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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기독청년의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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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면서 청년들은 그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러한 첫 관문이 직장을 구하는 것이지요. 요즈음 직장을 구하기가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다는 소식을 종종 듣습니다. 일을 하고 싶은데 오라는 곳이 없어서 고민하는 청년들을 보면 제 마음도 착잡합니다. 그러면서 여호와 하나님은 지금 뭐 하시나 저런 청년들에게 좋은 일터 하나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저 혼자 생각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이 직장을 구한다면, 혹은 직업을 선택한다면 어떤 원칙을 세우시겠습니까 돈을 많이 주는 곳에 가시겠습니까 월급은 많이 주지 않을지라도 여러분의 실력을 충분히 인정해주는 곳에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작업 환경이 좋은 곳으로 가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직업을 선택하거나 직장을 구하는데 자신의 신앙이 얼마나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혹시 직장이나 직업을 선택하는데 신앙은 배제되고 여러분의 이성으로만 해결하여 하지는 않습니까 오
늘 말씀을 통해, 신앙을 가진 기독청년으로서 직업과 직장을 선택하는 원칙을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이 몇 년만에 그의 절친한 친구인 목사를 찾아왔습니다. 그가 찾아온 이유는, 인생의 고비를 맞아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어떤 결정을 내려야 좋은지를 상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지금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미국 기업의 한국 지사에서 제2인자 자리에 올라 있습니다. 고액의 봉급을 받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바로 위에 있는 제1인자와 오래 전부터 말할 수 없는 갈등을 겪어 왔습니다.
그러던 차에 같은 업계에서 유럽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회사로부터 한국 법인의 사장직을 제의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또 다른 미국 회사로부터도 한국 현지 법인의 사장직을 제의 받게 되었습니다.
두 곳 다 지금보다 훨씬 고액의 연봉을 제시하였습니다. 만약 그 제의에 응하기만 하면 서로 불편한 관계에 있는 제1인자와 결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몸담고 있는 회사는 이미 국내에 기반이 다 닦여 있지만, 사장직을 제의한 두 회사는 이제 국내에 막 진출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도전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불확실한 것들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친구의 아내는 조금만 세월이 지나면 저절로 사장이 될 텐데 왜 새삼스럽게 직장을 옮기느냐 하며, 현재의 회사에 그대로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이 세 회사 중에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 고민하다가 친구 목사의 의견을 묻기 위해서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의 말을 다 듣고 난 뒤 그 친구 목사는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사람과의 갈등을 피해서 직장을 옮기는 사람들이 있네. 그러나 사람과의 갈등은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지. 윗사람과의 갈등을 없애기 위해서는 아예 제1인자가 되면 좋겠구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어. 그러나 그렇더라도 사람과의 갈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아랫사람과의 갈등도 있기 마련이야. 윗사람과의 갈등보다 아랫사람과의 갈등이 더 괴롭고 견디기 힘들 때도 허다하지 않은가 어떤 사람들은 조건을 따라 움직이지.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곧 후회하는 것을 볼 수 있었지. 조건은 늘 상대적이야. 언제든지 변하지. 오늘 좋은 조건이라고 해서 내일, 모레 그리고 영원토록 좋으리라는 법은 세상에 없다네. "
이렇게 말한 후에 친구에게 몇 마디 덧붙였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들이야. 그래서 무엇을 결정을 하든지 나에게 어떤 유익을 주느냐 하는 차원에서 떠나,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관계를 갖느냐는 관점에서 생각하고 결정을 해야 하지 않을까 자기 자신을 중심에 놓고 결정하려면 대단히 혼란스럽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해답은 명쾌하게 나올 것이라 생각하네. "
순간 친구의 눈이 반짝 하고 빛났습니다. 그 자신이 크리스천임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선택하는 그 중요한 문제를 놓고,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것이 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7절에서 8절은 우리에게 증거합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하여 크리스천이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잘 정의해 주고 있습니다. 크리스천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사람들입니다. 이 말씀을 '직업'이라는 말에 적용한다면, 크리스천들이란 직업을 가져도 주님을 위하여 가지며, 직장을 선택해도 주님을 위해서 결정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모든 크리스천들은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고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사는 성도들입니다. 그렇기에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직업은 다 성직이 됩니다. 성도는 주님을 위해 직업을 갖는 까닭입니다. 성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성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이기 때문에 그가 가진 직업이 무엇이든 거룩한 직업이 되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성직과 세속직을 구분해서 말을 합니다. 만약 목회자가 이 세상의 모든 직업은 다 세속 직업이고 목회직만이 성직이라는 말을 한다면, 그것은 성직자의 교만이요 독선입니다. 반대로 목회자가 아닌 사람이 목회직만이 성직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고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직업을 선택해도 주를 위해서 선택해야 할 크리스천으로서의 직무유기입니다. 모든 크리스천들은 성도이기에 그가 갖는 직업이 기술직이든, 생산직이든, 연구직이든 그리고 사무직이든 다 거룩한 직업이 됩니다. 이처럼 크리스천은 성도이기에 그들이 갖는 직업은 모두 성직이지만, 그 가운데는 가질 수 있는 직업과 가질 수 없는 직업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나라 대표적인 주조회사의 총수 중 한 분은 카톨릭 신자이고, 다른 한 분은 개신교 신자입니다. 사람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술을 제조하여 어떻게 하면 그 술을 더 많이 팔 수 있을까, 온갖 지혜를 짜서 광고를 하는 그런 직업이 과연 크리스천의 바람직한 직업인가는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크리스천이 술집을 경영하고 도박장을 경영할 수 있겠습니까 내 사정이 딱하다고 해서 크리스천이 몸을 파는 창녀가 되거나, 아니면 포주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러고서도 나는 성도이므로 나의 직업은 성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하는 말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평론가이자 역사학자였던 토마스 칼라일이 한 말이 있습니다. "만약 나의 직업이 나를 영화롭게 하지 못한다면, 내가 나의 직업을 영화롭게 하리라. "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으로서 자신이 자기 직업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다면, 그 직업이 무엇이든 미련 없이 버리겠다는 의미입니다.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고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사는 크리스천으로서 주를 위해 직업을 선택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뜻이 있을까요
앞서 얘기한 친구가 그의 친구 목사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관점에서 직장도 선택하고 직업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은 모두 이해하겠네. 그렇지만 지금 나의 경우에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선택일 수가 있을까"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의 유익을 위해, 더 많은 사람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직업이나 직장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모두 여호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거룩한 직업이요 직장이 됩니다.
나무의 열매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나무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 봄부터 1년 내내 온갖 애를 다 씁니다. 그러나 나무는 절대로 자기 자신을 위해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만약 나무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열매를 맺고 지키려 한다면 그 열매는 썩어 버릴 것이고, 썩어 버린 열매를 움켜쥐고 있는 나무 자체도 상하게 될 것입니다. 그 썩은 열매를 먹는 사람도 해치게 될 것입니다. 나무가 자기 자신을 위해 열매를 맺으려 한다면 이처럼 모두를 해치고 맙니다. 나무는 자기 유익이 아닌 타인의 유익을 위해 열매를 맺기 때문에, 그 열매는 언제나 생명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자기도 살고, 타인도 살리며, 열매의 가치도 극대화시키는 유일한 길입니다.
나는 장래에 학교를 졸업하고 어떤 직업을 가지길 원합니까 나는 지금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 더 중요한 질문을 해볼까요 나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직업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있나요
식용으로는 사용해서는 안 될 동물의 뼈를 라면 스프에 넣어 유통시키다가 적발된 사건이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무슨 직업을 갖든 자기의 유익이나 자기의 주머니만을 위해 일한다면, 그의 일터는 불의의 온상과 부정의 근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직업으로 사람에게 봉사하기 위해 살아가지 않으면, 자기 직업을 통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 직업을 통해 그 자신이 영화로워지기는 지극히 어렵습니다.
혹시 지금 직업이나 직장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번 돈으로 예금을 얼마나 할 수 있으며, 언제쯤 좋은 집을 살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직업과 직장의 가치를 결정하며 평가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 훗날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너는 너의 직업을 통해 얼마나 많은 돈을 모았느냐 얼마나 큰집을 샀느냐"고 묻지 않으십니다. 그 대신 "너는 너의 직업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를 했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한 사람에게라도 더 봉사하기 위하여 직업을 선택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1943년 세상을 떠날 때, 백인과 흑인을 망라하여 거의 모든 미국인으로부터 존경을 받은 최초의 흑인인 조지 워싱턴 카버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는 미국 역사상 최고의 농학박사로서, 만약 자기 직업을 자신의 유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면 그는 필경 백만장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직업을 타인을 위한 봉사의 도구로 삼은 크리스천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남부지방은 면화를 재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면화는 땅 속에 있는 질소를 없애 버리므로 금방 땅을 황폐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거의 모든 땅이 못쓰게 된 남부 사람들은 생존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 조지 워싱턴 카버 박사는, 황폐화된 땅에 땅콩을 심으면 땅콩 재배에도 좋을 뿐 아니라 질소가 회복되어 땅도 비옥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남부 사람들에게 땅콩을 심도록 장려했고, 그의 말대로 땅은 다시 비옥해졌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농장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땅콩을 처분할 판로가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카버 박사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땅콩의 활용 방안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땅콩으로 만든 마가린, 비누, 요리용 기름, 화장품용 기름, 사탕, 버터, 밀가루, 잉크, 물감, 구두약, 연고 그리고 크림 등이 개발되었습니다. 그는 땅콩으로 무려 300여 가지의 실용품과 식용품을 만들어 내었지만, 단 한 번도 특허를 내거나 로열티를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직업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학문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으로 만족했던 것입니다. 아니, 자신의 직업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심으로 인해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로 인해 위기에 봉착했던 미국 남부의 경제가 회생되었습니다. 그는 진정한 성도였고, 그의 직업은 명실공히 성직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요 전 국민의 25%가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부정과 불의가 난무하지 않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자기 유익만을 위해서 일하고, 자신의 주머니만을 위해 직업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여러분들이 현재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앞으로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지 간에,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땀 흘려 일하십시오. 그때 이 사회는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 좋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진정한 삶의 기쁨은 자기 유익을 위해 사는 데 있지 않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일하는 삶 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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