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시대를 변화시키는 힘
본문
오늘 본문은 데살로니가교회에게 보낸 편지의 첫 부분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이 제 2차 전도여행 때 개척한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그 교회를 개척하는 동안 유대인들의 위협과 박해와 훼방이 아주 심했습니다. 그래서 가까스로 교회를 개척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의 방해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아직 교회다운 면모를 갖추지 못하고 미숙한 상태인데도 사도 바울은 그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 후로 그 교회에 대한 염려가 참 많았습니다. 늘 그 교회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를 파송해서 그 교회가 여전히 잘 모이고 있는지, 잘 견디어내고 있는지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잘 지켜 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근처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교회들에게도 모범이 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감사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1. 믿음의 역사
데살로니가교회는 박해 속에서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에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에 대한 애착이 더 강했습니다. 바울은 멀리 있어도 그 교회를 위해서 매일 기도하였습니다. 얼마나 애절한 마음으로 기도했겠습니까? 어린 아이를 떼어놓은 부모의 심정으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우상을 버리고 회개하기를, 환난과 핍박을 잘 견디고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원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를 보내어 들으니 바울이 떠난 뒤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우상도 버리고 회개하여 완전히 변화 받은 모습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순간은 바울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믿음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믿음의 역사는 이런 변화를 수반합니다. 웨슬리가 믿음으로 복음을 전했을 때 영국 사회가 변화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 한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회심 이후 바울은 끊임없이 믿음의 역사를 세워나가는데 주력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이 지켜왔던 믿음의 역사를 끊기지 않고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입니다. 목양교회는 올 해로 44년간 믿음의 역사를 지켜왔습니다. 청년부도 막내가 35기라고 할 때에 거의 30년 이상 믿음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목양교회가 지금까지 오면서 이 대성전을 완공하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는지 아는 사람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믿음의 역사를 지키고 이어가기 위해 힘쓰고 애쓴 성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목양교회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목양교회 청년 여러분! 믿음의 역사를 지켜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이 교회는 여러분들의 교회입니다. 이 교회가 지금까지 지켜온 믿음의 역사를 이어나가야 할 사람들은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교회에서 뿐만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가정과 학교와 직장에서까지도 믿음의 역사를 지켜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이 중에는 부모님이 교회를 다니시지 않는 청년들도 있습니다. 부모님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청년들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실망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그 가정에서 믿음의 역사를 지켜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통해 여러분들의 기도를 통해 그 가정에 믿음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8절의 말씀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소문이 각처(직장, 학교, 가정을 포함한 모든 곳)로 퍼져나가기를 바랍니다.
2. 사랑의 수고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은 지금까지 우상 숭배하던 삶을 끊고 완전히 변화되어 여호와 하나님만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우상을 숭배했던 그 열심을 바꾸어 여호와 하나님께 더욱 쏟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에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사랑에는 상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자기를 내어주고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입으로만은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대가 없이는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고통 없는 사랑에는 삶이 없다”고 했습니다. 즉, 사랑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수고와 희생 없이는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도 십자가를 통해서 사랑하신 것입니다. 입으로도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입술로만의 사랑이 아닙니다. 십자가 희생을 몸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십자가의 고통을 이겨 내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3, 소망의 인내
사람은 아무런 목적 없이 맹목적으로 수고하거나 희생 하지 않습니다. 농부의 소망은 추수입니다. 그 소망 이 있기에 1년 동안 수고하고 땀 흘리고 인내합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성공을 바라보며 투자하고 또 열정을 다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인내의 동기는 ‘예수님 재림 신앙 때문“입니다. 사실 요즘처럼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없을 것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교회가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었지만 지금은 교회가 무얼한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아무런 영향력이 없습니다. 오히려 늘어나는 교회로 인하여 교회 하나 지으려고 하면 지역주민과의 끝없는 싸움을 벌여야만 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지금 죽전 지역에 분당에 있는 교회가 이전하여 크게 교회를 짓고 있는데 주변의 아파
트 단지에서 데모를 합니다. 그들은 교회가 혐오시설이라고 까지 말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과정들을 참고 견디고 이겨나가야 하는 것이 바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몫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특별히 ‘소망의 인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인내를 이루기 위해서는 소망이 필요합니다. 거꾸로 말하면 소망을 가진 사람은 인내를 이룰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소망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십자가를 위해 인내하십시오.
오늘은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 267주년 주일입니다.
매년 웨슬리 회심 주일이라고 해서 매년 이 맘때 감리교에서는 회심기념 주일을 지키고 지방마다 연합 행사를 갖고 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아주 신앙적으로 볼 때 뼈대있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3대째 목회자를 이어받은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형제가 자그마치 열아홉 남매였는데 그 중에 열다섯 번째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3대 째 목회자를 이어받은 집안에서 자랐기에 그가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받았을 신앙적인 교육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아주 엄격한 신앙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그의 신앙은 다분히 율법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일 한 두시간씩 성경도 읽고 기도도하고 성찬식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를 하였습니다. 교회생활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때까지만 해도 그에게 구원의 확신은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신앙생활이 아닌 단순한 종교생활만은 영위하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런 생활이 계속되어 오다가 1738년 5월 24일 억지로 올더스게이트가에서 있었던 모임에 갔다가 그는 거기서 새롭게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날 모임에서는 로마서 강해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말씀을 듣는 중에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738년 5월 24일 정확하게 저녁 8시 45분, 이 순간은 웨슬리 목사님에게 있어서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이 날의 회심 체험이 있었기에 그는 82세의 나이까지 전 세계를 다니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자로 살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웨슬리 목사님의 젊은 시절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가 뚜렷하게 잘못한 것은 없습니다. 교회 열심히 다녔고 기도도 하고 성경도 읽었습니다. 성찬식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였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에게 있어서 그런 모든 일 모두가 자신을 위한 것밖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첫사랑을 잃어버린 채 그저 습관화된 신앙으로 그저 교회의 마당만 밟고 지나가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제가 매주 수요일마다 전도폭발훈련을 담당하고 있는데, 작년 이 맘 때 처음 교회에서 전도폭발훈련을 시작할 때였습니다. 이 훈련에 임하는 사람들은 이미 수십년 째 열심히 교회에 다니면서 봉사하고 교회를 섬기는 성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밤이라도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느냐? 라는 물음에 주저하고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는지 조차도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 분들의 직분은 집사, 권사였습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제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전도폭발훈련을 받으면서 그 분들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교회도 다니고 봉사도 했지만 이미 습관화되어 버린 신앙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전도폭발훈련을 통하여 새롭게 변화되어 가고 그 마음에 영혼 사랑하는 그 뜨거운 마음이 새롭게 타오르게 시작했던 것입니다. 전에는 전도하러 나가자고 하면 억지로 억지로 마지 못해서 갔는데 지금은 제일 먼저 앞장서서 갑니다. 그리고 s전도하러 나가서도 절에 다닌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전과 같으면 그 이후에 더 이상 말도 걸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절에 다닌다고 하거나 믿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이후에 더 적극적으로 말을 걸고 어떻게 해서라도 복음을 전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 마음에 뜨거움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냥 이렇게 보내고 나면 저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에 그 영혼이 너무 안타까워서 어떻게 해서라도 말 한마디 더 붙여 보려고 애를 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영혼을 살리는 일이라면 어떠한 수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는 바로 영혼에 대한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바울이 3절에서 이야기한 ‘사랑의 수고’를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분들에게는 전도폭발훈련이 웨슬리 목사님처럼 회심의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 준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의 연수가 오래되면 될수록 그 마음이 느슨해지기 마련입니다. 죄에 대해서도 느슨해지고, 신앙생활에 대해서도 느슨해집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이 제일 열심히 신앙생활 했던 때를 기억할 것입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제일 열심히 했을 때는 군생활 할 때였습니다. 그 때는 너무 절박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지금은 이래도 헌병대 출신입니다. 제가 잘 나갈 때는 몸무게가 55Kg밖에 나가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키도 작은 키가 아니고 헌병들의 제복을 입혀 놓으면 꽤 준수해 보였습니다. 헌병들은 24시간 순번제로 일을 합니다. 다른 병사들은 토요일 오후부터 주일은 모두 쉬지만 헌병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주일에도 근무를 서야 합니다. 그래서 주일에 교회에 빠지지 않기 위한 방법은 단 한가지였습니다. 토요일 밤에 근무를 하면 주일 오전에는 오침을 할 수가 있는데 그 시간에 잠을 자지 않고 교회에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토요일 밤만 되면 야근을 자청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잠 한 숨 못자고 교회로 향하였습니다. 내무반에서는 모두들 이해가 안간다는 듯한 조금 심하면 ‘쟤가 미쳤다’라고 까지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까지 신앙생활하다가 제대를 해서도 몇 달간은 꽤 열심히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철야는 기본이고 수요예배까지 거의 빠지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몇 달 가지 않아 식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소아시아의 일곱교회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에베소교회는 ‘첫사랑을 버렸다’는 이유로 책망을 받았습니다. 라오디게아교회는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는 이유로 책망을 받았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 3:17) 우리의 삶이 넉넉할 때입니다. 모자람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될 때 우리의 열정이 떨어지기 쉬운 때입니다.
죄는 우리의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지게 합니다. 열정이 사라지게 합니다.
여러분들의 삶에서 영적 힘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웨슬리 목사님이 살았던 18세기 당시 영국 사회는 한마디로 ‘무질서와 혼란’의 시대였습니다. 18세기 영국 국교회(성공회)는 생명력이 없었습니다. 성도들은 습관적으로 교회에 출석했으며 사회에 불신앙과 부도덕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교회 설교는 도덕성 강연회 같았고 노동자와 빈민들은 교회의 영역 밖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교회의 타락은 사회의 타락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원리와도 같습니다. 당시 영국은 음란, 음주, 도박, 정부가 복권 제도를 장려하여 국민들 사이에 사행심으로 가득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사회와 너무 비슷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소망이 없어 보였던 영국 사회가 변화된 웨슬리 목사님 한 사람의 복음운동으
로 인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전서를 기록한 바울도 감리교를 창시한 웨슬리 목사님도 모두 회심의 깊은 체험을 바탕으로 신앙생활하였던 사람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회심 전 웨슬리처럼 개인의 경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뜨거운 신앙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사회에 영향을 주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이야기한 세 가지의 모든 것을 지켜 낸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대 째 목회자 집안이라는 믿음의 역사를 지켜 내었고,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이루어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했기에 그는 영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영적인 힘을 지니게 되었던 것입니다.
모두들 이 시대를 가리켜 희망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진 청년들이 있다면 분명히 우리에게 이 땅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18세기 영국 사회에서 웨슬리는 사회의 희망이었습니다.
바라기는 이 자리에 있는 목양교회의 청년들이 어두워져 가는 이 사회를 밝히는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진정한 이 시대의 소망으로 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럴 때에는 우리는 진정한 웨슬리의 후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이 제 2차 전도여행 때 개척한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그 교회를 개척하는 동안 유대인들의 위협과 박해와 훼방이 아주 심했습니다. 그래서 가까스로 교회를 개척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의 방해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아직 교회다운 면모를 갖추지 못하고 미숙한 상태인데도 사도 바울은 그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 후로 그 교회에 대한 염려가 참 많았습니다. 늘 그 교회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를 파송해서 그 교회가 여전히 잘 모이고 있는지, 잘 견디어내고 있는지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잘 지켜 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근처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교회들에게도 모범이 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감사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1. 믿음의 역사
데살로니가교회는 박해 속에서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에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에 대한 애착이 더 강했습니다. 바울은 멀리 있어도 그 교회를 위해서 매일 기도하였습니다. 얼마나 애절한 마음으로 기도했겠습니까? 어린 아이를 떼어놓은 부모의 심정으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우상을 버리고 회개하기를, 환난과 핍박을 잘 견디고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원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를 보내어 들으니 바울이 떠난 뒤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우상도 버리고 회개하여 완전히 변화 받은 모습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순간은 바울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믿음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믿음의 역사는 이런 변화를 수반합니다. 웨슬리가 믿음으로 복음을 전했을 때 영국 사회가 변화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 한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회심 이후 바울은 끊임없이 믿음의 역사를 세워나가는데 주력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이 지켜왔던 믿음의 역사를 끊기지 않고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입니다. 목양교회는 올 해로 44년간 믿음의 역사를 지켜왔습니다. 청년부도 막내가 35기라고 할 때에 거의 30년 이상 믿음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목양교회가 지금까지 오면서 이 대성전을 완공하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는지 아는 사람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믿음의 역사를 지키고 이어가기 위해 힘쓰고 애쓴 성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목양교회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목양교회 청년 여러분! 믿음의 역사를 지켜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이 교회는 여러분들의 교회입니다. 이 교회가 지금까지 지켜온 믿음의 역사를 이어나가야 할 사람들은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교회에서 뿐만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가정과 학교와 직장에서까지도 믿음의 역사를 지켜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이 중에는 부모님이 교회를 다니시지 않는 청년들도 있습니다. 부모님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청년들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실망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그 가정에서 믿음의 역사를 지켜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통해 여러분들의 기도를 통해 그 가정에 믿음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8절의 말씀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소문이 각처(직장, 학교, 가정을 포함한 모든 곳)로 퍼져나가기를 바랍니다.
2. 사랑의 수고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은 지금까지 우상 숭배하던 삶을 끊고 완전히 변화되어 여호와 하나님만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우상을 숭배했던 그 열심을 바꾸어 여호와 하나님께 더욱 쏟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에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사랑에는 상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자기를 내어주고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입으로만은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대가 없이는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고통 없는 사랑에는 삶이 없다”고 했습니다. 즉, 사랑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수고와 희생 없이는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도 십자가를 통해서 사랑하신 것입니다. 입으로도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입술로만의 사랑이 아닙니다. 십자가 희생을 몸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십자가의 고통을 이겨 내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3, 소망의 인내
사람은 아무런 목적 없이 맹목적으로 수고하거나 희생 하지 않습니다. 농부의 소망은 추수입니다. 그 소망 이 있기에 1년 동안 수고하고 땀 흘리고 인내합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성공을 바라보며 투자하고 또 열정을 다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인내의 동기는 ‘예수님 재림 신앙 때문“입니다. 사실 요즘처럼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없을 것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교회가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었지만 지금은 교회가 무얼한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아무런 영향력이 없습니다. 오히려 늘어나는 교회로 인하여 교회 하나 지으려고 하면 지역주민과의 끝없는 싸움을 벌여야만 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지금 죽전 지역에 분당에 있는 교회가 이전하여 크게 교회를 짓고 있는데 주변의 아파
트 단지에서 데모를 합니다. 그들은 교회가 혐오시설이라고 까지 말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과정들을 참고 견디고 이겨나가야 하는 것이 바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몫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특별히 ‘소망의 인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인내를 이루기 위해서는 소망이 필요합니다. 거꾸로 말하면 소망을 가진 사람은 인내를 이룰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소망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십자가를 위해 인내하십시오.
오늘은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 267주년 주일입니다.
매년 웨슬리 회심 주일이라고 해서 매년 이 맘때 감리교에서는 회심기념 주일을 지키고 지방마다 연합 행사를 갖고 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아주 신앙적으로 볼 때 뼈대있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3대째 목회자를 이어받은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형제가 자그마치 열아홉 남매였는데 그 중에 열다섯 번째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3대 째 목회자를 이어받은 집안에서 자랐기에 그가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받았을 신앙적인 교육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아주 엄격한 신앙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그의 신앙은 다분히 율법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일 한 두시간씩 성경도 읽고 기도도하고 성찬식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를 하였습니다. 교회생활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때까지만 해도 그에게 구원의 확신은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신앙생활이 아닌 단순한 종교생활만은 영위하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런 생활이 계속되어 오다가 1738년 5월 24일 억지로 올더스게이트가에서 있었던 모임에 갔다가 그는 거기서 새롭게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날 모임에서는 로마서 강해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말씀을 듣는 중에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738년 5월 24일 정확하게 저녁 8시 45분, 이 순간은 웨슬리 목사님에게 있어서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이 날의 회심 체험이 있었기에 그는 82세의 나이까지 전 세계를 다니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자로 살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웨슬리 목사님의 젊은 시절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가 뚜렷하게 잘못한 것은 없습니다. 교회 열심히 다녔고 기도도 하고 성경도 읽었습니다. 성찬식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였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에게 있어서 그런 모든 일 모두가 자신을 위한 것밖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첫사랑을 잃어버린 채 그저 습관화된 신앙으로 그저 교회의 마당만 밟고 지나가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제가 매주 수요일마다 전도폭발훈련을 담당하고 있는데, 작년 이 맘 때 처음 교회에서 전도폭발훈련을 시작할 때였습니다. 이 훈련에 임하는 사람들은 이미 수십년 째 열심히 교회에 다니면서 봉사하고 교회를 섬기는 성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밤이라도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느냐? 라는 물음에 주저하고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는지 조차도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 분들의 직분은 집사, 권사였습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제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전도폭발훈련을 받으면서 그 분들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교회도 다니고 봉사도 했지만 이미 습관화되어 버린 신앙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전도폭발훈련을 통하여 새롭게 변화되어 가고 그 마음에 영혼 사랑하는 그 뜨거운 마음이 새롭게 타오르게 시작했던 것입니다. 전에는 전도하러 나가자고 하면 억지로 억지로 마지 못해서 갔는데 지금은 제일 먼저 앞장서서 갑니다. 그리고 s전도하러 나가서도 절에 다닌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전과 같으면 그 이후에 더 이상 말도 걸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절에 다닌다고 하거나 믿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이후에 더 적극적으로 말을 걸고 어떻게 해서라도 복음을 전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 마음에 뜨거움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냥 이렇게 보내고 나면 저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에 그 영혼이 너무 안타까워서 어떻게 해서라도 말 한마디 더 붙여 보려고 애를 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영혼을 살리는 일이라면 어떠한 수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는 바로 영혼에 대한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바울이 3절에서 이야기한 ‘사랑의 수고’를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분들에게는 전도폭발훈련이 웨슬리 목사님처럼 회심의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 준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의 연수가 오래되면 될수록 그 마음이 느슨해지기 마련입니다. 죄에 대해서도 느슨해지고, 신앙생활에 대해서도 느슨해집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이 제일 열심히 신앙생활 했던 때를 기억할 것입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제일 열심히 했을 때는 군생활 할 때였습니다. 그 때는 너무 절박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지금은 이래도 헌병대 출신입니다. 제가 잘 나갈 때는 몸무게가 55Kg밖에 나가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키도 작은 키가 아니고 헌병들의 제복을 입혀 놓으면 꽤 준수해 보였습니다. 헌병들은 24시간 순번제로 일을 합니다. 다른 병사들은 토요일 오후부터 주일은 모두 쉬지만 헌병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주일에도 근무를 서야 합니다. 그래서 주일에 교회에 빠지지 않기 위한 방법은 단 한가지였습니다. 토요일 밤에 근무를 하면 주일 오전에는 오침을 할 수가 있는데 그 시간에 잠을 자지 않고 교회에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토요일 밤만 되면 야근을 자청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잠 한 숨 못자고 교회로 향하였습니다. 내무반에서는 모두들 이해가 안간다는 듯한 조금 심하면 ‘쟤가 미쳤다’라고 까지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까지 신앙생활하다가 제대를 해서도 몇 달간은 꽤 열심히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철야는 기본이고 수요예배까지 거의 빠지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몇 달 가지 않아 식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소아시아의 일곱교회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에베소교회는 ‘첫사랑을 버렸다’는 이유로 책망을 받았습니다. 라오디게아교회는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는 이유로 책망을 받았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 3:17) 우리의 삶이 넉넉할 때입니다. 모자람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될 때 우리의 열정이 떨어지기 쉬운 때입니다.
죄는 우리의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지게 합니다. 열정이 사라지게 합니다.
여러분들의 삶에서 영적 힘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웨슬리 목사님이 살았던 18세기 당시 영국 사회는 한마디로 ‘무질서와 혼란’의 시대였습니다. 18세기 영국 국교회(성공회)는 생명력이 없었습니다. 성도들은 습관적으로 교회에 출석했으며 사회에 불신앙과 부도덕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교회 설교는 도덕성 강연회 같았고 노동자와 빈민들은 교회의 영역 밖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교회의 타락은 사회의 타락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원리와도 같습니다. 당시 영국은 음란, 음주, 도박, 정부가 복권 제도를 장려하여 국민들 사이에 사행심으로 가득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사회와 너무 비슷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소망이 없어 보였던 영국 사회가 변화된 웨슬리 목사님 한 사람의 복음운동으
로 인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전서를 기록한 바울도 감리교를 창시한 웨슬리 목사님도 모두 회심의 깊은 체험을 바탕으로 신앙생활하였던 사람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회심 전 웨슬리처럼 개인의 경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뜨거운 신앙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사회에 영향을 주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이야기한 세 가지의 모든 것을 지켜 낸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대 째 목회자 집안이라는 믿음의 역사를 지켜 내었고,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이루어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했기에 그는 영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영적인 힘을 지니게 되었던 것입니다.
모두들 이 시대를 가리켜 희망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진 청년들이 있다면 분명히 우리에게 이 땅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18세기 영국 사회에서 웨슬리는 사회의 희망이었습니다.
바라기는 이 자리에 있는 목양교회의 청년들이 어두워져 가는 이 사회를 밝히는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진정한 이 시대의 소망으로 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럴 때에는 우리는 진정한 웨슬리의 후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