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하나님 가정의 오복
본문
어떤 신학교에서 신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들이 가장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가 그 때 신학생들 대답은 거의 일치했습니다. 한결같이 천구가고 싶고 또 가정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신학생들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지금 이 둘 중에서 한 곳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 때 신학생 하나가 모든 학생들을 대표해서 대답했습니다. "먼저 집에 들렸다가 곧장 천국으로 가고 싶습니다. "
여러분 무슨 뜻일까요 가정은 천국이라는 말입니다. 천국같이 좋은 곳, 소중한 곳입니다. 우리 가정은 천국같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이 소중한 가정의 달 다해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 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가정의 달을 마지막 보내는 아쉬운 마음 가지고 우리 가정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정리하고 돌아보고자 합니다.
오늘의 본문 시편 128편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말씀 우리 염광인들은 결코 생소한 말씀은 아닙니다. 제가 새신자를 심방할 때마다 이 말씀을 전하고 또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 청년 주일도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새벽마다 우리 염광 가정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빼놓지 않는 기도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자녀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우리 자녀들 이 시대에 다니엘 되게 해 주옵소서. 다니엘처럼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삼유(有), 삼무(無), 삼복(福)의 사람되게 해주옵소서. "하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도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의 본문을 암송하면서 기도를 드립니다. "오 주님! 우리의 가정들 시편 128편의 복을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합니다. 오늘 또 우리 가정을 위해 이 복을 빌겠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이제 본문을 주목하세요. 맨 앞에 있는 표제부터 보시기 바랍니다. 괄호 안에 작은 글씨로 쓰여진 말씀이 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이 시편은 성전에 올라가 부르는 성전찬송입니다. 유대백성들은 찬송의 사람들입니다. 이 유다라는 이름의 뜻이 찬송한다는 뜻입니다. 그 백성들은 자기들의 이름처럼 찬송하며 살았습니다. 언제나 찬송하면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기쁠 때에도, 슬플 때에도 찬송으로 살아갑니다. 평안할 때에도 괴로울 때에도 찬송으로 살아갑니다. 찬송없이 못 사는 민족이 바로 유대민족,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찬송으로 모든 슬픔을 이기고 고난도 위기도 극복했습니다. 이 찬송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기도하고 삶의 기적을 창조해 내기도 했습니다.
특별히 그들은 절기 때마다 모든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는 순례행진이 시작됩니다. 이때 온 가족들이 손에 손잡고 찬송부르면서 올라갑니다. 오늘의 말씀 이 시편 128편 말씀은 바로 그들이 예루살렘 순례 때 불렀던 찬송입니다. 그런데 이 찬송의 가사가 중요합니다. 내용이 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가정이 받을 오복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전통 가운데서도 오복이라는 개념이 있지 않습니까 수부강명 유호덕 고정명 이라는 것입니다. 오래살고, 부자로 살고, 건강하게 살고, 덕있게 살고, 명대로 살다가 죽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이 오복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오복을 찬송으로 구하면서 성전을 오르내렸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염광 가정에도 이 오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가정이 받을 다섯가지 복입니다. 그럼과연 이 오복이 무엇일까요 성경이 말씀한 오복은 무엇일까요 우리 가정이 받아야할 다섯가지 복은 무엇일요
그 첫번째 복은 육신의 복입니다. 본문 2절을 주목하십시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다고 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이 뜻을 이해하려면요 당시 농경시대로 돌아가야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 주업이 농업이었습니다. 주로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았습니다. 농사를 어떻게 짓나요 손으로 수고해서 농사짓지 않습니까 물론 지금은 기계로 영농을 다합니다만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 모든 농사를 손으로 다 지었던 것입니다. 손으로 밭갈고 손으로 씨뿌리고 손으로 김매고 추수합니다.
그러므로 손으로 수고하지 않고서는 농사를 지을래야 지을 재간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손으로 암만 수고한다해도 그 농사가 잘지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풍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예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적당한 기후를 주셔야 합니다.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만 특히 농사가 더욱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만 가능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인간의 힘으로는 농사를 지을래야 지을 수 없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팔레스타인 땅은 더욱더 그렇습니다. 그 땅은 비교적 땅은 기름집니다. 그러나 기후가 매우 불순해요 어떤 때는 너무 가물어서 곡식들이 다 타죽습니다. 또 어떤 때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농사를 망치고 맙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농사는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수고를 해서 농사를 짓는다해도 여호와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헛일입니다. 비단 농사 뿐만아니라 매사가 다 그러했습니다. 모든 성공실패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전편인 시편 127편 말씀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않으면 파수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우리의 모든 성공실패가 그렇습니다만 특히 농사짓는 일이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 없이는 풍년을 기약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본문에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지라는 뜻이 바로 이것입니다. 열심히 서로 수고해서 농사를 지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적기에 비내리시고 적당한 기후 주셔서 풍성한 수확을 얻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은 육신의 복을 의미합니다. 물질의 복입니다. 경제적으로 풍요하고 윤택한 생활의 복입니다. 이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들 성경에 많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특히 신명기 28장에 이 복이 가득하게 약속되어 있습니다.
한번 들어 보세요. "네가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어서도 복을 받고 네 몸의 소산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고아주리와 떡 반죽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라" 그러므로 이같은 물질의 복, 생활의 복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엄숙한 복입니다. 우리 가정들, 이 복도 풍성히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물론 이 복이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의 전부는 아닙니다. 가장 귀한 것도 아닙니다. 만약에 이 물질의 복을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매우 잘못된 신앙입니다. 매우 잘못되고 유치한 기복신앙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육간의 모든 축복을 약속하셨을 때에 이 복도 분명히 약속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복도 받아야 합니다. 육신의 복입니다. 물질의 복입니다. 이 복도 풍성히 받아서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선한 일에 앞장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물질에 대한 양극적인 사고를 버려야 합니다. 물질을 지나치게 우상시하는 생각과 또한 지나치게 죄악시하고 경멸하는 태도도 버려야 합니다. 때때로 어떤 이는 물질을 지나치게 우상시하고있습니다. 세상엔 물질의 복이 전부인 줄 알고 그것만을 바라보며 구합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도 신앙도 기도도 이 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합니다. 철저하게 물질우상에 사로잡혀 사는 불쌍한 사람들을 봅니다. 그런가하면 또 어떤 이는 물질을 지나치게 죄악시하고 경멸하는 태도를 지니고 살아갑니다. 예수 믿고 복받으라고 하면 마치 무당종교니 기복신앙이니하면서 시비를 겁니다 목사가 물질의 복을 빌어 주면은 유치한 기도라고 비웃습니다. 이것도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가 받기 싫으면 그만이지 비웃을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다시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물질의 복이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의 전부는 아닙니다. 가장 귀한 복도 아닙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복을 약속하실 때 이 물질의 복도 약속하셨습니다 . 그러므로 이 복도 꼭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복도 풍성히 받아서 여호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힘있게 봉사하며 살다가 천국가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 중요한 단서가 있습니다.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는다 했습니다. 결코 불로소득이 아닙니다. 정당한 노력의 댓가롤 얻은 소득입니다. 사실 돈많다고 해서 다 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손으로 일해서 얻는 복이 참된 복입니다. 정당한 노력의 댓가로 번 돈이 참된 복이라 그 말입니다. 실예를 들어 봅니다. 최근에 부정한 방법으로 일확천금한 이들이 많이 있지 않아요. 그들은 마침내 어찌되었습니까 줄줄이 교도소행이라는 불명예를 낳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염광 가정들은 손으로 수고한대로 먹는 복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두번째 복입니다. 가족의 복입니다. 3절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을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사실 돈만 많다고 해서 반드시 복되고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그 돈이 우리 가정에 불행의 원인이 되고 죄악의 뿌리가 되는 일이 허다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어떤 가정이 있습니다 돈없을 때 가난했을 때는 참 행복했습니다. 그런대로 참 좋았습니다. 가족끼리 서로 사랑하며 아끼며 화기애애하게 살았습니다.
허랑 방탕한 가족도 없습니다. 아주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부부 싸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돈을 벌엇 졸부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달라졌어요. 돈은 있는데 행복은 떠났습니다. 고급 저택은 소유했느데 평화는 잃어 버렸습니다. 문화시설은 갖추고 사는데 신앙과 인격은 갖추지 못했습니다. 가족들 저마다 진실과 성실을 버리고 사치와 허영에 들떠서 허랑방탕하게 살아갑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제멋대로 놀고 있습니다. 가정 불화는 어느 한날도 끊이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그집은 지옥에 불탄 냄새가 물씬거립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가정의 행복은 돈문제에 있는게 아닙니다. 가족 문제에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가족들이 진실과 성실로 살아가고 사랑과 화목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기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라"는 말씀이 바로 이 복을 뜻합니다. 우리 가족들이 포도나무같고 감람나무같다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자녀들이 그러합니다. 여러분, 포도나무나 감람나무가 어떤 나무입니까 그것들이 어떤 나무이기에 그게 복이라는 말입니까지금 같아서는 포도나무 감람나무가 별게 아닙니다. 이보다 더 좋은 나무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렇게 이 말씀도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던 이 팔레스타인 배경으로 돌아가서 이해해야 합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나무가 없습니다. 보십시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처럼 식생활이 우리와 다릅니다. 우리처럼 국물있는 질척질척한 음식을 먹는게 아닙니다. 구운빵이나 볶은 곡식을 주로 먹습니다. 그렇기에 식사때 음료수가 절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팔레스타인에는 석회수에서 물을 함부로 마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불가불 이스라엘 사람들은 포도농사를 많이 짓습니다. 그 포도열매로 포도주를 만들어서 식사때마다 곁들여 먹습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포도즙이 생맹수와 같습니다. 포도나무가 생명나무와 같습니다. 또한 감람나무, 어떤 열매입니까 그 열매로 올리브유라는 기름을 짜냅니다. 이 올리브의 용도가 무엇입니까 지금 보면 여성들의 화장용으로 많이 사용됩니다만 당시에는 아주 대단하게 쓰였습니다. 음식 만드는 식용유로 쓰였습니다. 당시에는 석유나 전기가 없었을 때이기 때문에 올리브유에다 심지를 박아서 볼을 켰습니다. 또 당시에는 의학적으로 매우 원시사회였기에 배가 아프면 올리브 한숟가락을 먹습니다. 헌데가 나면 올리브유를 발라서 치료합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충분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까 그 당시 그 사회에서 포도나무, 감람나무 이 두 나무보다 더 귀한 나무는 없다는 것을 알고도 남습니다. 이 두 나무는 모든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될 아주 필요하고 유익을 주는 나무였습니다.
그래서 또한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과 아낌을 받았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족들이 이 포도나무 감람나무와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존재, 유익한 인물이 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 앞에 사랑과 아낌과 귀히 여김을 받는 그런 사람이 됩니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처럼 자신의 위치와 사명을 다라서 진실로 성실로 살아갑니다. 별 볼 일 없이 가정과 자녀를 방치해 두고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문제나 일으키고 또 말이나 만들어내는 그런 여자가 아닙니다. 아름다운 생활의 열매로 모든 사람에게 기쁨과 유익을 줍니다. 사랑과 신뢰와 존경의 대상이 된다는 말입니다. 또 자녇르은 어린 감람나무처럼 미래의 사회에 없어선 안 될 귀한 인물로 자랍니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과 이낌을 받는 사람들이 됩니다. 여기에 올리브유처럼 어두운 세상을 빛으로 밝히며 병든 사회를 고치며 치료할 수 있는 미래의 꿈나무들로 자라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귀한 복입니까
첫번째 물질의 복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복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염광 가정들 다 이 복을 충만히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이무쪼록 우리 염광의 가족들, 특별히 우리 자녀들 이 시대의 포도나무 같기를 축원합니다. 이 시대 감람나무 같기를 축원합니다. 이 시대, 이 사회에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존재들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모두 남에게 크게 유익을 주고 도움을 주는 봉사자들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또한 봉사앞에 사랑과 아낌과 신뢰의 대상이 되길 바랍니다.
세번째 복입니다. 시온의 복입니다. 본문 5절을 주목하세요.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찌어다. 여러분, 시온의 복이 뭘까요 시온은 예루살렘의 다른 이름으로 예루살렘은 높은 언덕에 있다고 해서 시온산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시온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 있습니다. 이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은 여호와 하나님이 임재하십니다. 그러므로 시온의 복이란 그 의미가 분명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당신의 성전 삼으시고 언제나 거기 임재하신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 하나님과함께 하는 임마누엘 복입니다. 영적인 복을 의미합니다. 이 복이야 말로 우리 가족이 누려야 할 최고의 복입니다.
최대의 복입니다. 최우선의 복이 아닐수가 없습니다. 우리 가정에 그 어떤 복보다도 이 복을 먼저 받아야 합니다 .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입니다. 이 복 없으면 그 어떤 것도 복일수 없습니다. 복으로써의 의미와 가치를 상실해 버립니다. 우리 가정의 모든 복은 오직 시온의 복 위에 세워지고 이 시온의 복위에서 영위되어야 합니다. 물질의 복도 자녀의 복도 건강과 풍요와 모든 소유의 복도 이 시온의 복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 그래야 비로소 이 모든 복이 참되고 의미있고 유익한 것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물질과 건강과 지식과 재능이 무슨 복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영적으로 잘못된 지위와 명성, 출세와 성공이 무슨 가치가 있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시온의 복, 영적인 복을 받지 못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소유는 결코 복일 수가 없습니다. 조금 심하게 표현한다면 그런 복은 죽은 사람의 몸뚱아리에다가 입혀 놓은 고급 수의 같고 고급 보석이나 장식 같은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었고, 영적으로 잘못되었는데 무슨 복이 더 필요한 것이 있습니까. 영적인 복을 받은 다음에 모든 복이 필요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되어진 다음에 비로소 모든 풍요가 필요하단 말입니다. 여러분, 행복을 원합니까 그 행복은 무엇입니까. 아직도 행복을 객관적인 소유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그게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안에 사는 것 거기가 바로 행복의 현주소입니다. 여러분, 천국가고 싶습니까. 내세에 천국뿐 아니라 현세의 천국도 살고 싶습니까 자 그 천국이 어떤 곳입니까 대답은 매우 분명합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우리 염광의 가정들 그 어떠한 것보다 먼저 이 복, 이 시온의 복, 이 영적인 복으로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디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 가정에 모시고 행복이 넘치는 천국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네 번째 복입니다. 평생의 복입니다. 본문 5절을 보십시오. 하반절입니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이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찌어다"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상의 모든 복들, 내 인생의어느 한 순간 머물다가 떠나는게 아닙니다. 내 평생 다하도록 이어집니다. 아닙니다. 내 자손에게 가지 길이길이 계속됩니다. 영육간의 모든 복이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같이 내 인생에 내 자손에까지 점점 풍성해진다는 말이니다. 시편 1편의 말씀같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하는 복입니다. 시편 37편의 복과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나타내시는 바로 그 복입니다. 이 또한 우리 가정이 꼭 받아야할 매우 소중한 복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에 여호와 하나님의 복이 내 인생 어느 한 수간 머물다가 떠나갑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불행합니까. 그런 순간적인 복은 차라리 안받는 것만 못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복은 내 평생 다하도록 지속되어야 합니다. 내 자손에게까지 길이 이어져야 합니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과 같이 점점 밝고 풍성해져야 합니다. 처음 복보다 나중 복이 더하고 선대의 복보다 후대의 복이 더하면 좋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이 있습니다. 저는 그 분의 아버지도 아고 할아버지도 잘 압니다. 매우 복되게 사신 분들입니다. 재력도 있습니다만 덕망도 있어서 사회적으로 매우 존경받는 분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 자식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선대의 복을 전수받지 못했습니다. 선대의 복을 다 잃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의 선대를 보고 그를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너무나 초라하고 비참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것은 참된 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염광 가정들은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 처음 복보다 나중 복이 더 하기를 바랍니다. 선대가 받은 복보다 후대와 지금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받는 복이 더하기를 바랍니다.
다섯번째 복입니다. 평강의 복입니다.
본문 6절을 보세요.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강은 샬롬이라는 평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고 가장 사모하는 복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침 저녁 인사할 때 "샬롬, 샬롬" 하면서 인사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복을 빌어주고 축하를 할 때 샬롬, 샬롬 하면서 복을 빌어 줍니다. 사랑하는 딸이 천리타향으로 시집갈 때 그때 그 어머니가 마지막 그 딸의 가마문을 닫으면서 "딸아! 샬롬. "하고 이별을 고합니다. 또 사랑하는 아들이 치열한 전쟁터로 나갈 때 아들을 마지막 붙들고 키스하면서 "아들아! 샬롬!"하고 그리고 전쟁터로 보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무덤에 장사 지낼 때 마지막 그 몸에 흙을 덮으면서 "샬롬,샬롬"합니다. 2차 대전때 히틀러의 만용에 의해 유태인들이 무참히 학살당할 때에도
그 유태인 수용소 속에 "샬롬,샬롬!"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샬롬은 사람이 주는 인간적인 평안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영적 평안입니다. 환경과 여건에 따라서 변하는 그런 상대적인 평화가 아닙니다. 그 어떤 상황에도 변치 않는 그런 절대평화입니다. 환난, 시험, 위험, 죽음도 빼앗지 못하는 참된 평안, 완전한 평안, 영원한 평안입니다.
요한복음 14장27절에 예수님이 주신 바로 그 평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바로 그 평안입니다. 이 평화가 우리에게 참된 기쁨과 행복을 줍니다. 무한한 힘과 용기를 줍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바로 이 평화입니다. 이 평화만이 오늘 우리의 모든 문제의 해답입니다. 이 평화의 소유자만이 참으로 풍요롭고 승리로운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이평화가 우리 염광의 가정에 충만하기를 기도드립니다.
이상으로 우리 염광의 가정이 받을 여호와 하나님의 오복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손으로 수고한 대로 먹는 물질의 복, 육신의 복입니다. 온 가족이 포도나무, 감람나무 같은 가정의 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성전삼으시고 늘 함께 하시는 시온의 복, 영적인 복입니다. 이 모든 것이 내 평생 그리고 내 자손에게까지 길이길이 이어지는 복입니다. 그리고 샬롬! 여호와 하나님의 평화가 넘치는 복입니다. 그러면 아주 중요한 이야기르 ㄹ해야 합니다. 이 복을 어떻게 받아 누릴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상의 다섯가지 복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은 무엇이냐 하면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전제로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집의 수도를 생각해 보세요. 그 수도가 파이프로 연결되어서 저 팔당 수원지에 묻혀 있어요. 팔당수원지의 물은 마르지 않습니다. 언제나 충만합니다. 그러므로 그 곳에 연결된 수도물은 24시간 물이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 방울도 물이 흐르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수도를 닫아 놨기 때문입니다. 그 수도꼭지를 열고거기다 그릇을 받쳐 놓으면 정확하게 그 그릇의 크기만큼 수도물이 채워지고 나머지는 하수도로 흘러갑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의 원리가 분명합니다. 우주에 충만한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 누가 받습니까 오직 준비된 믿음의 그릇속에 주어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 준비된 믿음의 그릇이 무엇일까요
이제 다시 본문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에서 읽지 않는 두 구절이 있습니다. 1절과 4절입니다. 여기에 바로 그 믿음의 그릇이 나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 하나님이 오복, 받는 믿음의 그릇이 분명합니다. 두개의 믿음의 그릇을 높이 들고 하나남이 약속하신 이 다섯가지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여호와를 경외하는 믿음의 그릇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여기에 복잡한 신학적인 설명이 필요치 않아요. 매우 간단명료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여호와 하나님 제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신앙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본위의 신앙생활을 의미합니다. 내 인생에서 우리 가정에서 여호와 하나님 보다 소중한 가치가 없어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절대 가치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 다 있어도 여호와 하나님 안계시면 그 인생은 제로의 인생입니다. 마이너스 인생입니다. 아니 지옥같은 인생입니다. 이세상 모든 것 다 없어도 여호와 하나님 거기 계시면 그 인생은 플러스 인생입니다. 천국같은 인생이라 그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오복은 바로 이 신앙의 그릇속에 담겨져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 도에 행하는 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입니다.
여러분, 숙제를 내어 드릴테니까 이 숙제 집에 돌아가셔서 꼭 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이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 무릎 꿇고 신명기 28장을 읽으세요. 거기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에 순종할 때 주어지는 놀라운 축복의 언약들이 거기 나타나 있습니다. 할 일 많은 이 세대에 우리 염광인들 받을 축복이 거기 담겨져 있습니다. 아무쪼록 순종하므로 이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마리안 앤더슨 이란 유명한 성가 가수가 있습니다. 얼마나 은혜로운 성가를 부르는지 목사가 백번 설교하는 것보다 그 가수가 한 번 성가를 부를 때 회중이 더 큰 감동을 받고 은혜를 받는다는 바로 그런 성가가수입니다. 한 번은 그녀가 영감 가득찬 성가를 불렀습니다. 청중들이 일어나서 박수를 치는데 그 박수가 멎을 줄을 모릅니다. 이 때 앤더슨은 고요히 청중들을 향해서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고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그 박수는 이 못난 나를 위한 박수가 아니라 저 위대하신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 돌리는 영광의 박수인 것을 믿습니다. "
이 마리안 앤더슨의 태도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입니다 .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복을 넘치게 부어 주십니다.
여러분 무슨 뜻일까요 가정은 천국이라는 말입니다. 천국같이 좋은 곳, 소중한 곳입니다. 우리 가정은 천국같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이 소중한 가정의 달 다해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 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가정의 달을 마지막 보내는 아쉬운 마음 가지고 우리 가정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정리하고 돌아보고자 합니다.
오늘의 본문 시편 128편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말씀 우리 염광인들은 결코 생소한 말씀은 아닙니다. 제가 새신자를 심방할 때마다 이 말씀을 전하고 또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 청년 주일도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새벽마다 우리 염광 가정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빼놓지 않는 기도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자녀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우리 자녀들 이 시대에 다니엘 되게 해 주옵소서. 다니엘처럼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삼유(有), 삼무(無), 삼복(福)의 사람되게 해주옵소서. "하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도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의 본문을 암송하면서 기도를 드립니다. "오 주님! 우리의 가정들 시편 128편의 복을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합니다. 오늘 또 우리 가정을 위해 이 복을 빌겠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이제 본문을 주목하세요. 맨 앞에 있는 표제부터 보시기 바랍니다. 괄호 안에 작은 글씨로 쓰여진 말씀이 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이 시편은 성전에 올라가 부르는 성전찬송입니다. 유대백성들은 찬송의 사람들입니다. 이 유다라는 이름의 뜻이 찬송한다는 뜻입니다. 그 백성들은 자기들의 이름처럼 찬송하며 살았습니다. 언제나 찬송하면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기쁠 때에도, 슬플 때에도 찬송으로 살아갑니다. 평안할 때에도 괴로울 때에도 찬송으로 살아갑니다. 찬송없이 못 사는 민족이 바로 유대민족,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찬송으로 모든 슬픔을 이기고 고난도 위기도 극복했습니다. 이 찬송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기도하고 삶의 기적을 창조해 내기도 했습니다.
특별히 그들은 절기 때마다 모든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는 순례행진이 시작됩니다. 이때 온 가족들이 손에 손잡고 찬송부르면서 올라갑니다. 오늘의 말씀 이 시편 128편 말씀은 바로 그들이 예루살렘 순례 때 불렀던 찬송입니다. 그런데 이 찬송의 가사가 중요합니다. 내용이 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가정이 받을 오복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전통 가운데서도 오복이라는 개념이 있지 않습니까 수부강명 유호덕 고정명 이라는 것입니다. 오래살고, 부자로 살고, 건강하게 살고, 덕있게 살고, 명대로 살다가 죽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이 오복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오복을 찬송으로 구하면서 성전을 오르내렸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염광 가정에도 이 오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가정이 받을 다섯가지 복입니다. 그럼과연 이 오복이 무엇일까요 성경이 말씀한 오복은 무엇일까요 우리 가정이 받아야할 다섯가지 복은 무엇일요
그 첫번째 복은 육신의 복입니다. 본문 2절을 주목하십시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다고 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이 뜻을 이해하려면요 당시 농경시대로 돌아가야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 주업이 농업이었습니다. 주로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았습니다. 농사를 어떻게 짓나요 손으로 수고해서 농사짓지 않습니까 물론 지금은 기계로 영농을 다합니다만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 모든 농사를 손으로 다 지었던 것입니다. 손으로 밭갈고 손으로 씨뿌리고 손으로 김매고 추수합니다.
그러므로 손으로 수고하지 않고서는 농사를 지을래야 지을 재간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손으로 암만 수고한다해도 그 농사가 잘지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풍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예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적당한 기후를 주셔야 합니다.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만 특히 농사가 더욱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만 가능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인간의 힘으로는 농사를 지을래야 지을 수 없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팔레스타인 땅은 더욱더 그렇습니다. 그 땅은 비교적 땅은 기름집니다. 그러나 기후가 매우 불순해요 어떤 때는 너무 가물어서 곡식들이 다 타죽습니다. 또 어떤 때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농사를 망치고 맙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농사는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수고를 해서 농사를 짓는다해도 여호와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헛일입니다. 비단 농사 뿐만아니라 매사가 다 그러했습니다. 모든 성공실패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전편인 시편 127편 말씀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않으면 파수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우리의 모든 성공실패가 그렇습니다만 특히 농사짓는 일이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 없이는 풍년을 기약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본문에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지라는 뜻이 바로 이것입니다. 열심히 서로 수고해서 농사를 지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적기에 비내리시고 적당한 기후 주셔서 풍성한 수확을 얻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은 육신의 복을 의미합니다. 물질의 복입니다. 경제적으로 풍요하고 윤택한 생활의 복입니다. 이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들 성경에 많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특히 신명기 28장에 이 복이 가득하게 약속되어 있습니다.
한번 들어 보세요. "네가 네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어서도 복을 받고 네 몸의 소산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고아주리와 떡 반죽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라" 그러므로 이같은 물질의 복, 생활의 복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엄숙한 복입니다. 우리 가정들, 이 복도 풍성히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물론 이 복이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의 전부는 아닙니다. 가장 귀한 것도 아닙니다. 만약에 이 물질의 복을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매우 잘못된 신앙입니다. 매우 잘못되고 유치한 기복신앙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육간의 모든 축복을 약속하셨을 때에 이 복도 분명히 약속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복도 받아야 합니다. 육신의 복입니다. 물질의 복입니다. 이 복도 풍성히 받아서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선한 일에 앞장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물질에 대한 양극적인 사고를 버려야 합니다. 물질을 지나치게 우상시하는 생각과 또한 지나치게 죄악시하고 경멸하는 태도도 버려야 합니다. 때때로 어떤 이는 물질을 지나치게 우상시하고있습니다. 세상엔 물질의 복이 전부인 줄 알고 그것만을 바라보며 구합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도 신앙도 기도도 이 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합니다. 철저하게 물질우상에 사로잡혀 사는 불쌍한 사람들을 봅니다. 그런가하면 또 어떤 이는 물질을 지나치게 죄악시하고 경멸하는 태도를 지니고 살아갑니다. 예수 믿고 복받으라고 하면 마치 무당종교니 기복신앙이니하면서 시비를 겁니다 목사가 물질의 복을 빌어 주면은 유치한 기도라고 비웃습니다. 이것도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가 받기 싫으면 그만이지 비웃을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다시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물질의 복이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의 전부는 아닙니다. 가장 귀한 복도 아닙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복을 약속하실 때 이 물질의 복도 약속하셨습니다 . 그러므로 이 복도 꼭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복도 풍성히 받아서 여호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힘있게 봉사하며 살다가 천국가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 중요한 단서가 있습니다.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는다 했습니다. 결코 불로소득이 아닙니다. 정당한 노력의 댓가롤 얻은 소득입니다. 사실 돈많다고 해서 다 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손으로 일해서 얻는 복이 참된 복입니다. 정당한 노력의 댓가로 번 돈이 참된 복이라 그 말입니다. 실예를 들어 봅니다. 최근에 부정한 방법으로 일확천금한 이들이 많이 있지 않아요. 그들은 마침내 어찌되었습니까 줄줄이 교도소행이라는 불명예를 낳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염광 가정들은 손으로 수고한대로 먹는 복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두번째 복입니다. 가족의 복입니다. 3절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을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사실 돈만 많다고 해서 반드시 복되고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그 돈이 우리 가정에 불행의 원인이 되고 죄악의 뿌리가 되는 일이 허다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어떤 가정이 있습니다 돈없을 때 가난했을 때는 참 행복했습니다. 그런대로 참 좋았습니다. 가족끼리 서로 사랑하며 아끼며 화기애애하게 살았습니다.
허랑 방탕한 가족도 없습니다. 아주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부부 싸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돈을 벌엇 졸부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달라졌어요. 돈은 있는데 행복은 떠났습니다. 고급 저택은 소유했느데 평화는 잃어 버렸습니다. 문화시설은 갖추고 사는데 신앙과 인격은 갖추지 못했습니다. 가족들 저마다 진실과 성실을 버리고 사치와 허영에 들떠서 허랑방탕하게 살아갑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제멋대로 놀고 있습니다. 가정 불화는 어느 한날도 끊이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그집은 지옥에 불탄 냄새가 물씬거립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가정의 행복은 돈문제에 있는게 아닙니다. 가족 문제에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가족들이 진실과 성실로 살아가고 사랑과 화목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기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라"는 말씀이 바로 이 복을 뜻합니다. 우리 가족들이 포도나무같고 감람나무같다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자녀들이 그러합니다. 여러분, 포도나무나 감람나무가 어떤 나무입니까 그것들이 어떤 나무이기에 그게 복이라는 말입니까지금 같아서는 포도나무 감람나무가 별게 아닙니다. 이보다 더 좋은 나무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렇게 이 말씀도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던 이 팔레스타인 배경으로 돌아가서 이해해야 합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나무가 없습니다. 보십시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처럼 식생활이 우리와 다릅니다. 우리처럼 국물있는 질척질척한 음식을 먹는게 아닙니다. 구운빵이나 볶은 곡식을 주로 먹습니다. 그렇기에 식사때 음료수가 절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팔레스타인에는 석회수에서 물을 함부로 마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불가불 이스라엘 사람들은 포도농사를 많이 짓습니다. 그 포도열매로 포도주를 만들어서 식사때마다 곁들여 먹습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포도즙이 생맹수와 같습니다. 포도나무가 생명나무와 같습니다. 또한 감람나무, 어떤 열매입니까 그 열매로 올리브유라는 기름을 짜냅니다. 이 올리브의 용도가 무엇입니까 지금 보면 여성들의 화장용으로 많이 사용됩니다만 당시에는 아주 대단하게 쓰였습니다. 음식 만드는 식용유로 쓰였습니다. 당시에는 석유나 전기가 없었을 때이기 때문에 올리브유에다 심지를 박아서 볼을 켰습니다. 또 당시에는 의학적으로 매우 원시사회였기에 배가 아프면 올리브 한숟가락을 먹습니다. 헌데가 나면 올리브유를 발라서 치료합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충분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까 그 당시 그 사회에서 포도나무, 감람나무 이 두 나무보다 더 귀한 나무는 없다는 것을 알고도 남습니다. 이 두 나무는 모든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될 아주 필요하고 유익을 주는 나무였습니다.
그래서 또한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과 아낌을 받았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족들이 이 포도나무 감람나무와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존재, 유익한 인물이 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 앞에 사랑과 아낌과 귀히 여김을 받는 그런 사람이 됩니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처럼 자신의 위치와 사명을 다라서 진실로 성실로 살아갑니다. 별 볼 일 없이 가정과 자녀를 방치해 두고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문제나 일으키고 또 말이나 만들어내는 그런 여자가 아닙니다. 아름다운 생활의 열매로 모든 사람에게 기쁨과 유익을 줍니다. 사랑과 신뢰와 존경의 대상이 된다는 말입니다. 또 자녇르은 어린 감람나무처럼 미래의 사회에 없어선 안 될 귀한 인물로 자랍니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과 이낌을 받는 사람들이 됩니다. 여기에 올리브유처럼 어두운 세상을 빛으로 밝히며 병든 사회를 고치며 치료할 수 있는 미래의 꿈나무들로 자라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귀한 복입니까
첫번째 물질의 복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복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염광 가정들 다 이 복을 충만히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이무쪼록 우리 염광의 가족들, 특별히 우리 자녀들 이 시대의 포도나무 같기를 축원합니다. 이 시대 감람나무 같기를 축원합니다. 이 시대, 이 사회에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존재들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모두 남에게 크게 유익을 주고 도움을 주는 봉사자들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또한 봉사앞에 사랑과 아낌과 신뢰의 대상이 되길 바랍니다.
세번째 복입니다. 시온의 복입니다. 본문 5절을 주목하세요.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찌어다. 여러분, 시온의 복이 뭘까요 시온은 예루살렘의 다른 이름으로 예루살렘은 높은 언덕에 있다고 해서 시온산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시온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 있습니다. 이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은 여호와 하나님이 임재하십니다. 그러므로 시온의 복이란 그 의미가 분명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당신의 성전 삼으시고 언제나 거기 임재하신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 하나님과함께 하는 임마누엘 복입니다. 영적인 복을 의미합니다. 이 복이야 말로 우리 가족이 누려야 할 최고의 복입니다.
최대의 복입니다. 최우선의 복이 아닐수가 없습니다. 우리 가정에 그 어떤 복보다도 이 복을 먼저 받아야 합니다 .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입니다. 이 복 없으면 그 어떤 것도 복일수 없습니다. 복으로써의 의미와 가치를 상실해 버립니다. 우리 가정의 모든 복은 오직 시온의 복 위에 세워지고 이 시온의 복위에서 영위되어야 합니다. 물질의 복도 자녀의 복도 건강과 풍요와 모든 소유의 복도 이 시온의 복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 그래야 비로소 이 모든 복이 참되고 의미있고 유익한 것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물질과 건강과 지식과 재능이 무슨 복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영적으로 잘못된 지위와 명성, 출세와 성공이 무슨 가치가 있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시온의 복, 영적인 복을 받지 못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소유는 결코 복일 수가 없습니다. 조금 심하게 표현한다면 그런 복은 죽은 사람의 몸뚱아리에다가 입혀 놓은 고급 수의 같고 고급 보석이나 장식 같은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었고, 영적으로 잘못되었는데 무슨 복이 더 필요한 것이 있습니까. 영적인 복을 받은 다음에 모든 복이 필요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되어진 다음에 비로소 모든 풍요가 필요하단 말입니다. 여러분, 행복을 원합니까 그 행복은 무엇입니까. 아직도 행복을 객관적인 소유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그게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안에 사는 것 거기가 바로 행복의 현주소입니다. 여러분, 천국가고 싶습니까. 내세에 천국뿐 아니라 현세의 천국도 살고 싶습니까 자 그 천국이 어떤 곳입니까 대답은 매우 분명합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우리 염광의 가정들 그 어떠한 것보다 먼저 이 복, 이 시온의 복, 이 영적인 복으로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디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 가정에 모시고 행복이 넘치는 천국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네 번째 복입니다. 평생의 복입니다. 본문 5절을 보십시오. 하반절입니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이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찌어다"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상의 모든 복들, 내 인생의어느 한 순간 머물다가 떠나는게 아닙니다. 내 평생 다하도록 이어집니다. 아닙니다. 내 자손에게 가지 길이길이 계속됩니다. 영육간의 모든 복이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같이 내 인생에 내 자손에까지 점점 풍성해진다는 말이니다. 시편 1편의 말씀같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하는 복입니다. 시편 37편의 복과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나타내시는 바로 그 복입니다. 이 또한 우리 가정이 꼭 받아야할 매우 소중한 복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에 여호와 하나님의 복이 내 인생 어느 한 수간 머물다가 떠나갑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불행합니까. 그런 순간적인 복은 차라리 안받는 것만 못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복은 내 평생 다하도록 지속되어야 합니다. 내 자손에게까지 길이 이어져야 합니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과 같이 점점 밝고 풍성해져야 합니다. 처음 복보다 나중 복이 더하고 선대의 복보다 후대의 복이 더하면 좋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이 있습니다. 저는 그 분의 아버지도 아고 할아버지도 잘 압니다. 매우 복되게 사신 분들입니다. 재력도 있습니다만 덕망도 있어서 사회적으로 매우 존경받는 분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 자식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선대의 복을 전수받지 못했습니다. 선대의 복을 다 잃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의 선대를 보고 그를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너무나 초라하고 비참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것은 참된 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염광 가정들은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 처음 복보다 나중 복이 더 하기를 바랍니다. 선대가 받은 복보다 후대와 지금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받는 복이 더하기를 바랍니다.
다섯번째 복입니다. 평강의 복입니다.
본문 6절을 보세요.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강은 샬롬이라는 평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고 가장 사모하는 복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침 저녁 인사할 때 "샬롬, 샬롬" 하면서 인사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복을 빌어주고 축하를 할 때 샬롬, 샬롬 하면서 복을 빌어 줍니다. 사랑하는 딸이 천리타향으로 시집갈 때 그때 그 어머니가 마지막 그 딸의 가마문을 닫으면서 "딸아! 샬롬. "하고 이별을 고합니다. 또 사랑하는 아들이 치열한 전쟁터로 나갈 때 아들을 마지막 붙들고 키스하면서 "아들아! 샬롬!"하고 그리고 전쟁터로 보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무덤에 장사 지낼 때 마지막 그 몸에 흙을 덮으면서 "샬롬,샬롬"합니다. 2차 대전때 히틀러의 만용에 의해 유태인들이 무참히 학살당할 때에도
그 유태인 수용소 속에 "샬롬,샬롬!"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샬롬은 사람이 주는 인간적인 평안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영적 평안입니다. 환경과 여건에 따라서 변하는 그런 상대적인 평화가 아닙니다. 그 어떤 상황에도 변치 않는 그런 절대평화입니다. 환난, 시험, 위험, 죽음도 빼앗지 못하는 참된 평안, 완전한 평안, 영원한 평안입니다.
요한복음 14장27절에 예수님이 주신 바로 그 평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바로 그 평안입니다. 이 평화가 우리에게 참된 기쁨과 행복을 줍니다. 무한한 힘과 용기를 줍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바로 이 평화입니다. 이 평화만이 오늘 우리의 모든 문제의 해답입니다. 이 평화의 소유자만이 참으로 풍요롭고 승리로운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이평화가 우리 염광의 가정에 충만하기를 기도드립니다.
이상으로 우리 염광의 가정이 받을 여호와 하나님의 오복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손으로 수고한 대로 먹는 물질의 복, 육신의 복입니다. 온 가족이 포도나무, 감람나무 같은 가정의 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성전삼으시고 늘 함께 하시는 시온의 복, 영적인 복입니다. 이 모든 것이 내 평생 그리고 내 자손에게까지 길이길이 이어지는 복입니다. 그리고 샬롬! 여호와 하나님의 평화가 넘치는 복입니다. 그러면 아주 중요한 이야기르 ㄹ해야 합니다. 이 복을 어떻게 받아 누릴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상의 다섯가지 복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은 무엇이냐 하면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전제로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집의 수도를 생각해 보세요. 그 수도가 파이프로 연결되어서 저 팔당 수원지에 묻혀 있어요. 팔당수원지의 물은 마르지 않습니다. 언제나 충만합니다. 그러므로 그 곳에 연결된 수도물은 24시간 물이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 방울도 물이 흐르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수도를 닫아 놨기 때문입니다. 그 수도꼭지를 열고거기다 그릇을 받쳐 놓으면 정확하게 그 그릇의 크기만큼 수도물이 채워지고 나머지는 하수도로 흘러갑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의 원리가 분명합니다. 우주에 충만한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 누가 받습니까 오직 준비된 믿음의 그릇속에 주어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 준비된 믿음의 그릇이 무엇일까요
이제 다시 본문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에서 읽지 않는 두 구절이 있습니다. 1절과 4절입니다. 여기에 바로 그 믿음의 그릇이 나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 하나님이 오복, 받는 믿음의 그릇이 분명합니다. 두개의 믿음의 그릇을 높이 들고 하나남이 약속하신 이 다섯가지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여호와를 경외하는 믿음의 그릇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여기에 복잡한 신학적인 설명이 필요치 않아요. 매우 간단명료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여호와 하나님 제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신앙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본위의 신앙생활을 의미합니다. 내 인생에서 우리 가정에서 여호와 하나님 보다 소중한 가치가 없어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절대 가치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 다 있어도 여호와 하나님 안계시면 그 인생은 제로의 인생입니다. 마이너스 인생입니다. 아니 지옥같은 인생입니다. 이세상 모든 것 다 없어도 여호와 하나님 거기 계시면 그 인생은 플러스 인생입니다. 천국같은 인생이라 그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오복은 바로 이 신앙의 그릇속에 담겨져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 도에 행하는 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입니다.
여러분, 숙제를 내어 드릴테니까 이 숙제 집에 돌아가셔서 꼭 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이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 무릎 꿇고 신명기 28장을 읽으세요. 거기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에 순종할 때 주어지는 놀라운 축복의 언약들이 거기 나타나 있습니다. 할 일 많은 이 세대에 우리 염광인들 받을 축복이 거기 담겨져 있습니다. 아무쪼록 순종하므로 이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마리안 앤더슨 이란 유명한 성가 가수가 있습니다. 얼마나 은혜로운 성가를 부르는지 목사가 백번 설교하는 것보다 그 가수가 한 번 성가를 부를 때 회중이 더 큰 감동을 받고 은혜를 받는다는 바로 그런 성가가수입니다. 한 번은 그녀가 영감 가득찬 성가를 불렀습니다. 청중들이 일어나서 박수를 치는데 그 박수가 멎을 줄을 모릅니다. 이 때 앤더슨은 고요히 청중들을 향해서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고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그 박수는 이 못난 나를 위한 박수가 아니라 저 위대하신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 돌리는 영광의 박수인 것을 믿습니다. "
이 마리안 앤더슨의 태도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입니다 .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복을 넘치게 부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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