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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청년부의 우선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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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우리는 찬양예배를 드렸습니다. 찬양하는 여러분도 은혜를 받았겠지만 여러분들의 모습 속에서 저 자신도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죄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우리가 좀더 예배를 잘 드릴 수 없을까요 이것이 우리가 끊임없이 준비해야될 부분입니다.
요즈음 예배는 어떤 교인들에게는 종교인 노릇을 유지하기 위한 의무라고 이해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별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어 졸음으로 일관하는 수면파(睡眠派)가 있고, 예배 순서가 따분해 주보에 낙서를 하고 어떤 내용에 교정까지 보는 교정파(校定派)도 있습니다. 또 언제 설교가 끝나나 하며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보는 시간 엄수파도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이 세 가지 유형 중에 나의 모습이 있지는 않습니까
이런 식의 예배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견디는 것입니다. 이런 의무감과 종교적 체면에 얽매어 억지로 견뎌내는 의식을 감히 참된 예배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한 교회의 예배는 그 교회의 영적인 수준을 넘을 수 없습니다. 청년부의 예배는 우리의 영적인 수준을 넘을 수 없습니다. 청년부의 부흥과 신앙 생활의 핵심에는 이처럼 예배를 어떻게 드리는가 에 따라 결정됩니다.
오늘은 본문의 말씀을 근거로 예배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예배는 단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예배가 일방 통행으로 우리의 정성만 쏟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사건을 생각하고 되새기는 추도식이나 기념식도 아닙니다. 참된 예배는 부족한 죄인들이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감히 아버지로 만나 뵙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배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뉘우치고, 주의 보혈로 죄 사함 받아 감격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받아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사마리아 여인이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할 장소에 대하여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1-24).
이 말씀은 참된 예배는 장소나 어떤 의식이 아니라 어떤 태도로 누구를 예배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또한 참된 예배를 드릴 때는 지금, 그리고 오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참되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예배해야 합니까 우리의 예배 태도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호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무엇인가 얻으려고 교회에 갑니다. 어떤 이들은 누가 설교하는지 알아보고 예배를 드리러 가기도 합니다.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예배가 무엇인지 바로 파악하지 못한 데에서 나오는 행동입니다. 설교 자체가 예배의 목적이 될 수 없고 또한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의 모든 내용이나 순서는 교인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을 참으로 예배할 수 있게 하는 수단입니다. 여러분, 예배는 무엇을 얻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생명 같은 아들 이삭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모리아 산 제단에 드림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베다니에 사는 마리아는 순전한 나드가 든 값진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뿌리고 그 무릎 앞에 엎드려 그녀의 눈물과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어 드렸습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 나타난 예배의 본질은 마음과 몸을 바쳐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만연되어 있는 심각한 문제는 많은 예배자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우리를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심정이 어떤지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의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나의 예배에 대한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개역개정 성경에는 '영과 진리로'(24절) 번역이 되어 있지만 헬라어 원전에는 '성령과 진리 안에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참된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 안에서 즉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리대로 즉 여호와 하나님이 지시한 대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자기들 나름대로 소원 성취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 드립니다.
그러나 주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우리들은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지시한 대로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모세를 통해 시내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성막을 짓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사울은 예배 한 번 잘못 드렸다가 저주를 받았습니다. 은혜의 시대인 지금도 우리는 반드시 대제사장이요, 진리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드려져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여 드려지는 예배, 여호와 하나님의 지시대로 드리고, 진리가 선포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는 예배는 여호와 하나님과 만남의 감격을 상실한 채 습관적으로 드리는 공허한 예배가 됩니다.
성령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는 예배가 드려질 때 비로소 교회가 세상의 종교 모임과 다른 신성한 그리스도의 몸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임재하심 앞에서 사죄가 선언됩니다.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높이고 송축하고 힘을 다해 찬양해야 합니다. 주어진 기회를 소중히 여기며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기도를 간절히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마음이 담긴 예물을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이럴 때 여호와 하나님은 참된 예배를 드리는 자들, 죄진 자들을 용서하시고, 지친 자에게는 쉼을 주시고, 상한 자는 만져 주십니다. 그리고 갈급한 자에게는 생수를 주시고, 사명자에게는 말씀을 주시며 능력과 믿음을 더하려 주실 것입니다.
신앙 생활에서 예배와 사역의 조화를 이루고 예배와 사역의 중요성을 바로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누가복음 10장 38-42절 말씀을 묵상해 보면 마르다는 언제나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대접하는 사역에 매우 열성적이고 분주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과 교제하고 말씀을 듣고 사랑하는 데 마음이 쏠렸습니다. 마르다가 약간의 불평 어린 건의를 주님께 드렸을 때 주님은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눅 10:42)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분주한 사역보다 여호와 하나님과 같이하는 사랑의 교제, 즉 주님을 예배하는 것이 더 좋은 편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배 시간이 되었는데 특송 준비로 예배에 늦게 들어온다면, 예배 후에 있을 행사 때문에 예배에 빠진다는 것은 마르다의 모습입니다.
참된 예배는 사람을 돌보는 사역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가 실용주의로 흘러 각종 프로그램이나 사역이나 행사 위주가 되어 분주한 경향이 있습니다. 예배는 제도화되어 매우 경직된 분위기로 변했습니다.
예배와 사역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사역이 성령의 충만함으로 영적인 은사를 통해 하늘의 은혜와 역사가 성도들에게 내려오는 것이라면, 예배는 성령의 임재 가운데서 구원의 감격과 영적인 은사들을 통하여 성도들로부터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불행하게도 사역 지향적일 경우가 많습니다. 한 예를 들면 예배를 드리고자 교역자를 초청해 놓고도 손님 접대에 마음을 빼앗겨 그 귀중한 예배 중에도 마르다처럼 부엌에 들락거리는 모습을 봅니다. 이 가정이 참으로 예배를 위하여 초청한 것인지 심방 온 분들에게 사는 모습을 자랑하고 후하게 대접하려는 것인지 혼돈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들의 예배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우선적이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영이시니 참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예배와 찬송을 받으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셨고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택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비하셔서 이 땅에 독생자를 보내셨고, 죄 없으신 예수님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친히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온전한 제사를 드림으로 지성소의 휘장이 갈라져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새로운 예배의 길이 열렸습니다. 길이요 진리 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참된 예배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요 14:6). 예수의 공로를 의지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로 말미암아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가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여러분!
참된 예배의 길을 열어 놓으신 주님은 우리가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기 원하십니다. 예배는 중심을 보시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택함 받은 우리가 자원하는 마음,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배란 주님의 날, 약속된 시간에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만유의 주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송하며 베푸신 은혜에 감격함으로써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예배드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스바냐 3장 17절의 말씀대로 예배자들 가운데 임하셔서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며 또한 우리들에게 은총을 베푸신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배란 멸망에서 구원받은 성도가 전능자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영원한 주인으로 모시고 기뻐하고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참된 예배는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합니다. 주 안에서 형제 자매 된 예배자들이 예배 공동체로서의 일체감을 느낍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역동적인 축제여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러 올 때 우리는 샤워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은혜를 사모하며 정혼한 약혼자와 데이트 시간을 지키는 것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는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만약 여러분의 신앙 생활에 활력이 없다면 그 원인은 바로 여러분이 드리는 예배가 성경적이 아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공적인 예배에서 체험되는 은혜와 말씀의 도전은,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가운데 구체적으로 행함으로써 열매가 반드시 맺어져야만 합니다.
공적 예배는 성스러운 것이고, 그 외의 생활은 세상에 속한다고 하는 이원론적인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러한 이원론적인 사고는 믿는 자들로 하여금 공적인 예배 후에, 예배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커다란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모여서 드리는 예배가 바로 흩어지는 교회로 이어지는 사명자 파송식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예배자가 주일에는 신령한 예배를 드리지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도 된다는 의식이 변화되어야 진정한 예배 생활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주일에 모여서 드리는 예배가 흩어져 생활하는 모든 분야에까지 연결되지 아니하면 참된 예배가 아닙니다. 출퇴근, 등하교 시간이나 집안에서 가사를 돌보면서, 또한 직장에서 "무엇을 하든지 주께 하듯하므로"(골 3:22) 우리는 "그리스도 주를 섬기느니라"(골 2:24)는 말씀을 이루어야만 합니다. 우리들의 이 예배가 1부 예배라 한다면, 이 후에 있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우리의 일상 생활은 2부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청년들의 문제는 기독교에 대한 지식의 빈약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망극하신 사랑에 대한 감격에 걸맞는 행동이 없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에서 사도 바울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너희 몸을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는 말씀의 의미는 우리의 눈과 귀, 그리고 말하는 입과 일할 수 있는 손과 발, 즉 우리의 온몸 전체를 동원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 생활의 성공이요,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 즉 생활로서의 예배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요 4:23)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의 위기는 바로 참된 예배자가 줄어들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참된 예배자를 찾으시지만 교인들은 회중 집회만 예배로 알고, 그들의 관심은 '언제 폐회하나…누가 기다리는데' 등 엉뚱한 곳에 있습니다. 이처럼 예배를 단지 한 시간 동안 의례적으로 보내야 할 순서로만 생각한다면, 그들의 신앙 생활은 이미 위기가 온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청년들이 은혜를 경험하지 않으면 청년부의 부흥은 없습니다.
청년부의 부흥도 그 진정한 열쇠는 예배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예배가 은혜 충만하면 저절로 출석인원이 늘어납니다. 예배 한번 잘 드리면 전도행사 열 번 잘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매주일 드리는 예배가 은혜스러워야 그 밖의 모든 활동이 제 빛을 낼 수 있습니다. 예배 시간에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니까 청년들이 색다른 순서나 프로그램에서 은혜 받으려고 덤벼듭니다. 하지만 예배라는 정상적인 통로를 통해 은혜 받지 않고서는 건강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은혜가 넘치는 예배가 되려면 반드시 준비가 필요합니다.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느냐에 따라 예배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준비되지 않은 예배를 매주일 반복하다보면 늘 어수선하고 생동감 없는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그런 예배를 통해서는 위로도 결단도 얻어질 수 없다. 예배는 예배다워야 한다. 예배가 살아나야 청년들도 살아납니다.
청년부가 부흥하길 원하십니까
그러면 여러분 모두 예배에 승부를 거시길 바랍니다.
성경공부가 활성화되어 부흥한다는 청년부를 찾아가 보았더니 예배가 뜨거웠습니다. 실제는 예배를 통해 은혜 받는 청년부였습니다. 청년부의 모든 활동과 가르침이 최상의 예배를 드리기 위한 준비로서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예배는 형식에 불과하고 친교하고 봉사하는 데만 힘쓴다면 머지않아 지치고 말 것입니다. 예배는 신앙생활을 힘있게 해주는 샘물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예배만 참석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신앙이 승리한다는 희망이 솟아나야 합니다. 이러한 감격이 없으면 예배는 행사 의식으로 전락해버리고 말 것입니다. 청년부 부흥의 비밀은 예배 속에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 은혜 받고 감동하면 청년들은 스스로 찾아들게 되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예배'는 '은혜스러운 예배'와 함께 청년예배가 추구해야할 또 하나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구약시대의 제사제도는 최상의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다리를 절거나 눈이 먼 짐승은 제물로 바쳐질 수 없었습니다. 흠도 티도 없는 것이어야 합격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뿐입니까 제사에 사용되는 모든 기구도 예컨대, 그릇이나 크고 작은 물품에 이르기까지 순금이나 황금을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레위기의 제사 규정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절차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도 인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건물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지어졌습니다. 우리의 예배도 여호와 하나님께 최상의 예배를 드리도록 하기 위해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해야 되지 않을까요
성령충만한 예배는 늘 준비된 예배에서 나타납니다. 비록 한 시간의 예배라 할지라도 누군가 그 한 번의 예배를 위해 세심하게 배려하고 준비해 놓으면 교인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깊은 영적 교제에 빠져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늘 부산하고 바쁘며, 준비 안된 예배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보다는 인간의 만남으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인간만 보인다면 은혜 없는 예배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배가 살아나면 청년부는 금방 살아납니다. 이 평범한 진리가 청년부 부흥의 가장 중요한 열쇠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 청년부의 운선 순위는 예배입니다. 모든 것이 예배에 집중되어야 합니다. 매 주일마다, "어떻게 하면 예배를 좀 더 잘 드릴 수 있을까" 하며 예배를 점검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오늘도 참된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우리 청년들이 드리는 예배마다 전능자를 만남으로써 가슴 벅찬 예배에 푹 빠지는 감격과 축복을 누리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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