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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성결한 가정을 위하여

본문

계시의 시작은 이렇게 됩니다. ’태초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 그러나 야곱의 가정중심 신학으로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태초 에 가정을 창조하시니라’ 이렇게 해 석을 하게 됩니다. 야곱은 이 땅에 태어나면서부터 그는 오직 하나의 신념을 세웠습니다. ’나는 어떻게 하 든지 행복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주인공이 되어야겠다. ’ 하는 것입니다. ’어찌해서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 는 그야말로 간발의 차의 순서 때문 에 내가 행복한 가정을 얻지 못한단 말인가’ 문화적 전통과 종교적 교 리, 그리고 관습 때문에 ’나는 왜 이 삭,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받지 못한 단 말인가! 나는 어떻게 하든지 이 것을 극복해야 겠다. ’는 그런 신념으 로 야곱은 일생을 살았습니다.
어쩌면 창세기에 나오는 족 장, 이를테면 아브라함, 그리고 이 삭, 요셉보다도 훨씬 야곱이 인간미 가 있는 사람이라고 보여집니다. 야 곱은 복받지 못할 행동을 하면서 복 받기 위해서 아버지에게 축복권을 쟁취하게 됩니다.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얻고, 그리 고 아버지를 속여서 축복기도를 받 지요. 그러나 그에게 찾아온 것은 평안도 아니고, 행복도 아니고, 죽음 이라는 그림자가 찾아오게 됩니다. 그는 할 수 없이 어머니 리브가의 소개를 받아서 외갓집으로 도망을 하게 됩니다. 그 도망하는 노정에 광야에서 하룻밤 야숙을 하게 됩니다. 돌 베개를 베고 누워서 하늘을 보니, 하늘에서는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습니다. 사방 어디엔 가는 야수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겠지요. 그리고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겨 있 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맙니다. 꿈에 땅에서부터 사닥다리가 하늘 꼭대기 까지 닿고, 그 사닥다리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도 듣습니다. 이제 그 이튿날 아침 에 일어나자 마자 돌 베개를 했던 돌을 세우고, 단을 쌓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여기가 벧엘이다. ’ 이 벧엘이라고 하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의 집이다. ’라는 뜻입니다. 물 론 이것을 성전 중심신학으로 해석 하면, ’예루살렘의 성전이 여호와 하나님의 집이다. ’ 이렇게 국한시킬지 모르겠 습니다만 그러나 적어도 야곱에게 있어서는 ’저 하늘이라고 하는 것은 지붕이다. 대지는 바로 나의 침실이 다. 나의 침대다. 그리고 수많은 자 연물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house다. ’ 그렇게 그는 고백합니다.
이런 야곱의 신앙으로 보 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우주만물을 창 조하신 것은 분명 가정의 창조이셨 습니다. 먼저 모든 자연물을 창조했 습니다. 하늘의 별과 태양과 그리고 달과 삼라만상을, 이것은 누구를 위 하여 사랑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해서 house, 집을 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나게 하시고, 그리고 사랑하게 하셔서 가정, home을 창조해 주신 것입니다. 그 home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다. ’ 사랑의 공동체를 여호와 하나님이 조성해 주신 것입니다. 그 리고 최종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이루신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 을 아담에게 부어주셨습니다. 그래 서 여호와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들의 공 동체, 교회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 셔서 결국 영적 공동체가 가정의 핵 이라는 사실을 여호와 하나님은 말씀해 주 셨습니다. 이에 대한 분명한 증거는 창세기 6장 말씀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왜 홍수를 통해서 인류를 멸하셨는 가 그 이유는 단 한가지, 인간들이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영을 저버렸기 때문 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떠났기 때문에 인간은 육체가 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 이 없는 가정,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지 않 는 가정, 여호와 하나님을 절대로 섬기지 않는 가정은 실상 바른 가정이 아니다. 온전한 가정이 아니다. ’라고 해 석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야곱은 나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이제부터 나는 복을 받게 될 것이다. ’ 믿음을 가지고, 라반의 집에 당도했습니다. 가보았더니 첫 번째,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라헬이 었습니다. 이 라헬이 얼마나 아름답 고 예쁜지, 사랑스러운지 라헬을 위 해서 7년을 하루같이 머슴생활을 14 년간하고, 이 라헬을 얻게 되어서 가정을 얻게 됩니다. 혹, ’이것이 복 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것 이 최고의 복이다. 그리고 사랑함에 자녀를 양육하는 것보다 더 좋은 복 이 어디 있느냐’ 그는 가정의 최고 의 복이라고 생각하고, 가장 행복한 생활이 거기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Home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막상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 고, 자녀를 양육하고 살아보니까 필 요한 것이 많아요. 몸의 건강도 필 요하고, 물질도 필요하고, 또 살아가 기에 많은 것들이 필요했어요. 그래 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 ’여호와 하나님, 내가 이제 물질 좀 많이 받아야겠습니다. 이제 알고 보니 부자가 되야 그것이 복된 가정이 되는군요. ’ 생각을 하면서 지 략과 기묘와 모든 묘안을 다 동원해 서 그가 물질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 내용이 야곱이 이제 에서를 만나 러 올 때, 그 장정을 이렇게 기록하 고 있습니다. ’두 떼를 이루었다. ’ 그 당시에 재산은 주로 유목생활을 하 기 때문에 가축이 재산입니다. 그야 말로 거부가 되었다는 의미의 말씀 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도우셔서 에서와의 화해도 이루어졌습니다. ’이제는 내가 정말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그리고 나는 복된 사람이 되었다. 편안하게 정말 기쁨으로 생 애를 살아보자. ’라고 생각을 하고, 세겜에 정착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창세기 34장 말씀에 보면, 이 아름다운 그야말로 행복된 가정, 구성원들은 아내 네 사람, 아 들 12사람, 물론 요셉은 없지만, 그 리고 딸도 있습니다. 이 구성원들이 복된 삶을 사는가 했지만, 뒤에 나 아가 하몰의 집에 놀러갔다가 족장 세겜의 눈에 띄어서 결국은 수치를 당하고 맙니다. 여러분, 그 당시의 전래를 보면, 족장이면 그 자기 부 족 영역 내에 있는 누구든지 불러서 즐길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야곱의 가정에서는 심각한 사건입니다.
여러분, 얼마 전에 보도된 사건을 아마 기억하실 것입니다. 정 여인이라고 하는 분이 자기의 딸을 넥타이로 목졸라 죽였습니다. 왜 죽 였냐고 물어봤더니 자기가 시집오기 전에 혼전 성경험이 있습니다. 이 일로 자기 남편과 일생 살면서 항상 죄책감에 시달려 살아왔습니다. 그 런데 얼마 전에 자기 딸이 외출을 했는데 가출을 했겠지요. 며칠 밤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돌아와서 어머니가 물어보았습 니다. ’네가 뭐하다가 이제 돌아왔느 냐’ 남녀 혼숙을 하고, 3일 밤이 지 나고 돌아왔다는 거예요. 이러니까 어머니 가슴이 메어집니다. ’너 이제 앞으로 시집가면, 나처럼 평생 죄책 감으로 살고, 불행스럽게 살아야 될 텐데 그렇게 살 바에는 죽어버려라. ’ 그래서 죽여버린 거에요.
여러분, 유대전통은 이렇습 니다. 결혼하지 않은 자기의 딸이 만약 순결을 잃어버리면, 돌로 쳐죽 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의 부족 사이에서는 차라리 자기의 아내가 몸을 더럽히는 것은 그래도 괜찮아 요. 외인이니까 출가하면 끝나요. 그 러나 자기 혈통을 가진 딸이 누이가 만약에 몸을 더럽히면 문중적 문제 에요. 자존심의 문제란 말이에요. 이 러기에 보복이 있을 수밖에 없지요. 유다를 중심으로 보복조를 만들어 보복을 합니다. 보복하는 것도 아주 야비합니다. 가장 신선해야 하는 할 례를 이용합니다. 하몰의 족속들에 게 강제로 할례를 시킵니다. 여러분 이렇게 표현하면 아시죠 할례를 다 시키니까 다들 꼼짝을 못합니다. 이 때, 공격해서 모두 죽여버리고 맙니다. 딸의 순결은 상실되고, 그야말로 숱한 사람에게 피를 흘리게 했습니다. 그 가정은 위기를 맞게 됩니다. 특별히 야곱은 이러한 사건이 벌어 지자 그 마음속에 심려가 대단했습 니다.
또 하나 두려운 것은 34장 30절 말씀에 보면, ’이제 내가 정착 민들 사이에 우거하고 있는데 내가 정착민과 싸움을 벌였으니 정착민들 이 연합군을 조성해서 우리 가정을 공격해오면, 우리 가정은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위기감속에 빠진 야곱의 가정을 보 게 됩니다. 공든 탑, 몸부림치면서 야비한 수단까지 동원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워 왔지만, 한꺼번에 물 거품처럼 지금,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고뇌하는 야곱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말 씀하십니다. 1절 말씀에 보면, ’하나 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 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 에 네게 나타났던 여호와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 지라’ 그랬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을 때, 그냥 이 렇게 말씀이기 때문에 읽습니다. 그 러나 생애 최고의 위기를 맞는 야곱 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한 자, 한 자 대단히 소중하게 그야말로 전심전력 으로 경청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렇다면, 우선 말씀을 천천히 우리도 살펴보십시다. 너희 가정에 문제가 생긴 것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결 하여야 하겠느냐, ’먼저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의 너의 자아로 돌아가라 하는 것입니다. 너 실존의 자아로 돌아가 보라. 너는 그 당시에 home이 있었느냐, 너의 아내와 12아들과 딸들이 너에 게 있었느냐 없었지 않았느냐, 아 무 것도 없었지 않았던 때도 있었지 않았느냐, 또 두 떼를 만난 물질적 풍요가 너에게 있었느냐 그렇지도 않지 않았느냐, 너는 도망자였고, 외 로운 사람이었고, 죽음이 너를 쫓아 오는 위기의 존재가 아니었더냐 너 는 모든 것을 훌훌 벗어버리고, 단 독자로 나와 함께 만나자. ’하는 것입 니다.
다윗이 전장을 나가보았습 니다. 블레셋군과 이스라엘이 전투 를 하는데 이건 전투가 아닙니다.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장사가 나타나 서 으름장을 놓는데 이스라엘 백성 들은 다들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이 때, 다윗은 ’내가 나가보겠습니다. ’ 이 때 이 말을 들은 사울이 영 특해서 ’그래 다윗 이리 와라. ’ 그 에게 사울이 쓰던 투구, 입던 갑옷, 칼, 방패 모두를 다 주면서 ’나가보 아라. 여호와 하나님이 도우실지 모르겠다. ’ 막상 입고, 움직여보니 불편합니다. 다윗은 다 벗어버리고, 목동의 모습 그대로, 목동의 무기만 들고, 그는 단독자로 여호와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하 면서 골리앗에게로 나아갔습니다. 여호와 이름으로 나갔던 그는 대승 리를 거두게 됩니다.
우리는 가끔씩 생애를 살면 서 내가 가진 것, 그리고 나의 삶의 조건들, 또 내가 얻었다고 생각하는 명예, 그리고 내 자신과 관계되는 모든 것들이 없으면 안될 줄 알고, 그것에 너무 강하게 집착되어 붙들 려 있을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인 생은 위기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제 얘기를 말 씀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저는 어릴 적에 농촌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반찬을 챙겨주는 그러한 대접을 받 아본 일이 별로 없이 유년시절을 보 냈습니다. 그러니까 어릴 적부터 입 맛으로 음식을 먹지, 밥맛으로 먹는 법이 없습니다. 여러분, 실험해 보시 겠습니까 누구든지 초청해서 밥 한 그릇, 고추장 한 그릇만 주면 충분 히 먹어치웁니다. 일생동안 저는 한 번도 반찬을 해본 일이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우리는 우리 의 환경과 우리가 후천적으로 얻어 진 모든 것들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습성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나약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 나님 앞에 단독자로 순수하게 서 보 라는 것입니다. ’처음에 자기로 돌아 가 보라. ’
두 번째, 여호와 하나님 말씀은 이 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로 오라. ’는 것입 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을 단 순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흔히 듣 습니다. 그러나 마틴 루터의 이야기 를 들어보십시오. ’당신의 마음이 붙 들려 있는 것이 바로 당신의 신이라 고 생각해 보았는가!’ 내 마음이 붙 들려 있는 곳이 나의 신이란 말이에 요.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에 집착되 어져 있습니까 여러분의 관심은 다 어디에 매어져 있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최고로 생각하는 가치관이 무 엇입니까 그것들이 다 신이란 말이 에요. 라인홀드 니버는 이렇게 말합 니다. ’우상이란, 무신론에 대한 이 야기가 아니라 현대를 뒤덮는 날마 다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닥쳐오는 문제, 바로 거기에 다 나의 모든 관심을 모두 집중하 고, 거기에 모든 것을 쏟아놓는 문 제가 우리의 우상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인생을 경영하고 있는지 모 르지만, 우리 모두다는 팽배한 절대 적인 욕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것은 행복한 가정입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행 복한 가정을 위하여 일생을 몸부림 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행복한 가정이 무너질까봐, 라헬이 라반의 집에서 훔쳐온 드라빔까지 가지고 있고, 그것을 부적처럼 우상 처럼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 씀에는 2절에 기록된 내용을 살펴볼 때,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 결케 하고’하는 것을 보면, 가정 행 복을 절대화하기 때문에 가정 행복 을 그는 꼭 이루고 누리기 위해서 다른 어떤 종교적 행위도 다 이 일 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다 받아들 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바로 이것이 우상숭배가 된 것입니다. 내 면으로는 행복한 가정이 우상숭배 고, 외적으로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 서 섬기는 행위가 우상숭배 행위가 된 것입니다. 요즘, 교회밖에는 포스 트모더니즘, 이러한 신학이 지금 점 점 창일해 가고 있습니다.
이제 부처님 오시는 날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저 로마 교 황청은 메시지를 보내, 축하의 메시 지를 보냈습니다. ’부처님 잘 오셨습 니다. 축하합니다. ’ 또 성탄절이 되 면, 불가에서는 교회에다가 ’예수님, 잘 오셨습니다. ’ 여러분, 들어보니까 대단히 화평하고, 평화가 있고, 종교 분쟁의 요소를 제거하는 아름다운 일처럼 생각되며, 덕이 있고 폭이 넓어 보인다.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 지만, 여기에 바로 문제가 있습니다. 이 양대 집단들은 인간의 행복이 최 고의 목표입니다. 인간의 행복이 구 원의 쟁점입니다. 그런고로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길을 찾 아갈 수 있지 않느냐, 불교의 부다 이즘을 통해서 찾아갈 수 있고, 천 주교의 미사를 통해 찾아갈 수도 있 고, 회교를 힌두교를 다양한 길로 더듬어 찾아 행복에로 갈 수 있지 않느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분명 히 알아야 할 것은 주체는 내가, 행 복이라는 절대적 어떤 목표를 향해 서 종교적 행위를 해가고 있다는 이 야기입니다. 여기에 여호와 하나님은 없습 니다. 여기에는 바로 계시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야곱이 현 재 위기를 당했던 영성과 동일한 모 습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 나님에게로 돌아오라. 여호와 하나님을 절 대 자유로 세워라. ’ 여러분 5월 첫주 일에 여러분 마음속에 벧엘에 가서 야곱의 가정이 했던 성결의 액션, 행위가 있어져야 합니다. ’무엇인가! 나는 결코 행복을 위하여 예수를 믿 지 않는다. 여호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 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사람으로 살아 가기 위하여서 성결해지기 위해서 예수 믿는다. ’ 이것으로 만약 바뀌어 지지 않으면 여러분은 위기를 맞는 야곱의 가정과 같은 삶을 반복해 살 아가게 될 것입니다. 적어도 여호와 하나님 을 위한 여호와 하나님에 의한, 여호와 하나님의 가정이 되어야지, 나를 위하여 나의 의한 그리고 나의 가정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처음 가 정을 창조해 주실 때, 교회성, 즉 교 회성이 home과 그리고 house를 온 전히 다스릴 때만이 진정한 복된 가 정이 될 수 있고, 기뻐하는 가정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야 곱의 가정은 모두를 버립니다. 4절 말씀에 보면, ’그들이 자기 손에 있 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 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 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었다. ’ 그랬습니다. 이 묻었 다고 하는 말을 우리는 이렇게 재해 석해야 합니다. ’우리는 절대자리에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자 내가 절대적 존재 도 아니요, 내가 추구하는 어떤 행 복도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는 것입 니다. 이것을 바꾸지 아니하면, 정녕 참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사는 가정을 이룰 수가 없다. ’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말씀을 찾아보면 ’거기서 단을 쌓으라’하는 말이 있습 니다. 이 단이라고 하는 말은 제사 를 의미합니다. 제사에서 가장 중요 한 것은 제물입니다. 제사에서 가장 잘못된 제사는 제물이 분리되는 것 입니다. 이를테면 성경에 적당한 예 물을 드리라고 했으니 적당한 예물, 동물이나 곡물을 갖다 드리는 것으 로 제사를 완성했다고 생각하면 이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드리는 자 가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치, 드리는 자가 제물이 되고, 드 리는 예물이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제단을 쌓아라. 단을 쌓아라’하는 말은 ’너희는 이제 신앙개혁을 하라. 영성의 순결성을 회복하라.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성을 회복하라.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초기 청교도 역사 중에 보면, 큰 신앙적 영향을 주었 던 조나단 에드워드의 가정을 봅니다. 이 에드워드는 신혼 초기부터 믿음 좋은 처녀와 함께 신령한 가 정,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가정을 경영해 갔습니다. 그리고 또 같은 세대, 같 은 연배의 다른 한 사람, 맥스 쥬크 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믿음 중심이 아니고, 아름다움 중심 으로 여인을 얻어서 방탕한 여인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가 계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에드워드 가정은 자손이 617명 낳았을 쯤 되 어서 조사를 해보았더니 그 후손들 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대학총장이 12명, 교수가 75명, 의사 60명, 성직 자가 100명, 군 장교 75명, 저술가 80명, 변호사 100명, 판사 30명, 공 무원 80명, 하원의원 3명, 상원의원 1명, 미국 부통령이 1명이 그 가계 에 태어났습니다. 맥스 쥬크가 자손 을 1,292명 낳았을 때, 조사를 해보 았더니 유아사망 309명, 직업적 거 지 310명, 불구자가 440명, 매춘부가 50명, 도둑놈이 60명, 살인자가 70 명, 그리고 그럭저럭 살다가 죽은 사람이 53명.
여러분,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하 나님으로 절대로 모시고, 여호와 하나님 한 분을 참 섬기는 가정이 될 때에 그 다음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신실하시게 성경 에 언약한대로 여러분에게 허락할줄 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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