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가정을 구조하라
본문
설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는 정다운 시간을 모두들 가지고 돌아 오셨으리 라고 생각을 합니다.
특히 설 명절 목표는 "가족들에게 감동을"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아름다운 소식들이 들려 오고 있습니다.
어느 주부 목자가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감동스러웠던 설에 대한 소식을 긴급 타전하여 올려놓았습니다.
가족들이 모이면 설거지 한 번 잘 안 하시던 집사님께서 이번 설에는 내내 설거지로 섬기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것이 모인 가족들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가족은 제사를 없애고, 처음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너무 감격스러워 기도할 때, 눈물 바다가 되었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서로 섬기는 가족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지지 않습니까
자신을 녹이며, 자신의 에너지를 소비하며 사랑하는 가족들을 섬기는 일은 힘들고 고된 일이라기 보다는 기쁘고 즐거운 일이며, 감사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행복이고, 이것이 가족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가정을 구조하라"는 가정치유 세미나가 사랑의 교회에서 있었습니다. 기가연 소장이신 송길원목사를 비롯해서 김의식목사 등 우리나라 교계에서 내노라고 하는 가정상담 강사들이 강의를 하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지 말도 못합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오늘날 가정들이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혼가정을 비롯해서 중년가정 노부부의 이르기까지 가정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1999년도 통계청에 의하면 연간 혼인은 36만3000건으로 하루 평균 993쌍이 혼인을 하였다고 합니다.
반면에 연간 이혼은 11만 8000건으로 하루 평균 323쌍이 갈라선 것으로 보고를 하였습니다.
특히 15년 이상 동거부부 이혼비율이 지난 90년 11. 9%에서 99년 25. 9%로 대폭 상승 황혼이혼 풍조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고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가정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깨어지는 가정들이 늘어나고 있을 뿐만아니라,
깨어지지 않은 가정들이라고 할지라도 마치 지뢰를 밟고 있는 것과 같아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위기 상황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가정 폭력이 얼마나 심각한지 모릅니다.
- 매 맞는 아내와 자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 매 맞는 남편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 언어 폭력에 시달리는 아내와 자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 성폭력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부지기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고는 왜 이렇게 많습니까
설 연휴 기간에 일어난 일들만 보아도 알 수가 있습니다.
- 우리 교회 주부 목자가 돌보는 자매의 형님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아들은 중상을 입고 입원 중에 있습니다.
- 멀쩡하던 분이 갑자기 쓰러져서 뇌졸중으로 사망을 하였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고가 가정을 깨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가정들이 위기 속에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의 이 소중한 가정을 지켜 낼 수 있을까요
어떻게 위기 속에 있는 우리 가정을 구조할 수 있을까요
어떤 값을 지불하고도 대신할 수 없는 이 소중한 가정을...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가장 완벽한 가정의 그림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가장 완벽한 가정의 모습입니다.
2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남자와 그의 아내가 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부족함이라고는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는 가장 완벽한 그림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입니까
얼마나 멋진 그림입니까
그러나 반면에 3장에서 실패한 가정의 가장 완벽한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3: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에 두 사람의 눈이 열려 자기들이 벌거벗은 줄을 알고는 무화과나무 잎을 함께 엮어 자기들을 위해 치마를 만들었더라"
부끄러운 인간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가리려고 인간의 노력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무서워 숨는가 하면 책임을 면하기 위해 핑계를 되며, 서로의 책임을 전가하는 비굴한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떳떳하지 못한 인간의 모습이며, 깨어진 가정의 모습입니다.
숨길 것도 없는 부부 사이에 서로 숨기고, 가리고, 치장하고, 위장하는 이것이 드러날 때면 서로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떠넘기는 치졸한 인간의 모습 속에
서 위기를 맞고 있는 실패한 가정의 완벽한 그림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4장에서 가서는 이들이 자녀들이 인정받지 못하는 관계로 인해서 형이 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가정 안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그러나 이것은 바로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형제간의 살인이 아니라 부부간에도 살인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가정 완벽한 가정의 그림 속에서도 실패의 완벽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요소가 숨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가정이 깨어지기 전에 예방 사역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리 가정을 문제없어 !
설마 우리 가정에 !
그러나 여러분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가장 완벽한 가정의 샘플이었던 아담과 이브도 실패를 하였다면 우리도 실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 가정을 지켜야 하고,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 가정을 구조해야 하는 것입니다.
깨어지는 부부들에게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처음부터 생각을 하였습니까 라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을 할까요
그러면 어떻게 우리 위기에서 구조할 수 있을까요
첫째, 가정의 주권을 여호와 하나님께 두시기 바랍니다. (18,21절)
가정을 세우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을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의 필요를 한가지 보셨습니다.
그것은 가정이었습니다.
홀로 사는 것보다 함께 사는 것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가지셨던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섭리였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시고는 18절에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합당한 협력자를 만들리라"
하시고는 21-22절에서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갈비뼈 중에 서 하나를 취하여...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녀를 남자에게 데려오셨 다"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셨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것입니다.
가정이 허물어지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가정에 위기가 찾아오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가정에 주권이 여호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착입니다.
자신이 선택하였기에 버릴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자신의 감정이 좋았기에 선택하였으므로, 싫으면 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무서운 착각입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낳았다고 생각하기에 자녀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무서운 착각입니다.
사람들의 문제가 어디에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있습니다.
좋아하고 싶으면 좋아하고, 사랑하고 싶으면 사랑하고, 미워하고 싶으면 미워하고, 버리고 싶으면 버릴 수 있고, 때리고 싶으면 때릴 수 있다는 것이 무서운 생각이며, 무서운 이기심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가정의 주권이 여호와 하나님께 있다고 생각을 하면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내가 결정했다고 생각하기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면 내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군대 가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가고 싶어서 가는 사람들 별로 없습니다.
군대 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26개월간 가족과 사회를 떠나 군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그런 되도 탈영하는 사람 거의 없습니다.
자기가 원해서 간 것도 아니기에 자기가 원한다고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부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고 견디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가 지켜지고 나라가 구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입니다.
내가 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즉 그들이 더 이상 둘이 아니요 한 육체이니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마19:6)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은 절대적인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였다는 것을 알고 믿는 사람들은 그래서 철저히 가정을 지키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가정을 지킵니다. 지금 힘들고 어려운 것이 깨진 후에 힘들고 어려운 것보다 휠씬 더 낫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이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위기에서 구조하려면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지속적으로 사랑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23절)
23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브를 아담에게로 데려오시자 아담이 이브를 보고사랑을 고백하였습니다.
"이제 이것은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아담은 이브가 없는 자신의 존재를 잡 뼈로 여겼습니다.
이브가 없는 자신의 존재를 잡 살로 여겼습니다. (껍데기)
이것은 존재의 의미가 이브에게 있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만큼 아담은 깊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이브는 아담의 갈비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사랑에 빠지자 아담이 갈비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사랑은 이와 같이 상대를 현재 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게 되고, 가정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의 주권이 여호와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랑은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사랑을 고백하고 확인함으로서 가정은 세워지는 것입니다.
결혼 서약을 할 때, 사랑을 확인하고, 남편과 아내로 맞이할 것을 서약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부부가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할 책임이 있고, 의무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은 사랑의 고백에 근거를 두고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라고 하는 것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두 사람만에 사랑을 확인하며 살아가는 곳입니다.
사랑이 식어지고, 사랑이 변질되며, 사랑이 바뀌면 가정은 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사랑을 주고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의학계에 '마라스머스'라는 이상한 병이 있습니다.
이 병은 주로 전쟁 고아나 고아원에서 외롭게 자라는 어린이들에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증상은 신체발육이 부진하고 온몸에 힘이 빠진다고 합니다. 환자는 결국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맙니다. 이 병은 영양부족이나 병균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은 사랑의 결핍이라고 합니다. 부모의 품에 안겨 재롱을 부리고 어머니의 살내음을 맡아야 할 어린이가 그것을 전혀 누리지 못할 때 이 병은 나타난다고 합니다. 마음 속의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거나 남들로부터 전혀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마라스모스'와 유사한 병에 걸릴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의사들이 밝히는 이 병의 치료법은 너무도 간단합니다. "매일 사랑을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으 말 한 마디가 최상의 묘역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정이 죽지 않고 살아 향기를 뿜으려면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들과 깊은 사랑에 빠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도적으로 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그러면 가정을 깨뜨리는 질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사랑은 따듯한 말 한 마디와 섬김을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여보 잘 먹었어 !"
"여보 오늘 수고 많았어요 ! 힘들지요 오늘 그냥 쉬지 !"
"잘 잤어 !"
"당신 오늘 피곤해 보이시네요 힘드셨지요 !"
"여보 고마워요 !"
"당신 때문에 우리 가정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어서 고마워요 !"
" 여보 사랑해요 !"
이해와 용서를 통해서 사랑을 확인하게 됩니다.
-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남편과 아내에 대해 불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사랑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으니 결단을 내자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하였습니다.
이해와 용서가 없다는 것은 사랑이 식어진 증거입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경고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의 고백을 확인하며, 돌아서야 하는 것입니다.
함께 있기를 좋아하는 것은 사랑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 함께 먹고, 함께 있고, 함께 자는 것은 사랑의 증거입니다.
-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이 한 육체가 될지
니라"(24절)
이것이 사랑을 확인하는 삶의 그림인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을 확인하게 될 때, 위기에 처해 있는 가정은 구조되는 것입니다.
셋째, 부부 사이에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25절)
25절에
"남자와 그의 아내가 다 벌거벗었으니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있는 그대의 모습이었습니다.
숨길 것도, 감출 것도 없었습니다.
깨끗함, 순수함 그 자체였습니다.
이것이 건강한 가정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감추기 시작하고, 가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쪽만 가리는 것이 아니라 둘 다 가렸습니다.
비밀이 생겨나게 되었고, 비밀이 알려지만 서로 책임을 떠 넘기기에 급급합니다.
건강한 가정이 될 수가 없습니다.
가정의 위기가 찾아 올 것은 뻔한 것입니다.
부부의 인격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정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직하지 못할 때, 거리가 멀어지게 되고, 사랑이 식어지게 되고, 위기가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다름 사람은 몰라도 부부에게는 정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직함이 깨지기 시작하면 가정도 깨지기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정직함입니다.
용서는 정직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죄인임을 고백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와서 회개하는 사람에게 용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 처럼 자신을 위장하고 포장합니다.
인간의 의를 드러내려고 합니다.
용서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죄를 범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정직하지 않은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시51:10
"오 여호와 하나님이여, 내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속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112:2 "그 후손의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아간이 정직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그 가족들이 멸족이 되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정직하지 않으므로 인해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가정을 깨는 것은 부정직함입니다.
진실하지 못한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에게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을 위기에서 구하는 것은 서로 정직해야 합니다.
위기를 맡고 있는 가정을 들을 구조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
가정을 진단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가정은 깨어지는 가정들을 구조할 수 있는 가정인가를 진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가정의 방주가 되어야 하며, 가정의 구조선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가정에 금이 가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사랑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해하고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 격려의 말과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 함께 먹고, 살고, 자야 합니다.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 거짓은 가정을 깨뜨립니다.
-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설 명절 목표는 "가족들에게 감동을"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아름다운 소식들이 들려 오고 있습니다.
어느 주부 목자가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감동스러웠던 설에 대한 소식을 긴급 타전하여 올려놓았습니다.
가족들이 모이면 설거지 한 번 잘 안 하시던 집사님께서 이번 설에는 내내 설거지로 섬기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것이 모인 가족들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가족은 제사를 없애고, 처음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너무 감격스러워 기도할 때, 눈물 바다가 되었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서로 섬기는 가족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지지 않습니까
자신을 녹이며, 자신의 에너지를 소비하며 사랑하는 가족들을 섬기는 일은 힘들고 고된 일이라기 보다는 기쁘고 즐거운 일이며, 감사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행복이고, 이것이 가족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가정을 구조하라"는 가정치유 세미나가 사랑의 교회에서 있었습니다. 기가연 소장이신 송길원목사를 비롯해서 김의식목사 등 우리나라 교계에서 내노라고 하는 가정상담 강사들이 강의를 하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지 말도 못합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오늘날 가정들이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혼가정을 비롯해서 중년가정 노부부의 이르기까지 가정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1999년도 통계청에 의하면 연간 혼인은 36만3000건으로 하루 평균 993쌍이 혼인을 하였다고 합니다.
반면에 연간 이혼은 11만 8000건으로 하루 평균 323쌍이 갈라선 것으로 보고를 하였습니다.
특히 15년 이상 동거부부 이혼비율이 지난 90년 11. 9%에서 99년 25. 9%로 대폭 상승 황혼이혼 풍조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고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가정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깨어지는 가정들이 늘어나고 있을 뿐만아니라,
깨어지지 않은 가정들이라고 할지라도 마치 지뢰를 밟고 있는 것과 같아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위기 상황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가정 폭력이 얼마나 심각한지 모릅니다.
- 매 맞는 아내와 자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 매 맞는 남편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 언어 폭력에 시달리는 아내와 자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 성폭력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부지기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고는 왜 이렇게 많습니까
설 연휴 기간에 일어난 일들만 보아도 알 수가 있습니다.
- 우리 교회 주부 목자가 돌보는 자매의 형님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아들은 중상을 입고 입원 중에 있습니다.
- 멀쩡하던 분이 갑자기 쓰러져서 뇌졸중으로 사망을 하였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고가 가정을 깨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가정들이 위기 속에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의 이 소중한 가정을 지켜 낼 수 있을까요
어떻게 위기 속에 있는 우리 가정을 구조할 수 있을까요
어떤 값을 지불하고도 대신할 수 없는 이 소중한 가정을...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가장 완벽한 가정의 그림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가장 완벽한 가정의 모습입니다.
2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남자와 그의 아내가 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부족함이라고는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는 가장 완벽한 그림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입니까
얼마나 멋진 그림입니까
그러나 반면에 3장에서 실패한 가정의 가장 완벽한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3: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에 두 사람의 눈이 열려 자기들이 벌거벗은 줄을 알고는 무화과나무 잎을 함께 엮어 자기들을 위해 치마를 만들었더라"
부끄러운 인간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가리려고 인간의 노력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무서워 숨는가 하면 책임을 면하기 위해 핑계를 되며, 서로의 책임을 전가하는 비굴한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떳떳하지 못한 인간의 모습이며, 깨어진 가정의 모습입니다.
숨길 것도 없는 부부 사이에 서로 숨기고, 가리고, 치장하고, 위장하는 이것이 드러날 때면 서로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떠넘기는 치졸한 인간의 모습 속에
서 위기를 맞고 있는 실패한 가정의 완벽한 그림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4장에서 가서는 이들이 자녀들이 인정받지 못하는 관계로 인해서 형이 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가정 안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그러나 이것은 바로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형제간의 살인이 아니라 부부간에도 살인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가정 완벽한 가정의 그림 속에서도 실패의 완벽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요소가 숨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가정이 깨어지기 전에 예방 사역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리 가정을 문제없어 !
설마 우리 가정에 !
그러나 여러분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가장 완벽한 가정의 샘플이었던 아담과 이브도 실패를 하였다면 우리도 실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 가정을 지켜야 하고,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 가정을 구조해야 하는 것입니다.
깨어지는 부부들에게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처음부터 생각을 하였습니까 라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을 할까요
그러면 어떻게 우리 위기에서 구조할 수 있을까요
첫째, 가정의 주권을 여호와 하나님께 두시기 바랍니다. (18,21절)
가정을 세우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을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의 필요를 한가지 보셨습니다.
그것은 가정이었습니다.
홀로 사는 것보다 함께 사는 것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가지셨던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섭리였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시고는 18절에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합당한 협력자를 만들리라"
하시고는 21-22절에서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갈비뼈 중에 서 하나를 취하여...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녀를 남자에게 데려오셨 다"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셨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것입니다.
가정이 허물어지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가정에 위기가 찾아오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가정에 주권이 여호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착입니다.
자신이 선택하였기에 버릴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자신의 감정이 좋았기에 선택하였으므로, 싫으면 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무서운 착각입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낳았다고 생각하기에 자녀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무서운 착각입니다.
사람들의 문제가 어디에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있습니다.
좋아하고 싶으면 좋아하고, 사랑하고 싶으면 사랑하고, 미워하고 싶으면 미워하고, 버리고 싶으면 버릴 수 있고, 때리고 싶으면 때릴 수 있다는 것이 무서운 생각이며, 무서운 이기심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가정의 주권이 여호와 하나님께 있다고 생각을 하면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내가 결정했다고 생각하기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면 내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군대 가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가고 싶어서 가는 사람들 별로 없습니다.
군대 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26개월간 가족과 사회를 떠나 군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그런 되도 탈영하는 사람 거의 없습니다.
자기가 원해서 간 것도 아니기에 자기가 원한다고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부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고 견디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가 지켜지고 나라가 구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입니다.
내가 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즉 그들이 더 이상 둘이 아니요 한 육체이니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마19:6)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은 절대적인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였다는 것을 알고 믿는 사람들은 그래서 철저히 가정을 지키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가정을 지킵니다. 지금 힘들고 어려운 것이 깨진 후에 힘들고 어려운 것보다 휠씬 더 낫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이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위기에서 구조하려면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지속적으로 사랑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23절)
23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브를 아담에게로 데려오시자 아담이 이브를 보고사랑을 고백하였습니다.
"이제 이것은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아담은 이브가 없는 자신의 존재를 잡 뼈로 여겼습니다.
이브가 없는 자신의 존재를 잡 살로 여겼습니다. (껍데기)
이것은 존재의 의미가 이브에게 있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만큼 아담은 깊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이브는 아담의 갈비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사랑에 빠지자 아담이 갈비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사랑은 이와 같이 상대를 현재 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게 되고, 가정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의 주권이 여호와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랑은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사랑을 고백하고 확인함으로서 가정은 세워지는 것입니다.
결혼 서약을 할 때, 사랑을 확인하고, 남편과 아내로 맞이할 것을 서약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부부가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할 책임이 있고, 의무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은 사랑의 고백에 근거를 두고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라고 하는 것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두 사람만에 사랑을 확인하며 살아가는 곳입니다.
사랑이 식어지고, 사랑이 변질되며, 사랑이 바뀌면 가정은 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사랑을 주고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의학계에 '마라스머스'라는 이상한 병이 있습니다.
이 병은 주로 전쟁 고아나 고아원에서 외롭게 자라는 어린이들에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증상은 신체발육이 부진하고 온몸에 힘이 빠진다고 합니다. 환자는 결국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맙니다. 이 병은 영양부족이나 병균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은 사랑의 결핍이라고 합니다. 부모의 품에 안겨 재롱을 부리고 어머니의 살내음을 맡아야 할 어린이가 그것을 전혀 누리지 못할 때 이 병은 나타난다고 합니다. 마음 속의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거나 남들로부터 전혀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마라스모스'와 유사한 병에 걸릴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의사들이 밝히는 이 병의 치료법은 너무도 간단합니다. "매일 사랑을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으 말 한 마디가 최상의 묘역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정이 죽지 않고 살아 향기를 뿜으려면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들과 깊은 사랑에 빠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도적으로 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그러면 가정을 깨뜨리는 질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사랑은 따듯한 말 한 마디와 섬김을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여보 잘 먹었어 !"
"여보 오늘 수고 많았어요 ! 힘들지요 오늘 그냥 쉬지 !"
"잘 잤어 !"
"당신 오늘 피곤해 보이시네요 힘드셨지요 !"
"여보 고마워요 !"
"당신 때문에 우리 가정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어서 고마워요 !"
" 여보 사랑해요 !"
이해와 용서를 통해서 사랑을 확인하게 됩니다.
-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남편과 아내에 대해 불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사랑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으니 결단을 내자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하였습니다.
이해와 용서가 없다는 것은 사랑이 식어진 증거입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경고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의 고백을 확인하며, 돌아서야 하는 것입니다.
함께 있기를 좋아하는 것은 사랑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 함께 먹고, 함께 있고, 함께 자는 것은 사랑의 증거입니다.
-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이 한 육체가 될지
니라"(24절)
이것이 사랑을 확인하는 삶의 그림인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을 확인하게 될 때, 위기에 처해 있는 가정은 구조되는 것입니다.
셋째, 부부 사이에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25절)
25절에
"남자와 그의 아내가 다 벌거벗었으니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있는 그대의 모습이었습니다.
숨길 것도, 감출 것도 없었습니다.
깨끗함, 순수함 그 자체였습니다.
이것이 건강한 가정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감추기 시작하고, 가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쪽만 가리는 것이 아니라 둘 다 가렸습니다.
비밀이 생겨나게 되었고, 비밀이 알려지만 서로 책임을 떠 넘기기에 급급합니다.
건강한 가정이 될 수가 없습니다.
가정의 위기가 찾아 올 것은 뻔한 것입니다.
부부의 인격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정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직하지 못할 때, 거리가 멀어지게 되고, 사랑이 식어지게 되고, 위기가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다름 사람은 몰라도 부부에게는 정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직함이 깨지기 시작하면 가정도 깨지기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정직함입니다.
용서는 정직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죄인임을 고백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와서 회개하는 사람에게 용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 처럼 자신을 위장하고 포장합니다.
인간의 의를 드러내려고 합니다.
용서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죄를 범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정직하지 않은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시51:10
"오 여호와 하나님이여, 내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속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112:2 "그 후손의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아간이 정직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그 가족들이 멸족이 되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정직하지 않으므로 인해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가정을 깨는 것은 부정직함입니다.
진실하지 못한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에게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을 위기에서 구하는 것은 서로 정직해야 합니다.
위기를 맡고 있는 가정을 들을 구조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
가정을 진단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가정은 깨어지는 가정들을 구조할 수 있는 가정인가를 진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가정의 방주가 되어야 하며, 가정의 구조선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가정에 금이 가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사랑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해하고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 격려의 말과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 함께 먹고, 살고, 자야 합니다.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 거짓은 가정을 깨뜨립니다.
-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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