혈관과도 같은 것입니다. 혈관이 막히면 동맥경화증이 유발되고 각종 성인병에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화가 막히면 가정에 각종 문제들이 찾아오기 시작하고, 가정은 서서히 그 기능이 마비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부부가 어떻게 하면 대화를 잘할 수 있겠습니까
(1) 먼저 서로가 서로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것”이 대화의 열쇠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가 원하는 바가 다릅니다. 여자는 남편에게 부드러운 보살핌을 받으며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늘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따라서 좋은 남편이 되는 지름길은 아내를 향해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을 여러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밖에 부슬부슬 비가 오기라도 하면 “당신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고, 또 날씨가 좋으면 “이 멋진 날 당신과 함께 바람이나 쐬러 갔으면 좋겠다”고 한마디만 해 줘도 아내의 마음은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또 맛있는 음식을 밖에서 먹고 왔으면 “아 그 음식 참 맛있더라. 그런데 그거 여보랑 먹으면 같이 정말 더 맛있었을 것이라”고 한 마디만 잘해도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사랑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의 고민은 무엇인줄 아십니까 정말 남편이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아내들이 자신의 남편에게 “당신, 나 사랑하는 거 맞아요 날 사랑하는 사람 같지가 않아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들으면 남편들은 “난 분명히 아내를 사랑하고 있다”고 항변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남편은 분명히 아내를 사랑하고 있다는데 왜 아내는 그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겠습니까
게리 체프먼이 지은5가지 사랑의 언어라는 책에 보면 사랑에도 언어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는 사랑의 언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배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사랑을 표현해야만 나의 배필이 내 사랑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자의 사랑언어는 무엇인줄 아십니까 관심과 배려와 염려가 사랑의 언어입니다.
그렇다면 남자의 사랑언어는 무엇인줄 아십니까 남자는 인정과 격려와 신뢰와 칭찬이 남자의 사랑언어입니다. 가솔린이 자동차를 움직이는 연료라면, 칭찬과 인정하는 말은 남편을 움직이는 열쇠가 됩니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남자는 자기를 인정해 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건다. ”
저는 운전솜씨가 조금 과격한 편입니다. 아마도 제 급한 성격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제 아내가 제게 “저는 여보 차만 타면 마음이 편해져요” 그러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날 제가 어떻게 운전 했는줄 아십니까 “완전 규정속도로, 얼마나 안전 운행했는지 모릅니다. ” 그런데 제 아내가 만약에 ‘여보는 운전 솜씨가 왜 그 모양이냐’고 그랬다면 저는 목사인데도 ‘그래 맛 좀 봐라’ 그러면서 운전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내가 남편에게 “당신 참 멋있어요. 난 당신을 믿어요. 난 당신만 있으면 되요. 괜찮아요. 당신은 잘 해내고 있어요” 이런 인정하는 말을 통해서 남자들은 자신이 가족에 존재하고 있는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남편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심리 상태는 자기가 가정에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이라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2) 그리고 또 부부가 대화를 잘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서로의 말을 마음으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대화를 잘한다는 것은 말을 잘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대화를 잘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래서 좋은 대화를 위해서 많은 가정 상담가들이 주장하는 것은 “무조건 들어 주라”는 것입니다.
한번은 어떤 책에 보니까 여자에게는 남자가 가지지 않은 세포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수다를 떠는 세포”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얘기를 할 때 서론부터 결론까지 가는데 한참 걸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자의 인내심이 그것을 들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 남편이 뭐라고 말합니까 “그런데 결론이 뭐야 요점만 말해”
여러분, 대화를 잘하고 싶으십니까 마음을 열어 배우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배우자의 사랑언어를 이해하십시오.
(3) 그리고 좋은 대화를 위한
세번째 원칙은 말투를 바꾸라는 것입니다.
같은 말을 해도 성내는 것처럼 말하거나 짜증 섞인 투로 말하는 사람과는 도무지 대화하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 부부 사이에 국제평화나 남북 통일에 관해서 얘기 하다가 싸우는 것 보셨습니까 거의 대부분은 말꼬투리 때문에 싸우게 됩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애들을 어떻게 교육시켰길래 애들이 저 모양이냐고” 그러면 아내가 뭐라고 그럽니까 “애들 교육은 아내가 혼자 하는 겁니까” 그러면 남편이 뭐라고 그럽니까 “당신이 집에서 하는 게 뭐 있어. ” 그러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또 어떤 가정에서는 “당신은 왜 맨날 그 모양이야” “당신은 왜 항상 그래” 그러면 “항상” “항상” 그런 말 쓰지 말아요. 그러면서 이러한 조그만 말투가 싸움의 주된 요인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말투의 문제를 어떻게 고칠 수 있습니까
말투의 문제는 고치려는 본인의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 가족들의 협조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당사자가 노력하고 있다면 너그러운 마음을 먹고 그것을 문제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해서 가정에서 대화의 문제만 해결된다고 해도 가정 안에는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놀라운 행복이 쏟아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세번째로 가정 회복은 부부가 “성경적인 부부 사명”을 회복할 때 더욱 온전케 됩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하와를 지으셨을 때 하와를 하와로 부르지 않으시고 다른 호칭으로 부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2장 18절을 읽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하와를 뭐라고 부르셨습니까 “돕는 배필”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또 창세기 2장 20절을 보십시오.
“아담이 모든 육축에게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또 하와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이번에도 하와를 하와로 부르지 않고 “돕는 배필”이라고 부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와라는 이름은 누가 붙여준 이름입니까
창세기 3장 20절을 보십시오.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곧 하와라는 이름은 아담이 지어준 이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하와를 하와라고 부르시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돕는 배필”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내의 사명을 알 수 있습니다. 아내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남편을 “돕는 자로 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선을 보는데 남자가 30분이나 늦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늦게 나타난 남자를 가만히 살펴보니까 몸은 온통 땀에 절어 있고 와이셔츠는 바지춤에서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기가 막히면서도 갑자기 “내가 저 사람의 와이셔츠를 평생 집어 넣어 줘야 겠다”는 결심이 서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남자는 바지춤이 빠져나온 와이셔츠 때문에 결혼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바로 돕는 배필의 모습입니다.
물론 돕는 배필은 단지 조수로서의 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자가 영적으로 바로 설 수 있도록 “옆에서 호위하고, 돕고, 지키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돕는 배필은 오히려 남편보다 더 나은 영적 실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결점이 보이면 “왜 내가 저런 사람하고 결혼했냐 내가 눈이 삐었지”라고 할 것이 아니라 “바로 저런 모습 때문에, 그에게 내가 필요하다. 내가 채워줘야지”라고 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돕는 배필의 사명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편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베드로전서 3장 7절 말씀입니다.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곧 한마디로 말해서 남편의 사명은 아내를 귀히 여기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아내는 생명의 은혜를 함께 유업으로 받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교회안에서 만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화제가 되어서 TV에도 몇 번 방영된 “두란노 아버지 학교”라는 가정 회복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두란노 아버지학교 운동 본부장으로 계신 김성묵 장로님의 책그 남자가 원하는 여자, 그 여자가 원하는 남자라는 책을 보니까 두란노 아버지 학교에서는 아내를 “집사람”으로 부를 것이 아니라 꼭 “아내”라고 부를 것을 권면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읽어보니까 참 맞는 말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내라는 말은 “안해”라는 말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남편이 양말 좀 갖다 달라고 하니까 “당신은 손이 없어요. 발이 없어요. 나 안해요”라는 뜻에서 “안해”가 아니라 “집 안에 있는 태양” “우리 집에 해와 같은 존재”라는 뜻에서 “안해” “아내”를 그렇게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아내라는 말의 안해라는 말의 어원은 따로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멋있습니까 아내를 부르면서 아내를 “당신은 우리 집의 태양”입니다. “당신이 없다면 우리 집은 너무나도 어두울 것입니다. ”라는 뜻에서 남편들이 아내를 그렇게 부른다면 남편들이 아내를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달라지겠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내는 남편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합니까
아내가 남편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것은 남편의 영어 표현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남편을 영어로 뭐라고 그럽니까 남편을 “husband”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husband”라는 말에서 “hus”는 “house”에서 나온 말이고 “band”라는 말은 “울타리”라는 뜻입니다. 즉 남편은 “house band”곧 가정의 울타리인 것입니다.
그러면 보세요. 아내는 남편을 향하여 “당신은 우리 가정의 울타리입니다. 힘내세요” 그러고 남편은 아내를 향하여 “당신은 우리 가정의 해와 같은 존재입니다. 사랑해요”라고 말한다면 그 가정의 모습이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상상만 해도 흥분되지 않습니까
저는 이제 5월 19일 월요일부터 우리교회에 오셔서 말씀 전해 주실 송길원 목사님의 책나는 해피홈으로 간다는 책에 나온 가정의 다짐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며 이 말씀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 아빠의 다짐
1. 아빠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아이들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임을 믿는다.
2. 일 중독증에 빠져 “아빠”가 “바빠”가 되고 “바빠”가 “나빠”가 되지 않기로 한다.
3. 많은 역할과 신분 가운데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家長(‘가’정에서의 제사‘장’)임을 잊지 않는다.
※ 엄마의 다짐
1. 자녀들에게 가장 큰 보약은 엄마 아빠의 사랑하는 모습외에는 없음을 자각한다.
2.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격려하되 이들을 노엽게 하지 않기로 작정한다.
3.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세상을 다 돌볼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말을 명심하여 가정에서 아내됨과 어머니됨을 최고의 영예로 안다.
바라기는 여러분의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되고, 참된 대화가 회복되며, 부부 서로에게 향한 성경적 사명이 회복되어 여러분의 가정에서부터 작은 천국의 삶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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