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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젊은이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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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에 황무산이란 곳이 있습니다. 평지인 그곳엔 원래 높은 산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한 농부가 그 산 남쪽에 살고 있었는데 그가 북쪽으로 가려면 무려 700리를 돌아서 가야 했습니다. 불편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산을 없애기로 하고 매일 수레에 산의 흙과 돌을 날라 몇 십리 되는 깊은 계곡에 버리곤 했습니다. 사람들이 하도 어이가 없어 미친 농부라고 조롱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보시오, 이 산은 후손이 없지만, 나에게는 후손이 있다는 것을 모르시오” 결국, 그와 그 후손이 그 산을 모두 옮겨 지금은 평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평지가 된 곳을 황무산이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사람이 무서운 것은 그 사람 대(代)에 못하면, 그 후손이 계속 그 일을 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그 일을 이루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오늘 우리 교회는 어떤가요 우리 세대가 이루지 못할 일을 마침내 이루어낼 믿음의 후손이 있는가요
강북에는 오래된 교회들이 많고, 강남에는 짧은 역사의 교회들이 많은데, 한 강북의 교인이 어느 강남의 교회 예배에 참석했다가 돌아와서 하는 말이 ‘젊은이들이 다 어디 갔나 했더니 모두들 강남에 있습디다’합니다. 강북의 오래된 교회들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지내는 동안 젊은이들이 많은 수 빠져나가 노인들만 자리를 채우고 있고, 강남의 교회들은 그 젊은 세대들을 흡수하여 새로운 힘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기성 세대 중에는 ‘갈 테면 가라고 해. 우리가 교회를 지킬거야’합니다. 맞습니다. 노인들이 교회를 지킬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 세대만 지나가면 그 교회는 마침내 텅텅 비고 말 것입니다. 있어도 없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아무런 영적 힘과 능력도 없이 지역 사회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게 될 것입니다.
서구 사회의 많은 교회들은 젊은이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의 행동거지를 기성 세대가 못 마땅해 하여 젊은이들로 교회를 떠나게 한 결과, 노인들만 예배에 참여하는 현실을 이루어 내고 말았습니다. ‘떠날 테면 다 떠나라’하는 자세로 일관하다가 결국 교회는 ‘천국행 대기소’가 되었습니다.
감리교회의 통계를 보니, 1960년대에 감리교의 모국인 영국에 14,000개 교회가 있었는데, 젊은이들의 문화 코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수용하지 못한 결과 8,000 교회가 없어졌고, 6,000 교회도 싸늘한 분위기라고 합니다. 힘을 잃은 교회당은 술집으로 팔리고 가구 전시장으로 팔려가며 심지어 이슬람 사원으로 팔려가고 있답니다.
미국 감리교회는 1960년대에 1,200만 명이었는데, 지금은 800만으로 줄어들었고, 하루에 350명 출석하는 교회가 하나씩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서구 교회가 이러하니, 서구 교회를 뒤따르던 한국 교회도 결국 이런 현상을 맞이하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 문제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서구 교회의 실패를 거울 삼아 한국 교회는 그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청년들에 대한 이해와 그들의 문화를 수용하는 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물론 교회는 세상 모임과 다릅니다. 그러나 복음의 본질은 변함이 없으나, 그것을 수용하고 표현하는 것은 세대간에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기성 세대, 어른 세대의 표현만 중시할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의 눈부신 문화 표현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서울의 어느 대형 교회에서는 머리에 염색을 한 젊은이들을 예배당에서 예배 못드리게 출입을 통제한답니다. 부속실에서 영상으로 예배드리게 한답니다. 거 참 이상하지 않은가요 도대체 머리 염색과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드림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요 염색한 이가 예배당에 들어갈 수 없다면 흰 머리를 까맣게 염색한 어른들은 왜 ..
월남 이상재 선생이 YMCA 운동을 할 때,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보며, 그 친구들이 비난하였습니다. ‘점잖지 못하게 버릇없는 젊은것들을 따라하다니…’ 그러자 이상재 선생은 이렇게 말했답니다. ‘노인인 내가 젊어지는 것이 낫지, 젊은이들이 늙어지는 게 나은가’
교회는 젊은이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문화를 수용하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 때문에 교회 공동체에서 소외시킬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수용해야 합니다.
2.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들이 결국 복음의 역사를 이어갈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교회의 장래를 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고, 그들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선지자 예레미야가 소명을 받는 장면입니다. 예레미야는 꽤 일찍이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 자신이 오늘 본문에서 ‘나는 아이입니다’라고 고백하듯이 젊은 나이에 소명을 받았습니다. 신학자들의 추측에 의하면 그의 나이 20살에 선지자로 소명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20살이라고 하면 얼마나 어린애 취급을 하는가요! 목사도 30살이 되어야 임직을 받을 수 있는데, 그는 20살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일찍이 소명을 받았을까요 예레미야의 삶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남 유다 왕국에서 활동하였는데, 왕국의 마지막, 멸망 시기에 활동하였습니다. 요시아 왕 13년에 소명을 받고 18년 동안,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 시절의 3개월, 그 이후의 여호와김 시절의 11년, 여호야긴의 3개월, 그리고 마지막 왕 시드기야 시절의 11년, 합 40년 6개월간 예언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예언 활동은 한 마디로 고난과 곤욕이었습니다. 당시 기성 세대가 모두 친 애굽 정책을 쓰자고 할 때, 예레미야는 외롭게 친 바벨론 정책을 주장하였습니다. 침략하는 바벨론에 끝까지 항쟁하자고 모두들 주장할 때, 그 바벨론에 항복하는게 살길이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그가 동족으로부터 어떠한 대접을 받았을거란 상상이 갑니다. 매국노 취급을 당하며, 심한 왕따와 핍박과 살해 위협까지 당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눈에는 늘 눈물이 흘러, 눈물의 선지자란 별명이 붙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모든 이들의 생각과 달리 원수 나라 바벨론에게 항복하고 그들과 잘 지내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라고 목소리 높여 외치려면 아무래도 젊은이의 용기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가정이 있고, 이미 이해관계 속에 자리 잡은 기성 세대가 이 사명을 감당하기에는 벅찼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나이 20살에 일찍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사실 예레미야 그 자신도 이렇게 부름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인지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뜸 이렇게 탄식합니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맡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이도 어리고 말도 잘 할 줄 모르고, …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런 젊은이를 택하셨습니다.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하는 미숙한 젊은이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하셨습니다. 20살! 스무살짜리가 도대체 세상 돌아가는 것을 어찌 다 알겠습니까 스무살짜리가 대체 인생이 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럼에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중요한 시기에 스무살짜리를 선지자로 택하셨습니다.
스무살 짜리라고 우습게 봐선 안됩니다. 스무살짜리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그의 인생이 붙잡히자, 놀라운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10절,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를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
스무 살의 약관인 예레미야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세우시고, 그를 통하여 열방을 파괴하고 파멸시키며, 넘어뜨리고 다시 건설하며 심게 하시고자 하였습니다. 장차 그의 한마디로 무너지는 나라가 있고, 세워지는 나라가 있습니다! 놀라운 비전이 그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 약해 보이는 젊은이에게 이런 능력과 권세가 주어져 있었고, 마침내 그가 예언하는 대로 열국은 흥망성쇠(興亡盛衰)를 당하였습니다.
3. 교회의 젊은이들을 마냥 어리다고만 볼 것이 아닙니다. 언제까지나 철없는 아이들이라고 여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힐 때 그들은 새 역사를 감당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영에 사로잡힐 때 기성 세대는 생각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해낼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쓰실 때에 합당치 않은 것들을 파멸시키고, 넘어뜨리고 그리곤 다시 새로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것입니다.
우리 왕십리 중앙 교회의 참 모습은 뭔가요 우리의 과거인가요 오늘의 이 모습인가요 나는 이것이 다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의 참 모습은 미래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미래는 이 교회에서 성장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젊은이들에게 있습니다.
그러기에 젊은이들을, 주의 청년들을 키워야 합니다. 말씀으로 가르치며 그들의 꿈을 이루도록 교회는 적극 보호하며, 지원해야 합니다. 늘 기성 세대 가치관의 잣대로만 그들을 바라보고 잴 것이 아니라 무한한 꿈과 능력을 가진 세대로 우리의 미래를 그들에게 걸어야 합니다.
이사야 58:12절,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 ”
합니다. ‘네게서 날 자들’ 곧 우리의 젊은이들이 오래 황폐된 곳을 다시 세울 것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의 대학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학을 꼽으라면 어김없이 많은 이들이 ‘하버드 대학’을 꼽습니다.
미국의 어떤 사람이 임종을 앞두고 사후(死後) 시신을 하버드 대학에 기증키로 했습니다. 기자들이 찾아와서 이유를 물으니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생전에 우리 부모님이 날보고 하버드 대학에 꼭 가라고 했는데, 실력이 없어서 못 갔습니다. 그런데 시신으로라도 하버드 대학에 가게되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
이렇게 인기 있는 하버드 대학, 이 대학은 본래 1636년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민한 “존 하버드”란 사람이 목회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대학입니다. 그 대학 교문에는 하버드가 늘 주장했던 신념이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학문을 발전시켜 이것을 자자손손에게 영원히 전해주며, 장차 교회가 학문을 배우지 못한 목회자에게 맡겨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
이런 배경에서 겨우 700파운드와 책 300권으로 시작된 대학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대학을 세운 지 1년만에 작고하였습니다. 하지만 “존 하버드”의 신념은 이 대학을 통해 영향을 미쳐서 미국의 대통령, 노벨상 수상자 등 수많은 인재들이 무수히 배출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꿈과 확신이 미래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쳤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미래에 대한, 미래의 젊은이들을 위한 꿈과 확신이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현재의 꾀죄죄하고 부족한 젊은이의 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미래, 여호와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변화된 모습, 그들의 미래를 보는 이들이,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거기에 걸 수 있는 그런 이들이 필요합니다. 젊은이들을 키우는 꿈을 가진 이들이 필요합니다.
이 사실을 아십니까 지난번에 우리는 장학금이 모자라서 지역 사회의 어려운 학생 3명에게 주던 것과 본 교회 출신 교역자 자녀에게 주던 장학금을 주지 못했습니다. 본 교회 학생들도 등록금에 절반도 못 미치는 장학금을 받고 있는 형편입니다.
젊은이들을 위한 보다 큰 지원과 구체적인 후원이 필요합니다. 공부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보다 큰 장학금이 필요합니다. 혹시 세상 떠나실 때 재산을 누구에게 주시려는가요 평생 먹이고, 입히고 한 자식에게만 남겨주시려 하지 말고, 이런 일, 주님의 젊은이들을 키우는 일에 기증하고 떠나십시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가서도 얼마나 떳떳하겠습니까 어떤 교회는 유산 안 남기기 운동을 하고, 또 유산의 십일조를 주님께 드리자는 운동까지 한다더라구요. 우리 교회도 전 재산을 기증하거나 유산의 십일조라도 주님께 드려 이런 교육과 선교, 사회 봉사에 큰일을 감당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무소유로 살수는 없겠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재물 갖고 살다가 주님 앞으로 떠날 때에는 무소유로 떠납시다. 주님께 모두 드리고 그렇게 홀가분하게 떠납시다. 그들을 주님께서 축복 속에 영접해 주실 것입니다.
이제 세계가 안방이 되었습니다. 우리 왕십리만 생각하면 우리에게 비전이 없습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열방을 세우고 파괴하고, 무너뜨리고 건설하는 그 놀라운 일들을 할 수 있도록 우리의 젊은이들을 축복하고 그들을 키워야 합니다. 공부하러 내보내야 하고, 세계를 보고, 경험할 수 있도록 가급적 내보내고 후원해야 합니다. 서울의 한 교회는 신년 감사 헌금을 전액 청년들의 해외 선교를 위해 쓰기로 해서, 이번에 그 교회 청년들은 모두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큰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청년들을 후원하고 키웁시다. 세계 곳곳에 퍼져나가 왕십리 중앙 교회의 사랑과 믿음을 증거할 젊은이들을 키워냅시다.
4. 예배가 시작되어 진행 중인데 옷차림이 단정치 못한 한 젊은이가 늦게 예배당에 들어오더니 가운데 통로로 뚜벅뚜벅 걸어가 통로 한 가운데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교인들이 모두 눈살을 찌푸리는데, 그 교회에서 가장 깐깐하기로 유명하면서도 존경받는 장로님이 그 젊은이 옆으로 다가갔습니다. 교인들은 생각하기를 ‘이제 저 버릇없는 녀석이 혼나겠구나. 네가 오늘 임자 만났다’했습니다.
그 젊은이에게 다가간 장로님, 어떻게 했을까요 그 젊은이 옆의 바닥에 같이 털썩 주저앉더니 아무 말 없이 성경 찬송가를 펴서 보여주며 그와 함께 예배를 드렸답니다. 그리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답니다.
젊은이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수용합시다. 그리고 그들을 축복합시다. 그리하면 그들에겐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자리 잡을 것이고, 그들을 통해 장차 세계는 허물어지고 세워지고, 파괴되고 건설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마침내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기성 세대가 이루지 못할 새로운 역사를 젊은이들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이 꿈이 우리 왕십리중앙 교회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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