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임마누엘의 가정이 되려면
본문
가정의 달에 설교하려고 준비했다가 손님이 오시는 바람에 6월에 들어서야 이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고래등같은 집에 살아도 여호와 하나님이 안 계시고 마귀가 들끓는 가정은 불행한 가정이지만 셋방살이를 하고 가난하게 살아도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정, 임마누엘의 가정은 행복과 기쁨이 넘치는 가정이 됩니다. “임마누엘”이란 말은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요한 웨슬리 목사님이 임종시에 “가장 기쁘고 행복했던 일이 무엇입니까”하고 질문할 때, “여호와 하나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신 일” 즉 임마누엘의 은총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임마누엘의 은총을 입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는 참으로 최고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39장에 보면 “....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고난과 고통이 없이 온실 안의 꽃과 같이 편안하게만 두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요셉이 머슴살이도 하고, 억울하게 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형통케 되었다고 했고, 이방나라에서 국무총리까지 된 것입니다.
사무엘하 5장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했고 사무엘하 7장 9절에 보면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다윗은 가난한 목동출신인데다가 그를 모해하고 죽이려는 대적들이 무수히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대적들을 물리쳤고 전쟁할 때도 백전백승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가난한 목동 출신이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이 되고 가장 존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은총을 입은 사람은 가장 큰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주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하는 찬송가의 가사처럼,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가정이 되는 것 보다 더 행복한 가정은 없습니다.
명화 “밀레의 만종”(Angelus of Millet)을 그린 밀레가 노르망디(Normandy)에서 태어나 파리(Paris)에 가서 그림 공부를 하는 중에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그림을 그리는 중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림”을 그리려고 염원하던 중에 이 그림을 그려 가지고 친구에게 보여주었더니 “교회의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그림에 행복한 가정의 3대 요소가 있는데 교회와 노동과 기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가정이 될 때 참으로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임마누엘의 가정이 되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물론 예수를 믿고 영접하여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 믿고 거듭났다고 그 가정이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정이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1. 영적 구심점(예배)이 있는 가정
“여호와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예배를 통하여 영광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조직체가 둘이 있는데 하나는 가정이요 다른 하나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예배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본문 시편 128편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하셨고 5절에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 지어다”라고 했는데 여기서 “시온”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하나니은 그의 백성, 그의 가정들에게 복을 주시되 교회를 통하여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종교는 아편”이라고 하면서 예배를 못 드리게 하고 교회를 다 파괴해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쫓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북한을 비롯한 모든 공산주의 국가는 축복이 떠나고 모두 비참해지고 말았습니다.
임마누엘의 가정이 되려면 교회중심, 예배중심의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인가귀도되지 못한 가정은 인가귀도되어서 주일이면 반드시 교회에 나가 예배 드리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합니다. 어떤 집은 특히 정치인들의 가정을 보면, 한 식구는 불교 믿고, 한 식구는 교회에 나가고 한 식구는 천주교에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표를 얻는데는 유리할지 몰라도 영적으로 보면 구심점이 없는 가정이요, 불행한 가정입니다. 온 식구들이 한 예수를 믿고 한 구세주를 영접하고 한 교회에 나가 예배드린 다는 것은 영적 구심점이 있는 가정으로 가장 복 받은 가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할 때 진행 할 때는 성막, 즉 교회를 중심에서 움직였고 정지할 때는 성막, 즉 교회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각각 세 지파씩 장막을 치고 생활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천국을 향해 가는 중에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 때 우리의 생활의 중심은 교회가 되어야 하고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임마누엘의 가정, 즉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정이 되려면 교회중심 예배 중심의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를 무시하는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든지 먼저 재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는데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생활, 교회 생활을 최우선적으로 했다는 말씀입니다. 제사 드리는 일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든지 백세에 난 아들, 하나 밖에 없는 것, 가장 소중한 것, 가장 사랑하는 것을 제단에 올려놓았던 것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 하나님은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았다”고 말씀하시고 복의 근원이 되게 했고,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고 그의 족보에서 후에 여호와 하나님의 독생자 구세주가 오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영적 구심점이 있는 가정은 일주일의 첫날 주일을 거룩히 구별해 바치는 것을 제일의 생활원칙으로 삼아야 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중요한 일, 즐거운 일도 교회 가는 일, 예배드리는 시간을 빼앗아서는 안돼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모든 예배를 성심 성의껏 출석하고 가급적 가정 예배를 드리는 것이 임마누엘의 가정이 되는 중요한 비결인 것입니다.
2. 물질의 할례가 있는 가정입니다.
광림 교회의 한 젊은 지성인이 미국에 유학을 간 후에 몇 년만에 담임목사님을 만나더니 반가워하면서 간증하는 데 사실 한국에서 광림 교회에 다닐 때 다른 말씀은 다 좋은데 십일조 설교할 때는 늘 귀에 거슬렸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미국에 와서 어느 집회 때 은혜 받고 십일조 생활을 해보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매일매일 간섭하시고 인도해주시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십일조 생활하기 전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구만리 장천, 멀리 계신 것처럼 느꼈으나 이제는 피부로 느낄 정도로 매일매일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간섭하심을 느끼며 살게 되었다고 하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명령은 일주일의 하루 주님의 날을 거룩히 구별해 드리며 예배드리라는 것이고 다른 명령의 하나는 우리의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 십일조를 구별해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모든 일에 함께 하시고 범사에 복을 내려 주시겠고 십일조는 여호와 하나님의 몫인데 그것을 구별해 바치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행위로서 여호와 하나님이 저주하시고 다른 방법으로 거두어 가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례라는 것은 사내아이를 낳으면 나은지 8일만에 생식기의 표피를 잘라내서 여호와 하나님의 선민이란 표식을 받는 것인데 이것을 하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습니다. 그런데 할례에는 “마음의 할례”(신명기 10장 16절)도 있고 “귀의 할례”(예레미아 6장 10절)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에도 십분의 일을 구별해 바칠 때 할례 받은 것 같이 되어서 여호와 하나님이 그 가정과 그 사업에 함께 하셔서 불필요한 재난, 사고, 질병으로부터 지켜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십일조가 아깝다고 떼어 바치지 않으면 물질에 할례를 받지 않은 것이 되어서 그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대신 마귀가 침범하여 가정불화, 사고, 질병 뜻하지 사고로 불행이 닥쳐오는 것입니다. 평안과 행복이 깨어지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가정이 되어서 물질 생활에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간섭과 보호를 받으려면 십일조를 구별해 드려서 물질의 할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① 십일조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은 실천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순종해야 됩니다.
레위기 27장 30절에 “땅의 십분의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분명히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만, 십자가의 피 공로로 값없이 구원받았어도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최소한도 수입의 십분의 일은 여호와 하나님께 구별해 바쳐야합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안 지키면 “여호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말라기 3장 8절)이라고 했습니다.
② 십일조는 축복의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십일조는 율법이라고 하지만 율법이 아니라 축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축복의 언약입니다. “복을 주나 아니 주나 시험해보라”고 까지 했는데 이 말씀을 못 믿으면서 “예수 믿으면 천국간다”는 말씀은 어떻게 믿겠습니까 말라기 3장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것이 붓지 아니하나보라”고 강력히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의 몫을 구별해 바치지 않을 때 축복대신 저주가 임한다고 했습니다. 말라기 3장 9절에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 하였은즉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고 그러나 물질의 할례가 없는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세계적인 부흥사 빌리그래함 박사가 “여호와 하나님의 동역자”란 제목으로 설교하면서 “오늘날 미국이 범하는 가장 큰 죄중의 하나는 마땅히 여호와 하나님께 돌려야 할 것을 도적질하는 죄이다. 십일조를 하지 않을 때 빚을 안 갚는 것과 같다 10분의 1을 드리는 것은 사실 헌금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레위기 27장 30절) 이것은 우리가 갚아야 할 빚이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기 전에는 우리는 헌금을 한다고 할 수가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십일조 드리는 대신에 고아원, 양로원에 보내거나 구제하는데 쓰면 되지 않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성물을 도적질해 다가 가난한 사람 구제하는 행위입니다. 결코 용납이 안 되는 것이며 더욱이 그것은 십일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교회 강단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지 십일조 헌금을 가지고 제멋대로 선교사업에 쓰거나 교회학교나 남선 교회, 여선 교회 회비로 내도 안돼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해서 다른 곳에 쓰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쓰려면 십일조 외의 것으로 해야됩니다.
그 가정에서 십일조를 엄격히 구별해 드릴 때,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가정이 되고, 하나하나 간섭해주시고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3. 기도의 사닥다리가 놓인 가정
야곱이 자기를 죽이려는 에서의 낯을 피하여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향해 가다가 벧엘에 이르러서는 밤에 무서워하면서 돌을 베개하고 누워서 자는데 꿈속에서 하늘 문이 열리면서 한 사닥다리가 놓여지더니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하고 말씀하시고 또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성도들의 가정 지붕에는 보이지 않는 사닥다리가 놓여져야 천사를 보내어 지켜주시는데, 이 사닥다리는 기도를 통하여 놓여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고넬뇨 백부장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시쯤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천사)들이 들어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되었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가정에도 항상 기도를 힘쓸 때, 보이지 않는 사닥다리가 놓여져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며 말씀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가 없이 임마누엘의 가정이 될 수 없습니다. 신명기 4장 7절에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신다”고 했습니다. 임마누엘의 가정이 되려면 그 가정에 기도의 사닥다리가 놓여져야 합니다.
임마누엘의 가정이 되는 것 이상 큰 축복이 없는데 그 비결은 첫째, 그 가정에 예배의 구심점이 있어서 주일을 거룩히 지키며 모든 예배에 성실히 출석하여 예배를 드려야하고 두 번째, 물질의 할례를 받아야 하는데 십일조를 성실하게 구별해 바쳐야하고, 세 번째는 기도의 사닥다리가 놓여져야 여호와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시고 천사들이 둘러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가정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고래등같은 집에 살아도 여호와 하나님이 안 계시고 마귀가 들끓는 가정은 불행한 가정이지만 셋방살이를 하고 가난하게 살아도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정, 임마누엘의 가정은 행복과 기쁨이 넘치는 가정이 됩니다. “임마누엘”이란 말은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요한 웨슬리 목사님이 임종시에 “가장 기쁘고 행복했던 일이 무엇입니까”하고 질문할 때, “여호와 하나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신 일” 즉 임마누엘의 은총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임마누엘의 은총을 입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는 참으로 최고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39장에 보면 “....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고난과 고통이 없이 온실 안의 꽃과 같이 편안하게만 두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요셉이 머슴살이도 하고, 억울하게 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형통케 되었다고 했고, 이방나라에서 국무총리까지 된 것입니다.
사무엘하 5장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했고 사무엘하 7장 9절에 보면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다윗은 가난한 목동출신인데다가 그를 모해하고 죽이려는 대적들이 무수히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대적들을 물리쳤고 전쟁할 때도 백전백승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가난한 목동 출신이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이 되고 가장 존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은총을 입은 사람은 가장 큰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주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하는 찬송가의 가사처럼,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가정이 되는 것 보다 더 행복한 가정은 없습니다.
명화 “밀레의 만종”(Angelus of Millet)을 그린 밀레가 노르망디(Normandy)에서 태어나 파리(Paris)에 가서 그림 공부를 하는 중에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그림을 그리는 중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림”을 그리려고 염원하던 중에 이 그림을 그려 가지고 친구에게 보여주었더니 “교회의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그림에 행복한 가정의 3대 요소가 있는데 교회와 노동과 기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가정이 될 때 참으로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임마누엘의 가정이 되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물론 예수를 믿고 영접하여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 믿고 거듭났다고 그 가정이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정이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1. 영적 구심점(예배)이 있는 가정
“여호와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예배를 통하여 영광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조직체가 둘이 있는데 하나는 가정이요 다른 하나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예배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본문 시편 128편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하셨고 5절에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 지어다”라고 했는데 여기서 “시온”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하나니은 그의 백성, 그의 가정들에게 복을 주시되 교회를 통하여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종교는 아편”이라고 하면서 예배를 못 드리게 하고 교회를 다 파괴해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쫓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북한을 비롯한 모든 공산주의 국가는 축복이 떠나고 모두 비참해지고 말았습니다.
임마누엘의 가정이 되려면 교회중심, 예배중심의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인가귀도되지 못한 가정은 인가귀도되어서 주일이면 반드시 교회에 나가 예배 드리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합니다. 어떤 집은 특히 정치인들의 가정을 보면, 한 식구는 불교 믿고, 한 식구는 교회에 나가고 한 식구는 천주교에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표를 얻는데는 유리할지 몰라도 영적으로 보면 구심점이 없는 가정이요, 불행한 가정입니다. 온 식구들이 한 예수를 믿고 한 구세주를 영접하고 한 교회에 나가 예배드린 다는 것은 영적 구심점이 있는 가정으로 가장 복 받은 가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할 때 진행 할 때는 성막, 즉 교회를 중심에서 움직였고 정지할 때는 성막, 즉 교회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각각 세 지파씩 장막을 치고 생활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천국을 향해 가는 중에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 때 우리의 생활의 중심은 교회가 되어야 하고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임마누엘의 가정, 즉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정이 되려면 교회중심 예배 중심의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를 무시하는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든지 먼저 재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는데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생활, 교회 생활을 최우선적으로 했다는 말씀입니다. 제사 드리는 일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든지 백세에 난 아들, 하나 밖에 없는 것, 가장 소중한 것, 가장 사랑하는 것을 제단에 올려놓았던 것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 하나님은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았다”고 말씀하시고 복의 근원이 되게 했고,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고 그의 족보에서 후에 여호와 하나님의 독생자 구세주가 오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영적 구심점이 있는 가정은 일주일의 첫날 주일을 거룩히 구별해 바치는 것을 제일의 생활원칙으로 삼아야 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중요한 일, 즐거운 일도 교회 가는 일, 예배드리는 시간을 빼앗아서는 안돼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모든 예배를 성심 성의껏 출석하고 가급적 가정 예배를 드리는 것이 임마누엘의 가정이 되는 중요한 비결인 것입니다.
2. 물질의 할례가 있는 가정입니다.
광림 교회의 한 젊은 지성인이 미국에 유학을 간 후에 몇 년만에 담임목사님을 만나더니 반가워하면서 간증하는 데 사실 한국에서 광림 교회에 다닐 때 다른 말씀은 다 좋은데 십일조 설교할 때는 늘 귀에 거슬렸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미국에 와서 어느 집회 때 은혜 받고 십일조 생활을 해보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매일매일 간섭하시고 인도해주시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십일조 생활하기 전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구만리 장천, 멀리 계신 것처럼 느꼈으나 이제는 피부로 느낄 정도로 매일매일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간섭하심을 느끼며 살게 되었다고 하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명령은 일주일의 하루 주님의 날을 거룩히 구별해 드리며 예배드리라는 것이고 다른 명령의 하나는 우리의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 십일조를 구별해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모든 일에 함께 하시고 범사에 복을 내려 주시겠고 십일조는 여호와 하나님의 몫인데 그것을 구별해 바치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행위로서 여호와 하나님이 저주하시고 다른 방법으로 거두어 가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례라는 것은 사내아이를 낳으면 나은지 8일만에 생식기의 표피를 잘라내서 여호와 하나님의 선민이란 표식을 받는 것인데 이것을 하지 않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습니다. 그런데 할례에는 “마음의 할례”(신명기 10장 16절)도 있고 “귀의 할례”(예레미아 6장 10절)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에도 십분의 일을 구별해 바칠 때 할례 받은 것 같이 되어서 여호와 하나님이 그 가정과 그 사업에 함께 하셔서 불필요한 재난, 사고, 질병으로부터 지켜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십일조가 아깝다고 떼어 바치지 않으면 물질에 할례를 받지 않은 것이 되어서 그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대신 마귀가 침범하여 가정불화, 사고, 질병 뜻하지 사고로 불행이 닥쳐오는 것입니다. 평안과 행복이 깨어지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가정이 되어서 물질 생활에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간섭과 보호를 받으려면 십일조를 구별해 드려서 물질의 할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① 십일조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은 실천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순종해야 됩니다.
레위기 27장 30절에 “땅의 십분의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분명히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만, 십자가의 피 공로로 값없이 구원받았어도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최소한도 수입의 십분의 일은 여호와 하나님께 구별해 바쳐야합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안 지키면 “여호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말라기 3장 8절)이라고 했습니다.
② 십일조는 축복의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십일조는 율법이라고 하지만 율법이 아니라 축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축복의 언약입니다. “복을 주나 아니 주나 시험해보라”고 까지 했는데 이 말씀을 못 믿으면서 “예수 믿으면 천국간다”는 말씀은 어떻게 믿겠습니까 말라기 3장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것이 붓지 아니하나보라”고 강력히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의 몫을 구별해 바치지 않을 때 축복대신 저주가 임한다고 했습니다. 말라기 3장 9절에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 하였은즉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고 그러나 물질의 할례가 없는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세계적인 부흥사 빌리그래함 박사가 “여호와 하나님의 동역자”란 제목으로 설교하면서 “오늘날 미국이 범하는 가장 큰 죄중의 하나는 마땅히 여호와 하나님께 돌려야 할 것을 도적질하는 죄이다. 십일조를 하지 않을 때 빚을 안 갚는 것과 같다 10분의 1을 드리는 것은 사실 헌금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레위기 27장 30절) 이것은 우리가 갚아야 할 빚이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기 전에는 우리는 헌금을 한다고 할 수가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십일조 드리는 대신에 고아원, 양로원에 보내거나 구제하는데 쓰면 되지 않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성물을 도적질해 다가 가난한 사람 구제하는 행위입니다. 결코 용납이 안 되는 것이며 더욱이 그것은 십일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교회 강단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지 십일조 헌금을 가지고 제멋대로 선교사업에 쓰거나 교회학교나 남선 교회, 여선 교회 회비로 내도 안돼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해서 다른 곳에 쓰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쓰려면 십일조 외의 것으로 해야됩니다.
그 가정에서 십일조를 엄격히 구별해 드릴 때,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가정이 되고, 하나하나 간섭해주시고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3. 기도의 사닥다리가 놓인 가정
야곱이 자기를 죽이려는 에서의 낯을 피하여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향해 가다가 벧엘에 이르러서는 밤에 무서워하면서 돌을 베개하고 누워서 자는데 꿈속에서 하늘 문이 열리면서 한 사닥다리가 놓여지더니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하고 말씀하시고 또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성도들의 가정 지붕에는 보이지 않는 사닥다리가 놓여져야 천사를 보내어 지켜주시는데, 이 사닥다리는 기도를 통하여 놓여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고넬뇨 백부장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시쯤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천사)들이 들어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되었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가정에도 항상 기도를 힘쓸 때, 보이지 않는 사닥다리가 놓여져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며 말씀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가 없이 임마누엘의 가정이 될 수 없습니다. 신명기 4장 7절에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신다”고 했습니다. 임마누엘의 가정이 되려면 그 가정에 기도의 사닥다리가 놓여져야 합니다.
임마누엘의 가정이 되는 것 이상 큰 축복이 없는데 그 비결은 첫째, 그 가정에 예배의 구심점이 있어서 주일을 거룩히 지키며 모든 예배에 성실히 출석하여 예배를 드려야하고 두 번째, 물질의 할례를 받아야 하는데 십일조를 성실하게 구별해 바쳐야하고, 세 번째는 기도의 사닥다리가 놓여져야 여호와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시고 천사들이 둘러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가정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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