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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졸업] 진리를 위해 몸을 바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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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에게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누구를 가장 좋아하느냐” 이렇게 물으면, 누구라고 대답하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다윗, 솔로몬, 여호수아 이런 사람들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다윗은 그 마음에 미움을 몰랐던 특이한 사람입니다. 솔로몬은 지혜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의 점령해 나가는 용기와 기상이 뛰어난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몇 년 전에 청년부의 어떤 학생이 “목사님, 제가 인터뷰를 했는데, 제일 좋아하는 과학자가 누구냐고 묻길래 엉겁결에 에디슨(Thomas Edison)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내가 보기엔 대답을 잘 한 것 같은데” 그랬더니, “목사님, 대답을 잘 하긴요. 그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 보더니, 아무 말도 안 하던데요” 성경에도 에디슨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 중에 누구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간혹 예수님을 좋아한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묻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완전하지 못한 것이 우리에게는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지도 모릅니다. 솔로몬은 공(功)도 많았지만 그만큼 과(過)도 많았습니다. 그가 생전에 잠언 3,000개와 노래 1,005개를 지었다고 합니다(열왕기상 4:32). 성경의 잠언을 그가 썼고, 전도서도 그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에게는 왕비가 700명이었고, 첩(concubines)이 300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열왕기상 11:3). 그 사이에서 몇 십 명 혹은 몇 백 명의 자식을 낳았는지 알 수도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말년에 학정(虐政)을 했습니다. 백성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매겼고, 백성들을 강제 노동에 동원하여 백성들의 원성을 샀습니다.
솔로몬이 죽은 후에 공식적으로 그 아버지의 대(代)를 이은 아들은 르호보암(Rehoboam)이었습니다. 학정(虐政)에 시달린 백성들은 르호보암을 찾아가서 제발 세금을 좀 내려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렇게만 해 준다면 우리는 당신을 왕으로 모시고 잘 섬기겠다고 약속합니다. 로호보암은 내가 심사숙고해 볼테니 3일 후에 다시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아버지 솔로몬을 섬겼던 원로(元老)들을 불러서 백성들의 요청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습니다. 원로들은 백성들의 의견을 마땅히 들어 주어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다시 르호보암은 자기와 함께 자란 젊은 보좌관들을 불러서 백성들의 의견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묻습니다. 젊은 보좌관들은 백성들의 의견을 들어 주면 백성들이 버릇이 없어질 테니까 들어주면 절대로 안 된다고 합니다. 불행하게도 르호보암은 원로들의 의견을 묵살해 버리고 젊은 보좌관들의 말을 듣습니다. 백성들에게 더 과중한 세금을 부과합니다. 백성들은 견디다 못해 12지파 중에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10지파가 따로 나가서 나라를 세웁니다. 그래서 나라가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로 갈라지고 맙니다(열왕기상 12:1-17, 역대하 10:1-17).
원로들의 충고를 듣지 않았던 것이 르호보암의 불행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솔로몬의 교훈도 따르지 않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형식적인 면에서 본다면, 잠언은 솔로몬이 그 아들에게 쓴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내 아들아(my son)" 이렇게 자기 아들을 타이르는 말로 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은 뒤 늦게 자신의 삶의 과오를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아들은 자기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르호보암은 노인들의 지혜를 듣지 않고, 아버지의 잠언도 따르지 않음으로 화(禍)를 자초했습니다. 그는 자기 힘으로 아버지의 나라보다 더 강한 나라를 만들고자 했지만 아버지가 그토록 부탁했던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고 좇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패망을 자초했습니다(역대하 12:3). 그 자신도 사치와 허영심에 눈이 어두워 많은 첩을 두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다가 결국에는 애굽의 침입을 받아서 왕궁의 보물과 재물을 다 빼앗기는 수치를 당하고 비참한 말로를 걸었습니다.
"내 아들"이라는 말을 넓은 의미에서 해석하면, 솔로몬의 잠언은 그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주고자 했던 인생의 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도 좋고, 그 옛날 살았던 한 지혜의 왕의 말로 들어도 좋고, 인생의 선배가 주는 말로 들어도 좋고, 부모님의 말씀으로 들어도 좋고, 교회 목사님의 말씀으로 들어도 좋습니다.
 첫째로, 인자를 떠나지 말라고 합니다(3절). 인자(仁慈)라는 말은 사랑이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고, 자비라는 말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절대로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인생을 바르게 사는 길이고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가슴에 와 닿습니까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경쟁사회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정신 똑 바로 차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은 그런 세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디를 가나 경쟁입니다. 이제 학교를 떠나 사회로 나가는 사람들은 job을 얻기 위해서 다른 사람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합니다. 경쟁해서 이겨야 내가 살아 남습니다. 정말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이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무서운 곳이 되었습니까 언제부터 이 세상이 내가 살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이겨야만 되는 그런 곳이 되었습니까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가 세상을 그렇게 바라 보아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경쟁자로, 이겨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애정으로 바라 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에 대한 애정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저는 졸업생 여러분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비전을 잃지 마십시오. 오늘 어버이 주일과 졸업 예배 때 무슨 찬송을 부를까 생각하다가 78장 “참 아름다워라” 이 찬송을 골랐습니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아침 해와 저녁 놀 밤 하늘 빛난 별 망망한 바다와 늘 푸른 봉우리 다 주 여호와 하나님 영광을 잘 드러내도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찬란한 아침 해, 밤 하늘에 빛나는 별,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하신 산과 바다가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그 속에 인간들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서로 반목하고, 서로 싸우고, 전쟁하고, 끔찍한 사고들이 일어고 있지만, 우리는 모두 잃어버린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이 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까 우리의 가슴에 이런 여호와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비전이 없다면 어디에서 이런 비전을 볼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을 그렇게 바꾸어 나가지 않는다면 누가 이 세상을 바꾸어 나가겠습니까 먼저 사람에 대한 애정을 품는 일부터 시작하십시오. 사람들을 경쟁자로 보지 말고 사랑의 대상으로 보십시오. 사람들을 이겨야 할 대상으로 보지 말고, 서로 돕고 협력해야 할 대상으로 보십시오.
 둘째로, 진리를 떠나지 말라고 합니다. 진리라는 말은 진실(眞實, faithfulness)이라는 말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싫든 좋든 이제 사회로, 더 넓은 배움의 현장으로 나가는 여러분들은 “타협”이라는 문제를 피할 수 없습니다. 때때로 타협이라는 말은 융통성(融通性, flexibility)이라는 말과 혼돈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두 말이 분명한 경계선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때는 타협이라는 말 대신 융통성이라는 말로 자신을 합리화 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세상과 쉽게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운명적으로 불의(不義)와 타협하고 불의를 기뻐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진리를 위해 몸을 바쳐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그의 제자들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이 진리를 위해 몸을 바치는 사람들이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Father, sancfy them by truth. Your word is truth. , 요한복음 17:17, 공동번역). ” 이 말씀의 문자적인 의미는 이런 것입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늘 진리로, 아버지의 말씀을 떠나지 않고 자신을 거룩하게 세상과 구별하는 사람들이 되게 해 주십시오. ” 세상 사람들이 그의 제자들을 볼 때, “아, 이 사람들은 진리를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구나!” 이렇게 볼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기도였습니다.
무엇인 옳고 그른 것인지, 무엇이 진실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항상 기본(基本)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럴 때는 항상 성경으로 돌아가십시오. 우리가 돌아가야할 기본은 성경입니다. 세상이 혼란할 때에는 성경으로 돌아가 그 안에 흐르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진리를 보십시오. 여러분, 지난 금요일 성경공부에서 빈스 롬바르디(Vince Lombardi)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요 그는 그린베이 패커스(Green Bay Packers) 팀의 새 코치로 부임했습니다. 그에게는 팀의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그는 팀이 좋아질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기대를 가지고 팀원들과 만나 대화하고, 훈련을 시키고,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 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부진의 늪에 빠진 팀은 쉬게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실망한 그는 선수들을 모두 불러 모았습니다. “모두 중단하고 둥그렇게 앉아 보세요.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는 것은 축구가 아닙니다. 지금 내가 여러분에게 잘못 훈련을 시키고 있거나, 아니면 여러분들이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축구가 아닙니다. ” 그는 무릎을 굽혀 축구공을 들어 보이면서 선수들에게 말했다. “자, 이제 우리 처음부터 시작합시다. ” 이 때 한 선수가 “코치, 그런 얘기 좀 그만합시다. 나를 미치게 할 작정입니까 우리는 그런 얘기를 수십 번도 더 들었단 말입니다” 하면서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롬바르디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공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경기장 표시선이고, 이건 결승점입니다. 나는 코치이고, 여러분은 선수입니다. ” 롬바르디는 이렇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축구의 기본부터 다시 가르쳤습니다. 그때부터 그 팀의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롬바르디의 지휘 아래 있던 그린베이 패커스 팀은 풋볼 역사상 가장 훌륭한 팀 중에 하나가 되어 제1회 수퍼볼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롬바르디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프로 축구에서 살아 있는 전설(legend)이 되었습니다.
오늘 졸업하는 여러분, 여러분 중에는 상급학교로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고, 공부를 마치고 사회로 나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싫든 좋든 이제 여러분의 무대(舞臺)는 이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이제 여러분이 나가서 살아야 할 영역(領域)입니다. 세상은 여러분이 진리를 위해서 몸을 바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할 무대입니다. 여러분을 향한 예수님의 간절한 소원과 기도를 잊지 마십시오. 세상의 패턴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공한 사람들이 되십시오. "네가 살아가면서 남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말아라. 사람에 대한 애정을 잃으면 안 된다. 그리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다. 그리고 네가 이렇게 살아가면 다른 사람들도 너를 인정해 줄 것이다. " 이 말씀을 목걸이처럼 목에 거십시오.
 셋째로,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5-6절)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겸손 하라는 것입니다. 너 자신의 명철을 믿지 말고 모든 일에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인정하라고 합니다. “명철(明哲)”이라는 말은 understanding이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이해, 자신의 판단을 믿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의 뜻을 알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에게는 사물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 새로운 이해력, 새로운 판단력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지난 5월 3일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 "국가 기도의 날"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 버지니아 공대 4학년에 재학 중인 한인 2세 유은재라는 학생이 버지니아 공대 전체 학생을 대표해 기도를 했습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바로 앞에 나와서 약 1분20초 동안 준비한 기도문을 읽었습니다. 기도회를 끝나자 부시 대통령을 비롯해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등 워싱턴의 내로라 하는 정치인들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인사를 받았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한국 사람들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재미 동포인 나를 그 자리에 세우신 것 같습니다. 총격 사건으로 재미동포들이 크게 위축돼 있었는데, 다행히 나에게 기도할 수 있는 행운이 주어졌습니다. 평소 많은 실수를 저지른 저에게 또 한번의 기회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느꼈습니다. 백악관에 다녀 온 후 부모 친지와 친구들로부터 많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것을 본 저의 어머니는 저에게 겸손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리고 오늘 졸업하는 여러분! 이번에 우리 교회에서 모두 39명이 졸업합니다. 박사가 10명, 석사가 15명, 학사가 11명,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사람이 3명입니다. 계속해서 이곳에서 공부를 더 할 사람들도 있고, 한국으로, 타 주로 가는 사람들도 있고, job을 잡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겸손하십시오. 졸업을 뜻하는 “graduation”이라는 말이 “단계(grade)”라는 말에서 온 것 아닙니까 그래서 졸업이라는 말이 한 단계 올라섰다는 뜻 아닙니까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들도 이제 한 단계 올라 선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졸업을 뜻하는 “commencement”는 시작이라는 뜻 아닙니까 겸손한 사람들이 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에게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아버지 어머니가 자식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입니다. 유은재의 어머니도 자식에게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학교 대표로 뽑혀 백악관에 초청되어 부시 대통령 앞에서, 힐라리 앞에서, 기라성 같은 장관들이 모인 자리에 초청 받아 기도했다고 해서, 그리고 이 소식을 듣고 여기 저기서 칭찬하는 전화가 걸려 오고, 신문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이 들어 오는 것을 보고 행여나 자식이 우쭐대고 교만해질까봐 “너 절대로 교만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 그 어머니가 이렇게 타일렀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는 그 기사를 읽으면서 한참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를 노래하는 가사 중에 이런 가사가 있지 않습니까 “사람의 마음 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 속에 오직 한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요.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 어머니 마음 속에 있는 오직 한가지는 자식이 잘 되는 것입니다. “성공해라” “돈 많이 벌어라” “출세해라” 이렇게 말씀하셔도 어머니의 마음은 자식이 잘 되는 것입니다. 비록 어머니가 쓰시는 말은 투박하고 세상적인 용어일지 모르지만, 어머니 마음 속에 있는 오직 한가지 소원은 우리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졸업하는 여러분들을 향한 목사인 저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요즘은 부쩍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운데 믿음으로 변화되는 사람들을 많이 보여 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교회를 더욱 견고한 공동체로 세우시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39명의 졸업생 중에 이곳에 남는 사람들은 더욱 학문과 믿음생활에 정진하십시오. 그리고, 이곳을 떠나 한국으로, 타주로 가는 사람들은 나에게 좋은 교회, 좋은 믿음의 친구들, 좋은 목사님, 전도사님들 붙여 주신 것 감사하십시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좁아졌습니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지역을 뛰어넘어서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협력해야 하는 사람들인 것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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