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하나님 나라에는?
본문
오늘 이 시간에는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지난 단락에서 생각해 본대로 로마서 14장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성도가 어떻게 방종하지 않고 양심의 자유를 누리고 살 것인가에 대해서 설명하였습니다.
양심의 자유란 성경에서 문자적으로 뚜렷하게 금하거나 허용하는 어떤 규칙도 없고, 또 신앙생활에 절대적 영향을 줄만한 것은 아니로되 양심상으로, 거리끼는 문제(問題)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自然)히 이런 문제(問題)를 가지고
의견(意見)이 분분(忿憤)한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죄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때에 성경의 구체적 내용이 없는 경우에도 어떤 원칙(原則)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지난 단락에서 살펴본 대로 회상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나의 행동이 성경 교훈 전체의 정신에 금하는 것이 아닌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둘째는 나의 행동이 본질적으로 죄가 아닐 찌라도 죄의 유혹이 되게 하고 경건한 삶에 지장을 주는 것이 아닌가를 물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카드놀이는 죄는 아니라 할 찌라도 절제하기 어렵고 경건한 삶에 막대한 지장을 주는 것입니다. 셋째는 나의 행동이 본질적으로 죄는 아니라고 해도 믿음이 약한 형제자매들에게 낙심케 만들어서 믿음에 상처를 내지 않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진리가 지난 주일에 생각했던 말씀의 골자라고 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 13절에서 23절까지는 앞서의 말씀과 연결된 것입니다. 이 본문의 핵심은 신앙(信仰)의 견해차(見害差)가 있을 수 있으니 만큼, 이런 경우에는 사랑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세상나라의 원리가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가 통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 또 교회는 낮은 자가 높아지고 높은 자가 낮아지는 곳이며, 세상나라에서는 안 되는 것을 사랑으로 극복되는 곳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에 중심을 두지 않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로마교회에서는 믿음이 강한 사람은 고기를 먹고, 믿음이 약한 사람은 고기를 안 먹고 채식만 한다고 해서 토론이 분분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부질없는 논쟁으로 교회가 시험에 들 때가 있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죄 될 것도 없고 고기를 안 먹는다고 더 좋은 신앙을 갖는 것도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중심은 다른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어떤 규율 자체에 매여서 양심의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은 서로 서로가 영향을 끼치는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13절에 보면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비록 내 행동에 죄 될 것은 없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마음에 걸림돌이 되거나 함정에 빠지게
할 수도 있고 내가 한 일이 자신이 생각해 볼 때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상대방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길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경우, 하나의 작은 행동이 큰 파장을 일으키므로 삼가하고 조심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런 문제가 로마교회 뿐 아니라 고린도 교회에서도 똑같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8:10-12절에 말하기를 "지식이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네 형제라 이같이 너희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기 먹고 안 먹고를 양심의 문제와 결부시키던 시기는 신약성경이 쓰여 질 때 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문제는 없다고 해도 이와 비슷한 문제가 많을 줄 압니다. 신앙의 외적 문제로 형제를 판단해도 안 되지만 자기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고 다른 사람의 신앙에 상처를 주는 것도 문제입니다. 교회에도 역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만큼 별별 일이 다 있습니다. 그리고 견해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인 것을 알고, 나에게 주어진 특권(特權)이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절제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막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또 자기가 좋아한다고 남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남을 판단(判斷)하는 기준이 먹고 마시는 데만 두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둘째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17절).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적인 규율은 성령 안에서의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일은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일은 자신의 욕심을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일은 자기 유익과 자기 명예를 위하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의 생활이 기본적인 골격입니다. 성령 안에서 사는 것은 곧 성령 충만한 삶이며, 성령 안에서 사는 것은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서 사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패스포드는 성령 안에서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고 했습니다. (갈5:22절). 한국 교회 안에서는 성령 안에서의 삶을 퍽 오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산다고 하면서 아주 이상스런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환각이나 환상으로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면서 마치 성령 충만한 삶의 표현인 줄 알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본대로 성령의 열매는 참으로 아름답고 평온하며 정상적인 삶입니다.
성령 안에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참을 줄도 알고 온유하면서도 절제할 줄도 알고 주의 몸 된 교회에 충성할 줄 아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 확장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일은 결국 성령 안에 살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특히 본문에서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의라는 것은 성도가 성령 안에 살며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법을 순종하고 사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의(義)의 관계입니다. 그 의는 곧 믿음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사람을 보면 늘 마음에 기쁨이 있고 평화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면, 내 마음 속에 기쁨과 평화가 있습니다. 내 마음 속이 늘 흔들리고 평화가 없는 것은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자기에다 다른 사람의 성격이나 신앙 모두를 맞추려고 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용납하고 감싸주어야 합니다. 어린 신앙이라고 나무라지 말고, 장성한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너무 큰 짐을 지어서 견디지 못하도록 해서도 안 됩니다.
인간은 다 연약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힘을 얻어야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셋째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 특성은 먼저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고 또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8절에 보면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성도를 가리켜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라고 썼습니다. 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섬기는 자로 오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구속의 은혜를 받았은즉 주를 섬기고 교회를 섬기며 이웃을 섬기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섬김의 삶을 사는 중에 원리는 먼저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어떤 의미에서 우선순위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삶의 우선순위로 두는 것인가
또는 교회에서 신앙생활 할 때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신앙의 진실 여부가 가려지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교회생활을 잘 한다고 하면서도 자기를 항시 우선으로 생각하거나 쾌락을 우선으로 생각하여 친구와의 교제를 우선으로 생각하거나,
물질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성경은 친구 사귀는 것을 죄로 생각지 않고 이 세상에서 경제생활을 하는 것이 문제 될 것이 없음을 말합니다. 인생이 땅위에 살면서 쾌락을 즐길 수도 있고 문화적인 삶을 사는 것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다만 가장 큰 문제는 우선순위가 뒤 바뀐 것을 문제 삼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던지 간에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이 일을 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인가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자기 좋아하는 대로 무엇이든지 결정하면 그것은 참 신앙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가정에서도 아내가 음식을 만들 때 자기가 먹고 싶은 대로 요리를 한다면 그것은 남편의 사랑을 간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내는 먼저 남편의 식성을 알고 그 남편이 좋아하는 것을 할 때 더 큰사랑을 받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신앙의 중심이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되는 것을 먼저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마6:2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고전10: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혜로운 아내가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듯이 지혜로운 성도는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 기뻐하시는 것을 삶의 우선순위에 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입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면, 다른 형제(兄弟)와 자매들에게 욕을 먹고, 마음에 상처(傷處)를 입혀도 좋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본문에서 말한 대로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먼저 해야 하지만,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종종 보는 일이지만 아주 믿음이 좋은 성도 중에서 그만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우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경우를 많이 보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信仰)은 먼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對神) 그리고 또한 인간과의 관계도(對人) 옳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으로 좇아 행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가지고 있어야 합니다(22절). 그러니만큼, "믿음으로 좇아하지 아니한 모든 것이 죄"라고 했습니다. (23절).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의 나라입니다.
교회는 믿음 때문에 이루어진 공동체입니다. 믿음이 없이 무엇을 하려는 것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갈 수도 없고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도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이라는 법을 가진 나라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아닙니다. 부족하지만 믿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구원의 축복을 받습니다.
거지 바디메오의 신앙, 백부장의 신앙, 수로보니게 여인의 신앙 그들은 모두가 기성 신자들이 볼 때 신분으로 봐도 별로 관심 밖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이 성경에 크게 부각된 이유는 바로 믿음 때문입니다. 그 믿음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법에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해도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움직임이 믿음과 연결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기에 무엇을 하든지 먼저 예배를 드리라고 말하고, 무엇을 하든지 신앙의 지도를 받으라고 하고,
무엇을 하든지 성경을 먼저 연구하고 깨닫고 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죄 중에 제일 큰 것은 불신앙입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생을 지으신 이유는 그가 영광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것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길을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불신앙 자체가 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듯이 또한 무엇을 하든지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법이며 질서입니다.
오늘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성격과 특성을 몇 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그 나라의 성격을 확실히 아는 것은 그 나라에 사는데 매우 유익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데 있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해야 하고 또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실하시고 긍휼이 풍성하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의뢰하는 삶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의 죄를 이기고 이 세상을 넉넉히 승리하여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의 복된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양심의 자유란 성경에서 문자적으로 뚜렷하게 금하거나 허용하는 어떤 규칙도 없고, 또 신앙생활에 절대적 영향을 줄만한 것은 아니로되 양심상으로, 거리끼는 문제(問題)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自然)히 이런 문제(問題)를 가지고
의견(意見)이 분분(忿憤)한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죄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때에 성경의 구체적 내용이 없는 경우에도 어떤 원칙(原則)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지난 단락에서 살펴본 대로 회상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나의 행동이 성경 교훈 전체의 정신에 금하는 것이 아닌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둘째는 나의 행동이 본질적으로 죄가 아닐 찌라도 죄의 유혹이 되게 하고 경건한 삶에 지장을 주는 것이 아닌가를 물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카드놀이는 죄는 아니라 할 찌라도 절제하기 어렵고 경건한 삶에 막대한 지장을 주는 것입니다. 셋째는 나의 행동이 본질적으로 죄는 아니라고 해도 믿음이 약한 형제자매들에게 낙심케 만들어서 믿음에 상처를 내지 않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진리가 지난 주일에 생각했던 말씀의 골자라고 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 13절에서 23절까지는 앞서의 말씀과 연결된 것입니다. 이 본문의 핵심은 신앙(信仰)의 견해차(見害差)가 있을 수 있으니 만큼, 이런 경우에는 사랑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세상나라의 원리가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가 통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 또 교회는 낮은 자가 높아지고 높은 자가 낮아지는 곳이며, 세상나라에서는 안 되는 것을 사랑으로 극복되는 곳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에 중심을 두지 않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로마교회에서는 믿음이 강한 사람은 고기를 먹고, 믿음이 약한 사람은 고기를 안 먹고 채식만 한다고 해서 토론이 분분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부질없는 논쟁으로 교회가 시험에 들 때가 있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죄 될 것도 없고 고기를 안 먹는다고 더 좋은 신앙을 갖는 것도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중심은 다른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어떤 규율 자체에 매여서 양심의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은 서로 서로가 영향을 끼치는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13절에 보면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비록 내 행동에 죄 될 것은 없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마음에 걸림돌이 되거나 함정에 빠지게
할 수도 있고 내가 한 일이 자신이 생각해 볼 때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상대방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길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경우, 하나의 작은 행동이 큰 파장을 일으키므로 삼가하고 조심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런 문제가 로마교회 뿐 아니라 고린도 교회에서도 똑같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8:10-12절에 말하기를 "지식이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네 형제라 이같이 너희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기 먹고 안 먹고를 양심의 문제와 결부시키던 시기는 신약성경이 쓰여 질 때 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문제는 없다고 해도 이와 비슷한 문제가 많을 줄 압니다. 신앙의 외적 문제로 형제를 판단해도 안 되지만 자기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고 다른 사람의 신앙에 상처를 주는 것도 문제입니다. 교회에도 역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만큼 별별 일이 다 있습니다. 그리고 견해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인 것을 알고, 나에게 주어진 특권(特權)이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절제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막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또 자기가 좋아한다고 남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남을 판단(判斷)하는 기준이 먹고 마시는 데만 두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둘째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17절).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적인 규율은 성령 안에서의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일은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일은 자신의 욕심을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일은 자기 유익과 자기 명예를 위하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의 생활이 기본적인 골격입니다. 성령 안에서 사는 것은 곧 성령 충만한 삶이며, 성령 안에서 사는 것은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서 사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패스포드는 성령 안에서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고 했습니다. (갈5:22절). 한국 교회 안에서는 성령 안에서의 삶을 퍽 오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산다고 하면서 아주 이상스런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환각이나 환상으로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면서 마치 성령 충만한 삶의 표현인 줄 알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본대로 성령의 열매는 참으로 아름답고 평온하며 정상적인 삶입니다.
성령 안에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참을 줄도 알고 온유하면서도 절제할 줄도 알고 주의 몸 된 교회에 충성할 줄 아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 확장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일은 결국 성령 안에 살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특히 본문에서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의라는 것은 성도가 성령 안에 살며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법을 순종하고 사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의(義)의 관계입니다. 그 의는 곧 믿음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사람을 보면 늘 마음에 기쁨이 있고 평화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면, 내 마음 속에 기쁨과 평화가 있습니다. 내 마음 속이 늘 흔들리고 평화가 없는 것은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자기에다 다른 사람의 성격이나 신앙 모두를 맞추려고 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용납하고 감싸주어야 합니다. 어린 신앙이라고 나무라지 말고, 장성한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너무 큰 짐을 지어서 견디지 못하도록 해서도 안 됩니다.
인간은 다 연약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힘을 얻어야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셋째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 특성은 먼저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고 또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8절에 보면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성도를 가리켜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라고 썼습니다. 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섬기는 자로 오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구속의 은혜를 받았은즉 주를 섬기고 교회를 섬기며 이웃을 섬기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섬김의 삶을 사는 중에 원리는 먼저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어떤 의미에서 우선순위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삶의 우선순위로 두는 것인가
또는 교회에서 신앙생활 할 때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신앙의 진실 여부가 가려지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교회생활을 잘 한다고 하면서도 자기를 항시 우선으로 생각하거나 쾌락을 우선으로 생각하여 친구와의 교제를 우선으로 생각하거나,
물질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성경은 친구 사귀는 것을 죄로 생각지 않고 이 세상에서 경제생활을 하는 것이 문제 될 것이 없음을 말합니다. 인생이 땅위에 살면서 쾌락을 즐길 수도 있고 문화적인 삶을 사는 것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다만 가장 큰 문제는 우선순위가 뒤 바뀐 것을 문제 삼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던지 간에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이 일을 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인가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자기 좋아하는 대로 무엇이든지 결정하면 그것은 참 신앙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가정에서도 아내가 음식을 만들 때 자기가 먹고 싶은 대로 요리를 한다면 그것은 남편의 사랑을 간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내는 먼저 남편의 식성을 알고 그 남편이 좋아하는 것을 할 때 더 큰사랑을 받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신앙의 중심이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되는 것을 먼저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마6:2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고전10: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혜로운 아내가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듯이 지혜로운 성도는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 기뻐하시는 것을 삶의 우선순위에 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입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면, 다른 형제(兄弟)와 자매들에게 욕을 먹고, 마음에 상처(傷處)를 입혀도 좋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본문에서 말한 대로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먼저 해야 하지만,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종종 보는 일이지만 아주 믿음이 좋은 성도 중에서 그만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우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경우를 많이 보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信仰)은 먼저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對神) 그리고 또한 인간과의 관계도(對人) 옳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으로 좇아 행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가지고 있어야 합니다(22절). 그러니만큼, "믿음으로 좇아하지 아니한 모든 것이 죄"라고 했습니다. (23절).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의 나라입니다.
교회는 믿음 때문에 이루어진 공동체입니다. 믿음이 없이 무엇을 하려는 것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갈 수도 없고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도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이라는 법을 가진 나라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아닙니다. 부족하지만 믿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구원의 축복을 받습니다.
거지 바디메오의 신앙, 백부장의 신앙, 수로보니게 여인의 신앙 그들은 모두가 기성 신자들이 볼 때 신분으로 봐도 별로 관심 밖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이 성경에 크게 부각된 이유는 바로 믿음 때문입니다. 그 믿음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법에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해도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움직임이 믿음과 연결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기에 무엇을 하든지 먼저 예배를 드리라고 말하고, 무엇을 하든지 신앙의 지도를 받으라고 하고,
무엇을 하든지 성경을 먼저 연구하고 깨닫고 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죄 중에 제일 큰 것은 불신앙입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생을 지으신 이유는 그가 영광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것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길을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불신앙 자체가 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듯이 또한 무엇을 하든지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법이며 질서입니다.
오늘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의 성격과 특성을 몇 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그 나라의 성격을 확실히 아는 것은 그 나라에 사는데 매우 유익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데 있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해야 하고 또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실하시고 긍휼이 풍성하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 의뢰하는 삶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의 죄를 이기고 이 세상을 넉넉히 승리하여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의 복된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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