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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예수님을 머리에 이고 사는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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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제 안 사람이 제게 이런 말을 합디다. ‘목사 아내가 돼서 참 좋은 게 딱 하나가 있을 것’이랍니다. 지금 좋다는 말도 아니고, 앞으로 좋을 것이라니- 좀 이해가 안 됐습니다. 하긴 뒤늦게 목사 아내가 돼서 제 집 사람 솔직히 불평 많이 했을 것입니다. 지금이야 제 집 사람도 ‘그러느니-’ 합니다만 그런데 어느 날 ‘목사 아내가 돼서 참 좋은 게 하나가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게 뭐냐하면 자식놈들이 손자를 낳더라도 봐줄 수 없으니 얼마나 좋으냐면서 손뼉을 칩디다.
 친구들을 만나면 손자 봐 주는 친구들이 팍 늙었더래요. 요즘 젊은이들, DINK족들 아닙니까 결혼하고도 맞벌이한다고 아이를 봐달라고 하면, 이거 안 봐 줄 수도 없고 -그렇죠 여러분, DINK족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죠 DINK, Double Income No Kid의 약자입니다. ‘맞벌이로 수입을 두 배로 올리고 아이는 갖지 말자’ 이거죠. 그렇지만 어디 꼭 그렇게 됩니까 아이를 낳고서는 어른들에게 떼 맞깁니다. 키워서 달라는 겁니다. 자식들 시집 장가보내고, 이제 인생을 좀 즐길까 하니까 그만 손자들에게 부대껴서 팍 늙어지고 맙니다. 그렇지만 제 안 식구는 나와 함께 거의 매일 교회에 나오니까 봐 주고 싶어도 못 봐 준다 이거죠. 목사 아내가 되고 그것 하나는 맘에 든다는 겁니다.
오늘은 가정주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날 우리 가정의 문제를 좀 심각하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지난 해 12월 대통령 선거 때 후보자 텔레비전 토론에서 한 군소 정당 후보의 인사말에 모두들 웃었습니다. ‘여러분, 요즘 삶의 질이 좀 나아졌습니까’ ‘여러분, 지금 행복하십니까’ 행복하지 못하니까 그냥 웃어버렸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이 세상에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누구나 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몸부림칩니다. 부모가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여러분들이 다 행복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늘 문을 열고 복을 내려주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금 내게 다가서고 있는 그 행복을 보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그렇게 원하면서도 다가오는 행복을 놓치고 맙니다. 행복을 네모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동그라미로 다가서는 행복을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움켜쥐어야 행복해지는 줄 아는 사람이 어떻게 나눔이 행복인 줄 알겠습니까

2. 행복의 원리
인간의 사회 구조는 이렇습니다. 전혀 남남인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고 그리고 가정과 가정이 모여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작은 공동체들이 모여 더 큰 공동체를 만듭니다. 그러니까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는 가정입니다. 이 가정은 남편과 아내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우리 삶의 기본단위는 바로 가정입니다. 가정이 건전하면 사회도 건전하고 가정이 병들면 사회도 따라서 병듭니다. 이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믿음의 가정들이 모여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가정을 작은 교회라고 합니다. 교회가 뭡니까 우리 주님 예수님의 몸입니다. 이 예수님의 몸도 가정에서부터 세워집니다. 우리 주님 예수님은 마태복음 18:20에서 ‘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가정의 구성이 바로 두 세 사람 아닙니까 남편과 아내, 그리고 여기에 자식,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가정에 예수님의 분명히 함께 계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몸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으로 돼 있습니다. 이게 예수님의 본질입니다. 무엇이 행복입니까 가정의 행복이 어떤 겁니까 사랑이 가득하고 기쁨이 넘쳐나고 그래서 화목하면 그게 행복 아닙니까 그 행복이 어디서 나옵니까 예수님에게서 나옵니다. 행복의 근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복 그 자체입니다. 그러니까 행복을 얻으려고 몸부림칠 게 없어요. 예수님만 꽉 붙잡으면 저절로 행복해질 줄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설교제목을 ‘예수님을 이고 사는 가정’이라고 정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곁에만 계셔도 행복인데 그 예수님을 머리에 이고 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복 덩어리를 이고 사는 가정, 금 덩어리를 이고 살아도 흐뭇할 텐데, 복 덩어리, 복이 솟아나는 복 샘을 이고 있다면 온통 복 아니겠습니까 남편이 행복합니다. 아내가 행복합니다. 자식들이 행복합니다. 복이 넘쳐흐릅니다. 앞집, 뒷집, 옆집, 모두가 따라서 복을 받습니다. 복이 넘쳐흐릅니다. 모든 사람이 그 가정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바로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너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복을 받으리라’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행복 원리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머리에 이고 사는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행복한 가정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님을 머리에 이고 사는 것입니까 가끔 상형문자인 한자를 보면서 은혜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義를 보십시요. 어떻게 생겼습니까 양 양자 아래 나 아자가 있습니다. 내가 양을 머리에 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옳을 의, 아닙니까 바르게 사는 것, 사람답게 사는 게 바로 예수님을 머리에 이고 사는 것이요, 그것이 의로운 삶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사는 게 사람답게 사는 겁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여기 양이 무엇입니까 우리 예수님 아닙니까 예수님은 어린양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희생제물로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양을 이고 사는 삶은 바로 예수님을 이고 사는 삶이요 그것은 십자가를 지고 사는 삶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말입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까 맞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사랑과 이웃을 향한 희생적 사랑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마음을 다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삶이 바로 의로운 삶이요 예수님을 머리에 이고 사는 삶인 줄 믿습니다.

3. 행복은 나눔에서
그러나 여러분, 양을 머리에 이고 있으니 얼마나 무겁겠습니까 십자가를 이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 힘의 원리는 참으로 묘합니다. 힘이라고 하는 것은 나눌수록 커집니다. 혼자 이고 있을 때에는 무거울 수도 있지만 둘이, 셋이서 함께 힘을 나누면서 이고 있을 때에는 힘이 커져서 하나도 무겁지 않습니다. 그러나 함께 이고 있을 때에도 힘이 나누어지지 못하고 한쪽으로 쏠리면 힘은 약해져서 머리에 이고 있는 것이 무거워지고 그래서 떨어져서 깨지고 맙니다. 그래서 힘은 서로 나누어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아내와 남편과 자식에게 하시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복종하라, 사랑하라, 순종하라. 그러나 여러분, 이 본문만 딱 떼어서 읽으면 복종하라, 사랑하라, 순종하라는 본문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3장 전체를 읽고 묵상해야 왜 이 말씀을 했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3장은 새 사람이 된 사람, 예수를 믿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난 사람의 가정에 행복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되는 것이 새 사람입니까 헌 옷을 벗어버리고 생 옷을 입는다고 새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의 헌 것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마음으로 변화된 모습이 새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새 사람에게서는 옳지 못했던 옛 생활이 사라져야 맞습니다. 마음이 달라졌으면 생활도 달라져야 하지 않습니까 예수 믿기 전에는 오늘이 그냥 일요일이었습니다. 쉬는 날, No Business Day였습니다. 그래서 그냥 놀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나서 오늘은 그냥 일요일이 아니라 주일, 주님의 날 Lord"s Day가 됐습니다. 주님을 만나는 날, 주님으로부터 새 힘을 받아 충전하는 날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이렇게 새 사람이 된 가정은 또 새로운 모습으로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을 머리에 이고 사는 가정으로 말입니다.
여러분 바로 이것이 오늘 본문 골로새에서 말씀하시는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부부의 나눔의 원리입니다.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라’. 지금이 어느 땐데 복종하라는 말이냐 여러분, 성경 말씀을 깊이 들어가 보면 참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니까 말씀의 의미를 모르고 시대에 맞지 않느니, 모순이니 그러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이 말씀을 할 때에는 아내들은 남편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할 수밖에 없는 시대였습니다. 남편 앞에서 아내의 존재는 남편의 소유물, 노예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그런 노예 같은 복종을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의 ‘복종하라’는 사용된 말은 ‘휫포탓세스테’라는 말인데 이 말은 ‘휘포탓소’의 라는 말의 중간 태입니다. 헬라어 문법에서 이 중간 태는 어떤 물리적 힘에 의해서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기쁨으로 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여필종부의 관념으로서의 복종이 아니고, 긍정적으로 자원해서, 남편에게 힘을 보태주는 나눔입니다. 억지로 하는 복종이 아니고 좋아서 하는 복종입니다. 좋아서 하는 복종이라면 오히려 복종하는 것이 기쁨 아닙니까 그러니까 여기서 복종하라는 말은 ‘돕는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2:18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와를 만들어 주실 때 하신 말씀 ‘돕는 배필’로서의 복종의 의미하는 것이고 창세기 3:16절에서 ‘너는 남편을 사모하라’하셨을 때 그 사모함과 같은 의미입니다. 여러분, 아내가 남편을 돕고 사모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아내는 남편을 돕고 사모하게 됩니다. 이것이 힘을 나누는 것입니다. 아내의 힘을 남편에게 부어주는 것이라 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무겁지가 않고 자꾸 가벼워지는 줄 믿습니다.
19절에서 성경은 ‘남편들이여 아내를 사랑하고 괴롭히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기쁨으로 복종하는데, 그런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배신자죠 아내가 남편 쪽으로 힘을 보내면 당연히 남편도 아내 쪽으로 힘을 보내야 균형이 이루어져서 머리에 이고 있는 복이 떨어지지 않잖습니까 한 쪽이 힘을 자꾸 나누며 보내는 데, 한 쪽은 그 힘을 받기만 하고 자기는 전혀 힘을 보내지 않는다면 균형이 깨져서 한 쪽으로 기울어지고 맙니다. 둘 다 힘이 더 듭니다. 무거워집니다. 여기서 사랑한다는 말은 그냥 애정만을 말하는 게 아니고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 끊임없이 돌보는 것을 말합니다. 서로 사랑을 맘껏 나누라는 말씀입니다. 물이 흐르듯이 사랑이 서로 오가는 것입니다. 사랑이 나누어지고 그 나눔 속에서 기쁨이 솟아나고 그래서 가정은 천국이 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복을 머리에 이고, 서로 돕고 사랑하며 힘을 나누는 부부 사이에 어떤 자녀가 태어나겠습니까 복남이가 태어나고 복순이가 태어나죠 그리고 그 복남이 복순이가 어떻게 자라겠습니까 애들은 어른들을 보면서 자랍니다. 어른들이 하는 대로하면서 성장합니다. 자녀들은 가정에서 세상을 배웁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힘을 나누며 화목하게 살면 자녀들도 힘을 나누는 것을 배우면서 자랍니다. 그래서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가 균형 잡힌 삼각형 가정이 만들어집니다. 아내가 남편을 돕고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자식이 부모에게 순종으로 떠받치는 가정, 절대 기우뚱거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계셔 복을 주는 행복한 가정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 자식들에게 무엇을 먼저 가르쳐야 하겠습니까 아내와 남편이 힘을 합쳐서 머리에 이고 있는 양을 이는 법을 가르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정말 자식들이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세상 것들을 가르치기 전에 예수님을 머리에 이고 사는 법을 가르쳐줘야 할 줄 믿습니다. 복의 근원 아닙니까 자식을 정말 사랑하고 그 자식들이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행복을 머리에 이고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배우며 성장한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합니다. 효는 곧 복입니다. 복을 받는 것입니다.
4. 맺는 말
오늘의 우리 사회는 지혜는 없고 오직 지식만이 팽창합니다. 너무 알아서 탈입니다. 아는 것이 너무 많아서 죄악이 더 관영 합니다. 지금 인간이 알고 있는 지식은 엄청납니다. 그 지식에 눌려 지혜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식은 지혜를 통해 활용될 때 인간에게 유익한 것인데 지혜가 없다 보니 오히려 그 지식이 인간을 망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행복한 가정을 위해 유태인의 가정을 배워야 합니다. 지금 유태인의 가정은 이 세상에서 가장 민주적인 가정입니다. 그래도 아버지의 권위는 절대적입니다. 유태인의 가정은 안식일이 되면 어김없이 모든 가족이 한 자리에 모입니다. 안식일 곧 가족의 날입니다. 아버지라는 말이 히브리어로는 그냥 아버지가 아닙니다. 아버지는 선생입니다. 아버지는 항상 자식들에게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자신이 성경을 읽고 있는 모습을 언제나 자식들에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그 확고한 권위는 어머니의 도움으로 가능합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아버지에게 힘을 실어줍니다. 자식들 앞에서는 더욱 더 아버지를 존경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최종적인 결정권을 언제나 남편에게 맡깁니다. 자녀들에게서 일어난 좋고 나쁜 일, 옳고 그른 일들을 모두 아버지에게 보고하도록 자식들을 가르칩니다. 자녀들에 대한 어머니의 교육은 얼마나 극성스러운지-오죽 하면 영어로 Jewish Mother고 하면 ‘유태인 어머니’라는 뜻이 아니고 자녀 교육에 극성스러운 엄마를 나타내는 말이 됐겠습니까 그러나 유태인 어머니들은 우리 치맛바람 어머니들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자녀들 머리에게 지식을 넣어주려고 안달들이지만 유태인 어머니들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머리에 이게 하려고 안달입니다. 그들의 쉐마교육은 ‘자녀들아 들으라 주 너의 여호와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입니다. "내가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머리에 이고 살아봤더니 정말 행복했다. 그러니 너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에 이고 살면 틀림없이 행복해 진다‘ 인생의 지혜를 가르칩니다. 여러분, 지혜는 만물을 살리는 길을 가르치지만 지식은 만물을 파괴시키는 것을 가르칩니다. 지혜는 힘을 나누는 법을 가르치지만 지식은 엄청난 힘이 한 곳에 몰린 대륙간 탄두 탄을 만드는 기술을 가르칩니다. 인생의 지혜는 어디서 옵니까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는 줄 믿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님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사랑을 나누는 법을 온 인류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거기에 진정한 사랑이 있고 희락이 있고 화평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 한 복판에 주님의 십자가가 우뚝 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머리에 이고 사는 가정이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의 가정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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