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가정을 세우십시오
본문
이 시의 제목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로서 솔로몬이 쓴 시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면서 가족의 소중함과 건강 그리고 축복을 담고 있어서
이 말씀을 다시 묵상하려 합니다.
시 119편에 이어서 시 120편부터는 계속해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들로 모아 놓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신앙생활의 중심에는 ‘성전’이 자라잡고 있습니다.
나라의 부강도, 가정의 평안도, 꿈과 행복의 원천도 오직 ‘성전중심’에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그렇게 인도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는 시간과 장소가 분명한 이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복을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것을 증명해 줍니다.
성전과 제사제도가 무너지고 엉망인 때에 이스라엘은 절망적인 상태에 있었습니다.
사사시대에 성막과 성전은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북조 이스라엘은 성전 없이 사는 동안 반역과 피의 전쟁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남쪽 유다 나라에도 왕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성전 중심으로 서 있을 때에만
부강했습니다.
포로시대는 성전이 파괴되고 언약궤도 사라져 버린 시대였습니다.
스룹바벨 성전이 세워지고 포로귀환이 이루어진 이후 잠깐 영적 각성이 있는 듯 하지만
말라기 시대에 이르고 보면 성전의 의식이나 십일조 생활이 무너지고
레위지파는 생존이 힘들어지며 400년의 암흑기에 접어듭니다.
요즈음의 가정파괴 현상은 옛날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 가정이라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건강하셔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섬기며 사는 교회 생활, 예배의 생활이 꼭 중심이 되어야만 합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이 세워 주시고 지켜 주시는 가정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집’이 의미하는 것은 성전과 교회일수 있습니다만
‘가정’에 적용점을 두고 싶습니다.
나의 수고만 가지고 가정이 세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없으면 안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남편도 세워주셔야 하고 아내도 붙잡아 세워 주셔야 합니다.
자녀들의 심성과 미래도 붙잡아 주셔야만 합니다.
아름다운 집을 갖기 위한 노력과 수고, 자녀들에 대한 엄청난 교육적인 투자가 있지만 그것으로 가정이 세워지지 않습니다.
다른 성격의 부부가 만나 살아가면서 서로 노력하고 자제하며
무언가의 힘이 통제해 주지 못하면 갈라서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이들도 커 갈수록 모난 성격들이 드러나곤 하는데
아! 여호와 하나님께서 저들 마음 조절하고 붙들어 주지 않으면 큰일나겠구나!
싶어 요즘은 기도가 저절로 되어집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행복이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때부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낄 때부터 신앙생활의 기쁨이란게 생기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가정을 세워준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사단은 미움을 심어주고 다툼을 하게 만들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하게 하십니다.
이 사랑이 신비한 힘입니다.
신앙생활만 열심히 해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남편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아내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자녀들도 너무 사랑스러워 꾸중과 욕 한마디 할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앙리드 몽더랑’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장점 때문에 좋아합니다. 그러나 단점 때문에 사랑합니다.
장점 때문에 사랑한다면 그것은 참 사랑이 아닙니다.
단점 때문에 사랑할 수 있을 때에만 참 사랑입니다.
좋아하는 감정 없이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장점은 좋아질 수 있는 겉모습입니다.
좋아지고 나면 단점인 속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 단점은 좋아하는 것이 아닌 사랑함으로서 극복할 장벽입니다.
쉽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것만 가지고 결혼을 생각하면 안됩니다.
단점을 사랑할 수 있을 때 그가 바로 내 사람입니다.
그 단점은 평생 내가 안고 가야할 짐이며 함께 메고 갈 멍에입니다.
청년시절 저는 아내에게 잘 보이려고 무척 노력했습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주었습니다.
운동도 잘 할 줄 모르는데 유일하게 남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이 마라톤이어서
상을 받으면 그것을 선물로 바꾸어서 주기도 했습니다.
발을 다쳐서 기브스를 푼 지 두 달 밖에 안된 몸으로 마라톤을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을 했습니다.
편지와 글씨도 밤을 새가면서 작품으로 만들어 보내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면에 나 자신을 보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단점들이 너무도 크게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내가 볼 때 나의 그런 약점들은 자매들에게 조금도 매력을 줄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가씨가 내게 마음을 열었습니다. 단점을 사랑해준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도 내게서 그때의 단점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며칠 전 노회 목사님 사모님들이 야외모임이 있어 다녀왔었는데
그 때 제가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이 아니면 이런 핸섬한 중년신사가 되진 못했을거야
노회 목사님들은 저를 대단히 깔끔하고 점잖은 사람으로 보아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내는 저의 코디입니다.
저에게 보여진 아내의 모습은 고아원에서 헌신과 사랑으로 아이를 돌보는
애교있고 착한 인상이었습니다.
고운 손과 예쁜 공작 솜씨의 재능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새 어머니에 대한 상처와 약간의 청각의 손상을 약점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사랑할 수 있었고 그것을 조금도 부담으로 가져본 적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살다보면 좋은 점은 더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약점들은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하나씩 하나씩 기어 나옵니다.
좋은 점은 잘 보이려고 일찍 다 내어놓았지만 약점들은 꼭꼭 숨겨두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을 가지고 탓한다면 평생 행복할 수 없고 누구를 다시 만난다 해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가족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대상입니다.
장점 때문이 아니라 약점 때문에 사랑해야 할 자이며 상대방의 약점은
나밖에 고쳐줄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청년부 형제자매들이여,
교제에 신중하십시오.
오래 교제하다가 단점들 드러날 때 사랑으로 품지 못하고
이런 사람하고 어찌 평생 사나
하고 헤어지는 상처를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헤어지는 상습범들이 있습니까
그런 분들은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먼저 체크하시고 회개하기를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했습니다.
가정은 내 힘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는 불가항력적인 것이 있습니다.
질병이나 사업의 어려움 등 가정을 위협할 수 있는 환경적 어려움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지난 한 주간 우리집 아이들이 다 심한 감기와 작은 사고 등으로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학교에 가서 아이들 데려오고 병원에 갔다와야 하고 번갈아 일하려니 짜증이 나서
아내에게 괜한 신경질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최근 메시지 준비에 집중이 되지 않아서 얼마나 힘이든지 모릅니다.
거의 두 달 동안 책 한 권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모든 능력이 집중력에서 나옵니다.
아무리 많은 수고를 해도 집중이 안되면 헛수고이듯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집을 짓고 좋은 학교를 보내어도
그 소득과 누림이 한순간의 물거품처럼 되어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물질도 헛되지 않게 하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축복을 잠에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
평안을 주시고 근심을 거두어 가심을 ‘잠’에 비유해서 말씀해 주시는 내용입니다.
평안이 무엇입니까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은
‘헛됨’이라는 거품을 여호와 하나님이 거두어 가시는 일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거품을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소득은 있지만 빚과 이자로 사라지지는 않습니까
열심히 벌지만 질병, 사고 등으로 도둑질당하며 사라지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거품을 좇아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일확천금과 운에 기대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성실을 식물로 삼고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사셔야 합니다.
2. 기업의 축복이 있는 가정
누가 뭐라 해도 자식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요 재산입니다.
저를 배부르게 하는 것은 오직 세 명의 자식들입니다.
오늘이 어린이날입니다. 어린 자녀들의 날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가 자람의 방향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는 시기이기에 귀합니다.
우리 집에도 큰 아이는 부모의 기대 때문에 잔소리를 많이 해서인지
모난 성격들이 드러나서 걱정인데 막내는 아직 어린아이여서
마음껏 놀고 밝게 자라도록 배려하는 편입니다.
자식을 통해서 부모가 얻는 것은 ‘영광’입니다. 그리고 든든함입니다.
여러분이 자녀를 기업으로 알고 잘 양육하시기를 바랍니다.
내 자식만이 자식은 아닙니다.
내가 자식을 만들면 그가 바로 내 자식이 됩니다.
우리 교회 안에 자식삼을 젊은 세대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 성도들의 축복이기도 합니다.
4절을 보면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에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 되도다”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일찍 결혼해서 얻은 자식을 의미합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면 현대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선언하신 복을 무시하고 살아갑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들은 복 받으신 분들입니다.
김장로님은 벌써 손주를 둘씩이나 두셨고 천장로님은 저와 연배가 같지만
내년이면 대학생이 두 명이나 됩니다.
일찍 결혼하여 얻은 자식이 장사의 수중에 화살 같다 했습니다.
늙어 뒤치다꺼리 해 주는 자식이 아니라 아직 힘있고 일할 수 있는 나이에
또 든든한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자식이 있다는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30대가 되어 결혼해서 아직 아이들은 어리지만
천장로님보다는 하나가 더 많아서 힘들어도 복이니 감사합니다.
지금은 우리 교회 젊은 청년들이 제 눈에는 조카같지만
조금 더 있으면 자식 같을 것 같습니다.
자식 같은 믿음의 아이들을 만들고 키워내는 것이 개인적인 목회 소망입니다.
건강한 교회, 축복 받은 교회의 모습이란 다음 세대를 이어갈 젊은이가 많다는 점입니다.
우리 교회의 세 번째 비전이
다음세대를 준비하는 교회입니다.
교육목회를 염두에 두는 비전 설정입니다.
지금보다 다음 세대가 더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지금의 청년, 유소년층이 한우리 교회의 중심이 될 앞으로 15~20년 후를 생각해 봅니다.
그때는 지금 우리 장년층보다 신앙적 모습과 열매들이 몇 배 아름다워질 것을 확신합니다.
목사인 저는 부족해도 고목사님이나 저를 이어서 섬기실 한우리 교회의 목사님은
이 나라 최고의 목사님으로 존경받으실 분이 계시게 될 것입니다.
그때의 성도들은 최고의 성도들이 될 것입니다.
목사로서 개인적인 마음은 다음의 훌륭한 목회자가 딛고 설
든든한 어깨의 역할이었으면 하고
지금의 장년성도들이 다음의 좋은 교회가 되는데 거름터였으면 합니다.
실력이나 인격이나 재능은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키워주는 교회나 사람이 있어 주어야 하고 그런 환경적 뒷받침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훈련이 필요하고 실력을 쌓아야 할 때 하지 못함이 늘 아쉽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 속에 굳게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저보다 더 나은 사람을 찾는 일입니다.
교회의 힘이 뒷받침만 되어 준다면 그럴 수 있는 사람을 키우고 찾아서
우리 교회의 미래를 책임지게 하는 것입니다.
인격과 실력과 영성에서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말은 하지 않지만 나보다 못한 인격이나 실력이나 영성은 그냥 판단되어 집니다.
내가 더 뛰어나지 못하니까 그 이상을 분별하지 못할 뿐입니다.
부모는 자기보다 자식이 더 잘되기를 바랍니다.
교회 역시 지금 세대보다 다음 세대가 더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그렇게 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교회가 지금보다 다음 세대가 아름다워서 한국교회와 사회를 책임지는
멋진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면서 가족의 소중함과 건강 그리고 축복을 담고 있어서
이 말씀을 다시 묵상하려 합니다.
시 119편에 이어서 시 120편부터는 계속해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들로 모아 놓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신앙생활의 중심에는 ‘성전’이 자라잡고 있습니다.
나라의 부강도, 가정의 평안도, 꿈과 행복의 원천도 오직 ‘성전중심’에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그렇게 인도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는 시간과 장소가 분명한 이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복을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것을 증명해 줍니다.
성전과 제사제도가 무너지고 엉망인 때에 이스라엘은 절망적인 상태에 있었습니다.
사사시대에 성막과 성전은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북조 이스라엘은 성전 없이 사는 동안 반역과 피의 전쟁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남쪽 유다 나라에도 왕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성전 중심으로 서 있을 때에만
부강했습니다.
포로시대는 성전이 파괴되고 언약궤도 사라져 버린 시대였습니다.
스룹바벨 성전이 세워지고 포로귀환이 이루어진 이후 잠깐 영적 각성이 있는 듯 하지만
말라기 시대에 이르고 보면 성전의 의식이나 십일조 생활이 무너지고
레위지파는 생존이 힘들어지며 400년의 암흑기에 접어듭니다.
요즈음의 가정파괴 현상은 옛날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 가정이라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건강하셔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섬기며 사는 교회 생활, 예배의 생활이 꼭 중심이 되어야만 합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이 세워 주시고 지켜 주시는 가정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집’이 의미하는 것은 성전과 교회일수 있습니다만
‘가정’에 적용점을 두고 싶습니다.
나의 수고만 가지고 가정이 세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없으면 안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남편도 세워주셔야 하고 아내도 붙잡아 세워 주셔야 합니다.
자녀들의 심성과 미래도 붙잡아 주셔야만 합니다.
아름다운 집을 갖기 위한 노력과 수고, 자녀들에 대한 엄청난 교육적인 투자가 있지만 그것으로 가정이 세워지지 않습니다.
다른 성격의 부부가 만나 살아가면서 서로 노력하고 자제하며
무언가의 힘이 통제해 주지 못하면 갈라서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이들도 커 갈수록 모난 성격들이 드러나곤 하는데
아! 여호와 하나님께서 저들 마음 조절하고 붙들어 주지 않으면 큰일나겠구나!
싶어 요즘은 기도가 저절로 되어집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행복이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때부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낄 때부터 신앙생활의 기쁨이란게 생기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가정을 세워준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사단은 미움을 심어주고 다툼을 하게 만들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하게 하십니다.
이 사랑이 신비한 힘입니다.
신앙생활만 열심히 해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남편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아내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자녀들도 너무 사랑스러워 꾸중과 욕 한마디 할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앙리드 몽더랑’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장점 때문에 좋아합니다. 그러나 단점 때문에 사랑합니다.
장점 때문에 사랑한다면 그것은 참 사랑이 아닙니다.
단점 때문에 사랑할 수 있을 때에만 참 사랑입니다.
좋아하는 감정 없이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장점은 좋아질 수 있는 겉모습입니다.
좋아지고 나면 단점인 속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 단점은 좋아하는 것이 아닌 사랑함으로서 극복할 장벽입니다.
쉽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것만 가지고 결혼을 생각하면 안됩니다.
단점을 사랑할 수 있을 때 그가 바로 내 사람입니다.
그 단점은 평생 내가 안고 가야할 짐이며 함께 메고 갈 멍에입니다.
청년시절 저는 아내에게 잘 보이려고 무척 노력했습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주었습니다.
운동도 잘 할 줄 모르는데 유일하게 남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이 마라톤이어서
상을 받으면 그것을 선물로 바꾸어서 주기도 했습니다.
발을 다쳐서 기브스를 푼 지 두 달 밖에 안된 몸으로 마라톤을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을 했습니다.
편지와 글씨도 밤을 새가면서 작품으로 만들어 보내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면에 나 자신을 보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단점들이 너무도 크게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내가 볼 때 나의 그런 약점들은 자매들에게 조금도 매력을 줄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가씨가 내게 마음을 열었습니다. 단점을 사랑해준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도 내게서 그때의 단점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며칠 전 노회 목사님 사모님들이 야외모임이 있어 다녀왔었는데
그 때 제가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이 아니면 이런 핸섬한 중년신사가 되진 못했을거야
노회 목사님들은 저를 대단히 깔끔하고 점잖은 사람으로 보아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내는 저의 코디입니다.
저에게 보여진 아내의 모습은 고아원에서 헌신과 사랑으로 아이를 돌보는
애교있고 착한 인상이었습니다.
고운 손과 예쁜 공작 솜씨의 재능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새 어머니에 대한 상처와 약간의 청각의 손상을 약점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사랑할 수 있었고 그것을 조금도 부담으로 가져본 적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살다보면 좋은 점은 더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약점들은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하나씩 하나씩 기어 나옵니다.
좋은 점은 잘 보이려고 일찍 다 내어놓았지만 약점들은 꼭꼭 숨겨두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을 가지고 탓한다면 평생 행복할 수 없고 누구를 다시 만난다 해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가족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대상입니다.
장점 때문이 아니라 약점 때문에 사랑해야 할 자이며 상대방의 약점은
나밖에 고쳐줄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청년부 형제자매들이여,
교제에 신중하십시오.
오래 교제하다가 단점들 드러날 때 사랑으로 품지 못하고
이런 사람하고 어찌 평생 사나
하고 헤어지는 상처를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헤어지는 상습범들이 있습니까
그런 분들은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먼저 체크하시고 회개하기를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했습니다.
가정은 내 힘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는 불가항력적인 것이 있습니다.
질병이나 사업의 어려움 등 가정을 위협할 수 있는 환경적 어려움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지난 한 주간 우리집 아이들이 다 심한 감기와 작은 사고 등으로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학교에 가서 아이들 데려오고 병원에 갔다와야 하고 번갈아 일하려니 짜증이 나서
아내에게 괜한 신경질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최근 메시지 준비에 집중이 되지 않아서 얼마나 힘이든지 모릅니다.
거의 두 달 동안 책 한 권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모든 능력이 집중력에서 나옵니다.
아무리 많은 수고를 해도 집중이 안되면 헛수고이듯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집을 짓고 좋은 학교를 보내어도
그 소득과 누림이 한순간의 물거품처럼 되어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물질도 헛되지 않게 하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축복을 잠에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
평안을 주시고 근심을 거두어 가심을 ‘잠’에 비유해서 말씀해 주시는 내용입니다.
평안이 무엇입니까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은
‘헛됨’이라는 거품을 여호와 하나님이 거두어 가시는 일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거품을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소득은 있지만 빚과 이자로 사라지지는 않습니까
열심히 벌지만 질병, 사고 등으로 도둑질당하며 사라지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거품을 좇아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일확천금과 운에 기대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성실을 식물로 삼고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사셔야 합니다.
2. 기업의 축복이 있는 가정
누가 뭐라 해도 자식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요 재산입니다.
저를 배부르게 하는 것은 오직 세 명의 자식들입니다.
오늘이 어린이날입니다. 어린 자녀들의 날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가 자람의 방향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는 시기이기에 귀합니다.
우리 집에도 큰 아이는 부모의 기대 때문에 잔소리를 많이 해서인지
모난 성격들이 드러나서 걱정인데 막내는 아직 어린아이여서
마음껏 놀고 밝게 자라도록 배려하는 편입니다.
자식을 통해서 부모가 얻는 것은 ‘영광’입니다. 그리고 든든함입니다.
여러분이 자녀를 기업으로 알고 잘 양육하시기를 바랍니다.
내 자식만이 자식은 아닙니다.
내가 자식을 만들면 그가 바로 내 자식이 됩니다.
우리 교회 안에 자식삼을 젊은 세대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 성도들의 축복이기도 합니다.
4절을 보면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에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 되도다”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일찍 결혼해서 얻은 자식을 의미합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면 현대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선언하신 복을 무시하고 살아갑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들은 복 받으신 분들입니다.
김장로님은 벌써 손주를 둘씩이나 두셨고 천장로님은 저와 연배가 같지만
내년이면 대학생이 두 명이나 됩니다.
일찍 결혼하여 얻은 자식이 장사의 수중에 화살 같다 했습니다.
늙어 뒤치다꺼리 해 주는 자식이 아니라 아직 힘있고 일할 수 있는 나이에
또 든든한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자식이 있다는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30대가 되어 결혼해서 아직 아이들은 어리지만
천장로님보다는 하나가 더 많아서 힘들어도 복이니 감사합니다.
지금은 우리 교회 젊은 청년들이 제 눈에는 조카같지만
조금 더 있으면 자식 같을 것 같습니다.
자식 같은 믿음의 아이들을 만들고 키워내는 것이 개인적인 목회 소망입니다.
건강한 교회, 축복 받은 교회의 모습이란 다음 세대를 이어갈 젊은이가 많다는 점입니다.
우리 교회의 세 번째 비전이
다음세대를 준비하는 교회입니다.
교육목회를 염두에 두는 비전 설정입니다.
지금보다 다음 세대가 더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지금의 청년, 유소년층이 한우리 교회의 중심이 될 앞으로 15~20년 후를 생각해 봅니다.
그때는 지금 우리 장년층보다 신앙적 모습과 열매들이 몇 배 아름다워질 것을 확신합니다.
목사인 저는 부족해도 고목사님이나 저를 이어서 섬기실 한우리 교회의 목사님은
이 나라 최고의 목사님으로 존경받으실 분이 계시게 될 것입니다.
그때의 성도들은 최고의 성도들이 될 것입니다.
목사로서 개인적인 마음은 다음의 훌륭한 목회자가 딛고 설
든든한 어깨의 역할이었으면 하고
지금의 장년성도들이 다음의 좋은 교회가 되는데 거름터였으면 합니다.
실력이나 인격이나 재능은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키워주는 교회나 사람이 있어 주어야 하고 그런 환경적 뒷받침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훈련이 필요하고 실력을 쌓아야 할 때 하지 못함이 늘 아쉽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 속에 굳게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저보다 더 나은 사람을 찾는 일입니다.
교회의 힘이 뒷받침만 되어 준다면 그럴 수 있는 사람을 키우고 찾아서
우리 교회의 미래를 책임지게 하는 것입니다.
인격과 실력과 영성에서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말은 하지 않지만 나보다 못한 인격이나 실력이나 영성은 그냥 판단되어 집니다.
내가 더 뛰어나지 못하니까 그 이상을 분별하지 못할 뿐입니다.
부모는 자기보다 자식이 더 잘되기를 바랍니다.
교회 역시 지금 세대보다 다음 세대가 더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그렇게 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교회가 지금보다 다음 세대가 아름다워서 한국교회와 사회를 책임지는
멋진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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