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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청년아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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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지난 5일 새벽3시32분부터 8시17분까지 동해를 향해 장거리 미사일 '대포동 2호' 중거리인 '스커드'와 '노동' 미사일 등 갖가지 미사일을 쏘아 올렸습니다. 문제의 대포동 2호는 발사 직후 40초만에 떨어져 실패했습니다. 북한은 이날 오후에도 중거리 미사일을 또다시 발사했습니다. 북한이 발사 시점은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춘 것이나 한국과 일본, 미국을 모두 사정거리에 둔 미사일 여러 발을 발사한 것은 북한의 多重적 의도를 헤아리게 만듭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이후 부시 대통령은 그 즉시 국무ㆍ국방장관과 안보보관을 불러 대책회의를 열었고 일본은 새벽 4시30분에 주요 안보관계 각료들이 총리 관저 위기 관리센터에 모였습니다.
한국은 오전 7시 30분 국가안보회의 상임위를 개최했습니다.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 가운데 미국과 일본을 가상 과녁으로 한 것은 대포동과 노동 미사일입니다. 대부분은 대한민국을 射程 안에 두고 있는 미사일입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豫見했던 미국과 일본은 非常사태였고, 북한의 미사일이 인공위성이라고 우겼던 대한민국만 여유만 만이었던 셈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두 정권의 對北 異常 감각에 感染된 국민의 無心도 세계의 화제가 됐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북한의 이번 미사일 발사는 이 정권의 북한 豫測과 對北 制御 방식이 하나같이 빗나가고 실패했음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다들 미사일이라는데, 이 정권만이 "군용 미사일이라기보다 人工衛星일 가능성이 크다"고 버럭버럭 우겼습니다. 별다른 대북 정보도 없이 북한을 안에서 들여다보는 전문가라도 되는 양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발사의 의도를 自慰 목적이라고 세계에 해설해 왔던 것도 이 정권이었습니다.
'퍼주면 바뀔 것'이라는 이 정권의 바다 같은 대북 신뢰는 미사일 발사를 말리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우리가 발사할 것은 인공위성'이라는 거짓 정보가 돼서 북한에서 되돌아온 셈입니다. 당초 정부가 미국과 북한 사이의 중재 역이라도 되는 양 해온 것부터가 이 정부가 제 자신을 몰라도 너무 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 정권은 자신의 힘을 모르고, 북한의 목표를 모르고, 미국의 意中을 헤아리지 못한 것입니다. 그 결과가 이번 북한 미사일 발사 前後의 대한민국 모습이었습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5일밤 긴급회의를 열어 북한 미사일 문제를 다뤘습니다.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우리는 많은 준비를 했다. 앞으로 24~48시간에 많은 외교적 활동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본은 즉각 북한 화물여객선 만경봉호의 입항을 금지했습니다. 우리 정부도 반응을 보이긴 했습니다. '현명치 못한 행위에 심각한 유감을 표시'하고 '6자 회담에 즉각 복귀할 것을 엄중히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 그것입니다. 물론 대한민국 정부의 이 성명서는 북한의 귀에 닿지도, 미국의 팔을 붙잡지도 못할 것이 사실입니다.
자신을 모르고 세계를 모르는 無知와 錯覺은 북한이 더합니다. 북한은 지금부터 자신의 무지와 착각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결국 북한 핵 사태에 이어 미사일 발사 사태 속에서도 이 땅의 남과 북은 혈혈단신 고립무원의 신세가 된 것입니다(조선일보).
이러한 국제정세 속에 이 나라의 운명이 어찌 되어 갈는지 알 수 없는 이때 우리 청년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현실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청년들의 모습 속에서 죽어 공동 묘지로 향하여 가는 나인 성 과부의 아들과는 같지 않는지 반성 하게됩니다.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해 침식도 가정도, 친구도, 친척도, 동족도 버리고 홀연히 유대교적 전통과 맞서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된다고 선포하는 청년 예수님은 죽어 공동묘지를 향하여 가던 나인성 과부의 장례행렬과 맞섰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민족의 운명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1)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
어머니를 슬프게 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일찍이 남편을 잃은 여인이 자식 하나에 기대를 걸고 애지중지 길렀습니다. 아들은 잘 자랐고 어머니가 기대를 걸어도 될 만큼 훌륭하였습니다. 성품이 온유하여 말썽을 부리지 않았고 머리도 영리하여 공부도 잘하였고 예절도 발라 동리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결혼도하여 자기를 훌륭하게 길러준 어머니를 공경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원인 모를 병을 앓더니 대책을 세울 사이도 없이 죽어갔습니다. 홀로 남은 어머니의 슬픔 그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슬픔을 함께 반영이나 하듯이 온 동리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인심을 잃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잘 죽었다 하였겠지만 칭찬 받던 청년이기에 온 동리가 거동 한 것입니다. 장례를 준비하고 이제는 공동묘지를 향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이 훌륭한 청년의 죽음을 애도하는 행렬은 끝도 없이 길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이라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행렬을 봅니다. 죽은 청년을 필두로 한 장례행렬과 생명의 주가 되는 예수님을 앞세우고 가는 많은 무리의 행렬입니다. 생명의 행렬도 사람들이 많았고 죽음의 행렬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생명의 행렬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 까요 거기에는 기쁨과 기적과 놀라운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행렬에는 슬픔과 괴로움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시여 지금 당신은 어느 행렬에 서 있습니까 생명의 행렬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그의 신적 권능으로 죽은 자를 살립니다. 그는 불쌍히 여기는 연민의 주님이십니다. 인자로 오신 예수님은 사랑과 긍휼로 우리를 돌보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사랑을 입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예수님은 지금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우리 곁에 오셔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냄세 나는 관에 가까이 가셨습니다. 동리사람들이야 정이던 사람이기에 그 죽은 청년의 어머니와 관련도 있기에 송장 곁에 있지만 예수님이야 그럴 이유가 육신 적으로 볼 때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살리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기에 생명을 잃고 울고 있는 자를 향하여 울지 말라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한 권세가 있는 분입니다. 그 권세 있으신 생명의 주님은 죽은 자가 들어있는 관 곁으로다가 서셨습니다. 썩어 가는 냄새가 진동하는 관 곁으로 가신 것입니다. 여기서 '관'은 헬라어로 '소로스'( )라고 되어 있습니다. 뚜껑이 없어 시신이 잘 보이는 관을 말합니다(그랜드주석). 그러니 냄새가 났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갔다 버리기가 너무나 억울하여 여러 날이 지나도록 장례도 치르지 않아 상해버려 냄새나는 시신이 담긴 棺 곁으로 예수님은 다가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관에 손을 대십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하셨습니다. 주었던 자가 앉고 말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예수님은 우리의 몸과 맘에 손을 대시고 말씀하는 음성입니다. '청년아 일어나라!'
324장 찬송합시다. 주님 찾아오셨네 모시어들이세
3)청년아 일어나라
예수님은 우리를 치료해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아오도록 치료하셨습니다. 이것은 육신의 죽음만 소생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로서 영혼까지도 거듭나게 하심을 의미합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구원도 주시고 육신도 치료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곳에는 언제나 치료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께로 오면 우리의 삶도 치료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의 최대의 정치가요 무장으로 서양사상 최대의 영향을 미친 로마의 개선 장군 J. 케사르(100-44.3. 15 B. C. ) 는 소아시아에서 가서 제라 전투에서 파르나게스 군을 격파하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습니다. 그는 로마 원로원에서 아주 간단하게 "왔노라(VENI), 보았노라(6DI), 이기었노나(6CI)"고 세 마디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대청년들은 갈 데가 없습니다. 보기는 무얼 보느냐 나의 계획은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고 하면서 세계정복은커녕 불꺼진 전등처럼 희미한 생을 누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시대가 나를 절벽으로 몰아 넣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청년들은 기성세대와 새 세대를 너무 현격하게 구별지으려 하고 있습니다. 사실 자기들의 시대가 왔는데도 아직 기성세대가 물려줄 유산을 기다리는 상태에 있는 것 같습니다. 청년들은 나라의 보배요 시대의 자랑인 동시에 이 시대의 주인입니다. 이 시대가 바로 청년의 시대라는 말입니다.
북해도 삿보로 농대에서 제2차 대전에서 패망하여 가는 일본 젊은이들에게 'Boys be Ambitious'를 외쳐 청년의 야심을 불러일으키던 클락 박사의 야심이 오늘 우리의 청년들에게는 없어서 그럴까요 미국의 제3대 대통령 Jefferson, Thomas (1743.4. 2-1826. 7. 4)은 청년의 때에 일어나서 '나는 인간 정신을 지배하는 모든 전제정치와는 영원히 대적하여 싸울 것이다'라고 하여 민주주의 기치를 높이 들었고, 미국의 시인 Longfellow, Henry Wadsworth(1807.2. 27-1882.2. 24)는 벌써 젊을 때 "이 세상에서 쇠 모르가 되든지 쇠망치가 되든지 둘 중에 하나가 되어야한다고 정의감을 불러 일으켰고, 30이전에 유명해진 미국의 흑인지도자 마틴 루터 킹은 "타락하고 연약한 자를 위하여 대변하기를 무서워하는 자는 노예이다"라고 갈파하여 민권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니다 보면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모르는 청년을 만나기 일 수입니다. 옷은 분명히 남자의 옷인데 여자의 머리처럼 긴 머리에 화장까지 한 고사리처럼 휘청거리는 청년들이 한데 몰려다니는 것을 보았을 때 한국의 恥部를 보는 것 같아 소름이 끼칩니다. 동시에 우리는 청년은 저런 것이 아니라고 강력히 머리를 저어봅니다.
독일의 철학자 Nietzsche, Friedrich Wihelm 1844. 10. 15-190. 8. 25)가 젊을 때 '한번만 섬광을 보여달라! 꼭 한번만 그 어떤 섬광을 보여달라'고 절규하고 있는 동안, 젊은 신앙가 scotland의 Knox, John (1505- 1572. 11. 24)는 스코틀란드를 내려 다 보면서 '여호와 하나님이여 스코틀란드를 내게 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내게 죽음을 주소서'기도하여 자기의 조국을 구하였습니다.
실세 없이 변하는 세계를 생각하기를 잊은 체 술과 담배와 마약과 향락에 젖어 타락의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한국청년을 바라보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찬송가330장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수께로 나옵니다.
자유와 기쁨 베푸시는 주께로 옵니다.
병든 내 몸이 튼튼하고 빈궁한 삶이 부해지며
죄악을 벗어버리려고 주께로 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육적 영적 물질적 질 고를 치료하여 주시고 우리민족도 치료하여 주시는 분입니다.
사랑하는 청년여러분 그리고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하는 영과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 곁에 와 계십니다. 우리에게 손을 데시기를 원하시며 치료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깨끗함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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