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청년은 긍정한다
본문
나이는 청년이어도 청년답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이는 청년이 아니지만 청년다운 사람이 있습니다. 청년이든지, 청년이 아니든지 나이와는 상관없이 청년답게 사는 사람이 오늘의 시대와 역사를 이끌어갑니다. 과연 나는 청년답게 살고 있습니까?
성경에서 청년다운 사람, 한 사람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함이 없이 여호수아를 꼽습니다. 출애굽 이후 가나안 땅 정복까지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읽어보면, 여호수아야말로 진정한 청년이었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 사실을 잘 입증해줍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지파별로 12명의 정탐군을 파견했습니다. 그 정탐꾼들이 정탐을 하고 돌아와서 보고를 하는데, 10명은 <가나안 땅 정복 불가>라는 부정적인 보고를 했고, 2명은 <가나안 땅 정복 가능>이라는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여기 2명은 여호수아와 갈렙이었습니다. 이런 보고를 들었을 때, 백성들의 반응은 당연히 대다수 쪽으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백성들은 중의 10명의 정탐꾼을 보고를 듣고 크게 낙담해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 것은 곧 여호와를 원망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원망!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 중 하나인데…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크게 진노하셔서, 20세 이상된 자로 여호와를 원망한 자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게 하시고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시겠다고 엄중히 말씀하셨습니다. 29-30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리고 이후 40년간 그 자녀들이 광야에서 방황하게 될 것이라고 추가로 말씀하셨습니다. 33-34절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참 무서운 여호와 하나님, 두려운 여호와 하나님 아닙니까? 부정적인 보고를 듣고 단지 원망한 것 뿐인데… 정말 이 말씀대로, 그대로 되었습니다. 특히 악평했던 10명의 정탐꾼들은 다 죽고, 2명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생존하게 되었습니다(37-38절).
본문을 볼 때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만약 여호수아였다면, 내가 만약 갈렙이었다면, 나도 그들처럼 긍정적인 보고를 할 수 있었을까? 당시 가나안 땅은 실제적으로 이스라엘이 정복하기가 어려운 땅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거주하는 족속들은 정착민이고 키도 장대하고 군대조직도 잘 되어 있는 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목민의 입장이고 긴 광야생활로 인해서 군대조직도 허술한 상황이었습니다. 거인과 메뚜기떼의 대결… 이런 상황에서 가나안 땅을 정복한다는 것은 사실상 대단히 어려운 일이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인간적인 생각을 하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처럼 보고할 수 밖에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민 13:30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이렇게 긍정적인 보고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비록 상황은 불리하지만 우리에게는 출애굽의 여호와 하나님, 곧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여호와 하나님, 모세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부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여호수아와 갈렙은 긍정했고, 마침내 그 긍정의 힘으로 후에 가나안 땅 정복의 대역사를 이루어냈습니다. 만약 그 때 여호수아와 갈렙이 없었더라면,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 정복은 정말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를 생각하면서, 성경에서는 청년의 정의를 이렇게 내립니다. <청년이란 긍정하는 사람이다. > 오늘 제목처럼, 청년은 긍정합니다. <청년>이란 단어에 여러분 이름을 넣어서 읽어봅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이 긍정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서울중앙교회 교우들이, 특히 청년들이 긍정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 정복,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복을 풍성히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긍정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긍정한다는 것은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1. 약속(비전)을 믿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통해서 들은, 가나안 땅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비전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면서 그 땅에 있는 족속들이 비록 강대하게 보여도, 그것에 대해서 크게 우려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분명히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약속, 곧 비전이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이지, 정한 때가 되면 꼭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여호수아는 그 약속, 곧 비전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은 대로 행동해서 그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삼은 자에게 반드시 약속, 곧 비전을 주십니다. 긍정하는 사람은 그 약속, 곧 비전을 분명히 믿습니다.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확신합니다. 비록 불가능해보이는 약속이라도... 과연 지금 나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약속, 곧 비전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까? 긍정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약속을 믿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기 힘든 상황이 닥쳐도 끝까지 믿고 확신합니다.
2. 희망을 품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계속 희망을 품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할 때, 어쩌면 여호수아에게도 다른 10명의 정탐꾼들의 경우처럼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모세를 원망했던 백성들처럼 원망하고픈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같은 사람인데 왜 그런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여호수아에게 부정적인 생각이 나지 않게 된 것은,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은 것은, 그의 마음 속에 언제나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상황이 불리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겨낼 수 있다. >, <우리에게도 좋은 날이 있을 것이다. >... 그가 희망을 품고 있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희망을 현실로 이루셨습니다.
과연 지금 나는 희망을 품고 있습니까? 긍정하는 사람은 결코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장영희 교수가 지난 9일, 57세로 별세했습니다. 서강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면서 좋은 수필들을 많이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사람입니다. 저도 어느 학교 졸업식에서 그의 격려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에게는 <희망전도사>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본래 소아마비여서 어렸을 때부터 목발을 사용해야 했고, 유방암과 척추암이라는 힘든 투병생활을 이겨냈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암환자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밝은 얼굴을 하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해주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을 읽고 용기와 힘을 얻었습니다.
몇 가지 글만 인용해보겠습니다. 세 번째 암이 간까지 전이된 것을 통보받고 쓴 글입니다. <신은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 넘어뜨린다. 나 역시 넘어질 때마다 어떻게 다시 일어서야 할 지를 생각한다. >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맞다, 지난 3년간 내가 살아온 나날은 어쩌면 기적인지 모른다. 힘들어서, 아파서, 너무 짐이 무거워서 어떻게 살까 늘 노심초사했고 고통의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내공의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 갈 것이다. >
생전에 자신이 운명한 후의 희망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장례식장에 제자들이 붂적였으면 좋겠다. >
운명 며칠 전, 혼미한 정신으로 3일동안 혼신을 다해 어머니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되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세상 더 보고 오래오래 더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 >
그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노래했습니다. 그는 또한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장례식에서 고생할 대학원 제자들을 생각해서 150만원을 가족들에게 남겼다고 합니다. <내가 죽은 후 장례식장에 나와 일을 도울 대학원 제자들의 고생이 뻔히 보인다. 많이 미안하다. 제자들이 고생이 많을 테니 맛있는 것을 사주고 격려하라. > 부탁과 함께... 보통 사람 같았으면 벌써 수없이 좌절하고 절망했을텐데, 장영희 교수는 끝까지 희망을 품었고, 그 희망이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희망과 힘을 주었습니다.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황은 절망적이어도 끝까지 희망을 품고 있으면, 그 희망은 마침내 위대한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그 희망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이 기적을 이루십니다.
3. 도전 그리고 또 도전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를 볼 때마다 생각나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도전>이라는 단어... 여호수아는 긍정적인 보고를 한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죽고난 후에, 가나안 땅 정복이라는 미션을 받고 긍정의 사람답게 그 미션에 도전했습니다. 사실상 그 미션을 수행하려면 수많은 난관, 장벽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여호수아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계심을 믿고 도전하고 또 도전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서 여리고성 정복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으로 가나안 땅을 다 정복하기까지, 여호수아는 계속 도전했습니다. 여호수아에 보면, 여호수아가 도전을 포기했다는 구절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긍정하는 사람에게는 오직 도전만이 있을 뿐입니다. 물론 여전히 앞에 한계가 있고, 장벽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하고 또 도전합니다. 이렇게 도전하는 자에게만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그래서 꿈을 이루게 하십니다.
지난 금요일 어느 방송에서 다큐로 사랑이란 주제를 다루면서, 김세진이란 한 어린이를 소개했습니다. 로봇어린이, 의족으로 걷는 어린이... 아주 어렸을 적 한 가정에 입양된 어린이인데, 그는 선천적으로 무릎 아래 다리가 없고 손 하나도 손가락이 없는 장애인이었습니다. 만약 내가 그 아이의 입장이었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 어린아이를 입양한 엄마는 그 아이에게 도전해볼 수 있는 모든 것에 도전해보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도전하게 한 것이 수영이었습니다. 수영 역시 불가능한 종목이었지만... 장애인이기 때문에 겪는 수많은 장벽들을 넘고 또 넘어서서, 마침내 유소년으로 장애인대표선수로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혹독한 훈련들을 견디어내야 했고, 그리고 온갖 모욕적인 말도 수없이 들었습니다. <너같은 장애인이 수영하면 수영장이 오염되니 들어오지 마라>...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이든지, 그 어떤 모욕도 다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함부로 때리거나 할 때는 정말 속이 상해서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세진이도 어떤 때도 하도 견디기 힘들어서 이렇게 기도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저도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여호와 하나님, 저에게도 다리를 주세요. >... 그렇지만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도전하고 또 도전해서 꿈을 이루어냈습니다.
청년은 긍정합니다. 운명을 탓하고, 신세 한탄하고, 사람 원망하고, 부모 원망하고, 능력 탓하고, 핸디캡 탓하고, 학벌 탓하고, 질병 한탄하고, 세상 탓하고, 교회 원망하고, 여호와 하나님 원망하는 사람은 진정한 청년이 아닙니다. 청년은 아무리 열악한 환경 속에 있어도, 그 어떤 경우에도 <된다>, <할 수 있다>, <Yes> 마인드를 가지고 삽니다. 비록 부정적인 장벽들이 가로막고 서 있을지라도, 그럴수록 긍정의 날개를 더욱 더 활짝 펴고 미래를 향해서 힘차게 비상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줄 믿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믿고 청년은 긍정합니다. 긍정의 힘으로 자신을 변화시키고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사람! 긍정의 힘으로 나라의 역사, 세계 역사를 변화시키는 사람! 그 사람이 진정한 청년입니다. 긍정하는 청년 바울이 말씀했습니다.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세운, 제 인생의 3가지 가치관이 있습니다. <성결, 노력, 긍정>... 물론 이렇게 살지 못한 때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가치들을 실현하고자 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그로 인해서 제 삶이 참 행복했습니다. 특히 긍정의 가치관은 제 인생의 큰 힘이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긍정이 이끄는 삶을 살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청년답게, 예수님을 믿는 청년답게 언제 어느 곳에서나 긍정하는 사람이 되셔서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꿈을 이루어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에서 청년다운 사람, 한 사람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함이 없이 여호수아를 꼽습니다. 출애굽 이후 가나안 땅 정복까지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읽어보면, 여호수아야말로 진정한 청년이었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 사실을 잘 입증해줍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지파별로 12명의 정탐군을 파견했습니다. 그 정탐꾼들이 정탐을 하고 돌아와서 보고를 하는데, 10명은 <가나안 땅 정복 불가>라는 부정적인 보고를 했고, 2명은 <가나안 땅 정복 가능>이라는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여기 2명은 여호수아와 갈렙이었습니다. 이런 보고를 들었을 때, 백성들의 반응은 당연히 대다수 쪽으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백성들은 중의 10명의 정탐꾼을 보고를 듣고 크게 낙담해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 것은 곧 여호와를 원망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원망!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 중 하나인데…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크게 진노하셔서, 20세 이상된 자로 여호와를 원망한 자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게 하시고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시겠다고 엄중히 말씀하셨습니다. 29-30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리고 이후 40년간 그 자녀들이 광야에서 방황하게 될 것이라고 추가로 말씀하셨습니다. 33-34절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참 무서운 여호와 하나님, 두려운 여호와 하나님 아닙니까? 부정적인 보고를 듣고 단지 원망한 것 뿐인데… 정말 이 말씀대로, 그대로 되었습니다. 특히 악평했던 10명의 정탐꾼들은 다 죽고, 2명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생존하게 되었습니다(37-38절).
본문을 볼 때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만약 여호수아였다면, 내가 만약 갈렙이었다면, 나도 그들처럼 긍정적인 보고를 할 수 있었을까? 당시 가나안 땅은 실제적으로 이스라엘이 정복하기가 어려운 땅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거주하는 족속들은 정착민이고 키도 장대하고 군대조직도 잘 되어 있는 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목민의 입장이고 긴 광야생활로 인해서 군대조직도 허술한 상황이었습니다. 거인과 메뚜기떼의 대결… 이런 상황에서 가나안 땅을 정복한다는 것은 사실상 대단히 어려운 일이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인간적인 생각을 하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처럼 보고할 수 밖에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민 13:30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이렇게 긍정적인 보고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비록 상황은 불리하지만 우리에게는 출애굽의 여호와 하나님, 곧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여호와 하나님, 모세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부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여호수아와 갈렙은 긍정했고, 마침내 그 긍정의 힘으로 후에 가나안 땅 정복의 대역사를 이루어냈습니다. 만약 그 때 여호수아와 갈렙이 없었더라면,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 정복은 정말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를 생각하면서, 성경에서는 청년의 정의를 이렇게 내립니다. <청년이란 긍정하는 사람이다. > 오늘 제목처럼, 청년은 긍정합니다. <청년>이란 단어에 여러분 이름을 넣어서 읽어봅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이 긍정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서울중앙교회 교우들이, 특히 청년들이 긍정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 정복,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복을 풍성히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긍정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긍정한다는 것은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1. 약속(비전)을 믿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통해서 들은, 가나안 땅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비전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면서 그 땅에 있는 족속들이 비록 강대하게 보여도, 그것에 대해서 크게 우려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분명히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약속, 곧 비전이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이지, 정한 때가 되면 꼭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여호수아는 그 약속, 곧 비전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은 대로 행동해서 그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삼은 자에게 반드시 약속, 곧 비전을 주십니다. 긍정하는 사람은 그 약속, 곧 비전을 분명히 믿습니다.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확신합니다. 비록 불가능해보이는 약속이라도... 과연 지금 나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약속, 곧 비전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까? 긍정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약속을 믿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기 힘든 상황이 닥쳐도 끝까지 믿고 확신합니다.
2. 희망을 품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계속 희망을 품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할 때, 어쩌면 여호수아에게도 다른 10명의 정탐꾼들의 경우처럼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모세를 원망했던 백성들처럼 원망하고픈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같은 사람인데 왜 그런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여호수아에게 부정적인 생각이 나지 않게 된 것은,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은 것은, 그의 마음 속에 언제나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상황이 불리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겨낼 수 있다. >, <우리에게도 좋은 날이 있을 것이다. >... 그가 희망을 품고 있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희망을 현실로 이루셨습니다.
과연 지금 나는 희망을 품고 있습니까? 긍정하는 사람은 결코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장영희 교수가 지난 9일, 57세로 별세했습니다. 서강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면서 좋은 수필들을 많이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사람입니다. 저도 어느 학교 졸업식에서 그의 격려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에게는 <희망전도사>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본래 소아마비여서 어렸을 때부터 목발을 사용해야 했고, 유방암과 척추암이라는 힘든 투병생활을 이겨냈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암환자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밝은 얼굴을 하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해주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을 읽고 용기와 힘을 얻었습니다.
몇 가지 글만 인용해보겠습니다. 세 번째 암이 간까지 전이된 것을 통보받고 쓴 글입니다. <신은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 넘어뜨린다. 나 역시 넘어질 때마다 어떻게 다시 일어서야 할 지를 생각한다. >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맞다, 지난 3년간 내가 살아온 나날은 어쩌면 기적인지 모른다. 힘들어서, 아파서, 너무 짐이 무거워서 어떻게 살까 늘 노심초사했고 고통의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내공의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 갈 것이다. >
생전에 자신이 운명한 후의 희망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장례식장에 제자들이 붂적였으면 좋겠다. >
운명 며칠 전, 혼미한 정신으로 3일동안 혼신을 다해 어머니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되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세상 더 보고 오래오래 더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 >
그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노래했습니다. 그는 또한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장례식에서 고생할 대학원 제자들을 생각해서 150만원을 가족들에게 남겼다고 합니다. <내가 죽은 후 장례식장에 나와 일을 도울 대학원 제자들의 고생이 뻔히 보인다. 많이 미안하다. 제자들이 고생이 많을 테니 맛있는 것을 사주고 격려하라. > 부탁과 함께... 보통 사람 같았으면 벌써 수없이 좌절하고 절망했을텐데, 장영희 교수는 끝까지 희망을 품었고, 그 희망이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희망과 힘을 주었습니다.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황은 절망적이어도 끝까지 희망을 품고 있으면, 그 희망은 마침내 위대한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그 희망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이 기적을 이루십니다.
3. 도전 그리고 또 도전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를 볼 때마다 생각나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도전>이라는 단어... 여호수아는 긍정적인 보고를 한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죽고난 후에, 가나안 땅 정복이라는 미션을 받고 긍정의 사람답게 그 미션에 도전했습니다. 사실상 그 미션을 수행하려면 수많은 난관, 장벽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여호수아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계심을 믿고 도전하고 또 도전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서 여리고성 정복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으로 가나안 땅을 다 정복하기까지, 여호수아는 계속 도전했습니다. 여호수아에 보면, 여호수아가 도전을 포기했다는 구절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긍정하는 사람에게는 오직 도전만이 있을 뿐입니다. 물론 여전히 앞에 한계가 있고, 장벽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하고 또 도전합니다. 이렇게 도전하는 자에게만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그래서 꿈을 이루게 하십니다.
지난 금요일 어느 방송에서 다큐로 사랑이란 주제를 다루면서, 김세진이란 한 어린이를 소개했습니다. 로봇어린이, 의족으로 걷는 어린이... 아주 어렸을 적 한 가정에 입양된 어린이인데, 그는 선천적으로 무릎 아래 다리가 없고 손 하나도 손가락이 없는 장애인이었습니다. 만약 내가 그 아이의 입장이었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 어린아이를 입양한 엄마는 그 아이에게 도전해볼 수 있는 모든 것에 도전해보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도전하게 한 것이 수영이었습니다. 수영 역시 불가능한 종목이었지만... 장애인이기 때문에 겪는 수많은 장벽들을 넘고 또 넘어서서, 마침내 유소년으로 장애인대표선수로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혹독한 훈련들을 견디어내야 했고, 그리고 온갖 모욕적인 말도 수없이 들었습니다. <너같은 장애인이 수영하면 수영장이 오염되니 들어오지 마라>...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이든지, 그 어떤 모욕도 다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함부로 때리거나 할 때는 정말 속이 상해서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세진이도 어떤 때도 하도 견디기 힘들어서 이렇게 기도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저도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여호와 하나님, 저에게도 다리를 주세요. >... 그렇지만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도전하고 또 도전해서 꿈을 이루어냈습니다.
청년은 긍정합니다. 운명을 탓하고, 신세 한탄하고, 사람 원망하고, 부모 원망하고, 능력 탓하고, 핸디캡 탓하고, 학벌 탓하고, 질병 한탄하고, 세상 탓하고, 교회 원망하고, 여호와 하나님 원망하는 사람은 진정한 청년이 아닙니다. 청년은 아무리 열악한 환경 속에 있어도, 그 어떤 경우에도 <된다>, <할 수 있다>, <Yes> 마인드를 가지고 삽니다. 비록 부정적인 장벽들이 가로막고 서 있을지라도, 그럴수록 긍정의 날개를 더욱 더 활짝 펴고 미래를 향해서 힘차게 비상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줄 믿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믿고 청년은 긍정합니다. 긍정의 힘으로 자신을 변화시키고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사람! 긍정의 힘으로 나라의 역사, 세계 역사를 변화시키는 사람! 그 사람이 진정한 청년입니다. 긍정하는 청년 바울이 말씀했습니다.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세운, 제 인생의 3가지 가치관이 있습니다. <성결, 노력, 긍정>... 물론 이렇게 살지 못한 때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가치들을 실현하고자 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그로 인해서 제 삶이 참 행복했습니다. 특히 긍정의 가치관은 제 인생의 큰 힘이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긍정이 이끄는 삶을 살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청년답게, 예수님을 믿는 청년답게 언제 어느 곳에서나 긍정하는 사람이 되셔서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꿈을 이루어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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