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복 받는 가정
본문
오늘은 우리 교회에 특별한 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구원의 약속의 말씀이 오늘 이루어지길 축원합니다.
이 자리에는 특별히 아내나 남편의 권유에 못 이겨서 나오신 분들 계시는 줄 압니다. 또 교회에 이미 오래 전부터 간혹 출석했지만, 아직 그렇게 믿음에 열심은 못 내었으나 이 자리까지 나오게 된 것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는 분들도 계신 줄 압니다.
그래도 얼마나 감사한 일 입니까
"나는 잘 못나가도, 그래도 우리 집 사람은 교회 나가는 것은 막지 않는다. 또 우리 아이들이라도 잘 믿어서 착한 사람되어야지" 하시면서 가족이 교회 나가는 것을 좋게 생각하시는 분들 계십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교우들 가운데는 신앙생활을 이해 못하여서 아내나 남편과 많은 마찰 있는 분들도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자리에 나오신 것만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왕에 힘들여 오늘 교회에 발 들여 놓으셨는데, 매사가 그러하듯이 적극적으로 여러분들도 가족들과 함께 신앙걸음을 걸으면 얼마나 복되고 좋을까 생각합니다.
여러분들께서 만일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아신다면 열심히 신앙생활하지 않을 분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초청받아서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한없는 복이 있기를 축원함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놀라운 영생의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복된 가정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 가족초청주일을 앞두고 교회에서 만들어서 여러분들께 보내드린 초청장에
미국의 초기 청교도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영향을 끼쳤던 사람 중 '조나단 에드워드'라는 사람을 소개했습니다. 이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신앙적인 여인과 결혼해서 신혼 초기부터 철저하게 기독교적 원리에 입각해서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형성해 갔습니다.
또 그와 같이 자란 동네 친구였던 '맥스 쥬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자신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신앙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방탕한 삶을 살았던 여인과 결합합니다. 이래서 나중에 자신도 신앙을 저버리게 되고 그의 삶이 점차 잘못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 두 사람의 가계를 추적하면서 흥미로운 연구를 했답니다. 과연 이 두 사람, 이들의 후손은 어떻게 되었을까
신앙의 가정을 이루었던 '조나단 에드워드'는 오늘날까지 617명의 후손을 두었는데, 그중에 대학의 총장을 지냈던 사람이 12명. 교수가 75명. 의사가 60명. 성직자가 100명. 군대 장교가 75명. 저술가가 80명. 변호사가 100 명. 판사가 30명. 공무원이 80명. 하원의원이 3명. 상원의원이 1명. 미국의 부통령을 1명 배출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불신앙의 가정을 이루었던 '맥스 쥬크'는 에드워드 가계보다 두배나 더 많은 1292명의 후손을 두었는데 유아로 사망한 사람이 309명. 직업적인 거지가 310명. 불구자가 440명. 매춘부가 50명. 도둑이 60명. 살인자가 70명.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이 53명이었습니다.
이것은 아마 극단적인 예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과 차츰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가정과의 차이를 여실히 볼 수 있는 좋은 예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은 복의 근원 되신 이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있습니까 신앙적인 원리가 여러분의 가정에서부터 실천되도록 하십니까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은 깨끗합니까. 그리고 가족 모두가 한결같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십니까. 또한 늘 기쁨이 넘쳐 찬양과 기도가 끊이지 않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 복 받는 가정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이나 옛날이나, 모든 사람들은 다 복 받기를 원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복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요즘은 촌스럽다고 그런 이름은 안 짖지만 아이를 낳으면 아이 이름에도 복 받으라고 복자를 넣습니다. 저희 형님 성함은 바로 복식입니다. 복을 심었으니 곧 거둘 것입니다만…
얼마나 복을 좋아합니까
대문에 입춘대길, 수복자을 새겨놓고, 방석, 이불, 벼개에도 수 놓습니다. 장롱, 심지어 숟가락에도 복 자를 새겨놓습니다.
들어오면서 나가면서 복을 받기를 원하고, 의식주가 다 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이사를 가면서 어질러 놓은 쓰레기를 쓸지 않고 가는 나쁜 폐습이 있는데 이사오는 사람 때문입니다. 먼지를 쓸면 복이 나간다고 해서 복을 쓸어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 교인들은 이사 갈 때 청소 깨끗이 하시면 복 받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전에는 사과에 복 복자를 인쇄한 스티카를 붙여서 팔았는데, 요즘은 아예 나무에 달려 있는 열매에다 복 자를 넣기 위해서 사과가 달려 있을 때에 까만 스틱카를 붙여 놓으면 나중에 익었을 때에 그 부분은 엷은 색이 되어서 복 자가 드러난다고 합니다. 이런 사과는 다른 사과보다 비싼 값에 팔린다는데, 얼마나 복을 좋아하면 이렇게 하겠습니까
심지어 정부에서도 국민들에게 도박을 시키면서 이름은 복 자를 붙여서 복권이라 하고 팔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렇게 복을 빈다고 복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우리 국민들이 복을 좋아하지만, 실상은 그 복이란 것이 무엇인지, 또 어디에서 복이 오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옛날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이 석유로 돈 벌기 시작할 때에 일입니다. 그 나라의 장관들이 석유를 팔기 위해서 영국에 갔답니다. 그곳에서 아주 귀빈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호텔에 들어갔는데, 그 호화판의 시설에 놀랐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란 것은 이들이 화장실을 갔는데, 아, 글쎄 뭐 이상한 꼭지가 있는데 그것을 누르니 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얼마나 신기했는지 영국 장관들을 불러서 말합니다. "이런 좋은 것, 영국서는 어디서나 구할 수 있습니까 돈은 얼마든지 드릴테니 좀 많이 구해주십시오" 했답니다. "뭐에 쓰려고요" 물었을 때에 그 사우디 장관들 하는 말이 과관입니다. 말하기를 "아시다시피 우리 나라는 물이 귀하지 않습니까 물 값이 기름값보다 비싼데 이런 기계만 있으면 얼마든지 물을 쓸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했답니다.
그들은 수도꼭지만 있으면 물은 얼마든지 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저수지가 없는데 수도꼭지만 가지고 있으면 물이 나옵니까
이 얘기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오늘 복을 좋아하고 복을 비는 인생들을 여기에 빗댈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복을 좋아하는 것을 잘 못되었다 하면 안됩니다. 복없이는 살수 없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복을 엄청 좋아합니다. 복을 받아야 살 수 있지 자신의 노력이나 실력만으로는 안되는 것을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시편 127편 1절에서는
(시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잠을 줄여가면서 아침에 남보다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까지 수고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그 모든 수고들이 다 헛된 것으로 아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아침은 이 복을 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복에 대한 공부를 합니다.
여러분, 무엇이 복입니까 또 그 복이란 것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복은 사람들이 아는 칠복이니 오복이니 하는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것, 현세적인 것만 복이 아닙니다. 우리가 받아야할 복은 진정으로 영과 육신에, 또 이 세상 뿐 아니라 영원히 복된 것이어야 합니다.
또한 복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복의 근원되신 여호와 하나님께로 오는 것입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은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복은 누가 줄 수 있습니까 복을 줄 실력이나 풍부가 있는 분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을 주실 분은 여호와 하나님 외에 없습니다. 복 주실 수 있고 복 주시기를 원하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복, 신령한 복을 주실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복으로 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복 받기 위해서 귀신을 섬기지만, 마귀들은 사람을 저주하고 귀신 섬겨서 망하게 할 뿐입니다.
도적놈을 경비로 세워서 은행을 지키라고 하면 그 은행이 지켜지겠습니까
사람들이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귀신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돈까지 주면서 귀신을 붸아내라고 하면 귀신이 들어옵니까 나갑니까 부적을 부쳐 놓으면 제 집으로 알고 그 집을 떠나지 않습니다. 귀신은 다 저주의 신입니다. 사람들이 그러지 않습니까 어슥하고 어두운 곳, 청소도 않은 곳을 뭐라고 합니까 "귀신 나오겠다!" 합니다. 사고가 많이 나는 곳을 뭐라고 합니까 "귀신이 붙었나"허튼 소리하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지 말라! 하고, 무엇이 안되면 "귀신이 옴 붙었나" 합니다. 굿을 하고 부적을 부치면 귀신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작정상 잠간 나간 것 같이 하다가 일곱귀신이 들어와서 그 가정에 좌정하고 결코 떠나가지 않고 저주를 합니다. 굿하지 않으면 망한다하고 자녀가 죽을 것이라고 협박을 하고 사람들은 잘 속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복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저주를 변하여 배나 복 주실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이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말씀에도 여호와 하나님을 복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나타나십니다.
수도꼭지만 튼다고 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저수지에 관이 연결되어 있을 때에 물을 받아 쓸 수 있는 것 같이 천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시고 이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신 복의 근원되신 여호와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야 복을 받습니다.
하늘에서 억수의 비가 쏟아져도 그릇이 없거나 아주 작거나 그릇을 뒤집어 놓으면 빗물을 받지 못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시며 복 받을 자를 찾으시지만, 진정으로 복을 주시기를 원하지만 우리 인생들이 복 받을 그릇이 준비되지 않아서 받지 못합니다. 이 그릇을 준비한 자에게는 한량없는 복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본문 말씀에서 우리가 어떤 그릇을 준비해야, 곧 어떤 자가 되어야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는가를 살펴봅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떤 자에게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이 복의 근원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자입니다. 아무리 복을 주려고 해도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아니면 이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두려움은 공포의 두려움이 아니라, 천지의 주재가 되신 여호와 하나님의 크심을 깨닫고, 그 앞에 겸손히 나아가며 순종하는 거룩한 경외감, 두려움을 말합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 모시고, 여호와 하나님 경외하는 가정이 될 때에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으신 여러분들의 가정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들이 되셔서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또, 그 도에 행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부모를 존경한다면 그 부모의 말씀에 순종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면 당연히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내적인 믿음이 있는 자라면 그 말씀대로 행하는 외적인 순종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이 없다면 틀림없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이 그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가 잘 깨닫지 못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크시고, 두려우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겠습니까 이 사람이 어떻게 복을 받겠습니까 복은 막연하게 빈다고 받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식이 많이 있다면 그 자식 가운데 누구에게 더 마음이 가고 있는 것을 주고 싶습니까 같은 자녀라도 기왕에 부모를 잘 공경하고, 또 그 부모의 말씀에 잘 순종하는 자식을 더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이 부모를 나쁘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자식을 위한다고 하지만, 이기적이고, 실수가 있고, 허물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랑하고 위한다는 것이 망치는 결과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는 여호와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되, 진정 우리가 행복되도록 하시는 분이시고 실수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베푸시는 복을 받기는 원하지만, 여호와 하나님 경외함이 없고, 여호와 하나님 말씀대로 복 받을 길로 행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습니까 참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도대로 행하는 사람은 복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우리 다 복 받기를 여호와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만일에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고 순종함이 없는 사람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형통하고 번성하도록 하신다면 그 악한 복은 진정 그에게 화가 될 것입니다.
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를 배웠습니다. 복의 저수지 같은 여호와 하나님께로서 옵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도대로 행하는 사람이 어떤 복을 받습니까
첫째로, 물질의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2절에 말씀한대로 그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시지 않고, 지키지 않으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쓰고 노력해도 헛되다고 하였는데, 우리가 하는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고, 그 좋은 결과를 얻게되는 복을 받습니다.
이 복은 말씀은 먼저는 힘써 수고할 일터를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전에 경제 사정이 좋을 때는 이 말씀을 들어도 그것이 무슨 복인가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구미지역은 거의가 대기업이라서 고용이 안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일터를 주신 것이 은혜인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터를 잃었습니다. 이제 이것도 은혜인 줄 알게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일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해야합니다. 일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지 사람들이 생각하는대로 저주가 아닙니다. 우리가 일터에서 얻는 것은 단지 돈 뿐이 아닙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자기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은 더욱 의미 있는 것입니다. 수고해야 먹습니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며,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 했습니다. 일하고 싶으나 일 할 곳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셔야합니다.
수고한대로 댓가를 얻게하시는 것도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여러분, 오늘 수고하여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업을 한다고 다 성공합니까 배추 농사는 실컷 풍작되게 지어놓고 너무 풍작이라서 값이 없어서 그냥 밭에서 뽑지도 못하고 갈아 엎는 경우도 많이 봅니다. 일한 품삭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손이 수고한대로 수입을 얻게 될 때에 그것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인줄 알고 감사해야합니다.
꼬박 꼬박 일터로 출근하게되고 그 일한 대가를 받게 되었으면 아내들은 그 남편에게도 감사해야합니다. 쥐꼬리만한 월급이라고 감사하지 않고 남편을 업신 여기기도하고, 그 삶을 지겹게 여기는 주부들도 있지만 그것이 복인 줄을 알지 못해 그렇습니다.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 보다 낫다고 잠언 16장에서 말씀했습니다. 죄를 지어서 많은 소득을 가지게 되는 것 보다는 의를 행하므로 적은 소득을 얻는 것이 더 나은 줄 알아야합니다.
또 그 뿐 아니라, "수고한대로 먹는다"는 말씀은 얻은 것을 누리게 하시는 복을 말합니다. 이것도 복인데 감사하는 사람이 적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그 결과 없는 것도 헛되지만, 수입은 있는데, 그 수입한 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열심히 일한 보람이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이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또 누리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들에게 가정을 주시고, 그 가정의 안식과 행복도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 의식주를 얻을 수 있는 일터를 주시고, 수입하게 하시며, 또 먹고 누릴 수 있게 하십니다. 돈을 열심히 벌어서 맛있는 음식을 아무리 앞에 차려놓아도 그것을 내 입에 넣지 못하면 그것이 복이 되겠습니까 병들어서 먹지 못하면 열심히 번 재물도 헛 것입니다.
그래서 (전2:21)에는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써서 수고하였어도 그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업으로 끼치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라 큰 해로다 그렇지만, (전2:26) 여호와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전5:19) 어떤 사람에게든지 여호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셨습니다.
어떤 자가 이 복을 받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사는 사람이 물질의 복도 받습니다.
(시128:2)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이것을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이라고 했습니다.
네가 복되고 형통케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는 일이 막힘 없이 잘 되게되는 복도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물론 우리가 받아야할 이 형통함은 단지 없어질 세상 것만의 형통이 아니라 어떤 현실을 만나도 열매를 맺는 결과있는 열매 있는 생활의 형통을 말합니다. 어려움이 없다는 것 보다 고난의 현실서도 열매를 맺고, 형통의 현실에서도 열매를 맺는 때마다 과실을 맺는 복입니다. 우리의 세상의 삶이 얼마나 헛된 일이 많습니까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도대로 행하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 주십니다.
둘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정의 복을 말씀하셨습니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결실한 포도나무가 얼마나 주인의 즐거움이 되며, 기쁨이 되겠습니까 시인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아내를 결실한 포도나무로 비유한 것은 그 아내의 현숙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포도나무 열매는 없어서는 안되는 귀중한 음료요, 자양분입니다. 유대인들에게 포도나무 열매는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어린 감람나무는 오랜 감람나무에서 뻗어나온 새로운 줄기의 신선함과 생명력, 빠른 성장력을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그 자녀들도 건강하게 성장하고 자녀들로 인하여 그 가정은 활기가 넘칠 것을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정의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집에는 가정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가훈 삼은 여호와 경외하는 가정, 이 가정에 날마다 즐거움과 기쁨과 신선함과 자람의 생명력이 있을 것을 말씀합니다.
아이들이나 남편들이 왜 집에 들어가기가 싫다고 말합니까
그 집에 기쁨과 즐거움, 신선함, 생명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 살이에 지쳐도 가정에만 들어오면 안식과 평안이 있어야하지 않습니까 가정에서 안식과 새로움을 얻고 또 일터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오늘 많은 기독자 가정들도 위기를 맞았습니까
믿는다는 가정이지만, 그 가정이 여호와 하나님 경외하는 일이 없고, 그 가정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4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물질적이고 육적인 것 보다 더 귀한 것이 평강을 주는 가정으로 인하여 심령에 평안을 누리는 복입니다. 이 복이 시시한 것이 아닌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 신일교회에 속한 가정들이 다 말씀대로 순종하여 병들고 약한 모습들이 강건해 지기를 축원합니다. 다툼이 있는 가정들까지도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우리 가정들이 다 강건하게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이제 더 나아갑니다. 이런 물질적이고, 가정적인 축복 뿐 아니라, 시온에서 복을 주실 것을 보게되고, 예루살렘에서 복을 봅니다.
(시128: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시온과 예루살렘은 같은 곳입니다. 시온산은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성산입니다. 예루살렘은 여호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를 말합니다.
이 시온은 신약시대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시온의 복, 이 복은 교회생활의 복을 말하는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복은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에까지 미칩니다. 경외하는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와 복의 은택을 많은 사람이 함께 누리게 됩니다.
이 복은 교회 생활의 복, 곧 신앙의 복입니다. 교회를 바로 선택하게 하신 것, 신앙생활에 자유 얻게 하신 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복임을 알아야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으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신앙생활을 바로 하지 못하도록 이 자유함도 뺏습니다.
넷째,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평생에 이 복을 받고, 또 자식에게까지 이 복을 주게되리라고 했습니다.
남은 여생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것을 누리게 되고, 그가 장수할 뿐 아니라, 그의 자손 까지도 이 은혜를 누릴 것을 말씀합니다.
저는 이 복도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손을 많이 두는 복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고, 믿음이 계대되는 복을 말합니다. 그저 육신적으로 혈육이 계대되는 것도 귀하지만, 무엇보다 귀한 믿음을 가진 자녀로 후손을 보고 또 후손을 보게되는 이 복은 세상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받는 것이지만, 가장 귀한 복인 것을 알아야합니다. 천대까지 복주신다고 했습니다.
다섯째, 그 삶에 평강을 주시는 복입니다.
어떻게 이 세상을 살면서 참된 평강을 가지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살지만 소망이 영원 천국에 있는 자는 세상 그 어떤 풍파 가운데도 평강을 가질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지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사실을 확실히 믿는 사람은 세상 것에 조급하지 않습니다.
누가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까
이같이 여호와 경외하는 사람이 얻는 복은 넘치고 넘치게 됩니다.
어떤 복을 받습니까
개인적으로, 또 물질적인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가정이 복되고, 그 교회가 복을 받고, 그가 거하는 주위의 사람까지 그 은혜의 그늘에서 깃들일 것이며, 그 후손까지도 복을 받고 영원한 평강의 복을 받는 이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참으로 여호와께 복받기를 원하십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는 이 복을 유치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복을 좋아하고, 어떤 일이 잘되었을 때에 옆에 사람이 그 사람 선하게 살아서 복 받았다고 하면 더 없이 기분 좋아하지 않습니까
우리들도 이들 보다 더 복을 좋아하고, 복으로 살아가야합니다.
우리는 복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고 받은 복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원하는 그런 복이 아닙니다.
이는 복 주시는 복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받는 복입니다.
우리는 내 자신의 지혜나 힘을 의지해서 살아간다 하면 안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 주셔야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셔야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가야합니다. 세상 사람들 같이 자기 지식을 능력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기다린다고 하니, 운명론자들 같이 게으르고, 재수를 기다리며 사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물론 우리들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더 성실히 행하여야합니다. 이것을 성경이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하여 자신하고, 교만한 자가 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는 삶을 살기 때문에 욕심 때문에 죄짓지 않는 자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하는 자에게 함께하시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삶을 살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 경외하고 그 도대로 사는 길은 어려운 길이요, 외로운 길입니다. 오늘 다 자기 마음대로 살고, 제 생각이 진리로 아는 때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옛날 구약 성도들만 지키라고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 때의 여호와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시면서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 경외하기를 원하시며, 이 자에게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이 복 받은 가정입니다.
그 도대로 행하는 자가 있는 가정이 복 받은 가정입니다. 오늘 이 복을 사모합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 주셔야한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칩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 주실 수 있는 자만 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신다는 말씀을 믿읍시다.
이 자리에는 특별히 아내나 남편의 권유에 못 이겨서 나오신 분들 계시는 줄 압니다. 또 교회에 이미 오래 전부터 간혹 출석했지만, 아직 그렇게 믿음에 열심은 못 내었으나 이 자리까지 나오게 된 것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는 분들도 계신 줄 압니다.
그래도 얼마나 감사한 일 입니까
"나는 잘 못나가도, 그래도 우리 집 사람은 교회 나가는 것은 막지 않는다. 또 우리 아이들이라도 잘 믿어서 착한 사람되어야지" 하시면서 가족이 교회 나가는 것을 좋게 생각하시는 분들 계십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교우들 가운데는 신앙생활을 이해 못하여서 아내나 남편과 많은 마찰 있는 분들도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자리에 나오신 것만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왕에 힘들여 오늘 교회에 발 들여 놓으셨는데, 매사가 그러하듯이 적극적으로 여러분들도 가족들과 함께 신앙걸음을 걸으면 얼마나 복되고 좋을까 생각합니다.
여러분들께서 만일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아신다면 열심히 신앙생활하지 않을 분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초청받아서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한없는 복이 있기를 축원함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놀라운 영생의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복된 가정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 가족초청주일을 앞두고 교회에서 만들어서 여러분들께 보내드린 초청장에
미국의 초기 청교도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영향을 끼쳤던 사람 중 '조나단 에드워드'라는 사람을 소개했습니다. 이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신앙적인 여인과 결혼해서 신혼 초기부터 철저하게 기독교적 원리에 입각해서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형성해 갔습니다.
또 그와 같이 자란 동네 친구였던 '맥스 쥬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자신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신앙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방탕한 삶을 살았던 여인과 결합합니다. 이래서 나중에 자신도 신앙을 저버리게 되고 그의 삶이 점차 잘못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 두 사람의 가계를 추적하면서 흥미로운 연구를 했답니다. 과연 이 두 사람, 이들의 후손은 어떻게 되었을까
신앙의 가정을 이루었던 '조나단 에드워드'는 오늘날까지 617명의 후손을 두었는데, 그중에 대학의 총장을 지냈던 사람이 12명. 교수가 75명. 의사가 60명. 성직자가 100명. 군대 장교가 75명. 저술가가 80명. 변호사가 100 명. 판사가 30명. 공무원이 80명. 하원의원이 3명. 상원의원이 1명. 미국의 부통령을 1명 배출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불신앙의 가정을 이루었던 '맥스 쥬크'는 에드워드 가계보다 두배나 더 많은 1292명의 후손을 두었는데 유아로 사망한 사람이 309명. 직업적인 거지가 310명. 불구자가 440명. 매춘부가 50명. 도둑이 60명. 살인자가 70명.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이 53명이었습니다.
이것은 아마 극단적인 예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과 차츰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가정과의 차이를 여실히 볼 수 있는 좋은 예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은 복의 근원 되신 이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있습니까 신앙적인 원리가 여러분의 가정에서부터 실천되도록 하십니까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은 깨끗합니까. 그리고 가족 모두가 한결같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십니까. 또한 늘 기쁨이 넘쳐 찬양과 기도가 끊이지 않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 복 받는 가정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이나 옛날이나, 모든 사람들은 다 복 받기를 원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복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요즘은 촌스럽다고 그런 이름은 안 짖지만 아이를 낳으면 아이 이름에도 복 받으라고 복자를 넣습니다. 저희 형님 성함은 바로 복식입니다. 복을 심었으니 곧 거둘 것입니다만…
얼마나 복을 좋아합니까
대문에 입춘대길, 수복자을 새겨놓고, 방석, 이불, 벼개에도 수 놓습니다. 장롱, 심지어 숟가락에도 복 자를 새겨놓습니다.
들어오면서 나가면서 복을 받기를 원하고, 의식주가 다 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이사를 가면서 어질러 놓은 쓰레기를 쓸지 않고 가는 나쁜 폐습이 있는데 이사오는 사람 때문입니다. 먼지를 쓸면 복이 나간다고 해서 복을 쓸어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 교인들은 이사 갈 때 청소 깨끗이 하시면 복 받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전에는 사과에 복 복자를 인쇄한 스티카를 붙여서 팔았는데, 요즘은 아예 나무에 달려 있는 열매에다 복 자를 넣기 위해서 사과가 달려 있을 때에 까만 스틱카를 붙여 놓으면 나중에 익었을 때에 그 부분은 엷은 색이 되어서 복 자가 드러난다고 합니다. 이런 사과는 다른 사과보다 비싼 값에 팔린다는데, 얼마나 복을 좋아하면 이렇게 하겠습니까
심지어 정부에서도 국민들에게 도박을 시키면서 이름은 복 자를 붙여서 복권이라 하고 팔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렇게 복을 빈다고 복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우리 국민들이 복을 좋아하지만, 실상은 그 복이란 것이 무엇인지, 또 어디에서 복이 오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옛날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이 석유로 돈 벌기 시작할 때에 일입니다. 그 나라의 장관들이 석유를 팔기 위해서 영국에 갔답니다. 그곳에서 아주 귀빈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호텔에 들어갔는데, 그 호화판의 시설에 놀랐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란 것은 이들이 화장실을 갔는데, 아, 글쎄 뭐 이상한 꼭지가 있는데 그것을 누르니 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얼마나 신기했는지 영국 장관들을 불러서 말합니다. "이런 좋은 것, 영국서는 어디서나 구할 수 있습니까 돈은 얼마든지 드릴테니 좀 많이 구해주십시오" 했답니다. "뭐에 쓰려고요" 물었을 때에 그 사우디 장관들 하는 말이 과관입니다. 말하기를 "아시다시피 우리 나라는 물이 귀하지 않습니까 물 값이 기름값보다 비싼데 이런 기계만 있으면 얼마든지 물을 쓸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했답니다.
그들은 수도꼭지만 있으면 물은 얼마든지 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저수지가 없는데 수도꼭지만 가지고 있으면 물이 나옵니까
이 얘기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오늘 복을 좋아하고 복을 비는 인생들을 여기에 빗댈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복을 좋아하는 것을 잘 못되었다 하면 안됩니다. 복없이는 살수 없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복을 엄청 좋아합니다. 복을 받아야 살 수 있지 자신의 노력이나 실력만으로는 안되는 것을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시편 127편 1절에서는
(시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잠을 줄여가면서 아침에 남보다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까지 수고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그 모든 수고들이 다 헛된 것으로 아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아침은 이 복을 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복에 대한 공부를 합니다.
여러분, 무엇이 복입니까 또 그 복이란 것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복은 사람들이 아는 칠복이니 오복이니 하는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것, 현세적인 것만 복이 아닙니다. 우리가 받아야할 복은 진정으로 영과 육신에, 또 이 세상 뿐 아니라 영원히 복된 것이어야 합니다.
또한 복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복의 근원되신 여호와 하나님께로 오는 것입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은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복은 누가 줄 수 있습니까 복을 줄 실력이나 풍부가 있는 분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을 주실 분은 여호와 하나님 외에 없습니다. 복 주실 수 있고 복 주시기를 원하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복, 신령한 복을 주실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복으로 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복 받기 위해서 귀신을 섬기지만, 마귀들은 사람을 저주하고 귀신 섬겨서 망하게 할 뿐입니다.
도적놈을 경비로 세워서 은행을 지키라고 하면 그 은행이 지켜지겠습니까
사람들이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귀신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돈까지 주면서 귀신을 붸아내라고 하면 귀신이 들어옵니까 나갑니까 부적을 부쳐 놓으면 제 집으로 알고 그 집을 떠나지 않습니다. 귀신은 다 저주의 신입니다. 사람들이 그러지 않습니까 어슥하고 어두운 곳, 청소도 않은 곳을 뭐라고 합니까 "귀신 나오겠다!" 합니다. 사고가 많이 나는 곳을 뭐라고 합니까 "귀신이 붙었나"허튼 소리하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지 말라! 하고, 무엇이 안되면 "귀신이 옴 붙었나" 합니다. 굿을 하고 부적을 부치면 귀신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작정상 잠간 나간 것 같이 하다가 일곱귀신이 들어와서 그 가정에 좌정하고 결코 떠나가지 않고 저주를 합니다. 굿하지 않으면 망한다하고 자녀가 죽을 것이라고 협박을 하고 사람들은 잘 속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복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저주를 변하여 배나 복 주실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이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말씀에도 여호와 하나님을 복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나타나십니다.
수도꼭지만 튼다고 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저수지에 관이 연결되어 있을 때에 물을 받아 쓸 수 있는 것 같이 천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시고 이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신 복의 근원되신 여호와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야 복을 받습니다.
하늘에서 억수의 비가 쏟아져도 그릇이 없거나 아주 작거나 그릇을 뒤집어 놓으면 빗물을 받지 못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시며 복 받을 자를 찾으시지만, 진정으로 복을 주시기를 원하지만 우리 인생들이 복 받을 그릇이 준비되지 않아서 받지 못합니다. 이 그릇을 준비한 자에게는 한량없는 복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본문 말씀에서 우리가 어떤 그릇을 준비해야, 곧 어떤 자가 되어야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는가를 살펴봅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떤 자에게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이 복의 근원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자입니다. 아무리 복을 주려고 해도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아니면 이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두려움은 공포의 두려움이 아니라, 천지의 주재가 되신 여호와 하나님의 크심을 깨닫고, 그 앞에 겸손히 나아가며 순종하는 거룩한 경외감, 두려움을 말합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 모시고, 여호와 하나님 경외하는 가정이 될 때에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으신 여러분들의 가정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들이 되셔서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또, 그 도에 행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부모를 존경한다면 그 부모의 말씀에 순종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면 당연히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내적인 믿음이 있는 자라면 그 말씀대로 행하는 외적인 순종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이 없다면 틀림없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이 그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가 잘 깨닫지 못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크시고, 두려우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겠습니까 이 사람이 어떻게 복을 받겠습니까 복은 막연하게 빈다고 받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식이 많이 있다면 그 자식 가운데 누구에게 더 마음이 가고 있는 것을 주고 싶습니까 같은 자녀라도 기왕에 부모를 잘 공경하고, 또 그 부모의 말씀에 잘 순종하는 자식을 더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이 부모를 나쁘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자식을 위한다고 하지만, 이기적이고, 실수가 있고, 허물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랑하고 위한다는 것이 망치는 결과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는 여호와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되, 진정 우리가 행복되도록 하시는 분이시고 실수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베푸시는 복을 받기는 원하지만, 여호와 하나님 경외함이 없고, 여호와 하나님 말씀대로 복 받을 길로 행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습니까 참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도대로 행하는 사람은 복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우리 다 복 받기를 여호와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만일에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고 순종함이 없는 사람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형통하고 번성하도록 하신다면 그 악한 복은 진정 그에게 화가 될 것입니다.
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를 배웠습니다. 복의 저수지 같은 여호와 하나님께로서 옵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도대로 행하는 사람이 어떤 복을 받습니까
첫째로, 물질의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2절에 말씀한대로 그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시지 않고, 지키지 않으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쓰고 노력해도 헛되다고 하였는데, 우리가 하는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고, 그 좋은 결과를 얻게되는 복을 받습니다.
이 복은 말씀은 먼저는 힘써 수고할 일터를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전에 경제 사정이 좋을 때는 이 말씀을 들어도 그것이 무슨 복인가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구미지역은 거의가 대기업이라서 고용이 안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일터를 주신 것이 은혜인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터를 잃었습니다. 이제 이것도 은혜인 줄 알게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일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해야합니다. 일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지 사람들이 생각하는대로 저주가 아닙니다. 우리가 일터에서 얻는 것은 단지 돈 뿐이 아닙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자기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은 더욱 의미 있는 것입니다. 수고해야 먹습니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며,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 했습니다. 일하고 싶으나 일 할 곳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셔야합니다.
수고한대로 댓가를 얻게하시는 것도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여러분, 오늘 수고하여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업을 한다고 다 성공합니까 배추 농사는 실컷 풍작되게 지어놓고 너무 풍작이라서 값이 없어서 그냥 밭에서 뽑지도 못하고 갈아 엎는 경우도 많이 봅니다. 일한 품삭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손이 수고한대로 수입을 얻게 될 때에 그것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인줄 알고 감사해야합니다.
꼬박 꼬박 일터로 출근하게되고 그 일한 대가를 받게 되었으면 아내들은 그 남편에게도 감사해야합니다. 쥐꼬리만한 월급이라고 감사하지 않고 남편을 업신 여기기도하고, 그 삶을 지겹게 여기는 주부들도 있지만 그것이 복인 줄을 알지 못해 그렇습니다.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 보다 낫다고 잠언 16장에서 말씀했습니다. 죄를 지어서 많은 소득을 가지게 되는 것 보다는 의를 행하므로 적은 소득을 얻는 것이 더 나은 줄 알아야합니다.
또 그 뿐 아니라, "수고한대로 먹는다"는 말씀은 얻은 것을 누리게 하시는 복을 말합니다. 이것도 복인데 감사하는 사람이 적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그 결과 없는 것도 헛되지만, 수입은 있는데, 그 수입한 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열심히 일한 보람이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이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또 누리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들에게 가정을 주시고, 그 가정의 안식과 행복도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 의식주를 얻을 수 있는 일터를 주시고, 수입하게 하시며, 또 먹고 누릴 수 있게 하십니다. 돈을 열심히 벌어서 맛있는 음식을 아무리 앞에 차려놓아도 그것을 내 입에 넣지 못하면 그것이 복이 되겠습니까 병들어서 먹지 못하면 열심히 번 재물도 헛 것입니다.
그래서 (전2:21)에는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써서 수고하였어도 그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업으로 끼치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라 큰 해로다 그렇지만, (전2:26) 여호와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전5:19) 어떤 사람에게든지 여호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셨습니다.
어떤 자가 이 복을 받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사는 사람이 물질의 복도 받습니다.
(시128:2)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이것을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이라고 했습니다.
네가 복되고 형통케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는 일이 막힘 없이 잘 되게되는 복도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물론 우리가 받아야할 이 형통함은 단지 없어질 세상 것만의 형통이 아니라 어떤 현실을 만나도 열매를 맺는 결과있는 열매 있는 생활의 형통을 말합니다. 어려움이 없다는 것 보다 고난의 현실서도 열매를 맺고, 형통의 현실에서도 열매를 맺는 때마다 과실을 맺는 복입니다. 우리의 세상의 삶이 얼마나 헛된 일이 많습니까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도대로 행하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 주십니다.
둘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정의 복을 말씀하셨습니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결실한 포도나무가 얼마나 주인의 즐거움이 되며, 기쁨이 되겠습니까 시인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아내를 결실한 포도나무로 비유한 것은 그 아내의 현숙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포도나무 열매는 없어서는 안되는 귀중한 음료요, 자양분입니다. 유대인들에게 포도나무 열매는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어린 감람나무는 오랜 감람나무에서 뻗어나온 새로운 줄기의 신선함과 생명력, 빠른 성장력을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그 자녀들도 건강하게 성장하고 자녀들로 인하여 그 가정은 활기가 넘칠 것을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정의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집에는 가정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가훈 삼은 여호와 경외하는 가정, 이 가정에 날마다 즐거움과 기쁨과 신선함과 자람의 생명력이 있을 것을 말씀합니다.
아이들이나 남편들이 왜 집에 들어가기가 싫다고 말합니까
그 집에 기쁨과 즐거움, 신선함, 생명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 살이에 지쳐도 가정에만 들어오면 안식과 평안이 있어야하지 않습니까 가정에서 안식과 새로움을 얻고 또 일터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오늘 많은 기독자 가정들도 위기를 맞았습니까
믿는다는 가정이지만, 그 가정이 여호와 하나님 경외하는 일이 없고, 그 가정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4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물질적이고 육적인 것 보다 더 귀한 것이 평강을 주는 가정으로 인하여 심령에 평안을 누리는 복입니다. 이 복이 시시한 것이 아닌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 신일교회에 속한 가정들이 다 말씀대로 순종하여 병들고 약한 모습들이 강건해 지기를 축원합니다. 다툼이 있는 가정들까지도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우리 가정들이 다 강건하게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이제 더 나아갑니다. 이런 물질적이고, 가정적인 축복 뿐 아니라, 시온에서 복을 주실 것을 보게되고, 예루살렘에서 복을 봅니다.
(시128: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시온과 예루살렘은 같은 곳입니다. 시온산은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성산입니다. 예루살렘은 여호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를 말합니다.
이 시온은 신약시대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시온의 복, 이 복은 교회생활의 복을 말하는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복은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에까지 미칩니다. 경외하는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와 복의 은택을 많은 사람이 함께 누리게 됩니다.
이 복은 교회 생활의 복, 곧 신앙의 복입니다. 교회를 바로 선택하게 하신 것, 신앙생활에 자유 얻게 하신 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복임을 알아야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으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신앙생활을 바로 하지 못하도록 이 자유함도 뺏습니다.
넷째,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평생에 이 복을 받고, 또 자식에게까지 이 복을 주게되리라고 했습니다.
남은 여생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것을 누리게 되고, 그가 장수할 뿐 아니라, 그의 자손 까지도 이 은혜를 누릴 것을 말씀합니다.
저는 이 복도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손을 많이 두는 복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고, 믿음이 계대되는 복을 말합니다. 그저 육신적으로 혈육이 계대되는 것도 귀하지만, 무엇보다 귀한 믿음을 가진 자녀로 후손을 보고 또 후손을 보게되는 이 복은 세상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받는 것이지만, 가장 귀한 복인 것을 알아야합니다. 천대까지 복주신다고 했습니다.
다섯째, 그 삶에 평강을 주시는 복입니다.
어떻게 이 세상을 살면서 참된 평강을 가지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살지만 소망이 영원 천국에 있는 자는 세상 그 어떤 풍파 가운데도 평강을 가질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지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사실을 확실히 믿는 사람은 세상 것에 조급하지 않습니다.
누가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까
이같이 여호와 경외하는 사람이 얻는 복은 넘치고 넘치게 됩니다.
어떤 복을 받습니까
개인적으로, 또 물질적인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가정이 복되고, 그 교회가 복을 받고, 그가 거하는 주위의 사람까지 그 은혜의 그늘에서 깃들일 것이며, 그 후손까지도 복을 받고 영원한 평강의 복을 받는 이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참으로 여호와께 복받기를 원하십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는 이 복을 유치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복을 좋아하고, 어떤 일이 잘되었을 때에 옆에 사람이 그 사람 선하게 살아서 복 받았다고 하면 더 없이 기분 좋아하지 않습니까
우리들도 이들 보다 더 복을 좋아하고, 복으로 살아가야합니다.
우리는 복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고 받은 복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원하는 그런 복이 아닙니다.
이는 복 주시는 복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받는 복입니다.
우리는 내 자신의 지혜나 힘을 의지해서 살아간다 하면 안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 주셔야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셔야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가야합니다. 세상 사람들 같이 자기 지식을 능력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기다린다고 하니, 운명론자들 같이 게으르고, 재수를 기다리며 사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물론 우리들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더 성실히 행하여야합니다. 이것을 성경이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하여 자신하고, 교만한 자가 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는 삶을 살기 때문에 욕심 때문에 죄짓지 않는 자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하는 자에게 함께하시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삶을 살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 경외하고 그 도대로 사는 길은 어려운 길이요, 외로운 길입니다. 오늘 다 자기 마음대로 살고, 제 생각이 진리로 아는 때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옛날 구약 성도들만 지키라고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 때의 여호와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시면서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 경외하기를 원하시며, 이 자에게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이 복 받은 가정입니다.
그 도대로 행하는 자가 있는 가정이 복 받은 가정입니다. 오늘 이 복을 사모합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 주셔야한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칩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 주실 수 있는 자만 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신다는 말씀을 믿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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