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복 있는 자
본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기준 삼아 1989년부터 4월 셋째 주일을 ‘ 장애인주일’로 제정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이는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에 대한 주님의 사랑을 함께 나누고자 함입니다. 장애인주일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다 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엄한 존재임을 재확인하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며, 장애인의 권리와 복지를 증진하기 위한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책임과 사명을 다짐하고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2008년 4월 장애인 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어, 교회에게 장애인 선교를 위해 더 많은 기도와 관심이 요청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장애를 가진 사람도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음을 성서는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 가운데 있는 장애인들을 차별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따라 보호하고 돌보라고 명령하십니다(레 19:14, 신 27:18). “너는 청각장애인을 저주하지 말며 시각장애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 “시각장애인에게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
입이 둔하여 사역을 감당할 수 없다고 주저하는 모세를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가 시각장애인을 만들었으며 누가 청각장애인을 만들었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출 4:11)” 여호와 하나님은 장애인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동역자로서 장애인을 세우셨음을 천명하십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소외당한 많은 병인들과 장애인들을 가까이 하시며 치유하여 주십니다(마 4:24, 14:1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들린 자, 간질장애인, 지체장애인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주시니라. ” 제자들이 와서 사람들이 장애의 원인이 개인의 죄 혹은 부모의 죄인가라고 물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함(요 9:3)”이라고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장애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 우리의 형제요 자매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장애인 주일을 지키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장애인의 존재의 의미를 되새겨보기 위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 안에서 장애를 가진 형제, 자매를 발견하는 일은 여전히 어려운 일입니다. 장애인들은 교회에 가서 일반 성도들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교회 시설에서부터 각종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장애인과 함께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라고 나라에서 정해놓았습니다.
오늘 교회가 장애인의 주일을 정하여 우리 교회에서 장애인 주일로 지킵니다.
장애인이 왜 이 땅에 존재할까
우리가 함께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장애인들을 생각할 때 상징되는 것은 휠체어입니다.
비장애인들의 편견과 무지로 인하여 모든 장애가 이 휠체어 안에
다~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비장애인들은 어떻게 장애인들과 함께 동참할까 고민하면은 장애인들께 가까이 갈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는 옛날부터 장애인들의 흉내로 그걸 예술이라고
춤을 만들고 인간문화제 까지 칭호를 받으며 살아온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런 무지한 역사가 있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생각을 잘 깨달아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가 이해하면서 흉내라도 내어야 될줄 압니다.
인간의 흉내가 아닌 예수님의 흉내를 말입니다.
교회는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똑같이 예배드리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왜 장애인들을 섬겨야 합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섬기라고 명령 하셨기 때문 입니다.
22절 말씀을 잘 보아야 합니다.
또 이사야 61장 2절에 은혜를 베푸는 해와 모든 고통 받는 자를 치료하는 해를 신원이라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회복시키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7장에 소경(시각장애인). 앉은뱅이(신체장애). 문둥이(나병,한센병). 귀머거리(청각장애). 이런 장애인들을 위하여 메시야(예수님)이 오셔서 회복시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은혜의 날을 정해 놓으신 것은 메시야가 오시는 그날 우리 장애인들이 온전한 사람으로 메시야가 회복 시켜주신다고 하셨습니다.
22절에 결과를 보고 우리 주님이 요한에게 판단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삶에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원 합니다.
앙망하며 기도하면 꼭 그런 역사가 일어나실 것입니다.
우리의 회복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 회복 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면에 회복의 중심은 메시야 주님이 되셔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분명히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의 몸이 영광의 몸으로 바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이 불편한 육신이 불편한 육신이 아니라 모든 육신이 회복되어 사슴과같이 뛸 것이라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망의 그림자가 지나갑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소경 같은 장애인 들을 모독치 말고 여호와 하나님같이 경외 하라고 하셨습니다. 교회가 장애인(복지) 사역을 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라고 하는 것은 가식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는 장애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며 주님의 사랑을 함께하는 것입니다.
사무엘하4장 4절이하에~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지체장애인 입니다.
사무엘하 9장 3절~11절 이하에 다윗 왕이 장애인에게 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항상 므비보셋과 함께 한상에서 식사할 것이라 했습니다.
이 마음이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8절에 보면 우리 장애인들의 마음에 상처가 있다는 것 을 볼 수 있습니다.
11절에~왕자중 하나처럼 나와 함께 먹을 것이라 다윗은 말했습니다.
모두가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시면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칭찬하실 것입니다.
우리 선교교회가 이런 마음을 품고 사역을 해야 할 것입니다.
다윗 같은 봉사자가 우리 교회에서 많이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축복이 우리 선교 교회에 있기를 바랍니다
2008년 4월 장애인 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어, 교회에게 장애인 선교를 위해 더 많은 기도와 관심이 요청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장애를 가진 사람도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음을 성서는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 가운데 있는 장애인들을 차별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따라 보호하고 돌보라고 명령하십니다(레 19:14, 신 27:18). “너는 청각장애인을 저주하지 말며 시각장애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 “시각장애인에게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
입이 둔하여 사역을 감당할 수 없다고 주저하는 모세를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가 시각장애인을 만들었으며 누가 청각장애인을 만들었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출 4:11)” 여호와 하나님은 장애인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동역자로서 장애인을 세우셨음을 천명하십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소외당한 많은 병인들과 장애인들을 가까이 하시며 치유하여 주십니다(마 4:24, 14:1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들린 자, 간질장애인, 지체장애인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주시니라. ” 제자들이 와서 사람들이 장애의 원인이 개인의 죄 혹은 부모의 죄인가라고 물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함(요 9:3)”이라고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장애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 우리의 형제요 자매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장애인 주일을 지키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장애인의 존재의 의미를 되새겨보기 위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 안에서 장애를 가진 형제, 자매를 발견하는 일은 여전히 어려운 일입니다. 장애인들은 교회에 가서 일반 성도들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교회 시설에서부터 각종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장애인과 함께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라고 나라에서 정해놓았습니다.
오늘 교회가 장애인의 주일을 정하여 우리 교회에서 장애인 주일로 지킵니다.
장애인이 왜 이 땅에 존재할까
우리가 함께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장애인들을 생각할 때 상징되는 것은 휠체어입니다.
비장애인들의 편견과 무지로 인하여 모든 장애가 이 휠체어 안에
다~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비장애인들은 어떻게 장애인들과 함께 동참할까 고민하면은 장애인들께 가까이 갈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는 옛날부터 장애인들의 흉내로 그걸 예술이라고
춤을 만들고 인간문화제 까지 칭호를 받으며 살아온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런 무지한 역사가 있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생각을 잘 깨달아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가 이해하면서 흉내라도 내어야 될줄 압니다.
인간의 흉내가 아닌 예수님의 흉내를 말입니다.
교회는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똑같이 예배드리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왜 장애인들을 섬겨야 합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섬기라고 명령 하셨기 때문 입니다.
22절 말씀을 잘 보아야 합니다.
또 이사야 61장 2절에 은혜를 베푸는 해와 모든 고통 받는 자를 치료하는 해를 신원이라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회복시키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7장에 소경(시각장애인). 앉은뱅이(신체장애). 문둥이(나병,한센병). 귀머거리(청각장애). 이런 장애인들을 위하여 메시야(예수님)이 오셔서 회복시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은혜의 날을 정해 놓으신 것은 메시야가 오시는 그날 우리 장애인들이 온전한 사람으로 메시야가 회복 시켜주신다고 하셨습니다.
22절에 결과를 보고 우리 주님이 요한에게 판단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삶에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원 합니다.
앙망하며 기도하면 꼭 그런 역사가 일어나실 것입니다.
우리의 회복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 회복 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면에 회복의 중심은 메시야 주님이 되셔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분명히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의 몸이 영광의 몸으로 바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이 불편한 육신이 불편한 육신이 아니라 모든 육신이 회복되어 사슴과같이 뛸 것이라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망의 그림자가 지나갑니다.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소경 같은 장애인 들을 모독치 말고 여호와 하나님같이 경외 하라고 하셨습니다. 교회가 장애인(복지) 사역을 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라고 하는 것은 가식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는 장애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며 주님의 사랑을 함께하는 것입니다.
사무엘하4장 4절이하에~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지체장애인 입니다.
사무엘하 9장 3절~11절 이하에 다윗 왕이 장애인에게 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항상 므비보셋과 함께 한상에서 식사할 것이라 했습니다.
이 마음이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8절에 보면 우리 장애인들의 마음에 상처가 있다는 것 을 볼 수 있습니다.
11절에~왕자중 하나처럼 나와 함께 먹을 것이라 다윗은 말했습니다.
모두가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시면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칭찬하실 것입니다.
우리 선교교회가 이런 마음을 품고 사역을 해야 할 것입니다.
다윗 같은 봉사자가 우리 교회에서 많이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축복이 우리 선교 교회에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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