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늘 잔치하는 가정
본문
가정을 살리는 네 가지 생명의 “씨”가 있는데 맵시, 솜씨, 말씨, 마음씨다.
첫째 맵시다. 그것은 단정한 자세를 말한다. 여성들은 꾸미기를 좋아하는데 20대가 꾸미는 것은 화장! 30대가 꾸미는 것은 치장! 40대가 꾸미는 것은 분장! 50대가 꾸미는 것은 변장! 60대가 꾸미는 것은 환장! 이라는 유머가 있다. 우리가 얼굴을 꾸미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얼굴을 꾸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의 자세를 맵시 있게 꾸미려는 자세다. 밖에서는 호인으로 인정받으면서 집안에서는 야박한 남편, 거친 아버지의 모습을 보인다면 맵시 있는 자세가 아니다. 교회에서는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하고 화사하게 웃으면서 남편에게는 함부로 성질을 내는 아내 역시 맵시 없는 아내다.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편한 사이지만 그러나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해서는 안 되는 사이이다. 부부간에도 지켜야할 에티켓과 예절이 있다.
둘째는 솜씨다. 솜씨는 식구들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주려고 하는 사려 깊은 자세다. 자기의 개성은 살리면서도 다른 식구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지혜로운 태도인 것이다. 셋째는 말씨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은 밖에 나가서 빠진 힘을 다시 소생시켜주는 신비한 곳이다. 그것은 가족들 간에 이루어지는 위로와 격려를 통해 되어 진다. 그래서 잘못은 지혜롭게 지적을 하면서도 최대한 격려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여보 힘내세요. 당신이 최고예요. ” 아내의 이말 한마디가 남편에게 삶의 의미를 주고 살아갈 용기를 준다. “여보 내가 다 알아! 당신 밖에 없어” 남편의 이말 한마디가 산더미 같은 아내의 피로를 순식간에 다 떠나가게 하고, 고달픔도 잊게 한다.
넷째는 마음씨다. 서로의 수고를 알아주고, 고마운 마음을 잃지 않는 마음씨가 있을 때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남편이든 아내든, 부모든 자식이든 서로의 존재가치를 높여 주면서 산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그런 가정이 다 되시기를 축원한다. 성도여러분! “잔치”하면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그렇다. 기쁨과 만족이다. (예, 어머니 회갑잔치) 15절에 보시면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고 했다. 잔치하는 마음, 잔치하는 기쁨으로 살아가는 자를 말씀한다. 잔치하는 자, 잔치하는 집에는 걱정이 없다. 여러분의 가정이 잔치하는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오늘 본문은 험악한 고난 가운데서도/ 즐거운 마음을 잃지 않음으로써 잔치하는 삶을 사는 자를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런 가족이 모인 곳이 바로 잔치하는 가정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가정을 만드시고 가족관계 속에서 평화와 안식과 사랑을 경험하게 하셨다. 그러면서 기쁨과 행복을 누리면서 살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가족과의 관계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리시기를 바란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가까이에 있다. (클로버 사진-네잎 클로버의 꽃말: 행운, 세잎 클로버의 꽃말: 행복) 사람들은 네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지천에 널린 세 잎 클로버를 밟고 지나간다. 그와 같이 행운을 얻기 위해 나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행복을 밟고 지나간다. 멀리서 찾으면 찾을 수가 없는 것이 행복이다.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내 가족이 있는 가정에 있다.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에게 행운은 없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행복이 있을 뿐이다. 행운을 찾아 나서는 자는 망하지만 가까이에 있는 행복을 찾는 자는 행복을 누리며 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노벨상을 받았던 솔제니친은 “공산주의 국가들이 붕괴된 원인은 분명하고 단순하다. 그들이 가정과 교회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었다. ”고 했다. 세계적인 대 재벌이었던 폴 재티는 “내가 만약 두 달 동안만이라도 가정의 행복을 가질 수만 있다면 내 재산을 다 쏟겠다. ”고 했다. 그 만큼 가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정 안에 행복이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의 삶에 기쁨이 있는가 여러분의 가정은 행복한가 모든 사람이 행복하기를 원하는데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토록 찾는 행복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어떻게 해야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가 그것을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서 한 번 찾아보자.
첫째로, 참 즐거움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있다. 항상 잔치하는 즐겁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고 하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 16절에서 솔로몬은 아주 중요한 진리를 말하고 있다. 행복은 내가 얼마나 가졌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데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근원적인 행복이다. 복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말씀대로 사는 삶에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리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살기 전에는/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 여호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갈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쁨과 행복을 주시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기쁨을 심어주시면/ 우리의 삶을 험악하게 만드는 그 어떤 고난도 우리의 기쁨을 빼앗아 갈 수 없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절대기쁨이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만이 누리는 특별한 기쁨이요, 특별한 삶이다. 평생 이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소유 하느냐 에서 행복의 조건을 찾는다. 소유와 행복이 정비례한다고 오해하고 있다. 물론 소유를 통해서 기쁨을 누릴 수 있지만 그것은 일시적이다. 내 존재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솟구쳐 오르는 진정한 기쁨은 아니다. 그 근원적인 기쁨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데서 나오는 기쁨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역사는 파멸이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면/ 근원적인 기쁨으로 항상 즐겁고 행복한 가정이 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복의 열쇠를 쥐고 계시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에 진정한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온 가족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은 구원의 기쁨을 누린다. 온 가족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은 은혜가 넘친다. 바로 거기에 행복이 있다. 여러분의 가정이 그런 가정이 되기를 축원한다.
둘째로 현재의 형편에 연연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에 행복이 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도 있다. 우리의 형편이 좋지 못할 때도 있다. 때로는 상처를 받아서 아픈 가슴을 움켜 쥘 때도 있다. 때로는 실패의 쓰라림을 맛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처지에서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 결과도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물질 때문에 항상 불평과 불만을 쏟아 놓는다. 어떤 사람은 죽는 날까지 용서하지 못해서 마음이 상하고, 고통스러워하고, 평안을 누리지 못한다. 물론 사람마다 가정마다 부족한 것이 있고, 고통스런 일들이 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은/ 잊을 것은 빨리 잊고, 용서할 것은 빨리 용서하고, 포기할 것은 빨리 포기할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평안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혼자 고민하고, 아파하고, 불평해봐야 무엇하나 변하는 것이 없다. 나 마음만 뒤숭숭하고/ 내 몸만 상하고/ 내 생활만 엉망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있는 것으로 감사하시기 바란다. 삶의 터전은 잃었지만 가족이 있고 건강 있음에, 건강은 잃었어도 가정이 있고 자녀가 있음에 감사하시기 바란다. 그러면 즐거운 마음으로 항상 잔치하는 가정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다. 환경은 내가 고민한다고 바뀌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받아들이고, 감사하고 나갈 때/ 힘을 주셔서 내가 그 환경을 이길 수 있게 해 주신다.
우리나라 명견 중에 진돗개가 있다. 진도라는 섬에서 서식하는 이 개는 아주 영리하고 날렵하다. 그런데 진돗개가 그렇게 된 데는 환경의 영향이 컸다. 고기잡이와 농사로 생계를 유지했던 옛날 진도의 주민들은 생활이 극도로 어려워서 개에게까지 먹을 것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진도의 개들은 스스로 먹이를 해결해야 했다. 진도의 개들이 먹이로 삼은 것은 잠시 쉬고 있는 갈매기였다. “너는 정녕 나를 잊었나”하는 부산 갈매기가 아니라 진도 갈매기다. 개가 갈매기를 잡아먹기 위해서는 고도의 꾀가 필요하고, 날렵한 동작이 필요했다. 또한 갈매기를 놓치면 굶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한 번 잡은 먹이는 결코 놓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몸놀림이 잽싸고/ 지능이 발달되고/ 한 번 물면 끝까지 놓지 않는/ 끈기가 생성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려운 환경이 그런 명견을 만들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난하고 불행한 환경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도 하고 성공시키기도 하고/ 인생을 승리하게 만들기도 한다. 문제는 그런 환경에 대하여서 어떤 마음자세를 가지느냐에 달려있다. 우리의 가정에도 풍랑이 있을 수 있다. 사업에도, 나라에도 풍랑이 일어날 수 있다. 우리가 때때로 여호와 하나님을 잊고 살아갈 때, 여호와 하나님을 다시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풍랑을 주실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보인다. 기도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보인다. 기도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보이고 선한 계획이 보인다. 그러면 풍랑가운데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근심 대신 희망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므로 항상 잔치하는 삶, 잔치하는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셋째로 행복은 가족들이 서로 사랑하는 데 있다. 사랑은 실패도 손해도 없다. 사랑은 오직 성공이요, 기쁨이요, 행복이다. 서로 사랑할 때 가정은 행복한 곳이 된다. 사랑은 베푼 만큼 기쁨과 행복이 되어서 돌아온다. 여러분이 하루하루를 살면서 사랑 받은 일이 없다면 여러분이 사랑에 인색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베푸는 만큼 돌아온다. 사랑은 정확하다. 사랑은 조건이 아니라 관계다. 남편과 아내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자식이 공부를 잘하고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오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고집 센 아내” “콧대 센 남편” “야생마 같은 며느리” 길들여서 손아귀에 넣으려고 하지만 위험한 생각이다. 그런다고 길들여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변화는 사랑에서 온다. 사랑해서 손해 보는 일은 없다. 사랑해서 실패하는 일도 없다. 그러므로 먼저 사랑을 베푸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자신을 희생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해 보시기 바란다. 그러면 천국 문이 열릴 것이다. 그러면 천국이 여러분의 눈앞에 화려하게 펼쳐질 것이다. 사랑이 실천되는 현장이 바로 천국인 것이다.
성도여러분!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고 체험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사랑을 가정에서 실천해 보시기 바란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선교를 했던 슈바이쳐 박사는 “무엇이 최대의 이단이냐 최대의 이단은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아프리카 흑인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내가 어찌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할 수 있느냐”라고 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과 가까이 교제하는 방법은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서로 사랑함으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갈 때/ 그 사랑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과 가정에 역사해 주실 것이다. 내가 베푸는 사랑이 크면/ 여호와 하나님 역시 큰 사랑으로 나에게 역사하실 것이다.
성도여러분!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마음이 즐거우므로 늘 잔치하는 삶, 잔치하는 가정이 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사랑을 나누시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그 자리가 기쁨의 자리요, 행복의 자리요, 잔치자리이다. 행복의 공식은 여호와를 경외함과 감사와 사랑이다. 여러분의 삶속에서 이 공식을 사용하시기 바란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삶과 가정에 항상 잔치하는 기쁨과 행복이 넘치시기를 축원한다.
첫째 맵시다. 그것은 단정한 자세를 말한다. 여성들은 꾸미기를 좋아하는데 20대가 꾸미는 것은 화장! 30대가 꾸미는 것은 치장! 40대가 꾸미는 것은 분장! 50대가 꾸미는 것은 변장! 60대가 꾸미는 것은 환장! 이라는 유머가 있다. 우리가 얼굴을 꾸미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얼굴을 꾸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의 자세를 맵시 있게 꾸미려는 자세다. 밖에서는 호인으로 인정받으면서 집안에서는 야박한 남편, 거친 아버지의 모습을 보인다면 맵시 있는 자세가 아니다. 교회에서는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하고 화사하게 웃으면서 남편에게는 함부로 성질을 내는 아내 역시 맵시 없는 아내다.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편한 사이지만 그러나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해서는 안 되는 사이이다. 부부간에도 지켜야할 에티켓과 예절이 있다.
둘째는 솜씨다. 솜씨는 식구들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주려고 하는 사려 깊은 자세다. 자기의 개성은 살리면서도 다른 식구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지혜로운 태도인 것이다. 셋째는 말씨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은 밖에 나가서 빠진 힘을 다시 소생시켜주는 신비한 곳이다. 그것은 가족들 간에 이루어지는 위로와 격려를 통해 되어 진다. 그래서 잘못은 지혜롭게 지적을 하면서도 최대한 격려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여보 힘내세요. 당신이 최고예요. ” 아내의 이말 한마디가 남편에게 삶의 의미를 주고 살아갈 용기를 준다. “여보 내가 다 알아! 당신 밖에 없어” 남편의 이말 한마디가 산더미 같은 아내의 피로를 순식간에 다 떠나가게 하고, 고달픔도 잊게 한다.
넷째는 마음씨다. 서로의 수고를 알아주고, 고마운 마음을 잃지 않는 마음씨가 있을 때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남편이든 아내든, 부모든 자식이든 서로의 존재가치를 높여 주면서 산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그런 가정이 다 되시기를 축원한다. 성도여러분! “잔치”하면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그렇다. 기쁨과 만족이다. (예, 어머니 회갑잔치) 15절에 보시면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고 했다. 잔치하는 마음, 잔치하는 기쁨으로 살아가는 자를 말씀한다. 잔치하는 자, 잔치하는 집에는 걱정이 없다. 여러분의 가정이 잔치하는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오늘 본문은 험악한 고난 가운데서도/ 즐거운 마음을 잃지 않음으로써 잔치하는 삶을 사는 자를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런 가족이 모인 곳이 바로 잔치하는 가정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가정을 만드시고 가족관계 속에서 평화와 안식과 사랑을 경험하게 하셨다. 그러면서 기쁨과 행복을 누리면서 살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가족과의 관계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리시기를 바란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가까이에 있다. (클로버 사진-네잎 클로버의 꽃말: 행운, 세잎 클로버의 꽃말: 행복) 사람들은 네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지천에 널린 세 잎 클로버를 밟고 지나간다. 그와 같이 행운을 얻기 위해 나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행복을 밟고 지나간다. 멀리서 찾으면 찾을 수가 없는 것이 행복이다.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내 가족이 있는 가정에 있다.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에게 행운은 없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행복이 있을 뿐이다. 행운을 찾아 나서는 자는 망하지만 가까이에 있는 행복을 찾는 자는 행복을 누리며 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노벨상을 받았던 솔제니친은 “공산주의 국가들이 붕괴된 원인은 분명하고 단순하다. 그들이 가정과 교회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었다. ”고 했다. 세계적인 대 재벌이었던 폴 재티는 “내가 만약 두 달 동안만이라도 가정의 행복을 가질 수만 있다면 내 재산을 다 쏟겠다. ”고 했다. 그 만큼 가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정 안에 행복이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의 삶에 기쁨이 있는가 여러분의 가정은 행복한가 모든 사람이 행복하기를 원하는데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토록 찾는 행복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어떻게 해야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가 그것을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서 한 번 찾아보자.
첫째로, 참 즐거움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있다. 항상 잔치하는 즐겁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고 하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 16절에서 솔로몬은 아주 중요한 진리를 말하고 있다. 행복은 내가 얼마나 가졌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데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근원적인 행복이다. 복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말씀대로 사는 삶에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리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살기 전에는/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 여호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갈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쁨과 행복을 주시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기쁨을 심어주시면/ 우리의 삶을 험악하게 만드는 그 어떤 고난도 우리의 기쁨을 빼앗아 갈 수 없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절대기쁨이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만이 누리는 특별한 기쁨이요, 특별한 삶이다. 평생 이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소유 하느냐 에서 행복의 조건을 찾는다. 소유와 행복이 정비례한다고 오해하고 있다. 물론 소유를 통해서 기쁨을 누릴 수 있지만 그것은 일시적이다. 내 존재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솟구쳐 오르는 진정한 기쁨은 아니다. 그 근원적인 기쁨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데서 나오는 기쁨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역사는 파멸이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여호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면/ 근원적인 기쁨으로 항상 즐겁고 행복한 가정이 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복의 열쇠를 쥐고 계시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에 진정한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온 가족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은 구원의 기쁨을 누린다. 온 가족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은 은혜가 넘친다. 바로 거기에 행복이 있다. 여러분의 가정이 그런 가정이 되기를 축원한다.
둘째로 현재의 형편에 연연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에 행복이 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도 있다. 우리의 형편이 좋지 못할 때도 있다. 때로는 상처를 받아서 아픈 가슴을 움켜 쥘 때도 있다. 때로는 실패의 쓰라림을 맛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처지에서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 결과도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물질 때문에 항상 불평과 불만을 쏟아 놓는다. 어떤 사람은 죽는 날까지 용서하지 못해서 마음이 상하고, 고통스러워하고, 평안을 누리지 못한다. 물론 사람마다 가정마다 부족한 것이 있고, 고통스런 일들이 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들은/ 잊을 것은 빨리 잊고, 용서할 것은 빨리 용서하고, 포기할 것은 빨리 포기할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평안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혼자 고민하고, 아파하고, 불평해봐야 무엇하나 변하는 것이 없다. 나 마음만 뒤숭숭하고/ 내 몸만 상하고/ 내 생활만 엉망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있는 것으로 감사하시기 바란다. 삶의 터전은 잃었지만 가족이 있고 건강 있음에, 건강은 잃었어도 가정이 있고 자녀가 있음에 감사하시기 바란다. 그러면 즐거운 마음으로 항상 잔치하는 가정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다. 환경은 내가 고민한다고 바뀌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받아들이고, 감사하고 나갈 때/ 힘을 주셔서 내가 그 환경을 이길 수 있게 해 주신다.
우리나라 명견 중에 진돗개가 있다. 진도라는 섬에서 서식하는 이 개는 아주 영리하고 날렵하다. 그런데 진돗개가 그렇게 된 데는 환경의 영향이 컸다. 고기잡이와 농사로 생계를 유지했던 옛날 진도의 주민들은 생활이 극도로 어려워서 개에게까지 먹을 것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진도의 개들은 스스로 먹이를 해결해야 했다. 진도의 개들이 먹이로 삼은 것은 잠시 쉬고 있는 갈매기였다. “너는 정녕 나를 잊었나”하는 부산 갈매기가 아니라 진도 갈매기다. 개가 갈매기를 잡아먹기 위해서는 고도의 꾀가 필요하고, 날렵한 동작이 필요했다. 또한 갈매기를 놓치면 굶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한 번 잡은 먹이는 결코 놓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몸놀림이 잽싸고/ 지능이 발달되고/ 한 번 물면 끝까지 놓지 않는/ 끈기가 생성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려운 환경이 그런 명견을 만들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난하고 불행한 환경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도 하고 성공시키기도 하고/ 인생을 승리하게 만들기도 한다. 문제는 그런 환경에 대하여서 어떤 마음자세를 가지느냐에 달려있다. 우리의 가정에도 풍랑이 있을 수 있다. 사업에도, 나라에도 풍랑이 일어날 수 있다. 우리가 때때로 여호와 하나님을 잊고 살아갈 때, 여호와 하나님을 다시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풍랑을 주실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보인다. 기도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보인다. 기도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보이고 선한 계획이 보인다. 그러면 풍랑가운데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근심 대신 희망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므로 항상 잔치하는 삶, 잔치하는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셋째로 행복은 가족들이 서로 사랑하는 데 있다. 사랑은 실패도 손해도 없다. 사랑은 오직 성공이요, 기쁨이요, 행복이다. 서로 사랑할 때 가정은 행복한 곳이 된다. 사랑은 베푼 만큼 기쁨과 행복이 되어서 돌아온다. 여러분이 하루하루를 살면서 사랑 받은 일이 없다면 여러분이 사랑에 인색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베푸는 만큼 돌아온다. 사랑은 정확하다. 사랑은 조건이 아니라 관계다. 남편과 아내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자식이 공부를 잘하고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오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고집 센 아내” “콧대 센 남편” “야생마 같은 며느리” 길들여서 손아귀에 넣으려고 하지만 위험한 생각이다. 그런다고 길들여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변화는 사랑에서 온다. 사랑해서 손해 보는 일은 없다. 사랑해서 실패하는 일도 없다. 그러므로 먼저 사랑을 베푸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자신을 희생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해 보시기 바란다. 그러면 천국 문이 열릴 것이다. 그러면 천국이 여러분의 눈앞에 화려하게 펼쳐질 것이다. 사랑이 실천되는 현장이 바로 천국인 것이다.
성도여러분!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고 체험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사랑을 가정에서 실천해 보시기 바란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선교를 했던 슈바이쳐 박사는 “무엇이 최대의 이단이냐 최대의 이단은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아프리카 흑인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내가 어찌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할 수 있느냐”라고 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과 가까이 교제하는 방법은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서로 사랑함으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갈 때/ 그 사랑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과 가정에 역사해 주실 것이다. 내가 베푸는 사랑이 크면/ 여호와 하나님 역시 큰 사랑으로 나에게 역사하실 것이다.
성도여러분!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마음이 즐거우므로 늘 잔치하는 삶, 잔치하는 가정이 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사랑을 나누시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그 자리가 기쁨의 자리요, 행복의 자리요, 잔치자리이다. 행복의 공식은 여호와를 경외함과 감사와 사랑이다. 여러분의 삶속에서 이 공식을 사용하시기 바란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삶과 가정에 항상 잔치하는 기쁨과 행복이 넘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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