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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복된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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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주의 전에 모여 함께 예배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큰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복된 가정’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며 은혜 받고자 합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첫째 주일은 어린이 중일로 자녀에 대한 설교를 했고, 둘째 주일은 어버이 주일로 부모 공경에 대한 설교를 했습니다. 오늘은 가정을 복되게 하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는 찾으며 우리 모든 가정이 복되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아름답고 부족함이 없는 에덴을 다 주셨을 때, 아담은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와와 더불어서 가정을 이루었을 때, 비로소 행복해 했습니다. (창2: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中의 뼈요 ! 살 中의 살이라 ! 이것을 男子에게서 取하였은즉 女子라 稱하리라' 하니라.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직접 만드신 최초의 공동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정을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2)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를 계승케 하기 위하여(생육과 번성)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리라”(창 1:28)
3) 여호와 하나님과 우리 관계를 알게 하기 위하여
“이는 저희로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엡 5:23)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통해서 인간에게 복 주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어떤 복을 주셨는지, 어떤 가정이 복 받은 가정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 받은 복을 풍성하게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첫째, 복된 가정은 여호와를 주인으로 모신 가정입니다.
처음교회의 시작은 가정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마가의 집이었고,
에베소 교회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이었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눔바의 집이었고,
골로새 교회는 빌레몬의 집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가이오의 집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기독교는 가정적인 종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신랑이라고 하고 우리 모두를 예수님의 신부라고 합니다.
성도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합니다.
성도는 서로를 형제자매라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여호와 하나님의 집이라고 합니다.
어느 신학자는 “여호와 하나님이 이 세상에 직접 만드신 기관은 교회와 가정밖에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가정은 작은 교회이며 교회는 큰 가정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가정의 주인이 되셔서 보호하고, 인도하고, 복 주기 원하십니다. 아담과 하와의 가정도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있었을 때는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정의 주인이 된다면,
“물질”이 가정의 주인이 된다면,
“자녀”가 가정의 주인이 된다면 큰 문제입니다.
내가 아무리 수고해도 여호와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세워주셔야 복된 가정이 됩니다.
(시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者의 受苦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城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把守軍의 警醒함이 虛事로다
롯의 가정을 보세요. 아브라함보다 더 풍요로운 땅으로 이주했음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떠나자, 패가망신했습니다.
반대로 여호와 하나님이 지키시는 가정을 보세요. 모두가 가난과 굶주림 속에 있어도 사르밧 과부처럼 안전하고 부족함이 없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왕상 17:14-16).
가족을 부양할 남편과 시아버지가 없는 이방 여인 룻처럼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되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호와를 가정에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마1:5)
그러면, 어떤 가정이 여호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가정입니까 예배가 그 가정의 중심이고, 삶으로 드려지는 예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정입니다. 가족이 매일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반드시 책임지십니다.
예배가 있는 가정은 고넬료의 가정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구제하며, 가족을 위해서 항상 기도하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시 128:1)라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우리 가정에 예배를 회복하므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며, 복 주기 위해서 찾아오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둘째, 복된 가정은 정당한 수고의 열매를 식물로 삼는 가정입니다.
우리는 “축복”하면, 나의 노력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서 “축복”이란 아무공로 없이 받은 은혜인 “구원”과는 달리, 뿌린 대로 거두고, 심은 대로 열매 맺으며, 내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땀 흘려서 모은 재산을 속아서 한 순간에 날리거나 또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모으고 있습니까 이렇게 노동의 신성함을 거부하고, 수고하고 땀 흘리기를 싫어하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사람입니다(살후 3:10하).
여호와 하나님조차도 6일 동안 일하시고, 수고하셨기에 창조의 기쁨을 맛보셨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수고의 보람, 노력의 기쁨, 성실의 열매는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입니다. 내가 수고하고 애쓴 열매가 그대로 나에게 돌아오게 해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가정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모셔 들이면, 죄로 인해서 깨어진 이 행복이 다시 회복됩니다(시 128:2).
세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하고, 그 수입의 일부를 이웃을 위해서 쓰는 가정이 복 받은 가정인 것입니다(시 37:3). 따라서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명목 하에 과보호하고, 노동의 신성함과 땀의 대가를 가르치지 않아서 범죄자나 사회의 낙오자로 키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맙시다.
 셋째, 복된 가정은 기도하는 아내, 순종하는 자녀가 있는 가정입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사역 중심지였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여러 번 가버나움에 가신 기록이 있습니다.
이 가버나움에는 베드로와 안드레의 집이 있었습니다.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베드로는 이 때 이미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고 결혼하지 않은 동생을 데리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동생뿐만 아니라 장모도 모시고 있었습니다. 이런 점으로 봐서 베드로는 굉장히 가정적이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리고 애처가였던 것으로도 보입니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으면 장모를 모시고 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고전9:5 말씀에는 베드로가 선교여행 때 아내와 함께 다녔다고 합니다. 여간 아내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또한 베드로의 아내도 베드로의 선교에 상당한 힘이 되었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마누라가 예쁘면 처가집 말뚝에도 절한다’는 우리 속담도 있습니다. 베드로의 가정적인 태도, 아내를 극진히 사랑하는 자세가 초대교회의 리더십을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의 하나였습니다. 아내의 기도하는 힘은 훌륭한 리더십을 만들게 됩니다. 가정적인 모범은 지금도 리더십의 한 면입니다.
학력이나, 외모, 집안 배경이 좋지 않아도 기도하는 아내가 있는 가정, 공부는 좀 못해도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가 있는 가정, 이 가정은 행복한 가정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시128:3-4)라고 말씀합니다.
가정에서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는 여성이 좋은 아내입니다. 혼수를 많이 해 오고, 돈을 많이 번다고 좋은 아내요, 어머니가 아닙니다.
물을 구하기 힘든 유대 땅에서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하는 포도나무와 같이 가정에서 남편과 자녀들에게 “생명수”를 공급하고, 그들이 힘써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여성이 좋은 아내인 것입니다. 이같은 역할을 감당하는 여인은 진주보다 귀하고, 그 남편은 아내를 믿고 사업을 번창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치 아니하겠으며(잠31:10-11)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여성들이 이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슬기로운 아내만이 이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잠19:14).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대기업을 일으킨 뒤 고향에 조그마한 집을 한 채 지었습니다. 그 집은 대기업 총수가 살기에는 매우 작고 평범한 집이었습니다. “이건 너무 초라하지 않나요. 호화롭지는 않더라도 생활에 불편하지는 않아야지요. ” 주위 사람들은 걱정스럽게 포드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대답했습니다. “가정은 건물이 아닙니다. 비록 작고 초라하더라도 예수님의 사랑이 넘친다면 그곳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집이지요. ”
지금도 디트로이트에 있는 헨리 포드의 기념관에 가면 우리는 이런 글을 볼 수 있습니다. “헨리는 꿈을 꾸는 사람이었고 그의 아내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 헨리 포드의 성공의 이면에는 꿈꾸는 사람과 기도하는 사람이 함께 이룬 아름다운 가정이 있었습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이 복 주시는 가정은 그 자녀들이 어린 감람나무와 같습니다. 포도나무처럼, 감람나무도 유대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나무입니다.
유대인들은 감람나무에서 올리브유라는 기름을 짜서 음식을 만들 때 사용할 뿐만 아니라, 가정을 밝히는 등불로도 사용하였습니다. 더욱이 감람나무는 한 번 베면 죽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베어진 그루터기에서 새로운 싹이 힘차게 자라나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감람나무처럼 우리의 자녀들은 실패에 굴하지 않고, 진리 안에서 이 사회를 밝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등불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넷째, 복된 가정은 대(代)를 이어서 성전에 오르는 가정입니다.
복 중의 복은 우리 가정이 평생토록 성전에서 흘러넘치는 복을 누리고, 나아가 자식의 자식들을 성전에서 보는 것입니다(시128:5-6)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福을 주실지어다 너는 平生에 예루살렘의 福을 보며 (6) 네 子息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平康이 있을지로다.
성전, 곧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주님과의 만남의 장소요, 축복이 흘러넘치는 곳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남향으로 집을 짓고 살았다면, 우리의 가정은 교회를 향해서 집을 짓고 살아야 합니다.
축복받는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가 곧 우리의 가정이요, 우리의 가정이 곧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등지고 살면, 내 대에서는 믿음 생활 잘 한다고 해도, 자식 대에 가면 성전을 등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교회 중심의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성전을 떠나지 않는 삶을 통해 모세의 후계자,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축복을 받은 여호수아처럼 키워야 합니다. 그렇게 키운 자녀와 부모가 함께 손을 잡고 교회를 향하는 모습이 바로 이 시대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우리 가정은 “이미” 복 받은 가정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행복의 기준으로 삼는 물질, 명예, 권력은 우리의 가정을 결코 행복하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가정이 되므로, 이미 받은 복을 날마다 누리며 살아갑시다.
복된 가정은
여호와를 주인으로 모신 가정입니다.
정당한 수고의 열매를 식물로 삼는 가정입니다. 기도하는 아내, 순종하는 자녀가 있는 가정입니다.
대(代)를 이어서 성전에 오르는 가정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이런 가정이 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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