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참으로 복된 가정
본문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신록의 5월입니다만, 지금 조국의 기후는 마치 7. 8월의 한여름처럼 무척 덥습니다.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가정에 관한 설교를 계속했습니다. 오늘은 가정의 달 설교 마지막으로 '참으로 복된 가정'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은 시편 128편의 말씀입니다.
"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3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4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찌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6네 자식의 자식을 볼찌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찌로다"(1-6절) 아멘
이 시편은 '행복하고 참으로 복된 가정'을 노래한 '가정시'입니다. 이 시편의 중심사상은 '여호와 하나님 경외'사상입니다. 행복하고 참으로 복된 가정이 어떤 가정인가 그 가정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여호와 하나님 경외' 또는 '여호와 경외'는 여호와 하나님 또는 여호와를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 경외가 지혜의 근본이며 또한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삶의 근본이라고 할 때 (잠 1:7, 8:13, 15:33등) 이는 형벌에 대한 불안에 호소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권능이 넘치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떨 것이 아니라 창조주께 마땅히 그래야 하듯이 여호와 하나님을 어려워하며 받들어 보셔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관계는 노예처럼 굴복하거나 또는 반대로 건방지게 자신만만해 하는 것이 아니라 공경과 신뢰로 가득찬 관계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이를 넘어서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말합니다. (요일 4:16-19) 즉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진실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오늘 시편에서 말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경외'사상을 중심해서 '참으로 복된 가정'이 어떠한 가정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가정이 어떤 축복을 받게 되는지를 살펴보자는 말씀입니다.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은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수 있는 목을 누립니다. "우리의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일하는 것만큼 그 대가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아직까지도 수고한 그 대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 즉 땀 흘리는 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고 억울하게 노동착취를 당하는 자들이 우리 속에는 아직도 많습니다. 아직도 근로시간을 초과한다든지 작업환경이 좋지 못한 곳에서 질병의 위협을 받으면서 중노동을 해도 거기에 알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억울한 노동자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수고한 대로 땀 흘린 만큼의 대우를 받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 가정에 속해 있는 모든 식구들이 그 열매를 얻을 수 있다면 우리 가정은 참으로 복된 가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이 자식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결실한 포도나무같은 아내가 낳은 자식이 있고 그 자식이 감람나무같은 건강한 자식을 가진 가정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하지만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많은 자식'이 복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성서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기본적인 축복과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독신주의자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 세계의 추세이기도 합니다만,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예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유대인으로 잘 키워 유대민족을 존속시키는 것이 하나의 의무로 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민족이나 나라가 마찬가지이긴 합니다만, 이스라엘 민족은 가정이 그 민족의 기본 바탕이 되었고 가정의 중요성을 말하고 그 가정의 대를 이어가고 전통을 계승시키는 일을 대단히 중요시하는 민족입니다. 구약성서의 처음 책인 창세기는 바로 '족장사'인데 그것은 바로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의 가정 이삭의 가정 야곱의 가정 요셉의 가정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가 바로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정은 다른 나라의 가정이 비해 아주 독특한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조상들의 신앙을 자식들에게 계승시키는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가정에 있어서 아내와 자식들의 존재가 단지 한 가문의 혈통을 대대로 이어간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조상들의 신앙을 대대로 물려준다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같은 것을 우리는 디모데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 1:5) 이같은 믿음 신앙의 계승을 위해 유대인들이 강조하는 것이 교육입니다. 이 교육은 학교교육은 물론이고 '가정교육'을 중요시합니다. 가정교육은 곧 신앙교육입니다. 신명기 6장 7절의 말씀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너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든지 길에 행할 때든지 일어날 때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이 자식복을 누린다는 이 복됨은 단지 많은 자식을 갖는 의미만은 결코 아닙니다. 이 자식들이 주의 법도를 행하고 부모님들의 신앙교육을 잘 받아서 조상들의 신앙을 이어받은 자식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자식들을 신앙교육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유대인 부모들은 신앙교육을 한 의무로 행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어린이는 세 살 때부터 '토라'와 '탈무드'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들 어린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토라 즉 구약의 이야기들을 듣고 배우며 자랍니다. 구약성경의 이야기들, 많은 신앙의 위인들의 이야기 곧 아브라함의 이야기, 모세의 이야기, 다윗의 이야기 등 풍성한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신앙을 키워가는 것입니다. '탈무드'는 수많은 랍비들이 토론한 과정과 결론을 엮은 인생의 지혜를 담은 것입니다. 이것은 기원전 5백전부터 기원 후 500년 동안에 편집한 2백 5십만 단어 이상에 달하는 방대한 양을 집대성한 것입니다. '탈무드'의 내용은 유대인이 지켜야 할 계율이 쓰여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생활 전반에 걸친 모든 분야에 걸쳐 쓰여져 있습니다. 이를테면, 천문학, 해부학, 보건위생, 과학의 각 분야, 법률과 윤리 등에 관한 것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같은 탈무드를 어린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읽게 할 때에 부모는 반드시 꿀을 한 방울 탈무드에다 떨어뜨리고는 아이이게 키스를 시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이들이 탈무드에 대한 애착을 가지게 하는 하나의 상징적인 의식이라고 합니다. 교육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탈무드 교육은 두뇌를 영리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세계에서 머리가 제일 좋은 것은 탈무드교육때문이라고 합니다. 2백 5십만 이상의 어휘를 가진 탈무드를 읽는 것은 그 만큼 어휘력을 풍부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풍부한 어휘력이 두뇌를 발달시키고 창의력과 상상력을 갖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유대인들의 아이들이 받는 교육에 비하면 오늘날 우리들의 아이들이 받는 교육이 얼마나 문제가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요즈음 우리네 아이들이 '감각적인 것'에 빠져 있습니다. 요즈음 세대들을 N세대니 X세대니 하는 여러 가지 세대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인스턴트 세대', 즉 '즉석세대'라고도 합니다. 이 즉석세대는 어머니의 젖보다는 분유, 밥이나 떡보다는 빵과 과자, 된장찌게와 밥 보다는 페스트푸드를 좋아하는 인스턴트 세대라는 것입니다. 이들 즉석세대들은 '읽고 쓰고 생각하기'보다는 '보고 듣고 느끼기'를 좋아하는 감각에 사는 '감각세대'라고 합니다.
이토록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이 읽고 생각하기 보다는 보고 느끼며 즉석행동을 하기 때문에 수비게 충동적으로 범죄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젊은 이들의 범죄행위에는 강력범이 많고 생명경시 사상에 빠져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고 살인행위를 죄책감 없이 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들 범죄자들이 "잘못은 어른들에게 있고, 우리는 단지 어른들을 흉내낼 뿐이다"고 항변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 기성세대들이 자식들에게 인성교육 내지 신앙교육을 철저히 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기성세대들이 자식들에게 본을 보여줄 만큼 모범적인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식들이 우리 부모들로부터 본받을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토록 유태인 가정에 비하면 우리네 가정에는 자녀교육 곧 신앙교육의 부제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네 가정교육의 부제현상은 바로 가정해체의 위기를 가져오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정을 참으로 복되게 세우기 위해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 우리 자식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는 경건한 자식들로 교육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같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이 참으로 복된 가정이 되면 한 국가공동체가 참으로 평강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 5절에서 시인은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찌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찌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찌로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가정은 한 사회와 국가의 기본단위입니다. 이 기본단위인 가정이 참으로 든든하고 평강해야 그 가정들이 구성하고 있는 나라가 복되고 평강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여러분들의 선교사역이 한 가정을 신앙으로 , 말씀으로 든든히 세우는 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들이 사역하고 있는 그 선교현장, 그 현지의 나라들이 평강이 넘치는 나라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3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4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찌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6네 자식의 자식을 볼찌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찌로다"(1-6절) 아멘
이 시편은 '행복하고 참으로 복된 가정'을 노래한 '가정시'입니다. 이 시편의 중심사상은 '여호와 하나님 경외'사상입니다. 행복하고 참으로 복된 가정이 어떤 가정인가 그 가정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여호와 하나님 경외' 또는 '여호와 경외'는 여호와 하나님 또는 여호와를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 경외가 지혜의 근본이며 또한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삶의 근본이라고 할 때 (잠 1:7, 8:13, 15:33등) 이는 형벌에 대한 불안에 호소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권능이 넘치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떨 것이 아니라 창조주께 마땅히 그래야 하듯이 여호와 하나님을 어려워하며 받들어 보셔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관계는 노예처럼 굴복하거나 또는 반대로 건방지게 자신만만해 하는 것이 아니라 공경과 신뢰로 가득찬 관계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이를 넘어서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말합니다. (요일 4:16-19) 즉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진실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오늘 시편에서 말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경외'사상을 중심해서 '참으로 복된 가정'이 어떠한 가정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가정이 어떤 축복을 받게 되는지를 살펴보자는 말씀입니다.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은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수 있는 목을 누립니다. "우리의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일하는 것만큼 그 대가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아직까지도 수고한 그 대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 즉 땀 흘리는 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고 억울하게 노동착취를 당하는 자들이 우리 속에는 아직도 많습니다. 아직도 근로시간을 초과한다든지 작업환경이 좋지 못한 곳에서 질병의 위협을 받으면서 중노동을 해도 거기에 알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억울한 노동자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수고한 대로 땀 흘린 만큼의 대우를 받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 가정에 속해 있는 모든 식구들이 그 열매를 얻을 수 있다면 우리 가정은 참으로 복된 가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이 자식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결실한 포도나무같은 아내가 낳은 자식이 있고 그 자식이 감람나무같은 건강한 자식을 가진 가정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하지만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많은 자식'이 복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성서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기본적인 축복과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독신주의자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 세계의 추세이기도 합니다만,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예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유대인으로 잘 키워 유대민족을 존속시키는 것이 하나의 의무로 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민족이나 나라가 마찬가지이긴 합니다만, 이스라엘 민족은 가정이 그 민족의 기본 바탕이 되었고 가정의 중요성을 말하고 그 가정의 대를 이어가고 전통을 계승시키는 일을 대단히 중요시하는 민족입니다. 구약성서의 처음 책인 창세기는 바로 '족장사'인데 그것은 바로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의 가정 이삭의 가정 야곱의 가정 요셉의 가정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가 바로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정은 다른 나라의 가정이 비해 아주 독특한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조상들의 신앙을 자식들에게 계승시키는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가정에 있어서 아내와 자식들의 존재가 단지 한 가문의 혈통을 대대로 이어간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조상들의 신앙을 대대로 물려준다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같은 것을 우리는 디모데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 1:5) 이같은 믿음 신앙의 계승을 위해 유대인들이 강조하는 것이 교육입니다. 이 교육은 학교교육은 물론이고 '가정교육'을 중요시합니다. 가정교육은 곧 신앙교육입니다. 신명기 6장 7절의 말씀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너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든지 길에 행할 때든지 일어날 때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이 자식복을 누린다는 이 복됨은 단지 많은 자식을 갖는 의미만은 결코 아닙니다. 이 자식들이 주의 법도를 행하고 부모님들의 신앙교육을 잘 받아서 조상들의 신앙을 이어받은 자식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자식들을 신앙교육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유대인 부모들은 신앙교육을 한 의무로 행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어린이는 세 살 때부터 '토라'와 '탈무드'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들 어린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토라 즉 구약의 이야기들을 듣고 배우며 자랍니다. 구약성경의 이야기들, 많은 신앙의 위인들의 이야기 곧 아브라함의 이야기, 모세의 이야기, 다윗의 이야기 등 풍성한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신앙을 키워가는 것입니다. '탈무드'는 수많은 랍비들이 토론한 과정과 결론을 엮은 인생의 지혜를 담은 것입니다. 이것은 기원전 5백전부터 기원 후 500년 동안에 편집한 2백 5십만 단어 이상에 달하는 방대한 양을 집대성한 것입니다. '탈무드'의 내용은 유대인이 지켜야 할 계율이 쓰여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생활 전반에 걸친 모든 분야에 걸쳐 쓰여져 있습니다. 이를테면, 천문학, 해부학, 보건위생, 과학의 각 분야, 법률과 윤리 등에 관한 것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같은 탈무드를 어린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읽게 할 때에 부모는 반드시 꿀을 한 방울 탈무드에다 떨어뜨리고는 아이이게 키스를 시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이들이 탈무드에 대한 애착을 가지게 하는 하나의 상징적인 의식이라고 합니다. 교육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탈무드 교육은 두뇌를 영리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세계에서 머리가 제일 좋은 것은 탈무드교육때문이라고 합니다. 2백 5십만 이상의 어휘를 가진 탈무드를 읽는 것은 그 만큼 어휘력을 풍부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풍부한 어휘력이 두뇌를 발달시키고 창의력과 상상력을 갖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유대인들의 아이들이 받는 교육에 비하면 오늘날 우리들의 아이들이 받는 교육이 얼마나 문제가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요즈음 우리네 아이들이 '감각적인 것'에 빠져 있습니다. 요즈음 세대들을 N세대니 X세대니 하는 여러 가지 세대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인스턴트 세대', 즉 '즉석세대'라고도 합니다. 이 즉석세대는 어머니의 젖보다는 분유, 밥이나 떡보다는 빵과 과자, 된장찌게와 밥 보다는 페스트푸드를 좋아하는 인스턴트 세대라는 것입니다. 이들 즉석세대들은 '읽고 쓰고 생각하기'보다는 '보고 듣고 느끼기'를 좋아하는 감각에 사는 '감각세대'라고 합니다.
이토록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이 읽고 생각하기 보다는 보고 느끼며 즉석행동을 하기 때문에 수비게 충동적으로 범죄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젊은 이들의 범죄행위에는 강력범이 많고 생명경시 사상에 빠져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고 살인행위를 죄책감 없이 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들 범죄자들이 "잘못은 어른들에게 있고, 우리는 단지 어른들을 흉내낼 뿐이다"고 항변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 기성세대들이 자식들에게 인성교육 내지 신앙교육을 철저히 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기성세대들이 자식들에게 본을 보여줄 만큼 모범적인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식들이 우리 부모들로부터 본받을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토록 유태인 가정에 비하면 우리네 가정에는 자녀교육 곧 신앙교육의 부제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네 가정교육의 부제현상은 바로 가정해체의 위기를 가져오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정을 참으로 복되게 세우기 위해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 우리 자식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는 경건한 자식들로 교육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같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이 참으로 복된 가정이 되면 한 국가공동체가 참으로 평강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 5절에서 시인은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찌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찌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찌로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가정은 한 사회와 국가의 기본단위입니다. 이 기본단위인 가정이 참으로 든든하고 평강해야 그 가정들이 구성하고 있는 나라가 복되고 평강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여러분들의 선교사역이 한 가정을 신앙으로 , 말씀으로 든든히 세우는 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들이 사역하고 있는 그 선교현장, 그 현지의 나라들이 평강이 넘치는 나라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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