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TOP
DOWN

[가정] 아담과 하와의 가정

본문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가정이란 어쩌다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가정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인류의 시조로 만드시고 또한 가정의 시조로 삼으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담과 하와만큼 인류의 역사상 가장 행복한 결혼식을 올린 사람이 없을 것이며, 이 땅에서 아담 하와만큼 행복하고 잘 어울리는 부부가 없었을 것이란 점입니다. 이들의 결혼식 주례는 누가 하셨습니까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하셨습니다. 이 결혼식 하객들은 누구였습니까 에덴 동산의 모든 짐승들과 새들과 그리고 나무들과 꽃과 풀들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신혼 여행을 갈 필요도 없었습니다. 거기가 세상에서 제일로 아름다움 곳이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가장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부부이었습니다. 온전하게 만들어진 인간들이었으니 완벽한 조화와 완벽한 미가 흐르는 관계였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시기도, 질투도, 다툼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배고픔도, 아픔도 없었습니다. 완벽한 남녀가 만나서 완벽한 동산에서 사랑을 나누고 살았으니 이보다 더 어울리는 부부가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무엇이든지 희생할 수 있고, 무엇이든 이해할 수 있고, 무엇이라도 참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목사로서 결혼식 주례를 자주 하면서 목사가 주례하고 이혼하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현재 세 쌍 중에 한 쌍이 이혼을 하고 있습니다. 머지 않아 우리도 미국처럼 이혼율이 50%에 육박할 가능성이 큽니다. 러시아는 무려 70-80%가 이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제가 주례하고 이혼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인들을 살펴볼 때 가정들이 비교적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감사헌금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살아주어서 고마워서 말입니다. 오늘 날 가정이 파괴되고 무너지는 것은 가정의 본래 의미를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가정을 살펴보고 우리 가정에 그 본래 의미를 잃었다면 그 의미를 회복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부를 만들어주신 이유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본문 18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여 서로 위로하고 위로 받으며 살라고 부부를 만들어 준 것입니다. 가정이 출세의 출발도 되고 목적도 될 것입니다. 또 가정이 종족을 보존하게 하는 자리가 되어야 하고 또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정의 시작이 아니고 또 가정이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서로 위로하고 위로 받으며 살라는 것입니다. 비록 가정에 돈이 있고, 자식이 있고, 집과 좋은 가구와, 그리고 성공이 있다고 해도 부부가 서로 위로하는 관계가 아니라면 그 가정은 병든 가정이요 문제가 있는 가정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에서 두 가지를 알 수 있다고 봅니다.
먼저는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가정이 없으면 고독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좋은 에덴동산에서 살고 있었는데도 혼자 있는 것이 외로웠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에덴동산에서도 혼자 있는 것이 고독하였다는 것을 보면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부부가 없으면 고독하다는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혼자는 고독한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경치를 구경해도 혼자는 고독합니다. 저는 아름다운 곳에 혼자 있으면 더 고독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세상에 부부처럼 좋은 인간관계, 부부처럼 좋은 제도, 부부처럼 좋은 선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바가지쟁이 아내를 불평하는 남자에게 홀아비 친구가 말하기를 "여보게 나는 그렇게 바가지 긁은 부인이라도 기다려줄 아내가 있으면 좋겠네!"라고 하더랍니다. 병석에서 누워 있는 남편을 불평하는 여자에게 옆에 있는 한 홀어미가 말하기를 "나는 그런 남편이라도 집에 있기만 하면 좋겠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요즈음 미국 국민은 물론 세계가 전 미국 대통령 레이건의 부인 낸시에 대하여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레이건은 소위 치매에 걸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고 있고 자신이 전에 대통령이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기자가 낸시에게 "지금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알츠하이머병은 진정 길고도 긴 이별이지요. 하지만 이 이별은 내게 있어 우리가 함께 하는 삶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비록 지금 매우 힘들고 어려워도 나는 이 순간들을 어느 것과도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부부란 근본적으로 조화 있게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고 하기도 하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결혼하지 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결혼을 통하여 위로를 받기보다 오히려 힘을 상실하고 절망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원래 여호와 하나님이 만드신 부부는 갈등이 없고 아름답고 위로만 넘치는 상태로 만들어주셨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여자와 남자는 근본적으로 달라서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려는 자가 주려는 것과 받으려는 자가 받으려고 하는 것이 서로 모순 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래 여호와 하나님이 만드신 부부는 행복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부부가 진정으로 행복한 부부는 결혼 한 후에 시간이 흐를수록 행복의 농도가 짙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은 처음에는 뜨겁게 사랑하는데 갈수록 그 사랑이 식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래 여호와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의 모습을 유지하면 세월의 흐름 따라 행복도가 더 높아져야 합니다. 세월이 흘러 상대를 더 알면 알수록 그 사랑의 농도도 더 짙어져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왜 결혼 초에는 사랑하다가도 살면 살수록 그 사랑이 식어질까요 사랑에 대한 오해 때문이요 그리고 사랑의 이기심 때문입니다. 사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할 때 사랑의 주체는 "나"요 사랑의 대상은 "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말이 가능하려면 나도 잘 알아야 하고 너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나를 모르고 더욱이 너를 모르니 모르는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사랑한다는 말이 됩니다. 사실 너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정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나를 사랑하는데 너를 필요로 하고 너를 이용한다는 말이 더 맞을 지도 모릅니다. 정말로 너를 사랑한다면 너를 알아야 할 것이고, 그리고 너를 알면 알수록 그 사랑이 더 깊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알면 알수록 사랑이 식어지고 그 농도가 떨어진다면 바로 그것은 이기심 때문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데 너를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갈등 많은 부부 중에 남편이 상담자를 찾아왔습니다. 첫마디가 이혼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상담자가 "이혼하고 싶으면 마땅히 해야죠"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오히려 화를 내면서 "아니 그렇게 말하는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설득해서라도 이혼을 하지 않도록 해주셔야지요"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그렇게 이혼을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마십시오. "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이혼을 하고 싶어졌는지 말해 보라"고 하였더니, 핵심은 이렇습니다. 아내가 결혼 전에는 청순하고 순종도 잘 하더니 결혼생활 5년이 지난 지금에는 남편에게 너무나 함부로 대한다는 것입니다. 집안은 늘 엉망이고 자신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을 높여줄 줄 모르고 무엇이든지 내 잘못이라고 핀잔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야기 도중에 갑자기 자기 아내와 자기 회사에 한 여직원과 비교하여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녀는 얼마나 여성스럽고 친절한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의논하면 잘 들어주고 적절한 충고도 해주고 심지어 격려도 해주는데 아내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상담자는 알았습니다. 그의 부인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그러나 바로 그 남편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자기 아내와 견줄만한 다른 사람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 속에 먼저 다른 여자를 제거하도록 상담을 하여 치료하였다는 얘기입니다.
부부관계는 무인도에 둘이 만 살고 있는 것처럼 인식해야 합니다. 무인도에 둘만이 있는데 누구와 이야기할 것이며 누구에게 도움을 구할 것이며 누가 누구를 도울 것입니까 오직 부부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관계와 부부관계는 다른 것입니다. 바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둘이 만 살던 그 생활이 부부관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둘이 만 있었습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단 둘이서 살았습니다. 거기에는 친구도 없고, 부모도 없고, 자식도 없었습니다. 오직 둘이서만 살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이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의지하고 도와주고 일평생같이 동반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부부입니다. 세상에 나의 배필은 오직 한 사람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아무도 없는 곳에 둘이 만 있어도 행복한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자식이 있어도 친구가 있어도 부부가 없으면 안 된다고 말입니다. 모든 문제는 부부가 같이 나누고 같이 해결해야 합니다.
헨리 포드 부부가 금혼식 기념 축하회를 가졌는데 그 때 한 기자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의 결혼생활을 50년 동안 성공적으로 살아 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포드는 한 마디로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 비결은 내가 자동차를 만들 때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비결이라네. 오직 한 모델만을 고집하는 것이라네". 이 세상에는 아내 외에 다른 모델을 가지면 불행해집니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남자를 꽁생원이라고 말하는 여자들이 있는데 그 마음속에 다른 남자와 비교하는 생각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그것을 버리지 않으면 불행합니다.
우리가 부모와 자식 사이를 일촌이라고 하고, 형제들의 자식과는 삼촌이라고 하고, 그 자녀들끼리는 사촌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부부는 무촌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무촌은 나뉠 수 없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일심동체라고 말합니다. 한 사람이 불행해지면 같이 불행해지고, 한 사람이 행복해지면 함께 덩달아 행복해지는 것이 부부입니다. 그러므로 너를 행복하게 만들어서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 부부입니다. 이것은 행복의 비밀입니다. 결혼생활이 행복을 보증해 주지 못하지만 그러나 행복한 마음은 결혼생활을 보증해 줄 수 있습니다.
여기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는 말에는 정신적 의미와 육체적 의미가 다 있다고 봅니다. 부부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육체적 의미로만 부부가 이어오면 늙어서는 소 닭 보듯이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부부가 정신적 사랑만 나눈다고 하면 굳이 결혼을 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실질적으로 부부가 성생활이 불만족해서 이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결혼에서 성적 의미는 큽니다. 그러나 정신적 사랑을 나누지 않으면서 성에 대한 관심과 정보와 지식이 아무리 높아져도 결국 성 문제로 이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신적 사랑을 나누는 부부는 그것이 육체적 사랑의 깊이를 더하지만 그러나 육체적 문제로 이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늙으면 대화하는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부부의 모습에서 그 대화가 중단된 시간은 결혼한 연수와 비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결혼한지 10년이 지나면 10분간 말을 안하고, 결혼한지 30년이 지나면 30분간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부부는 위로하고 위로 받는 부부가 제일로 좋은 것입니다. 이삭을 보십시오. 어머니를 잃고 아내를 얻어 위로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모친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모친 상사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창 24:67)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하와를 아담의 갈비뼈로 만드셨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21절).
여호와 하나님께서 남자의 갈비뼈를 취하여 하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남자와 여자의 논쟁 거리가 아주 많습니다. 남자들이 그것을 가지고 남자의 우월성을 나타내려 합니다. "여자들이 까불어도 남자의 갈비뼈에 불과하다. "고 말합니다. 그러면 여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남자와 여자는 재료가 다르다. 남자는 흙으로 만들었고, 여자는 뼈로 만들었으니 그 재료가 다르다. 보아라 그릇도 흙으로 만든 것과 뼈로 만든 자기는 값이 다르지 않느냐"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이 잠들었을 때 그 갈비뼈를 취하여 하와를 만든 것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의 것을 도둑질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있던 사람이 "이 사람아! 도적놈이 도적질하고 그보다 더 좋은 물건을 놓고 가는 경우를 보았나" "고작해야 갈비뼈 하나 도적질하고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를 놓고 가셨으니 그런 도적이야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본문의 의미는 남녀는 동등하게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대등하게 창조하셨습니다. 많은 차이지만 그러나 인간으로 열등하지도 우월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에서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곧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전 11:3).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님이 차이가 있으면서도 동등하듯이 여자와 남자도 차이가 있지만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이 말하기를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에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 즉 여자라 칭하리라"(23절)고 한 것입니다. 아담은 여호와 하나님에게 계시를 받아서 화와가 자기 뼈로 만들어진 것과 자신의 분신이요 동등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냥 그녀를 보는 즉시 그녀가 자신의 분신이며 동등하며 배우자이고 보완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와는 아담의 모습에서 남편이 자기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확신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남편과 아내는 한 몸이기에 남편의 행동이 아내의 행동이고 아내의 행동이 남편의 행동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세르비아라는 사람이 말하기를 "남편의 인품은 아내의 표정으로 알 수 있고, 아내의 인품은 남편의 와이셔츠로 안다고 했습니다. " 그리고 배우자가 바로 나라는 사실을 알고 인정해야 하며, "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라는 확신이 있어야 하며,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만족을 주어야 합니다. 배우자에게 "어떤 기쁨을 줄까"를 늘 생각하고 만족을 주는 삶을 제일의 기쁨으로 여겨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제 아담이 하와를 향하여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23절) 했던 고백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부부는 상대를 높이며 살아야 합니다. 평소에도 부부를 높이며 사는 부부가 있고 내리 누르며 사는 부부도 있습니다. 어떤 부부는 "웬수 중에 웬수로다"라고 말하며 살아가는 부부가 많습니다. 자기 배필에게 욕하는 동물은 인간 밖에 없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서로서로 높이며 살라고 부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토마스 칼라일은 영국에서 가장 현명한 여인과 결혼했다고 말합니다. 부인은 남편을 존경했으며 칼라일 역시 다른 어떤 여인을 사랑한 일이 없었으며 부인만을 끔찍이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부인은 남편으로부터 듣고 싶은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칼라일은 나를 한 번도 칭찬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으면 그것으로 모든 게 제대로 되었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부인이 죽은 후에야 칼라일은 그 일기를 읽었다고 합니다. 그제야 자신이 아내에게 한 번도 칭찬을 해 본 일이 없다는 자신을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정치가 디즈레일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재상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부인의 내조 덕택이었습니다. 그 부인은 항상 뒤에서 그를 돕고 격려하고 지혜를 주었습니다. 어느 해 빅토리아 여왕이 디즈레일리에게 자작을 수여하고자 하였을 때 디즈레일리는 사양하며 말하였습니다. "제가 오늘까지 국가를 위하여 다소라도 공헌이 있다면 이것은 실로 제 아내의 공입니다. 제 아내에게 수여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디즈레일리가 아내보다 늦게 사망하였는데 그의 공적을 기려 국장으로 하려고 하였으나 고인의 유언대로 아내 옆에 묻혔다고 합니다.
첫 번째 가정은 에덴에 세워졌습니다. 에덴이란 여호와 하나님과 교제하는 곳으로 즐거움이 가득 해야 하고, 나아가 또 부부의 교제로 즐거워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도 에덴의 가정이 되기 바랍니다.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고전11:11-12)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