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가정을 만드신 하나님
본문
어린이가 꽃이라면 가정은 그 꽃을 담고 있는 화분이기 때문에, 바르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이 무엇인가를 상고하려고 합니다.
1.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인이시다.
오늘 본문은 제가 결혼주례를 할 때 읽는 말씀인데, 2장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라는 말씀이 11번이나 반복되어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만사를 주도하심을 부각하는 장면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드신 이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말씀에 이어, 가정을 만드신 이도 역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2절에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라는 말씀에서 드러나듯이 결혼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사람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시고, 그들 마음속에 이성을 그리워하며 사랑하게 하시고, 그 둘이 사랑할 때 자녀가 생산되게 하신이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날, 청춘 남녀가 서로 만나 사랑을 고백하고 결국 결혼을 하는 과정도 역시 여호와 하나님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옛날 인위적으로 조절을 할 줄 몰랐던 시절에는 한 마을에 태어나는 신생아의 성비가 아주 완벽하게 균형이 맞았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이라는 결합을 염두에 두고 남자와 여자를 균형 맞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가정이 되어야 행복합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가정은 아무리 다른 것이 구비해도 완전하지 못하고 참 행복을 누릴 수 없는 가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
결혼은 서로의 고독을 해결하며 단점을 보완하는 장치요 경건한 미래 세대를 계승하는 방편입니다. 1:28에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고 땅을 다스리라"고 축복하셨는데, 인간이 땅을 정복하도록 번식하는 방편으로 가정을 만드신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은 어떻게 만나서 이루어진 가정입니까 둘이 연애를 했던, 누가 중매로 했던 어떻게 만난 가정일지라도 근본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게 주신 자녀는 여호와 하나님이 내게 맞춤으로 주신 특별한 선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내 가정의 조성자요 주관자이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2. 가족은 서로 돕는 관계이다.
결혼의 목적은 서로 돕는 것입니다. "사람의 독처 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는 말씀에서 드러나듯이, 아담을 돕게 하려고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아무리 잘 난 사람도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처음의 아담은 고독하였으며 아직 미완성이었기에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어 주신 것입니다. 돕는 배필이란 보완하는 배필입니다. 결혼식을 앞두고 내게 주례를 부탁하러 찾아오는 젊은이들에게 꼭 이런 당부를 합니다. "결혼을 하려면 살 집도 준비해야 하고 결혼식장도 예약해야 하고 살림살이도 준비해야 하고 청첩장도 보내야 하지만, 더 중요한 준비가 있는데, 그건 서로가 서로를 맞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이다. 서로 맞아들일 준비란, 상대에게는 내가 발견하고 좋아하는 장점도 있지만, 아직 발견 못한 숨겨진 단점도 드러나게 되었다. 문제는 그 단점인데, 살다가 그것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아, 왜 내가 저걸 못보고 결혼을 했을까 이제 어떻게 해" 하면서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아, 저런 단점이 있었구나, 그렇다면 내가 저 단점을 보완해 주라고 나를 그의 짝을 만나게 해주셨구나" 하면서 상대의 단점을 내가 책임질 부분으로 여기라" 는 것입니다. 상대에게 장점이 없어서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단점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불행해 지는 것입니다. 결혼의 목적은 서로의 약점을 받아주고 보완하고 돕는 것입니다.
3. 가정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둘은 본래부터 하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을 돕는 배필을 지으려고 아담의 갈비 뼈 하나를 취하여 그것으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와를 다시 아담에게로 데리고 와서 그의 배필로 주셨습니다. 당연히 아담에게 하와는 너무나 잘 맞는 짝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하와를 보자 마자 "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라"고 고백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신 것이지, 그의 유전자를 결함내신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아담만 갈빗대 하나가 없었지 아담의 유전자를 받아 태어난 그 후손들은 갈빗대가 온전한 모습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요즘의 과학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체세포 한 개를 가지고도 인간을 복제할 수 있는데,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갈빗대를 하기고 여자를 만드시지 못할 리가 있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일 점 일획도 오류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9장에 "둘이 한몸을 이루는 이 비밀이 크다" 고 하셨는데,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이 비밀입니다. 전혀 남남이었던 남녀가 결혼을 통해서 둘이 하나가 됩니다. 이제 각기 따로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살림이 하나가 되고, 가문의 전통과 재산과 삶이 하나가 됩니다. 네 것 내 것이 없어지고, 우리의 것이 됩니다. 그리고 두 육체가 성생활을 통해서 최고의 즐거움을 공유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둘이 사랑함으로서 자녀를 낳게 되는데, 그 자녀는 엄마 반, 아빠 반을 닮은, 정말로 둘이 하나가된 결정체입니다. 그러므로 둘이 하나가 되는 결혼은 대단히 비밀스러운 여호와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도 둘이 하나가 된 신비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나의 영적인 남편으로 맞아들이는 순간, 그리스도의 공로는 내게로 왔고 내가 평생에 지은 무거운 죄는 그가 책임지십니다. 그의 죽으심이 나를 살리고 그의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가 되며 그의 나라가 내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크나큰 비밀입니다. 여러분의 가족을 세상에 둘도 없는 가족인줄을 알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4. 육신의 가정은 신령한 가정의 그림자이다.
우리교회에는 "가정은 교회만큼, 교회는 가정만큼"이라는 구호가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교회와 가정이 구성원이 같고 그 사명이 같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교회와 가정이 똑같이 신성하고 소중하며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 가정에 소속하고 기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롬5:14, 고전15:45에 예수님을 둘째 아담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아담의 가슴에는 처음부터 하와가 들어 있었습니다. 때가 되어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의 가슴에서 하와를 인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하와를 만들어 이끌어다가 아담에게 아내로 다시 주셨습니다.
둘째 아담인 예수에게도 신부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옆구리를 찔리시기 전까지는 신부인 교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십자가에 죽으신 뒤에 교회가 탄생하였습니다. 하와 없는 아담은 돕는 배필이 없고 고독을 해결할 길 없고 도움 받을 길 없는 불완전한 존재로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새 하늘과 새 땅도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가 없이는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나눌 자요 함께 기쁨을 나눌 자로 선택하여 교회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육신의 가정은 하늘에 있는 신령한 가정의 그림자입니다. 육신의 가정에는 아내와 남편이라는 관계가 있고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가 있습니다. 부부관계는 평등의 수평적인 관계요,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상하의 수직적인 관계입니다. 그래서 가정의 구조는 십자가와 같은 구조입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그리스도의 성결한 신부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는 그리스도와 우리의 수평적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선택하신 여호와 하나님과는 부자관계이므로 수직적인 관계가 형성됩니다.
가정에서 사람이 태어나고 가정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다 자란 뒤에는 자기의 가정을 꾸리게 되며, 그리고 사람은 일평생 그 가정을 중심으로 해서 살다가 가족들의 눈물 속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아침에 가정을 떠나 일터에 가지만, 저녁에 되면 가정으로 되돌아오고, 하루종일 더러워진 몸을 가정에 돌아와 씻고 허기진 배를 가정에서 채우고 힘을 얻으며, 가족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상처받은 마음을 풀고 내일을 위한 힘을 충전하곤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저녁에 되어도 돌아갈 가정이 없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사람의 삶의 중심은 가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정을 소중히 여겨야 하고, 내 가정의 가족들 하나 하나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교회에서 거듭남을 통해 태어나고, 교회를 통하여 양육되어 자라며, 거듭난 사람은 교회를 중심해서 일평생 살아갑니다. 한 주간 동안에 때묻고 더러워진 양심을 교회에 와서 말씀과 기도로 씻고, 한 주간동안 약해진 영혼을 말씀양식을 먹음으로 기운을 회복하며, 상처받고 절망을 만난 성도가 주일에 교회에 와서 성도들과 교제하며 소생하여 다시 한 주간을 소망과 용기를 가지고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성도들의 환송 속에 주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그러니 교회는 또 하나의 가정입니다. 우리가 육신과 영혼을 가지고 있음같이, 육신의 가정과 영혼의 가정에 소속되어 있어야 만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가정에 소속되어 있어야 하고, 자기 가정을 위하여 노력하여 자기의 몫을 하여 봉사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가정인 교회에도 소속되어야 합니다. 주일이 되어도 돌아갈 자기 교회가 없는 사람은 불행한 영혼을 안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영적인 가정인 교회에 봉사하여 기여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인생은 그 어디서 무엇을 해도 보람과 만족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위에서 말한 두 가정에 소속되어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 두 가정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며 기여하고 있습니까
가정은 인간이 만든 제도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신비한 기관입니다.
우리 가족은 여호와 하나님이 만나게 하시고 만들어 주신 아주 소중한 가족들입니다.
그러므로 내 가정을 교회처럼 경건하고 의미 있게 가꾸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삶입니다.
내 가족들을 사랑하고 내 역할을 다하여 가정을 섬기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삶입니다.
각자 여러분의 가정에 충실하면서, 영적인 가정인 교회도 가정 못지 않게 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육신의 삶에 행복이 있고 영적인 삶에 능력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인이시다.
오늘 본문은 제가 결혼주례를 할 때 읽는 말씀인데, 2장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라는 말씀이 11번이나 반복되어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만사를 주도하심을 부각하는 장면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드신 이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말씀에 이어, 가정을 만드신 이도 역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2절에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라는 말씀에서 드러나듯이 결혼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사람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시고, 그들 마음속에 이성을 그리워하며 사랑하게 하시고, 그 둘이 사랑할 때 자녀가 생산되게 하신이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날, 청춘 남녀가 서로 만나 사랑을 고백하고 결국 결혼을 하는 과정도 역시 여호와 하나님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옛날 인위적으로 조절을 할 줄 몰랐던 시절에는 한 마을에 태어나는 신생아의 성비가 아주 완벽하게 균형이 맞았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이라는 결합을 염두에 두고 남자와 여자를 균형 맞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가정이 되어야 행복합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가정은 아무리 다른 것이 구비해도 완전하지 못하고 참 행복을 누릴 수 없는 가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
결혼은 서로의 고독을 해결하며 단점을 보완하는 장치요 경건한 미래 세대를 계승하는 방편입니다. 1:28에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고 땅을 다스리라"고 축복하셨는데, 인간이 땅을 정복하도록 번식하는 방편으로 가정을 만드신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은 어떻게 만나서 이루어진 가정입니까 둘이 연애를 했던, 누가 중매로 했던 어떻게 만난 가정일지라도 근본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게 주신 자녀는 여호와 하나님이 내게 맞춤으로 주신 특별한 선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내 가정의 조성자요 주관자이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2. 가족은 서로 돕는 관계이다.
결혼의 목적은 서로 돕는 것입니다. "사람의 독처 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는 말씀에서 드러나듯이, 아담을 돕게 하려고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아무리 잘 난 사람도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처음의 아담은 고독하였으며 아직 미완성이었기에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어 주신 것입니다. 돕는 배필이란 보완하는 배필입니다. 결혼식을 앞두고 내게 주례를 부탁하러 찾아오는 젊은이들에게 꼭 이런 당부를 합니다. "결혼을 하려면 살 집도 준비해야 하고 결혼식장도 예약해야 하고 살림살이도 준비해야 하고 청첩장도 보내야 하지만, 더 중요한 준비가 있는데, 그건 서로가 서로를 맞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이다. 서로 맞아들일 준비란, 상대에게는 내가 발견하고 좋아하는 장점도 있지만, 아직 발견 못한 숨겨진 단점도 드러나게 되었다. 문제는 그 단점인데, 살다가 그것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아, 왜 내가 저걸 못보고 결혼을 했을까 이제 어떻게 해" 하면서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아, 저런 단점이 있었구나, 그렇다면 내가 저 단점을 보완해 주라고 나를 그의 짝을 만나게 해주셨구나" 하면서 상대의 단점을 내가 책임질 부분으로 여기라" 는 것입니다. 상대에게 장점이 없어서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단점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불행해 지는 것입니다. 결혼의 목적은 서로의 약점을 받아주고 보완하고 돕는 것입니다.
3. 가정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둘은 본래부터 하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을 돕는 배필을 지으려고 아담의 갈비 뼈 하나를 취하여 그것으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와를 다시 아담에게로 데리고 와서 그의 배필로 주셨습니다. 당연히 아담에게 하와는 너무나 잘 맞는 짝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하와를 보자 마자 "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라"고 고백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신 것이지, 그의 유전자를 결함내신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아담만 갈빗대 하나가 없었지 아담의 유전자를 받아 태어난 그 후손들은 갈빗대가 온전한 모습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요즘의 과학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체세포 한 개를 가지고도 인간을 복제할 수 있는데,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갈빗대를 하기고 여자를 만드시지 못할 리가 있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일 점 일획도 오류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9장에 "둘이 한몸을 이루는 이 비밀이 크다" 고 하셨는데,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이 비밀입니다. 전혀 남남이었던 남녀가 결혼을 통해서 둘이 하나가 됩니다. 이제 각기 따로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살림이 하나가 되고, 가문의 전통과 재산과 삶이 하나가 됩니다. 네 것 내 것이 없어지고, 우리의 것이 됩니다. 그리고 두 육체가 성생활을 통해서 최고의 즐거움을 공유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둘이 사랑함으로서 자녀를 낳게 되는데, 그 자녀는 엄마 반, 아빠 반을 닮은, 정말로 둘이 하나가된 결정체입니다. 그러므로 둘이 하나가 되는 결혼은 대단히 비밀스러운 여호와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도 둘이 하나가 된 신비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나의 영적인 남편으로 맞아들이는 순간, 그리스도의 공로는 내게로 왔고 내가 평생에 지은 무거운 죄는 그가 책임지십니다. 그의 죽으심이 나를 살리고 그의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가 되며 그의 나라가 내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크나큰 비밀입니다. 여러분의 가족을 세상에 둘도 없는 가족인줄을 알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4. 육신의 가정은 신령한 가정의 그림자이다.
우리교회에는 "가정은 교회만큼, 교회는 가정만큼"이라는 구호가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교회와 가정이 구성원이 같고 그 사명이 같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교회와 가정이 똑같이 신성하고 소중하며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 가정에 소속하고 기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롬5:14, 고전15:45에 예수님을 둘째 아담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아담의 가슴에는 처음부터 하와가 들어 있었습니다. 때가 되어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의 가슴에서 하와를 인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하와를 만들어 이끌어다가 아담에게 아내로 다시 주셨습니다.
둘째 아담인 예수에게도 신부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옆구리를 찔리시기 전까지는 신부인 교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십자가에 죽으신 뒤에 교회가 탄생하였습니다. 하와 없는 아담은 돕는 배필이 없고 고독을 해결할 길 없고 도움 받을 길 없는 불완전한 존재로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새 하늘과 새 땅도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가 없이는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나눌 자요 함께 기쁨을 나눌 자로 선택하여 교회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육신의 가정은 하늘에 있는 신령한 가정의 그림자입니다. 육신의 가정에는 아내와 남편이라는 관계가 있고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가 있습니다. 부부관계는 평등의 수평적인 관계요,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상하의 수직적인 관계입니다. 그래서 가정의 구조는 십자가와 같은 구조입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그리스도의 성결한 신부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는 그리스도와 우리의 수평적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선택하신 여호와 하나님과는 부자관계이므로 수직적인 관계가 형성됩니다.
가정에서 사람이 태어나고 가정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다 자란 뒤에는 자기의 가정을 꾸리게 되며, 그리고 사람은 일평생 그 가정을 중심으로 해서 살다가 가족들의 눈물 속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아침에 가정을 떠나 일터에 가지만, 저녁에 되면 가정으로 되돌아오고, 하루종일 더러워진 몸을 가정에 돌아와 씻고 허기진 배를 가정에서 채우고 힘을 얻으며, 가족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상처받은 마음을 풀고 내일을 위한 힘을 충전하곤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저녁에 되어도 돌아갈 가정이 없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사람의 삶의 중심은 가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정을 소중히 여겨야 하고, 내 가정의 가족들 하나 하나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교회에서 거듭남을 통해 태어나고, 교회를 통하여 양육되어 자라며, 거듭난 사람은 교회를 중심해서 일평생 살아갑니다. 한 주간 동안에 때묻고 더러워진 양심을 교회에 와서 말씀과 기도로 씻고, 한 주간동안 약해진 영혼을 말씀양식을 먹음으로 기운을 회복하며, 상처받고 절망을 만난 성도가 주일에 교회에 와서 성도들과 교제하며 소생하여 다시 한 주간을 소망과 용기를 가지고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성도들의 환송 속에 주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그러니 교회는 또 하나의 가정입니다. 우리가 육신과 영혼을 가지고 있음같이, 육신의 가정과 영혼의 가정에 소속되어 있어야 만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가정에 소속되어 있어야 하고, 자기 가정을 위하여 노력하여 자기의 몫을 하여 봉사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가정인 교회에도 소속되어야 합니다. 주일이 되어도 돌아갈 자기 교회가 없는 사람은 불행한 영혼을 안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영적인 가정인 교회에 봉사하여 기여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인생은 그 어디서 무엇을 해도 보람과 만족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위에서 말한 두 가정에 소속되어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 두 가정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며 기여하고 있습니까
가정은 인간이 만든 제도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신비한 기관입니다.
우리 가족은 여호와 하나님이 만나게 하시고 만들어 주신 아주 소중한 가족들입니다.
그러므로 내 가정을 교회처럼 경건하고 의미 있게 가꾸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삶입니다.
내 가족들을 사랑하고 내 역할을 다하여 가정을 섬기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삶입니다.
각자 여러분의 가정에 충실하면서, 영적인 가정인 교회도 가정 못지 않게 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육신의 삶에 행복이 있고 영적인 삶에 능력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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