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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누가 진정 장애인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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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누가 진정 장애인 입니까”입니다. 다같이 따라합시다. “누가 진정 장애인 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즈음 온통 세상은 23세 한 젊은이의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적인 행동으로 인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을 살해하고 난 뒤 동영상과 사진을 찍어서 NBC 방송국에 보낸 Tape가 공개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건 결단코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습니다. 어찌 이토록 엽기적일 수 있단 말입니까 어찌 이토록 잔인할 수 있단 말입니까 총을 무차별 난사해서 33명의 시신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 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머지 30명을 살해하기 전 그가 직접 찍은 동영상을 보면서 제 귀에 들려오는 안타까운 말이 있었습니다. “너희가 나의 마음을 황폐화시켰으며 나의 영혼을 빼앗았으며 나의 양심에 불을 붙였다. 너 때문에 나는 약자와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처럼 죽는다. ”
 여러분 이 말이 뜻하고 있는 바가 무엇입니까 적어도 그는 크리스찬이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상적인 신앙인이 아닌, 정신적 문제를 지닌 중증 환자였습니다. 그는 정말이지 영적으로 심각한 장애인 이었습니다. ‘영적 장애인’ 어쩌다가 한 젊은이가 이토록 잔인한 사탄의 하수인이 되고야 말았을까요
 여러분 아무리 공부를 잘하면 무엇 합니까 인간성이 되먹지 못했는데요… 아무리 교회를 다니면 무엇 합니까 영성이 삐뚤어져 있는데요... 부모님을 통해서, 친구들을 통해서, 아니 그 누군가를 통해서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사랑이 진정 이 젊은이에게 전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신앙교육이 잘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가 나를 박해했다. ’고 말하는 심각한 영적 장애가 생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어제가 무슨 날인지 아십니까 바로 장애인의 날입니다.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면서 저는 성경에서 비록 장애인이지만 영적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정상적인 한 사람의 이름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바로 그 사람은 므비보셋입니다.
 사랑하는 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혹시 므비보셋이 어떤 사람인 줄 아십니까 교회에 어느 정도 다닌 성도님들이라면 다윗과 그의 친구 요나단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 대해서는 혹시, 오늘 처음 듣는 분도 계실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은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이 어떻게 므비보셋에게 까지 흘러들어 가게 됐는지를 살펴보면서, 과연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는 귀한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먼저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과 사랑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다윗과 요나단은 자기 생명 같이 사랑했습니다. 다같이 따라할까요 “자기 생명 같이 사랑했습니다. ” 여러분 이 보다 더한 사랑은 없습니다. 아무리 사랑한다 할지라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정말이지 지고지순한 사랑 바로 그 자체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죽이고자 하는 사울왕의 아들입니다. 한마디로 다윗과는 철천지 원수지간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상 18장 1절과 3절을 보면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사무엘상 20장 9절과 17절 말씀 등을 보면 요나단은 부친 사울이 다윗을 죽이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임을 단언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나단이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다윗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 목숨을 걸고라도 다윗을 지켜주겠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요나단의 다윗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게 됩니다. 왕자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에 대한 사랑이 자기 목숨보다도 더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과연, 지금 현재의 나는 어떠합니까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까지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내 몸과 같이 내 이웃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아니, 이웃은 고사하고라도 내 부모, 내 형제, 내 아들, 내 딸 ,내 아내, 내 남편을 생명을 다해 사랑하고 있습니까
 요한일서 4장 20절에서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누구든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
 이제, 오늘 본문말씀과 연관이 되는 중요한 말씀을 사무엘상 20장에서 다함께 찾아보기를 원합니다. 사무엘상 20장 14절에서 17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시작) “너는 나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를 내게 베풀어서 나로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를 내 집에서 영영히 끊어 버리지 말라하고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
 특히, 이 말씀 중에서 15절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제가 표준 새번역으로 다시 풀어서 말씀드립니다. “내가 죽은 다음에라도, 주께서 자네 다윗의 원수들을 이 세상에서 다 없애 버리시는 날에라도, 나의 집안과 의리를 끊지 말고 지켜 주게. ”라고 요나단은 다윗을 향해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죽은 다음에라도”라는 말 속에서 우리는 요나단의 다윗을 향한 깊은 우정과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사무엘상 20장 41절 말씀을 보면 피차 입 맞추고 같이 울되 다윗이 더욱 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더욱 애절하게 통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다윗의 서럽게 우는 모습 속에서 다윗의 우정과 사랑 또한 크고 깊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20장 23절을 보면 다윗과 요나단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영토록 계시느니라. ” 한마디로 너무나도 부러운 둘의 우정과 사랑입니다. 저는 설교 준비를 하면서 저에게 지금 요나단과 같은 진정한 친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생각 만해도 정말로 새 힘이 솟아남을 느꼈습니다. 요나단과 같은 이런 진정한 친구가 조승희 청년에게도 있었더라면 결단코 이런 극단적인 행동으로 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과 사랑은 정말이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요나단이 전쟁터에서 죽은 뒤 야살의 책에 기록된 ‘활 노래’에서 더욱 애절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무엘하 1장 26절 말씀입니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
 그런데 여기서 더욱더 놀라운 일은 “내가 죽은 다음에라도” 이 말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의 요나단에 대한 우정과 사랑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 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한 다윗과 요나단의 사랑과 우정이 요나단이 죽은 뒤에도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이어질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이 날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내 이웃을 내 생명 같이 영원토록 사랑하리라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과연 어떠한 사람이었습니까 둘째로, 그는 절뚝발이었습니다. 불구였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그를 사랑했습니다. 다같이 따라합시다. “절뚝발이임에도 사랑했습니다. ” 사무엘하 9장 13절 하반절 말씀을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시작) “그는 두 발이 다 절뚝이더라. ” 그렇습니다. 므비보셋은 두 발이 다 절뚝발이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먼저 절뚝발이에 대한 평소 다윗의 적개심이 어느 정도까지 심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무엘하 5장 6절부터 8절까지입니다. 다같이 한 목소리로 읽기를 원합니다. (시작) “왕과 그 종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거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저희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성이더라.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수구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절뚝발이와 소경을 치라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소경과 절뚝발이는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
 그렇습니다. 다윗은 예루살렘 성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여부스 사람들로부터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다윗군대를 물리치고도 남는다는 심한 조롱을 받습니다. 이에 격분한 다윗은 소경과 절뚝발이들은 눈에 띄는 대로 모조리 다 죽여 버리라고까지 명령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다윗이 그렇게도 미워하던 절뚝발이의 모습으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절뚝발이들에 대한 다윗의 적개심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두려움에 떨면서 다윗에게 나아와 엎드려 절을 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다윗은 므비보셋을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9장 7절 말씀입니다. 다같이 함께 읽습니다. (시작) “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 ”
 이에 감격한 므비보셋이 다윗 왕에게 절하면서 말하기를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이 말은 “내가 과연 무엇이관대 죽은 개만도 못한 나를 이토록 사랑하십니까” 이런 말입니다.
 여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4절과 5절 말씀입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다윗은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비록 자기 마음에는 들지 않는 절뚝발이였음에도 그를 기쁨으로 받아 드리고 있습니다. 왜입니까 허물 많은 다윗 자신임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지금 이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3절 말씀을 제가 읽습니다. “왕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 “내가 그 사람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 다윗이 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을 그 또한 베풀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내 맘에 들고 들지 않고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그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나도 그에게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 말씀을 전하면서도 계속해서 영적 장애아 조승희 청년이 떠오릅니다. 그에게 다윗과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그에게 요나단과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그에게 참된 주님의 사랑이 전해졌다면.... 그는 분명 영적으로 다시 회복됨은 물론이요, 므비보셋처럼 끝까지 은혜에 보답하는 진실된 사랑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회 성도 여러분 지금 저와 여러분 주변에 조승희 청년과 같은 영적 장애아들은 없습니까 겉으로는 보통사람과 같이 행동하지만 속사람은 악독으로 가득 찬 불쌍한 영적 장애아들은 없습니까 그들을 진정 치유해 줄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밖에는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 내가 진정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서 예수 사랑가지고 저들을 대할 때에 사탄 마귀는 물러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온전히 치유되는 기적의 역사가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순간 이후로 다윗과 요나단이 아닌, 다윗과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 사이에서 진실한 사랑이 시작됩니다. 사무엘하 9장 11절과 13절 말씀을 보면 과거 사울의 종이었던 시바의 집에 거하는 자들이 모두 므비보셋의 종이 되어 므비보셋과 그의 아들 미가를 시중들게 되었음은 물론이요, 므비보셋은 다윗 왕의 왕자 중 하나처럼 항상 왕의 상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왕은 과거 자기가 그토록 싫어하던 절뚝발이와 함께 식사를 같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너무나도 기쁜 마음으로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 앞에, 진실된 사랑 앞에, 참된 사랑 앞에 개인적인 적대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야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회 성도 여러분 므비보셋이 비록 원수처럼 여겼던 절뚝발이의 모습임에도 아낌없이 그를 사랑했던 다윗의 모습이 바로 우리 모두의 진실된 사랑의 모습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셋째로, 참 사랑은 그 무엇도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다같이 따라합시다. “참 사랑은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 그런데 여러분 다윗과 므비보셋의 관계를 갈라놓을 수도 있는 결정적인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사무엘하 16장 1절에서 4절까지의 내용입니다. 다윗 왕이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에게 배신을 당해서 쫓겨 달아나는 도중에 므비보셋의 사환 시바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시바는 다윗 왕을 환대하면서 므비보셋이 “이번 기회에 내 아버지의 나라를 내가 도로 찾겠다. ”고 말했다고 거짓말로 고합니다.
 이에 분노한 다윗왕은 확인해 보지도 않고서 시바에게 ‘므비보셋의 소유가 다 시바, 너의 것이 되도록 하겠다. ’는 약속을 덜컥 하고야 맙니다. 그러나 여러분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게 되는 법입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길에 므비보셋이 다윗 왕을 기쁨으로 맞이합니다. 사무엘하 19장 24절에서 3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먼저 24절 말씀을 한 목소리로 읽습니다. (시작) “저는 왕의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
 여러분 여기서 저는 누구를 가리킵니까 그렇습니다. 므비보셋은 말합니다. “저는 왕이 떠나간 날부터 평안하게 다시 돌아오시는 오늘까지 발도 씻지 않고, 수염도 깎지 않고, 옷도 빨아 입지 않았습니다.
 이 얼마나 순수한 사랑의 표현입니까 이 얼마나 진실된 사랑의 표현입니까 모든 사실을 다 알게 된 다윗왕은 므비보셋에게 정말이지 너무나도 미안했습니다. 하지만 시바와의 약속을 번복할 수는 없고 해서 “시바와 밭을 나누어 가지라”고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이때, 사랑의 사람 므비보셋은 정말로 멋지고 훌륭한 말을 합니다. 사무엘하 19장 30절 말씀입니다. 다같이 한 목소리로 읽기를 원합니다. (시작) “므비보셋이 왕께 고하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저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아멘.
 표준 새번역으로 제가 다시 한 번 읽습니다. “높으신 왕께서 안전하게 왕궁으로 돌아오시게 되었는데, 이제 그가 그 밭을 다 차지한들 어떻습니까 저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습니다. 다윗 왕 당신만 무사히 돌아오신 것 그 것만으로 저는 기쁘고 만족합니다. ”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 왕이 원래 약속한대로 자기의 재산을 몽땅 다 자기의 종인 시바에게 준다 할지라도 그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말입니다. 므비보셋은 다윗 왕으로부터 다시 사랑을 회복하게 된 것, 단지 그것만으로 족하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멋진 참 사랑의 모습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여러분의 기억 속에서 다 사라지셨겠지만 한 동안 산골 소녀 영자에 관한 이야기가 매스컴을 온통 뒤 덮다가 해피엔딩이 아닌 슬픈 이야기로 끝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매스컴을 통해서 보고 들으신 분이 잘 아시겠지만, 저는 처음부터 영자양의 이야기가 TV를 통해서 다큐멘터리로 소개될 때부터 관심을 갖고 보아 왔었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삼척 어는 외딴 마을에서 아버지와 오순도순 살던 10대 소녀 이 영자 양의 도시에로의 외출 대가는 너무나도 비쌌습니다. 한때 그녀는 CF광고에도 출연하게 되면서 엄청난 부와 행복을 누리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달콤한 세상 유혹에 이끌려 이용만 당하다가 결국은 돈을 노린 괴한에 의해 하나 밖에 없는 아버지는 죽임을 당하고, 그녀는 오갈 데 없는, 아무도 의지할 데 없는 외톨박이 신세로 전락하고야 만 것입니다.
 그런데 더더욱 가슴 아픈 일은 이 영자 양을 공부시켜 주겠다고 제의했던 김모씨가 영자양의 TV출연료와 광고비를 모두 다 가로채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그 당시 저는 영자 양의 인터뷰를 들으면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자 양의 서울 생활은 학원가는 일과 주일 날 교회 가는 것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김씨 가정이 기독교 가정이었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김씨가 크리스챤 이었다는 겁니다. 나중에 우연히 신문을 통해서 영자양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는데요 영자양은 속세를 떠나 어느 산사에서 중이 되어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여러분 누가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한 사람의 진실된 사랑으로 한 영혼을 구원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거짓된 모습으로 인해 영자 한 영혼 뿐만 아니라, 세상 많은 사람들로부터 기독교가 지탄의 대상이 되고야 만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조승희를 희대의 살인마로 만들었습니까
 참 사랑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한 영혼을 향한 진실된 사랑이 실종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입술로는 십자가의 사랑,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외치지만, 진정한 주님의 사랑은 온데 간데 없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왜 진정 참 사랑을 찾아보기가 힘듭니까 세상이 왜 이렇게까지 메말라 버렸습니까 무엇이 이 세상을 이렇게까지 만들었습니까 도대체 그 무엇이 이 세상을 이 지경, 이 꼴로 만들었습니까 저는 그 상당부분이 바로 나,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내 탓입니다!” (2번)
 과연 우리 기독교인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써 주님의 사랑을 전하면서 살아간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일까요 이 시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저와 여러분만이라도….
 저와 여러분만이라도 다윗과 요나단의 진정한 우정과 사랑을 다시금 회복하게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자기 생명 같이 상대방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요나단이 죽은 이후에도 계속된 다윗과 므비보셋 간의 사랑처럼, 일시적인 사랑이 아닌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원수 같은 절뚝발이라 할지라도 주의 사랑가지고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참 사랑은 그 무엇도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진정 참 사랑은 제 아무리 강력한 사탄 마귀라 할지라도 절대로 해할 수 없습니다. 왜입니까 이는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즈음 제 기도 제목은 단 한 가지입니다. “I want be a Jesus Christ!" 절대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제가 ‘재림예수’가 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B ‘주님, 제가 주님처럼 되기를 원합니다. 제가 주님의 마음을 품기를 원합니다. 주님처럼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처럼 섬기기를 원합니다. 주님처럼 겸손하기를 원합니다. 제가 주님의 모습을 닮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저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저 또한 내 가족, 내 교회, 내 이웃, 아니 내 원수까지도 뜨겁게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
 “I want be a Jesus Christ!” 바로 이것이 저의 간절한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마음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진실된 마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2장 4절에서 우리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 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첫 사랑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첫 사랑의 기쁨과 감격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 다윗과 요나단처럼, 다윗과 므비보셋처럼 우리들이 거짓된 사랑이 아닌 진실된 사랑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니, 예수님의 참사랑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교회 성도 여러분! 누가 진정 장애인입니까 절뚝발이 므비보셋입니까 아니면 조승희 청년처럼 양의 탈을 쓴 영적 장애아들입니까 그런데 혹시 내가 영적 장애인은 아닙니까 “I want be a Jesus Christ!” 내가 진정 예수 닮기 원합니다. 예수로 인해 영적 장애를 훌훌 벗어 던지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참된 크리스찬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예수 닮은 나로 인해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축복의 통로, 사랑의 통로, 구원의 통로로 온전히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랑이 많으신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다윗과 요나단의 참된 우정과 사랑, 다윗과 므비보셋의 신실한 사랑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다윗과 요나단처럼, 다윗과 므비보셋처럼, 아니 진정 예수님처럼 참사랑을 하기를 소원하오니 우리의 첫 사랑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내가 진정 영적 장애인이 되길 원치 않사오니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사 예수 닮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던 것처럼, 내 가족, 내 이웃, 내 교회, 내 나라와 내 민족을 뜨겁게 사랑하게 하여 주옵소서.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 하셨사오니 예수님처럼 원수까지도 아무런 조건 없이 끝까지 사랑하는 자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참사랑의 근원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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