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디지털 청년들이여!
본문
목요일 새벽 시간에 오늘 성청 주일을 맞이하여 청년들에게 설교할 제목을 생각하며 기도하던 중 저의 머릿속에 디지털이란 단어가 퍼뜩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먼저 디지털이란 말과, 성경에 나오는 청년상을 제공할 인물이 누구인가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여호수아였습니다. 여호수아가 청년들에게 제시할 청년상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유합니다. 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설득하게 되었는가 하면 사정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에 이르러 모세는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을 가나안땅을 정탐을 하기 위해 선발을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란 광야에서 정탐을 위해 가나안으로 몰래 들여보냅니다.
그 사람들이 민수기 13장 3절을 보니까 '다 이스라엘 자손의 두령된 사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족장들의 이름이 민수기 14장 4절 이하에 나오는데 그 중에 우리가 잘 아는 유다 지파의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있고, 눈의 아들 호세아가 있는데 이 눈이라는 사람의 아들 호세아가 우리가 알고 있는 여호수아입니다.
각 지파에서 선발된 12명의 족장들이 몰래 가나안의 스파이 임무를 띠고 들어가 임무 수행을 마치고 모든 백성 앞에서 그리고 모세 앞에서 보고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보고가 문제가 있습니다. 12명의 이스라엘의 자손의 두령된 자들이 한결같은 보고를 하면 될텐데 이들이 서로 상반된 보고를 합니다. 이 보고 가운데 10명의 보고는 부정적이고, 신앙적이지 못한 보고입니다. 그 부정적인 보고 내용이라는 것이 "우리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사는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가나안 정복을 아예 꿈꾸지도 말아야 한다. 그 가나안 사람들은 우리를 메뚜기같이 생각할 것이다"라는 등등의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 부정적 보고를 다시 음미해 보면 꼭 '부정적이다'라는 말로 단정짓기 어려운 대목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10명의 정탐군들이 보고내용이 어떻게 보면 정탐한 사실을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32절에서는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악평을 했다고 합니다. 그 악평이라는 것은 "그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라는 것이고,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라고 합니다.
이 악평이란 말은 '모욕'혹은 '은밀한 행동'이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다바브'라는 말입니다. 거민을 삼키는 땅이란 말은 기후 조건이 나쁘거나 각종 질병이 만연한 땅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 땅이 매우 비옥하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탐이 나는 땅이다, 그러니 그 땅을 서로 가지려고 전쟁을 벌일 것인데 그러다 보면 계속 희생자가 속출할 것이니 우리가 그 땅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 민수기 14장 26절을 보면 이 정탐군들은 가나안땅에서 몰래 가지고 온 열매들을 보여주며 그 땅이 얼마나 기름진지, 또 그 기름진 땅에 얼마나 강대한 성읍과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고 들은 대로 보고하고 있습니다. 일부러 심하게 과장해서 말하는 것도 없습니다. 빼놓고 이야기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 보고는 사실과 전혀 다른 보고라기 보다는 조금은 과장된 보고라고 할 수도 있겠고, 보고자들의 주관적인 평가가 첨가되어 있는 보고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갈렙과 여호수아와 다른 보고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이들에게는 믿음의 눈이 없었습니다. 다만 현실 세계, 자기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는 좁은 식견만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2) 또 이들에게는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비전이 없었습니다. 다만 지금 '현재'라는 상황에 충실하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현재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현재에 연연해서 앞을 향해 나아가지 못한다면 지도자가 아닙니다.
3) 이들에게 또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힘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지도력이 없었습니다. 민수기 13장 30절을 보니까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들을 안돈시켰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10명의 정탐꾼의 말을 들은 백성들이 동요하니까 갈렙이 힘차게 나서서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 제가 여분네라는 이름의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갈렙이라는 사람입니다. 제가 사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보니 여러분이 보신 것처럼 그 땅의 열매가 크더이다. 그리고 그 땅의 사람들도 장대하고 우람하더이다. 그러니 우리가 그들 눈에는 메뚜기 같아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를 기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하지 말고, 그 땅 백성들을 두려워 마십시오. 그 사람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이렇게 여호수아가 말을 하자 수군거리며 수렁거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정을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밥'이란 말이 건들건들한 친구들이 하는 비속어인줄 아신 분들도 계셨으리라 생각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우리의 적수가 되지 않는다고 할 때 이 '밥'이란 말을 쓰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을 가지고, 앞을 향한 비젼을 가지고, 백성들을 안돈시킬 수 있는 지도력을 가지고 있는 이 젊은이가 누구입니까 바로 여호수아입니다.
그는 청년이었습니다. 물론 우리와 다른 시대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여호수아에게 디지털이란 말을 쓸 수 없지만, 저는 이 여호수아가 바로 '디지털 청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디지털이란 말은 무슨 말입니까
사전을 찾아보시면 디지털이란 말은 사람의 손가락이나 동물의 발가락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한 말이다. 아날로그와 대응하며, 임의의 시간에서의 값이 최소값의 정수배로 되어 있고 그 이외의 중간 값을 취하지 않는 양을 가리킨다…라는 어려운 말로 적혀 있습니다.
반대말은 아나로그라는 말이고 디지털이란 말은 원래 사람의 손에 있는 지문을 나타나는 말입니다. 그래서 원래 디지털이란 말은 '손가락 모양의'라는 뜻입니다. 예전에는 디지털이란 말이 피아니스트의 손가락 기술을 말할 때 영어로 'The Digital technique of a pianist'라고 제일 많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디지털이란 말은 '정교한' 것을 나타내거나, 앞선 기술 등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말이 되었습니다. 요즘 디지털이란 말이 들어가지 않는 말이 없을 정도로 디지털이란 말이 상용화되어 있습니다. 하도 디지털이란 말을 많이 쓰니까 디지털을 '돼지털'이라고 부르는 친구들도 있습니다만, 영어로 'D'자가 약자로 들어가 있는 상품들은 다 디지털이란 뜻이 포함되어 있는 말입니다.
그러면 젊은 청년들이 상품도 아닌데 왜 제가 디지털이란 말을 붙이고 있습니까
아나로그 청년이란 저는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청년들, 무슨 일을 맡겨도 안심이 안되는 청년들, 세상에 왼 발 걸치고 있고, 교회 문 앞에 오른 발을 걸치고 있는 친구들이 바로 아나로그 청년들입니다. 항상 같은 값어치를 못하는 아나로그 기계와 비슷한 아나로그 청년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디지털 청년이라 함은 언제나 같은 값어치를 가지고 있고, 항상 그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청년, 언제나 듬직한 청년들이 바로 디지털 청년들입니다. 말씀대로 살고, 늘 기도하고, 찬양사역도, 굿은 일도 열심히 감당하는 청년들이 바로 디지털 청년들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디지털 청년이란 말은 무슨 말입니까
저는 디지털 청년이란 말은 세 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1) 먼저 무엇보다 디지털 청년이란 과거보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꿈꾸는 도전의식을 가지고 사는 청년들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모세 앞에서 보고할 때 왜 가나안 거민들이 장대하고, 그 땅을 정복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몰랐겠습니까 그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보고는 다른 10명의 보고와는 달랐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땅이 앞으로 우리의 것이 되리라는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나, 요셉, 모세, 이사야와 같은 많은 신앙의 인물들은 나이를 따지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미래의 비전을 가지고 살았고 그래서 그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도전하며 환경을 개척해 나갔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과거의 경험이나 과거에 더 잘했다고 하는 마음이 들면 이미 늙어 가는 징조입니다. 물론 우리 육신이라는 것은 30세가 지나면 늙어간다고 하지만 마음이야 늙어서 되겠습니까
미래의 꿈을 가지고 도전의식이 있는 청년이 성도가, 디지털 청년, 성도입니다.
비전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나의 삶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비전은 내가 스스로 가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고, 나는 그것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삶과 분리된 채로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일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바로 비전의 삶입니다.
내가 꼭 저 자매와 결혼해야겠다는 것이 비전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비전은 단순히 앞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꼭 저 대학에 들어가겠다, 혹은 내가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것이 비전이 아니라 내가 어떤 일을 하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꾸는 것이 비전이고, 그런 청년이 디지털 청년입니다.
2) 디지털 청년들은 어떤 청년들입니까
확고하고 분명한 자기 의식과 믿음이 있는 청년들이 디지털 청년입니다. 흐리멍덩한 모습, 어떤 자기 삶이 앞으로 전개될지 우왕좌왕하면서 되는 대로 삶을 사는 청년들, 디지털 청년이 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요즘 청소년들에게 자살 사이트 열풍이 일고 있습니다. 막연한 호기심으로 친구와 의리를 지키기 위해 자살을 한답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 세계가 호기심이 나서 죽는다고 합니다. 아무리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더라도 자살을 해서는 안됩니다. 자살은 실험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상식적으로나 성경적으로 인간의 생명은 너무나 고귀하고 소중한 가치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생명이 소중하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도 멸망에 이르지 못하도록 당신의 가장 아끼는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 주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도 아끼는 이 생명을 우리가 우리 손으로 해친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이루어야 할 삶의 내용들과 결과들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고, 크고 작음을 떠나서 우리가 남기게 될 인생의 흔적들은 너무나 소중한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귀중한 생명을 일순간의 행동으로 끊어 버린다는 아주 바보 같은 짓입니다.
그러기에 젊은 청년 여러분 ! 확고한 자기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자긍심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자긍심, 자신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나는 택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다, 나는 앞으로 이 세상을 걸머질 여호와 하나님의 군사다, 이런 조금은 추상적이지만 큰 포부도 가져 보시길 바랍니다.
오늘 여호수아와 갈렙은 자기가 보고 듣고 배운 것과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 대한 분명한 의식과 믿음이 있었던 청년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청년이 되길 원합니다.
3) 디지털 청년들이란 여호와 하나님을 인식하고 사는 청년들입니다.
21세기를 사는 청년들이 배워야 할 거리도 많고, 읽어야 할 책들도 많고 깨우쳐야 할 것도 많습니다.
오늘 민수기 14장 8절 말씀에서 여호수아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음을 반영하는 말씀입니다.
요즈음 복제 인간, 냉동인간을 통한 생명 연장의 연구가 계속되고 있는데 칼텍의 한 한국인 교수가 지놈 상세지도를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21세기 들어 가장 눈부신 과학의 업적으로 평가받는 유전자 정보를 담고 있는 지놈 지도가 전 세계에 이미 공개가 되었습니다. 이 지도가 완전히 완성이 되면 암이나 치매라고 불리는 알츠하이머 병등과 같은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된다고 합니다. 이 지놈 지도 완성은 1968년 인간의 달 착륙을 능가하는 과학적 업적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인간의 장기 이식을 하는 것도 좋고, 지놈 지도를 작성하는 것도 좋지만, 여호와 하나님 창조인식이 없는 것이 제일 문제입니다. 전도서 기자는12장 1절에서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창조자를 기억해야 하는 때를 2절에서는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고 했습니다. 젊은 청년의 때 여호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인식에 철두철미한 청년! 그 청년이다 되길 바랍니다.
요즘 "The Goal"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만, 제프 콕스와 앨리 골드렛이란 분이 쓴 책인데 주인공은 로고라는 이름의 유니코 회사에 근무하는 공장장입니다. 그런데 그 공장에서 생산되는 기계명 41427이란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 본부장과 갈등을 하면서 공장을 폐쇄시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출장가는 공항에서 자기의 은사 요나 교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요나 교수에게서 한가지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목표가 정확하지 않은 생산성이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기업도 목표가 상실되면 아무리 생산성이 높다고 해도 그 높다고 하는 생산성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 요나 교수의 따끔한 충고였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인 로고 공장장은 자기가 지금까지 숫자놀음에, 그리고 자기 합리화에 빠져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젊은 청년들이 제일 쉽게 빠지는 함정이 바로 자기 합리화입니다. 자기 논리가 최고라고 자칫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아이템, 나이 드신 분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곧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합리화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사랑하는 동광 성도 여러분 ! 그리고 성청 주일을 맞이한 청년 성도 여러분 !
지금 교회 문을 나서서 여러분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예전에 술꾼에게 누가 물었다고 합니다. "술을 먹을거냐 아니면 밥을 먹을거냐 아니면 떡을 먹을거냐" 그랬더니 술꾼이 하는 말이 술에다 밥 말아서 떡을 안주 삼아 먹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절제도 없고, 목표도 없고, 인생의 참 가치도 모르는 불량한 사람의 대답입니다. 노력하는 있는 여러분의 인생에 신앙의 목표를,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여러분의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그 목표가 불확실하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생산성 없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동광의 성도들과 청년들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도전의식으로 무장하고 확고한 자기 의식을 바탕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인식하고 사는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에 이르러 모세는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을 가나안땅을 정탐을 하기 위해 선발을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란 광야에서 정탐을 위해 가나안으로 몰래 들여보냅니다.
그 사람들이 민수기 13장 3절을 보니까 '다 이스라엘 자손의 두령된 사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족장들의 이름이 민수기 14장 4절 이하에 나오는데 그 중에 우리가 잘 아는 유다 지파의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있고, 눈의 아들 호세아가 있는데 이 눈이라는 사람의 아들 호세아가 우리가 알고 있는 여호수아입니다.
각 지파에서 선발된 12명의 족장들이 몰래 가나안의 스파이 임무를 띠고 들어가 임무 수행을 마치고 모든 백성 앞에서 그리고 모세 앞에서 보고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보고가 문제가 있습니다. 12명의 이스라엘의 자손의 두령된 자들이 한결같은 보고를 하면 될텐데 이들이 서로 상반된 보고를 합니다. 이 보고 가운데 10명의 보고는 부정적이고, 신앙적이지 못한 보고입니다. 그 부정적인 보고 내용이라는 것이 "우리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사는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가나안 정복을 아예 꿈꾸지도 말아야 한다. 그 가나안 사람들은 우리를 메뚜기같이 생각할 것이다"라는 등등의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 부정적 보고를 다시 음미해 보면 꼭 '부정적이다'라는 말로 단정짓기 어려운 대목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10명의 정탐군들이 보고내용이 어떻게 보면 정탐한 사실을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32절에서는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악평을 했다고 합니다. 그 악평이라는 것은 "그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라는 것이고,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라고 합니다.
이 악평이란 말은 '모욕'혹은 '은밀한 행동'이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다바브'라는 말입니다. 거민을 삼키는 땅이란 말은 기후 조건이 나쁘거나 각종 질병이 만연한 땅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 땅이 매우 비옥하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탐이 나는 땅이다, 그러니 그 땅을 서로 가지려고 전쟁을 벌일 것인데 그러다 보면 계속 희생자가 속출할 것이니 우리가 그 땅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 민수기 14장 26절을 보면 이 정탐군들은 가나안땅에서 몰래 가지고 온 열매들을 보여주며 그 땅이 얼마나 기름진지, 또 그 기름진 땅에 얼마나 강대한 성읍과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고 들은 대로 보고하고 있습니다. 일부러 심하게 과장해서 말하는 것도 없습니다. 빼놓고 이야기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 보고는 사실과 전혀 다른 보고라기 보다는 조금은 과장된 보고라고 할 수도 있겠고, 보고자들의 주관적인 평가가 첨가되어 있는 보고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갈렙과 여호수아와 다른 보고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이들에게는 믿음의 눈이 없었습니다. 다만 현실 세계, 자기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는 좁은 식견만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2) 또 이들에게는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비전이 없었습니다. 다만 지금 '현재'라는 상황에 충실하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현재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현재에 연연해서 앞을 향해 나아가지 못한다면 지도자가 아닙니다.
3) 이들에게 또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힘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지도력이 없었습니다. 민수기 13장 30절을 보니까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들을 안돈시켰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10명의 정탐꾼의 말을 들은 백성들이 동요하니까 갈렙이 힘차게 나서서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 제가 여분네라는 이름의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갈렙이라는 사람입니다. 제가 사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보니 여러분이 보신 것처럼 그 땅의 열매가 크더이다. 그리고 그 땅의 사람들도 장대하고 우람하더이다. 그러니 우리가 그들 눈에는 메뚜기 같아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를 기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하지 말고, 그 땅 백성들을 두려워 마십시오. 그 사람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이렇게 여호수아가 말을 하자 수군거리며 수렁거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정을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밥'이란 말이 건들건들한 친구들이 하는 비속어인줄 아신 분들도 계셨으리라 생각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우리의 적수가 되지 않는다고 할 때 이 '밥'이란 말을 쓰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을 가지고, 앞을 향한 비젼을 가지고, 백성들을 안돈시킬 수 있는 지도력을 가지고 있는 이 젊은이가 누구입니까 바로 여호수아입니다.
그는 청년이었습니다. 물론 우리와 다른 시대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여호수아에게 디지털이란 말을 쓸 수 없지만, 저는 이 여호수아가 바로 '디지털 청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디지털이란 말은 무슨 말입니까
사전을 찾아보시면 디지털이란 말은 사람의 손가락이나 동물의 발가락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한 말이다. 아날로그와 대응하며, 임의의 시간에서의 값이 최소값의 정수배로 되어 있고 그 이외의 중간 값을 취하지 않는 양을 가리킨다…라는 어려운 말로 적혀 있습니다.
반대말은 아나로그라는 말이고 디지털이란 말은 원래 사람의 손에 있는 지문을 나타나는 말입니다. 그래서 원래 디지털이란 말은 '손가락 모양의'라는 뜻입니다. 예전에는 디지털이란 말이 피아니스트의 손가락 기술을 말할 때 영어로 'The Digital technique of a pianist'라고 제일 많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디지털이란 말은 '정교한' 것을 나타내거나, 앞선 기술 등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말이 되었습니다. 요즘 디지털이란 말이 들어가지 않는 말이 없을 정도로 디지털이란 말이 상용화되어 있습니다. 하도 디지털이란 말을 많이 쓰니까 디지털을 '돼지털'이라고 부르는 친구들도 있습니다만, 영어로 'D'자가 약자로 들어가 있는 상품들은 다 디지털이란 뜻이 포함되어 있는 말입니다.
그러면 젊은 청년들이 상품도 아닌데 왜 제가 디지털이란 말을 붙이고 있습니까
아나로그 청년이란 저는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청년들, 무슨 일을 맡겨도 안심이 안되는 청년들, 세상에 왼 발 걸치고 있고, 교회 문 앞에 오른 발을 걸치고 있는 친구들이 바로 아나로그 청년들입니다. 항상 같은 값어치를 못하는 아나로그 기계와 비슷한 아나로그 청년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디지털 청년이라 함은 언제나 같은 값어치를 가지고 있고, 항상 그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청년, 언제나 듬직한 청년들이 바로 디지털 청년들입니다. 말씀대로 살고, 늘 기도하고, 찬양사역도, 굿은 일도 열심히 감당하는 청년들이 바로 디지털 청년들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디지털 청년이란 말은 무슨 말입니까
저는 디지털 청년이란 말은 세 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1) 먼저 무엇보다 디지털 청년이란 과거보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꿈꾸는 도전의식을 가지고 사는 청년들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모세 앞에서 보고할 때 왜 가나안 거민들이 장대하고, 그 땅을 정복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몰랐겠습니까 그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보고는 다른 10명의 보고와는 달랐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땅이 앞으로 우리의 것이 되리라는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나, 요셉, 모세, 이사야와 같은 많은 신앙의 인물들은 나이를 따지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미래의 비전을 가지고 살았고 그래서 그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도전하며 환경을 개척해 나갔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과거의 경험이나 과거에 더 잘했다고 하는 마음이 들면 이미 늙어 가는 징조입니다. 물론 우리 육신이라는 것은 30세가 지나면 늙어간다고 하지만 마음이야 늙어서 되겠습니까
미래의 꿈을 가지고 도전의식이 있는 청년이 성도가, 디지털 청년, 성도입니다.
비전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나의 삶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비전은 내가 스스로 가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고, 나는 그것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삶과 분리된 채로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일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바로 비전의 삶입니다.
내가 꼭 저 자매와 결혼해야겠다는 것이 비전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비전은 단순히 앞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꼭 저 대학에 들어가겠다, 혹은 내가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것이 비전이 아니라 내가 어떤 일을 하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꾸는 것이 비전이고, 그런 청년이 디지털 청년입니다.
2) 디지털 청년들은 어떤 청년들입니까
확고하고 분명한 자기 의식과 믿음이 있는 청년들이 디지털 청년입니다. 흐리멍덩한 모습, 어떤 자기 삶이 앞으로 전개될지 우왕좌왕하면서 되는 대로 삶을 사는 청년들, 디지털 청년이 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요즘 청소년들에게 자살 사이트 열풍이 일고 있습니다. 막연한 호기심으로 친구와 의리를 지키기 위해 자살을 한답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 세계가 호기심이 나서 죽는다고 합니다. 아무리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더라도 자살을 해서는 안됩니다. 자살은 실험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상식적으로나 성경적으로 인간의 생명은 너무나 고귀하고 소중한 가치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생명이 소중하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도 멸망에 이르지 못하도록 당신의 가장 아끼는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 주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도 아끼는 이 생명을 우리가 우리 손으로 해친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이루어야 할 삶의 내용들과 결과들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고, 크고 작음을 떠나서 우리가 남기게 될 인생의 흔적들은 너무나 소중한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귀중한 생명을 일순간의 행동으로 끊어 버린다는 아주 바보 같은 짓입니다.
그러기에 젊은 청년 여러분 ! 확고한 자기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자긍심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자긍심, 자신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나는 택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다, 나는 앞으로 이 세상을 걸머질 여호와 하나님의 군사다, 이런 조금은 추상적이지만 큰 포부도 가져 보시길 바랍니다.
오늘 여호수아와 갈렙은 자기가 보고 듣고 배운 것과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 대한 분명한 의식과 믿음이 있었던 청년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청년이 되길 원합니다.
3) 디지털 청년들이란 여호와 하나님을 인식하고 사는 청년들입니다.
21세기를 사는 청년들이 배워야 할 거리도 많고, 읽어야 할 책들도 많고 깨우쳐야 할 것도 많습니다.
오늘 민수기 14장 8절 말씀에서 여호수아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음을 반영하는 말씀입니다.
요즈음 복제 인간, 냉동인간을 통한 생명 연장의 연구가 계속되고 있는데 칼텍의 한 한국인 교수가 지놈 상세지도를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21세기 들어 가장 눈부신 과학의 업적으로 평가받는 유전자 정보를 담고 있는 지놈 지도가 전 세계에 이미 공개가 되었습니다. 이 지도가 완전히 완성이 되면 암이나 치매라고 불리는 알츠하이머 병등과 같은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된다고 합니다. 이 지놈 지도 완성은 1968년 인간의 달 착륙을 능가하는 과학적 업적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인간의 장기 이식을 하는 것도 좋고, 지놈 지도를 작성하는 것도 좋지만, 여호와 하나님 창조인식이 없는 것이 제일 문제입니다. 전도서 기자는12장 1절에서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창조자를 기억해야 하는 때를 2절에서는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고 했습니다. 젊은 청년의 때 여호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인식에 철두철미한 청년! 그 청년이다 되길 바랍니다.
요즘 "The Goal"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만, 제프 콕스와 앨리 골드렛이란 분이 쓴 책인데 주인공은 로고라는 이름의 유니코 회사에 근무하는 공장장입니다. 그런데 그 공장에서 생산되는 기계명 41427이란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 본부장과 갈등을 하면서 공장을 폐쇄시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출장가는 공항에서 자기의 은사 요나 교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요나 교수에게서 한가지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목표가 정확하지 않은 생산성이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기업도 목표가 상실되면 아무리 생산성이 높다고 해도 그 높다고 하는 생산성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 요나 교수의 따끔한 충고였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인 로고 공장장은 자기가 지금까지 숫자놀음에, 그리고 자기 합리화에 빠져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젊은 청년들이 제일 쉽게 빠지는 함정이 바로 자기 합리화입니다. 자기 논리가 최고라고 자칫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아이템, 나이 드신 분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곧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합리화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사랑하는 동광 성도 여러분 ! 그리고 성청 주일을 맞이한 청년 성도 여러분 !
지금 교회 문을 나서서 여러분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예전에 술꾼에게 누가 물었다고 합니다. "술을 먹을거냐 아니면 밥을 먹을거냐 아니면 떡을 먹을거냐" 그랬더니 술꾼이 하는 말이 술에다 밥 말아서 떡을 안주 삼아 먹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절제도 없고, 목표도 없고, 인생의 참 가치도 모르는 불량한 사람의 대답입니다. 노력하는 있는 여러분의 인생에 신앙의 목표를,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여러분의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그 목표가 불확실하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생산성 없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동광의 성도들과 청년들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도전의식으로 무장하고 확고한 자기 의식을 바탕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인식하고 사는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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