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하나님과 만남을 가져라
본문
지난주에 말씀을 드린 것처럼 오늘부터 다섯 주간에 걸쳐서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말씀을 증거 하도록 하겠습니다. 3월 달에는 고난주일과 부활주일이 있어서 아마도 4월 중순까지는 계속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느낀 것인데요, 젊은이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교인이라면 누구에게나 해당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를 믿은 지 오래되었거나 얼마 되지 않았거나, 청년들이나 장년들이나 누구나 할 것 없이 한 시간이라도 소홀함이 없이 빠지지 말고 잘 들으시면 여러분의 삶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많지 않은 삶을 살면서 느끼는 것은 만남이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달라지고 삶이 풍성해지기 때문입니다. 대체적으로 보면 사람들은 사람과 환경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누구를 만나고 어떤 환경에서 자라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거의 결정이 됩니다. 지금은 다 같아 보이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그것에 영향을 받아서 10년 20년 뒤에는 달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만남을 갖기 위하여, 중요한 만남을 갖기 위하여 욕심을 내야하고 기도하며 노력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세상에는 중요한 만남이 여러 종류 있습니다. 먼저는 부모와의 만남이 중요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부모를 만납니다. 그러나 어떤 자녀는 부모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는 부모를 만나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이도 있고, 어떤 자녀는 부모의 역할을 포기할 만큼 부모의 역할을 감당하지 않는 부모를 만나서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물론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부모를 만나서 부모의 가르침을 받아 성장하는 것은 타고난 복입니다.
친구와의 만남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자라면서 많은 친구를 만나게 됩니다. 어릴 때에 소꼽 친구, 동네 친구, 학교 친구, 군대 친구, 직장 친구 등을 만납니다. 한 사람이 자라면서 직장에 취업을 하기 전까지 대략 30여 년이 걸리는데, 이 기간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상의하고 맡길 수 있는 친구를 만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사귀기 때문에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의 성품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정도로 친구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고 자랍니다. 만일에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요나단과 같은 친구를 만날 수만 있다면, 다니엘과 같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같은 친구를 만날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께 많은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배우자와의 만남도 중요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울과 같이 특별한 독신의 은사를 받은 사람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배우자를 만나서 결혼을 합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을 하면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되지만, 이것만으로 좋은 배우자와의 만남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진정한 배우자, 부부와의 만남은 삶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좋은 부부란 서로 뜻이 맞아서 밤새도록 이야기를 해도 대화가 통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랑이 더 커지는 부부, 결실한 포도나무 같은 부부, 힘들 때에 격려해주고 쓰러졌을 때에 일으켜 세우는 부부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배우자를 만나는 것은 큰복입니다. 이런 배우자를 만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와의 만남도 중요합니다. 결혼을 해서 부부가 되면 대개의 경우에는 자녀를 낳습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가르침을 받아 성장하는데, 자녀들이 옳은 길로 가면서 건강하게 잘 성장하면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지 모릅니다. 부모가 이렇다 할만하게 해 놓은 것이 없어도 자식 하나만 잘 키워놓으면, 자녀들이 부모를 존경하게 된다면, 자녀와의 좋은 만남을 갖게 되면 그것만으로 부모는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고 부자가 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부모들은 심지어 자녀들 때문에 살아간다고 까지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자녀를 잘 만나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스승과의 만남도 역시 중요합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많은 선생님을 만나게 됩니다. 선생님을 만난다는 것은 학문을 배운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인격적인 만남이 없이 지식의 전달이나 교류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어느 학생이 선생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하여 학문을 배우고 익힌다면 그 학생은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분명히 잘못되지 않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과 2-3학년 때에 선생님을 아주 잘 만났습니다. 1학년 담임이셨던 장선생님은 얼마나 인격적이었는지 모릅니다. 학생들을 성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인격적으로 대해 주었습니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을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동등하게 대해 주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고등학교 2-3학년 때에 선생님은 한 분이었는데, 이(李)선생님은 언제나 저를 믿어 주셨고 모든 것을 맡겨 주셨습니다. 제가 2년 동안 선생님 비서실장을 했는데, 선생님은 저에게 일도 많이 맡겨주셨지만,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시며 지도해주셨습니다. 저는 그 선생님과의 좋은 만남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목사와의 만남도 중요합니다. 목사는 영적인 스승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목사가 설교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고, 교인은 목사의 설교를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는 교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도록 돕고 안내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사를 잘 만나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신앙생활의 지도를 받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교회 생활을 어느 정도 하게 되면 목사 없이도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아닙니다. 그래도 신학을 전공한 목사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배우고 영적인 지도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좋은 목사님을 만나는 복을 누렸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부모님 이상으로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며 여호와 하나님 섬기는 법을 가르쳐 주시고 사랑해주신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여자 목사님이셨는데, 제가 잘하면 칭찬해 주시고 잘못하면 야단도 치시면서 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오늘날 제가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열정이나 목회하는 모든 것은 그 목사님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또 한 분이 계십니다. 이화대학교의 다락방전도협회에서 만난 분인데, 저의 결혼 주례도 해 주시고, 지금은 호서대학교의 신학과 교수로 대학원장으로 계신 분입니다. 이 목사님은 저의 부족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저를 믿고 일을 맡겨주셨고 선교의 열정을 몸소 가르쳐주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좋은 영적인 지도자를 만나는 복을 받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여섯 가지의 만남, 즉 부모와의 만남, 친구와의 만남, 배우자와의 만남, 자녀와의 만남, 스승과의 만남, 목사와의 만남은 내 삶에 영향을 끼치는 만남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러한 좋은 만남을 통하여 날마다 복되고 즐거운 삶을 사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앞으로도 이러한 좋은 만남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에는 이와 같이 좋은 만남을 가진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자녀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가 좋은 부모를 만나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한 자녀들도 있습니다. 또한 친구와의 만남이 잘못되어서 옳지 못한 길로 들어서서 힘들어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배우자의 만남이 좋지 않아서 힘들어하고 때로는 자식 때문에 마지못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와의 만남이 잘못되어서 자녀 때문에 밤마다 괴로워하며 고통으로 지내는 이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승과의 좋은 만남을 갖지 못해서 이렇다 할만한 학문의 깊이와 진리를 탐구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목사와의 영적인 관계가 좋지 못해서 말씀에 은혜받지 못하고 신앙생활에 게을리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와서 예배하는 형제 자매 중에 혹시라도 이런 분들이 있다면 너무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설령 이러한 좋은 만남을 갖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이 모든 만남을 단번에 가능하게 해 주는 만남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은 이 세상에서 최고의 복 중의 복입니다. 우리가 인간적인 세상적인 만남에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을 갖게 되면 모든 만남이 회복되어 치료됩니다. 그래서 결국은 삶의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게 되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삭개오는 세상적인 만남에 실패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로마 식민치하에서 유대 국민들의 세금을 받아서 납부하여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의 여리고는 팔레스틴의 각 지역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상품뿐만이 아니라 특산물에까지 세금을 징수하기도 하였습니다. 삭개오는 이 세관의 우두머리인 세리장으로 세금 징수를 지휘했고, 로마의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의도에 따라서 자율적으로 세금을 부과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자기의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그것을 가리켜 부자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으로 지위와 명예와 물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존경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유대 사람들은 세리를 죄인 취급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삭개오는 만남에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삭개오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삭개오는 결국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예수님을 만남으로 완전히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세상적인 만남이 다시 회복되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면 누구나 이렇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을 만남으로 받는 최고의 축복은 구원입니다. 구원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면 누구나 다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죽어서 천국에 갈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도 천국의 삶을 매일매일 살게 됩니다. 어두운 삶을 사는 사람이 밝아지게 되고, 절망적인 삶을 살던 사람이 소망을 갖게 되고, 약한 삶을 사람이 강해지고, 불안한 삶을 살던 사람이 평안하게 살게 됩니다. 인생의 의미를 모르던 사람이 인생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날마다 기쁨과 평안이 충만하여 아름답고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얼마나 귀한 복인지 모릅니다. 이러한 삶에 욕심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삭개오는 여기에 욕심을 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과 천국 복음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 분을 만나기 위하여 달려갔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열정과 사모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애가 있었습니다. 2절을 봅니다.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첫 번째 장애는 키가 작았다는 거예요. 이것은 자신의 영적인 것에 결핍이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니까, 그 동안 자신이 살아온 일이 있잖아요. 세리라는 직위를 이용해서 자기 동족에게 세금을 마음대로 부과하여 부를 축적했잖아요. 그 결과 여러 사람들에게서 죄인으로 낙인이 찍혀서 따돌림을 받고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도 그것이 장애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 장애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열정이 있었기에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어린아이도 아닌 어른이 더욱이 세리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뽕나무에 올라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면과 자존심과 명예를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삭개오의 이러한 열정을 예수님께서 아시고, 구원을 향한 뜨거운 열심을 예수님께서 아시고 삭개오야 내려오라고 하시며 만나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그 동안 세리장으로 돈만 알고 온갖 불의를 다 행하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남으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다할 말씀도 하지 않으셨는데, 삭개오는 자신의 재산 절반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겠으며, 직위를 이용해서 남의 것을 빼앗은 일이 있으면 사 배로 갚겠다고 말합니다. 삭개오의 이와 같은 파격적인 행동은 자기 중심의 삶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이제는 새롭게 살겠다는 고백과도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행동이 달라집니다. 인생이 달라집니다. 세상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서 인생을 통째로 바꾼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면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고 해도 선한 사람으로 바뀌어 집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의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면 누구든지 달라집니다. 돈만 알고 지내며 온갖 불의를 다 행하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남으로 전혀 다른 선한 사람이 되었듯이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사모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간혹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바울에게 찾아오셔서 만나주신 것처럼 자기에게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여호와 하나님도 역시 바라보고만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렇게 쉽게 찾아오시지 않습니다. 나는 가만히 있고 여호와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경우는 특별한 경우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특별한 은혜를 체험하려다가 보편적인 은혜를 놓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편적인 은혜를 사모하면 특별한 은혜는 체험하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바울에게와 같이 우리에게 찾아오시지 않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그것은 간단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보통의 경우에 있어서 그렇게 하지 않으시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바울과 같은 학문의 수준이나 신앙의 열정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바울과 같은 수준이 아니면서 은혜는 바울과 같이 받겠다고 하는 것은 자기 욕심이요 교만이지 신앙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매주일마다 교회에 오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요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을 갖기 위해서 사모하고 욕심을 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사무엘은 12살에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고, 스펄전 목사님은 12살에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7살에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고 신학자인 메튜헨니는 11살에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일찍 만나면 만날수록 삶이 달라지고 이 땅에서도 천국의 삶을 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되어 조국과 세계를 위하여 일 할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가만히 보면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더욱이 이민교회에서는 그러한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 만나러 오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친구 따라 오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밥 먹으러 오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비즈니스 하려고 오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성 친구를 사귀어서 데이트하려고 오기도 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 중에 혹시라도 이런 이유로 해서 교회에 나왔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어떠한 이유에서 나왔든 여러분이 교회에서 예배 드리다가 설교를 듣다가 찬송을 부르다가 기도를 하다가 성경공부를 하다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생각했던 것보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됩니다.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기가 막힌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됩니다. 여러분이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천국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러나 만일 교회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만나지 못하고 사람만 만나서 이야기하고, 밥이나 먹고,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데이트하는 것에서 끝난다고 한다면 절대로 구원을 얻을 수도 없고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은 꿈도 꾸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인생이 바뀌어지지도 않고 예전과 다름없는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으로 어떠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이 천국의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면, 정말 근사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면, 이웃을 위하여 뭔가 한가지는 해야겠다는 의식을 갖기를 원하신다면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느냐 만나지 못하느냐가 결국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그 어떤 것을 만나고 그것을 소유하여 부유하게 산다고 하여도 진정으로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다면 여러분은 절대로 천국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은 다 잃어 버렸다고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신다면 힘들고 어려운 세상 속에서도 늘 하늘의 영광을 누리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남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과 평안을 누리며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누구를 만나느냐가 참으로 중요한데,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서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의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에서도 천국의 삶을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제가 많지 않은 삶을 살면서 느끼는 것은 만남이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달라지고 삶이 풍성해지기 때문입니다. 대체적으로 보면 사람들은 사람과 환경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누구를 만나고 어떤 환경에서 자라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거의 결정이 됩니다. 지금은 다 같아 보이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그것에 영향을 받아서 10년 20년 뒤에는 달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만남을 갖기 위하여, 중요한 만남을 갖기 위하여 욕심을 내야하고 기도하며 노력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세상에는 중요한 만남이 여러 종류 있습니다. 먼저는 부모와의 만남이 중요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부모를 만납니다. 그러나 어떤 자녀는 부모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는 부모를 만나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이도 있고, 어떤 자녀는 부모의 역할을 포기할 만큼 부모의 역할을 감당하지 않는 부모를 만나서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물론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부모를 만나서 부모의 가르침을 받아 성장하는 것은 타고난 복입니다.
친구와의 만남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자라면서 많은 친구를 만나게 됩니다. 어릴 때에 소꼽 친구, 동네 친구, 학교 친구, 군대 친구, 직장 친구 등을 만납니다. 한 사람이 자라면서 직장에 취업을 하기 전까지 대략 30여 년이 걸리는데, 이 기간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상의하고 맡길 수 있는 친구를 만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사귀기 때문에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의 성품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정도로 친구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고 자랍니다. 만일에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요나단과 같은 친구를 만날 수만 있다면, 다니엘과 같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같은 친구를 만날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께 많은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배우자와의 만남도 중요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울과 같이 특별한 독신의 은사를 받은 사람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배우자를 만나서 결혼을 합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을 하면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되지만, 이것만으로 좋은 배우자와의 만남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진정한 배우자, 부부와의 만남은 삶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좋은 부부란 서로 뜻이 맞아서 밤새도록 이야기를 해도 대화가 통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랑이 더 커지는 부부, 결실한 포도나무 같은 부부, 힘들 때에 격려해주고 쓰러졌을 때에 일으켜 세우는 부부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배우자를 만나는 것은 큰복입니다. 이런 배우자를 만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와의 만남도 중요합니다. 결혼을 해서 부부가 되면 대개의 경우에는 자녀를 낳습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가르침을 받아 성장하는데, 자녀들이 옳은 길로 가면서 건강하게 잘 성장하면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지 모릅니다. 부모가 이렇다 할만하게 해 놓은 것이 없어도 자식 하나만 잘 키워놓으면, 자녀들이 부모를 존경하게 된다면, 자녀와의 좋은 만남을 갖게 되면 그것만으로 부모는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고 부자가 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부모들은 심지어 자녀들 때문에 살아간다고 까지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자녀를 잘 만나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스승과의 만남도 역시 중요합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많은 선생님을 만나게 됩니다. 선생님을 만난다는 것은 학문을 배운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인격적인 만남이 없이 지식의 전달이나 교류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어느 학생이 선생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하여 학문을 배우고 익힌다면 그 학생은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분명히 잘못되지 않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과 2-3학년 때에 선생님을 아주 잘 만났습니다. 1학년 담임이셨던 장선생님은 얼마나 인격적이었는지 모릅니다. 학생들을 성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인격적으로 대해 주었습니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을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동등하게 대해 주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고등학교 2-3학년 때에 선생님은 한 분이었는데, 이(李)선생님은 언제나 저를 믿어 주셨고 모든 것을 맡겨 주셨습니다. 제가 2년 동안 선생님 비서실장을 했는데, 선생님은 저에게 일도 많이 맡겨주셨지만,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시며 지도해주셨습니다. 저는 그 선생님과의 좋은 만남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목사와의 만남도 중요합니다. 목사는 영적인 스승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목사가 설교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고, 교인은 목사의 설교를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는 교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도록 돕고 안내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사를 잘 만나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신앙생활의 지도를 받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교회 생활을 어느 정도 하게 되면 목사 없이도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아닙니다. 그래도 신학을 전공한 목사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배우고 영적인 지도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좋은 목사님을 만나는 복을 누렸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부모님 이상으로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며 여호와 하나님 섬기는 법을 가르쳐 주시고 사랑해주신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여자 목사님이셨는데, 제가 잘하면 칭찬해 주시고 잘못하면 야단도 치시면서 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오늘날 제가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열정이나 목회하는 모든 것은 그 목사님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또 한 분이 계십니다. 이화대학교의 다락방전도협회에서 만난 분인데, 저의 결혼 주례도 해 주시고, 지금은 호서대학교의 신학과 교수로 대학원장으로 계신 분입니다. 이 목사님은 저의 부족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저를 믿고 일을 맡겨주셨고 선교의 열정을 몸소 가르쳐주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좋은 영적인 지도자를 만나는 복을 받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여섯 가지의 만남, 즉 부모와의 만남, 친구와의 만남, 배우자와의 만남, 자녀와의 만남, 스승과의 만남, 목사와의 만남은 내 삶에 영향을 끼치는 만남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러한 좋은 만남을 통하여 날마다 복되고 즐거운 삶을 사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앞으로도 이러한 좋은 만남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에는 이와 같이 좋은 만남을 가진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자녀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가 좋은 부모를 만나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한 자녀들도 있습니다. 또한 친구와의 만남이 잘못되어서 옳지 못한 길로 들어서서 힘들어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배우자의 만남이 좋지 않아서 힘들어하고 때로는 자식 때문에 마지못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와의 만남이 잘못되어서 자녀 때문에 밤마다 괴로워하며 고통으로 지내는 이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승과의 좋은 만남을 갖지 못해서 이렇다 할만한 학문의 깊이와 진리를 탐구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목사와의 영적인 관계가 좋지 못해서 말씀에 은혜받지 못하고 신앙생활에 게을리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와서 예배하는 형제 자매 중에 혹시라도 이런 분들이 있다면 너무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설령 이러한 좋은 만남을 갖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이 모든 만남을 단번에 가능하게 해 주는 만남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은 이 세상에서 최고의 복 중의 복입니다. 우리가 인간적인 세상적인 만남에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을 갖게 되면 모든 만남이 회복되어 치료됩니다. 그래서 결국은 삶의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게 되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삭개오는 세상적인 만남에 실패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로마 식민치하에서 유대 국민들의 세금을 받아서 납부하여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의 여리고는 팔레스틴의 각 지역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상품뿐만이 아니라 특산물에까지 세금을 징수하기도 하였습니다. 삭개오는 이 세관의 우두머리인 세리장으로 세금 징수를 지휘했고, 로마의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의도에 따라서 자율적으로 세금을 부과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자기의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그것을 가리켜 부자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으로 지위와 명예와 물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존경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유대 사람들은 세리를 죄인 취급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삭개오는 만남에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삭개오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삭개오는 결국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예수님을 만남으로 완전히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세상적인 만남이 다시 회복되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면 누구나 이렇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을 만남으로 받는 최고의 축복은 구원입니다. 구원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면 누구나 다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죽어서 천국에 갈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도 천국의 삶을 매일매일 살게 됩니다. 어두운 삶을 사는 사람이 밝아지게 되고, 절망적인 삶을 살던 사람이 소망을 갖게 되고, 약한 삶을 사람이 강해지고, 불안한 삶을 살던 사람이 평안하게 살게 됩니다. 인생의 의미를 모르던 사람이 인생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날마다 기쁨과 평안이 충만하여 아름답고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얼마나 귀한 복인지 모릅니다. 이러한 삶에 욕심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삭개오는 여기에 욕심을 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과 천국 복음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 분을 만나기 위하여 달려갔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열정과 사모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애가 있었습니다. 2절을 봅니다.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첫 번째 장애는 키가 작았다는 거예요. 이것은 자신의 영적인 것에 결핍이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니까, 그 동안 자신이 살아온 일이 있잖아요. 세리라는 직위를 이용해서 자기 동족에게 세금을 마음대로 부과하여 부를 축적했잖아요. 그 결과 여러 사람들에게서 죄인으로 낙인이 찍혀서 따돌림을 받고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도 그것이 장애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 장애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열정이 있었기에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어린아이도 아닌 어른이 더욱이 세리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뽕나무에 올라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면과 자존심과 명예를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삭개오의 이러한 열정을 예수님께서 아시고, 구원을 향한 뜨거운 열심을 예수님께서 아시고 삭개오야 내려오라고 하시며 만나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그 동안 세리장으로 돈만 알고 온갖 불의를 다 행하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남으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다할 말씀도 하지 않으셨는데, 삭개오는 자신의 재산 절반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겠으며, 직위를 이용해서 남의 것을 빼앗은 일이 있으면 사 배로 갚겠다고 말합니다. 삭개오의 이와 같은 파격적인 행동은 자기 중심의 삶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이제는 새롭게 살겠다는 고백과도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행동이 달라집니다. 인생이 달라집니다. 세상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서 인생을 통째로 바꾼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면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고 해도 선한 사람으로 바뀌어 집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의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면 누구든지 달라집니다. 돈만 알고 지내며 온갖 불의를 다 행하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남으로 전혀 다른 선한 사람이 되었듯이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사모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간혹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바울에게 찾아오셔서 만나주신 것처럼 자기에게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여호와 하나님도 역시 바라보고만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렇게 쉽게 찾아오시지 않습니다. 나는 가만히 있고 여호와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경우는 특별한 경우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특별한 은혜를 체험하려다가 보편적인 은혜를 놓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편적인 은혜를 사모하면 특별한 은혜는 체험하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바울에게와 같이 우리에게 찾아오시지 않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그것은 간단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보통의 경우에 있어서 그렇게 하지 않으시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바울과 같은 학문의 수준이나 신앙의 열정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바울과 같은 수준이 아니면서 은혜는 바울과 같이 받겠다고 하는 것은 자기 욕심이요 교만이지 신앙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매주일마다 교회에 오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요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을 갖기 위해서 사모하고 욕심을 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사무엘은 12살에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고, 스펄전 목사님은 12살에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7살에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고 신학자인 메튜헨니는 11살에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일찍 만나면 만날수록 삶이 달라지고 이 땅에서도 천국의 삶을 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되어 조국과 세계를 위하여 일 할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가만히 보면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더욱이 이민교회에서는 그러한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 만나러 오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친구 따라 오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밥 먹으러 오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비즈니스 하려고 오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성 친구를 사귀어서 데이트하려고 오기도 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 중에 혹시라도 이런 이유로 해서 교회에 나왔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어떠한 이유에서 나왔든 여러분이 교회에서 예배 드리다가 설교를 듣다가 찬송을 부르다가 기도를 하다가 성경공부를 하다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생각했던 것보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됩니다.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기가 막힌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됩니다. 여러분이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천국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러나 만일 교회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만나지 못하고 사람만 만나서 이야기하고, 밥이나 먹고,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데이트하는 것에서 끝난다고 한다면 절대로 구원을 얻을 수도 없고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은 꿈도 꾸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인생이 바뀌어지지도 않고 예전과 다름없는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으로 어떠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이 천국의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면, 정말 근사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면, 이웃을 위하여 뭔가 한가지는 해야겠다는 의식을 갖기를 원하신다면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느냐 만나지 못하느냐가 결국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그 어떤 것을 만나고 그것을 소유하여 부유하게 산다고 하여도 진정으로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다면 여러분은 절대로 천국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은 다 잃어 버렸다고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신다면 힘들고 어려운 세상 속에서도 늘 하늘의 영광을 누리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남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과 평안을 누리며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누구를 만나느냐가 참으로 중요한데,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서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의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에서도 천국의 삶을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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