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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졸업]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목표를 설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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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름다운 날, 한 천사가 천국에서 이 세상으로 내려 왔습니다. 그는 세상의 아름다운 광경들을 돌아 보며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해질 무렵이 되어서 천사는 금빛 날개를 가다듬으며 생각했습니다. ”나는 곧 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기 왔던 기념으로 무엇을 가져갈까 저 꽃들은 얼마나 아름답고 향기로운가! 저 꽃들을 가져가야겠다. ” 다시 천사는 시골 집을 다니면서 열린 문을 통해 누워 있던 아기의 미소를 보았습니다. ”저 아기의 미소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기의 미소도 가져가야겠다. ” 바로 그 때 천사는 아기의 빰에 입을 맞추며 사랑을 쏟아 붓는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아! 저 어머니의 사랑이야말로 내가 세상에서 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답구나!” 천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 가지 보물을 가지고 천국의 진주문으로 날아갔습니다. 그 문을 들어가기 전에 천사는 자기가 가지고 온 것들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꽃들은 보기 싫게 시들어 있었습니다. 아기의 미소는 어느 새 짜증스러운 울음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오직 어머니의 사랑만은 그 본래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천사는 시들은 꽃과 사라진 아기의 미소를 버리고 진주문을 통과했습니다. 그가 무엇을 가져왔는지 보기 위해 천사들 모여 들었습니다. 천사가 말했습니다. ”이것이 지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입니다. ” 하면서 어머니의 사랑을 보여 주었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찬양하는 노래들이 많이 있지만,어머니의 마음1 보다 나은 노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주시고/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가지/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우리가 이런 어머니의 사랑,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오늘 졸업하는 분들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 중의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니다. 자식을 위한 부모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옛 성현(聖賢)들은 부모에 대한 자식의 효도(孝道)를 사람의 근본 도리(道理)라고 가르쳤습니다. 공자(孔子)는 사람이 자기 어버이는 사랑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자를 패덕(悖德)이라고 했고, 자기 어버이는 존경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존경하는 것을 패례(悖禮)라고 했습니다.
풍수지탄(風樹之嘆)이란 말이 있습니다. 효도를 하려 해도 이미 부모가 죽고 없어 효행을 다할 수 없는 슬픔을 뜻하는 말로, 부모가 살아 있을 때 효도하지 않으면 뒤에 한탄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공자가 자기의 뜻을 펴기 위해 이 나라 저 나라로 떠돌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날도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몹시 슬피 우는 소리가들려왔습니다. 이상하다 싶어서 울음 소리를 따라가 보니 고어라는 사람이 그렇게 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는 까닭을 물어보았더니, 고어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에게는 세가지 한(恨)이 되는 일이 있습니다. 첫째는 공부를 한답시고 집을 떠나있다가 고향에 돌아가보니 부모는 이미 세상을 떠나신 일이고, 둘째는 저의 경륜(經綸)을 알아 주는 임금을 만나지 못한 것이고, 셋째는, 서로 속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친구와 사이가 멀어진 것입니다. ” 이렇게 말한 고어는 한숨을 쉬고는 다시 말을 계속했습니다. “아무리 나무가 조용히 있고 싶어도 불어온 바람이 멎지 않으니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樹欲靜而風不止). 2 마찬가지로 자식이 효도를 다하려고 해도 그때까지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子欲養而親不待也). 3 돌아가시고 나면 다시는 뵙지 못하는 것이 부모입니다. 저는 이제 이대로 서서 말라 죽으려고 합니다. ” 고어의 말이 끝나자 공자는 제자들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말을 명심해 두어라. 훈계로 삼을 만하지 않느냐” 이날의 충격과 깊은 감동으로 공자의 제자 중에 열세명이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를 섬겼다고 합니다.
성경에서도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또 골로새서에서는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Children, obey your parents in everything, for this pleases the Lord. )”5 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과 앞서 말한 공자의 가르침이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공자는 효도를 인륜의 근본으로 가르쳤습니다. 사람이라면 마땅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에베소서나 골로새서 말씀을 잘 보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 사람은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한다고 합니다. 직장에서 윗 사람과 아랫 사람이 새로운 인간 관계를 맺고,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부모와 자식이 새로운 인간 관계를 맺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것을 그런 차원에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지 않고 ”주 안에서(in Christ)부모에게 순종하고,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도 올바로 형성될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진정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었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주 안에서” 우리의 모든 인간 관계가 달라져야 합니다. 특히 부모님과의 관계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잘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부모 말씀이 모두 옳기 때문에 순종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마음에 들 때만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대신 ”주 안에서(In the Lord)”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아니라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 사람은 이제부터 부모를 부모로 보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여호와 하나님으로 알고 공경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고요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부모와 관계를 끊고 산다고요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과 관계를 끊고 사는 것입니다.
이제 졸업하는 여러분에게 말씀 드립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또 박사학위를 받는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립니다. 여러분의 기쁨과 영광을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 돌리십시오. 그리고 부모님들에게 돌리십시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얼마나 어려운 고비가 많았습니까 그 어렵고 힘든 순간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어디서 얻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얻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My helpcomes from the LORD). ”6 그리고 또 한군데 더 여러분의 도움이 출처가 있습니다. 바로 부모님의 기도입니다. 오직 자식 잘되기를 위해서, 자식들 건강을 위해서, 공부 잘 하도록 눈물로 기도하신 부모님의 기도가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옛 성현들이나 고전에서 보면 최고의 효도는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고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돈으로, 물질로 부모님의 은혜를 갚는 것은 아주 저 차원적인 효도이고, 고차원적인 효도는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믿는 부모에게나 믿지 않는 부모에게나 진정한 효도를 하는 길은 우리 자식들이 바르게 자라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가치관에 물들지 않고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부모들에게 여쭤 보십시오. 부모가 정말 자식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돈 많이 버는 것이요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요 어쩌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부모의 가치관이나 지식도 어쩔 수 없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까지 밖에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자식들은 ”우리 부모는 그런 것 밖에 몰라!” 이렇게 말해서는 안됩니다.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본 마음은 그것이 아닙니다. 비록 아는 것이 그것 밖에 없고, 표현하는 것이 그것 밖에 없다고 할지라도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자식들이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정말 필요한 유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표현을 못하시거나 안하신 것 뿐이지 부모의 마음은 자식들이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빌립보서 말씀에서 졸업하는 여러분들에게 주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 속에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이 들어 있다고 믿습니다. 동시에 우리 자식들이 이 말씀대로 사는 것이 진정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우리에게 인생의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푯대을 향하여” 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 말은 ”목표를 향하여(toward a goal)” 라는 뜻입니다.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가에 따라 그 목표를 향해서 나가는 사람의 현재의 삶이 결정됩니다. 그 목표가 세속적인 것이면 그것을 얻기 위해서 달려가는 사람의 삶이 세속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달려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돈만 아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삶은 성공지향적인, 또 권력지향적인 삶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보세요. 바울은 그의 현재의 삶을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향하여 힘껏 달려가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요…...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에도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쫓아 가노라. ” 여기 ”쫓아간다” 는 말은 영어로는 ”press on” 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어떤 목표를 향해서 맹렬하게 마치 100m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dash해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길가는 사람이 한 눈 팔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서 발걸음을 재촉한다는 뜻입니다.
졸업이라는 말을 일반적으로는 graducation 이라고 하지요 이 말의 원래 뜻은 계단(grade) 하나를 올라섰다는 뜻입니다. 등급, 눈금 하나가 올라간 것입니다. 또 졸업이라는 말을 다른 말로 commencement 라고 하는데, 이 말은 시작(beginning)이라는 뜻입니다. 졸업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박사 학위를 받아도 끝이 아니라 더 넓은 학문의 세계에 겨우 발을 디뎌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지금 있는 자리에 만족하지 말고 계속해서 성장하십시오. 더 배우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의 목표를 어디에다가 어떻게 설정하겠습니까 바울은 몇가지 서로 다른 표현으로 자기의 인생의 목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12절에 나와 있는대로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for which Christ Jesus took hold of me)” 을 얻는 것이 그의 인생의 목표였습니다. 조금 어려운 말인데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나를 자기의 것으로 붙잡으셨겠느냐 왜 나를 부르셨겠느냐 내 인생의 목표는 그 뜻을 깨닫고 그 뜻을 이루는 것이다. ” 이런 뜻입니다. 둘째는, 14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the prize of the high calling of God in Christ Jesus)” 을 얻는 것이 그의 인생의 목표였습니다. ”위에서 부르신 부름(high calling)” 이라는 표현이 독특합니다. 이 말을 좀 더 쉬운 표현으로 바꾸어 본다면 ”여호와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고상한 소명”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고귀한 소명” 이렇게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의 인생의 목표를 자기나름대로 설정한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여 주신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설정했습니다. 빌립보서 말씀을 잘 읽어 보십시오. ”지금까지 나는 내 자랑을 하면서 내가 원하고 내가 기뻐하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분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입니다. 내가 이만큼 이방 세계에 교회를 세우고 전도를 했다고 해서 그 목표가 다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해서 달려갈 뿐입니다.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런 나를 위해서 큰 상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
어떻습니까 여러분! 바울의 인생의 목표가 자기를 향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고 이웃을 향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인생의 목표도 그렇게 설정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의 가치관에 물들어 세상의 것을 주워 담는 똥차 인생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위해서 정진(精進)하는 고귀한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세상에 그것을 보여 주십시오. 모두 이기적인 마음으로, 이기적인 인생의 목표를 가지고 달려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렇게 사는 삶도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이 시대를 본 받지 말고 이 시대와 싸워 이기는 삶도 있다는 신선한 충격을 주십시오. 희망을 상실한 이 시대에 여기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이 얘기를 들으신 분들이 많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얼만 전에 한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홍제동에서 화재가 났는데 6명의 소방관들이 안에 갇힌 사람을 구하러 들어갔다고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모두 희생되었습니다. 그 중에 김기석이라는 소방관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사고나기 얼마 전에 자기 후배에게 e-mail 을 보낸 내용이 알려졌습니다.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내 한 목숨을 선선하게 던질 수 있다는 것, 나는 이것도 성직(聖職)으로 여긴다네. ”
저는 그 사람이 기독교 신자인지 아닌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하여 적어도 성직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그의 인생의 목표가 성스럽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왜 그의 이 얘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줍니까 이것은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무언(無言)의 메세지을 던져주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성경에도 정확하게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7 그렇습니다. 졸업하고 직장을 잡든지, 아니면 더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박사과정에 들어가든지, 아니면 결혼을 하든지, 여러분의 인생의 목표를 올바로 설정하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내 이웃을 향하여 열려진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정진하십시오. 온 힘을 다하여 달려가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여러분에게 맡겨진 성직으로 받아 들이십시오.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스프링복(Springbok)이라는 산양(山羊)들의 얘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놈들이 처음에는 풀을 뜯으면서 평화롭게 행렬을 이루지만 앞에 있는 놈들이 풀을 뜯어 먹어버리면 뒤에 있는 놈들이 풀을 먼저 차지하려고 앞으로 헤집고 나오려고 합니다. 그러면 앞에 있는 놈들은 뒤에 있는 놈들이 앞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좀 더 속력을 냅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모든 양 떼가 전 속력으로 달려가게 되고, 앞에 낭떠러지가 있는 줄도 모르고 달려가다가 모두 떨어져 죽는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이렇게 죽음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 무리 속에 들어 있는 한마리의 스프링복으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누군가가 그 방향을 바꾸어 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중에 누가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바꾸어 놓는 사람들이 나와야 이 세상이 희망이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아니면 누가 그 일을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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