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노인의 꿈, 청년의 이상
본문
어떤 노인이 뜰에 과수 묘목을 심고 있었습니다.
그곳을 지나가던 한 나그네가 말을 걸어 왔습니다.
도대체 언제 그 나무에서 열매를 따먹겠다고 나무를 심는 겁니까
그러자 노인이 하던 일을 쉬지 않고, 몇 년이 지나면 열매가 열리겠지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나그네가. 노인장께서 그토록 오래 사시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제서야 노인이 잠시 일손을 놓고, 나그네를 바라보면서 또렷하게 말을 합니다.
그렇지는 않지요.
하지만 내가 태어났을 때 과수원에는 열매가 풍성했었단 말이오.
그 나무를 누가 심어 놓았겠소.
바로 우리 아버지였단 말이오.
아버지가 자손들을 위하여 과일 나무를 심어 놓았단 말이오.
나도 아버지처럼 하는 것이오.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면서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리며 마치 지난날들 모두 속아서 살았다고 후회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계 인류 가운데 이스라엘만큼 노인의 위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나라가 없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노인들은 늙은 것에 대해 비탄해하거나 허무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늙을수록 신앙이 더욱 굳세어지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신앙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노인이 됨의 의미를 알고 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노인됨의 의미를 알고 사는 사람은 그 삶의 모습이 전혀 다릅니다.
이제 젊은이의 이야기를 좀 드리겠습니다.
독일의 젊은이들은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으면서 성장을 하고,
프랑스에서는 젊은이들이 파스칼을 읽으면서 성장을 하고,
덴마크의 젊은이들은 키에르케고르를 읽으면서 인생을 키워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은 토라와 탈무드를 읽으면서 선민정신과 이상을 키워간다고 합니다.
그들은 가정에서, 회당에서, 혹은 전쟁터에서 쉬는 시간이면 주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면서 선민의 긍지를 키워간다고 합니다.
어느 교수님이 우리 나라의 청소년들은 무엇을 보며 무엇을 읽으며 자라고 있는가라고 질문하면서 유명한 배우나 가수의 이름을 달달 암기하면서 그들의 생일까지 알고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자 오늘 우리는 본문으로 돌아가서 요엘이라는 선지자가 28절에서 사용하는 네 개의 단어에 우리의 시선을 집중해 보고자 합니다.
선지자 요엘은 28절에서 늙은이 곧, 노인이라는 단어와 젊은이 곧 청년이라는 단어를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꿈이라는 단어와 이상이라는 단어를 역시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노인은 꿈을 꿀 것이고,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라는 것입니다.
선지자 요엘이 이렇게 노인이 꿈을 꾸고 젊은이가 이상을 보는 세상은 가장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잘 알다시피 사도 베드로는 성령이 임하신 후에 인용했습니다.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바로 그러한 시대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먼저 노인의 꿈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여기 노인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에서 자켄이라는 단어인데, 인생의 경험을 많이 쌓았으며 존경받는 분으로 덕이 높고 노련함을 의미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요셉이 자기 형들에게 고국에 계신 아버지의 안부를 물을 때에 노인(자켄)이 안녕하시냐라고 물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이 노인이라는 단어는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 그 역사를 목격한 증인이며 역사의 증인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노인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대를 받는 이유는 바로 요엘의 표현대로 이스라엘의 노인은 꿈을 주기 때문입니다.
여기 사용된 꿈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어떤 환상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혹은 단순히 잠을 자면서 별 의미 없는 꾸는 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꿈이라는 단어, 히브리어의 할롬이라는 단어는 과거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인생을 길게 살았기 때문에 과거를 알려줍니다.
창20:3에 보면 그랄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취하려고 할 때에 꿈으로 사라가 아브라함의 아내임을 알려줍니다.
여기 할롬이라고 하는 단어, 꿈이라는 단어는 어제의 일까지 지나간 과거를 알려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꿈은 노인이 꾸는 것이고 과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소명과 믿음, 애굽에서의 탈출 그리고 가나안 땅의 점령과 같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한 구원의 역사를 노인들이 알고 있습니다.
이 알고 있는 역사적인 사실을 젊은이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노인들은 꿈을 꾸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노인들로부터 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선조들의 신앙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역사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그러할 때 그들은 미래를 조명하게 되고 이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어저께까지의 일을 노인이 이야기 해 주기 위해 꿈을 꾸어야 하며 그 바톤을 이어받은 젊은이들은 미래의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이상을 보아야 합니다.
신6:20이하에 보면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우리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증거와 말씀과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뇨 하거든 너는 네 아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옛적에 애굽에서 바로의 종이 되었더니 이렇게 대답해 주라고 하고 있습니다.
곧 노인은 젊은이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을 명쾌하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노인은 외롭고 쓸쓸하고 불안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름답고 보람있고 행복하게 늙을 수 있는 길은 꿈을 꾸는 것입니다.
늙음으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과 만날 수 있는 꿈을 꾸는 것입니다.
인생은 누구나 노년기가 찾아옵니다.
노인은 요엘의 표현대로 꿈을 꾸어야 합니다.
과거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감사함을 젊은이들에게 넘겨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네카가 일찍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래 살았다는 것 밖에는 남긴 것이 없는 늙은이보다 더 불명예스러운 것은 없다
그렇습니다.
단순히 오래 살았기 때문에 노인이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노인은 히브리어의 할롬이라는 것, 곧 꿈을 꾸셔야 합니다.
지나간 날들 동안 역사하셨던 여호와 하나님의 그 아름다운 역사를 젊은이들, 후손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꿈을 꾸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기의 명예와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 아옹다옹하는 것처럼 보기 싫은 것이 없습니다.
정말 찬송가 460장에 나오는 것처럼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는 신앙의 고백을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면서,
모든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고 의탁하고 살아가는 그런 초연한 모습,
인생의 값진 유산을 젊은이들에게 남겨주는 그 자켄의(노인) 모습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고백된 육체는 후패해지지만 마음은 날로 새롭다는 의미가 바로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꿈이 없는 노인의 가정, 그 나라는 미래가 중단을 당하고 맙니다.
나뭇잎은 떨어질 때에 가장 아름답다고 합니다.
과실은 가을에 익을 때에 제일 아름답고, 곡식도 거두게 될 때에 제일 아름답고 햇빛도 서산 낙조가 제일 아름답다고 합니다.
인생의 노년 시대도 인격과 믿음이 완숙하고 아름다워질 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늙어가는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 욕심만 부리면서 추한 늙은이로 죽는 것이 불행한 일입니다.
아름다운 노년, 그것은 참으로 모든 이들에게 힘을 주는 좋은 모델이 됩니다.
선지자 요엘은 노인들이 꿈을 꾸지 못하는 그 시대를 향하여 앞부분에서 무섭게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메뚜기의 엄청난 재앙이 임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젊은이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을 전수해주지 못하는 꿈을 꾸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에게 메뚜기의 재앙이 임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후일에 너희 노인들을 꿈을 꿀 것이며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나이 드신 어른들이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메뚜기 재앙을 맞이하는 요엘 선지 당시의 이스라엘 노인의 모습이 아니라,
지나간 모든 일에 대해 감사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그 역사하심을 전해주는 꿈을 꾸는 노인,
노년을 소중하게 보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젊은이들의 이상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여기 사용된 젊은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바후르입니다.
이 바후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바하르에서 왔습니다.
그 뜻은 고르다, 선택하다, 정선하다, 선발하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백성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선지자 요엘이 설명하는 젊은이라는 것은 곧 오늘 우리 기독청년들, 젊은 기독교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특별히 온 인류 가운데 선발하시고 선택하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단순한 젊은이가 아니라 바로 바후르,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하신 선택을 받은 젊은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시대, 이 사회에서 특별히 뽑아낸 여호와 하나님의 젊은이들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영어 단어 몇 개 더 외운 사람, 수학 문제 조금 더 잘 푸는 사람, 법 조항 몇 개 더 잘 외우고 해석하는 사람들을 선택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바로 여러분들을 바후르, 여호와 하나님의 젊은이들로 선택하셨습니다.
자 이제 여호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젊은이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면, 요엘 선지자의 표현대로 히브리어로 하존, 곧 이상을 보아야 합니다.
여기 이상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Vision이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젊은이는 비전, 이상을 보아야 합니다.
이 이상이라고 번역된 하존이라는 단어는 여호와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순간을 살면서 영원 저편을 바라보는 것이 이 이상이기도 합니다.
삼상3:1을 보면 엘리 시대에 이상이 없는 시대였습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위태로운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만일 사무엘이 이상을 보지 않았더라면 이스라엘은 그 때에 망했을지도 모릅니다.
잠29:18을 보면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라고 표현되고 있습니다.
여기 묵시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하존, 곧 이상이라는 단어입니다.
곧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이상이 없으면 백성들은 방자히 행한다는 것입니다.
이상이 없으면 백성들이 자만해지고 죄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왜 오늘날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방자히 행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이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엘리의 두 아들이 방자히 행한 것도 그 하존,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이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잠언29장18절에서 이 하존과 율법을 같이 묶는 이유는 곧 이상은 말씀을 듣는데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이상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 아주 자주 이 비전과 말씀은 동일하게 등장합니다.
유다가 바벨론에게 망하면서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이 포로가 되어 끌려갑니다.
선지자들을 통해 그렇게 말씀이 선포되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스라엘은 결국 포로가 되어 끌려갑니다.
그런데 그 포로로 끌려가는 중에 하존, 그 이상을 보는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다니엘이라는 청년입니다.
사실 다니엘서를 읽어가다 보면 이 하존, 이상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겔1:1을 통해 청년 에스겔은 포로지인 그발강가에 하존, 이상을 보는 것을 봅니다.
저는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 젊은이들, 곧 바후르들이 이 하존, 이상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늘 말씀을 가까이 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이상을 보면서 시대를 이끌고 가는 젊은이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저는 잠시 중년층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아직 자켄, 노인도 아니고, 어찌 보면 바후르, 젊은이의 시기는 지난 것 같은 중년층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저는 중년의 시대는 바로 이 두 가지 할롬과 하존, 곧 꿈과 이상이 동시에 나타나는 시기라고 생각을 합니다.
지나간 과거 삶을 통해 이미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하심,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이상을 가지고 해 나가야 할 일들, 사명이 있습니다.
곧 중년층은 지나간 날들 동안 여호와 하나님이 베푸신 그 은혜도 기억하고 꿈을 꾸고 후배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전해주면서,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이상을 보면서 새 역사를 창조해나가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선지자 요엘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의의 나라, 정말 아름다운 나라의 노인과 젊은이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나이가 드신 어르신들은 오늘 선지자 요엘이 표현한 것처럼 이제 날마다 아름다운 꿈을 꾸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신 그 아름다운 은혜들을 늘 기억하면서 그 아름다운 꿈을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아름다운 노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은 젊은이들은 사무엘처럼, 다니엘처럼 이상을 보는 사람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하존을 보는 사람들이 되어서 이 시대를 이끌고 가는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중년층은 할롬과 하존, 꿈도 꾸며 이상도 가지고 나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곳을 지나가던 한 나그네가 말을 걸어 왔습니다.
도대체 언제 그 나무에서 열매를 따먹겠다고 나무를 심는 겁니까
그러자 노인이 하던 일을 쉬지 않고, 몇 년이 지나면 열매가 열리겠지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나그네가. 노인장께서 그토록 오래 사시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제서야 노인이 잠시 일손을 놓고, 나그네를 바라보면서 또렷하게 말을 합니다.
그렇지는 않지요.
하지만 내가 태어났을 때 과수원에는 열매가 풍성했었단 말이오.
그 나무를 누가 심어 놓았겠소.
바로 우리 아버지였단 말이오.
아버지가 자손들을 위하여 과일 나무를 심어 놓았단 말이오.
나도 아버지처럼 하는 것이오.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면서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리며 마치 지난날들 모두 속아서 살았다고 후회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계 인류 가운데 이스라엘만큼 노인의 위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나라가 없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노인들은 늙은 것에 대해 비탄해하거나 허무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늙을수록 신앙이 더욱 굳세어지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신앙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노인이 됨의 의미를 알고 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노인됨의 의미를 알고 사는 사람은 그 삶의 모습이 전혀 다릅니다.
이제 젊은이의 이야기를 좀 드리겠습니다.
독일의 젊은이들은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으면서 성장을 하고,
프랑스에서는 젊은이들이 파스칼을 읽으면서 성장을 하고,
덴마크의 젊은이들은 키에르케고르를 읽으면서 인생을 키워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은 토라와 탈무드를 읽으면서 선민정신과 이상을 키워간다고 합니다.
그들은 가정에서, 회당에서, 혹은 전쟁터에서 쉬는 시간이면 주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면서 선민의 긍지를 키워간다고 합니다.
어느 교수님이 우리 나라의 청소년들은 무엇을 보며 무엇을 읽으며 자라고 있는가라고 질문하면서 유명한 배우나 가수의 이름을 달달 암기하면서 그들의 생일까지 알고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자 오늘 우리는 본문으로 돌아가서 요엘이라는 선지자가 28절에서 사용하는 네 개의 단어에 우리의 시선을 집중해 보고자 합니다.
선지자 요엘은 28절에서 늙은이 곧, 노인이라는 단어와 젊은이 곧 청년이라는 단어를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꿈이라는 단어와 이상이라는 단어를 역시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노인은 꿈을 꿀 것이고,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라는 것입니다.
선지자 요엘이 이렇게 노인이 꿈을 꾸고 젊은이가 이상을 보는 세상은 가장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잘 알다시피 사도 베드로는 성령이 임하신 후에 인용했습니다.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바로 그러한 시대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먼저 노인의 꿈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여기 노인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에서 자켄이라는 단어인데, 인생의 경험을 많이 쌓았으며 존경받는 분으로 덕이 높고 노련함을 의미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요셉이 자기 형들에게 고국에 계신 아버지의 안부를 물을 때에 노인(자켄)이 안녕하시냐라고 물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이 노인이라는 단어는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 그 역사를 목격한 증인이며 역사의 증인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노인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대를 받는 이유는 바로 요엘의 표현대로 이스라엘의 노인은 꿈을 주기 때문입니다.
여기 사용된 꿈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어떤 환상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혹은 단순히 잠을 자면서 별 의미 없는 꾸는 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꿈이라는 단어, 히브리어의 할롬이라는 단어는 과거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인생을 길게 살았기 때문에 과거를 알려줍니다.
창20:3에 보면 그랄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취하려고 할 때에 꿈으로 사라가 아브라함의 아내임을 알려줍니다.
여기 할롬이라고 하는 단어, 꿈이라는 단어는 어제의 일까지 지나간 과거를 알려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꿈은 노인이 꾸는 것이고 과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소명과 믿음, 애굽에서의 탈출 그리고 가나안 땅의 점령과 같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한 구원의 역사를 노인들이 알고 있습니다.
이 알고 있는 역사적인 사실을 젊은이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노인들은 꿈을 꾸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노인들로부터 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선조들의 신앙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역사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그러할 때 그들은 미래를 조명하게 되고 이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어저께까지의 일을 노인이 이야기 해 주기 위해 꿈을 꾸어야 하며 그 바톤을 이어받은 젊은이들은 미래의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이상을 보아야 합니다.
신6:20이하에 보면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우리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증거와 말씀과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뇨 하거든 너는 네 아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옛적에 애굽에서 바로의 종이 되었더니 이렇게 대답해 주라고 하고 있습니다.
곧 노인은 젊은이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을 명쾌하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노인은 외롭고 쓸쓸하고 불안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름답고 보람있고 행복하게 늙을 수 있는 길은 꿈을 꾸는 것입니다.
늙음으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과 만날 수 있는 꿈을 꾸는 것입니다.
인생은 누구나 노년기가 찾아옵니다.
노인은 요엘의 표현대로 꿈을 꾸어야 합니다.
과거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감사함을 젊은이들에게 넘겨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네카가 일찍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래 살았다는 것 밖에는 남긴 것이 없는 늙은이보다 더 불명예스러운 것은 없다
그렇습니다.
단순히 오래 살았기 때문에 노인이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노인은 히브리어의 할롬이라는 것, 곧 꿈을 꾸셔야 합니다.
지나간 날들 동안 역사하셨던 여호와 하나님의 그 아름다운 역사를 젊은이들, 후손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꿈을 꾸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기의 명예와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 아옹다옹하는 것처럼 보기 싫은 것이 없습니다.
정말 찬송가 460장에 나오는 것처럼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는 신앙의 고백을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면서,
모든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고 의탁하고 살아가는 그런 초연한 모습,
인생의 값진 유산을 젊은이들에게 남겨주는 그 자켄의(노인) 모습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고백된 육체는 후패해지지만 마음은 날로 새롭다는 의미가 바로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꿈이 없는 노인의 가정, 그 나라는 미래가 중단을 당하고 맙니다.
나뭇잎은 떨어질 때에 가장 아름답다고 합니다.
과실은 가을에 익을 때에 제일 아름답고, 곡식도 거두게 될 때에 제일 아름답고 햇빛도 서산 낙조가 제일 아름답다고 합니다.
인생의 노년 시대도 인격과 믿음이 완숙하고 아름다워질 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늙어가는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 욕심만 부리면서 추한 늙은이로 죽는 것이 불행한 일입니다.
아름다운 노년, 그것은 참으로 모든 이들에게 힘을 주는 좋은 모델이 됩니다.
선지자 요엘은 노인들이 꿈을 꾸지 못하는 그 시대를 향하여 앞부분에서 무섭게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메뚜기의 엄청난 재앙이 임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젊은이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을 전수해주지 못하는 꿈을 꾸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에게 메뚜기의 재앙이 임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후일에 너희 노인들을 꿈을 꿀 것이며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나이 드신 어른들이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메뚜기 재앙을 맞이하는 요엘 선지 당시의 이스라엘 노인의 모습이 아니라,
지나간 모든 일에 대해 감사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그 역사하심을 전해주는 꿈을 꾸는 노인,
노년을 소중하게 보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젊은이들의 이상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여기 사용된 젊은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바후르입니다.
이 바후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바하르에서 왔습니다.
그 뜻은 고르다, 선택하다, 정선하다, 선발하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백성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선지자 요엘이 설명하는 젊은이라는 것은 곧 오늘 우리 기독청년들, 젊은 기독교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특별히 온 인류 가운데 선발하시고 선택하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단순한 젊은이가 아니라 바로 바후르,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하신 선택을 받은 젊은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시대, 이 사회에서 특별히 뽑아낸 여호와 하나님의 젊은이들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영어 단어 몇 개 더 외운 사람, 수학 문제 조금 더 잘 푸는 사람, 법 조항 몇 개 더 잘 외우고 해석하는 사람들을 선택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바로 여러분들을 바후르, 여호와 하나님의 젊은이들로 선택하셨습니다.
자 이제 여호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젊은이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면, 요엘 선지자의 표현대로 히브리어로 하존, 곧 이상을 보아야 합니다.
여기 이상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Vision이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젊은이는 비전, 이상을 보아야 합니다.
이 이상이라고 번역된 하존이라는 단어는 여호와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순간을 살면서 영원 저편을 바라보는 것이 이 이상이기도 합니다.
삼상3:1을 보면 엘리 시대에 이상이 없는 시대였습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위태로운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만일 사무엘이 이상을 보지 않았더라면 이스라엘은 그 때에 망했을지도 모릅니다.
잠29:18을 보면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라고 표현되고 있습니다.
여기 묵시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하존, 곧 이상이라는 단어입니다.
곧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이상이 없으면 백성들은 방자히 행한다는 것입니다.
이상이 없으면 백성들이 자만해지고 죄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왜 오늘날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방자히 행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이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엘리의 두 아들이 방자히 행한 것도 그 하존,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이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잠언29장18절에서 이 하존과 율법을 같이 묶는 이유는 곧 이상은 말씀을 듣는데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이상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 아주 자주 이 비전과 말씀은 동일하게 등장합니다.
유다가 바벨론에게 망하면서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이 포로가 되어 끌려갑니다.
선지자들을 통해 그렇게 말씀이 선포되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스라엘은 결국 포로가 되어 끌려갑니다.
그런데 그 포로로 끌려가는 중에 하존, 그 이상을 보는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다니엘이라는 청년입니다.
사실 다니엘서를 읽어가다 보면 이 하존, 이상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겔1:1을 통해 청년 에스겔은 포로지인 그발강가에 하존, 이상을 보는 것을 봅니다.
저는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 젊은이들, 곧 바후르들이 이 하존, 이상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늘 말씀을 가까이 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이상을 보면서 시대를 이끌고 가는 젊은이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저는 잠시 중년층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아직 자켄, 노인도 아니고, 어찌 보면 바후르, 젊은이의 시기는 지난 것 같은 중년층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저는 중년의 시대는 바로 이 두 가지 할롬과 하존, 곧 꿈과 이상이 동시에 나타나는 시기라고 생각을 합니다.
지나간 과거 삶을 통해 이미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하심,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이상을 가지고 해 나가야 할 일들, 사명이 있습니다.
곧 중년층은 지나간 날들 동안 여호와 하나님이 베푸신 그 은혜도 기억하고 꿈을 꾸고 후배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전해주면서,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이상을 보면서 새 역사를 창조해나가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선지자 요엘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의의 나라, 정말 아름다운 나라의 노인과 젊은이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나이가 드신 어르신들은 오늘 선지자 요엘이 표현한 것처럼 이제 날마다 아름다운 꿈을 꾸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신 그 아름다운 은혜들을 늘 기억하면서 그 아름다운 꿈을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아름다운 노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여호와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은 젊은이들은 사무엘처럼, 다니엘처럼 이상을 보는 사람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하존을 보는 사람들이 되어서 이 시대를 이끌고 가는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중년층은 할롬과 하존, 꿈도 꾸며 이상도 가지고 나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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