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청년의 때
본문
5 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가정의 달에는 가정을 한번 생각해 보는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가정의 달이 되면 우리는 부 모를 생각하게 되고, 자녀들을 생각하게 되고, 가정을 생각하 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좀 소홀하게 되는 계층이 있습니 다. 그것이 청년입니다. 청년은 어린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한 어른도 아니기 때문에 애매한 계층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마침 내일이 금년으로 21번째 맞는 성 년의 날이고 해서 그 동안 우리들이 소홀하기 쉬웠던 청년들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으로 만 20세가 되면 성년이 됩니다. 그러면 하나의 미성년자가 어 른이 되어서 성년이 갖는 모든 권리를 누리게 됩니다. 옛날에는 이 날이 되면 성년식을 베풀어주었습니다. 남자에 게는 상투를 틀어 올리고 의관을 갖추어 주고는 자(字)를 내려 서 어른을 삼았습니다. 이것을 관례(冠禮)라고 했습니다. 여 자는 길게 땋고 다니던 머리를 올려서 비녀를 꽂아 주어서 어 른을 삼았습니다. 이것을 계례(係禮)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비로소 어른이 됩니다. 그러면 결혼할 자격이 주어지고, 과거에 응시할 자격도 주어지고, 참정권, 선거권, 국민의 의무 가 주어졌습니다. 이제는 어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때 를 가리켜서 청년의 때라고 부릅니다. 이 청년의 때에는 몇 가 지 특징이 나타납니다.
이 때는 아침의 태양과도 같은 때입니다. 온갖 희망과 가능 성과 꿈이 있는 때입니다. 싱싱하고, 푸르고, 의기가 왕성한 때입니다. 이를테면 꿈을 먹고 살아가는 때입니다. 그래서 괴테는 "젊은이는 술 없이도 취할 수 있다" 고 했습니다. 그만 큼 꿈이 많은 때고 아침의 떠오르는 태양과도 같은 때입니다. 또 청년은 그 넓은 창공을 나르는 독수라 와도 같은 때입니 다. 창공을 나르는 독수리를 보십시요. 거치는 것이 없습니 다. 제 마음대로 날개를 치고 돌아다닙니다. 거기에 신호등이 있습니까, 교통체증이 있습니까. 제 마음대로 쏘다닙니다. 청 년의 때가 바로 이같은 때입니다.
또 청년은 열병환자와도 같은 때입니다. 젊은이들의 가슴속 에는 불에 달군 돌덩이 하나씩을 품고 있는 것 같이 뜨거운 열병을 앓고 있는 때입니다. 사랑의 불덩어리, 야망의 불덩어 리, 이상의 불덩어리, 이런 것들이 가슴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데 끌 장사가 없습니다. 청년이 사랑의 열병에 한번 걸리게 되면 앞뒤 못 가립니다. 열병을 앓습니다. 반은 미치광이가 됩니다. 그 불을 누가 끌 수가 있습니까. 이것이 청년의 때 입니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이 때를 가리켜서 "브레이크 없 는 가차와도 같은 때" 라고 했습니다. 무조건 앞으로만 가려 고 하지 뒤로는 갈 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청년들하고 대화를 하면 일방통행입니다. 융통성이 없고 타협이 없습니 다. 오직 앞으로만 가려고 합니다.
이 말은 청년의 때는 소중하고, 귀하고, 꿈도 많고, 야심도 많아서 좋기는 한데 반면에 이 청년의 때는 그만큼 실수할 위 험도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깊은 생각이 결여된 때입니다. 냉 정한 판단이 부족한 때입니다. 그래서 때로 실수도 하게 되는 때입니다. 본문은 이같은 젊은이들에게 주시는 교훈으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
첫째 교훈은 "젊어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라" 는 교훈입니다. 왜 젊어서 믿어야 합니까. 그것은 젊었을 때 방향을 잘 잡 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청년은 꿈도 좋고, 정열도 좋고, 패기 도 좋지만 그때 방향을 한번 잘못 잡으면 엄청난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전도서 12:1절을 보면 "너는 청년의 때 곧 늙 기 전에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 편 119:9절을 보면 "청년은 주의 말씀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 다" 고 했습니다.
또 젊었을 때가 가장 일을 많이 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사 람이 중년이 되고 노인이 되어서 일을 많이 하는 분도 있지만 세계적인 위인들을 보면 대부분 20대의 젊은 나이에 큰 일을 많이 해 냈습니다. 성경을 보면 요시야 왕은 20세에 왕이 되 어 유다와 예루살렘을 통치하면서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무디는 20세 때에 YMCA를 통해서 세계청년 운동을 주도했습니 다. 마틴 루터는 27세 때에 당당하게 나서서 종교개혁을 해 냈 습니다. 세례요한도 30세에 할 일을 벌써 다 끝내고 순교를 했 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12:1절을 보면 "너는 청년의 때, 늙고 곤고 한 날이 오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라" 고 했습니다. 왜냐하 면 그 때가 가장 소중한 때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교훈은 "고민하는 젊은이가 되라" 는 교훈입니다. 10절을 보면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아오니" 그랬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심각한 몸부림이 있었 다는 말입니다.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전심 으로 찾았습니다" 그런 말입니다. 이런 고민이 있은 후에 만 난 그 여호와 하나님을 어찌 평생 잊겠습니까.
문제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타이밍입니다. 어떤 분은 노년에 가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분이 있는데 이런 분은 후회가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나서 무엇인가 해 보려고 해도 이미 늙고 병들고 힘이 없습니다. 마음 뿐 입니다. 그래서 후 회만 하다 인생을 끝내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분은 중 년에 가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분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용기 를 내지 못하고 주저앉게 됩니다. 헌신하고 싶고, 무엇인가 일을 해 보고 싶은데 가정과 커 가는 자녀들과 지금 벌려 놓은 일들 때문에 선뜻 일어나지 못하고 그냥 주저앉고 맙니다. 이 것이 애매한 시절입니다.
그러나 청년은 아주 쉽게 모든 것을 털고 일어설 수 있는 때 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는 때입니다. 그래서 웨슬레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한 고백이 "세계는 나 의 교구"라고 외쳤습니다. 그래서 청년의 때에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 려고 하는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젊은이가 인도의 간지스 강둑에 앉아 있는 성자에게 가 서 물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신을 만날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이 성자는 그 젊은이를 강물로 끌고 들어가더니 물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는 한참 후에 끄집어내더니 하는 말이 "자네가 물 속에 들어가서 공기를 갈급하는 만큼이나 신 을 만나기 위해서 노력해 보라, 그러면 틀림없이 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랬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찾는 자가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열리고, 구 하는 자에게 응답이 있을 것이라" 고했습니다. 실존철학자 킬케골은 22세의 나이에 대학에 다닐 때 일기 노트에 이런 글 을 써 놓았다고 합니다. "온 세계가 무너진다 해도 내가 꼭 붙잡을 수 있는 이념, 내가 그것을 위해서 살고, 그것을 위해 서 죽을 수 있는 사명, 이것을 나는 찾아야 한다", 결국 그 가 실존철학자가 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래서 청년 의 때에는 고민을 많이 해야 합니다. 생각이 많아야 합니다. 그것이 청년의 때입니다. 이렇게 해서 만난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잊겠습니까.
세 번째 교훈은 "뜻을 가지라"는 교훈입니다.
젊은이는 무엇보다도 뜻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이 흔히 말 하기를 "환상을 가져라, 비젼을 가져라" 하고 말하는데 이것 이 모두 뜻을 지니라는 말입니다. 11절을 보면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그랬습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을 내 마음속에 묻어 두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굉장한 말씀입니다. 사람이 말씀을 마음 에 잉태하고 있으면 그 말씀은 내 속에서 그냥 조용히 있지 않습니다. 내 속에서 꿈을 잉태시키고, 환상을 지니게 하고, 뜻을 세워 주십니다. 그러면 그 꿈과 환상과 뜻이 그 사람을 그냥 놔두지를 않습니다. 자꾸만 움직이게 하고, 변화하게 하 고, 생각하게 만들어 줍니다.
23세의 리빙스턴의 가슴속에 이 말씀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때 그 어린 청년의 가슴속에서 꿈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환 상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뜻이 세워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그 힘은 리빙스턴으로 하여금 아프리카로 자꾸만 내 밀었 습니다. 그래서 리빙스턴은 검은 대륙 아프리카로 들어가서 평 생을 선교사로 살게 되어 후에 그는 기독교 선교 역사에 있어 서 가장 찬란한 빛을 남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링컨도 어렸을 때 이 말씀을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그러 던 그가 19세 때 뉴올리언스의 노예시장을 방문하게 됩니다. 그는 그곳에서 백인들이 노예들을 마치 물건을 팔고 사듯이 매 매 하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검은 노예들은 서로 울면서 부모와 형제와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백인들의 채찍을 맞으면서 짐승처럼 끌려갑니다.
그때 링컨이 생각 없는 청년이었더라면 "불쌍하구나" 하고 그냥 돌아 왔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가슴속에 있는 그 말씀 의 힘이 그를 그냥 놔둡니까. 그때 그는 굳게 다짐하기를 "때 가 되면 저놈의 제도를 부숴 버리고 말겠다"하고 다짐을 합니 다. 여기서 "때가 되면" 이것이 뜻입니다. 링컨은 그때 뜻을 세웠습니다. 뜻을 세운 사람은 안일하게 살아가지 않습니다. 거기에 피나는 노력이 뒤따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 그에게 30 년 후에 "그때를" 주셨습니다. 링컨이 대통령이 된 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이 노예제도를 철폐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뜻이 간절하면 하늘이 이루어 주신다고 하지 않습니 까. 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청년은 입지를 세워야 한다고 율곡은 갈파했습니다. 모름지기 젊은이 는 뜻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젊은이 입니다. 뜻 을 세워도 좋게 세워야 합니다.
윌리엄 페터(William Petter)라는 사람의 글 중에 이런 이야 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렸을 때 길을 가다가 동전 하나 를 줏었습니다. 이 사람이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 날부터 이 사람이 평생을 땅만 쳐다보고 다녔습니다. 그 덕분 에 평생 동안 단추 29,519개를 줏었고, 머리핀 54,172개를 줏 었고, 동전 수천 개를 줏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줏느 라고 이 사람이 하늘이 무슨 색깔인지를 모르고 살다가 죽었다 고 합니다. 참 인생도 가지가지 입니다.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이 말씀은 내 마음속에 여호와 하나님을 품고 있다는 말입니다. 내 마음속에 여호와 하나님을 품고 살면 그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움직이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젊은이 는 먼저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네 번째 교훈은 "생각을 많이 하는 젊은이가 되라" 는 교훈입 니다.
15절을 보면 "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하리로다" 그랬습니다. 여기 묵상이라는 말은 "씨아" 라는 말로 "숙고한다" 는 말입니 다. 숙고라는 말은 "생각을 많이 한다" 는 말입니다. 즉 하나 님의 법을 많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생각을 많이 하고, 묵상을 많이 해야 합니다. 간디는 일주일의 시작인 월요일을 침묵의 날로 정해 놓고 살았다고 합 니다. 그날만큼은 혼자서 조용히 묵상하는 날로 보냈다고 합 니다. 또 니체는 "고독은 나의 고향" 이라고 외쳤습니다. 그 는 혼자서 산책하는 그 길에서 영감을 얻어서 글을 썼다고 합 니다. 칸트도 퀴니 히스베르크의 호젓한 숲을 거닐면서 사색 의 영감을 받아서 글을 썼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람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접촉을 하면서 성숙해 지고 원 만해 집니다. 동시에 사람은 생각하고, 명상함으로서 성숙해 지고 익어 갑니다. 그래서 괴테는 "네 영혼이 피곤하거든 산 으로 가라" 고했습니다. 주님도 때로 산으로 가셨습니다. 산 으로 가서 묵상을 하는 중에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찾고, 자신이 가야할 길을 찾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묵상, 말씀을 음미하기 위한 묵상, 얼 마나 귀한 묵상입니까. 그 묵상을 통해서 영감을 얻고, 하나 님과 교통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법을 깨닫고 살아가는 생활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그래서 청년은 생각을 많이 하 는 젊은이가 되어야 합니다.
다섯 번째 교훈은 "정의로워라" 하는 교훈입니다. 12절을 보면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그랬습니다. 그 리고 16절을 보면 "나는 주의 율례를 잊지 아니하리다"고 했습 니다. 이 말씀은 순수한 마음을 갖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 다. 주의 말씀을 항상 앞세우고 사는 사람은 순수하고 정의 롭습니다. 그곳에 불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청년은 주의 말씀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다" (9) 고 했습니다. 이것 이 젊은이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순수성을 상실한 젊은이는 젊은이가 아닙니다.
어떤 젊은이가 취직을 하겠다고 해서 회사에서 면접시험을 보았습니다. 그때 이 젊은이가 질문을 하기를 "10년을 근속 하게 되면 퇴직금이 얼마나 됩니까"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 젊은이는 면접 시험에서 낙방을 했습니다. 어떤 젊은 풋내기 전도사가 청빙을 받기 위해서 면접을 하는데 질문을 하기를 " 월급이 얼마나 됩니까"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이 청년도 면 접에서 거부되었습니다. 이것은 젊은이가 아닙니다. 이 젊은 이들은 이미 순수성을 상실한 젊은이들입니다.
저는 대학생들이 길거리에 나가서 데모를 하는 것을 괜찮게 보는 사람입니다. 자신들의 정의감에 비해서 세상이 너무 정 의롭지 못해서 좀 정의로워져라 하고 외치는 것이 뭐 나쁠 것 이 있습니까. 오히려 그것도 못하는 젊은이들이 이상합니다. 그렇지만 "남이 하니까 우리도 하자" 그래서 하는 데모는 안 됩니다. "나도 이제는 대학생이니 데모를 해야지" 해서 하는 데모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3천만원, 4천만원씩 써 가면서 학생회 간부가 된 학생들도 데모할 자격이 없습니다. 무슨 할 말이 있다고 데모를 합니까. 그리고 C학점 맞고 D학 점 맞은 학생들도 데모할 자격이 없습니다. 누가 누굴 보고 잘 하라고 소리를 칩니까. 젊은이는 모름지기 정의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의를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것을 누가 말리 겠습니까. 그런데 자신의 정의는 빛이 노랗게 바랬는데 남을 향해서만 하라고 하면 설득력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16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주의 말씀을 잊지 아 니하리이다" 그랬습니다. 주의 말씀에 비추어진 나, 그 말씀 이 내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나, 그 사람이 순수한 사람입니 다. 이런 사람이 세상에 나서서 외치면 누가 말릴 수 있습니 까. 이것이 바로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과도 같은 신선하고 참 신한 젊은이의 모습입니다. 이런 젊은이들을 많이 확보하고 있 는 사회 그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고 그 나라가 부강한 나라인 것입니다.
이 때는 아침의 태양과도 같은 때입니다. 온갖 희망과 가능 성과 꿈이 있는 때입니다. 싱싱하고, 푸르고, 의기가 왕성한 때입니다. 이를테면 꿈을 먹고 살아가는 때입니다. 그래서 괴테는 "젊은이는 술 없이도 취할 수 있다" 고 했습니다. 그만 큼 꿈이 많은 때고 아침의 떠오르는 태양과도 같은 때입니다. 또 청년은 그 넓은 창공을 나르는 독수라 와도 같은 때입니 다. 창공을 나르는 독수리를 보십시요. 거치는 것이 없습니 다. 제 마음대로 날개를 치고 돌아다닙니다. 거기에 신호등이 있습니까, 교통체증이 있습니까. 제 마음대로 쏘다닙니다. 청 년의 때가 바로 이같은 때입니다.
또 청년은 열병환자와도 같은 때입니다. 젊은이들의 가슴속 에는 불에 달군 돌덩이 하나씩을 품고 있는 것 같이 뜨거운 열병을 앓고 있는 때입니다. 사랑의 불덩어리, 야망의 불덩어 리, 이상의 불덩어리, 이런 것들이 가슴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데 끌 장사가 없습니다. 청년이 사랑의 열병에 한번 걸리게 되면 앞뒤 못 가립니다. 열병을 앓습니다. 반은 미치광이가 됩니다. 그 불을 누가 끌 수가 있습니까. 이것이 청년의 때 입니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이 때를 가리켜서 "브레이크 없 는 가차와도 같은 때" 라고 했습니다. 무조건 앞으로만 가려 고 하지 뒤로는 갈 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청년들하고 대화를 하면 일방통행입니다. 융통성이 없고 타협이 없습니 다. 오직 앞으로만 가려고 합니다.
이 말은 청년의 때는 소중하고, 귀하고, 꿈도 많고, 야심도 많아서 좋기는 한데 반면에 이 청년의 때는 그만큼 실수할 위 험도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깊은 생각이 결여된 때입니다. 냉 정한 판단이 부족한 때입니다. 그래서 때로 실수도 하게 되는 때입니다. 본문은 이같은 젊은이들에게 주시는 교훈으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
첫째 교훈은 "젊어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라" 는 교훈입니다. 왜 젊어서 믿어야 합니까. 그것은 젊었을 때 방향을 잘 잡 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청년은 꿈도 좋고, 정열도 좋고, 패기 도 좋지만 그때 방향을 한번 잘못 잡으면 엄청난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전도서 12:1절을 보면 "너는 청년의 때 곧 늙 기 전에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 편 119:9절을 보면 "청년은 주의 말씀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 다" 고 했습니다.
또 젊었을 때가 가장 일을 많이 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사 람이 중년이 되고 노인이 되어서 일을 많이 하는 분도 있지만 세계적인 위인들을 보면 대부분 20대의 젊은 나이에 큰 일을 많이 해 냈습니다. 성경을 보면 요시야 왕은 20세에 왕이 되 어 유다와 예루살렘을 통치하면서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무디는 20세 때에 YMCA를 통해서 세계청년 운동을 주도했습니 다. 마틴 루터는 27세 때에 당당하게 나서서 종교개혁을 해 냈 습니다. 세례요한도 30세에 할 일을 벌써 다 끝내고 순교를 했 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12:1절을 보면 "너는 청년의 때, 늙고 곤고 한 날이 오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라" 고 했습니다. 왜냐하 면 그 때가 가장 소중한 때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교훈은 "고민하는 젊은이가 되라" 는 교훈입니다. 10절을 보면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아오니" 그랬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심각한 몸부림이 있었 다는 말입니다.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전심 으로 찾았습니다" 그런 말입니다. 이런 고민이 있은 후에 만 난 그 여호와 하나님을 어찌 평생 잊겠습니까.
문제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타이밍입니다. 어떤 분은 노년에 가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분이 있는데 이런 분은 후회가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나서 무엇인가 해 보려고 해도 이미 늙고 병들고 힘이 없습니다. 마음 뿐 입니다. 그래서 후 회만 하다 인생을 끝내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분은 중 년에 가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분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용기 를 내지 못하고 주저앉게 됩니다. 헌신하고 싶고, 무엇인가 일을 해 보고 싶은데 가정과 커 가는 자녀들과 지금 벌려 놓은 일들 때문에 선뜻 일어나지 못하고 그냥 주저앉고 맙니다. 이 것이 애매한 시절입니다.
그러나 청년은 아주 쉽게 모든 것을 털고 일어설 수 있는 때 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는 때입니다. 그래서 웨슬레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한 고백이 "세계는 나 의 교구"라고 외쳤습니다. 그래서 청년의 때에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 려고 하는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젊은이가 인도의 간지스 강둑에 앉아 있는 성자에게 가 서 물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신을 만날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이 성자는 그 젊은이를 강물로 끌고 들어가더니 물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는 한참 후에 끄집어내더니 하는 말이 "자네가 물 속에 들어가서 공기를 갈급하는 만큼이나 신 을 만나기 위해서 노력해 보라, 그러면 틀림없이 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랬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찾는 자가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열리고, 구 하는 자에게 응답이 있을 것이라" 고했습니다. 실존철학자 킬케골은 22세의 나이에 대학에 다닐 때 일기 노트에 이런 글 을 써 놓았다고 합니다. "온 세계가 무너진다 해도 내가 꼭 붙잡을 수 있는 이념, 내가 그것을 위해서 살고, 그것을 위해 서 죽을 수 있는 사명, 이것을 나는 찾아야 한다", 결국 그 가 실존철학자가 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래서 청년 의 때에는 고민을 많이 해야 합니다. 생각이 많아야 합니다. 그것이 청년의 때입니다. 이렇게 해서 만난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잊겠습니까.
세 번째 교훈은 "뜻을 가지라"는 교훈입니다.
젊은이는 무엇보다도 뜻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이 흔히 말 하기를 "환상을 가져라, 비젼을 가져라" 하고 말하는데 이것 이 모두 뜻을 지니라는 말입니다. 11절을 보면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그랬습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을 내 마음속에 묻어 두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굉장한 말씀입니다. 사람이 말씀을 마음 에 잉태하고 있으면 그 말씀은 내 속에서 그냥 조용히 있지 않습니다. 내 속에서 꿈을 잉태시키고, 환상을 지니게 하고, 뜻을 세워 주십니다. 그러면 그 꿈과 환상과 뜻이 그 사람을 그냥 놔두지를 않습니다. 자꾸만 움직이게 하고, 변화하게 하 고, 생각하게 만들어 줍니다.
23세의 리빙스턴의 가슴속에 이 말씀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때 그 어린 청년의 가슴속에서 꿈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환 상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뜻이 세워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그 힘은 리빙스턴으로 하여금 아프리카로 자꾸만 내 밀었 습니다. 그래서 리빙스턴은 검은 대륙 아프리카로 들어가서 평 생을 선교사로 살게 되어 후에 그는 기독교 선교 역사에 있어 서 가장 찬란한 빛을 남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링컨도 어렸을 때 이 말씀을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그러 던 그가 19세 때 뉴올리언스의 노예시장을 방문하게 됩니다. 그는 그곳에서 백인들이 노예들을 마치 물건을 팔고 사듯이 매 매 하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검은 노예들은 서로 울면서 부모와 형제와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백인들의 채찍을 맞으면서 짐승처럼 끌려갑니다.
그때 링컨이 생각 없는 청년이었더라면 "불쌍하구나" 하고 그냥 돌아 왔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가슴속에 있는 그 말씀 의 힘이 그를 그냥 놔둡니까. 그때 그는 굳게 다짐하기를 "때 가 되면 저놈의 제도를 부숴 버리고 말겠다"하고 다짐을 합니 다. 여기서 "때가 되면" 이것이 뜻입니다. 링컨은 그때 뜻을 세웠습니다. 뜻을 세운 사람은 안일하게 살아가지 않습니다. 거기에 피나는 노력이 뒤따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 그에게 30 년 후에 "그때를" 주셨습니다. 링컨이 대통령이 된 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이 노예제도를 철폐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뜻이 간절하면 하늘이 이루어 주신다고 하지 않습니 까. 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청년은 입지를 세워야 한다고 율곡은 갈파했습니다. 모름지기 젊은이 는 뜻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젊은이 입니다. 뜻 을 세워도 좋게 세워야 합니다.
윌리엄 페터(William Petter)라는 사람의 글 중에 이런 이야 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렸을 때 길을 가다가 동전 하나 를 줏었습니다. 이 사람이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 날부터 이 사람이 평생을 땅만 쳐다보고 다녔습니다. 그 덕분 에 평생 동안 단추 29,519개를 줏었고, 머리핀 54,172개를 줏 었고, 동전 수천 개를 줏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줏느 라고 이 사람이 하늘이 무슨 색깔인지를 모르고 살다가 죽었다 고 합니다. 참 인생도 가지가지 입니다.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이 말씀은 내 마음속에 여호와 하나님을 품고 있다는 말입니다. 내 마음속에 여호와 하나님을 품고 살면 그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움직이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젊은이 는 먼저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네 번째 교훈은 "생각을 많이 하는 젊은이가 되라" 는 교훈입 니다.
15절을 보면 "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하리로다" 그랬습니다. 여기 묵상이라는 말은 "씨아" 라는 말로 "숙고한다" 는 말입니 다. 숙고라는 말은 "생각을 많이 한다" 는 말입니다. 즉 하나 님의 법을 많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생각을 많이 하고, 묵상을 많이 해야 합니다. 간디는 일주일의 시작인 월요일을 침묵의 날로 정해 놓고 살았다고 합 니다. 그날만큼은 혼자서 조용히 묵상하는 날로 보냈다고 합 니다. 또 니체는 "고독은 나의 고향" 이라고 외쳤습니다. 그 는 혼자서 산책하는 그 길에서 영감을 얻어서 글을 썼다고 합 니다. 칸트도 퀴니 히스베르크의 호젓한 숲을 거닐면서 사색 의 영감을 받아서 글을 썼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람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접촉을 하면서 성숙해 지고 원 만해 집니다. 동시에 사람은 생각하고, 명상함으로서 성숙해 지고 익어 갑니다. 그래서 괴테는 "네 영혼이 피곤하거든 산 으로 가라" 고했습니다. 주님도 때로 산으로 가셨습니다. 산 으로 가서 묵상을 하는 중에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찾고, 자신이 가야할 길을 찾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묵상, 말씀을 음미하기 위한 묵상, 얼 마나 귀한 묵상입니까. 그 묵상을 통해서 영감을 얻고, 하나 님과 교통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법을 깨닫고 살아가는 생활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그래서 청년은 생각을 많이 하 는 젊은이가 되어야 합니다.
다섯 번째 교훈은 "정의로워라" 하는 교훈입니다. 12절을 보면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그랬습니다. 그 리고 16절을 보면 "나는 주의 율례를 잊지 아니하리다"고 했습 니다. 이 말씀은 순수한 마음을 갖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 다. 주의 말씀을 항상 앞세우고 사는 사람은 순수하고 정의 롭습니다. 그곳에 불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청년은 주의 말씀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다" (9) 고 했습니다. 이것 이 젊은이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순수성을 상실한 젊은이는 젊은이가 아닙니다.
어떤 젊은이가 취직을 하겠다고 해서 회사에서 면접시험을 보았습니다. 그때 이 젊은이가 질문을 하기를 "10년을 근속 하게 되면 퇴직금이 얼마나 됩니까"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 젊은이는 면접 시험에서 낙방을 했습니다. 어떤 젊은 풋내기 전도사가 청빙을 받기 위해서 면접을 하는데 질문을 하기를 " 월급이 얼마나 됩니까"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이 청년도 면 접에서 거부되었습니다. 이것은 젊은이가 아닙니다. 이 젊은 이들은 이미 순수성을 상실한 젊은이들입니다.
저는 대학생들이 길거리에 나가서 데모를 하는 것을 괜찮게 보는 사람입니다. 자신들의 정의감에 비해서 세상이 너무 정 의롭지 못해서 좀 정의로워져라 하고 외치는 것이 뭐 나쁠 것 이 있습니까. 오히려 그것도 못하는 젊은이들이 이상합니다. 그렇지만 "남이 하니까 우리도 하자" 그래서 하는 데모는 안 됩니다. "나도 이제는 대학생이니 데모를 해야지" 해서 하는 데모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3천만원, 4천만원씩 써 가면서 학생회 간부가 된 학생들도 데모할 자격이 없습니다. 무슨 할 말이 있다고 데모를 합니까. 그리고 C학점 맞고 D학 점 맞은 학생들도 데모할 자격이 없습니다. 누가 누굴 보고 잘 하라고 소리를 칩니까. 젊은이는 모름지기 정의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의를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것을 누가 말리 겠습니까. 그런데 자신의 정의는 빛이 노랗게 바랬는데 남을 향해서만 하라고 하면 설득력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16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주의 말씀을 잊지 아 니하리이다" 그랬습니다. 주의 말씀에 비추어진 나, 그 말씀 이 내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나, 그 사람이 순수한 사람입니 다. 이런 사람이 세상에 나서서 외치면 누가 말릴 수 있습니 까. 이것이 바로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과도 같은 신선하고 참 신한 젊은이의 모습입니다. 이런 젊은이들을 많이 확보하고 있 는 사회 그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고 그 나라가 부강한 나라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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