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예배] 방해받는 성벽 재건 작업
본문
느헤미야의 주도와 백성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시작되었던 예루살롐 성벽 재건 작업(3장)이 대적들에 의해 방해받게 된다. 이런 내용의 본장을 요약하면, 산발랏과 도비야가 재건 작업에 임한 유다의 미약함을 조롱하는 장면(1-6절), 조롱에도 아무런 요동이 없자 대적들은 힘을 규합하여 유다 백성에게 실력 행사를 계획하는 장 면(7-9절), 이에 유다 백성들의 마음이 낙심하게 된 장면(10-12절), 요동하는 내부 를 단속하고 대적의 도전에 대비하여 전열을 정비하는 장면(13-14절), 몇몇 파숫군의 경비(9절)에서 탈피하여 모든 일꾼들로 무장하게 하는 장면(15-23절) 등이 소개되어 있다. 실로 여호와 하나님의 일에는 항상 사단의 도전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때 성도는 두려워 하거나 절망할 것이 아니라 깨어 대장 되신 하나넘을 의지하고, 주어진 사명을 더욱 열심으로 감당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위하시는 자를 해할 자가 감히 어디 있겠는가?(롬 8:31) 본론
1. 온갖 방해와 역경이 닥치는 주님의 일 참으로 주의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는 자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깃은, 주님의 일에는 언제나 온갖 방해와 역경이 뒤따른다는 점이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결사코 저지하려는 사단의 책동일 따름이다. 본문의 느헤미야의 예루살럼 성벽의 중건 사역에서도 온갖 방해와 역경이 닥쳐왔다. 중건된 성전을 안진하게 보전하고, 언약 공동체의 평안한 삶을 위해서, 예루살롐 성벽히 중건은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바사 왕실의 고귀한 직책과 안정된 생활을 뒤로 하고, 황폐한 땅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파괴된 성벽히 개건에 온 힘을 쏟았다. 하지만 사마리아인의 지도자 산발랏과 암몬의 긱도자 도비야를 증심으로 대적들의 방해 공작은 강력했고 집요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조롱하고 비웃는 수준에서 그치다가(2-3절) 나중에는 협박하고 위협하며 실제로 침략과 살해의 음모까지 꾸몄다(8,11절). 그래서 일부 유다 백성들은 낙담하여 성벽 중건을 포기하자고 종용했다(12절). 이처럼 외부의 방햬와 내부의 분열이 느헤미야를 괴롭혔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 성도들이 기억할 것이 있다. 참으로 주님의 일에는 많은 시련과 온갖 역경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미리 각오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녕 그 길은 골고다히 십자가 길이요, 아골 골짜기의 가시밭길이다. 왜냐하면 주님히 일은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는 일이다. 따라서 사단이 자신의 입지를 빼앗기지 않고자 필사적으로 저항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주님의 일에 유독 역경과 방해가 많 이유이다. 성도는 이 점을 깨닫고, 단단히 마음 먹고 주님의 일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어떠한 방해와 역경에도 좌절하기 않고, 굳세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2. 기도와 믿음과 노력으로 감당해야 할 주님의 일 그렇다면 온갖 방해와 시련에 직면한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어떨게 했는가? 본문을 통해 살펴보는 가운데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본으로 삼아야 할 깃이다. 1) 먼저 기도했다. 산발랏과 도비야에게 조롱을 당했을때, 그리고 대적들이 예루살렘 성으로 쳐들어 올 것이라는 소식에 접했을 때,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오직 하늘의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했다(4-5, 9절). 모든 어려움을 솔직히 토로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이 기도의 힘으로 온갓 시련을 극복하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2) 굳센 믿음을 가졌다. 느헤미야는 성벽 건축의 일이 주님의 일이고, 따라서 주께서 그 일을 이룰 것이라는 굳센 믿음을 가졌다. “하나넘이 저희의 꾀를 폐하셨으므로”(15절),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20절)는 표현은 이 사실을 보여준다. 주의 일을 하는 자들은 반드시 이같은 믿음을 지녀야 한다. 3)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기도하고 하늘만 쳐다본 것이 아니고, 믿는다고 그저 빈둥빈둥 논 것이 아니라, 땀흘려 노력했다. 한손으로는 부지런히 일했고, 또 한손으로는 병기를 잡고 적을 방비했다(17절). 밤에는 창을 잡고 파수하였고, 낮에는 흙손을 잡고 벽돌을 쌓았다(22절). 참으로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다.
3. 무릇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게 마련이다(1-4). 사마리아 총독 살발랏과 그 동료들은 유다 백성들이 다시금 성벽 재건 사업을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한편으로는 분노헸는가 하면 또다른 한편으로는 비웃고 조소했습니다(1절). 아마도 산발랏은 유다 백성이 자신이 반대 입장을 취하는 그 일을 구태여 아무 보고도 없이 실시한 데 대해 불쾌했을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산발랏은 유다 백성을 심히 약한 자들로 보고 그들이 어찌 그 큰 일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며(2-3절) 심히 업신여겼을 것압니다(4절). 당시 산발랏과 그 동료들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다 벅성과 함께 하실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하나넘께서 시작하신 섬벽 재건 작업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시고야 만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무지하 우둔한 자는 항상 진리를 무시하고 진실을 비웃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됩니다. 바로 이련 이유에서 하나넘과 진리를 사모하는 주의 백성들은 필시 영적으로 어두운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조롱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딘 사도 바울은 고난의 필연성에 관해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3:12)고 역설한 바 았습니다. 정녕 우리 믿는 성도들은 세상으로부터의 이러한 조소와 비난과 박해를 받을 때에 세상과 똑같이 맞서서 감정적으로 대항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세상에 맞서기 보다 이 모든 상황을 익히 알고 계신 하나넘을 향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께 부르짖는 영혼의 소리를 결코 외면치 않으십니다.
4. 성도가 하나되어 함제 일함으로써 난제를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6절). 산발랏과 그의 동료들의 비난과 조소에 마음이 상한 유다 백성들은 그들과 맞서 싸우기 보다 오히려 하나넘께 기도함으로써 그 슨간을 이겨넬 수 있었습니다(4-5절). 이렇게 하여 마음에 안정을 되찾은 유다 백성들은 더 이상 외부의 험담에 눈돌리지 않고 '마음들여 역사' 하였습니다(6절). 여기 '마음들여 역사하였다’함은 백성들 서로간에 '일하고자 하는 단합된 마이 생겨났다’는 뚯입니다. 다시 말하면 일치된 마음으로 오직 한 목표를 향해 더불어 일할 수 있게 되었음을 가리킵니다. 외부의 비난과 모욕이 그들의 사기를 꺾어놓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히 마음을 자극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유다 벡성들은 마음과 뜻과 힘을 모아 성벽 재건 작업에 전력 투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마음이 분산되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안에서 하나될 때 외부로부터의 그 어떤 도전과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넉넉히 모든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었다. 오늘 우리의 교회와 가정과 모임이 분열되지 않고 그 어떤 시련 가은데서도 항상 평안과 기쁨을 유지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나가는 열심이 필요하다(엡4:3-6).
5. 오직 여호와 하나님 만을 바랄 수 있어야 합니다(13-20절). 산발랏과 그 동료들의 비난과 조소에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성벽 재건 작업에 더욱 매진하였던 유다 벡성들은 마침내 성벽의 절반 높이까지 쌓아올릴 수 있었습니다(6절). 이처럼 유다 백성들의 건축 열기가 그 어느때 보나도 높은 것을 알게 된 산발랏은 뒤늦게 분노하며 성벽 공사를 방해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7. 8절). 산발랏의 이같은 도전에 직면하게 된 유다 백성 중에는 그 마음이 낙담한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지금껏 쉴틈없이 마음조이며 성벽 공사를 해옴으로써 심신이 지쳐 있었던 그들이었기에 산발랏의 적극적인 공세 앞에 그 마음이 쉽게 무너져 내려갈 수도 있었을 깃입니다. 하지만 유다 백성에게눈 결코 절망하거나 낙담할 수 없는 이유가 었었습니다. 그것은 곧 예루살렘 재건을 약촉하시고 그 일의 처음과 나중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의 편에서 여전히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다 백성들은 눈에 보이는 적군의 창칼에 두려위 할 깃이 아니라 지극히 크고 두려우신 주를 두려워하며(14절), 그분의 도움과 후원을 기대해야만 했습니다. 정녕 참신앙인은 세상의 화려한 힘에 압도되거나 그것으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인을 심판하시며 우리 인생을 정의롭게 다스리시고 그 생사를 결정하시는 하나넘을 두려위하고 경외합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존개를 의식하고 또 바로 그 하나넘께서 반드시 이루어 주시리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볼 때 진정한 승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정녕 환경과 상황을 초월하여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는 자에게는 결코 수치와 절망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며 항상 담대함이 넘쳐날 깃입니다(시25:3; 31:24).
6. 각자익 위치에서 맡은 일을 성실히 행하여야 합니다(15-23절). 느헤미야를 위시한 유 다 지도자들은 산발랏의 기습적인 공격에 대비하여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유다 벡성돌이 성벽 재건 작업을 하게 하되 동시에 갑작스런 적군의 침공에 능히 대처할 수 있는 전투 태세롤 완비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느헤미야는 무리들 가운데 절반은 항상 무장하여 경계하게 했고 나머지 절반은 공사에 임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공사에 임하는 자들은 한결같이 한 손에 병기를 든 상태로 일하게 헸습니다. 물론 석공은 두손이 다 필요했으므로 병기를 옆구리에 차고 맡은 일을 수행했습니다. 또한 느헤미야는 민장들로 하여금 백성 뒤에서 지휘 감독하게 했다가 유사시에는 전투롤 지휘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 자신도 공사 현장에 두루 돌아다니면서 백성돌을 독려하고 감독했습니다. 또한 느헤미야는 자기 곁에 항상 나팔 부는 자를 동행하게 하여 적의 기습 공격을 즉시 벡성들에게 알려 상황에 대처하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철저한 대비를 통해 유 다는 산발랏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는 항상 대적 마귀의 공격에 직면해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각 구성원들은 마귀에 대한 경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있든 그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되 동시에 항상 깨어 있어 마귀의 노략과 침탈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성실한 임무 수행이 다른 사람과 모든 공동체의 생명을 보존하는 막중한 일임을 깨닫고 각자의 위치에서 충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영적으로 볼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전쟁터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군사로서 매일 매순간 우리의 영왼한 대적인 사단 마괴와의 영적 전쟁을 치뤄야 합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항상 마귀의 활동 무대인 세상으로부터 도전과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세상에게 패배하고 마귀의 노략에 무릎 꿇을 수는 없는 존재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이 싸움에서 늘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보다 믿음 안에서 한 형제된 성도 상호간에 불신의 장벽을 허물고 서로 하나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각자 주어진 처소에서 맡은바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인간 스스로의 힘에 의존하지 말고 오직 우리를 승리케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분으로부터 내려지는 신령한 은혜와 힘을 날마다 덧입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세상의 악하고 집요한 도전을 능히 이겨낼 수 있으며, 늘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의 신령한 분투를 기대하겠습니다(요16:32-33, 요일5:4, 약1:2-4).
1. 온갖 방해와 역경이 닥치는 주님의 일 참으로 주의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는 자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깃은, 주님의 일에는 언제나 온갖 방해와 역경이 뒤따른다는 점이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결사코 저지하려는 사단의 책동일 따름이다. 본문의 느헤미야의 예루살럼 성벽의 중건 사역에서도 온갖 방해와 역경이 닥쳐왔다. 중건된 성전을 안진하게 보전하고, 언약 공동체의 평안한 삶을 위해서, 예루살롐 성벽히 중건은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바사 왕실의 고귀한 직책과 안정된 생활을 뒤로 하고, 황폐한 땅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파괴된 성벽히 개건에 온 힘을 쏟았다. 하지만 사마리아인의 지도자 산발랏과 암몬의 긱도자 도비야를 증심으로 대적들의 방해 공작은 강력했고 집요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조롱하고 비웃는 수준에서 그치다가(2-3절) 나중에는 협박하고 위협하며 실제로 침략과 살해의 음모까지 꾸몄다(8,11절). 그래서 일부 유다 백성들은 낙담하여 성벽 중건을 포기하자고 종용했다(12절). 이처럼 외부의 방햬와 내부의 분열이 느헤미야를 괴롭혔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 성도들이 기억할 것이 있다. 참으로 주님의 일에는 많은 시련과 온갖 역경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미리 각오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녕 그 길은 골고다히 십자가 길이요, 아골 골짜기의 가시밭길이다. 왜냐하면 주님히 일은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는 일이다. 따라서 사단이 자신의 입지를 빼앗기지 않고자 필사적으로 저항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주님의 일에 유독 역경과 방해가 많 이유이다. 성도는 이 점을 깨닫고, 단단히 마음 먹고 주님의 일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어떠한 방해와 역경에도 좌절하기 않고, 굳세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2. 기도와 믿음과 노력으로 감당해야 할 주님의 일 그렇다면 온갖 방해와 시련에 직면한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어떨게 했는가? 본문을 통해 살펴보는 가운데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본으로 삼아야 할 깃이다. 1) 먼저 기도했다. 산발랏과 도비야에게 조롱을 당했을때, 그리고 대적들이 예루살렘 성으로 쳐들어 올 것이라는 소식에 접했을 때,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오직 하늘의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했다(4-5, 9절). 모든 어려움을 솔직히 토로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이 기도의 힘으로 온갓 시련을 극복하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2) 굳센 믿음을 가졌다. 느헤미야는 성벽 건축의 일이 주님의 일이고, 따라서 주께서 그 일을 이룰 것이라는 굳센 믿음을 가졌다. “하나넘이 저희의 꾀를 폐하셨으므로”(15절),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20절)는 표현은 이 사실을 보여준다. 주의 일을 하는 자들은 반드시 이같은 믿음을 지녀야 한다. 3)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기도하고 하늘만 쳐다본 것이 아니고, 믿는다고 그저 빈둥빈둥 논 것이 아니라, 땀흘려 노력했다. 한손으로는 부지런히 일했고, 또 한손으로는 병기를 잡고 적을 방비했다(17절). 밤에는 창을 잡고 파수하였고, 낮에는 흙손을 잡고 벽돌을 쌓았다(22절). 참으로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다.
3. 무릇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게 마련이다(1-4). 사마리아 총독 살발랏과 그 동료들은 유다 백성들이 다시금 성벽 재건 사업을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한편으로는 분노헸는가 하면 또다른 한편으로는 비웃고 조소했습니다(1절). 아마도 산발랏은 유다 백성이 자신이 반대 입장을 취하는 그 일을 구태여 아무 보고도 없이 실시한 데 대해 불쾌했을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산발랏은 유다 백성을 심히 약한 자들로 보고 그들이 어찌 그 큰 일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며(2-3절) 심히 업신여겼을 것압니다(4절). 당시 산발랏과 그 동료들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다 벅성과 함께 하실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하나넘께서 시작하신 섬벽 재건 작업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시고야 만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무지하 우둔한 자는 항상 진리를 무시하고 진실을 비웃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됩니다. 바로 이련 이유에서 하나넘과 진리를 사모하는 주의 백성들은 필시 영적으로 어두운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조롱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딘 사도 바울은 고난의 필연성에 관해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3:12)고 역설한 바 았습니다. 정녕 우리 믿는 성도들은 세상으로부터의 이러한 조소와 비난과 박해를 받을 때에 세상과 똑같이 맞서서 감정적으로 대항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세상에 맞서기 보다 이 모든 상황을 익히 알고 계신 하나넘을 향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께 부르짖는 영혼의 소리를 결코 외면치 않으십니다.
4. 성도가 하나되어 함제 일함으로써 난제를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6절). 산발랏과 그의 동료들의 비난과 조소에 마음이 상한 유다 백성들은 그들과 맞서 싸우기 보다 오히려 하나넘께 기도함으로써 그 슨간을 이겨넬 수 있었습니다(4-5절). 이렇게 하여 마음에 안정을 되찾은 유다 백성들은 더 이상 외부의 험담에 눈돌리지 않고 '마음들여 역사' 하였습니다(6절). 여기 '마음들여 역사하였다’함은 백성들 서로간에 '일하고자 하는 단합된 마이 생겨났다’는 뚯입니다. 다시 말하면 일치된 마음으로 오직 한 목표를 향해 더불어 일할 수 있게 되었음을 가리킵니다. 외부의 비난과 모욕이 그들의 사기를 꺾어놓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히 마음을 자극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유다 벡성들은 마음과 뜻과 힘을 모아 성벽 재건 작업에 전력 투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마음이 분산되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안에서 하나될 때 외부로부터의 그 어떤 도전과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넉넉히 모든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었다. 오늘 우리의 교회와 가정과 모임이 분열되지 않고 그 어떤 시련 가은데서도 항상 평안과 기쁨을 유지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나가는 열심이 필요하다(엡4:3-6).
5. 오직 여호와 하나님 만을 바랄 수 있어야 합니다(13-20절). 산발랏과 그 동료들의 비난과 조소에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성벽 재건 작업에 더욱 매진하였던 유다 벡성들은 마침내 성벽의 절반 높이까지 쌓아올릴 수 있었습니다(6절). 이처럼 유다 백성들의 건축 열기가 그 어느때 보나도 높은 것을 알게 된 산발랏은 뒤늦게 분노하며 성벽 공사를 방해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7. 8절). 산발랏의 이같은 도전에 직면하게 된 유다 백성 중에는 그 마음이 낙담한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지금껏 쉴틈없이 마음조이며 성벽 공사를 해옴으로써 심신이 지쳐 있었던 그들이었기에 산발랏의 적극적인 공세 앞에 그 마음이 쉽게 무너져 내려갈 수도 있었을 깃입니다. 하지만 유다 백성에게눈 결코 절망하거나 낙담할 수 없는 이유가 었었습니다. 그것은 곧 예루살렘 재건을 약촉하시고 그 일의 처음과 나중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의 편에서 여전히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다 백성들은 눈에 보이는 적군의 창칼에 두려위 할 깃이 아니라 지극히 크고 두려우신 주를 두려워하며(14절), 그분의 도움과 후원을 기대해야만 했습니다. 정녕 참신앙인은 세상의 화려한 힘에 압도되거나 그것으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인을 심판하시며 우리 인생을 정의롭게 다스리시고 그 생사를 결정하시는 하나넘을 두려위하고 경외합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존개를 의식하고 또 바로 그 하나넘께서 반드시 이루어 주시리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볼 때 진정한 승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정녕 환경과 상황을 초월하여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는 자에게는 결코 수치와 절망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며 항상 담대함이 넘쳐날 깃입니다(시25:3; 31:24).
6. 각자익 위치에서 맡은 일을 성실히 행하여야 합니다(15-23절). 느헤미야를 위시한 유 다 지도자들은 산발랏의 기습적인 공격에 대비하여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유다 벡성돌이 성벽 재건 작업을 하게 하되 동시에 갑작스런 적군의 침공에 능히 대처할 수 있는 전투 태세롤 완비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느헤미야는 무리들 가운데 절반은 항상 무장하여 경계하게 했고 나머지 절반은 공사에 임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공사에 임하는 자들은 한결같이 한 손에 병기를 든 상태로 일하게 헸습니다. 물론 석공은 두손이 다 필요했으므로 병기를 옆구리에 차고 맡은 일을 수행했습니다. 또한 느헤미야는 민장들로 하여금 백성 뒤에서 지휘 감독하게 했다가 유사시에는 전투롤 지휘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 자신도 공사 현장에 두루 돌아다니면서 백성돌을 독려하고 감독했습니다. 또한 느헤미야는 자기 곁에 항상 나팔 부는 자를 동행하게 하여 적의 기습 공격을 즉시 벡성들에게 알려 상황에 대처하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철저한 대비를 통해 유 다는 산발랏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여호와 하나님의 교회는 항상 대적 마귀의 공격에 직면해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각 구성원들은 마귀에 대한 경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있든 그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되 동시에 항상 깨어 있어 마귀의 노략과 침탈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성실한 임무 수행이 다른 사람과 모든 공동체의 생명을 보존하는 막중한 일임을 깨닫고 각자의 위치에서 충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영적으로 볼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전쟁터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군사로서 매일 매순간 우리의 영왼한 대적인 사단 마괴와의 영적 전쟁을 치뤄야 합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항상 마귀의 활동 무대인 세상으로부터 도전과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세상에게 패배하고 마귀의 노략에 무릎 꿇을 수는 없는 존재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이 싸움에서 늘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보다 믿음 안에서 한 형제된 성도 상호간에 불신의 장벽을 허물고 서로 하나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각자 주어진 처소에서 맡은바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인간 스스로의 힘에 의존하지 말고 오직 우리를 승리케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분으로부터 내려지는 신령한 은혜와 힘을 날마다 덧입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세상의 악하고 집요한 도전을 능히 이겨낼 수 있으며, 늘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의 신령한 분투를 기대하겠습니다(요16:32-33, 요일5:4, 약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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