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사랑이 가득한 가정
본문
새해에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받아야 할 여러 가지 복중에 최우선적으로 받아야할 복은 바로 '사랑이 가득한 가정'이 되는 복을 받아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에서 신앙생활이 중요하지만, 일주일 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교회가 아니라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생활이 잘못되면 가정생활 때문에 직장에 영향을 미치고, 사업에 영향을 미치고, 더 나아가서 우리의 신앙생활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가정이 중요하냐 교회가 중요하냐 또는 직장이 중요하냐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둘 다 중요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2002년에 어떻게 '사랑이 가득한 가정'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무엇인가 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축복 받을 준비를 해야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정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1.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축복 받는 첫 번째가 복의 근원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 모든 가정의 왕과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2002년 새해에 사랑이 가득한 가정의 복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가정에 대한 많은 정의가 있지만 저는 가정은 목욕탕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신사도 가난한 사람도 목욕탕에 가게되면 옷을 다 벗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동안 가리워 졌던 흉터와 수술 자국이 그리고 며칠동안 목욕하지 않은 때와 같이 더러운 것들이 다 드러나게 됩니다. 세상에서 목욕탕처럼 우리의 내면적인 것이 다 드러나는 곳이 한 곳이 있습니다. 그 곳은 교회도 아니고 직장도 아닌 바로 가정입니다.
우리는 다 감추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에 가면 다 드러납니다. 그럴 때, 우리 가운데 누가 가족 앞에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가족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가장이 있습니까 가족을 만족케 하는 가장이 있습니까 오히려 사랑을 주기보다 사랑을 요구하고 상처를 품기보다 상처를 주는 가족일 때가 많습니다. 이런 우리가 가정의 가장이 되고, 호주가 되고, 가족의 주인이 된다면, 그 불완전한 나 때문에 가족들이 고통스러워하지 않겠습니까 왜 너무 주인이 변화가 심하고 신뢰할 수 없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족과 상담을 해보면 나이 어린 자녀들이 부모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고 회의와 갈등을 하는 것을 봅니다. 교회에서 보는 부모의 모습과 가정에 와서 보이는 부모의 모습,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부모의 모습과 내가 보는 부모의 모습이 판이하게 다를 때 이해하지 못하는 자녀들이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어떤 게 진정한 부모의 모습인가 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술을 먹고 아무 때나 들어오는 부모들이 어쩌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늦게 들어오는 자녀들을 쥐잡듯이 야단을 칩니다. 그 부모의 권위를 앞세워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말합니다. 초등학교 때는 들을지 몰라도 중학교 고등학교 가면 절대로 말을 듣지 않습니다. 부모가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면서 자녀들이 중학교 고등학교 때 술 마시고 담배 피는 것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라 부모들이 가르치는 정상적인 결과인 것입니다.
부부간에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것을 가지고 서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양보하지 않고, 용서하지 않고, 부부지간에 자존심만 내세우며 다투다가 나중에는 주먹다짐을 하고 나중에는 법정에 간다고 하는 그런 모습 속에서 자녀들은 큰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도대체 사랑이 무엇인가 결혼은 왜 해야하는가 용서가 무엇인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요즘 많은 사람이 독신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되지 않을 가정, 이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사람이 여기 누가 있습니까 특별히 가부장 중심의 유교적인 가정일수록 이런 이중적인 부모의 잘못된 모순이 오랫동안 가정을 억누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통적인 한국의 가정의 모습입니다. 이런 가정은 사랑이 가득할 수 없습니다. 권위만 가득할 뿐입니다. 그런 가족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가정이 바뀌어야하고 뒤집어져야 합니다.
1.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주인이 되게 해야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주가 되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부모처럼 변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부모들처럼 이중인격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늘 진실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늘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정의 호주를 포함해서 온 가족들이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가정의 주인이시다. "우리 가정의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라고 선포해야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부터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가족들에게 자신의 잘못과 위선 됨을 시인하고 인정하고 그것을 매일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고쳐가고 바꾸어 가는 모습을 가족에게 보여주는 것이 완벽치 않은 부모보다 자녀들을 더 올바르게 키울 수 있는 비결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가정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모셔드리는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인이 되실 때 가족들은 그 주인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과 대화하게 됩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을 높입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 가장 좋은 방법이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일입니다. 저희 교회는 작년부터 매일 가정에서 예배드릴 수 있는 성경구절을 그리고 기도해야 할 제목을 간략하게 교회주보에다가 기록해 놓았습니다. 저부터 이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쁘다는 핑계로, 가정에 들어가는 시간이 일정치 않다는 이유로 시간을 정해놓고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목사가 이런데, 여러분은 어떻겠습니까 다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옳은 일은 아닙니다.
금년이 사랑이 가득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무너져버린 가정제단이 다시 회복됨으로 우리 가정의 주인이 여호와 하나님임을 확인하는 일이 시작해야 됩니다. 그것이 매일하기 어렵다면 일주일에 한번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일주일에 어느 날, 어느 시간이 가족들이 가장 많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인가 정하고 약속을 정해야 합니다.
그 시간에는 어떤 약속도 하지말고 그 시간에는 꼭 집으로 들어오기로 모두 약속을 해야합니다. 왜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이번에 QT책을 구입하셨는데 거기에 보면 가족 예배에 대한 상세한 안내서가 나와 있습니다. 한 달에 네 번을 드릴 수 있습니다. 이일부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온 가족들이 그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어떻게 살아야하고, 어머니는 어떻게 살아야하고
, 자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각자의 책임과 의무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기도하면서 가족들이 함께 예배를 드릴 때, 아버지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가족들 앞에서 자신의 무능력함과 자신의 부족함을 놓고 회개하며 기도합니다. 자식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자식은 부모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럴 때 그 모든 상처들이, 그 위선이 다 눈 녹듯이 녹아져 내립니다. 그리고 서로를 품을 수 있는 사랑이 가득한 가정이 되어 지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왜 못합니까 바쁘다는 핑계 때문에 못하는 것입니다. 그 무엇이 바쁘게 만드는지 아십니까 사탄 마귀입니다. 마귀는 우리로 이렇게 핑계하게 만듭니다. "요즘 같이 바쁜 세상에 언제 집에 일찍 들어오고 언제 가족과 같이 한솥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믿음이 약하니까 그렇게 바쁘게 사는 것입니다. 처자식을 위합니까 진정으로 처자식을 위한 다면 가정예배를 회복해야 될 것입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이 지켜주실 때, 여호와 하나님이 눈동자처럼 지켜주심으로 우리가정에 악한 마귀가, 질병이, 세상의 유혹이, 시험과 환란이 틈타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2002년 수원제일교회 가족들은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 이상 가정예배를 드리는 가족의 연합의 역사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 사랑이 가득한 집이 되기 위해서는 예배만 드리면 안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가득한 가정이라는 말이 기독교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사랑이 가득한 가정이 되는 것은 종교를 초월한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고 있는 공통 과제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이 보여주어야 할 사랑이 가득한 가정의 특별한 정체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가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본래 나는 사랑이 없고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라나서 가족들에게 자상할 줄 모르고 무뚝뚝한 나이지만, 그런 내 속에서 어떻게 가족들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나의 약점과 허물을 시인하기 힘들지만 가능한 방법은 먼저 주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독생자는 얼마나 먼 곳에서 오셨습니까 저 하늘 영광의 보좌 저 끝에서 여기까지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때,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과 요건을 갖춘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깊이 아시면 아실 수록 우리는 실망스러운 사람입니다. 이중인격자이며, 문제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우리를 알아 가시면 가실수록 우리를 포기하시지 않으시고 우리 때문에 욕을 당하시고, 우리 때문에 매를 맞고, 우리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할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되 그것이 힘들고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자비를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주님으로 받은 사랑입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도 주님을 사랑해야겠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깨달았을 때 내가 주님을 사랑하다가 매를 맞고 옥에 갇히고 주님을 위해서 순교를 당해도 그것이 영광이요 축복이라고 믿게 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 주님의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이기적인 삶을 이타적인 삶으로 나 중심의 삶을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사랑을 받았으니 그 사랑을 여호와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하는데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내가 당신을 어떻게 사랑할까요"하면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너 그 사랑 나에게 갚지 말고 너 가족에게 돌려줘!"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네 아내에게, 네 시어머니에게, 네 며느리에게 네게 준 사랑을 되돌려 줘"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가족이 좋기 때문에 사랑하나요 가족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가족이 옳고 바르기 때문에 베푸나요 아닙니다. 미울 때가 참 많지만은 가족이기 때문에 우리가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사랑 다음으로 이 세상에서 이상적인 사랑이 가족 사랑입니다.
가정을 목욕탕과 같다고 비유한바가 있습니다. 목욕탕의 또 하나의 특징은 아무리 더러운 사람이라도 그곳에만 들어갔다 나오면 깨끗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정입니다. 세상의 허물을 다 꺼내 보세요. 세상사람들은 다 돌 던질 겁니다. 그러나 가족들만은 그 가족의 허물을 다 씻겨 줄 수 있어야 사랑의 가족입니다. 왜 며느리의 허물을 드러냅니까 왜 남편의 허물을 법에다 고소합니까
그래서 내가 얼마나 행복할 수 있습니까 오히려 그 불행을 대물림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가족은 목욕탕 주인과 같아야 합니다. 어떤 허물도 어떤 약점도 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용납할 수 있어야 그것이 사랑이 가득한 가정입니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잘 못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생일날 선물해주고, 결혼기념일에 외식하고, 용돈 풍성하게 주고, 생활비 넉넉하게 주면 가정에 사랑이 넘친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거래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가정이 중요하냐 교회가 중요하냐 또는 직장이 중요하냐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둘 다 중요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2002년에 어떻게 '사랑이 가득한 가정'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무엇인가 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축복 받을 준비를 해야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정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1.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축복 받는 첫 번째가 복의 근원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 모든 가정의 왕과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2002년 새해에 사랑이 가득한 가정의 복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가정에 대한 많은 정의가 있지만 저는 가정은 목욕탕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신사도 가난한 사람도 목욕탕에 가게되면 옷을 다 벗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동안 가리워 졌던 흉터와 수술 자국이 그리고 며칠동안 목욕하지 않은 때와 같이 더러운 것들이 다 드러나게 됩니다. 세상에서 목욕탕처럼 우리의 내면적인 것이 다 드러나는 곳이 한 곳이 있습니다. 그 곳은 교회도 아니고 직장도 아닌 바로 가정입니다.
우리는 다 감추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에 가면 다 드러납니다. 그럴 때, 우리 가운데 누가 가족 앞에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가족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가장이 있습니까 가족을 만족케 하는 가장이 있습니까 오히려 사랑을 주기보다 사랑을 요구하고 상처를 품기보다 상처를 주는 가족일 때가 많습니다. 이런 우리가 가정의 가장이 되고, 호주가 되고, 가족의 주인이 된다면, 그 불완전한 나 때문에 가족들이 고통스러워하지 않겠습니까 왜 너무 주인이 변화가 심하고 신뢰할 수 없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족과 상담을 해보면 나이 어린 자녀들이 부모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고 회의와 갈등을 하는 것을 봅니다. 교회에서 보는 부모의 모습과 가정에 와서 보이는 부모의 모습,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부모의 모습과 내가 보는 부모의 모습이 판이하게 다를 때 이해하지 못하는 자녀들이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어떤 게 진정한 부모의 모습인가 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술을 먹고 아무 때나 들어오는 부모들이 어쩌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늦게 들어오는 자녀들을 쥐잡듯이 야단을 칩니다. 그 부모의 권위를 앞세워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말합니다. 초등학교 때는 들을지 몰라도 중학교 고등학교 가면 절대로 말을 듣지 않습니다. 부모가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면서 자녀들이 중학교 고등학교 때 술 마시고 담배 피는 것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라 부모들이 가르치는 정상적인 결과인 것입니다.
부부간에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것을 가지고 서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양보하지 않고, 용서하지 않고, 부부지간에 자존심만 내세우며 다투다가 나중에는 주먹다짐을 하고 나중에는 법정에 간다고 하는 그런 모습 속에서 자녀들은 큰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도대체 사랑이 무엇인가 결혼은 왜 해야하는가 용서가 무엇인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요즘 많은 사람이 독신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되지 않을 가정, 이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사람이 여기 누가 있습니까 특별히 가부장 중심의 유교적인 가정일수록 이런 이중적인 부모의 잘못된 모순이 오랫동안 가정을 억누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통적인 한국의 가정의 모습입니다. 이런 가정은 사랑이 가득할 수 없습니다. 권위만 가득할 뿐입니다. 그런 가족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가정이 바뀌어야하고 뒤집어져야 합니다.
1.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주인이 되게 해야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주가 되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부모처럼 변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부모들처럼 이중인격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늘 진실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늘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정의 호주를 포함해서 온 가족들이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가정의 주인이시다. "우리 가정의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라고 선포해야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부터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가족들에게 자신의 잘못과 위선 됨을 시인하고 인정하고 그것을 매일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고쳐가고 바꾸어 가는 모습을 가족에게 보여주는 것이 완벽치 않은 부모보다 자녀들을 더 올바르게 키울 수 있는 비결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가정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모셔드리는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인이 되실 때 가족들은 그 주인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과 대화하게 됩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을 높입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 가장 좋은 방법이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일입니다. 저희 교회는 작년부터 매일 가정에서 예배드릴 수 있는 성경구절을 그리고 기도해야 할 제목을 간략하게 교회주보에다가 기록해 놓았습니다. 저부터 이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쁘다는 핑계로, 가정에 들어가는 시간이 일정치 않다는 이유로 시간을 정해놓고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목사가 이런데, 여러분은 어떻겠습니까 다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옳은 일은 아닙니다.
금년이 사랑이 가득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무너져버린 가정제단이 다시 회복됨으로 우리 가정의 주인이 여호와 하나님임을 확인하는 일이 시작해야 됩니다. 그것이 매일하기 어렵다면 일주일에 한번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일주일에 어느 날, 어느 시간이 가족들이 가장 많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인가 정하고 약속을 정해야 합니다.
그 시간에는 어떤 약속도 하지말고 그 시간에는 꼭 집으로 들어오기로 모두 약속을 해야합니다. 왜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이번에 QT책을 구입하셨는데 거기에 보면 가족 예배에 대한 상세한 안내서가 나와 있습니다. 한 달에 네 번을 드릴 수 있습니다. 이일부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온 가족들이 그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어떻게 살아야하고, 어머니는 어떻게 살아야하고
, 자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각자의 책임과 의무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기도하면서 가족들이 함께 예배를 드릴 때, 아버지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가족들 앞에서 자신의 무능력함과 자신의 부족함을 놓고 회개하며 기도합니다. 자식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자식은 부모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럴 때 그 모든 상처들이, 그 위선이 다 눈 녹듯이 녹아져 내립니다. 그리고 서로를 품을 수 있는 사랑이 가득한 가정이 되어 지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왜 못합니까 바쁘다는 핑계 때문에 못하는 것입니다. 그 무엇이 바쁘게 만드는지 아십니까 사탄 마귀입니다. 마귀는 우리로 이렇게 핑계하게 만듭니다. "요즘 같이 바쁜 세상에 언제 집에 일찍 들어오고 언제 가족과 같이 한솥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믿음이 약하니까 그렇게 바쁘게 사는 것입니다. 처자식을 위합니까 진정으로 처자식을 위한 다면 가정예배를 회복해야 될 것입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이 지켜주실 때, 여호와 하나님이 눈동자처럼 지켜주심으로 우리가정에 악한 마귀가, 질병이, 세상의 유혹이, 시험과 환란이 틈타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2002년 수원제일교회 가족들은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 이상 가정예배를 드리는 가족의 연합의 역사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 사랑이 가득한 집이 되기 위해서는 예배만 드리면 안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가득한 가정이라는 말이 기독교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사랑이 가득한 가정이 되는 것은 종교를 초월한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고 있는 공통 과제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이 보여주어야 할 사랑이 가득한 가정의 특별한 정체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가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본래 나는 사랑이 없고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라나서 가족들에게 자상할 줄 모르고 무뚝뚝한 나이지만, 그런 내 속에서 어떻게 가족들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나의 약점과 허물을 시인하기 힘들지만 가능한 방법은 먼저 주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독생자는 얼마나 먼 곳에서 오셨습니까 저 하늘 영광의 보좌 저 끝에서 여기까지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때,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과 요건을 갖춘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깊이 아시면 아실 수록 우리는 실망스러운 사람입니다. 이중인격자이며, 문제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우리를 알아 가시면 가실수록 우리를 포기하시지 않으시고 우리 때문에 욕을 당하시고, 우리 때문에 매를 맞고, 우리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할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되 그것이 힘들고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자비를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주님으로 받은 사랑입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도 주님을 사랑해야겠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깨달았을 때 내가 주님을 사랑하다가 매를 맞고 옥에 갇히고 주님을 위해서 순교를 당해도 그것이 영광이요 축복이라고 믿게 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 주님의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이기적인 삶을 이타적인 삶으로 나 중심의 삶을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사랑을 받았으니 그 사랑을 여호와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하는데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내가 당신을 어떻게 사랑할까요"하면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너 그 사랑 나에게 갚지 말고 너 가족에게 돌려줘!"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네 아내에게, 네 시어머니에게, 네 며느리에게 네게 준 사랑을 되돌려 줘"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가족이 좋기 때문에 사랑하나요 가족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가족이 옳고 바르기 때문에 베푸나요 아닙니다. 미울 때가 참 많지만은 가족이기 때문에 우리가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사랑 다음으로 이 세상에서 이상적인 사랑이 가족 사랑입니다.
가정을 목욕탕과 같다고 비유한바가 있습니다. 목욕탕의 또 하나의 특징은 아무리 더러운 사람이라도 그곳에만 들어갔다 나오면 깨끗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정입니다. 세상의 허물을 다 꺼내 보세요. 세상사람들은 다 돌 던질 겁니다. 그러나 가족들만은 그 가족의 허물을 다 씻겨 줄 수 있어야 사랑의 가족입니다. 왜 며느리의 허물을 드러냅니까 왜 남편의 허물을 법에다 고소합니까
그래서 내가 얼마나 행복할 수 있습니까 오히려 그 불행을 대물림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가족은 목욕탕 주인과 같아야 합니다. 어떤 허물도 어떤 약점도 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용납할 수 있어야 그것이 사랑이 가득한 가정입니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잘 못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생일날 선물해주고, 결혼기념일에 외식하고, 용돈 풍성하게 주고, 생활비 넉넉하게 주면 가정에 사랑이 넘친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거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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