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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기독교 가정에서의 자녀의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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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나라의 대부인 맹의자가 효에 대하여 묻자. 공자는 말하기를 "어기지 말라" 하셨다. 뒷날 마차를 모는 번지에서 말씀하시되"맹손이 나에게 효를 묻기에 내가 어기지 말라고 대답했다" 이에 번지가"무슨 뜻입니까" 하고 묻는 말에 공자는 말하기를"부모님이 살아계시거나 돌아가시거나 예로써 섬김이 곧 효도인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논어).
부모님은 오로지 자식의 병을 가장 걱정하시니 자신의 건강에 유의해야 하는 것이 효도니라. 효는 다만 부모에게 노력이나 물질면에서 잘 공양하면 되는 줄로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깨나 말도 사람으로부터 받을 수 있다, 부모를 존경하는 마음이 없다면 개나 말을 대하는 것과 무슨 다름이 있겠느냐.
부모를 섬김에 있어 깊은 애정에서 우러나오는 유쾌한 기색을 하기가 어렵다, 힘드는 일이 있으면 어른에 앞서 처리하고 맛있는 음식이나 물건이 있으면 어른께 먼저 드리게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어찌 효라 하겠는가 그럴 때에도 즐거운 표정이 있어야 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부모의 연세를 알아 두어야 한다, 오래 사시니 기쁘나. 늙고 쇠하심은 두려우니라'(논어)
오래 남지 않은 부모의 여생을 성심껏 즐겁게 해 드려야 한다. 현대인은 이러한 감정을 잃은 지 오래므로 쓸모없는 골동품을 꺼내는 감이 있으나 늙은 부모의 여생을 즐겁게 해 드는 것을 어떤 의무감에서 노부모를 위하여 선심을 써 본다는 것으로 생각하면 그만일까.
현대 생활에서 효도라는 것이 최상의 도덕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부모를 상대로 감정을 낭비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치자, 그리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현대인이라고 생각하자, 그러나 나 자신이 어린 자식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면서 부모의 심경을 이해하여야 한다. 아무리 시대가 달라졌다고 하여도 효란 인간만이 가진 지고지순한 가치라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세계 역사상 한 왕의 자손으로 가장 길었던 왕조는 중국의 주조라고 합니다. 대개는 동생의 아들이 왕이 되거나 또는 정변으로 뒤집어지거나 집안 싸움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이 어부지리로 왕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중국의 주조만은 B. C 1355-1222까지 무려 231년 동안 왕권을 계승해 왔다고 합니다.
세계 역사상 이런 일은 없는데 역사가들이 주조왕의 가문에 대하여 연구한 결과 그의 후손으로 주문왕, 무왕, 조공이라는 사람이 끼어 있는데 이들은 당대에 효행이 지극한 사람들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즉 이 주조 왕조에는 효자들이 많았다는 사실이 발견된 것입니다. 부모에게 공경하는 사람에게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리라고 하는 성경의 약속을 보여주는 산 증거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버이 품안에서 나서 어버이 품안에서 자라온 사람들입니다. 어버이 품이 어떤 곳입니까 언제나 그립고 또 안겨보고 싶은 곳이 아닙니까
세상 풍조가 너무 현실주의, 개인주의로 흐르면서 부모 공경 어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무너지고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 어버지주일을 맞이하여 잃어버렸던 효의 윤리를 되살리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효는 동서고금 종교와 사상을 막론하고 최상의 윤리규범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효가 무너지면 가정이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면 나라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유교에서는 효를 으뜸으로 삼고 있습니다.
'예기'라고 하는 책을 보면 효도를 삼등분하고 있습니다.
소효(小孝), 중효(中孝). 대효(大孝)라고 해서. 소효란 나를 낳아 주신 부모님을 정성껏 봉양하는 것을 말합니다.
중요란 사회를 위해서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것, 대효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충성하는 것. 으로 구분함.
또"효는 백행의 근원"으로서 그 사람의 됨됨이는 부모에 대한 효심으로 평가를 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나라에서 사람을 들어 쓸 때도 은밀하게 가정의 상황을 파악하여 그가 부모에게 얼마만큼 효를 잘 하는가에 우선순위를 두었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도 부모의 은혜 열 가지를 지적하면서 부모에게 효를 강조하고 있습니다"나를 잉태해서 키워 주신 은혜, 해산할 때 고통 받으신 은혜, 자식을 낳았다고 근심을 떨어버리는 은혜,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을 뱉어서 먹이신 은혜, 자식은 마른 데 뉘이고 자기 자신은 젖은 데 누우신 은혜, 젖을 먹여서 길러 주신 은혜, 깨끗지 않은 것을 씻겨 주신 은혜, 자식이 멀리 나가면 걱정하시는 은혜, 자식을 위해서 고생하는 은혜, 끝까지 염려하시는 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요 자발적이고 희생적인 봉사입니다.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효는 좀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입니다
십계명 가운데"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겨라 그리고 그 믿음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라"합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으뜸으로는 부모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천륜과 인륜이 있는데 인륜 중에서는 부모 공경이 우선이고 으뜸입니다. 부모가 최고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된 계명이 바로 부모 공경입니다.
사실 부모 공경을 잘 하는 사람은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도 잘 섬기게 되어 있고, 그런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윗 사람에게 순종과 복종을 잘 하게 되어있습니다.
부모에게 효도를 잘 하는 사람은 나라의 공직을 맡아도 맡은 일에 충성하고 어디를 가서든지 기본 질서를 지켜가면서 마땅히 자기 신분에 걸맞는 순종과 복종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질서의 기본이 가정에서의 부모 공경입니다. 부모 공경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밖에 가서 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부모를 잘 섬길 수 있을까 이 시간 자녀도리에 대하여 몇가지 말씀드리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부모의 훈계를 잘 받아 들려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해서 순종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자라온 과정에서 부모의 훈계가 얼마나 엄했는지에 대하여 고백합니다. 부모의 엄한 훈계가 그에게는 부담스러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부모의 훈계를 통하여서 오늘의 자기가 있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훈계를 통하여 깨달은 바가 많고 부모의 훈계를 통하여 나는 너희들에게 감히 말할 수 있다고 하는 내용을 기록한 것이 잠언서이다.
잠언23장13절-14절에는
자식을 무조건 사랑하는 것으로 훈계하지 말고 "채찍으로 때리라"고 했습니다.
바울은"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비록 훈계를 싫어할지라도 잘못했을 때는 가차없이 훈계하는 부모가 자녀를 저주로부터 보호하는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엘리 제사장의 자녀들이 다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삼상3:13).
자식들이 잘못한 것을 그냥 놔두었다는 것입니다.
눈감아 주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식들이 저주를 받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훈계를 많이 하면 잔소리로 들으려고 합니다. 훈계는 듣는 그 순간에 좋아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훈계가 쓰고 괴롭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쓰던 훈계가 양약이 됩니다. 그래서 부모의 훈계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부모에게는 효도입니다.
통일 이스라엘 왕국이 남북으로 갈라진 뼈아픈 역사가 있었습니다. "르호브암" 왕 때에 남북으로 나뉘어지게 됨.
당시 왕 주변에는 아주 노련하고 경륜이 높은 장로들이 있었습니다. 장로라고 하는 것은"Elder"라고 해서"노인들"이라는 뜻입니다.
경륜이 많은 분들이 왕에게 충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왕은 그들의 충언을 거부하고 의욕이 앞선 젊은이들의 건의를 받아들여서 강압 정치를 했기 때문에 열두 지파 중에서 열 지파가 반발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 때 이후로 남과 북이 갈리지는 비극의 역사가 시작되게 됩니다.
오늘 이 시대의 비극은 부모의 훈계를 잔소리로. 낡은 소리로 들으려는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식으로 받아 들입니다. 지식이 많지 않은 사람의 헛소리로 받아 드릴려고 합니다.
성령론의 세계적인 대가인"알레이 토리"는 일찍이 방탕아였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고 수없는 훈계를 합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 곁을 떠나게 됩니다. 그가 마지막 어머니와 나눈 대화를 소개합니다.
"나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진저리가 납니다, 더 이상 드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어머니 품을 떠납니다, 저를 잊어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는 아들을 향해서 어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아, 정녕 답답한 일이 생기거든, 모든 것이 다 틀렸다고 생각되거든 네 어머니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라, 그러면 그가 반드시 너를 도와주실 것이다"
끝까지 주는 부모의 사랑과 애정과 눈물과 권고를 뿌리치고 토리는 떠나갑니다.
그 후에 토리가 굉장한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 어려움을 당할 때 어머니의 훈계가 생각이 나서 그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이렇게 엎드립니다"우리 어머니의 여호와 하나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그래서 그가 신앙 안으로 들어오고 구 유명한 신학의 대가가 되었습니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키우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도 높은 것 같애.
넓고 넓은 바다라고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넒은게 떠 하나 있지, 사람되라 이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바다 그보다도 넓은 것 같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지하고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처럼 크고도 넓고, 넓고도 높은 사랑이 또 있겠습니까.
누가 여러분들의 오줌 똥을 받아 줄 것이며, 누가 자기 몸의 젖을 빨리워 키우겠습니까.
누가 헐벗은 걸 알아 주며 배고픈 것 알아 줍니까
누가 매일 같이 걱정을 해 주며 매일같이 타일러 줍니까
아, 어머니! 내 어머니뿐이십니다.
그래서 앞에서 말씀드린 노래의 삼절에는
-산이라도 바다라도 따를 수 없는 어머니의 그 사랑, 거룩한 사랑, 날마다 주님 앞에 감사 올리자 사랑의 어머니를 주신 은혜를- 이렇게 지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내가 기억하고 있는 시 한편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내가 산에서 죽을 때 산 밑에와 통곡할 인 오직 하나 내 어머니.
내가 바다로 갈 때 뭍에 사나 물에 살건 오직 하나 내 어머니.
내가 홀로 사나 내 맘 속에 영원히 살긴 오직 하나 내 어머니-
얼마나 참된 말이며 얼마나 진실된 말입니까
여러분에게 어머니보다 더 좋은 이가 세상에 어디 또 있겠습니까
제일 좋은 글자가 어머니요.
제일 좋은 사람이 어머니요.
제일 정든 사람도 어머니가 아닐까요
그런데 사람은 마치 개구리와 같아서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조금만 자라면 어머님 사랑을 잊어버리는 못난이들이 많답니다, 여러분! 어머님 사랑을 잊지 맙시다.
만 붐늬 일이라도 어머님 사랑을 갚아야 하고 살아도 죽어도 어머님 사랑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버님의 사랑도 잊지 마십시오.
옛날 중국에 아버지를 잘 봉양하던 노래자(老來子)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노래자는 일흔 살이 넘은 늙은이면서 아흔 살이 넘은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할아버지였습니다.
노래자는 자기도 역시 늙었지만 아버지께 대한 효성이 지극해서 어떻게 하면 좀더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 드릴까 하는 생각을 늘하고 있었습니다.
한 날은 노래자가 아버지의 마음을 살피느라니까 아버지께서는 아직도 자기를 어린아이로 취급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아버지께서"물을 좀 가져 오너라" 라고 할 때에 노래자는 물 사발을 들고 들어가다가 일부러 아버지 앞에서 엎어졌습니다. 그리고는 칠십도 넘은 그가 정말 어린아이처럼"히잉 힝!"하고 우는 시늉을 했습니다.
이것을 보신 아버지께서는 너 아직도 어린애로구나"
하시며 껄껄껄 큰 웃을 치며 기뻐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노래자는 항상 자기가 노인인 체 하지 않고 아버지 앞에서는 언제나 어린애인양 행동하여 아버지를 기쁘게 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어렸을 때는 부모가 전부요, 무고가 전적인 수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부모의 말이라면 의심없이 100%순종합니다.
10대에 이르면 사춘기가 되어 부모의 말에 이유없이 반항한다. 2030대에 이르면 어설프게 공부하고 조금 배웠다고 거들먹대기 시작하고 부모의 말을 무시하거나 무관심한 때다. 40대가 되면 부모의 말이 더러는 받아들여지고 어느 정도는 시인한다- 자기도 자식 낳고 길러보니 이해가 가는 것이다. 50-60대가 되면 부모의 말을 전적으로 옳다고 동의 하는 때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훈계하는 것은 어떤 이론적이거나 학문적인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랜 인생의 경험에서 얻은 귀한 교훈임을 알아 부모의 훈계를 받아 들일 때 모든 문제가 풀려지는 것이다. 진실된 효도는 부모의 훈계를 받아드리는 것이다.
2.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세상이 너무 가치판단에 의해서 행동하고 있습니다.
너무 실리적인 계산 속에서만 행동을 한다는 말입니다.
부모의 은공은 자신을 낳아 준 것 외에는 특별한 가치가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처럼 호강시킨 것도 없고, 남처럼 공부를 많이 못햇고, 남처럼 부모의 유산도 받은 것도 없고-하면서 피해의식
경제권이 없다고 부모를 홀대합니다. 심지어 구박하여 부모를 버리기까지 합니다. 오늘날 양로원의 73%가 자식이 있으면서도 버림받은 사람들입니다.
부모의 은공을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가치기준으로 따지면서 부모에게 효도 할까 말까를 계산할 수 있습니까
부모의 실수나 약점을 빙자해서 부모를 버려도 됩니까
조선의 역사인물 중에"손 순"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부부가 함께 나가 일을 하면서 홀로 계신 어머니를 봉양합니다, 그런데 어머니를 위해서 음식을 준비하면 어린 아들이 다 먹어버립니다.
그래서 이 젊은 부부가 어느날 이렇게 합의를 합니다.
'어머니는 한 번 잃으면 다시 얻을 수 없으나 자식은 또 낳을 수 있지 않은가 어머니를 바로 모셔야 되는데 우리는 너무나 가난해서 둘 다 밖에 나가야 하는 입장이니 어머니가 잡수셔야할 것을 빼앗아 가는 자식을 처리하자.
그래서 자식을 땅에 묻어 버리기로 합의를 봅니다.
사랑이란 내리사랑 아닙니까 부모를 위해서 자식을 희생시킨다는 것처럼 뜨거운 효가 이 세상 어디에 있습니까
부부는 결심하고 깊은 산속으로 가서 땅을 파서 자식을 묻기 위해 땅을 파는데 이상하게 무엇이 걸리는 소리가 납니다. 파 보니 거기에서 석종이 나옵니다.
그때 아내가 이렇게 말합니다"이 석종이 나오는 것을 보니, 이 아이가 복이 있는 아이입니다. 죽이지 말고 키워봅시다" 그래서 다시 데리고 내려와서 석종을 집 대들보에 매달고 아침 저녁으로 그것을 치는데 그 소리가 어떻게나 특이하게 들리는지 그것이 소문이 나고 또 소문이 나서 임금의 귀에까지 들립니다.
임금이 그 석종에 대한 이야기를 추적하다가 기가 막힌 효심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집 한채를 사 주고 해마다 쌀 50석을 내주고 심지어는 벼슬까지 주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부모 공경은 땅에서 잘 되는 여호와 하나님의 복이 약속된 계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보면 하기 싫어도 여러분과 여러분의 당대가, 또 여러분의 인생이 언젠가는 늙을 것이므로 자식으로부터 경홀히 여김을 받거나 무시당하거나 저주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3.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부모를 즐겁게 해드리는 것 중의 하나는 자녀들이 잘 살아주는 것입니다. 잠언23장24절에 보면"지혜로운 자식을 낳는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우리 부모가 행복해 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맛있는 것 많이 갖다 주고 용돈을 많이 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자식들이 말 없이 잘 살아주는 것이 부모를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모가 잘 살고 평안하고 행복해도 자식이 잘 못 살고 어려움을 당하고, 경찰서나 왔다 갔다하고, 감옥에나 왔다 갔다하고 사람에게 쫓기고, 이 사람 저사람의 입에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험담을 듣는 자식을 두었을 때는 평생 불행을 느끼며 가슴치며 통곡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식이 잘 살아 주는 것만으로도 부모는 행복합니다. 그것이 최고 최대의 효도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까
성경에서는 의롭게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도다"(시37:17).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시37:25)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말에"나는 도둑질 해도 너는 하지 말아라"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자신은 어쩔수 없어 도둑질 하지만 자식에게 도둑질을 가르쳐 주고 싶은 부모는 없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불의하게 벌어서 호화롭게 사는 것보다 불법으로 출세해서 요란스럽게 사는 것보다, 한탕주의로 해서 거들먹대며 사는 것보다, 의롭게 살고 진실하게 살고 착하게 사는 자식들을 볼 때 부모는 행복하고 즐거운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의롭게 살 수 있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을 늘 묵상하면서 가르친 대로 살아갈 때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과 사람의 인정이 따르는 존귀가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요한삼서4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다음은 형제 화목입니다.
정상적인 부모라면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이 물질만이 아닙니다. 자식들에게 원하는 것은 화목한 삶입니다.
불란서의 호가 밀레의"만종"을 아십니까 밀레가 이 만종을 그릴 때는 70불 정도의 재료가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미국 사람이 125. 000만불을 주고 샀습니다. 그후 세월이 흘러 불란서에서 이 사실을 알고 불란서 사람 재벌 하나가 15만 달러를 주고 사서 루블 박물관에 기증을 했습니다.
그 그림의 내용을 보면 하루 종일 땀흘려 일하다가 멀리 예배당의 종소리가 들리니까 잡고 있던 괭이와 삽을 놓고 두 손을 모아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얼마나 행복하고 얼마나 평화로운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 부모가 원하는 자녀는 이렇게 평화로운 자녀가 되기를 원합니다.
"평화롭게 살아라 화목하게 살아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133:1)"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도 형제 화목입니다.
뿐만 아니라 건강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건강의 내용은
"항상 밝고 명랑하고, 적극적이고, 긍적이고, 이웃 지향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삶에 윤기가 있는 삶" 이것이 건강한 삶의 내용입니다. 이제 영적으로 건강해야 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하고, 육신적으로 건강하여 조화를 이루어 가는 것을 부모가 기뻐하십니다.
부모의 눈에서 눈물을 수없이 흘리게 만든 자녀들, 부모의 가슴에 근심의 멍을 들게 만든 자식들, 믿음이 어리고 얕아서 아직도 살아 계신 부모의 영혼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 인도하지 못하고 부모의 영적인 상태가 불신앙으로 인하여 황폐되어 있는 것을 늙었기 때문에.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방관하는 이러한 불효자들은 오늘 이 아침에 눈물을 흘려 가며 회개하여 잃어버렸던 효도의 윤리를 다시 회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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