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건강한 가정
본문
가정이나 교회나 국가가 옛날과의 다른 한가지 관점을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건강'입니다.
IMF를 겪으면서 우리는 처음으로 국가경제라는 것이 단순히 물건만 만들어 팔면 되는 것이 아니며 건강한 경제구조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대기업들이 넘어지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 정부에 들어와서 우리가 느끼는 심각한 국가건강의 문제가 또 있습니다. '양심'입니다.
옛날에는 국민의 양심이 그렇게 국가건강에 중요한지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여러 선진국들과 어깨를 견주어야 하는 위치에 오르고 보니 양심과 윤리의식은 너무도 중요함을 보게 된 것입니다.
국가의 어떤 개혁도 어떤 새로운 제도도 국민의 양심과 윤리의식이 뒷받침 해 주지 못할 때에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현정부의 최대 실책으로 지적되는 의약분업도 그 재정파탄의 원인엔 건강하지 못한 양심이 있습니다.
그 재정의 구멍은 양심의 구멍입니다.
30년의 독재 정권은 이런 기본적인 건강 문제를 악화시킨 주범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문민정부도 현 국민의 정부도 개혁을 표방하며 애써 오지만 안 되는 것은 저는 지도력의 문제라고만 보지 않습니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총체적으로 썩어있는 윤리의식, 썩어버린 양심과 이기주의가 원인인 것입니다.
이 국민의식을 되돌릴 수 있는 지도자가 나오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런 지도자를 만난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교회가 그동안 성장만을 이슈로 삼고 노력해오다 이제 성장에 제동이 걸리면서 이제야 중요한 관점을 갖고 보기 시작한 것이 교회의 건강문제입니다.
교회의 양적성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의 건강이라는 표현을 곧잘 합니다.
건강하지 못한 교회는 21세기에 살아 남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가정은 어떻습니까
10,20년 전에 비하여 지금 우리나라는 무너지는 가정들이 너무 많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세 가정 중 하나 꼴입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만 가지고서 가정이 유지될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건강하지 못하면 가정이 유지되어가도 힘들고 행복하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건강한 가정'을 생각하며 말씀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경외의 신앙
"왕이든 농부이든 그 가정에서 평화를 찾아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라고 괴테가 말했습니다.
건강과 행복의 기초엔 평화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평화의 원천이십니다. 그 안에 평화가 있습니다.
인간의 불행은 그 분과의 단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완전한 평화가 사라진 것입니다.
에덴동산을 떠난 인간은 두 대를 못 넘기고 살인사건에 휘말립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곳에서는 평화의 상실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비극이고 행복의 상실입니다.
행복이란 게 별것입니까 평화가 있는 곳이면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솔직히 썩 행복한 나라가 못됩니다.
한 나라가 둘로 갈리어 긴장 관계가 지속되는 지구상의 거의 유일한 나라입니다.
동서가 갈리어 지역감정의 골을 드러내고 있는 나라입니다.
급속도로 가정이 금이 가고 있습니다. 개인간의 생존경쟁은 치열해서 어린아이들의 교육에서까지 서로 경쟁하며 열을 올리는 세태입니다.
평화를 기대할 수 없는 환경이 우리의 환경처럼 보입니다.
모두가 그러하지만 사실 우리민족만큼 여호와 하나님 앞에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민족은 없어 보입니다.
평화의 회복은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꿇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참으로 행복한 가정을 묘사한 시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 복스런 모습의 첫 번째 내용으로 말씀하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건강한 가정의 기초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경외하는 신앙을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정에 주인되는 모습이며 그의 모든 말씀은 순종의 내용이 되는 삶입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을 그려보면 될 것입니다. 욥의 가정을 그려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주인되면 남편이라 하여 자기 주장만 하지 않습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모든 문제 앞에다 '여호와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라는 질문을 하고 나서 조금만 생각하면 거의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믿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행복하고 축복된 가정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 되게 하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며 섬기고 인격적 관계가 맺어져 있는 가정이 불행한 가정은 거의 없습니다.
수고의 열매로 살아가는 삶
2절의 말씀을 이제 보십시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건강한 가정, 행복한 가정의 두 번째 복의 내용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그것은 "수고의 열매"입니다.
그리고 여기엔 복의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라"입니다.
수고할 손이 있습니까 이것이 복입니다.
'손'이 일하는 지체의 대표적인 도구가 되기 때문에 나온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누구든지 무슨 작은 일일지라도 하고 살 수 있도록 창조해 놓으셨습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자세가 그 첫 번째 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고한 결과에 대하여 인정하십니까 이것이 복입니다.
남과 비교하여 나는 왜 이것밖에 되지 못할까 하고 한탄하지 마십시오.
남의 용돈과 비교하며 나는 왜 이것밖에 쓸 수 없을까를 한탄하지 마십시오.
수고한대로 먹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입니다.
저의 수고의 열매는 한달 120만원입니다.
그것으로 모든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것 가운데서 일부는 목회활동에도 사용해야 합니다. 책도 사보고 남 대접도 합니다.
이 수고의 열매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저의 수고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교회의 형편에서 참 과분하게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쉽지는 않지요. 때때로 빚도 지구요.
며칠 전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발 설교할 때 가정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부탁하는데 또 해야겠습니다. )
"당신은 재능과 인화력이 좋은데 이제는 목회는 나에게 맡기고 자신의 일을 해 볼 수도 있지 않겠느냐"구요.
그랬더니 아내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런 마음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면 내가 가진 것으로 성도들을 더 잘 섬길 수 있는가에 집중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내와 결혼할 때 목사의 아내가 아닌 임종학의 아내가 되어 달라 했는데 13년 살아오면서 이젠 목사의 아내가 되어 버린 것을 발견합니다. 그것이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수고의 열매가 적은 것이 불행이 아닙니다.
내 손이 수고한 결과를 복으로 인정할 수 없음이 불행인 것입니다.
성경은 게으르고 나태한 것을 죄악으로 간주합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일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6:6)고 충고합니다.
수고한 열매를 감사로 알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복되고 형통함의 약속을 하십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아름다운 가정을 보는 것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가정에 대한 참으로 아름다운 묘사입니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눈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눈
자녀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눈
부모를 바라보는 자녀들의 눈
여러분은 다 이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눈에 그들이 어떻게 보입니까
오늘 말씀에서 보여주는 그림은 어떠합니까
한 남편의 눈에 보이는 아내의 모습이 '결실한 포도나무'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가지를 뻗쳐 수많은 포도송이를 탐스럽게 맺어놓고 파란 잎은 그 열매들을 그늘로 가리워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가까이서 주목해 보십시오!
포도나무 줄기는 강하지 못합니다. 줄기자체의 힘으로는 도저히 많은 열매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아름다움과 풍성함도 받쳐주는 지지대가 없으면 찢기든가 땅에 내던져 놓은 채 밟힐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여인의 존재가 그러합니다. 남편의 사랑이 그 지지대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아내되신 여러분들!
남편을 어떻게 그려보고 싶습니까
하루종일 주인이 시킨대로 이리저리 일만 하며 끌려다니다 지친 몸으로 집으로 향하는 늙은 황소에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오직 쉼만이 필요한 존재, 그래서 할 수 있는 모든 순종과 섬김으로써 이 세상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가정만이 줄 수 있는 평안한 안식처를 준비해주는 아내의 세심함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부모의 눈에 비친 자녀들의 모습은 어린 감람나무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한 상에 둘러 밥 먹고 있는 자녀의 모습에서 보여지는 것은 새봄의 싹처럼 놀랍게 자라나는 성장의 모습입니다. 거기에는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이 있고 어린 감람나무 순이 쑥쑥 자라나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자녀들의 눈에 비칠 부모의 모습
그것은 이미 남편과 아내의 모습에 다 드러나 있습니다.
또 여러분이 충분히 그려볼 수 있는 모습이 있을 것입니다.
행복함이 있고 가정의 화목이 있을 때에는 이런 그림들이 그려집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그 어떤 가치로도 매길 수 없는 그림들이 있을 것입니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아늑하게 꾸며놓은 집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고가의 작품을 걸어두고 세워둔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가정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하는 것은 가족공동체 각자의 눈에 비칠 이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그 그림의 소장자가 되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가정은 이 복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건강'입니다.
IMF를 겪으면서 우리는 처음으로 국가경제라는 것이 단순히 물건만 만들어 팔면 되는 것이 아니며 건강한 경제구조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대기업들이 넘어지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 정부에 들어와서 우리가 느끼는 심각한 국가건강의 문제가 또 있습니다. '양심'입니다.
옛날에는 국민의 양심이 그렇게 국가건강에 중요한지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여러 선진국들과 어깨를 견주어야 하는 위치에 오르고 보니 양심과 윤리의식은 너무도 중요함을 보게 된 것입니다.
국가의 어떤 개혁도 어떤 새로운 제도도 국민의 양심과 윤리의식이 뒷받침 해 주지 못할 때에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현정부의 최대 실책으로 지적되는 의약분업도 그 재정파탄의 원인엔 건강하지 못한 양심이 있습니다.
그 재정의 구멍은 양심의 구멍입니다.
30년의 독재 정권은 이런 기본적인 건강 문제를 악화시킨 주범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문민정부도 현 국민의 정부도 개혁을 표방하며 애써 오지만 안 되는 것은 저는 지도력의 문제라고만 보지 않습니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총체적으로 썩어있는 윤리의식, 썩어버린 양심과 이기주의가 원인인 것입니다.
이 국민의식을 되돌릴 수 있는 지도자가 나오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런 지도자를 만난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교회가 그동안 성장만을 이슈로 삼고 노력해오다 이제 성장에 제동이 걸리면서 이제야 중요한 관점을 갖고 보기 시작한 것이 교회의 건강문제입니다.
교회의 양적성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의 건강이라는 표현을 곧잘 합니다.
건강하지 못한 교회는 21세기에 살아 남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가정은 어떻습니까
10,20년 전에 비하여 지금 우리나라는 무너지는 가정들이 너무 많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세 가정 중 하나 꼴입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만 가지고서 가정이 유지될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건강하지 못하면 가정이 유지되어가도 힘들고 행복하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건강한 가정'을 생각하며 말씀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경외의 신앙
"왕이든 농부이든 그 가정에서 평화를 찾아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라고 괴테가 말했습니다.
건강과 행복의 기초엔 평화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평화의 원천이십니다. 그 안에 평화가 있습니다.
인간의 불행은 그 분과의 단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완전한 평화가 사라진 것입니다.
에덴동산을 떠난 인간은 두 대를 못 넘기고 살인사건에 휘말립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곳에서는 평화의 상실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비극이고 행복의 상실입니다.
행복이란 게 별것입니까 평화가 있는 곳이면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솔직히 썩 행복한 나라가 못됩니다.
한 나라가 둘로 갈리어 긴장 관계가 지속되는 지구상의 거의 유일한 나라입니다.
동서가 갈리어 지역감정의 골을 드러내고 있는 나라입니다.
급속도로 가정이 금이 가고 있습니다. 개인간의 생존경쟁은 치열해서 어린아이들의 교육에서까지 서로 경쟁하며 열을 올리는 세태입니다.
평화를 기대할 수 없는 환경이 우리의 환경처럼 보입니다.
모두가 그러하지만 사실 우리민족만큼 여호와 하나님 앞에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민족은 없어 보입니다.
평화의 회복은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꿇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참으로 행복한 가정을 묘사한 시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 복스런 모습의 첫 번째 내용으로 말씀하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건강한 가정의 기초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경외하는 신앙을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정에 주인되는 모습이며 그의 모든 말씀은 순종의 내용이 되는 삶입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을 그려보면 될 것입니다. 욥의 가정을 그려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주인되면 남편이라 하여 자기 주장만 하지 않습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모든 문제 앞에다 '여호와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라는 질문을 하고 나서 조금만 생각하면 거의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믿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행복하고 축복된 가정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 되게 하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며 섬기고 인격적 관계가 맺어져 있는 가정이 불행한 가정은 거의 없습니다.
수고의 열매로 살아가는 삶
2절의 말씀을 이제 보십시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건강한 가정, 행복한 가정의 두 번째 복의 내용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그것은 "수고의 열매"입니다.
그리고 여기엔 복의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라"입니다.
수고할 손이 있습니까 이것이 복입니다.
'손'이 일하는 지체의 대표적인 도구가 되기 때문에 나온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누구든지 무슨 작은 일일지라도 하고 살 수 있도록 창조해 놓으셨습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자세가 그 첫 번째 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고한 결과에 대하여 인정하십니까 이것이 복입니다.
남과 비교하여 나는 왜 이것밖에 되지 못할까 하고 한탄하지 마십시오.
남의 용돈과 비교하며 나는 왜 이것밖에 쓸 수 없을까를 한탄하지 마십시오.
수고한대로 먹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입니다.
저의 수고의 열매는 한달 120만원입니다.
그것으로 모든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것 가운데서 일부는 목회활동에도 사용해야 합니다. 책도 사보고 남 대접도 합니다.
이 수고의 열매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저의 수고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교회의 형편에서 참 과분하게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쉽지는 않지요. 때때로 빚도 지구요.
며칠 전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발 설교할 때 가정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부탁하는데 또 해야겠습니다. )
"당신은 재능과 인화력이 좋은데 이제는 목회는 나에게 맡기고 자신의 일을 해 볼 수도 있지 않겠느냐"구요.
그랬더니 아내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런 마음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면 내가 가진 것으로 성도들을 더 잘 섬길 수 있는가에 집중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내와 결혼할 때 목사의 아내가 아닌 임종학의 아내가 되어 달라 했는데 13년 살아오면서 이젠 목사의 아내가 되어 버린 것을 발견합니다. 그것이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수고의 열매가 적은 것이 불행이 아닙니다.
내 손이 수고한 결과를 복으로 인정할 수 없음이 불행인 것입니다.
성경은 게으르고 나태한 것을 죄악으로 간주합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일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6:6)고 충고합니다.
수고한 열매를 감사로 알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복되고 형통함의 약속을 하십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아름다운 가정을 보는 것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가정에 대한 참으로 아름다운 묘사입니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눈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눈
자녀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눈
부모를 바라보는 자녀들의 눈
여러분은 다 이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눈에 그들이 어떻게 보입니까
오늘 말씀에서 보여주는 그림은 어떠합니까
한 남편의 눈에 보이는 아내의 모습이 '결실한 포도나무'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가지를 뻗쳐 수많은 포도송이를 탐스럽게 맺어놓고 파란 잎은 그 열매들을 그늘로 가리워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가까이서 주목해 보십시오!
포도나무 줄기는 강하지 못합니다. 줄기자체의 힘으로는 도저히 많은 열매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아름다움과 풍성함도 받쳐주는 지지대가 없으면 찢기든가 땅에 내던져 놓은 채 밟힐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여인의 존재가 그러합니다. 남편의 사랑이 그 지지대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아내되신 여러분들!
남편을 어떻게 그려보고 싶습니까
하루종일 주인이 시킨대로 이리저리 일만 하며 끌려다니다 지친 몸으로 집으로 향하는 늙은 황소에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오직 쉼만이 필요한 존재, 그래서 할 수 있는 모든 순종과 섬김으로써 이 세상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가정만이 줄 수 있는 평안한 안식처를 준비해주는 아내의 세심함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부모의 눈에 비친 자녀들의 모습은 어린 감람나무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한 상에 둘러 밥 먹고 있는 자녀의 모습에서 보여지는 것은 새봄의 싹처럼 놀랍게 자라나는 성장의 모습입니다. 거기에는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이 있고 어린 감람나무 순이 쑥쑥 자라나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자녀들의 눈에 비칠 부모의 모습
그것은 이미 남편과 아내의 모습에 다 드러나 있습니다.
또 여러분이 충분히 그려볼 수 있는 모습이 있을 것입니다.
행복함이 있고 가정의 화목이 있을 때에는 이런 그림들이 그려집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그 어떤 가치로도 매길 수 없는 그림들이 있을 것입니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아늑하게 꾸며놓은 집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고가의 작품을 걸어두고 세워둔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가정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하는 것은 가족공동체 각자의 눈에 비칠 이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그 그림의 소장자가 되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가정은 이 복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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