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하나님의 복이 넘치는 가정
본문
오늘 본문 말씀 128편은 가장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원문으로 '아쉬레'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복수형으로 다른 말과 붙어서 쓰이기 때문에 우리 말 번역이 좀 어렵습니다만. 와! 이런 것이 복이야 ! 이렇게 풀어 쓸 수 있습니다.
시인이 행복한 가정이란 어떤 가정인가를 여론 조사했습니다. 그래서 행복한 가정의 공통점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행복한 가정이란 이런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본문은 시인의 발견한 행복한 가정의 공통점입니다.
제가 원문 한 절만 읽어보겠습니다. 아쉬레 콜 예레 아도나이 하호레크 비디라카인
제가 풀어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와! 복 있구나! 어떤 사람들인고 하니 곧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마다.
여기서 행복한 가정의 조건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첫째 조건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에서 아무리 부자가 되어도, 아무리 큰 명예를 얻어도, 잘난 자식을 얻어도,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은 가정은 행복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말씀은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로 창조하셨다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하고 인간이 행복하는 길은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일 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행복할 수 없고, 예배를 드려야 인간은 행복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고 유혹했습니다. 그 말에 속은 인간은 자신의 삶 속에 여호와 하나님을 내어쫓았습니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갈 때 아담과 하와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에게는 불행이 왔고, 죽음과 고통이 왔습니다. 그 후에 모든 인간에게 왔습니다.
그러므로 행복하길 원하는 사람은 무엇이 회복되야 하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회복되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지식보다, 세상의 어떤 보화보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귀히 여기고 보화로 여기고, 그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지키는 사람은 복받습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내가 무엇을 소유하느냐 못하느냐, 어떤 재능이 있느냐, 없느냐, 건강이 있느냐 없느냐, 거기에 있지 않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느냐, 그렇지 않으냐. '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행복은 무엇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내 마음에 모시느냐 거부하느냐에 따라 그 삶 속에 행복이 결정됩니다.
나는 나의 삶의 주인으로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사는데 어찌 행복이 없습니까 혹시 이렇게 생각하는 분은 없으십니까 행복하지 않다면 자신의 삶을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입술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내 삶의 자리에서 정말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는가 그 말씀대로 행하는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 말씀은 도덕적으로 완전하고 성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은 그럴 수 없습니다. 삶의 순간 순간마다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선택하며 사는냐 생각해봐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순간에 드리지 못하는 삶이나 헌신해야 할 순간에 헌신하지 못하거나, 돈 때문에 짐짓 마음속에 신앙을 저버리는 행위가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대신, 돈이 그 자리를 대신하거나 명예가 대신하거나 자녀가 대신할 때가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 여호와 하나님 섬김을 우선하는 사람이나 가정은 복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앞에 예배에 성공하는 사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말씀을 보고,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사람, 그리고 말씀대로 여호와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 그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둘째로, 행복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일하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영천에서 로또 1등 당첨자가 나왔다고 그래요,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와 했습니다. 부럽게 느겨졌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들어와서 보니까 성경은 그것이 복이 아니라고 합니다. 2 절 말씀대로 네가 네손으로 수고한 대로 먹으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복은 땀흘일 때 느끼지 먹을 때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람교의 지옥에는 일거리가 없어요 하루 이틀 쉬는 것은 괜찮겠지만 영원히 일없이 쉬는 것이 지옥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농사를 짓다가 실패해도, 몸이 말안들어서 움직이지 못하고, 농사짓는 것이 오히려 손해를 본다해도 일하는 것이 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셔서 에덴동산에 두시고 명하시길 에덴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다스리다'라는 원문 '아바드' 라는 말씀은 일하다, 농사짓다 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과일이나 따먹고 놀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다음에는 에덴 동산을 다스리는 것, 곧 일했다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일은 기뻐하며 하는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복주시고,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하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저주가 아니라 행복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명령인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일의 목적이 뭐냐 이것이 분명하지 못하면 일할 때 고통이 따릅니다. 보람이 없습니다. 행복이 없습니다. 일의 목적은 내 가정에 재산을 쌓아두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손에게 유산을 물려 주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위해서 일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해야합니다. 그러면 분명 삶의 기쁨이 있고, 행복이 옵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대로 주님을 위해서 사는 자가 행복합니다.
노동을 해도, 그 노동의 댓가를 나를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 지신 그 사랑에 감격하여, 주님을 위해서 옥합을 깨뜨리는 그런 결단의 삶을 살 때, 진정 우리 가정에 행복이 깃든다는 말입니다.
아직도 우리 가정에 행복이 깃들지 못했다면 그 원인이 어디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마약을 먹는 사람들은 노동의 댓가없이 행복을 누리려 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인생을 망치고 폐인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노동이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 삶의 자리에서 내 직장에서 땀흘리고 수고할 때, 그리고 그 수고의 댓가를 주님께 드릴 때 우리 영혼은 만족을 누리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는 우리에게 행복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삶 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되지앟고, 여호와 하나님께 드림이 되지 않고는 행복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가장 귀히 여기고 섬기는 자가 행복합니다. 여호와 하나님대신에 나의 소중한 것이 우리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면 불행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돈이나 자식이나 지식이나 명예을 여호와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긴다면 그것은 우상이고 불행입니다.
우리는 일하고 일하는 목적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할 때 행복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자신의 가정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가정에는 아내가 있고 자녀가 있습니다.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이 만드신 최초의 기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 복을 주셨던 것처럼 오늘도 가정에 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가정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영국 bbc 방송에서 한국은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이혼율이 높다고 합니다. 두 쌍이 결혼해서 거의 한 쌍이 매년 이혼한다고 합니다. 이는 가정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고, 가정의 역할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고, 가정에서 행복을 찾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주장만 강하고, 가정을 위해서 자기 희생이나 헌신, 사랑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혼하는 가정의 아이들이 길에 버려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한국 사회의 위기입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는 것은 금방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여성부가 있어요 그동안 여성의 권위가 추락했기에, 남자와 동등된 권리를
찾기 위해서이고, 직정에서나 어떤 부서에서든지 여성이 불이익을 당치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성부에 여성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여성 운동가들이 앉아 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요즘 여성 운동가들이 여성의 권익만을 추구한 나머지 오히려 가정의 위기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한 개인의 권리와 이익 전에 가정이 우선입니다. 가정 안에서 한 개인의 위치,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부모는 부모의 위치를 지켜야 합니다. 가정안에서 위치는 서로를 위하고 존경하고, 사랑으로 희생하는 위치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서로를 섬기는 것입니다. 가정은 전투의 장이 아닙니다. 승리자도 패배자도 없습니다. 오직 협력입니다. 섬김입니다. 사랑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가정보다 한 개인의 이익이 우선아닙니다. 사탄은 가정보다 개인이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갈등을 가져오고, 서로에게 불만족을 가져옵니다. 이런 개인의 욕구우선은 가정 파괴를 가져옵니다. 개인 우선 전략은 가정을 파괴하고자 하는 사탄의 전략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본래 말하는 가정이 뭔지 찾아봐야 합니다.
창 2:18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고 나서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좋지 못하다라는 표현은 여기에서만 나타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이 홀로 있는 것은 좋지 않다. 그래서 돕는 배필을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돕는 배필이라는 말이 아담의 종속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반대편에서 서서 그와 동등한 관계, 위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와가 아담보다 못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평등 개념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위치가 깨어진 것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입니다.
창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다스릴 것 ( 마살 ) 곧 이 단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이 하와를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신 것이 아니라 범죄가 가져온 결과, 여호와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가 깨어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동등하게 창조되었는데, 죄의 결과가 남자가 여자를 다스리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사람을 위해서 피를 흘리셨을 때, 죄와 저주의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우리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얻고 천국갑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질병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질병의 문제로 여호와 하나님앞에 나와서 고침받기를 원하실 때, 오늘도 성령의 역사로 질병이 나음을 입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우리의 가난의 문제도 해결되고 물질적인 축복도 받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잘못된 질서, 혼돈된 질서가 회복됩니다. 주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남와 녀 사이 질서가 회복되고, 남 와 녀 사이에 이제는 평등하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실 때처럼 평등으로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평등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각자 개성이 강하기 때문에 내 욕구만 충족하려면 가장은 불화가 시작되고 파괴되기 쉽습니다.
가정을 잘 지키고 행복하게 되는 길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믿음을 우선으로 하는 것입니다. 내 욕심 내 의견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뭐라 말씀하실까 여호와 하나님 말씀중심 가치관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는 가정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 주시고, 행복케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실 때, 여자는 그 반대편 위치서서 돕는 위치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격이 다를 수 밖에 없고, 삶의 스타일도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서 남편은 아내의 이견을 다 받아드릴 수 없습니다. 아내도 남편 뜻대로 다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딪치게 됩니다. 어쩌면 이것이 정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불행으로 연결되어서는 안됩니다. 이견이 생길 때, 해결의 방법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는 것입니다. 아내와 남편이 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산다면 결국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세우셨다고 믿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인내와 희생도 감내해야 합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샘에서 물이 솟듯이 가정에서 행복이 넘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행복한 가정의 조건 중 하나는 자녀를 믿음으로 잘 키워야 합니다.
얼마 전에 아시아, 오세아니아 20여개 나라에서 어른을 얼마나 존경하느냐 하는 여론 조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16%로 최하위였습니다 다른 나라 평균은 42% 였습니다. 그런데 한국만 어른을 존경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뿐입니까 우리는 세대간에도 큰 장벽이 있습니다. 20와 30대 그리고 40대 이상에서 생각이 전혀 다릅니다. 나라의 위기입니다. 이 위기는 어디서 왔습니까
잘못된 교육입니다. 믿음 없는 교육이 자녀를 망칩니다.
요즘 애들은 어른에 대한 생각을 어디에서 배웁니까 tv에서 봅니다. tv는 정상적으로 드라마를 하면 인기가 없고, 사람들이 보지 않아요, 그래서 폭력물이나 부모는 나쁘고 자녀는 착하고, 그래서 부모에게 자식이 저항하는 것을 계속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부모에게 반항하는 것이 정상인줄 생각합니다.
자녀는 부모에게서 왔습니다. 부모없는 자식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부모 버리는 자식이 얼마나 많고 부모가 병들었을 때 방치하는 자식이 얼마나 많습니까
창9장에 보면 술취한 노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노아가 술취해 벌거벗고 누워있었습니다. 그런데 노아의 아들 가나안의 아비 함이 아비의 벗은 걸을 보고 잘못했다고 비웃습니다. 물론 성경에는 잘못했다는 말이나 비웃었다는 말이 안나오지만 그부끄러운 사건을 감추지 않고, 다른 자녀들에게 말했습니다. 동네방네 다 소문낸 것입니다.
이 일을 여호와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부모를 조롱하고 섬기지 않은 함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시고 그 후손들은 저주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부모를 섬기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못받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부모를 저주하는 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했습니다. 부모가 잘하든지 못하든지 자식은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자식된 도리를 해야 합니다. 잘 섬기고 봉양해야 합니다. 효도해야 합니다. 비록 요즘은 핵가족 시대라 자식과 부모가 멀리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번 와서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자식들의 잘 되길 바라면 자녀를 한 달에 한번은 집으로 불러 드리십시오 자녀를 불러 들어서 시어머니 노릇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배에 참여케 하시고, 효도케 하십시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는지, 예배는 잘 드리고 십일조 생활하는지 점검하십시오
자녀가 정말로 잘되기를 원한다면, 행복한 가정이 되길 원하면 신앙 생활을 점검하고 부모를 잘 섬기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를 집안에 심겨진 감람나무처럼 가지칠 것 가지치고, 좋은 거름주고 키워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자양분과 부모의 사랑을 먹이시고,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키우며, 부모의 눈물어린 기도와 사랑으로 함께 하십시오 그리하면 그 자녀는 분명 여호와 하나님께 복 받고 잘 될 줄 믿습니다.
그리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온에서 복을 주시며, 평생동안 부족함이 없는 복을 주실 것이며
자녀의 앞길에 험한 풍파와 위기가 있더라도 평강을 약속하셨습니다. 시온에서 오는 복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요 아무나 빼앗지 못하는 복이요 확실한 복입니다. 평생동안 아무리 험한 일을 당해도 여호와 하나님은 넉넉히 이기도록 평강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 주안에서 주님을 위해서 일하고, 가정의 주인으로 주님을 모시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모든 복이 우리 모두의 가정에 넘칠 줄 믿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넘치게 받는 가정되시길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인이 행복한 가정이란 어떤 가정인가를 여론 조사했습니다. 그래서 행복한 가정의 공통점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행복한 가정이란 이런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본문은 시인의 발견한 행복한 가정의 공통점입니다.
제가 원문 한 절만 읽어보겠습니다. 아쉬레 콜 예레 아도나이 하호레크 비디라카인
제가 풀어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와! 복 있구나! 어떤 사람들인고 하니 곧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마다.
여기서 행복한 가정의 조건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첫째 조건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에서 아무리 부자가 되어도, 아무리 큰 명예를 얻어도, 잘난 자식을 얻어도,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은 가정은 행복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말씀은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로 창조하셨다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하고 인간이 행복하는 길은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일 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행복할 수 없고, 예배를 드려야 인간은 행복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고 유혹했습니다. 그 말에 속은 인간은 자신의 삶 속에 여호와 하나님을 내어쫓았습니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갈 때 아담과 하와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에게는 불행이 왔고, 죽음과 고통이 왔습니다. 그 후에 모든 인간에게 왔습니다.
그러므로 행복하길 원하는 사람은 무엇이 회복되야 하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회복되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지식보다, 세상의 어떤 보화보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귀히 여기고 보화로 여기고, 그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지키는 사람은 복받습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내가 무엇을 소유하느냐 못하느냐, 어떤 재능이 있느냐, 없느냐, 건강이 있느냐 없느냐, 거기에 있지 않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느냐, 그렇지 않으냐. '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행복은 무엇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내 마음에 모시느냐 거부하느냐에 따라 그 삶 속에 행복이 결정됩니다.
나는 나의 삶의 주인으로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사는데 어찌 행복이 없습니까 혹시 이렇게 생각하는 분은 없으십니까 행복하지 않다면 자신의 삶을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입술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내 삶의 자리에서 정말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는가 그 말씀대로 행하는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 말씀은 도덕적으로 완전하고 성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은 그럴 수 없습니다. 삶의 순간 순간마다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선택하며 사는냐 생각해봐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순간에 드리지 못하는 삶이나 헌신해야 할 순간에 헌신하지 못하거나, 돈 때문에 짐짓 마음속에 신앙을 저버리는 행위가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대신, 돈이 그 자리를 대신하거나 명예가 대신하거나 자녀가 대신할 때가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 여호와 하나님 섬김을 우선하는 사람이나 가정은 복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앞에 예배에 성공하는 사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말씀을 보고,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사람, 그리고 말씀대로 여호와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 그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둘째로, 행복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일하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영천에서 로또 1등 당첨자가 나왔다고 그래요,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와 했습니다. 부럽게 느겨졌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들어와서 보니까 성경은 그것이 복이 아니라고 합니다. 2 절 말씀대로 네가 네손으로 수고한 대로 먹으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복은 땀흘일 때 느끼지 먹을 때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람교의 지옥에는 일거리가 없어요 하루 이틀 쉬는 것은 괜찮겠지만 영원히 일없이 쉬는 것이 지옥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농사를 짓다가 실패해도, 몸이 말안들어서 움직이지 못하고, 농사짓는 것이 오히려 손해를 본다해도 일하는 것이 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셔서 에덴동산에 두시고 명하시길 에덴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다스리다'라는 원문 '아바드' 라는 말씀은 일하다, 농사짓다 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과일이나 따먹고 놀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다음에는 에덴 동산을 다스리는 것, 곧 일했다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일은 기뻐하며 하는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복주시고,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하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저주가 아니라 행복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명령인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일의 목적이 뭐냐 이것이 분명하지 못하면 일할 때 고통이 따릅니다. 보람이 없습니다. 행복이 없습니다. 일의 목적은 내 가정에 재산을 쌓아두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손에게 유산을 물려 주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위해서 일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해야합니다. 그러면 분명 삶의 기쁨이 있고, 행복이 옵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대로 주님을 위해서 사는 자가 행복합니다.
노동을 해도, 그 노동의 댓가를 나를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 지신 그 사랑에 감격하여, 주님을 위해서 옥합을 깨뜨리는 그런 결단의 삶을 살 때, 진정 우리 가정에 행복이 깃든다는 말입니다.
아직도 우리 가정에 행복이 깃들지 못했다면 그 원인이 어디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마약을 먹는 사람들은 노동의 댓가없이 행복을 누리려 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인생을 망치고 폐인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노동이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 삶의 자리에서 내 직장에서 땀흘리고 수고할 때, 그리고 그 수고의 댓가를 주님께 드릴 때 우리 영혼은 만족을 누리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는 우리에게 행복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삶 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되지앟고, 여호와 하나님께 드림이 되지 않고는 행복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가장 귀히 여기고 섬기는 자가 행복합니다. 여호와 하나님대신에 나의 소중한 것이 우리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면 불행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돈이나 자식이나 지식이나 명예을 여호와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긴다면 그것은 우상이고 불행입니다.
우리는 일하고 일하는 목적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할 때 행복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자신의 가정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가정에는 아내가 있고 자녀가 있습니다.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이 만드신 최초의 기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 복을 주셨던 것처럼 오늘도 가정에 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가정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영국 bbc 방송에서 한국은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이혼율이 높다고 합니다. 두 쌍이 결혼해서 거의 한 쌍이 매년 이혼한다고 합니다. 이는 가정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고, 가정의 역할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고, 가정에서 행복을 찾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주장만 강하고, 가정을 위해서 자기 희생이나 헌신, 사랑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혼하는 가정의 아이들이 길에 버려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한국 사회의 위기입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는 것은 금방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여성부가 있어요 그동안 여성의 권위가 추락했기에, 남자와 동등된 권리를
찾기 위해서이고, 직정에서나 어떤 부서에서든지 여성이 불이익을 당치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성부에 여성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여성 운동가들이 앉아 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요즘 여성 운동가들이 여성의 권익만을 추구한 나머지 오히려 가정의 위기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한 개인의 권리와 이익 전에 가정이 우선입니다. 가정 안에서 한 개인의 위치,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부모는 부모의 위치를 지켜야 합니다. 가정안에서 위치는 서로를 위하고 존경하고, 사랑으로 희생하는 위치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서로를 섬기는 것입니다. 가정은 전투의 장이 아닙니다. 승리자도 패배자도 없습니다. 오직 협력입니다. 섬김입니다. 사랑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가정보다 한 개인의 이익이 우선아닙니다. 사탄은 가정보다 개인이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갈등을 가져오고, 서로에게 불만족을 가져옵니다. 이런 개인의 욕구우선은 가정 파괴를 가져옵니다. 개인 우선 전략은 가정을 파괴하고자 하는 사탄의 전략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본래 말하는 가정이 뭔지 찾아봐야 합니다.
창 2:18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고 나서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좋지 못하다라는 표현은 여기에서만 나타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이 홀로 있는 것은 좋지 않다. 그래서 돕는 배필을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돕는 배필이라는 말이 아담의 종속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반대편에서 서서 그와 동등한 관계, 위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와가 아담보다 못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평등 개념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위치가 깨어진 것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입니다.
창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다스릴 것 ( 마살 ) 곧 이 단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이 하와를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신 것이 아니라 범죄가 가져온 결과, 여호와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가 깨어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동등하게 창조되었는데, 죄의 결과가 남자가 여자를 다스리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사람을 위해서 피를 흘리셨을 때, 죄와 저주의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우리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얻고 천국갑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질병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질병의 문제로 여호와 하나님앞에 나와서 고침받기를 원하실 때, 오늘도 성령의 역사로 질병이 나음을 입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우리의 가난의 문제도 해결되고 물질적인 축복도 받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잘못된 질서, 혼돈된 질서가 회복됩니다. 주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남와 녀 사이 질서가 회복되고, 남 와 녀 사이에 이제는 평등하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실 때처럼 평등으로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평등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각자 개성이 강하기 때문에 내 욕구만 충족하려면 가장은 불화가 시작되고 파괴되기 쉽습니다.
가정을 잘 지키고 행복하게 되는 길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믿음을 우선으로 하는 것입니다. 내 욕심 내 의견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뭐라 말씀하실까 여호와 하나님 말씀중심 가치관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는 가정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 주시고, 행복케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실 때, 여자는 그 반대편 위치서서 돕는 위치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격이 다를 수 밖에 없고, 삶의 스타일도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서 남편은 아내의 이견을 다 받아드릴 수 없습니다. 아내도 남편 뜻대로 다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딪치게 됩니다. 어쩌면 이것이 정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불행으로 연결되어서는 안됩니다. 이견이 생길 때, 해결의 방법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는 것입니다. 아내와 남편이 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산다면 결국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세우셨다고 믿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인내와 희생도 감내해야 합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샘에서 물이 솟듯이 가정에서 행복이 넘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행복한 가정의 조건 중 하나는 자녀를 믿음으로 잘 키워야 합니다.
얼마 전에 아시아, 오세아니아 20여개 나라에서 어른을 얼마나 존경하느냐 하는 여론 조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16%로 최하위였습니다 다른 나라 평균은 42% 였습니다. 그런데 한국만 어른을 존경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뿐입니까 우리는 세대간에도 큰 장벽이 있습니다. 20와 30대 그리고 40대 이상에서 생각이 전혀 다릅니다. 나라의 위기입니다. 이 위기는 어디서 왔습니까
잘못된 교육입니다. 믿음 없는 교육이 자녀를 망칩니다.
요즘 애들은 어른에 대한 생각을 어디에서 배웁니까 tv에서 봅니다. tv는 정상적으로 드라마를 하면 인기가 없고, 사람들이 보지 않아요, 그래서 폭력물이나 부모는 나쁘고 자녀는 착하고, 그래서 부모에게 자식이 저항하는 것을 계속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부모에게 반항하는 것이 정상인줄 생각합니다.
자녀는 부모에게서 왔습니다. 부모없는 자식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부모 버리는 자식이 얼마나 많고 부모가 병들었을 때 방치하는 자식이 얼마나 많습니까
창9장에 보면 술취한 노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노아가 술취해 벌거벗고 누워있었습니다. 그런데 노아의 아들 가나안의 아비 함이 아비의 벗은 걸을 보고 잘못했다고 비웃습니다. 물론 성경에는 잘못했다는 말이나 비웃었다는 말이 안나오지만 그부끄러운 사건을 감추지 않고, 다른 자녀들에게 말했습니다. 동네방네 다 소문낸 것입니다.
이 일을 여호와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부모를 조롱하고 섬기지 않은 함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시고 그 후손들은 저주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부모를 섬기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못받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부모를 저주하는 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했습니다. 부모가 잘하든지 못하든지 자식은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자식된 도리를 해야 합니다. 잘 섬기고 봉양해야 합니다. 효도해야 합니다. 비록 요즘은 핵가족 시대라 자식과 부모가 멀리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번 와서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자식들의 잘 되길 바라면 자녀를 한 달에 한번은 집으로 불러 드리십시오 자녀를 불러 들어서 시어머니 노릇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배에 참여케 하시고, 효도케 하십시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는지, 예배는 잘 드리고 십일조 생활하는지 점검하십시오
자녀가 정말로 잘되기를 원한다면, 행복한 가정이 되길 원하면 신앙 생활을 점검하고 부모를 잘 섬기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를 집안에 심겨진 감람나무처럼 가지칠 것 가지치고, 좋은 거름주고 키워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자양분과 부모의 사랑을 먹이시고,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키우며, 부모의 눈물어린 기도와 사랑으로 함께 하십시오 그리하면 그 자녀는 분명 여호와 하나님께 복 받고 잘 될 줄 믿습니다.
그리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온에서 복을 주시며, 평생동안 부족함이 없는 복을 주실 것이며
자녀의 앞길에 험한 풍파와 위기가 있더라도 평강을 약속하셨습니다. 시온에서 오는 복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요 아무나 빼앗지 못하는 복이요 확실한 복입니다. 평생동안 아무리 험한 일을 당해도 여호와 하나님은 넉넉히 이기도록 평강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 주안에서 주님을 위해서 일하고, 가정의 주인으로 주님을 모시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모든 복이 우리 모두의 가정에 넘칠 줄 믿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넘치게 받는 가정되시길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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