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노아의 가정
본문
지도층 인사들이 부정과 비리를 저리르는 뉴스가 자주 메스컴을 타다 보니 사람들의 눈에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모두 다 비리의 원흉들인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다 부도덕한 삶을 살고 있는게 아닙니다.
대부분의 리더들은 지도자의 덕목을 잘 알고, 자기 위치에서 성실하게 직무를 감당하고 있는데, 몇몇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애당초에 자격이 안되는 사람이었는데 높은 자리에 올라앉아서 비리를 저지르다 보니 사람들의 눈에는 힘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뇌물을 받아먹고 사는 것으로 보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교회가 시끄러우면 세상의 욕을 먹습니다. 사회에 빛이 되고 본이 되어야 할 교회가 이런 저런 이유로 사분오열되고 세상의 손가락질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몇몇 교회들로 인해서 사람들은 모든 교회가 다 문제가 있는 교회인 것 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들은 은혜롭고 평화로우며 교회의 교회 된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우리는 놓치면 안됩니다.
마찬가지로 이 사회에 가정의 붕괴 현상이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할때, 일반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가정들이 문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오해입니다. 이상스럽게도 사람들은 아주 특수한 경우를 일반화하면서 말하길 '다들 그렇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 그런게 아닙니다. 대부분 가정들은 행복하고 평범하게 그리고 작은 행복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열심히들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길, "요즘에 너처럼 바보 같이 당하고만 사는 사람이 어디있냐"하고 충동질하더라도 그 말에 흔들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요즘 시대에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참고 견디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이 세상의 부정적인 단면을 너무 과장 확대해서 바라보다보면, 이 세상은 너무나 썩고 부패해서 구제불능으로 보이고 다 포기하는 것이 마땅한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아직도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자기 본분을 다 하고 살아가는 성실하고 착한 사람들이 휠씬 더 많다'는 믿음을 가지고 바라보면 세상이 아름답고 살아갈 용기가 나는 법입니다.
반면에 세상을 살면서 습관적으로 어두운 면만 치중해서 바라보고, 의심하고 비관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다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이 불쌍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주로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면에 치중하는 버릇을 갖고 있습니다. 이 세상과 세상 사는 사람들과 세상 돌아가는 모습들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말을 하고 살아야 비로소 그나마 자신은 행복한 편이라고 결론 지을 수 있는 딱한 인생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구약시대에 아합왕이 나라를 다스릴 때,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려운 시절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고 세상이 다 타락할 때에도 거기 타협하지 않고 바르고 진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너무나 힘들고 지친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호렙산에 숨어들어가서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길 '여호와 하나님 이 나라 이 민족 가운데 신앙을 지키고 영적인 순결성을 지킬 사람은 저 밖에 없습니다' 이 때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얘야 너 그런 교만한 생각하지 마라. 너만 온전하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이 백성들 가운데 우상의 제물도 먹지 않고 마시지도 않고 절하지 않은 자들을 너 외에도 7000명이나 남겨두었다'
여러분 나 한 사람만이 온전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교만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우리 교회만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교만입니다. 우리 가정만 행복한 가정이라고 생각하는게 교만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온 세상이 타락하고 죄악이 관영한 시대에 노아의 가정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 만큼이나 노아의 시대에도 죄악이 극에 달하여서 여호와 하나님이 탄식하시며 근심하실 정도가 되고 말았습니다. (창6:6) 타락이 극에 달하였을때, 여호와 하나님은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어 노아를 통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시기로 작정하십니다.
노아와 그 가정은 세상에 물들지 않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의롭게 살았습니다. 7장1절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가족들만 방주에 들어가게 하신 이유를 분명하게 선언하고 계십니다.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라"
여기 여호와 하나님앞에서 의로움이라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흠이 없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여호와 하나님앞에 흠과 티가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다만, 여기서 말하는 의로움이란 도덕적으로 의로움이 인정되었다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눈에 띌 만큼 이 세상에 불들지 아니한 가정이 노아의 가정이었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가정의 거룩성을 보존하는 일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어른공경도 부부지간도 자녀교육도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도 잘 가르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도 할 줄 알고, 교회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고 영적인 지도자들에게 순종함도 가르쳐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인격에서 비롯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 됨됨이'를 중요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볼 때, 항상 먼저 다가오는 것은 첫인상입니다. 그러나 결국 겪어보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첫인상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 사람이 부모에게서 무얼 보고 자랐는가 하는 점과 그 사람의 가치관과 언행의 습관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아는 '영성'을 갖추었는가 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 시대는 외모와 돈과 권력과 실력이 말하는 시대라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점점 더 비인격화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교감이 된 절친한 친구와 식사하면서 대화하는 중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르치면서 느낀 바가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계산적인지 공부만 잘 하면 모든게 다 용서가 되는 이런 교육풍토가 교사로서 참으로 괴롭다'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크리스챤 학교를 표방하는 그 학교에도 몰래 노래방이나 다니고 술 담배하는 녀석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선행학습인가 뭔가를 다 하고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모든 진도는 이미 다 마쳤고, 개인 과외를 하면서 대입을 준비하는데 그 아이들이 걱정하지 않아도 부모가 다 알아서 명문대학에 들어갈 길을 알아두고 가르치는데, 그 아이들은 놀기도 하고 머리도 좋고 좋은 대학에도 갈 수 있는 아이들이라는 것입니다.
공부 아주 잘하고 명문대학에 들어갈 확률이 아주 높은 아이인데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합니다. 물론 여기에도 모든 우수학생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몇몇 그런 아이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세상은 공부만 잘하면, 돈만 많으면, 출세해서 지위만 얻으면 모든 게 다 용서가 되는 세상이다 보니, 이 세상에 바른 길을 지도할 수가 없더라는 말입니다.
노아의 가정은 모두가 비틀거리고 살아갈 때, 바른 길을 걸었습니다. 그것이 노아의 의로움이었습니다.
공부는 좀 부족하더라고 인간답게 살자.
가난하게 살아도 양심을 저버리진 말자.
남들이 다 그렇게 살아도 우린 그렇게 살지 말자.
이것이 의로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불씨로 살려두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수성가족들의 가정들이 다 '여호와 하나님이 남겨두신 불씨와 같은 가정' '노아의 가정'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성공하는 사람이 되는 비결이 다른데 있는게 아닙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감사히 여기고 한편으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노아가 그랬던 것 처럼 세상에 물들지 않고, 자기가 한번 부름 받은 길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성공의 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미혹을 받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지금 미혹의 영이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든든한 믿음과 경건과 도덕적인 터 위에 서있지 않으면 모두 무너지게 됩니다. 부부지간에도 남편과 아내가 동등합니다. 그 역할이 다를 뿐 인격적으로 남자나 여자나 피차 존중히 여기고 존중히 여김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임을 잊으면 안됩니다.
성경은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또한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가르칩니다. 사랑으로 책임지고 순종, 복종으로 응대하는 관계.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부부의 모습입니다.
지난 번 금요 심야기도회에서도 말씀을 드린 바가 있듯이, 과거 우리 부모세대 어른들은 남자는 그 집의 '주인장' '주인어른'이고 여자는 '부엌데기' '남자의 부속물'쯤으로 여기는 세대가 있었습니다.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거나 아이를 안아주거나 엎어주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 되는 세대가 있었습니다.
그런 어른들은 지금도 고정관념으로 인해서 아내에게 잘해 주어야 하는 걸 알지만 체질적으로 그것이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예수를 믿고 교회의 직분자가 되어서도 성경이 가르치는 아내 사랑에 순종하지 못하고 여전히 밖에서는 아내에게 친절하고 보살펴주는 모습으로 살지를 못합니다. 그러면서 성경이 무어라 하여도 이렇게 살아온 것이 우리네 삶이니 이제와서 바꾸기도 어렵다는 식으로 삽니다. 이것이 현대교회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가치관의 혼란, 한국적인 문화와 전통, 고정관념과 교회가 가르쳐 주는 말씀중심의 삶 사이에 혼란이 여전히 한국교회안에 내재하고 있음을 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믿는이들이 자신이 이제껏 어떤 식으로 살아왔던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하면 '아니구나'하고 뜯어 고치고 변화될 각오를 하였는가 하는 점입니다.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지금껏 그렇게 하고 살아왔어도 이젠 말씀에 맞추어 고칠 건 고쳐가며 살아야 하겠다는 열린 마음이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에녹은 360년동안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80년간의 삶을 여호와 하나님의 명을 받들면서 살았습니다. 지금의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고정관념, 선입견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 사이에 혼란의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는 과거의 어떤 가치관과 습성도 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앞에 굴복시킬 줄 아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노아와 그 가정이 혼란의 시기에 '의롭다'인정함을 받고 방주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바로 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앞에서 바로 서야 합니다.
사26:3-4 "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여호와 하나님이 지금 이 시대 우리들의 삶과 우리 가정의 삶의 모습을 보시면서 찾으시는 것은 "심지가 견고한 삶"입니다. 심지가 견고한 사람은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무엇도 흔들 수 없는 '평강'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27:1에서는 심지가 견고하지 않은 사람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시대를 꼬불꼬불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흔들리는 개인, 흔들리는 가정, 개인의 형편과 사정에 따라 심지도 없이 이렇게도 살아보고 저렇게도 살아보는 그런 사람을 여호와 하나님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신용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의 굳건한 반석위에 서 있을때, 손잡아 사용하시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내가 어떻게 살아야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실까"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살 때 반드시 확인해 보아야 하는 항목이 있습니다. 생선을 살때는 아가미를 뒤집어 봅니다. 과일을 살때에도 꼭지가 싱싱한지를 봅니다. 수박을 살때는 적당히 익어서 당도가 높은가 확인하느라고 두드려도 보고 살짝 칼집을 내어 속을 꺼내 보기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을 선별하시는 기준은 어떤 것일까요 "한평생 치우치지 않고 한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누가 뭐래도 그 사람은 말씀만 붙들고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를 생명처럼 여기면서 살아갈 사람이다 하면 바로 그런 사람을 들어 쓰시는 것입니다.
노아와 그 가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새로운 인류로 선발이 된 것은 그들의 '의로움' 때문이었습니다. 그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이 선별하실 때, 세속에 불들지 않고 세상의 가치관에 혼란을 겪거나 갈등하지도 않고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한 길을 간 사람들은 노아와 그 가족들 뿐이었더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2010년도의 '노아의 가정'입니까. 오늘 여호와 하나님이 이 세상에 대해서 진노하시고 심판하시고자 하실 때, 방주에 들이실 만큼 구별된 삶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가정이 어디에 있을까요 죄짓고 돈벌어 잘 사는 사람 부러워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양심을 팔아먹고 세상의 권력의 맛에 취해 살아가는 그런 사람을 부러워 하지도 마시길 바랍니다. 쾌락의 늪에 빠져서 자기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어떻게 망가지고 있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부러워 하지도 마시길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 주변에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이런 가정을 본 일이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그 가정". 만일 그런 사람을 볼 수 없거든, 성경의 노아의 가정을 바라보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어느때보다 지금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의로움'을 기대하시는 시대입니다. 특별히 가정의 의로움이 중요합니다. 부부지간의 의로움, 부모자녀간의 의로움, 형제간의 의로움, 다시말하면 가정안에서 경건과 정직과 순결함과 거룩함과 배려와 절제와 사랑을 볼 수 있다면 바로 그 가정이 2010년도의 노아의 가정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가정이 심판을 목전에 둔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앞에 의로움으로 인정받는 이 시대의 노아의 가정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대부분의 리더들은 지도자의 덕목을 잘 알고, 자기 위치에서 성실하게 직무를 감당하고 있는데, 몇몇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애당초에 자격이 안되는 사람이었는데 높은 자리에 올라앉아서 비리를 저지르다 보니 사람들의 눈에는 힘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뇌물을 받아먹고 사는 것으로 보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교회가 시끄러우면 세상의 욕을 먹습니다. 사회에 빛이 되고 본이 되어야 할 교회가 이런 저런 이유로 사분오열되고 세상의 손가락질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몇몇 교회들로 인해서 사람들은 모든 교회가 다 문제가 있는 교회인 것 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들은 은혜롭고 평화로우며 교회의 교회 된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우리는 놓치면 안됩니다.
마찬가지로 이 사회에 가정의 붕괴 현상이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할때, 일반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가정들이 문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오해입니다. 이상스럽게도 사람들은 아주 특수한 경우를 일반화하면서 말하길 '다들 그렇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 그런게 아닙니다. 대부분 가정들은 행복하고 평범하게 그리고 작은 행복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열심히들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길, "요즘에 너처럼 바보 같이 당하고만 사는 사람이 어디있냐"하고 충동질하더라도 그 말에 흔들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요즘 시대에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참고 견디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이 세상의 부정적인 단면을 너무 과장 확대해서 바라보다보면, 이 세상은 너무나 썩고 부패해서 구제불능으로 보이고 다 포기하는 것이 마땅한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아직도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자기 본분을 다 하고 살아가는 성실하고 착한 사람들이 휠씬 더 많다'는 믿음을 가지고 바라보면 세상이 아름답고 살아갈 용기가 나는 법입니다.
반면에 세상을 살면서 습관적으로 어두운 면만 치중해서 바라보고, 의심하고 비관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다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이 불쌍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주로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면에 치중하는 버릇을 갖고 있습니다. 이 세상과 세상 사는 사람들과 세상 돌아가는 모습들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말을 하고 살아야 비로소 그나마 자신은 행복한 편이라고 결론 지을 수 있는 딱한 인생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구약시대에 아합왕이 나라를 다스릴 때,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려운 시절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고 세상이 다 타락할 때에도 거기 타협하지 않고 바르고 진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너무나 힘들고 지친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호렙산에 숨어들어가서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길 '여호와 하나님 이 나라 이 민족 가운데 신앙을 지키고 영적인 순결성을 지킬 사람은 저 밖에 없습니다' 이 때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얘야 너 그런 교만한 생각하지 마라. 너만 온전하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이 백성들 가운데 우상의 제물도 먹지 않고 마시지도 않고 절하지 않은 자들을 너 외에도 7000명이나 남겨두었다'
여러분 나 한 사람만이 온전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교만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우리 교회만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교만입니다. 우리 가정만 행복한 가정이라고 생각하는게 교만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온 세상이 타락하고 죄악이 관영한 시대에 노아의 가정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 만큼이나 노아의 시대에도 죄악이 극에 달하여서 여호와 하나님이 탄식하시며 근심하실 정도가 되고 말았습니다. (창6:6) 타락이 극에 달하였을때, 여호와 하나님은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어 노아를 통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시기로 작정하십니다.
노아와 그 가정은 세상에 물들지 않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의롭게 살았습니다. 7장1절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가족들만 방주에 들어가게 하신 이유를 분명하게 선언하고 계십니다.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라"
여기 여호와 하나님앞에서 의로움이라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흠이 없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여호와 하나님앞에 흠과 티가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다만, 여기서 말하는 의로움이란 도덕적으로 의로움이 인정되었다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눈에 띌 만큼 이 세상에 불들지 아니한 가정이 노아의 가정이었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가정의 거룩성을 보존하는 일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어른공경도 부부지간도 자녀교육도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도 잘 가르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도 할 줄 알고, 교회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고 영적인 지도자들에게 순종함도 가르쳐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인격에서 비롯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 됨됨이'를 중요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볼 때, 항상 먼저 다가오는 것은 첫인상입니다. 그러나 결국 겪어보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첫인상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 사람이 부모에게서 무얼 보고 자랐는가 하는 점과 그 사람의 가치관과 언행의 습관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아는 '영성'을 갖추었는가 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 시대는 외모와 돈과 권력과 실력이 말하는 시대라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점점 더 비인격화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교감이 된 절친한 친구와 식사하면서 대화하는 중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르치면서 느낀 바가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계산적인지 공부만 잘 하면 모든게 다 용서가 되는 이런 교육풍토가 교사로서 참으로 괴롭다'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크리스챤 학교를 표방하는 그 학교에도 몰래 노래방이나 다니고 술 담배하는 녀석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선행학습인가 뭔가를 다 하고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모든 진도는 이미 다 마쳤고, 개인 과외를 하면서 대입을 준비하는데 그 아이들이 걱정하지 않아도 부모가 다 알아서 명문대학에 들어갈 길을 알아두고 가르치는데, 그 아이들은 놀기도 하고 머리도 좋고 좋은 대학에도 갈 수 있는 아이들이라는 것입니다.
공부 아주 잘하고 명문대학에 들어갈 확률이 아주 높은 아이인데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합니다. 물론 여기에도 모든 우수학생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몇몇 그런 아이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세상은 공부만 잘하면, 돈만 많으면, 출세해서 지위만 얻으면 모든 게 다 용서가 되는 세상이다 보니, 이 세상에 바른 길을 지도할 수가 없더라는 말입니다.
노아의 가정은 모두가 비틀거리고 살아갈 때, 바른 길을 걸었습니다. 그것이 노아의 의로움이었습니다.
공부는 좀 부족하더라고 인간답게 살자.
가난하게 살아도 양심을 저버리진 말자.
남들이 다 그렇게 살아도 우린 그렇게 살지 말자.
이것이 의로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불씨로 살려두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수성가족들의 가정들이 다 '여호와 하나님이 남겨두신 불씨와 같은 가정' '노아의 가정'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성공하는 사람이 되는 비결이 다른데 있는게 아닙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감사히 여기고 한편으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노아가 그랬던 것 처럼 세상에 물들지 않고, 자기가 한번 부름 받은 길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성공의 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미혹을 받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지금 미혹의 영이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든든한 믿음과 경건과 도덕적인 터 위에 서있지 않으면 모두 무너지게 됩니다. 부부지간에도 남편과 아내가 동등합니다. 그 역할이 다를 뿐 인격적으로 남자나 여자나 피차 존중히 여기고 존중히 여김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임을 잊으면 안됩니다.
성경은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또한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가르칩니다. 사랑으로 책임지고 순종, 복종으로 응대하는 관계.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부부의 모습입니다.
지난 번 금요 심야기도회에서도 말씀을 드린 바가 있듯이, 과거 우리 부모세대 어른들은 남자는 그 집의 '주인장' '주인어른'이고 여자는 '부엌데기' '남자의 부속물'쯤으로 여기는 세대가 있었습니다.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거나 아이를 안아주거나 엎어주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 되는 세대가 있었습니다.
그런 어른들은 지금도 고정관념으로 인해서 아내에게 잘해 주어야 하는 걸 알지만 체질적으로 그것이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예수를 믿고 교회의 직분자가 되어서도 성경이 가르치는 아내 사랑에 순종하지 못하고 여전히 밖에서는 아내에게 친절하고 보살펴주는 모습으로 살지를 못합니다. 그러면서 성경이 무어라 하여도 이렇게 살아온 것이 우리네 삶이니 이제와서 바꾸기도 어렵다는 식으로 삽니다. 이것이 현대교회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가치관의 혼란, 한국적인 문화와 전통, 고정관념과 교회가 가르쳐 주는 말씀중심의 삶 사이에 혼란이 여전히 한국교회안에 내재하고 있음을 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믿는이들이 자신이 이제껏 어떤 식으로 살아왔던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하면 '아니구나'하고 뜯어 고치고 변화될 각오를 하였는가 하는 점입니다.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지금껏 그렇게 하고 살아왔어도 이젠 말씀에 맞추어 고칠 건 고쳐가며 살아야 하겠다는 열린 마음이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에녹은 360년동안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80년간의 삶을 여호와 하나님의 명을 받들면서 살았습니다. 지금의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고정관념, 선입견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 사이에 혼란의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는 과거의 어떤 가치관과 습성도 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앞에 굴복시킬 줄 아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노아와 그 가정이 혼란의 시기에 '의롭다'인정함을 받고 방주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바로 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앞에서 바로 서야 합니다.
사26:3-4 "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여호와 하나님이 지금 이 시대 우리들의 삶과 우리 가정의 삶의 모습을 보시면서 찾으시는 것은 "심지가 견고한 삶"입니다. 심지가 견고한 사람은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무엇도 흔들 수 없는 '평강'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27:1에서는 심지가 견고하지 않은 사람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시대를 꼬불꼬불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흔들리는 개인, 흔들리는 가정, 개인의 형편과 사정에 따라 심지도 없이 이렇게도 살아보고 저렇게도 살아보는 그런 사람을 여호와 하나님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신용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의 굳건한 반석위에 서 있을때, 손잡아 사용하시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내가 어떻게 살아야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실까"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살 때 반드시 확인해 보아야 하는 항목이 있습니다. 생선을 살때는 아가미를 뒤집어 봅니다. 과일을 살때에도 꼭지가 싱싱한지를 봅니다. 수박을 살때는 적당히 익어서 당도가 높은가 확인하느라고 두드려도 보고 살짝 칼집을 내어 속을 꺼내 보기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을 선별하시는 기준은 어떤 것일까요 "한평생 치우치지 않고 한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누가 뭐래도 그 사람은 말씀만 붙들고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를 생명처럼 여기면서 살아갈 사람이다 하면 바로 그런 사람을 들어 쓰시는 것입니다.
노아와 그 가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새로운 인류로 선발이 된 것은 그들의 '의로움' 때문이었습니다. 그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이 선별하실 때, 세속에 불들지 않고 세상의 가치관에 혼란을 겪거나 갈등하지도 않고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한 길을 간 사람들은 노아와 그 가족들 뿐이었더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2010년도의 '노아의 가정'입니까. 오늘 여호와 하나님이 이 세상에 대해서 진노하시고 심판하시고자 하실 때, 방주에 들이실 만큼 구별된 삶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가정이 어디에 있을까요 죄짓고 돈벌어 잘 사는 사람 부러워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양심을 팔아먹고 세상의 권력의 맛에 취해 살아가는 그런 사람을 부러워 하지도 마시길 바랍니다. 쾌락의 늪에 빠져서 자기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어떻게 망가지고 있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부러워 하지도 마시길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 주변에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이런 가정을 본 일이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그 가정". 만일 그런 사람을 볼 수 없거든, 성경의 노아의 가정을 바라보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어느때보다 지금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의로움'을 기대하시는 시대입니다. 특별히 가정의 의로움이 중요합니다. 부부지간의 의로움, 부모자녀간의 의로움, 형제간의 의로움, 다시말하면 가정안에서 경건과 정직과 순결함과 거룩함과 배려와 절제와 사랑을 볼 수 있다면 바로 그 가정이 2010년도의 노아의 가정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가정이 심판을 목전에 둔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앞에 의로움으로 인정받는 이 시대의 노아의 가정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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