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졸업] 우리는 은혜로 조기 졸업한다
본문
저희 어머니는 단순하게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셨던 분이셨습니다. 길을 걸어가다 넘어지면 “오 주여!”하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자식들이 사고치고 들어오면 “오 주님”하면서 기도만 하셨습니다. 저는 어렸기 때문에 어머니의 기도를 늘 듣고 살았습니다. 기도의 대부분은 그렇습니다. “모두 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는 것입니다. 시골친척이 돈을 뜯어 간 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교회에서 어머니를 무시한 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물건을 사면서 거스름돈을 뜯겨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제가 제일 싫어하는 소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라는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는 어떻게 보면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짐했습니다. 저는 신학대학을 가지 않았습니다. 사실 연세대학교 신학과에 들어가라고 집에서 야단법석이었지만 “또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라는 소리를 듣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성적을 올려 대학을 진학했다가 낙방했습니다. 재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일반대학을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2년 동안 제멋대로 살게 되었고 군대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군대를 가고 1개월 만에 저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지주였던 어머니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데리고 가셨습니다. 제겐 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방바닥이 허물어진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 묘소에 가서 무덤을 파헤치며 울다가 생각했습니다. “어머니! 이것도 은혜입니까” 그러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반항심이 더 났습니다.
그러다가 ”은혜를 깨닫는 것이 감사의 출발점”이라는 짧은 글을 보았습니다.
그 글은 한국 실로암 안과 병원의 벽에 걸려 있는 어떤 한 환자의 글이었습니다. 이 병원은 우리 교단이 운영하는 개안 수술을 하는 곳입니다. 갑자기 우리처럼 눈을 뜨고 살다가 앞이 안 보이는 분들에게 무료로 수술을 해주는 곳입니다. 그곳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큰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주십사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겸손을 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많은 일을 하려고 건강을 구했더니 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병을 주셨습니다. 행복해지고 싶어 부유함을 구했더니 지혜로워지라고 가난을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자 성공을 구했더니 뽐내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습니다.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모든 것 누릴 수 있는 삶 그 자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구한 것 하나도 주어지지 않은 줄 알았는데 내 소원 모두 들어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한 삶이었지만 미처 표현 못한 기도까지 모두 들어주셨습니다. 나는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라는 간증의 글이었습니다.
이글을 읽고 감동을 받고 세월이 흐르면서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구나! 그렇게 고리타분하고 갑갑한 마음이 들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그분의 은혜가 아니면 살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여호와 하나님이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간단합니다. 왜 이순신이 장군직을 좋아 하지 않고 사병으로 백의종군을 할 수 있었을까
페스탈로치는 어떻게 아이들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스로우는 자연으로 돌아가서 살 수 있었을까 어떻게 안중근의사는 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질 수 있었을까 주기철 목사님은 어떻게 순교할 수 있었을까 한번 이들의 자서전을 읽어 보세요. 세상에서 사는 사람과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들의 삶이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삶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1)가장 낮은 수준의 성도는, ”여호와 하나님이 저기 계신다. ” 라고 하면서 하늘을 가리킵니다.
2)중간 수준의 성도는, ”여호와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다. ” 라고 하면서 가슴을 만집니다.
3)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른 성도는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것이 되실 수 있다.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다양한 형상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계신다. ” 그렇게 말합니다.
중세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을 몹시 사랑하는 수도사가 길을 가다가 사람을 무자비하게 때리는 부자를 보았습니다. 자비심이 많은 그 수도사는 발걸음을 멈추고, 부자에게 그만 때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잔뜩 화가 나 있던 이 부자는, 그 수도사마저 심하게 때렸습니다. 그 수도사는 의식을 잃고 땅에 쓰러졌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이 광경을 수도원에 알렸습니다. 수도사들은 급히 그곳에 가서, 쓰러진 수도사를 수도원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의식을 찾지 못했습니다. 동료 수도사들은 부채질도 하고, 우유를 마시게 했습니다. 잠시 후 그 수도사는 의식을 회복하여,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동료 수도사 한 사람이, 완전히 의식을 회복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물었습니다. ”그대에게 우유를 먹이는 사람이 누구지” 그러자 그가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여, 나를 때린 사람이 지금 내게 우유를 주고 있네. ”
놀랍죠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이 수도사는 부자가 자기를 때리는 것이나 우유를 자신에게 먹이는 것도,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행위 현상으로만 이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짜 믿음을 가진 신앙인의 고백입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주의 유일한 행위자라고 이해하며 고백하는 겁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눈물 흘릴 일이 생겨나는 것도, 나의 단점도, 모두모두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내가 태어난 것도, 내가 병에 걸리는 것도, 내가 기뻐하게 되는 것도, 내가 죽는 것도, 모두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의 섭리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무엇입니까 객관적으로 보면 광대한 우주를 일점일획의 오차도 없이 운행하시는 분과 그 우주 속의 먼지보다 더 작은 존재의 관계입니다. 이 사실을 선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기도드릴 수 있습니다. 만약 예수 믿는 두 가게가 자기 물건이 더 많이 팔리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은 어떠시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제대로 알면 이런 기도를 드리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 저는 그저 도구일 뿐입니다. 그저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은총을 주옵소서. ”
금주에 저는 휴가를 갔다 왔습니다. 친구 목사님 영성센터인데 정말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이었습니다. 밤이 되면 암흑과 같았습니다. 낮에는 아름다운 깊은 자연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이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여호와 하나님의 솜씨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차이는 하늘과 땅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은혜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놀고 와 보십시오. 도리어 허망해집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눈을 감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알 수 있다면 수준이 낮은 것이 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자라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하셨습니다. 로마서1:20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신성을 보여 주셨습니다. 고난이 우리에게 유익이라고 시편기자는 말했습니다. 왜요 이 세상의 만물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실패하는 사업을 통해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웃들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방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빽빽하게 있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단지 내가 못 느끼는 것입니다. 마치 공기를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은 보이는 곳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아 참! 아십니까 요사이 천국과 지옥에 가면 줄이 길다는 이야기 들어 보셨습니까
천국에서 주민증 대조하는데 애를 먹는 다는 것입니다. 얼굴을 너무 많이 고쳐 성향수술을 했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헷갈리신데요 ㅋ ㅋ ㅋ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참새 한 마리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놓고 계시다고 합니다.
사냥꾼이 어느 날, 참새를 잡으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총을 들고 나가 참새를 쏘아 잡았습니다. 그 때 사냥꾼은 자기가 그 참새를 잡은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냥꾼에게 참새를 잡겠다는 생각을 주셨다는 겁니다.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차서, 그가 그런 생각을 하게끔 만드셨다는 겁니다. 또한 참새가 총에 맞게 허락하셨다는 겁니다. 허락하지 않으시면, 총을 겨누는 순간 바람이 불어 참새가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또한 총을 겨누는 순간, 멧돼지가 나타나 총부리를 멧돼지에게 돌리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우리가 모든 것을 결단한다고 하지만 항상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만물을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사실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운동한다고 병이 나지 않습니까 태풍이 오지 못하게 한다고 태풍이 오지 않습니까
아이들 잘 키운다고 잘 자라게 되어 있습니까 아니오!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수도사들은 무소유를 부르짖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명확히 깨달은 위대한 성자 라마크리슈나는, ”저는 기계이고 당신은 기술자이십니다. 저는 마차이고 당신은 마부이십니다. 저는 종이고 당신은 제 주인이십니다. 당신이 행하게 하는 대로 저는 행합니다. ” 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기죠 아니! 내가 미워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속상해하고 미워하는 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입니까 다른 사람이 나를 공격하는 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입니까 그런 분계시죠. 웬만하면 삐치시는 분이 계십니다. 이런 분은 어떻습니까
이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입니까 정답은 무엇이겠습니까 Yes 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부분을 사도 바울이 해결하였습니다. 고전13:11을 보면 ”내가 어릴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 ”
그렇습니다. 저도 어린시절의 수치스러움이 쉽게 잊어지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저희교회 집사님 이름하고 똑같은 양준모라고 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집에 놀러 갔습니다. 그런데 저희가정 상황이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가지고 있던 헌 영어 노트를 훔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도둑질 한 것을 알았지만 갖다 주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영어노트만 보면 아픔이 나옵니다. 이것뿐입니까 어린시절 지하철 공사장에 가서 쇠 조각을 몰래가지고 나와서 엿 바꾸어 먹으려다가 걸려서 빨가벗고 공사장에 손들고 서 있던 일도 기억이 납니다. 유치하게 싸우던 일도 있었습니다. 자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뜻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어린아이의 일은 누구든지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시절로 보면 당연한일이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실수하지 않으면 문제입니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합니다.
우리가 얼라 같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쉽게 짜증이 납니다. 잘 삐칩니다. 작은 일에 쉽게 서운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지금 그런 어린아이 수준이고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휴가를 가다오면 그런 생각을 합니다. 사실 휴가가면 편합니까 아닙니다. 힘들어요. 집에서 쉬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런데 짜증나고 힘든데 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힘들지만 누리며, 쉬고,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상처를 받습니다. 예수 잘 믿으면 안받을 줄 알았는데 받습니다. 상처! 너무나 받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적 상태가 어리다면 당연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여호와 하나님의 뜻으로 이해하고, 받아 들여라!
이것이 믿음이 있는 자의 모습입니다. 모든 일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지금 힘들어하는 모든 일은 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 안에 있습니다. 지금 내안에 있는 상처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돈이 없다면 그래요! 돈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없을 수 있습니다. 내게 속상한일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내게 필요한 일입니다. 그냥 그것을 받아들이십시오!
사실 마귀가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나를 학대하고 싫게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자기 자신을 탓하지 마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하게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둘째 자신의 영혼 성장을 위해 은혜를 간구하라!
고전13:11을 보면 바울은 자신이 어른이 되어서 어떻게 하였습니까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어린 아이 때는 그럴 수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어린아이 때의 생각과 행동들이 그 때에는 자연스럽고 필요한 일이었지만, 어른이 되면 유치하고 불필요한 일이 됩니다. 어른이 되면 거기에 맞게 변해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 어린아이와 어른은, 육체적 나이의 개념이 아닙니다. 영혼 차원의 개념입니다. 육체가 성장하듯, 영혼도 성장합니다. 육체는 성장을 25살쯤에 그치지만, 영혼은 계속하여 성장합니다. 이런 성장 속에서 우리는 안과 밖에서 자신이 원치 않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혼이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1) 그러면 얼마나 경험해야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물론 필요한 경험의 양은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만약 남을 미워하는 경험을 100번해야 된다고 생각 하십시오. 그래야 정신 차려 어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다 그래야 한다면 힘이 더 들 것입니다. 그러나 10회만 해도 우리의 영혼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마치 조기 졸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열심히 하면 될까요
2)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아니오! 조기졸업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혼 성장을 위해 은총을 간구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영혼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면, 미움이나 두려움 상처 등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은혜를 입으면 웬만한 고난을 넘어섭니다. 그래서 고난을 고난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인생의 핵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꼭 붙드십시오. 은혜만이 만사가 해결된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3)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우리의 기도가 은혜를 달라고 해야 합니다.
예배를 참여 할 때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봉사와 헌신을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위해 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놓고 계십니다. 다 아십니다.
여호와 하나님 허락 없이는 참새 한 마리도 떨어질 수 없습니다. 다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맡기십시오.
여호와 하나님 은혜를 폭포수같이 받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빠른 영혼의 성장을 이루어 조기 졸업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작은 일에 상처 받지 말고, 자기를 다스리며 이웃을 사랑하며 아름다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다가 ”은혜를 깨닫는 것이 감사의 출발점”이라는 짧은 글을 보았습니다.
그 글은 한국 실로암 안과 병원의 벽에 걸려 있는 어떤 한 환자의 글이었습니다. 이 병원은 우리 교단이 운영하는 개안 수술을 하는 곳입니다. 갑자기 우리처럼 눈을 뜨고 살다가 앞이 안 보이는 분들에게 무료로 수술을 해주는 곳입니다. 그곳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큰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주십사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겸손을 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많은 일을 하려고 건강을 구했더니 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병을 주셨습니다. 행복해지고 싶어 부유함을 구했더니 지혜로워지라고 가난을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자 성공을 구했더니 뽐내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습니다.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모든 것 누릴 수 있는 삶 그 자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구한 것 하나도 주어지지 않은 줄 알았는데 내 소원 모두 들어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한 삶이었지만 미처 표현 못한 기도까지 모두 들어주셨습니다. 나는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라는 간증의 글이었습니다.
이글을 읽고 감동을 받고 세월이 흐르면서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구나! 그렇게 고리타분하고 갑갑한 마음이 들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그분의 은혜가 아니면 살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여호와 하나님이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간단합니다. 왜 이순신이 장군직을 좋아 하지 않고 사병으로 백의종군을 할 수 있었을까
페스탈로치는 어떻게 아이들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스로우는 자연으로 돌아가서 살 수 있었을까 어떻게 안중근의사는 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질 수 있었을까 주기철 목사님은 어떻게 순교할 수 있었을까 한번 이들의 자서전을 읽어 보세요. 세상에서 사는 사람과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들의 삶이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삶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1)가장 낮은 수준의 성도는, ”여호와 하나님이 저기 계신다. ” 라고 하면서 하늘을 가리킵니다.
2)중간 수준의 성도는, ”여호와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다. ” 라고 하면서 가슴을 만집니다.
3)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른 성도는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것이 되실 수 있다.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다양한 형상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계신다. ” 그렇게 말합니다.
중세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을 몹시 사랑하는 수도사가 길을 가다가 사람을 무자비하게 때리는 부자를 보았습니다. 자비심이 많은 그 수도사는 발걸음을 멈추고, 부자에게 그만 때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잔뜩 화가 나 있던 이 부자는, 그 수도사마저 심하게 때렸습니다. 그 수도사는 의식을 잃고 땅에 쓰러졌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이 광경을 수도원에 알렸습니다. 수도사들은 급히 그곳에 가서, 쓰러진 수도사를 수도원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의식을 찾지 못했습니다. 동료 수도사들은 부채질도 하고, 우유를 마시게 했습니다. 잠시 후 그 수도사는 의식을 회복하여,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동료 수도사 한 사람이, 완전히 의식을 회복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물었습니다. ”그대에게 우유를 먹이는 사람이 누구지” 그러자 그가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여, 나를 때린 사람이 지금 내게 우유를 주고 있네. ”
놀랍죠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이 수도사는 부자가 자기를 때리는 것이나 우유를 자신에게 먹이는 것도,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행위 현상으로만 이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짜 믿음을 가진 신앙인의 고백입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주의 유일한 행위자라고 이해하며 고백하는 겁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눈물 흘릴 일이 생겨나는 것도, 나의 단점도, 모두모두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내가 태어난 것도, 내가 병에 걸리는 것도, 내가 기뻐하게 되는 것도, 내가 죽는 것도, 모두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은총의 섭리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무엇입니까 객관적으로 보면 광대한 우주를 일점일획의 오차도 없이 운행하시는 분과 그 우주 속의 먼지보다 더 작은 존재의 관계입니다. 이 사실을 선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기도드릴 수 있습니다. 만약 예수 믿는 두 가게가 자기 물건이 더 많이 팔리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면 여호와 하나님은 어떠시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제대로 알면 이런 기도를 드리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 저는 그저 도구일 뿐입니다. 그저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은총을 주옵소서. ”
금주에 저는 휴가를 갔다 왔습니다. 친구 목사님 영성센터인데 정말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이었습니다. 밤이 되면 암흑과 같았습니다. 낮에는 아름다운 깊은 자연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이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여호와 하나님의 솜씨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차이는 하늘과 땅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은혜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놀고 와 보십시오. 도리어 허망해집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눈을 감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알 수 있다면 수준이 낮은 것이 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자라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하셨습니다. 로마서1:20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신성을 보여 주셨습니다. 고난이 우리에게 유익이라고 시편기자는 말했습니다. 왜요 이 세상의 만물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실패하는 사업을 통해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웃들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방에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빽빽하게 있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단지 내가 못 느끼는 것입니다. 마치 공기를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은 보이는 곳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아 참! 아십니까 요사이 천국과 지옥에 가면 줄이 길다는 이야기 들어 보셨습니까
천국에서 주민증 대조하는데 애를 먹는 다는 것입니다. 얼굴을 너무 많이 고쳐 성향수술을 했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헷갈리신데요 ㅋ ㅋ ㅋ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참새 한 마리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놓고 계시다고 합니다.
사냥꾼이 어느 날, 참새를 잡으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총을 들고 나가 참새를 쏘아 잡았습니다. 그 때 사냥꾼은 자기가 그 참새를 잡은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냥꾼에게 참새를 잡겠다는 생각을 주셨다는 겁니다.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차서, 그가 그런 생각을 하게끔 만드셨다는 겁니다. 또한 참새가 총에 맞게 허락하셨다는 겁니다. 허락하지 않으시면, 총을 겨누는 순간 바람이 불어 참새가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또한 총을 겨누는 순간, 멧돼지가 나타나 총부리를 멧돼지에게 돌리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우리가 모든 것을 결단한다고 하지만 항상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만물을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사실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운동한다고 병이 나지 않습니까 태풍이 오지 못하게 한다고 태풍이 오지 않습니까
아이들 잘 키운다고 잘 자라게 되어 있습니까 아니오!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수도사들은 무소유를 부르짖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명확히 깨달은 위대한 성자 라마크리슈나는, ”저는 기계이고 당신은 기술자이십니다. 저는 마차이고 당신은 마부이십니다. 저는 종이고 당신은 제 주인이십니다. 당신이 행하게 하는 대로 저는 행합니다. ” 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기죠 아니! 내가 미워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속상해하고 미워하는 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입니까 다른 사람이 나를 공격하는 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입니까 그런 분계시죠. 웬만하면 삐치시는 분이 계십니다. 이런 분은 어떻습니까
이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입니까 정답은 무엇이겠습니까 Yes 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부분을 사도 바울이 해결하였습니다. 고전13:11을 보면 ”내가 어릴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 ”
그렇습니다. 저도 어린시절의 수치스러움이 쉽게 잊어지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저희교회 집사님 이름하고 똑같은 양준모라고 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집에 놀러 갔습니다. 그런데 저희가정 상황이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가지고 있던 헌 영어 노트를 훔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도둑질 한 것을 알았지만 갖다 주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영어노트만 보면 아픔이 나옵니다. 이것뿐입니까 어린시절 지하철 공사장에 가서 쇠 조각을 몰래가지고 나와서 엿 바꾸어 먹으려다가 걸려서 빨가벗고 공사장에 손들고 서 있던 일도 기억이 납니다. 유치하게 싸우던 일도 있었습니다. 자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뜻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어린아이의 일은 누구든지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시절로 보면 당연한일이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실수하지 않으면 문제입니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합니다.
우리가 얼라 같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쉽게 짜증이 납니다. 잘 삐칩니다. 작은 일에 쉽게 서운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지금 그런 어린아이 수준이고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휴가를 가다오면 그런 생각을 합니다. 사실 휴가가면 편합니까 아닙니다. 힘들어요. 집에서 쉬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런데 짜증나고 힘든데 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힘들지만 누리며, 쉬고,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상처를 받습니다. 예수 잘 믿으면 안받을 줄 알았는데 받습니다. 상처! 너무나 받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적 상태가 어리다면 당연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여호와 하나님의 뜻으로 이해하고, 받아 들여라!
이것이 믿음이 있는 자의 모습입니다. 모든 일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지금 힘들어하는 모든 일은 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 안에 있습니다. 지금 내안에 있는 상처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돈이 없다면 그래요! 돈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없을 수 있습니다. 내게 속상한일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내게 필요한 일입니다. 그냥 그것을 받아들이십시오!
사실 마귀가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나를 학대하고 싫게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자기 자신을 탓하지 마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하게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둘째 자신의 영혼 성장을 위해 은혜를 간구하라!
고전13:11을 보면 바울은 자신이 어른이 되어서 어떻게 하였습니까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어린 아이 때는 그럴 수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어린아이 때의 생각과 행동들이 그 때에는 자연스럽고 필요한 일이었지만, 어른이 되면 유치하고 불필요한 일이 됩니다. 어른이 되면 거기에 맞게 변해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 어린아이와 어른은, 육체적 나이의 개념이 아닙니다. 영혼 차원의 개념입니다. 육체가 성장하듯, 영혼도 성장합니다. 육체는 성장을 25살쯤에 그치지만, 영혼은 계속하여 성장합니다. 이런 성장 속에서 우리는 안과 밖에서 자신이 원치 않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혼이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1) 그러면 얼마나 경험해야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물론 필요한 경험의 양은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만약 남을 미워하는 경험을 100번해야 된다고 생각 하십시오. 그래야 정신 차려 어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다 그래야 한다면 힘이 더 들 것입니다. 그러나 10회만 해도 우리의 영혼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마치 조기 졸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열심히 하면 될까요
2)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아니오! 조기졸업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혼 성장을 위해 은총을 간구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영혼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면, 미움이나 두려움 상처 등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은혜를 입으면 웬만한 고난을 넘어섭니다. 그래서 고난을 고난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인생의 핵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꼭 붙드십시오. 은혜만이 만사가 해결된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3)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우리의 기도가 은혜를 달라고 해야 합니다.
예배를 참여 할 때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봉사와 헌신을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위해 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놓고 계십니다. 다 아십니다.
여호와 하나님 허락 없이는 참새 한 마리도 떨어질 수 없습니다. 다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맡기십시오.
여호와 하나님 은혜를 폭포수같이 받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빠른 영혼의 성장을 이루어 조기 졸업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작은 일에 상처 받지 말고, 자기를 다스리며 이웃을 사랑하며 아름다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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