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야곱 가정의 번민
본문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근심과 걱정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할 때가 가끔씩 있습니다.
어디에나, 언제나, 누구에게나 염려와 근심은 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가 가운데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 진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 드리세"(487장)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열심히 잘 섬기는 사람에게도 예외는 아닙니다. 조금 전 봉독한 본문에는 야곱과 그의 온 가족들이 심각한 번민에 빠져 그 해결책을 찾고자 상의하는 장면이 나타나 있습니다. 야곱이 살고있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먹을 양식이 없어 아우성입니다. 그런데 애굽에는 아주 지혜로운 요셉이란 국무총리가 나라를 다스리는 까닭에 양식이 풍부했습니다. 그것은 흉년을 대비하여 풍년의 때에 곡식을 많이 예비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애굽으로 양식을 구하러갔습니다.
야곱도 양식을 구하고자 열 명의 아들을 애굽으로 보냈습니다. 그 나라의 국무총리인 요셉은 이들을 보자 22년 전 자기를 이 곳으로 팔았던 형들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이 나라의 총리가 22년 전 자기들이 미워하며 애굽의 노예로 팔았던 동생 요셉임을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지만 총리의 위엄을 갖추고 권세의 자리에 앉아있는 22년 전의 동생을 알아볼 리가 없었습니다. 만감이 교차했을 요셉은 자기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그들에게 깨달음을 주고자 가장 성격이 난폭했던 둘째형인 시므온을 억류시키고 다른 형제들은 곡식을 주어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조건을 제시하기를 막내 동생 베냐민을 이 곳으로 데리고 와야 너희의 형제인 시므온을 돌려보내겠다고 했습니다. 베냐민은 요셉의 친동생이기에 그를 보고싶어한 까닭이었습니다. 그 후 얼마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야곱의 가정은 60명이 넘는 대가족이었기에 애굽에서 가져온 양식은 이미 다 먹고 없었습니다.
애굽나라의 국무총리가 자기의 아들 요셉임을 알리 없는 야곱은, 요셉은 이미 22년전 죽은 것으로만 알고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곡식을 구하러 애굽으로 보내자니 이미 아들 시므온이 애굽에 억류되었는데 막내아들 베냐민의 신변이 염려되었습니다. 요셉과 베냐민은 야곱이 가장 사랑한 아내 라헬이 낳은 아들입니다. 더욱이 라헬은 베냐민을 낳다가 산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므로 요셉과 베냐민에 대한 아버지 야곱의 마음은 각별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이미 22년 전 아들들이 노예로 팔아 넘긴 후 짐승에게 물려 죽었다고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노예로 팔려간 요셉은 지금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 아들이 죽은 줄만 알고 있습니다. 죽은 아들 요셉에 대한 한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이제 베냐민마저 애굽으로 보내는 것은 아버지의 마음에 용납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하여 베냐민을 보내지 않으면 이미 그 곳에 억류되어 있는 시므온도 곡식도 구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애굽이 아니면 이 극심한 흉년에 그 어디에서도 곡식을 구할 수 없어 가족은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참으로 딱한 처지였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놓고 야곱과 아들들이 논쟁을 하다가 할 수 없이 야곱은막내아들 베냐민을 애굽으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이에 대한 야곱의 애 타는 마음을 본문에 기록하기를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창세기 43:13-14) 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멀쩡하게 살아있는 아들을 죽은 것으로만 알고 한을 안고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토록 그리워하며 살아온 아들 요셉에게 다른 자식을 보내면서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당시 최대의 부자 나라인 애굽의 총리가 자기 아들인데도 이를 알지 못하고 먹을 양식이 없어 번민하고 있습니다. 이 안타까운 야곱 가정의 경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심고 거두는 삶의 이치를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7-8) 하셨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삶을, 심고 거두는 농사에 비유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의 옛말에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이치의 말입니다.
야곱은 그의 일생동안 많은 속임을 당했습니다. 그의 젊은 시절 외삼촌 집에서 머슴살이를 할 때에 외삼촌에게 품삯을 열 번이나 속았습니다. 장가들 때에도 외삼촌에게 또 속아 아내를 얻는 대가로 14년의 머슴살이를 더했습니다. 그리고 아들들에게 속습니다. 아들들이 볼 때에 아버지 야곱이 열 한 째 아들 요셉만을 사랑하는 것 같아 이를 시기하며 미워한 나머지 동생을 노에로 팔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동생이 맹수에게 물려 죽은 것처럼 하고자 염소를 잡아 그 피를 요셉의 옷에 적신 후 그 옷을 아버지에게 보였습니다. 이 후로 야곱은 아들 요셉이 짐승에게 물려 죽은 것으로 알고 22년을 지냈습니다. 왜 야곱은 이처럼 계속 속임을 당했을까요 그것도 남이 아닌 외삼촌과 자식들에게 속았습니다. 그 까닭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신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야곱은 일찍이 지혜롭지 못한 형을 속였고, 연로하여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였습니다(창세기 27장). 이렇게 하여 장자에게만 주어진 특권을 가로챘습니다. 야곱이 심은 거짓의 씨앗은 사라지지 않고 44년간 그를 따라 다니며 속음의 열매를 맺었고, 또 야곱은 거두어야만 했습니다. 땅에 심겨진 씨앗은 한 알 그대로 있지 않고 수십 배의 열매를 맺듯, 야곱이 심은 거짓의 씨앗 또한 이처럼 열매를 맺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와 형, 이렇게 두 번을 속였는데, 야곱은 그 열매로 44년간 수 없는 속임의 열매를 거두어야만 했습니다.
어떠한 삶을 살던 살아가는 것은 내 자유이나, 그 결과는 내 자유대로 되지 않습니다. 야곱이 자기는 아버지와 형을 속였지만 자신은 속고싶지 안았을 것입니다. 남에게 속임을 당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야곱은 어쩔 수 없이 속아야만 했습니다. 이로 인해 긴 세월을 한숨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진실한 삶을 바라고 계십니다. 정직한 사람에게 복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 사람이 행한 대로 얻게 하십니다. 사람의 행함은 땅에 심는 씨앗과 같습니다. 그 씨앗의 열매는 자신이 살아있을 때만 아니라 대를 이어 열매를 맺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성실한 삶의 씨앗을 심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만일 교만한 삶을 살아간다면 이웃으로부터 멸시와 패망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의 삶을 살아간다면 기대하는 축복대신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널리 알려진 두 가문의 이러한 통계가 있습니다.
요나단 에드워드의 아버지는 목사였고, 그의 어머니는 목사의 딸이었습니다. 이 에드워드가에서 대학총장 14명, 교수100여명, 판사30명, 의사60명, 목회자와 신학자와 선교사가 100여명, 작가가 60명이 배출되었습니다.
반면 흉폭한 주크가의 후손 1200명 가운데, 직업거지 310명, 죄를 지어 몸이 망가진 불구자 440명, 습관적인 도적 60명, 죄수130명, 살인자 6명, 부도덕한 사람 55명, 정상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이 12명인데, 그 중 10명은 그 직업을 감옥에서 배웠다고 합니다.
자연의 곡식만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심는 대로 거둠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법칙입니다. 좋은 삶을 심어야 하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말씀에 순종하면 축복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사랑을 심으면 여호와 하나님과 이웃이 나를 사랑하게 됩니다.
선을 심으면 훗날 그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겸손을 심으면 주의의 사람들이 나를 존경하게 됩니다.
진실을 심으면 주위 사람 모두가 나를 신뢰하며 나의 힘이 될 것입니다.
둘째, 고난의 유익을 알 수 있습니다.
조금 전 드린 말씀처럼 야곱의 가정은 심각한 고난에 직면했습니다. 흉년으로 먹을 양식이 없습니다. 양식을 구하고자 아들들을 애굽에 보냈는데 그 중 아들 한 사람은 애굽에 억류되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양식을 구해 가족들의 생명을 구하고자 어미 없이 불쌍하게 자라난 막내아들까지 그 불안한 남의 나라 애굽에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이로 인해 야곱과 온 가족들은 말할 수 없는 번민에 쌓여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그토록 걱정했던 불안한 상황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있었습니다. 아들 둘을 또다시 잃는가 했는데, 22년 전 죽은 것으로 알고 아들을 가슴에 묻고 슬퍼했던 그 사랑스러운 아들 요셉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흉년의 고통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양식이 풍부한 애굽나라의 살림을 책임지고있는 사람이 자기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알거니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고난도 결국은 유익을 주는 일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여호와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0:13) 하셨습니다. 요셉의 가정에 심각한 고난의 시험이 닥쳐왔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여호와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예비해 놓으신 복된 자리로 나아가는 통로였습니다.
요즈음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와 함께 바람이 몹시 불고있습니다. 긴 겨울동안 움츠렸던 나무 가지들을 심하게 흔들고 있습니다. 아마 나무에게는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식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봄에 부는 거센 바람에 의해 땅속의 수분이 뿌리를 통해 나무 가지 끝에까지 전달되어 잎이 피게된다는 것입니다. 바람의 고통 속에 나무의 생명이 있습니다. 이렇게 잎이 피고 성장하면, 여름의 거센 비바람이 또다시 나무 가지를 뒤흔들게 됩니다. 나무에게는 크나큰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이 비바람이 없다면 봄부터 자라난 나무는 뿌리가 약해 넘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름에 거센 비바람이 불어올 때 나무의 뿌리가 뻗어나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높이 자란 큰 나무가 되어도 넘어지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카나다 동쪽 토론토에 유명한 수족관이 있는데 희귀한 물고기가 많아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 온다고 합니다. 한번은 그 수족관 기사들이 태평양 연안의 희귀한 물고기들을 잡아 물통속에 넣되, 태평양 물을 넣고 온도도 태평양 물의 온도와 같이 똑같이 유지하여 두 주일의 여정 끝에 토론토에 왔습니다. 와서 뚜껑을 열어보니 물고기는 모두 죽어 있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1년간 연구한 후 다시 태평양쪽에서 희귀한 물고기를 잡아 물통 속에 넣되 이번에는 아무 쓸모 없는 발이 많은 문어새끼를 한 마리씩 물통 속에 넣었습니다. 그러자 물고기들은 괴물같은 것이 잡아먹을 듯 좇아 다니므로 긴장하여 쉴새없이 돌아다닙니다. 이렇게 돌아다니니 물살을 이루어 토론토에 도착했어도 비록 지치기는 했으나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까닭은, 태평양은 물결이 거세었기에 항상 물결을 거스리며 투쟁을 했는데, 물통 속은 고요합니다. 잡아먹으려는 위협도 없습니다. 조용히 지내자 운동부족으로 물고기는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연의 법칙에서도 고난이 유익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고난의 날 염려와 근심만 할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에서도 섭리하시며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숨겨진 뜻을 기대하며 소망과 용기를 잃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를 깊이 인식하며, 우리의 삶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복된 열매를 거두어야 하겠습니다.
어디에나, 언제나, 누구에게나 염려와 근심은 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가 가운데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 진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 드리세"(487장)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열심히 잘 섬기는 사람에게도 예외는 아닙니다. 조금 전 봉독한 본문에는 야곱과 그의 온 가족들이 심각한 번민에 빠져 그 해결책을 찾고자 상의하는 장면이 나타나 있습니다. 야곱이 살고있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먹을 양식이 없어 아우성입니다. 그런데 애굽에는 아주 지혜로운 요셉이란 국무총리가 나라를 다스리는 까닭에 양식이 풍부했습니다. 그것은 흉년을 대비하여 풍년의 때에 곡식을 많이 예비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애굽으로 양식을 구하러갔습니다.
야곱도 양식을 구하고자 열 명의 아들을 애굽으로 보냈습니다. 그 나라의 국무총리인 요셉은 이들을 보자 22년 전 자기를 이 곳으로 팔았던 형들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이 나라의 총리가 22년 전 자기들이 미워하며 애굽의 노예로 팔았던 동생 요셉임을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지만 총리의 위엄을 갖추고 권세의 자리에 앉아있는 22년 전의 동생을 알아볼 리가 없었습니다. 만감이 교차했을 요셉은 자기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그들에게 깨달음을 주고자 가장 성격이 난폭했던 둘째형인 시므온을 억류시키고 다른 형제들은 곡식을 주어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조건을 제시하기를 막내 동생 베냐민을 이 곳으로 데리고 와야 너희의 형제인 시므온을 돌려보내겠다고 했습니다. 베냐민은 요셉의 친동생이기에 그를 보고싶어한 까닭이었습니다. 그 후 얼마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야곱의 가정은 60명이 넘는 대가족이었기에 애굽에서 가져온 양식은 이미 다 먹고 없었습니다.
애굽나라의 국무총리가 자기의 아들 요셉임을 알리 없는 야곱은, 요셉은 이미 22년전 죽은 것으로만 알고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곡식을 구하러 애굽으로 보내자니 이미 아들 시므온이 애굽에 억류되었는데 막내아들 베냐민의 신변이 염려되었습니다. 요셉과 베냐민은 야곱이 가장 사랑한 아내 라헬이 낳은 아들입니다. 더욱이 라헬은 베냐민을 낳다가 산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므로 요셉과 베냐민에 대한 아버지 야곱의 마음은 각별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이미 22년 전 아들들이 노예로 팔아 넘긴 후 짐승에게 물려 죽었다고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노예로 팔려간 요셉은 지금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 아들이 죽은 줄만 알고 있습니다. 죽은 아들 요셉에 대한 한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이제 베냐민마저 애굽으로 보내는 것은 아버지의 마음에 용납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하여 베냐민을 보내지 않으면 이미 그 곳에 억류되어 있는 시므온도 곡식도 구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애굽이 아니면 이 극심한 흉년에 그 어디에서도 곡식을 구할 수 없어 가족은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참으로 딱한 처지였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놓고 야곱과 아들들이 논쟁을 하다가 할 수 없이 야곱은막내아들 베냐민을 애굽으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이에 대한 야곱의 애 타는 마음을 본문에 기록하기를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창세기 43:13-14) 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멀쩡하게 살아있는 아들을 죽은 것으로만 알고 한을 안고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토록 그리워하며 살아온 아들 요셉에게 다른 자식을 보내면서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당시 최대의 부자 나라인 애굽의 총리가 자기 아들인데도 이를 알지 못하고 먹을 양식이 없어 번민하고 있습니다. 이 안타까운 야곱 가정의 경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심고 거두는 삶의 이치를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7-8) 하셨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삶을, 심고 거두는 농사에 비유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의 옛말에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이치의 말입니다.
야곱은 그의 일생동안 많은 속임을 당했습니다. 그의 젊은 시절 외삼촌 집에서 머슴살이를 할 때에 외삼촌에게 품삯을 열 번이나 속았습니다. 장가들 때에도 외삼촌에게 또 속아 아내를 얻는 대가로 14년의 머슴살이를 더했습니다. 그리고 아들들에게 속습니다. 아들들이 볼 때에 아버지 야곱이 열 한 째 아들 요셉만을 사랑하는 것 같아 이를 시기하며 미워한 나머지 동생을 노에로 팔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동생이 맹수에게 물려 죽은 것처럼 하고자 염소를 잡아 그 피를 요셉의 옷에 적신 후 그 옷을 아버지에게 보였습니다. 이 후로 야곱은 아들 요셉이 짐승에게 물려 죽은 것으로 알고 22년을 지냈습니다. 왜 야곱은 이처럼 계속 속임을 당했을까요 그것도 남이 아닌 외삼촌과 자식들에게 속았습니다. 그 까닭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신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야곱은 일찍이 지혜롭지 못한 형을 속였고, 연로하여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였습니다(창세기 27장). 이렇게 하여 장자에게만 주어진 특권을 가로챘습니다. 야곱이 심은 거짓의 씨앗은 사라지지 않고 44년간 그를 따라 다니며 속음의 열매를 맺었고, 또 야곱은 거두어야만 했습니다. 땅에 심겨진 씨앗은 한 알 그대로 있지 않고 수십 배의 열매를 맺듯, 야곱이 심은 거짓의 씨앗 또한 이처럼 열매를 맺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와 형, 이렇게 두 번을 속였는데, 야곱은 그 열매로 44년간 수 없는 속임의 열매를 거두어야만 했습니다.
어떠한 삶을 살던 살아가는 것은 내 자유이나, 그 결과는 내 자유대로 되지 않습니다. 야곱이 자기는 아버지와 형을 속였지만 자신은 속고싶지 안았을 것입니다. 남에게 속임을 당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야곱은 어쩔 수 없이 속아야만 했습니다. 이로 인해 긴 세월을 한숨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진실한 삶을 바라고 계십니다. 정직한 사람에게 복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 사람이 행한 대로 얻게 하십니다. 사람의 행함은 땅에 심는 씨앗과 같습니다. 그 씨앗의 열매는 자신이 살아있을 때만 아니라 대를 이어 열매를 맺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성실한 삶의 씨앗을 심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만일 교만한 삶을 살아간다면 이웃으로부터 멸시와 패망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의 삶을 살아간다면 기대하는 축복대신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널리 알려진 두 가문의 이러한 통계가 있습니다.
요나단 에드워드의 아버지는 목사였고, 그의 어머니는 목사의 딸이었습니다. 이 에드워드가에서 대학총장 14명, 교수100여명, 판사30명, 의사60명, 목회자와 신학자와 선교사가 100여명, 작가가 60명이 배출되었습니다.
반면 흉폭한 주크가의 후손 1200명 가운데, 직업거지 310명, 죄를 지어 몸이 망가진 불구자 440명, 습관적인 도적 60명, 죄수130명, 살인자 6명, 부도덕한 사람 55명, 정상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이 12명인데, 그 중 10명은 그 직업을 감옥에서 배웠다고 합니다.
자연의 곡식만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심는 대로 거둠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법칙입니다. 좋은 삶을 심어야 하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말씀에 순종하면 축복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사랑을 심으면 여호와 하나님과 이웃이 나를 사랑하게 됩니다.
선을 심으면 훗날 그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겸손을 심으면 주의의 사람들이 나를 존경하게 됩니다.
진실을 심으면 주위 사람 모두가 나를 신뢰하며 나의 힘이 될 것입니다.
둘째, 고난의 유익을 알 수 있습니다.
조금 전 드린 말씀처럼 야곱의 가정은 심각한 고난에 직면했습니다. 흉년으로 먹을 양식이 없습니다. 양식을 구하고자 아들들을 애굽에 보냈는데 그 중 아들 한 사람은 애굽에 억류되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양식을 구해 가족들의 생명을 구하고자 어미 없이 불쌍하게 자라난 막내아들까지 그 불안한 남의 나라 애굽에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이로 인해 야곱과 온 가족들은 말할 수 없는 번민에 쌓여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그토록 걱정했던 불안한 상황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있었습니다. 아들 둘을 또다시 잃는가 했는데, 22년 전 죽은 것으로 알고 아들을 가슴에 묻고 슬퍼했던 그 사랑스러운 아들 요셉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흉년의 고통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양식이 풍부한 애굽나라의 살림을 책임지고있는 사람이 자기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알거니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고난도 결국은 유익을 주는 일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여호와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0:13) 하셨습니다. 요셉의 가정에 심각한 고난의 시험이 닥쳐왔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여호와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예비해 놓으신 복된 자리로 나아가는 통로였습니다.
요즈음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와 함께 바람이 몹시 불고있습니다. 긴 겨울동안 움츠렸던 나무 가지들을 심하게 흔들고 있습니다. 아마 나무에게는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식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봄에 부는 거센 바람에 의해 땅속의 수분이 뿌리를 통해 나무 가지 끝에까지 전달되어 잎이 피게된다는 것입니다. 바람의 고통 속에 나무의 생명이 있습니다. 이렇게 잎이 피고 성장하면, 여름의 거센 비바람이 또다시 나무 가지를 뒤흔들게 됩니다. 나무에게는 크나큰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이 비바람이 없다면 봄부터 자라난 나무는 뿌리가 약해 넘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름에 거센 비바람이 불어올 때 나무의 뿌리가 뻗어나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높이 자란 큰 나무가 되어도 넘어지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카나다 동쪽 토론토에 유명한 수족관이 있는데 희귀한 물고기가 많아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 온다고 합니다. 한번은 그 수족관 기사들이 태평양 연안의 희귀한 물고기들을 잡아 물통속에 넣되, 태평양 물을 넣고 온도도 태평양 물의 온도와 같이 똑같이 유지하여 두 주일의 여정 끝에 토론토에 왔습니다. 와서 뚜껑을 열어보니 물고기는 모두 죽어 있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1년간 연구한 후 다시 태평양쪽에서 희귀한 물고기를 잡아 물통 속에 넣되 이번에는 아무 쓸모 없는 발이 많은 문어새끼를 한 마리씩 물통 속에 넣었습니다. 그러자 물고기들은 괴물같은 것이 잡아먹을 듯 좇아 다니므로 긴장하여 쉴새없이 돌아다닙니다. 이렇게 돌아다니니 물살을 이루어 토론토에 도착했어도 비록 지치기는 했으나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까닭은, 태평양은 물결이 거세었기에 항상 물결을 거스리며 투쟁을 했는데, 물통 속은 고요합니다. 잡아먹으려는 위협도 없습니다. 조용히 지내자 운동부족으로 물고기는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연의 법칙에서도 고난이 유익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고난의 날 염려와 근심만 할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에서도 섭리하시며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숨겨진 뜻을 기대하며 소망과 용기를 잃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를 깊이 인식하며, 우리의 삶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복된 열매를 거두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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