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가정 회복의 모델
본문
오늘 저는 창세기 50장을 설교함으로써 그 동안 매주일 창세기를 연속 강해 하면서 설교자의 행복과 고통을 맛보았던 하나의 긴 과정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는 참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창조와 구원의 경륜이 기록된 놀라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떤 때는 그 옛날에 일어났던 고대 이스라엘 족장 가정에 얽힌 복잡한 이야기가 오늘날 이처럼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무슨 실제적인 교훈이 되겠는가 의심스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설교를 작성할 때마다 이러한 나의 염려는 쓸데없는 걱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오히려 나의 준비가 모자라고 깊이 묵상하지 못하여 본문 말씀 속에 감추어진 보화를 다 캐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든지 창세기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오늘의 이 시대를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것을 준비해 주셨는데 설교자인 나 자신의 역부족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야곱이 죽자 요셉과 그 형제들은 슬퍼하여 통곡하고 애굽의 왕족에 해당하는 장례절차를 행하였으며, 유언대로 가나안 땅에까지 가서 안장한 후에 일어난 사건이 기록되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아버지 야곱이 죽자 요셉을 두려워했습니다. 자신들이 과거에 저질은 죄로 인하여 요셉이 보복할 것을 두려워 했습니다. 요셉이 이미 용서했다 하나 그것은 아버지 야곱을 보고 겉으로 용서한 것이지 속에서부터 용서가 되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자신들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인 것을 알수록 당대의 최대 강국 애굽의 총리 대신 요셉이 겁났습니다. 의심이 생겼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형제의 우애에 위기가 왔습니다.
가인과 아벨 사이를 이간하던 죄가 침투하려고 했습니다. 형제간의 결속이 깨어지려는 순간이었으나 요셉은 눈물로 형들을 설득하고 큰 사랑으로 덮어서, 새롭게 이스라엘 공동체가 결속되는 장면입니다.
야곱이 죽으니 거의 애굽의 국장에 준하는 절차로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애굽의 풍속에 따라 시체를 미이라로 만들어 부패하지 않게 하려고 전문 의사를 동원해서 40일간이 소요되었고, 70일간의 곡하는 기간에 수많은 백성들이 조문했습니다.
요셉은 바로에게 아비의 유언대로 장사하게 해 달라고 청하니 바로는 병 거와 기병으로 호위케 하고 많은 호 상군이 따르니 그 행 열이 어마어마하였습니다. 요단강 건너편 아닷 타작마당에 이르러 7일간 거기서 애통하여 호 곡하니 백성들이 모두 놀랐습니다.
요셉의 아버지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었습니다. 요셉의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더욱 어린 시절의 아버지 사랑이 그리워서 통곡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제 역사는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이르는 단일 가족의 시대가 끝나고 12아들이 각기 지파를 이루어 출발하게 되는 시점입니다.
그런데 이 전환의 시기에 위기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공동체로서의 한 가정에 위기가 온 것입니다. 야곱이 죽으니, 야곱을 중심으로 뭉쳤던 요셉의 형제들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15절을 보겠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그러니까 야곱이 죽자마자 형제들의 마음에 동요가 왔다는 것입니다.
고센 땅에서 17년간이나 잘 지냈는데, 그 평화가 하루아침에 무너졌습니다. 야곱이 나이 늙어서 별로 하는 일도 없었는데도 야곱의 생존기간 동안에는 그들 사이에 평화와 결속이 유지 되었습니다.
야곱의 존재, 아버지의 존재, 언약 가문의 수장의 권위가 있는 한 그들은 잘 지냈는데, 그가 돌아가시니 평화가 흔들리고, 의심과 두려움, 불신이 자라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권위가 사라지게 되니, 형제사랑의 보장이 없어졌습니다.
요셉은 워낙 높은 자리에 있으니 함께 하기가 어렵고 다른 형제들끼리 만나서 요셉을 비판하고, 혹은 의심하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권위가 사라진 곳에 오는 혼란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근원적인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야곱이 죽은 후의 요셉 형제들의 불신과 같이, 도덕적 권위 영적 권위가 상실된 세상에서 서로 의심하고 불신하고 미워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직 이기주의, 자기 중심주의만 남아 있기 때문에 위기입니다.
아버지가 없는 세상, 스승이 없는 학교, 목회자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교회, 이것이 오늘 우리 사회의 위기 상황입니다. 만일 설교자가 "사랑은 희생이 따라야 한다"고 설교했다고 칩시다. 그 설교를 들은 주부의 반응은 어떤지 아십니까 "그건 지난 시대의 고리 타분한 논리입니다.
나는 남편을 위해서 희생할 수 없습니다. 내가 만약 그를 위해 희생한다면 아마 나는 전부를 잃게 될 거 에요. 내가 그 사람을 위해 바보처럼 희생하면서 살면, 남편은 나를 매력없는 여자, 주관도 없는 여자로 볼지도 몰라요. 나를 무시 할거 에요.
그러니 내가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도 나는 이기적이 될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다가 그이가 나를 싫어하면 그 때는 헤어지면 되니까요. "
현대인들은 사랑과 희생이라는 성경적 교훈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모든 권위를 거부합니다.
아버지 없는 후레 자식들이 되어갑니다. 결국 여호와 하나님을 거부하는 세상입니다. 중심이 없으니 세상이 흔들립니다. 방향이 없이 떠들기만 합니다. 신문의 드라마 평을 언제 보니까 최근 방영되는 TV드라마는 한결같이 정상적 가정이 없고 부모 자식이 복잡한 관계의 주인공들이 나오고, 아버지는 무력하고 바보스럽게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가정의 붕괴는 곧 아버지의 붕괴가 상징하는 도덕적 권위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야곱이 힘없는 늙은이였으나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요셉 형제들에게 이상이 없었으나 그가 죽으니 이상이 생기고 신화가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형들의 두려워함을 듣고 17절 끝에 보면 "요셉이 울었더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형제 우애, 형제 신의가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보고 통탄하며 울었던 것입니다. 18절에 보니 형들이 요셉 앞에 나와서 엎드려 하는 말이 "우리는 당신의 종입니다" 하였으니, 이는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종살이를 해도 좋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로 살 방도를 의논하다가 생명을 잃지 않으려면 종이라도 되어야 할 것이라는
결론을 얻은 것 같습니다. 요셉은 꿈에도 형들을 죽이려는 계획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자기들 생각대로 상상했습니다.
"우리가 저를 죽이려 했고, 노예상인에게 팔아먹었는데, 왜 그 속에 원수 갚을 생각이 없겠느냐 아버지 살아 계실동안에는 우리를 선대했으나 아버지 안 계시니 이제 우리 생명은 끝났구나. 가서 목숨만 살려 주면 종이라도 되겠다고 먼저 무릎 꿇고 간구해보자".
오늘날도 얼마나 많은 경우에 서로 오해하고, 밤새 고민하고, 힘겨루기 하다가 무릎을 꿇기도 하고 꿇리기도 하는지 모릅니다.
요셉은 형들이 무릎 꿇고 비는 것을 볼 때 가슴이 아파서 울었습니다. 형제 사랑이란 이렇게 힘이 없는 것이구나.
왜 우리가 서로 믿지 못하는 관계가 되었는가 슬피 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요셉은 심히 답답하였을 것입니다. 자기의 가슴을 열어 보일 수도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시대는 말세입니다.
말세에는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24:12)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는 말세에 사랑이 식어진다고 했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 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딤후3:1-3).
이것이 말세의 특징인데, 사랑이 식어지고 나니 사람들이 거칠어지고, 절제하지 못하니, 고통을 당하고, 모두 자기만 사랑하게 되니 가정이 깨어지고, 형제간의 우의도 깨어지게 됩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가 많아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의 회복입니다. 가정의 회복은 사랑의 회복입니다.
사랑의 회복은 사랑의 근원이신 신앙의 회복에서 찾아야 합니다. 본문 19절에서 21절까지의 말씀을 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여호와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요셉은 형들을 이해시키고, 무너진 형제애, 무너진 가족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지금 아버지 야곱이 게시지 않지만, 그 아버지의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아버지 야곱도 당신들의 생명의 담보가 되었다면,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는 더욱 당신들을 보호하실 것이 아닙니까 젊은 시절 당신들이 내게 악으로 행한 것도 사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민의 생명을 구하시려고 행하신 일입니다.
요셉은 아버지 돌아가신 지도력의 빈자리, 무너져 가는 가족관계를 세우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와 사랑,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의 섭리를 설명했습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는 증거로써 당신들뿐 아니라 당신들의 자녀들까지 책임지고 기르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옛날 이웃나라의 장수가 군대를 몰아 평화스러운 한 성읍을 점령했습니다. 적장은 그 성 읍의 주민에게 포고령을 내렸습니다. "성내에 있는 모든 부녀자와 어린이는 가장 귀중한 보물 하나씩만 가지고 오늘 자정 안으로 이 성을 나가라" 이미 모든 남정네들은 적의 칼에 쓰러져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통곡하면서 자기가 가장 아끼는 것 하나씩 들고 울면서 성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한 여인이 아무런 보물을 가지지 아니하고 적의 칼에 부상당한 남편을 없고 성문을 빠져나가려 했습니다. "담도 크구나. 너마저 죽고 싶으냐" 적장이 말했습니다.
여인은 대답하기를 "장군께서 약속하시기를 가장 귀중한 보물 하나를 들고나가라고 하였지요. 제가 업은 이것이 장군께는 비록 하찮아 보이는 것이 오나 제게는 가장 귀중한 보물입니다. 약속을 지켜 주십시오. "
그 말을 듣고 적장은 감탄하여 그들을 성밖으로 내보내 주었다고 합니다. 그 여인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렸습니다. 여러분!적군에게 성 읍이 불타고 남정네들이 칼에 쓸어져 죽어가고 있으며 성밖으로 나가라고 하는 상황은 정말 모든 것이 무녀진 현실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이지만 이 여인은 가장 소중한 남편을 가장 소중한 가정을 가지고 나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죽어가는 남편을 포기하고, 금 덩 어리나 보석을 들고 나갔을 터인데 이 여인은 가정을 보물로 생각하고 남편을 업고 나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다 무너져 버린 세상이라 할지라도 거기서 우리는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언약 가문에 야곱은 죽었으나 야곱에게 언약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세상의 모든 권위는 무너졌으나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십자가의 은혜는 변하지 않습니다. 무너진 형제애, 무너진 가족관계를 재건하고 회복하는 길은 육신의 아버지 대신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그 앞에서 새롭게 관계를 정립하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행여나 우리의 형제가족 관계가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사랑이 식어져서 고통스럽습니까 요셉과 같이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정이 회복되는 축복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교회 안에서의 성도간의 관계는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를 깨닫고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요셉이 높은 자리에서 겸손히 내려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보인 것 같이 예수님은 보좌에서 내려와 우리를 한없는 사랑으로 덮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밖에 가정회복의 길이 없습니다. 모든 무너진 가정들이 회복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때는 그 옛날에 일어났던 고대 이스라엘 족장 가정에 얽힌 복잡한 이야기가 오늘날 이처럼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무슨 실제적인 교훈이 되겠는가 의심스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설교를 작성할 때마다 이러한 나의 염려는 쓸데없는 걱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오히려 나의 준비가 모자라고 깊이 묵상하지 못하여 본문 말씀 속에 감추어진 보화를 다 캐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든지 창세기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오늘의 이 시대를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것을 준비해 주셨는데 설교자인 나 자신의 역부족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야곱이 죽자 요셉과 그 형제들은 슬퍼하여 통곡하고 애굽의 왕족에 해당하는 장례절차를 행하였으며, 유언대로 가나안 땅에까지 가서 안장한 후에 일어난 사건이 기록되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아버지 야곱이 죽자 요셉을 두려워했습니다. 자신들이 과거에 저질은 죄로 인하여 요셉이 보복할 것을 두려워 했습니다. 요셉이 이미 용서했다 하나 그것은 아버지 야곱을 보고 겉으로 용서한 것이지 속에서부터 용서가 되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자신들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인 것을 알수록 당대의 최대 강국 애굽의 총리 대신 요셉이 겁났습니다. 의심이 생겼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형제의 우애에 위기가 왔습니다.
가인과 아벨 사이를 이간하던 죄가 침투하려고 했습니다. 형제간의 결속이 깨어지려는 순간이었으나 요셉은 눈물로 형들을 설득하고 큰 사랑으로 덮어서, 새롭게 이스라엘 공동체가 결속되는 장면입니다.
야곱이 죽으니 거의 애굽의 국장에 준하는 절차로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애굽의 풍속에 따라 시체를 미이라로 만들어 부패하지 않게 하려고 전문 의사를 동원해서 40일간이 소요되었고, 70일간의 곡하는 기간에 수많은 백성들이 조문했습니다.
요셉은 바로에게 아비의 유언대로 장사하게 해 달라고 청하니 바로는 병 거와 기병으로 호위케 하고 많은 호 상군이 따르니 그 행 열이 어마어마하였습니다. 요단강 건너편 아닷 타작마당에 이르러 7일간 거기서 애통하여 호 곡하니 백성들이 모두 놀랐습니다.
요셉의 아버지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었습니다. 요셉의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더욱 어린 시절의 아버지 사랑이 그리워서 통곡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제 역사는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이르는 단일 가족의 시대가 끝나고 12아들이 각기 지파를 이루어 출발하게 되는 시점입니다.
그런데 이 전환의 시기에 위기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공동체로서의 한 가정에 위기가 온 것입니다. 야곱이 죽으니, 야곱을 중심으로 뭉쳤던 요셉의 형제들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15절을 보겠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그러니까 야곱이 죽자마자 형제들의 마음에 동요가 왔다는 것입니다.
고센 땅에서 17년간이나 잘 지냈는데, 그 평화가 하루아침에 무너졌습니다. 야곱이 나이 늙어서 별로 하는 일도 없었는데도 야곱의 생존기간 동안에는 그들 사이에 평화와 결속이 유지 되었습니다.
야곱의 존재, 아버지의 존재, 언약 가문의 수장의 권위가 있는 한 그들은 잘 지냈는데, 그가 돌아가시니 평화가 흔들리고, 의심과 두려움, 불신이 자라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권위가 사라지게 되니, 형제사랑의 보장이 없어졌습니다.
요셉은 워낙 높은 자리에 있으니 함께 하기가 어렵고 다른 형제들끼리 만나서 요셉을 비판하고, 혹은 의심하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권위가 사라진 곳에 오는 혼란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근원적인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야곱이 죽은 후의 요셉 형제들의 불신과 같이, 도덕적 권위 영적 권위가 상실된 세상에서 서로 의심하고 불신하고 미워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직 이기주의, 자기 중심주의만 남아 있기 때문에 위기입니다.
아버지가 없는 세상, 스승이 없는 학교, 목회자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교회, 이것이 오늘 우리 사회의 위기 상황입니다. 만일 설교자가 "사랑은 희생이 따라야 한다"고 설교했다고 칩시다. 그 설교를 들은 주부의 반응은 어떤지 아십니까 "그건 지난 시대의 고리 타분한 논리입니다.
나는 남편을 위해서 희생할 수 없습니다. 내가 만약 그를 위해 희생한다면 아마 나는 전부를 잃게 될 거 에요. 내가 그 사람을 위해 바보처럼 희생하면서 살면, 남편은 나를 매력없는 여자, 주관도 없는 여자로 볼지도 몰라요. 나를 무시 할거 에요.
그러니 내가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도 나는 이기적이 될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다가 그이가 나를 싫어하면 그 때는 헤어지면 되니까요. "
현대인들은 사랑과 희생이라는 성경적 교훈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모든 권위를 거부합니다.
아버지 없는 후레 자식들이 되어갑니다. 결국 여호와 하나님을 거부하는 세상입니다. 중심이 없으니 세상이 흔들립니다. 방향이 없이 떠들기만 합니다. 신문의 드라마 평을 언제 보니까 최근 방영되는 TV드라마는 한결같이 정상적 가정이 없고 부모 자식이 복잡한 관계의 주인공들이 나오고, 아버지는 무력하고 바보스럽게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가정의 붕괴는 곧 아버지의 붕괴가 상징하는 도덕적 권위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야곱이 힘없는 늙은이였으나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요셉 형제들에게 이상이 없었으나 그가 죽으니 이상이 생기고 신화가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형들의 두려워함을 듣고 17절 끝에 보면 "요셉이 울었더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형제 우애, 형제 신의가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보고 통탄하며 울었던 것입니다. 18절에 보니 형들이 요셉 앞에 나와서 엎드려 하는 말이 "우리는 당신의 종입니다" 하였으니, 이는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종살이를 해도 좋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로 살 방도를 의논하다가 생명을 잃지 않으려면 종이라도 되어야 할 것이라는
결론을 얻은 것 같습니다. 요셉은 꿈에도 형들을 죽이려는 계획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자기들 생각대로 상상했습니다.
"우리가 저를 죽이려 했고, 노예상인에게 팔아먹었는데, 왜 그 속에 원수 갚을 생각이 없겠느냐 아버지 살아 계실동안에는 우리를 선대했으나 아버지 안 계시니 이제 우리 생명은 끝났구나. 가서 목숨만 살려 주면 종이라도 되겠다고 먼저 무릎 꿇고 간구해보자".
오늘날도 얼마나 많은 경우에 서로 오해하고, 밤새 고민하고, 힘겨루기 하다가 무릎을 꿇기도 하고 꿇리기도 하는지 모릅니다.
요셉은 형들이 무릎 꿇고 비는 것을 볼 때 가슴이 아파서 울었습니다. 형제 사랑이란 이렇게 힘이 없는 것이구나.
왜 우리가 서로 믿지 못하는 관계가 되었는가 슬피 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요셉은 심히 답답하였을 것입니다. 자기의 가슴을 열어 보일 수도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시대는 말세입니다.
말세에는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24:12)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는 말세에 사랑이 식어진다고 했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 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딤후3:1-3).
이것이 말세의 특징인데, 사랑이 식어지고 나니 사람들이 거칠어지고, 절제하지 못하니, 고통을 당하고, 모두 자기만 사랑하게 되니 가정이 깨어지고, 형제간의 우의도 깨어지게 됩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가 많아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의 회복입니다. 가정의 회복은 사랑의 회복입니다.
사랑의 회복은 사랑의 근원이신 신앙의 회복에서 찾아야 합니다. 본문 19절에서 21절까지의 말씀을 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여호와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요셉은 형들을 이해시키고, 무너진 형제애, 무너진 가족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지금 아버지 야곱이 게시지 않지만, 그 아버지의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아버지 야곱도 당신들의 생명의 담보가 되었다면,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는 더욱 당신들을 보호하실 것이 아닙니까 젊은 시절 당신들이 내게 악으로 행한 것도 사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민의 생명을 구하시려고 행하신 일입니다.
요셉은 아버지 돌아가신 지도력의 빈자리, 무너져 가는 가족관계를 세우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와 사랑,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의 섭리를 설명했습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는 증거로써 당신들뿐 아니라 당신들의 자녀들까지 책임지고 기르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옛날 이웃나라의 장수가 군대를 몰아 평화스러운 한 성읍을 점령했습니다. 적장은 그 성 읍의 주민에게 포고령을 내렸습니다. "성내에 있는 모든 부녀자와 어린이는 가장 귀중한 보물 하나씩만 가지고 오늘 자정 안으로 이 성을 나가라" 이미 모든 남정네들은 적의 칼에 쓰러져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통곡하면서 자기가 가장 아끼는 것 하나씩 들고 울면서 성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한 여인이 아무런 보물을 가지지 아니하고 적의 칼에 부상당한 남편을 없고 성문을 빠져나가려 했습니다. "담도 크구나. 너마저 죽고 싶으냐" 적장이 말했습니다.
여인은 대답하기를 "장군께서 약속하시기를 가장 귀중한 보물 하나를 들고나가라고 하였지요. 제가 업은 이것이 장군께는 비록 하찮아 보이는 것이 오나 제게는 가장 귀중한 보물입니다. 약속을 지켜 주십시오. "
그 말을 듣고 적장은 감탄하여 그들을 성밖으로 내보내 주었다고 합니다. 그 여인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렸습니다. 여러분!적군에게 성 읍이 불타고 남정네들이 칼에 쓸어져 죽어가고 있으며 성밖으로 나가라고 하는 상황은 정말 모든 것이 무녀진 현실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이지만 이 여인은 가장 소중한 남편을 가장 소중한 가정을 가지고 나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죽어가는 남편을 포기하고, 금 덩 어리나 보석을 들고 나갔을 터인데 이 여인은 가정을 보물로 생각하고 남편을 업고 나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다 무너져 버린 세상이라 할지라도 거기서 우리는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언약 가문에 야곱은 죽었으나 야곱에게 언약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세상의 모든 권위는 무너졌으나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십자가의 은혜는 변하지 않습니다. 무너진 형제애, 무너진 가족관계를 재건하고 회복하는 길은 육신의 아버지 대신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그 앞에서 새롭게 관계를 정립하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행여나 우리의 형제가족 관계가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사랑이 식어져서 고통스럽습니까 요셉과 같이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정이 회복되는 축복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교회 안에서의 성도간의 관계는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를 깨닫고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요셉이 높은 자리에서 겸손히 내려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보인 것 같이 예수님은 보좌에서 내려와 우리를 한없는 사랑으로 덮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밖에 가정회복의 길이 없습니다. 모든 무너진 가정들이 회복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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