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새벽 이슬같은 주의 청년들
본문
아이들은 자연히 자기 부모를 닮아갑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들도 여호와 하나님을 닮아가는데 그 모델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 사촌 남동생을 보면 나이가 먹을 수록 점점 자기 아버지를 닮아갑니다. 모습도 성격도 점점 뻬닮아가요.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을 볼 때마다 소망을 갖습니다. 이제 곧 예수님을 점점 더 닮아갈테니까요.
예수님을 닮으면 예수님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의 삶을 살기가 어려운 것은 아직 덜 닮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한마디로 능력과 영광의 삶입니다. 십자가 보혈로 마귀의 권세인 죄와 사망을 깨뜨리고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하신 영광의 삶입니다.
오늘 다윗의 시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영원한 제사장이셨습니다(4절을 보십시오).
이는 여호와 하나님과 원수된 온 인류를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는 대제사장의 모습입니다. 스스로 희생 제물이 되셔서 온 인류의 죄값을 치루시고 누구든지 예수 믿기만 하면 구원 얻는 생명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40일 동안 이 땅에 계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가 그들이 보는데서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1절을 보십시오).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님의 손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의 홀이 쥐어졌기 때문입니다(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한 권세와 능력을 가지셨다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한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예수님은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왕으로 오실 것입니다. 세상 모든 왕들을 진노로 쳐서 굴복 시키고 심판하실 입니다(5-7절을 보십시오).
예수 닮으면 이와같은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를 누릴 수 있습니다.
마 28: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닮아 동일한 능력과 권세를 가진 자들을 3절에는, 새벽 이슬같은 주의 청년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12 제자들이었고,
마가 다락방에서 기도하다가 성령 강림을 받아 초대교회를 이룬 성도들이었고,
중세의 타락한 카톨릭 교회로부터 진리의 복음적인 교회로 건져낸 종교개혁자 루터와 개신교 지도자들이었으며,
영국을 죄악 가운데서 건져낸 존 웨슬레의 전도단들이었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신대륙에 건너가 미국을 건설한 청교도들이었고,
일제 시대 조국의 광복 운동을 앞장서고 조국의 복음화에 앞장 선 조선의 기독교인들이었으며
이제 2천년대 ‘예수세상을 소원하여’ 온 세상에 복음으로 정복할 벧엘동산교회의 여러분들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새벽 이슬같은 주의 청년들은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했습니다.
이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구별된 삶을 살았으며, 몸을 바쳐 주님의 일하는 것을 생애 가장 보람있고 기쁘고 즐거운 일로 삼았단 말입니다. 바로 예수 능력과 권세를 받은 자의 전형적인 모습이지요.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
이슬이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의미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인간의 허무함입니다.
(호 6:4)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둘째, 생명을 살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호 14:5)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오늘 시편에서 의미하는 이슬의 의미는 ‘생명을 살리는 은혜’입니다.
이스라엘 지방이 기후는 지중해형으로 연간 2계절 밖에 없습니다. ‘비가 오는 겨울’(10월-4월)과 건조한 ‘여름’(5월-9월)입니다. 그래서 성지 순례로 이스라엘을 방문할 때, 우리 나라 기후식으로 생각했다간 큰 낭패를 봅니다. 우리 나라 기후는 5월이 가장 온화하고 좋은 때지요, 그래서 5월에 이스라엘에 가면 이미 건기철이 시작되어 식물이 타죽어 갑니다.
우리 나라는 겨울에 모든 나무들이 동면하는 계절이나, 이스라엘은 여름이 모든 식물들이 타죽어 매마르는 일년을 마감하는 계절입니다.
이스라엘의 여름은 모든 식물들이 다 타죽는 죽음의 계절입니다.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슬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슬은 소리없이 매일 새벽에 내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년에 250일만 내립니다. 여름 농작물을 유지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생수의 공급원입니다.
그러므로 새벽이슬 같은 능력을 가진 주의 청년은 곧 새벽 이슬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새벽 이슬”같은 삶은 어떤 것입니까
1. 밤중에도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새벽 이슬은 밤에 맺힙니다.
밤은 빛이 없습니다. 어디에 빠질 웅덩이가 있고, 맹수가 나타날지 모르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인생에도 밝고 환한 낮이 있는가하면 어두운 밤이 있습니다. 잘 나가던 때, 성공하고 건강하고 번영하는 때가 있는가 하면, 어려운 일을 당하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고민하는 어두운 밤같은 때가 온다는 말입니다.
시편 77편은 인생의 어두운 밤을 맞은 시인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시 77:2-9) 2 나의 환난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셀라) ···6 밤에 한 나의 노래를 기억하여 마음에 묵상하며 심령이 궁구하기를 7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7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8 그 인자하심이 길이 다하였는가, 그 허락을 영구히 폐하
셨는가, 9 여호와 하나님이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 긍휼을 막으셨는가 하였나이다(셀라)
이슬은 밤에 내립니다. 깊은 밤에 내립니다. 밤이 없다면 이슬은 내리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는 환난과 고통을 당하는 인생의 어두운 밤에 더욱 임합니다. 실패와 좌절 가운데서 주님의 도우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밤을 잘 자야 좋은 아침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밤에 이불을 안덮고 과식하면 병이 옵니다. 그러나 밤에 잘 자면 병이 나갑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운 인생의 밤을 잘 겪은 사람들입니다. 밤이 없이 낮도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한 것 같습니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않을 것 같습니까
다시는 사랑을 베풀지 않을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의 가족을 사랑하고, 우리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시 121:6)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낮에만 지구가 도는 것이 아닙니다. 밤에도 지구는 돌고, 태양은 빛을 내고 있고, 구름은 오가고 바람은 불고, 여호와 하나님은 여전히 성실히 사랑의 손길을 베풀고 있습니다.
내가 힘들고, 어렵고 실패하고 안되고 불안하고 두려울 때에도 여호와 하나님은 여전히 성실히 일하십니다.
(시 92:1)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예수님도 3년간 그리스도로서 사역을 감당하시기 위해 30년을 밤같은 생애를 사셨습니다.
요셉도 애굽의 총리가 되기위해 13년의 밤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모세도 40년 사역을 위해 80년을 밤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다윗도 이스라엘 왕이 되기 위해 7년 6개월의 밤같은 고난의 때를 지내왔습니다.
심지어 여름철에 나무에서 우는 매미도 7일동안 울려고 7년을 땅 속에서 굼뱅이로 삽니다.
밤중에 소망을 가집시다. 이제 곧 아침이 올 것입니다. 밤이 깊어질 수록 어둠도 깊어지나 그 때는 이슬이 맺히는 때입니다. 당신의 삶 속에 힘든 것이 계속 될수록 여호와 하나님의 이슬같은 은혜의 농도는 짙어 갑니다.
“새벽 이슬”같은 삶은 어떤 것입니까
2. 밤중에도 인내하는 것입니다.
이슬이 밤에 내리는 원리를 보면
햇볕이 내리쬐던 낮동안의 따뜻한 대기는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지게 되면 공기가 차거운 나무 잎이나 대지 위에 작은 물방울을 맺습니다. 밤 기온이 내려가야 이슬이 잘 맺힙니다. 이스라엘 건기철의 기온은 낮에는 뜨겁고 밤은 차겁습니다. 더운 기온의 식물들이 밤에 찬 공기에 얼마나 고통하겠습니까 바로 그런 밤일 수록 거기서 인내하면 이슬이 머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나라 기후를 보면 한 여름엔 이슬이 없습니다. 25도 이상되는 열대야에는 절대로 이슬이 없습니다. 늦가을이 되어야 이슬이 맺힙니다.
24절기에서 입추(立秋)를 지나 처서(處暑)를 지나면 백로(白露)가 옵니다. 백로가 지나면 추분(秋分)이 오고 한로(寒露)가 오고 상강(霜降), 입동(立冬) 겨울이 시작됩니다.
‘백로’와 ‘한로’ //하얀 이슬과 찬 이슬이라는 말이지요.
백로는 초가을에 내리는 이슬인데,
백로에 접어들면 밤하늘에선 순간적으로 빛이 번쩍일 때가 더러 있다. 농부들은 이를 두고 벼이삭이 패고 익는 것이 낮동안 부족해 밤에도 하늘이 보탠다고 한다. 이 빛의 번쩍임이 잦을수록 풍년이 든다고 한다.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가운데 한낮에는 초가을의 노염(老炎)이 쌀농사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벼 이삭이 여물어 가는 등숙기(登熟期 : 양력 8월중순 - 9월말)의 고온 청명한 날씨는 벼농사에 더없이 좋고, 일조량이 많을수록 소확량도 많아지게 된다. 이때의 햇살과 더위야말로 농작물엔 보약과 다름없는 것이다.
한로는 늦가을에 내리는 이슬인데,
한로에는 찬 이슬 머금은 국화꽃 향기 그윽하고 기온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진다. 이즈음 기온이 더욱 내려가니 늦가을 서리를 맞기 전에 빨리 추수를 끝내려고 농촌은 바쁘기 그지 없다. 벼이삭 소리 슬슬 서걱이고 곡식과 과일이 결실을 맺는 때. 북에서부터 남으로 내려오는 벼들의 황금빛 물결에 맞추어 벼베기가 시작되고 단풍은 춤추듯 그 붉은 자태를 뽐내기 시작한다. 하늘은 더없이 맑고 높다. 벼가 여물어 들판이 황금물결로 출렁일때 농부들은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벼를 베거나 타작하는 날은 무슨 잔칫날처럼 부산하고 고될망정 수확을 하는 농부의 얼굴에는 웃음이 넘친다.
이슬은 밤중의 차거운 공기에서 내립니다. 동물들은 밤 이슬을 피해 굴 속에 들어가나 식물들은 그 자리에서 인내합니다. 이슬을 그대로 맡습니다 기온이 뚝 떨어져서 고통하겠지만 그 때야 말로 은혜가 맺히는 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환난의 밤에 견디기 어려운 일을 당했습니다. 나라는 바벨론에 침략을 당해 빼앗겼습니다. 모두 포로되어 잡혀 갔습니다. 아들들은 전쟁터에서 죽고, 유력자들은 포로로 잡혀갔고, 부녀자들은 농락 당했습니다. 밤 중에도 차거운 밤중이었습니다 .
이사야 선지자는 이 때 백성들에게 이런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
(사 55:1-10) 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지금 어렵습니까 소망에 한계가 와서 절망으로 변하고 있습니까 절망은 포기하는 것입니다. 자리를 떠나는 것입니다. 인내합시다. 곁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을 찾읍시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 되시고 멸시 천대 받았습니다. 십자가의 죄인되어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병사들의 채찍에 맞아 온 몸이 찢기고 할퀴였습니다. 피가 철철 흘렀고 목말랐고 벌거벗으셨습니다. 그래도 인내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인내에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면 십자가 위에서 내려오셨을 것입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죄값을 치룰 길이 없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은 땅에 떨어졌을 것입니다.
찬송가, 504장을 불러 봅시다.
밤 중에, 차거운 공기가 고통스럽습니까 인내 하는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이슬같이 더욱 더 임합니다.
“새벽 이슬”같은 삶은 어떤 것입니까
3. 밤중에도 하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슬은 기온이 차거울뿐더러 하늘이 맑아야 합니다. 하늘이 높고 맑은 날은 복사 냉각이 잘 됩니다. 우주에게 지구 땅의 열기를 빼앗기기 때문에 기온이 잘 내려갑니다. 이런 날은 이슬이 많이 맺힙니다.
날이 흐리고 구름이 잔뜩 낀 날은 땅의 열기가 우주로 빼앗기는 것을 차단합니다. 온도가 내려가지 않기에 이슬이 맺히지 않아요.
내 생각과 판단이 하늘로부터 오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차단합니다.
(시 77:2-9) 2 나의 환난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셀라) ···6 밤에 한 나의 노래를 기억하여 마음에 묵상하며 심령이 궁구하기를 7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7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8 그 인자하심이 길이 다하였는가, 그 허락을 영구히 폐하
셨는가, 9 여호와 하나님이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 긍휼을 막으셨는가 하였나이다(셀라)
어두움이 싫은 것이 사람의 본능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기를 발명하여 밤을 대낮같이 밝힙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단번에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는가 내가 뭐 크게 잘 못한 것이 있는가 여호와 하나님이 왜 이러시지 ,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섭섭한 생각이 변하여 원망까지고 하게 됩니다.
나의 부정적인 생각, 단편적인 생각을 걷어내야 합니다.
(시 13:5)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우리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맑아야 하늘이 보이고 맑은 하늘이 보여야 이슬이 맺힙니다.
우리 나라를 향해, 우리 가정을 향해, 우리 교회를 향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내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생각으로 채웁시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당신의 생각과 여호와 하나님의 생각을 놓고 갈등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눅 22:42)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내 원대로의 먹장 구름이 거두어 주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맑은 하늘을 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예수님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능히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도록 도우셨습니다.
기도란 아버지의 원대로 되게 해달라는 간구여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자녀들과 가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원대로 살기위해 기도하십시오.
우리 나라가, 우리 기업이, 우리 교회가 여호와 하나님의 원대로 되어지기를 기도합시다. 하늘이 열리고 이슬같은 주님의 은혜가 가득해 질 것입니다.
(시 116:1-2) 1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 2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결언:
밤을 잘 지내 이슬을 많이 머금은 곡식은 잘 자라 창고에 들어갑니다.
새벽이슬같은 주의 청년들
밤같은 인생의 어려움을 주의 은혜로 잘 극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일을 감당합니다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몸을 바쳐 헌신합니다.
그들은 능력과 권세를 누립니다. 세상을 예수로 정복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합니다.
우리 벧엘동산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새벽이슬같은 주의 청년들이 되는 축복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우리 사촌 남동생을 보면 나이가 먹을 수록 점점 자기 아버지를 닮아갑니다. 모습도 성격도 점점 뻬닮아가요.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을 볼 때마다 소망을 갖습니다. 이제 곧 예수님을 점점 더 닮아갈테니까요.
예수님을 닮으면 예수님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의 삶을 살기가 어려운 것은 아직 덜 닮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한마디로 능력과 영광의 삶입니다. 십자가 보혈로 마귀의 권세인 죄와 사망을 깨뜨리고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하신 영광의 삶입니다.
오늘 다윗의 시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영원한 제사장이셨습니다(4절을 보십시오).
이는 여호와 하나님과 원수된 온 인류를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는 대제사장의 모습입니다. 스스로 희생 제물이 되셔서 온 인류의 죄값을 치루시고 누구든지 예수 믿기만 하면 구원 얻는 생명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40일 동안 이 땅에 계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가 그들이 보는데서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1절을 보십시오).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님의 손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의 홀이 쥐어졌기 때문입니다(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한 권세와 능력을 가지셨다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한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예수님은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왕으로 오실 것입니다. 세상 모든 왕들을 진노로 쳐서 굴복 시키고 심판하실 입니다(5-7절을 보십시오).
예수 닮으면 이와같은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를 누릴 수 있습니다.
마 28: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닮아 동일한 능력과 권세를 가진 자들을 3절에는, 새벽 이슬같은 주의 청년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12 제자들이었고,
마가 다락방에서 기도하다가 성령 강림을 받아 초대교회를 이룬 성도들이었고,
중세의 타락한 카톨릭 교회로부터 진리의 복음적인 교회로 건져낸 종교개혁자 루터와 개신교 지도자들이었으며,
영국을 죄악 가운데서 건져낸 존 웨슬레의 전도단들이었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신대륙에 건너가 미국을 건설한 청교도들이었고,
일제 시대 조국의 광복 운동을 앞장서고 조국의 복음화에 앞장 선 조선의 기독교인들이었으며
이제 2천년대 ‘예수세상을 소원하여’ 온 세상에 복음으로 정복할 벧엘동산교회의 여러분들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새벽 이슬같은 주의 청년들은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했습니다.
이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구별된 삶을 살았으며, 몸을 바쳐 주님의 일하는 것을 생애 가장 보람있고 기쁘고 즐거운 일로 삼았단 말입니다. 바로 예수 능력과 권세를 받은 자의 전형적인 모습이지요.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
이슬이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의미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인간의 허무함입니다.
(호 6:4)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둘째, 생명을 살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호 14:5)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오늘 시편에서 의미하는 이슬의 의미는 ‘생명을 살리는 은혜’입니다.
이스라엘 지방이 기후는 지중해형으로 연간 2계절 밖에 없습니다. ‘비가 오는 겨울’(10월-4월)과 건조한 ‘여름’(5월-9월)입니다. 그래서 성지 순례로 이스라엘을 방문할 때, 우리 나라 기후식으로 생각했다간 큰 낭패를 봅니다. 우리 나라 기후는 5월이 가장 온화하고 좋은 때지요, 그래서 5월에 이스라엘에 가면 이미 건기철이 시작되어 식물이 타죽어 갑니다.
우리 나라는 겨울에 모든 나무들이 동면하는 계절이나, 이스라엘은 여름이 모든 식물들이 타죽어 매마르는 일년을 마감하는 계절입니다.
이스라엘의 여름은 모든 식물들이 다 타죽는 죽음의 계절입니다.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슬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슬은 소리없이 매일 새벽에 내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년에 250일만 내립니다. 여름 농작물을 유지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생수의 공급원입니다.
그러므로 새벽이슬 같은 능력을 가진 주의 청년은 곧 새벽 이슬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새벽 이슬”같은 삶은 어떤 것입니까
1. 밤중에도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새벽 이슬은 밤에 맺힙니다.
밤은 빛이 없습니다. 어디에 빠질 웅덩이가 있고, 맹수가 나타날지 모르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인생에도 밝고 환한 낮이 있는가하면 어두운 밤이 있습니다. 잘 나가던 때, 성공하고 건강하고 번영하는 때가 있는가 하면, 어려운 일을 당하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고민하는 어두운 밤같은 때가 온다는 말입니다.
시편 77편은 인생의 어두운 밤을 맞은 시인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시 77:2-9) 2 나의 환난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셀라) ···6 밤에 한 나의 노래를 기억하여 마음에 묵상하며 심령이 궁구하기를 7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7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8 그 인자하심이 길이 다하였는가, 그 허락을 영구히 폐하
셨는가, 9 여호와 하나님이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 긍휼을 막으셨는가 하였나이다(셀라)
이슬은 밤에 내립니다. 깊은 밤에 내립니다. 밤이 없다면 이슬은 내리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는 환난과 고통을 당하는 인생의 어두운 밤에 더욱 임합니다. 실패와 좌절 가운데서 주님의 도우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밤을 잘 자야 좋은 아침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밤에 이불을 안덮고 과식하면 병이 옵니다. 그러나 밤에 잘 자면 병이 나갑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운 인생의 밤을 잘 겪은 사람들입니다. 밤이 없이 낮도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한 것 같습니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않을 것 같습니까
다시는 사랑을 베풀지 않을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의 가족을 사랑하고, 우리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시 121:6)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낮에만 지구가 도는 것이 아닙니다. 밤에도 지구는 돌고, 태양은 빛을 내고 있고, 구름은 오가고 바람은 불고, 여호와 하나님은 여전히 성실히 사랑의 손길을 베풀고 있습니다.
내가 힘들고, 어렵고 실패하고 안되고 불안하고 두려울 때에도 여호와 하나님은 여전히 성실히 일하십니다.
(시 92:1)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예수님도 3년간 그리스도로서 사역을 감당하시기 위해 30년을 밤같은 생애를 사셨습니다.
요셉도 애굽의 총리가 되기위해 13년의 밤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모세도 40년 사역을 위해 80년을 밤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다윗도 이스라엘 왕이 되기 위해 7년 6개월의 밤같은 고난의 때를 지내왔습니다.
심지어 여름철에 나무에서 우는 매미도 7일동안 울려고 7년을 땅 속에서 굼뱅이로 삽니다.
밤중에 소망을 가집시다. 이제 곧 아침이 올 것입니다. 밤이 깊어질 수록 어둠도 깊어지나 그 때는 이슬이 맺히는 때입니다. 당신의 삶 속에 힘든 것이 계속 될수록 여호와 하나님의 이슬같은 은혜의 농도는 짙어 갑니다.
“새벽 이슬”같은 삶은 어떤 것입니까
2. 밤중에도 인내하는 것입니다.
이슬이 밤에 내리는 원리를 보면
햇볕이 내리쬐던 낮동안의 따뜻한 대기는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지게 되면 공기가 차거운 나무 잎이나 대지 위에 작은 물방울을 맺습니다. 밤 기온이 내려가야 이슬이 잘 맺힙니다. 이스라엘 건기철의 기온은 낮에는 뜨겁고 밤은 차겁습니다. 더운 기온의 식물들이 밤에 찬 공기에 얼마나 고통하겠습니까 바로 그런 밤일 수록 거기서 인내하면 이슬이 머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나라 기후를 보면 한 여름엔 이슬이 없습니다. 25도 이상되는 열대야에는 절대로 이슬이 없습니다. 늦가을이 되어야 이슬이 맺힙니다.
24절기에서 입추(立秋)를 지나 처서(處暑)를 지나면 백로(白露)가 옵니다. 백로가 지나면 추분(秋分)이 오고 한로(寒露)가 오고 상강(霜降), 입동(立冬) 겨울이 시작됩니다.
‘백로’와 ‘한로’ //하얀 이슬과 찬 이슬이라는 말이지요.
백로는 초가을에 내리는 이슬인데,
백로에 접어들면 밤하늘에선 순간적으로 빛이 번쩍일 때가 더러 있다. 농부들은 이를 두고 벼이삭이 패고 익는 것이 낮동안 부족해 밤에도 하늘이 보탠다고 한다. 이 빛의 번쩍임이 잦을수록 풍년이 든다고 한다.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가운데 한낮에는 초가을의 노염(老炎)이 쌀농사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벼 이삭이 여물어 가는 등숙기(登熟期 : 양력 8월중순 - 9월말)의 고온 청명한 날씨는 벼농사에 더없이 좋고, 일조량이 많을수록 소확량도 많아지게 된다. 이때의 햇살과 더위야말로 농작물엔 보약과 다름없는 것이다.
한로는 늦가을에 내리는 이슬인데,
한로에는 찬 이슬 머금은 국화꽃 향기 그윽하고 기온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진다. 이즈음 기온이 더욱 내려가니 늦가을 서리를 맞기 전에 빨리 추수를 끝내려고 농촌은 바쁘기 그지 없다. 벼이삭 소리 슬슬 서걱이고 곡식과 과일이 결실을 맺는 때. 북에서부터 남으로 내려오는 벼들의 황금빛 물결에 맞추어 벼베기가 시작되고 단풍은 춤추듯 그 붉은 자태를 뽐내기 시작한다. 하늘은 더없이 맑고 높다. 벼가 여물어 들판이 황금물결로 출렁일때 농부들은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벼를 베거나 타작하는 날은 무슨 잔칫날처럼 부산하고 고될망정 수확을 하는 농부의 얼굴에는 웃음이 넘친다.
이슬은 밤중의 차거운 공기에서 내립니다. 동물들은 밤 이슬을 피해 굴 속에 들어가나 식물들은 그 자리에서 인내합니다. 이슬을 그대로 맡습니다 기온이 뚝 떨어져서 고통하겠지만 그 때야 말로 은혜가 맺히는 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환난의 밤에 견디기 어려운 일을 당했습니다. 나라는 바벨론에 침략을 당해 빼앗겼습니다. 모두 포로되어 잡혀 갔습니다. 아들들은 전쟁터에서 죽고, 유력자들은 포로로 잡혀갔고, 부녀자들은 농락 당했습니다. 밤 중에도 차거운 밤중이었습니다 .
이사야 선지자는 이 때 백성들에게 이런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
(사 55:1-10) 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지금 어렵습니까 소망에 한계가 와서 절망으로 변하고 있습니까 절망은 포기하는 것입니다. 자리를 떠나는 것입니다. 인내합시다. 곁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을 찾읍시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 되시고 멸시 천대 받았습니다. 십자가의 죄인되어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병사들의 채찍에 맞아 온 몸이 찢기고 할퀴였습니다. 피가 철철 흘렀고 목말랐고 벌거벗으셨습니다. 그래도 인내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인내에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면 십자가 위에서 내려오셨을 것입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죄값을 치룰 길이 없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은 땅에 떨어졌을 것입니다.
찬송가, 504장을 불러 봅시다.
밤 중에, 차거운 공기가 고통스럽습니까 인내 하는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이슬같이 더욱 더 임합니다.
“새벽 이슬”같은 삶은 어떤 것입니까
3. 밤중에도 하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슬은 기온이 차거울뿐더러 하늘이 맑아야 합니다. 하늘이 높고 맑은 날은 복사 냉각이 잘 됩니다. 우주에게 지구 땅의 열기를 빼앗기기 때문에 기온이 잘 내려갑니다. 이런 날은 이슬이 많이 맺힙니다.
날이 흐리고 구름이 잔뜩 낀 날은 땅의 열기가 우주로 빼앗기는 것을 차단합니다. 온도가 내려가지 않기에 이슬이 맺히지 않아요.
내 생각과 판단이 하늘로부터 오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차단합니다.
(시 77:2-9) 2 나의 환난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셀라) ···6 밤에 한 나의 노래를 기억하여 마음에 묵상하며 심령이 궁구하기를 7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7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8 그 인자하심이 길이 다하였는가, 그 허락을 영구히 폐하
셨는가, 9 여호와 하나님이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 긍휼을 막으셨는가 하였나이다(셀라)
어두움이 싫은 것이 사람의 본능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기를 발명하여 밤을 대낮같이 밝힙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단번에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는가 내가 뭐 크게 잘 못한 것이 있는가 여호와 하나님이 왜 이러시지 ,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섭섭한 생각이 변하여 원망까지고 하게 됩니다.
나의 부정적인 생각, 단편적인 생각을 걷어내야 합니다.
(시 13:5)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우리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맑아야 하늘이 보이고 맑은 하늘이 보여야 이슬이 맺힙니다.
우리 나라를 향해, 우리 가정을 향해, 우리 교회를 향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내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생각으로 채웁시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당신의 생각과 여호와 하나님의 생각을 놓고 갈등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눅 22:42)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내 원대로의 먹장 구름이 거두어 주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맑은 하늘을 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예수님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능히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도록 도우셨습니다.
기도란 아버지의 원대로 되게 해달라는 간구여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자녀들과 가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원대로 살기위해 기도하십시오.
우리 나라가, 우리 기업이, 우리 교회가 여호와 하나님의 원대로 되어지기를 기도합시다. 하늘이 열리고 이슬같은 주님의 은혜가 가득해 질 것입니다.
(시 116:1-2) 1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 2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결언:
밤을 잘 지내 이슬을 많이 머금은 곡식은 잘 자라 창고에 들어갑니다.
새벽이슬같은 주의 청년들
밤같은 인생의 어려움을 주의 은혜로 잘 극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일을 감당합니다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몸을 바쳐 헌신합니다.
그들은 능력과 권세를 누립니다. 세상을 예수로 정복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합니다.
우리 벧엘동산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새벽이슬같은 주의 청년들이 되는 축복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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