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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구원(救援)의 열린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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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이 쓴 위대한 신학서이며 교리서인 로마서를 통해 구구절절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도리를 함께 생각해 왔습니다. 실상은 로마서의 핵심 사상은 이미 13장을 끝으로 다 나온 셈입니다. 그런데 로마서는 14장, 15장, 16장으로 계속됩니다.

 그런데 만일 로마서가 13장으로 끝맺음을 했다면, 너무나 완벽하고 철저한 신학교리에 대해서는 만점이지만 일반인으로서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너무나 거룩하고 신적(神的)인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14장부터 마지막까지는 실상 사도 바울의 인간적인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보면서 로마서에 대한 부드럽고 친근한 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편지는 이 글을 받는 독자들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보면서 그들을 보살피는 어머니 같은 심정으로 서서히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이 본문을 읽으면서 “구원의 열린 문” 이란 제목을 뽑았습니다. 그 이유는 덕스런 성도들의 생활을 크게 요약해 본다면 감사와 찬송은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일 것입니다. 신약성경도 구약성경도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는,

 반드시 찬송이 있었고 감사가 뒤 따랐습니다. 특히 열 문둥이가 고침을 받았으나 오직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께 돌아 와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했습니다. "큰 소리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눅17:15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감사로 이어져야 하고, 찬송으로 화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와 찬송과 영광은 따로 따로 생각할 것이 아니고 그것은 하나로 봐야 할 것입니다. 감사와 찬송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대한 반응이며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와 찬송이 없이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영광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은 믿음뿐 아니라 구체적인 걸음걸이이며 삶의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감사와 찬송의 삶이 있을 때 덕스런 성도의 생활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에서는 아주 분명하게 쓰고 있습니다.

 첫째로 참으로 믿음이 강한 자는 연약한 자의 약점을 감당하면서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1절 말씀을 보면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이미 앞장에서 살펴본 대로 강한 자는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으나 약한 자는 채소만 먹는다고 했습니다. 이때 약한 자는 죄나 악이 많다는 뜻이 아니고 믿음이 약해서 음식에 대해서 지나치게 민감하거나 잘못된 편견(偏見)을 갖는 경우입니다. 이럴 때 먼저 믿었다고 해서 믿음이 약한 자를 업신여기거나 핀잔을 주면, 여기서 평화가 깨어집니다.

 먼저 믿는 사람은 나중 믿는 사람을 도와주고 격려해 줄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자기를 지나치게 비하시켜서 처음부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공연히 신앙의 우월감을 갖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먼저 믿는 사람은 처음 믿는 사람들의 짐을 대신 져 주어야 합니다. 신앙이란 자기만족과 자기만을 기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만을 기쁘게 하는 사람은 감사도 찬송도 영광도 여호와 하나님께 돌리기가 어렵습니다.

 먼저는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또한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려고 할 때, 비로소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 신앙의 문제점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문제입니다. 신앙생활에서까지 남이야 죽든 말든 내 알 바가 아니고,

 나만 편하고 나만 즐거우면 된다는 사고방식은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떤 것은 그것이 꼭 죄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고 해도 한편으로 성도로서 덕을 세우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좀 더 이 문제를 살피기 위해서 2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웃을 기쁘게 한다는 전제 아래서 악을 도모하거나 덕스럽지 못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0:23-24절에도 아주 흡사한 말씀을 했습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좀 더 깊이 음미해 보면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니고 자기 하고 싶다고 무엇

 이든지 다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나 행동이 모든 사람에게 덕을 끼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봅시다. 어떤 사람이 신앙의 연륜이 깊고 성경을 많이 안다고 해도, 불신자가 봐도 상식이하의 말을 한다든지, 다른 사람을 멸시한다든지,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을 한다든지, 그의 행동이 크리스찬답지 못한 일을 했을 때 결국은 교회에 욕을 돌리고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가리우는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 성도들은 산 위에 있는 동네처럼 숨을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백일천하에 드러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고 이웃을 기쁘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 이유는 바로 3절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낮고 낮은 땅 위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우리들을 위해서 희생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좀 구체적으로 이웃을 위한 삶이란 무엇이며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이란 결국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우리가 건강하다면 약한 자들의 수고를 감당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건강을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건강을 통해서 선하게 사용하도록 주신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약한 자의 일을 감당해 주고 협력해야 합니다. 그 건강을 가지고 폭행과 음행과 헛된 놀음에 시간과 건강을 버리는 것은 사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건강을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건강을 주신 것은 그 건강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건강은 위로는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귀한 밑천이요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건강할 때 그 건강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면,

 건강이 약해질 때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또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은 선천적으로 약한 기질을 가진 사람을 도와주고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꼭 같이 신앙생활을 하지만 우리는 모두 꼭 같지 않습니다. 교역자가 볼 때 어떤 사람은 혼자 놓아두어도

 넘어졌다가 툭툭 털고 일어서는 사람들이 있지만 어떤 사람은 넘어졌을 때 사랑으로 일으켜 주어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대범한 사람도 있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조그마한 자극에도 쉽게 낙심하거나 쉽게 토라지고 쉽게 화를 내기도 합니다.

 우선 신앙인이라고 해도 개인적으로 다 성격이 다르고 체질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신앙이나 행동이 자기와 다르다고 해서 매도하거나 멀리 해서는 안 됩니다. 서로가 이해하고 용서하고 감싸주어야 합니다.

 대학생은 대학생 같은 소리를 하고 유치원생은 유치원생 같은 말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되었으니 만큼,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서로가 받아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중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차이가 교회 안에서 문제가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으면 되고, 어려워도 비굴하지 않으면서 주신 것도 여호와시고, 가져가신 이도 여호와라는 사실을 믿고 감사하면 됩니다.

 우리에게 물질을 주신 것도 나를 위해서 쓰라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쓰여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가 꼭 같지는 않습니다. 육체적으로는 건강하면서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도 있고, 지식은 많으나 물질이 없는 사람도 있고 물질은 있으나 선을 행할 일감이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럴 때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둘째는 한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면서 우리의 소망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 찬양과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 찬송, 영광을 돌리려면 우선 한 마음과 한 뜻과 한 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5, 6절의 골격입니다.

 우리가 교회생활을 할 때 억지로 연합하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한 마음을 가지고 한 고백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고 연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는 마음이 하나 되도록 노력해야만 합니다.

 부부간에도 마음이 하나 되도록 해야 하고, 우리 각 전도 회나 부서에서 서로 하나 되는 길은 마음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46절에 보면 초대교회의 부흥의 역사도 마음을 같이하며 기도에 힘쓸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은 말대로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선천적으로 마음이 다 다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마음을 같이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 각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는 일입니다.

 그래서 빌2:5절에서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만약 우리 각 사람이 예수의 마음을 갖는다면 예수의 마음이 우리의 공통분모가 되어서 동질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마음으로 주를 섬길 수가 있습니다.

 한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성경으로 소망을 가지며 그 말씀을 믿을 때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 성령께서 그 말씀을 깨닫도록 합니다. 불교에서는 깨달으려고 수많은 고행을 통해서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 깨닫는 것도 온전한 깨달음도 아니고 그저 자율주의적인 것이고 인본주의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성령의 역사로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인간 자신의 죄악을 알고 구속의 진리를 알게 되었으니 어찌 찬양하지 않으며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어찌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와 같은 진리를 깨달을 때 그저 감사할 뿐이며 찬송할 뿐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너무 어렵고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수가 성 사마리아 여인이 신분이 높거나 학벌이 높아서 메시야를 찬양한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났을 때 물동이를 버리고 메시야를 보았다고 찬양하고 외쳤습니다. 밤에 들에서 양떼를 치는 목자들은 소박한 천민들이었으나 그들은 메시야의 탄생을 찬양하는 특권을 가졌습니다.

 이 본문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이방인도 유대인도 모두가 긍휼을 입었으며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한다는 것입니다(15:9절). 감사와 찬송은 13절의 말씀처럼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이시기 때문입니다.

 소망의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기에 모든 기쁨과 평강이 넘치고 믿음 안에서 충만한 삶을 살며 우리 속에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그것은 우리의 참 소망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송하는데서 시작될 줄 믿습니다.

 구원의 문은 열려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구원의 열린 문으로 찬양과 경배와 감사를 드리면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구원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누구도 이 문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 주위에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무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여 많은 사람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전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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