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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외모를 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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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일이지만 어느 신문에 조그마한 박스기사를 읽고 쓴 웃음을 지었던 때를 잊을 수 없다. 그 기사 내용을 요약한다면 이렇다. 목사들의 세계에 G목사, S목사, B목사가 있다고 한다. G목사는 G목사들끼리 식사를 하고 B목사는 B목사들끼리 식사는 한다는 것이다.
궁금해서 계속 읽어 내려갔더니
G목사는 자동차를 그랜저 급으로 타고 다니는 목사들이고,
S목사는 소나타급 자동차들을 타고 다니는 목사들이고,
B목사는 베스타급 자동차를 타는 목사들이라고 했다.

아마 과장된 기사였을 것이다. 내 자신이 목회자로서 인간 차별하는 목회자의 세계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목회자의 세계에서는 그런 일이 없겠지만 세상에서는 이런 일들은 흔하다.

그 기사를 읽을 때 나는 베스타를 타고 다녔다. 한 번은 시내 어느 은행에 상당히 많은 액수의 돈을 환전하기 위해 갔을 때의 일이다. 주차장이 비어있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주차를 하고 내려오는데 어디에선가 한 사람이 달려오더니 그 곳은 승용차가 주차할 곳이라며 나가라고 호통을 쳤다. 나의 용무를 말하려 해도 들어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은행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사람들은 누구를 판단 할 때 외모를 본다.
드러나는 것 외에는 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미모를 보고 미인으로 혹은 멋있는 사람으로 평가하며, 어떤 옷을 입었는가? 어떤 자동차를 타는가?
몇 평짜리 집에서 사는가?
한 달 소득은 어느 정도인가?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가?
이러한 것들이 평가의 기준이 된다.

권력이 있으면 우러러 보며, 돈이 많으면 능력 있는 사람으로 높여준다.
인기 스타가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지만 연약한 사람들의 세상은 언제나 소외된다.
특히 소인배들은 자신보다 더 낳은 사람에게는 굽실대며,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멸시한다.

그래서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 낮은 자리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장애인들은 푸대접을 받기 마련이다.

가난한 것이 서러운 것이 아니라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 것이 더 서럽다.
장애가 있어서 불편한 것이 아니라 따가운 시선이 더 불편하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신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며, 한 영혼의 가치를 보시고 귀하게 여겨주신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을 보실 때 자신의 자녀인가 세상에게 속해있는가를 보실 뿐이다.
아무리 가난하고, 보잘 것 없이 외적으로 만신창이가 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의 생명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보신다.
여호와 하나님의 손바닥에 이름을 새겨 놓으실 정도로 소중히 여기신다.

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실 뿐 아니라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고 명령하신다(야고보서 2:1-13).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도록 명령하신 이유는 사람을 외모로만 보는 것 그리고 판단하는 것은 죄악이기 때문이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의 날이 있는 이유는 평소에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이 있기 때문에 그 날 하루 만이라도 편견을 없애보자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단 하루만 장애인들을 생각하고, 장애인들을 배려하고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을 없앤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일 년에 364일은 장애인들이 소외당하는 날이 될 것이다.
그런데 단 하루 밖에 없는 장애인의 날이라도 기억해 주는 고마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장애인들은 사람들이 볼 때 외모가 온전하지 못하다.
그 이유로 언제나 편견의 대상이다.
모든 사람들이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지 않는다면 굳이 장애인의 날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날이 장애인의 날이 될 것이다.
사람의 외모를 보지 말라!
외모를 보고 판단하지 말라!
한 사람의 생명을 보라!
한 사람의 가치를 보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처럼 장애인도 천하 보다 귀중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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