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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환난을 축복으로 만드는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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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젊어서는 지나친 욕심 때문에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위협을 피하여 외삼촌 집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20여 년간 타향살이와 처가살이의 고난 속에 12명의 아들을 얻고 재산도 어지간히 모아 돌아와 극적으로 형과 화해를 했습니다. 그러나 세겜에서 딸이 모욕을 당하고 108세가 되던 해에는 가장 아끼는 아들 요셉이 짐승에게 죽임을 당하는 아픔을 당하게 됩니다.
막내 아들 베냐민을 바라보며 요셉을 잃은 슬픔을 잊을 수 있을 때 7년이나 계속되는 흉년이 와서 굶어죽을 처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야곱은 애굽에 양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을 잃은 불안 때문에 막내아들 베냐민은 제외시키고 나머지 아들 10명을 애굽에 보내어 양식을 사오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흉년이 야곱의 집에는 축복의 시작이었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 요셉이 살아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아버지와 형들을 초대하여 기쁨으로 만나는 축복과 먹을 양식 걱정하던 7 년의 흉년을 애굽에 가서 해결 받고 나머지 여생을 평안히 마치게되었습니다.
다른 집에는 괴로운 가뭄과 흉년이 야곱의 집에는 축복으로 마감되는 모습을 보며 야곱의 가정은 되는 가정이다 라는 생각을 갖게됩니다. 그래서 가정의 달 셋째 주간에 우리 교회 성도들의 가정이 환난을 축복으로 바꾸는 야곱 같은 되는 가정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오늘의 말씀을 환난을 축복으로 바꾸는 가정이라는 제목으로 증거 하고자 합니다. 말씀을 들으시고 여러분의 가정이 가시나무에서도 수박이 열리는 야곱 같은 복된 가정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야곱의 가정이 환난이 축복으로 바뀐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1. 기쁜 소식을 듣고 믿는 믿음의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야곱은 아들 요셉을 잃고 깊은 시름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동생 베냐민을 지나칠 정도로 사랑하며 요셉을 잃은 슬픔을 달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들 요셉을 잃은 슬픔을 서서히 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서운 기근이 닥쳐왔습니다. 하늘 문이 닫힌 듯 비가 오지 않은지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심어놓은 곡식은 서서히 타 들어가 소출이 없고 곡식창고는 비어갔습니다.
그런데 애굽에 양식이 있어 사올 수 있다는 소식을 야곱은 듣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가서 눈으로 확인한 것도 아닙니다. 애굽의 곡식창고를 들여다 본 것도 아닙니다. 또 애굽에서 외국 사람들에게까지 곡식을 판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소문을 듣고 믿어 아들들을 불러서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사오면 우리 가족 70명이 살겠다고 말합니다.
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리하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매(창 42:2)
여기서 우리는 야곱의 진실한 믿음의 삶을 발견하게 됩니다. 애굽에 곡식이 있다는 소식도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과 가정을 구하시려 들려주시는 복음으로 받아 들여 믿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도와주시고 섭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이 모진 기근에서 우리 가정을 구하시려고 애굽의 곡식 소식을 들려주셨다고 믿고 무려 10명의 아들을 그리고 보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10명의 모든 아들들을 보내는 이유는 그 길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이 소식을 듣고 믿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아들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그리고 그런 믿음을 가진 아버지가 있는 가정은 어떤 환난이 와도 그것을 축복을 바꿀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고 여러분 모두 야곱처럼 기쁜 소식을 듣는 귀를 가지시고 그것을 믿음으로 바꿔 가정의 환난을 축복으로 바꾸시는 능력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야이로는 회당장인데 사랑스러운 어린 딸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으로 달려가지 않고 예수님께 달려와 그 앞에 엎드리어 간구했습니다. 한번이 아니고 많이 간구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기만 한 것이 아니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앞에 와서 땅바닥에 엎드리어 절하여 간절히 간구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아름다운 믿음을 보시고 야이로의 집을 향하셨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인을 만나 그를 고쳐 주시느라고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어린 딸이 죽었습니다.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딸이 이미 죽었으니 더 이상 예수님을 힘들게 하지말고 돌아와 딸을 장사할 준비를 하라고 전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 말을 들으시고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아이로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고 잔다라고 말씀하시고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 하셨습니다. 이 말은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는 뜻입니다. 그러자 아이가 그 시로 눈을 뜨고 일어나 살아나는 놀라운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아버지 야이로의 복음을 듣는 귀와 그것을 믿는 믿음이 슬픔에 잠길 환난을 당한 가정이 치유와 고침과 살아나는 축복으로 바뀌어 진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말씀을 들으시고 여러분이 야곱처럼 야이로처럼 기쁜 소식을 듣는 귀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들음으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여러분 가정의 어떤 환난이 와도 그것을 축복으로 바꾸시는 복된 복의 근원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순종하는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아들 10명을 머나먼 애굽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너무도 위험한 길이라는 것을 야곱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횡단하는 길입니다. 거기다가 남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그 나라 백성이 아니기에 안전과 보호가 없는 곳이므로 생명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다행이 곡식을 사 가지고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당시 기근이 심할 때니 오는 길에 마적단 같은 강도들 만나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당시에 먹을 것이 귀하니 도처에 도적들이 창궐했을 것이고 사막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니니 그런데서 강도들을 만나면 모든 양식을 빼앗기고 죽음까지 당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70명분의 양식의 분량은 적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모든 아들이 가야 그 양식을 사서 수송해 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한 아들만 보내지 않고 10명의 아들을 모두 보내는 것입니다. 여러명이 가서 서로 도우며 곡식을 사고 지켜서 가져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위험한 길에 모든 아들들을 보내면서 막내아들인 베냐민을 남겨두고 가라고 합니다.
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을 그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이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렵다 함이었더라(창 42:5)
야곱이 열 아들들을 위험하고 힘든 곳으로 보내면서 베냐민은 제외 시켰습니다. 이것은 아버지 야곱이 다른 아들들보다 베냐민을 더 중히 여기고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10명의 아들들 편에서 보면 무척 섭섭한 일입니다. “아버지! 베냐민만 귀중한 아들이고 우리는 죽어도 괜찮은 아들입니까, 베냐민만 아들이고 우린 종입니까” 하고 불평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불평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열 아들 누구도 아버지의 명령에 이의를 달지 아니했습니다. 아버지의 명령에 모든 아들들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스불론, 잇사갈, 단, 갓, 아셀, 납달리, 모두 순종하여 막내를 아버지 곁에 두고 위험한길을 떠나 순종했습니다. 이 아들들의 지혜로운 순종이 그 가정의 환난을 축복으로 바꾸는 두 번째 이유가 된 줄로 믿습니다.
이 열명의 아들들이 처음부터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는 착한 아들들이 아니었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그들은 아버지가 요셉을 편애하는 것을 보고 그들의 마음에 불만이 싹텄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요셉이 먼길에 혼자 심부름 온 것을 보고 죽이려고 하다가 결국 애굽에 노예로 돈을 받고 팔았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입은 색동옷에 양의 피를 묻혀서 들짐승에게 죽은 것으로 아버지에게 보고했습니다.
아버지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돌아가실 정도로 오랫동안 슬퍼했습니다.
아들들은 이 아버지를 보며 몹시 송구했습니다. 자신들의 질투의 마음이 동생을 노예로 만들었고 아버지에게 깊은 상처를 드렸음을 부끄러워하고 회개했습니다. 다시는 그런 아픔을 아버지에게 드리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베냐민 만 여행길에서 제외하여도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행동을 같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꼭 바쁜 사람이 있거나 반대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반대는 안하더라도 불평이나 자기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들 때문에 앞으로 나가야 할 일들이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온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되고 어려운 환난을 축복으로 바꾸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과거의 종교가 아닙니다. 지난날에 그렇게 불순종하고 살았더라도 이제 고치고 옛날의 실수와 잘못을 답습하지 아니하면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환난을 축복으로 바꾸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부모님께 효도하고 순종하는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부모를 향하여 소리 지르고 도리어 가르치려 하는 불손한 자녀들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그 가정을 축복하시고 환난을 당해도 축복으로 바꾸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하고 당부하신 뜻을 이 가정에 달에 이루시는 귀한 자녀들과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역경을 뛰어 넘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애굽에 팔렸습니다.
당시에 노예는 아들도 노예가 되는 시대였습니다. 요셉은 하루 아침에 형들의 옳지 않은 행동으로 귀한 아들의 자리에서 이국 땅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절망이요 원망밖에는 나올 것이 없는 자리에 요셉은 처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믿음과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장래 축복을 믿는 믿음으로 자신에게 처한 역경을 극복하였습니다. 자포자기의 삶을 살 수 있는 자리에서도 그는 내가 우리 형들과 부모님에게까지 존경의 절을 받을 사람의 자리에 여호와 하나님이 세워 주실 것인데 이렇게 살면 되나 하고 그 어려운 고난의 터널을 빠져나갔습니다. 그러니 주인 보디발의 눈에 뜨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정의 모든 재물과 일들을 모두 관리하는 가정 총무의 자리에 들어갔습니다. 그의 역경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더 큰 역경이 왔습니다. 주인의 아내에게 유혹을 당하게 되어 그것을 극복하다가 주인여자를 강간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여기서 웬만한 사람들은 주저앉았을 것입니다. 노예의 자리도 절망적이지만 죄수의 자리는 더 절망적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나올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요셉은 그 역경을 옳지 않은 방법이 아니라 진실과 성실의 방법으로 헤쳐 나갔습니다. 결국 전옥의 눈에 뜨이게 되어서 감옥의 모든 일을 관장하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런 요셉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술 맡은 관원과 떡 맡은 관원이 왕의 노여움을 사서 감옥에 들어왔다가 같이 꿈을 꾸었는데 그것을 해몽해 줌으로서 애굽 왕 바로의 꿈을 해몽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그 꿈을 해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실무자의 자리에 세워져 하루아침에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는 기적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7년의 풍년에 양식을 잘 관리하여 극한 7년의 흉년을 헤쳐 나갔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역경만 이긴 것이 아니라 애굽의 역경을 헤쳐 나가 승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애굽민족만 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멀리 가나안에서 양식이 떨어져 죽어갈 아버지 이하 온 가족의 생명을 구하는 일까지 감당하게 되고 아들을 잃고 슬픔에 처한 아버지 야곱에게 너무도 기쁜 소식을 전하는 복된 아들이 된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 가정이 되는 집안 되는 가정이 되려면 바로 요셉같이 역경을 뛰어넘는 자녀들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가 참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 어려운 때에 우리 가정의 자녀들이 어려움을 뛰어넘고 승리할 수 있는 자녀가 된다면 우리 가정도 야곱의 가정처럼 흉년이 축복의 시작이 되는 역사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자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입니까
1) 부모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야곱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환도 뼈가 위골 되어도 기도의 줄을 놓지 않는 아버지 어머니가 있을 때 우리 자녀들이 역경을 넘는 요셉 같은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탕자 어거스틴을 성자 어거스틴으로 만든 암부로시우스 감독은 “기도하는 부모의 자식이 망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하고 단언하였습니다.
2) 예배의 본을 보이는 부모에게 이런 자녀가 생겨납니다.
야곱이 세겜에서 딸 디나가 세겜 성주의 아들에게 강간을 당하는 가정 환난이 왔습니다.
그때 아들들이 세겜 성주의 집에 할례를 행하면 통혼을 하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할례로 인하여 남자들이 고통 속에 있을 때에 그 가정을 습격하여 남자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이제 야곱의 가정과 세겜 성 사람들과 전쟁이 있게 될 것이고 야곱의 가정은 멸망당할 위기가 왔습니다. 이때 야곱은 온 가족을 불러놓고 위대한 결단을 선포합니다.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창 35:2-3)
그 환난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러 가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믿음의 본은 그대로 자녀들 특히 요셉에게 전달되었고 그 본이 노예나 죄수의 자리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잃지 않게 된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기도하며 예배의 본을 보이는 아버지 야곱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버지의 편파적인 명령에도 순종하는 아들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역경은 물론 나라와 가정의 역경을 헤쳐 나가는 요셉 같은 아들이 있습니다. 이런 가정에 온 환난이 어찌 환난으로 끝나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축복으로 바꾸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믿음과 소망의 야곱 같은 부모님들이 되십시오! 열명의 아들처럼 순종하는 자녀들이 되십시오! 그리고 역경을 헤쳐 나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찾는 요셉 같은 자녀들이 되십시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의 가정은 되는 가정, 되는 집안이 되어 흉년의 환난이 축복으로 바뀌는 기적을 만드는 복된 가정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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